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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조국 방문기 56. 재북인사묘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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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4건 조회 24,491회 작성일 15-04-30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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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만에 다시 찾은 북부조국 방문기 56

재북인사묘를 찾아서


추석날 새벽이다.  이틀 동안의 장거리 여행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새벽같이 일어나 운동을 겸해서 산책을 나선다.  호텔을 나오니 보통 때보다 훨씬 컴컴하다.  온 사방이 짙은 안개로 뒤덮였다.  노 박사님과 오늘은 좀더 빠른 걸음으로 그동안 가보지 않았던 멀리까지 가보기로 하고는 넓은 대로를 따라 북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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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날이라 거리는 출근길의 시민들도 거의 없어서 한결 조용하다.  열심히 걷다보니 동평양으로 건너가는 대동교 앞이다.  우리가 종종 산책을 마칠 무렵 대동강변에서 올려다보던 다리다.  다리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는 둘러보니 이곳 강변 일대도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경림강안공원 안내도라고 적힌 표지판을 살펴보고는 다시 조금 더 걸으니 한없이 넓은 김일성광장 너머로 아름다운 인민대학습당 건물이 보이고  광장 오른편으로 조선력사박물관 건물이 어마어마한 크기로 자리해있다.  어느쪽이 건물 앞쪽인지 분간이 어려울 정도로 자욱한 안개 가운데 다른 건물들을 지나 강변 방향으로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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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강으로 내려가는 계단쪽에서 어떤 젊은 여성이 책을 읽고 있다.  우리가 다가가서 무슨 책을 그렇게 열심히 읽느냐고 말을 건네니 중국어 공부를 하는 중이라한다.  23세의 전씨 성을 가진 여성인데 전문학교에서 설계를 전공하였고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데 외국어로는 이미 영어를 공부하였다고 한다.   중국어는 스스로 배우기 원해서 종종 인민대학습당을 이용하며 독학중이라고 했다.  잠깐 책을 좀 보자고 청하면서 들여다보니 회화 위주의 기초중국어 교재로 발음은 영문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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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 강변에도 제법 큰 유람선이 있고, 아침 운동과 낚시를 나온 사람들이 많다.  강가 높은 곳에 멋진 조각상이 있어 살펴보니 진군나팔을 부는 고구려 병사다.  안내원이 없으니 그저 짐작할 뿐이지만 고구려의 강인한 정신을 이어받은 북부조국의 기상을 보여주는 조각상이다.   부근에 큼직한 옛 건물이 있어 다가가니 바로 대동문이다.  저 대동문 양쪽으로 옛날엔 견고한 평양성벽이 이어져 있었으리라.   대동문이라고 쓰여진 두 개의 큼직한 현판글씨가 독특하다.   


호텔로 돌아와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아래로 내려가니 김미향 안내원과 운전기사 영호동무가 우리를 맞아준다.  김미향 안내원은 계속되는 우리의 여러 일정을 준비하고 점검하고 확인하느라 오늘이 추석인데도 어제 귀가하지 못하였고,  영호동무도 집에서 가족들과 휴일을 지내지 못하고 우리들과 함께 보내게 되어 미안하면서도 참으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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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안에서 내다본 추석날 아침의 평양시내와 인민들의 표정


우리가 오늘 오전에 먼저 찾을 곳은 재북인사묘라고 한다.  차가 시내에서 얼마간 달린 후 한적한 교외의 시골정취를 풍기는 곳으로 들어간다.  주차를 한 후 차에서 내리니 묘소 관리인과 함께 중후한 모습의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에서 일하고 있는 현영애 지도원이 우릴 맞아준다.  바로 우리를 언덕 위의 재북인사묘로 안내한다.  묘소들은 봉분 없이 공원식 묘지로 잔디밭에 비석들이 세워져 있고 묘소의 가장자리는 사방이 키 낮은 나무들로 둘러쌓여 있어 아늑한 곳이다.  우리가 김미향 안내원이 미리 준비한 꽃을 바치고 묵념을 한 후에 현영애 선생으로부터 이곳 재북인사묘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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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6.25 때 주로 서울에 남아있던 정치인들이 후퇴때 자진하여 북으로 와서 살다가 북에서 돌아가신 분들의 묘소다.  그래 이름 그대로  재북인사묘인 것이다.  이들중 많은 사람들이 이승만 정권에 의하여 서대문 형무소에 갇혔다가 ‘서울해방’을 맞아 6월 28일에 감옥에서 나왔고, 일부 정치인들은 한강 다리의 폭파로 서울을 떠나 피난을 가지 못하고 남아있었다고 한다. 석 달 동안의 인민공화국을 거치면서 북에 대하여 바로 알게 되었던 이들은 후퇴때 북으로 가겠다는 결심을 하였다고 한다.  9월 18일에 김주석은 이들이 북으로 가겠다는 보고를 받고는 승인하면서 특히 연로한 정치인들에겐 승용차를 보내주어서 폭격이 심하니 야간에 떠나도록 주선하였다.  


이때  48명의 정치인들이 북으로 왔는데 김 주석은 그처럼 어려운 전쟁을 치루는 가운데서도 그들을 위하여 여러가지 조치를 취해주었다.   9월 25일 자강도의 만포에서 추석을 맞이한 그들에게 추석연회상을 내려주었고, 온돌을 놓아 따스하게 지내도록 하면서 연로한 사람들에겐 담당의사까지 배치해주었다고 한다. 또한 만포에 중앙적십자병원을 설치하도록 하여 이들을 진료받게 하였고, 조선옷 (한복)을 보내주기까지 하였는데 그 고마움에 감동한 이들이 김 주석을 ‘위인은 위인이다’라며 칭송하였다고 한다.


이들 정치인들과 전쟁 전후에 월북한 주요 인사들 가운데 현재 이곳 재북인사묘에65명, 그리고 애국열사릉에 9명이 묻혀있는데 현재 생존해있는 2명을 포함하여 모두 76명을 통털어 재북인사로 부르는 것이다.   월북한 인사들 가운데 강태무 선생과 표무원 선생도 포함된다고 하였다.  이 두 사람은 경남 고성 출신인데 서로 어릴때부터 친구 사이로 1949년  5월 4일 강원도 현리에서 각자 대대를 이끌고 월북하였는데 북에서 크게 환영을 받았고 6.25 참전을 거쳐 인민군에서 장성까지 지냈고 고위직으로 일했다.  강태무 선생은 2007년에, 표무원 선생은 2006년에 사망하였는데 그 두 사람의 묘비가 여기엔 없는 것으로 보아 애국열사릉에 묻혀있는 것으로 보인다.


당시 월북한 정치인들 가운데 소장파 젊은 국회의원들은 김 주석이 내각직속지도간부학교에 보내어 공부하도록 하여 북에서 일하도록 하였나하면 일부 정치인들은  인민경제대학 특설학부에서 단계별로 공부하도록 하였는데 자신의 전공에 따라 북에서 복무하도록 하였고, 그 가운데  ‘민족고전 번역’일을 한 분들도 있다고 한다. 


현영애 선생이 핸드백에서 가져온 사진을 꺼내기에 그 귀중한 사진들을 카메라에 담는다.  바로 이들 재북인사들의 생전의 모습들이다.  함께 어울려 금강산을 비롯한 유적지를 답사하면서 찍은 사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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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재북인사로 북에서 살아가면서 자체적인 조직이 필요하다고 건의하자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를 1956년 7월 2일에 결성하도록 하였는데 평양 모란봉극장에서 성대하게 그 결성대회를 가졌고, 각 대표들이 축하연설을 하였다고 한다.    우리를 안내해준 현영애 선생은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에서 1980년부터 일해왔다고 한다.


나와 노 박사님은  65기의 묘비 하나하나를 사진으로 담는다.  이들 모두가 사회주의를 찾아 북으로 왔지만 평생 동안 살아가면서 얼마나 고향을 그리워 하였을까?  북으로 떠나올 때 그들 누구도 분단이 이토록 오랫동안 지속될 줄은 몰랐으리라.  두고온 고향생각으로 이들이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를 통하여 누구보다 더욱 통일을 위하여 일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리라.  


이곳에 묻힌 65 명의 이름이나마 이 글에서 남겨두기로 하자.  이 모든 것이 민족의 비극인 분단을 극복하지 못하여 생겨난 일이며, 죽는 날까지 고향을 그리워했을 고인들을 그 이름이나마 기록하는 것은 통일을 꿈꾸는 후대의 작은 의무이기도 할 것이니.


배중혁 선생 (이하 존칭생략), 리문원, 김병희, 황윤호, 정인보, 김경배, 안재홍, 송호성, 박윤원, 김옥주, 리구수, 강욱중, 리춘호, 허영호, 백관수, 현상윤, 길칠성, 조헌영, 백상규, 박보렴, 김약수, 박렬, 김효석, 원세훈, 신성균, 구덕환, 김종원, 명제세, 박승호, 량제하, 리만근, 조종성, 신석빈, 박철규, 류기수, 김장렬, 박영태, 백승일, 리상경, 리광수, 김상덕, 김용무, 권태희, 설민호, 신상봉, 로일환, 리종성, 김동원, 김종성, 장현식, 김의환, 장련송, 김현식, 오정방, 박성우, 신용훈, 고명우, 김한규, 리순택, 정구홍, 김려식, 정인식, 최태규, 윤성식, 김흥곤 (이상 65기의 묘비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첫 줄 맨 오른편의 강욱중 선생이 나와 이름이 비슷하여 살펴보니 내 고향 사람으로 향렬로 보아서 형님뻘이 되는 분이다.  묘비 뒷면에 출생지가 새겨져 있는데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봉성리로 적혀있다.  1909년 2월 18일 생이고 1969년 7월 1일 서거하셨다. 관리인에게 물어보니 남한에서 초대 국회의원으로 우리말 공론사 사장을 지냈다고 한다.  묘비에 ‘조국통일상 수상자’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회원’으로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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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욱중 선생의 고향은 나의 부친이 태어났고 친지들이 사는 고향에서 단지10리 떨어진 곳인데도 내가 그분에  대해서 들은 이야기는 없다.  월북을 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친척들 가운데서도 쉬쉬해야 하는 시절을 우리들은 살아오지 않았는가?  그 가운데 얼마나 많은 남아있던 사람들이 그런 일로 전쟁 전후로 죽거나 고통을 당하였던가.  어른들은 누구누구가 월북을 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겠지만 공개적으로 말할 수 없는 시절을 우리들은 살아온 것이다.  아주 가끔 가까운 친척들 사이에 옛 이야기를 하다 전설처럼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을뿐이다.   그래 고향의 초대 국회의원었던 분이 월북한 것을 당연히 나의 윗 세대들 사이에서  모두가 알고 있었겠지만 전후 세대인 나와 그 또래들은 들은 적이 없는 것이다.  그분의 아주 가까운 친지들 외에는 비밀로 해야만 남은 사람들이 살아남는 시절을 우리는 살아왔으니 이런 민족의 비극이 어디에 또 있는가?


재북인사묘의 묘비들 가운데 또 한 사람의 이름을 발견하고는 그 자세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바로 춘원 이광수였다.  춘원의 묘가 바로 여기에 있다니…이야기는 다음 회에서 이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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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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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왕님의 댓글

광개토왕 작성일

남쪽에서 건너간 사람들의 묘를 별도로 관리하고 있다는 점이
퍽이나 특이하다 생각됩니다.  우리 쪽에서는 북에서 넘어온
사람들의 묘를 이처럼 관리하고 있는지 모르겠군요.

사실 자신들 조상이나 부모의 묘도 세월이 흐르면 제대로
보살피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처럼 성의로 관리하고 있음은
아마도 자신의 생각을 바꾸어 공산주의를 제대로 인식하여
신봉했음에 대하여 높은 평가를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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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광개토왕 님, 북에서는 살아있는 사람에게 표창을 하거나 훈장을 주는 등 그 업적에 대하여 보상을 하면서, 죽은 후에는 혁명열사능, 애국열사능에 묘를 쓰도록 하고, 그 자손들에게도 세밀하게 교육을 시키며 나라를 위하여 살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으로 보아 참으로 의리가 있는 사회인 것 같습니다.

이곳 재북인사묘는 같은 남쪽출신들이 죽어서도 함께 묻혀져 고향을 떠난 사람끼리 외롭지 않도록 배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 가운데 북에서 크게 기여한 사람들은 애국열사릉에 9명이 묻혀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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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님의 댓글

korean 작성일

훌륭한 정보와 글 감사합니다..
춘원 이광수 여기 안장 되어있군요...
한평생 반공일선에서 보냈던 멸공투사 최덕신 최홍희 같은 분들은 아마 애국열사릉에 있을 듯??

한편 북의 우리민족끼리사상이 단순 레토릭이 아니라는 생생한 증거입니다..
몇 년전 영화 '민족과 운명' 최덕신 최홍희선생 인생의 극적반전과 진실 깨닫는 과정 보면서 폭풍눈물로 감동받던 생각나네요...

통일되기 전이라도 남쪽에서 납치자로 규정된 재북정치인사들의 선택과 삶이 남과 북의 거울로써 새롭게 비춰지기를 빌어봅니다....

참고로 김일성광장을 마주한 눈익은 양옆 건물은 로동당사가 아닌 각각 미술관과 역사박물관으로 알고있습니다만... 깨알같은 지적질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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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korean 님, 댓글과 지적 너무 고맙습니다.

사실 안개 속에 사진만 찍고 지나쳤는데 안내원이 없다보니 그저 짐작으로
로동당사로 생각했었군요.  저 큰 건물은 조선력사박물관 건물이 맞습니다.  그리고 김일성광장 너머로 멀리 보이는 아름다운 건물은 인민대학습당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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