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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에 억류중인 뉴욕 대학생 주원문의 기자회견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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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5,165회 작성일 15-09-26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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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국에 비법입국하였다가 단속된 미국 뉴욕대학 학생이 기자들과 회견

 

(평양 9월 25일발 조선중앙통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비법입국하였다가 단속된 남조선계 미국영주권자인 미국 뉴욕대학 학생 주원문이 25일 평양에서 국내외의 기자들과 회견하였다.

기자회견에서는 먼저 주원문이 발언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저의 이름은 주원문이고 21살이며 현재 미국 뉴욕대학에서 기업경영학을 전공하고있다.

저는 1994년 4월 9일 남조선 서울시에서 태여났으며 7살 때인 2001년 3월 부모들과 함께 미국으로 갔다.

현재 미국 뉴져시주에서 살고있다.

미국에서 초, 중,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12년 9월 미국 뉴욕대학에 입학하였으며 2015년 1월까지 공부하였다.

8월까지 휴학신청을 한 다음 2월 15일부터 3월 27일까지 미국에서 려행하는 기간 인터네트를 통해 중국을 거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들어갈수 있다는 자료를 보았다.

공화국에 들어가기 위해 3월 28일 미국을 떠나 남조선 서울에 도착하였으며 조중국경과 린접한 중국 단동을 거쳐 공화국으로 넘어갈 결심을 하였다.

4월 20일 남조선 인천을 떠나 21일에 중국 단동에 도착하였으며 4월 22일에는 비법적으로 국경을 넘어 공화국에 들어왔다가 단속되였다.

제가 비법입국하게 된 동기와 목적은 미국에서 생활하는 과정에 보도매체들과 인터네트를 통해 공화국에 대한 부정적인 자료들을 보고 들으면서 공화국의 현실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직접 체험하려고 한데 있다.

공화국정부에서는 제가 범죄자이지만 매우 인도주의적으로 대우해주었으며 현실을 직접 체험하고싶어하는 저의 소원을 풀어주었다.

저는 공화국정부의 관대한 조치에 따라 직접 체험한 공화국의 현실과 그를 통하여 한 평범한 대학생이 느낀 감정과 견해를 사실그대로 알림으로써 공화국에 대한 미국사회전반의 인식이 얼마나 외곡된것인가를 까밝히고싶은 욕망과 의무감으로부터 여러 기자들과 만나게 해줄것을 요청하였다.

저는 물론 조선의 력사와 조선반도의 현정세를 연구하는 전문가는 아니지만 처음부터 공화국의 현실을 철저히 객관적인 립장에서 보고 듣고 느끼려고 하였으며 따라서 이제부터 제가 말하는 모든것은 제스스로 인식한것이며 그를 통해 얻은 저자신의 견해이며 분석이다.

우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모든것이 인민의 리익을 위하여 복무하는 사람중심의 사회라는것이다.

제가 미국에서 생활하는 기간 보도매체들과 사회여론을 통하여 공화국에 대해 보고 들은데 의하면 공화국은 《핵무기로 무장한 악명높은 호전국》으로서 《독재자들》이 권력유지를 위하여 인민들을 잔인하게 억압하면서도 자기들은 호화롭게 살고있다는것이였는데 제가 체험한 현실은 이러한 인식이 얼마나 그릇된것인가를 보여주었다.

저는 편견없는 마음을 안고 평양시를 비롯하여 공화국의 여러곳을 돌아보는 과정에 미국에서는 들어보지 못한 한가지 사실을 발견하게 되였다.

극장, 도서관을 비롯하여 제일 훌륭하고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모두 일반시민들을 위한것으로서 《인민》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고있는것이다.

인민대학습당, 문수물놀이장, 릉라곱등어관, 개선청년공원을 비롯하여 기념비적인 건축물들이 모두 일반시민들의 복리에 이바지하는 문화생활의 거점으로 되고있다.

실례로 인민대학습당만 놓고보아도 전민이 학습하는 규모가 대단히 큰 도서관으로서 특정한 사람들만이 갈수 있는 곳이 아니라 로동자, 농민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국가의 배려에 의하여 무상으로 각종 도서들을 읽고 외국어, 음악 등 여러 과목들을 배우고있었다.

김일성종합대학에서는 대학생들이 국가의 부담으로 장학금까지 받으면서 학업에 열중하고있다. 현대적인 전자도서관에는 인터네트와 국부망을 사용할수 있는 콤퓨터들이 들어차있고 교원들과 학생들이 여가시간에 무상으로 피로를 풀수 있는 훌륭한 수영관도 있었다.

저는 평양학생소년궁전도 돌아보았는데 공화국에서는 재능을 가진 어린이라면 누구든지 국가의 관심속에 학비에 대한 걱정없이 무료로 성악과 무용, 악기를 배우면서 마음껏 희망을 꽃피울수 있다는것을 알고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다.

또한 훌륭하게 꾸려진 문수물놀이장에서는 많은 가족들이 아무런 근심걱정없이 휴식의 한때를 보내고있었다.

자연적인 풍치를 그대로 살리면서도 편리하게 리용할수 있게 꾸려진 모란봉의 정각들에서는 사람들이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고있었는데 그곳에서 저는 외국인들이 평양시를 공원속의 도시라고 부르는 리유를 알수 있었다.

7월 27일과 8월 15일에는 청년학생들의 무도회와 야회도 보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여러곳에 모여 경축분위기에 휩싸여있는 모습은 저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이상과 같이 체험을 통하여 저는 공화국에서는 모든것이 인민의 편의를 도모하고 그들에게 복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였다. 공화국에 대하여 좋지 못한 선전만 들어온 저에게 놀라움과 함께 이러한 인민중심의 제도가 어떻게 펼쳐졌는가 하는 물음을 주었고 그에 대한 해답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저는 그에 대한 해답을 공화국이 인민의 어버이들에 의하여 창시되고 심화발전된 주체사상이 인민생활의 모든 분야에 구현된 인민대중중심의 독특한 사회주의국가이라는데서 찾았다.

학교들과 박물관들을 비롯하여 제가 돌아본 건축물들에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그 모든것이 인민의 복리를 증진시키시려는 김일성주석님과 김정일장군님김정은원수님의 발기와 지도에 의하여 건설되였다는것이다.

제일 큰 감동을 받은 곳은 평양육아원, 애육원과 옥류아동병원이였다.

김정은원수님께서 평양육아원, 애육원건설장을 여러차례나 찾으시여 원아들의 생활에 자그마한 불편이 있을세라 친부모의 심정으로 세심하게 보살펴주시였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분의 배려는 아이들이 미끄러지지 않게 목욕실에 깔아놓은 고무깔판에까지 미치고있었다. 비록 부모없는 아이들이지만 훌륭한 침실과 놀이방, 물놀이장과 진료소가 있는 보금자리에서 세상에 부러운것 없이 지내고있었는데 그들은 행복에 겨워 김정은원수님에 대한 노래를 불렀다.

그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면서 저는 공화국의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이 자기 수령들을 어버이로 존경하고 따르는 리유에 대하여 리해하기 시작하였으며 감상록에 《오늘 참관을 통하여 저는 어린이들이 어째서 위대한 김정은원수님을 자기들의 아버지라고 부르는지 리해할수 있었습니다. 부모잃은 아이들을 포함하여 이 나라의 모든 어린이들을 그처럼 돌보시는 김정은원수님은 사랑과 위대함을 체현하고계십니다. 저는 오늘을 영원히 잊지 않을것입니다.》라는 글을 남기였다.

후대들에 대한 김정은원수님의 자애로운 사랑은 최신식의료설비들을 갖춘 옥류아동병원에서도 찾아볼수 있었는데 그곳에서 저는 평양시는 물론 지방에 이르기까지 갓난 애기로부터 16살까지의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 대한 치료를 세계적수준에서 해주면서도 돈 한푼 받지 않는 현실을 목격하였다.

저는 김일성주석님과 김정일장군님의 동상이 높이 모셔진 만수대언덕에서 결혼식을 하는 신혼부부를 보게 되였다. 공화국에서는 신랑, 신부가 결혼식날에 수령님들의 동상을 찾아 존경을 표시하고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또한 김일성광장, 개선문, 주체사상탑, 평양지하철도를 돌아보면서 자기들에게 나아갈 길을 밝혀주신 수령님들에 대한 인민들의 흠모의 감정을 느낄수 있었다.

만경대고향집을 돌아보면서 수수한 초가집에서 탄생하시여 소박하고 애국적인 가정에서 성장하시였으며 모진 시련을 이겨내시면서 나라를 해방시키시고 인민들을 오늘에로 이끌어오신 김일성주석님에 대하여 더 잘 알게 되였다. 그분께서 집필하신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를 읽는 과정에 주체사상이 어떻게 창시되고 그것이 공화국의 사회현실에 어떻게 구현되여왔는가를 리해할수 있었다.

국제친선전람관을 찾은 저는 공화국의 수령님들께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 국가수반들과 정치인, 인사들이 올린 수많은 진귀한 선물들을 보면서 그분들께서 세계적으로 높은 존경을 받으시였으며 각계각층에 걸쳐 그처럼 많은 사람들과 친분관계를 가지고있었다는 사실에 감탄하였다. 선물들은 사람중심의 정치철학을 내놓으시고 주체의 사회주의국가를 일떠세우신 공화국의 수령님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저는 7월 19일 지방주권기관의 대의원들을 선거하는 모습도 보게 되는 행운을 지니였다. 선거장들은 선거자들이 그 누구를 반대하거나 후보자들이 서로 경쟁을 벌리는 마당이 아니라 인민들이 후보자들을 지지하고 후보자들은 사회를 위하여 복무할것을 약속하는 장소였다. 사람들은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면서 명절처럼 선거날을 경축하였다.

공화국에 있는 기간 저는 안정된 정치, 경제, 문화제도하에서 집과 식량, 보조금, 의료상방조 등 생존권이 담보되고 사람들이 자기들의 생활에 대해 매우 만족하게 여기고있다는것을 느낄수 있었다.

인민의 복리가 모든것의 중심에 있는 국가이기때문에 공화국에서는 돈은 중요하지 않으며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한 경쟁속에서 살고 일하는것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의 리익을 위해 노력하고있다. 다시말하여 사회에서 가장 귀중한 존재는 인민이며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집단주의정신을 가지고 사회와 개인의 리익을 다같이 보장하고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태여나 성장한 제가 사회주의사회인 공화국에서 체험한 모든것은 저의 일생에서 가장 놀랍고 따뜻한 추억으로 남게 될것이며 그에 대해 이 자리에서 다 말하기는 어렵다. 명백한것은 서방이 흔히 떠드는것처럼 이 나라에 존재한다고 생각했던 《인권문제》나 《폭압정치》를 전혀 찾아볼수 없었다는것이다.

저는 미국에서 여러 경로를 통하여 공화국에서의 《인권유린》에 대하여 많이 들었기때문에 나쁜 견해를 가지고있었다. 고등학교를 다닐 때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간 이른바 공화국의 피난민들이 《새 생활》을 할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단체인 《북조선해방》구락부의 한 성원이였다.

2011년경 《북조선해방》조직성원들인 미국사람 3명이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 와서 자기 조직에 대해 간단히 소개한 다음 공화국에서 도망친 피난민들이 《새 생활》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담은 기록영화같은것을 보여주었다.

대학에 다닐 때 선물로 받은 실화소설에는 조중국경을 넘어 공화국에서 도망친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적혀있었는데 공화국에서의 생활에 대하여 아무런 희망도 없는 강제적인것으로 묘사하고있었다. 2015년 3월에는 인터네트에서 한 외국관광객이 공화국의 시장에서 마약을 샀다는 내용의 글을 본적도 있다.

공화국은 항상 온갖 도전과 많은 고난을 이겨내고있지만 현 정치제도하에서 사람들은 구속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있으며 발전할수 있는 충분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가지고있다. 수령과 인민은 하나의 화목한 대가정을 이루고 미래를 락관하면서 살며 일하고있다.

김일성종합대학과 인민대학습당을 돌아볼 때 저는 대학생들과 영어로 대화를 나누었는데 남조선출신 미국대학생에 대한 그 어떤 반감이나 쌀쌀한 태도는 전혀 찾아볼수 없었다. 그들은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벗으로 될수 있다고 하면서 나를 환영하였다.

내가 만난 많은 사람들은 모두 열정적이고 자기 사업에 대한 락관을 가지고있었으며 서로 돕고 이끄는 풍조가 사회를 지배하고있었다.

흔히 서방에서는 공화국을 두고 《고립되고 페쇄된 국가》라고 하면서 정부에 의하여 인민들이 외부세계에 대해 모르고있다고 선전하고있지만 저는 평양국제영화회관에서 서방의 일상생활을 보여주는 인디아예술영화 《테즈》를 관람하였으며 중앙텔레비죤방송과 록화기를 통해 로씨야, 중국, 인디아를 비롯한 여러 나라 영화들을 수많이 보았다.

김일성종합대학 전자도서관에서 제 눈으로 학생들과 교원들이 인터네트에 접속할수 있는 콤퓨터들을 사용하는것을 목격하였으며 인민대학습당에서는 미국작가 마크 트웨인이 쓴 소설 《하클버리휜의 모험》을 보았고 다른 많은 외국소설들과 참고서들을 일반시민들이 마음대로 읽고있었다.

저는 정치가도 력사가도 아니며 미국에 사는 조선사람으로서 평화와 공정성을 바라는 평범한 대학생에 불과하다.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과 신천박물관도 돌아보았는데 조선전쟁을 공화국이 아니라 미국이 일으켰다는것을 보여주는 여러가지 증거자료들과 전쟁기간 미군이 감행한 만행자료들도 볼수 있었다.

못과 톱 같은것을 리용하여 감행한 몸서리치는 대학살만행자료들은 사진들과 목격자들에 의하여 증명되고있었다. 가장 잊혀지지 않는것은 어떤 창고들에 아이들과 그의 어머니들을 따로 갈라놓고 휘발유를 뿌려 불태워죽인것으로서 저는 당시 학살장소에서 살아난 3명의 생존자들중 한명을 만나 그로부터 직접 학살만행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수 있었으며 그 만행장소에도 가보았다.

저는 학살된 아이들의 묘에 꽃다발을 놓으면서 고등학교에서 받은 수업들이나 다른 기회들에 이러한 범죄행위에 대하여서는 왜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을가 하고 생각하였다. 박물관을 돌아본 다음 저는 감상록에 《전쟁은 인류에게 재난을 주는것입니다. 저는 이런 비극이 조선반도에서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평화적으로 모든 일이 해결되기를 바랍니다. 악한들은 자기의 죄행에 대하여 스스로 자수하여야 하며 그런 날은 곧 올것입니다.》라고 썼다.

조선반도의 긴장한 현정세하에서 미국의 전쟁범죄에 대하여 조선인민이 품고있는 적대감에 대해 리해할수 있었고 특히 미국이 아직까지도 자기의 범죄행위를 인정하지 않고 감추고 있는것으로 하여 조미관계가 더 악화되고있으며 이것은 평화의 장애물로 된다고 생각하였다.

정전협정은 체결되였지만 기술적으로 볼 때 북과 남은 아직 전쟁상태에 있는것으로 하여 한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현실에 대하여 거의 모르고있다.

공화국의 현실을 체험한 저는 북과 남이 서로 형제들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싸우는것은 조선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비극이고 슬픔이며 이제는 과거를 잊고 통일의 밝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조선민족은 북에 있든 남에 있든 언어와 문화가 서로 같은 한 겨레이다.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더 많으며 온 겨레가 통일을 지향하고있는것만큼 70년동안 지속되여온 분렬상태를 끝장낼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였다.

저의 체험이 세계의 많은 사람들 특히 미국과 남조선사람들에게 전달되기를 바라며 세계의 량심적인 인민들과 언론들이 공화국에 대하여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과 남조선정부가 공화국에 대한 적대적인 태도를 버리고 공화국을 인정하는것을 비롯하여 정책을 전환할것을 요구한다.

나는 정의와 진리를 사랑하는 대학생으로서 평화와 협력, 통일을 위한 제안들인 김일성주석님께서 내놓으신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과 북남사이에 이미 채택된 6. 15공동선언을 비롯한 합의사항들을 불변의 지침으로 틀어쥐고 나아감으로써 다음 세대들은 하나로 통일된 강토에서 살게 되기를 바란다.

저는 21살밖에 안되였지만 이 위업에 자신을 바칠것이다.

나는 그 누구의 지시를 받거나 그 어떤 관용을 바라는 사람이 아니며 다만 세계에 진실을 알리고싶다. 저의 체험이 사람들로 하여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하여 리해할수 있게 한다면 더 바랄것이 없다.

끝으로 제가 공화국의 여러곳을 돌아볼수 있도록 특혜를 베풀어주신 김정은원수님께 삼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저를 따뜻하게 대해준 공화국인민들에게도 사의를 표한다.

이어 주원문은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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