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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2009년 제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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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6,016회 작성일 23-03-09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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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에 오른 퇴근길이였다. 내각청사를 나선 강민혁은 외투깃을 추켜올리며 바삐 지하철도역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광장을 휩쓰는 바람이 잠간사이에 그의 온몸에 뽀얀 눈가루를 하얗게 끼얹어놓았다.

서둘러 찾아온 강추위였다.

지난해에는 이맘때에 녀인들이 김장이 시여진다고 지지끓었댔는데 올해에는 김치독이 얼어터진다고 아우성이다. 잡도리부터 류다르게 시작되는 겨울이였다.

대설목을 퍼그나 앞두고부터 들이닥친 강추위는 좀처럼 풀릴줄 몰랐다.

강민혁은 서둘러 지하철도역에 들어섰다. 이 시간은 지하철도의 마감시간이여서 역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얼마 없었다.

진곤색제복을 입은 안내원처녀가 뭘 보고 그랬는지 그에게 눈인사를 보냈다. 하루에도 수만명의 손님들을 대상하는 안내원들이지만 그들에게는 특별히 눈에 들어오는 손님이 있는가보다.

몹시 지친듯 한 그러면서도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서두르는 그의 거동에서 시간을 다투어가며 생활하는 일군의 체취를 가늠해보는것 같았다. 그러나 강민혁은 그 호의를 느끼지 못하고 무심히 지나쳤다. 그로서는 충분히 그럴수 있었다. 어쩌다 한번씩 지하철도를 리용하는터여서 안내원으로부터 호의를 받을 아무러한 인연도 없는것이다.

오늘만 해도 서부일대의 여러 공장, 기업소들의 생산실태를 료해하기 위하여 여러날째 함께 바삐 지낸 젊은 운전사의 등을 떠밀어 집에 들여보내고 퇴근길에 나선 강민혁이였다.

홀에 들어선 그는 언 안경알에 김이 탁 서려 앞이 잘 보이지 않아 잠간 서있다가야 긴 홀을 걸어갔다.

넓다란 지하역홈에 내려가니 반대켠으로 가는 손님들이 서로 갈라져 서있는것이 보였다. 대부분 퇴근이 늦어진 손님들이겠는데 서두르는 기색이 없이 무엇이 즐거운지 웃고떠들고있었다. 그중에서도 커다란 완구곰을 안고 잔뜩 졸음에 취해 꺼덕꺼덕 졸고있는 사내애를 품에 안은 한쌍의 젊은 부부가 유표하게 눈에 들었다. 무슨 이야긴지 다정히 주고받는 녀인의 손에 든 비닐구럭에는 철지난 언배추 한포기가 삐주름히 잎새를 내밀고있었다.

어느 착실한 공장의 후방일군이 가을철에 미리 장만했던 배추를 요진통에 한통씩 늦어 퇴근하는 녀인들의 구럭에 넣어준 모양이다.

졸고있는 사내애의 앞가슴에 붉은별이 붙은걸 보니 금방 유치원에서 데리고 오는것 같았다. 그들은 웃고있었다. 단란한 하루저녁의 가정일과를 오손도손 나누는지 이야기는 좀처럼 그칠줄 몰랐다. 훈훈한 공기, 사람들의 얼굴마다에 넘치는 환희, 서로 주고받는 랑랑한 목소리, 웃음소리…

문득 고난의 행군때 이 지하철도역에서 보군 하던 풍경이 생각났다.

그때에도 사람들은 서두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에는 해종일 추운 일터에서 일했고 집으로 가야 춥기에는 매한가지였다.

그때 수도에는 열(불)이 결정적으로 부족했었다.

수많은 인구가 밀집되여사는 큰 주민지구를 덥힐만 한 열원천이 없었다. 화력발전소 보이라에 의한 열난방은 수도의 모든 지역에 다 미치지 못했고 전기난방화된 주택들도 조명용전기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형편이였다.

지방의 다른 도시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여름같으면 더위를 피해 그늘이라도 찾아가련만 덮쳐드는 추위는 피할데가 없었다.

어디 열뿐이였던가. 전압이 딸린 고층아빠트들에서는 물까지 부족했다. 쌀난, 열난, 물난…

지금이라고 해서 그 난관이 다 풀린것은 아니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웃고있었다. 당이 강성국가건설의 희망찬 목표를 제시했던것이다. 사람들은 희망과 신심에 넘쳐있었다.

그러나 강민혁은 그들처럼 웃을수 없었다. 그는 당이 제시한 목표가 얼마나 높으며 그것을 점령하기가 결코 쉽지 않으리라는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었으며 바로 그때문에 해종일 마음을 썼고 집으로 가면서도 마음이 가볍지 못했다. 지하전동차를 타고가서 다음역에서 내린 그는 밖으로 나오다가 마주오던 웬 늙은이가 서서 무엇이라 중얼거리는 바람에 걸음을 멈추었다. 그렇게 느꼈을뿐 사실은 똑똑한 발음으로 그에게 길을 묻고있었다.

《개선역에 내리려면 몇번째 서는 역에서 내려야 합니까?》

강민혁은 로인의 말을 비로소 귀에 받아들이고 미안한 웃음을 지으며 《다음 서는 역에서 내리십시오.》 하고 또박또박 알려주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전실입구에 놓인 신발장에 낯선 녀자용털신발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앓는 안해의 방에서 두런대는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또 의사들이 왕진을 온 모양이다. 오래동안 앓고있는 신병으로 하여 달포나마 병원에 입원해있던 안해는 병이 어지간하여 퇴원했는데 집에 오자마자 왕진이 뒤따른다. 강민혁은 잠시 망설이였다. 경우를 봐서는 의사선생에게 인사라도 해야겠으나 아무리 안해의 방이라고 해도 녀인들이 치료를 받는 방에 선듯 들어설수 없어 창가를 마주한채 무료히 서있었다. 창가림이 가볍게 흔들렸다.

창가를 후려치는 바람소리가 소연했다. 강민혁은 무슨 생각이 들어서인지 창가에 바싹 다가섰다. 그의 눈길은 잎떨어진 가로수들사이를 누비고있었다. 외롭게 떨고있는 가로등밑에서 서성대는 한 늙은이를 보았던것이다. 순간 강민혁의 눈앞에는 통일역입구에서 만났던 늙은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구식려행가방을 무겁게 들고서있던 늙은이, 함경도억양이였으나 무척 무게가 느껴지던 어조, 내릴 역을 대주었을 때 아들네 집을 찾아가는데 밤이 늦어 걱정스럽다던, 그때로서는 귀담아듣지 않았던 그 말까지 귀전에 살아나는것이였다.

바로 그 늙은이였다.

그제야 강민혁은 자기가 큰 실책을 범했다는것을 깨달았다.

설비보수중이여서 개선역에서 멎지 않은 전동차는 곧바로 전우역으로 갔을것이다. 집을 어떻게 찾을지 하여 가뜩이나 걱정많던 촌늙은이가 왕청같은 역에 내려 방향없이 집을 찾아 헤매는것이 분명했다. 이 순간 강민혁에게는 그 늙은이가 지팽이를 집었던듯이 느껴졌으며 자기로 해서 그에게 그 어떤 운명적인 일이 벌어질것 같은 위구심까지 드는것이였다. 강민혁은 탁자우에 놓여있는 전화기의 번호를 눌렀다.

《강민혁이요. 대기차를 보내주시오, 빨리!》

그리고는 솜외투를 벗어버린채 나들문을 열고 다급히 계단을 밟아내려갔다.

밖에 나서니 삭풍에 가로수의 마지막잎새들이 떨어져 흩날리고있었다.

강민혁은 급히 도착한 대기차안으로 늙은이를 이끌어들였다. 생각했던것보다는 퍽 헌걸찬 늙은이였다. 얼굴의 잔주름과는 달리 뼈대가 실했는데 그가 들어와앉자 승용차의 좌석이 꽉 차는것 같았다.

강민혁이 북새거리에 있는 아들네 집을 찾아 늙은이를 데려다주고났을 때 시간은 밤 11시를 가리켰다.

하지만 그는 피곤하지도 배고프지도 않았다. 하루종일 무겁기만 하던 머리도 가벼워지고 불안하기만 하던 가슴속에 그 어떤 안정감이 깃드는듯 하였다. 나라의 부총리인 그에게 있어서 이 나라의 매개 사람들, 그가 로동자이든 농민이든 지식인이든 그리고 아이든 어른이든 남자이든 녀인이든 인민의 모습으로 여겨지는것이였다.

그 인민을 위해 무엇이든 하지 못해 애쓰는 그였다. 이제 한시간후엔 새날이다. 그는 집으로 갈 생각을 버리고 자기가 일하는 청사로 차를 몰게 했다.

3층에 있는 자기 방의 사무탁을 마주하고앉은 강민혁부총리의 머리는 다시 무거워졌다.

내각에서는 며칠째 상무회의가 열리고있었다. 국가계획위원회가 제출한 2009년도 인민경제발전계획이 회의의 기본문제로 상정되고있었다. 2009년, 이해에 강성국가건설의 기본지표들에 대한 결정적돌파구를 열어야 한다. 계획초안은 두말할것없이 그 방향에서 기안되고 작성되였다. 이 계획초안발표에 앞서 2008년 인민경제계획수행정형이 개괄총화되였다.

강성국가건설구호가 세상에 처음 공포된것은 2008년 당보, 군보, 청년보의 공동사설에서였다.

어버이수령님탄생 100돐을 계기로 경제건설에서 결정적전환을 이룩하려는 당의 의지를 담은 구호라고 할수 있었다. 내각은 당의 의도를 받들고 2008년도의 인민경제발전계획을 작성했고 경제조직지도사업을 강도높이 벌렸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강성국가건설대전의 첫해에 응당 점령해야 할 고지를 다 점령하지 못했으며 따라서 이 전무후무한 경제전역의 돌파구를 열지 못했다.

물론 2008년에 내각도 경제사령부로서의 직분을 잊지 않고있었다. 당의 구호를 받들고 전례없이 분발했으며 최근 몇해어간에 처음 있어보는 작전을 폈다. 성과도 컸다. 공화국창건 60돐을 승리자의 대축전으로 장식하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린 결과 천리마제강련합기업소를 비롯한 수많은 공장, 기업소들에서 현대화가 적극 추진되고 례성강청년1호발전소, 원산청년발전소, 녕원발전소와 같은 중요대상건설들이 완공되였다. 미곡협동농장을 비롯한 많은 농장들에서 당의 구상이 빛나는 현실로 꽃펴나 사회주의농촌의 밝은 전망이 펼쳐지게 되였다. 또한 혁명의 수도 평양시가 더 현대적으로 꾸려지고 과학교육과 문학예술, 체육부문에서도 큰 성과들이 이룩되여 우리 인민을 기쁘게 해주었다.

회의참가자들은 2008년도 계획수행에 대한 보고를 들으면서 안도의 숨을 쉬고 어느 정도 만족감을 느꼈다. 하지만 새 계획년도의 계획을 토의하면서부터는 누구나 불안을 감추지 못했다.

그것은 2008년도 실적에 비한 새 계획에 예견된 장성비률이 1. 5배, 지어는 2배에 달한다는 사실때문이였다. 그것도 그리 중요치 않은 부문적인 경제지표들이 아니라 관건적인 경제지표들이였다. 례컨대 강철, 전력, 석탄, 기계…

나라의 경제지도일군들인 회의참가자들은 천리마대고조시기의 경제장성속도를 넘어서야 하는 이 놀라운 사실앞에서 불안해하였고 시간의 촉박성을 느꼈다.

강민혁은 내각상무회의를 집행하면서 흐려있던 총리의 얼굴을 그려보았다. 그 얼굴빛이 얼마나 무거웠던지 회의장의 분위기까지 압박하는것 같았다.

그는 총리의 심정이 리해되였다. 부총리인 자기는 총리에게 기대일수 있지만 총리는 결심해야 한다. 그는 당앞에서 경제전선을 맡은 사령관이다. 누구나 불안해하는 작전도를 앞에 놓은 사령관의 심정이 오죽하랴.

그러나 강민혁은 그렇게 세운 계획안마저 의견이 제기되였다는 사실을 아직은 모르고있었다. 키가 크고 몸이 강마르면서도 무게가 있어보이는 50대초반의 사람이 들어왔다. 내각사무국장 오영진이였다. 내각의 보좌부서를 책임지고 누구보다 늘 바삐 지내는 일군이다.

오영진이 여느때같으면 퇴근한줄 아는데 왜 도로 나왔는가고 인사말을 건넸을것이고 강민혁은 또 그대로 사무국장은 왜 아직 퇴근하지 않느냐고 채근했을것이나 오늘은 서로 눈길만 마주쳤을뿐이였다.

내각을 내리누르는 무거운 공기가 범상한 례의범절쯤은 싹 걷어가버린것 같았다. 한동안이 지나서 오영진이 침묵을 깨쳤다.

《부총리동지, 계획토의를 중지해야 할것 같습니다.》

《?!》

《더 높은 요구가 제시되였습니다, 총리동지앞으로…》

강민혁은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말을 처음 듣는 강민혁은 물론 그 말을 이미 들었고 그것으로 하여 가슴에 납덩이를 안고있는 오영진도 그 말을 하면서 다시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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