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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소설 <새나라>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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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9,339회 작성일 15-11-01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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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구진배는 남조선주둔 미군사령관 하지중장을 만나기 위해 대기실에서 기다리고있었다. 그를 여기까지 데리고온 하지의 정치고문 버취는 잠간만 기다리라고 하고는 저 혼자 들어갔는데 한시간이 넘도록 나오지 않고있었다.

대기실은 호화롭게 꾸려져있었다. 천정의 커다란 무리등이며 바람벽에 걸려있는 유럽풍의 회화작품이며 바닥에 깐 주단이며 그리고 자기가 앉아있는 안락의자까지 모두다 사치하고 값진것들이였다. 대기실이 이 정도이니 이제 들어가보게 될 하지중장의 방은 얼마나 화려할것인가.

방음장치가 되여있는 문옆에서는 군복을 입은 금발머리양녀가 타자기를 재깍거리고있었다. 입술이 얄팍한 그 녀자는 코도 뾰족하고 아래턱도 뾰족해서 대번에 석기시대의 돌도끼를 련상시켰다. 《돌도끼》는 구진배의 존재는 아예 이 방에 없는것으로 생각하는지 말 한마디 걸어오지 않았다.

꾸어온 보리자루처럼 한쪽구석에 앉아 무료감에 시달리던 구진배는 앞차대에 놓인 재털이를 보자 담배생각이 나서 한대 붙여물었다. 그 순간 타자기소리가 멎고 《돌도끼》가 어느새 구진배앞에 다가왔다. 담배연기를 탐스럽게 들이키던 구진배는 영문을 몰라 올려다보는데 그 녀자는 거만한 자세로 내려다보며 손톱에 물감을 들인 뾰족한 손가락으로 재털이를 가리켰다. 당장 담배를 끄라는 뜻이였다. 구진배는 그만에야 자기의 실수를 깨달았다. 감히 어디서 담배질인가.

기가 질린 그는 삼켰던 담배연기를 내뱉지도 못하고 황급히 담배부터 비벼껐다. 그리고 조심스레 연기를 내보낸다는노릇이 그만에야 사래가 들려 요란하게 재채기를 했다. 재채기를 할 때마다 미개한 동양인을 서양녀자앞에서 망신시키려는듯 고약스런 담배연기는 입에서 코구멍에서 자꾸만 쏟아져나왔다.

재채기바람에 눈물까지 찔끔 솟아올랐다. 금발머리양녀는 문쪽을 흘끔거리며 《스톺, 스톺!》하고 낮게 소리쳤다.

기침을 하지 말라는 조선말을 모르니 영어로 서라는 소리밖에 할수 없었던것이다. 그래도 구진배는 그 말을 알아들었다.

여기는 숨조차 마음대로 쉴수 없는 하지중장의 방이라는 공포심이 이겼는지 기침이 뚝 멎은것이다.

금발머리양녀는 경멸의 눈초리로 구진배를 한참이나 노려보다가 다시 제자리로 가앉아 타자기를 재깍거렸다.

구진배는 잔등에서 땀이 다 나는것만 같았다. 서기년이 괘씸했다.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할바에야 왜 재털이를 내놓았는가?

그럼 나만 여기서 담배를 못 피우는가?

그는 자기 차림새를 내려다보았다. 하지중장을 만나게 된다고 해서 격자무늬 회색양복에 나비넥타이까지 맨 신사차림이였다. 마른 명태처럼 빼빼 말라서 양복이 몸에 잘 붙지는 않지만 키는 보통사람들보다 머리 하나쯤 더 커서 미군꺽다리들과도 짝지지 않는다. (아이적부터 그는 키가 필요이상 꺽두룩해서 《돌피》라는 별명으로 불리웠다.)

푸시시하게 일어서군 하는 머리카락은 뽀마도를 듬뿍 발라서 척 보기엔 고상한 생각만 깃들어있으리라 믿어지게끔 고상하게 빗어넘겼다. 비싼 《사꾸라》표향수도 뿌리고 구두도 약칠을 해서 반들반들했다.

그러나 구진배는 자기가 이 방에서 마음대로 담배를 피울수 있는 큰 인물이 못된다는것, 어제까지만 해도 신익회의 《정치공작대》에서 하수인노릇을 하다가 미군사령부산하 방첩기관인 《쥐투》(G2)의 비밀지령으로 북조선에 파견되기 위해 여기에 와있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나를 데려온 버취는 왜 아직 나오지 않는가?)

그 시각 버취는 하지중장에게 북조선에서 계획하고있는 보통강개수공사의 중요성을 납득시키느라 땀을 빼고있었다.

《이 공사는 단순한 치산치수가 아니기때문에 응당 주목을 돌려야 합니다. 만약 이 공사가 북조선수뇌부에서 계획한대로 되는 경우 그들은 큰 정치적리득을 보게 됩니다.》

《어떤 리득 말이요?》

하지는 시종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짧게 깎은 회색머리를 긁적거렸다.

다소 작은 중키에 딱 벌어진 체격의 하지는 직업적인 군인으로서 당초에 이런 말공부에는 흥미가 없었던것이다.

《각하! 미국은 이미 테헤란과 얄따에서 조선은 제힘으로 살아나갈수 없을만큼 락후하기때문에 장기적인 신탁통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모스크바3국외상회의에서도 조선의 통일정부수립을 도와주기 위한 신탁통치안을 내놓았습니다. 우리가 쏘미공동위원회를 파탄시킨것은 조선의 통일을 막고 남조선에 친미정권을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북조선수뇌부에서는 민족자체의 힘으로 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할데 대한 슬로간을 제시했습니다. 그 첫 사업으로 보통강개수공사를 벌려놓은것만 봐도 김일성장군의 정치지략이 얼마나 뛰여난가 하는것을 잘 알수 있습니다. 이제 그 공사가 시작되면 백성들은 북조선인민정권에 박수를 보내면서 너도나도 떨쳐나설것입니다. 김일성장군은 바로 이걸 내다본것입니다. 우리가 내세우려는 리승만이같은 3부류정치인들은 상상도 못할 단수높은 전략이지요. 때문에 이 공사를 파탄시키는것은 북조선의 민중이 인민정권의 두리에 벌떼처럼 뭉치는것을 방해하는 동시에 조선이 제힘으로 민주국가건설을 할수 없다는것을 인정하게 하는 좋은 계기로 될것입니다.》

하지는 자기의 정치고문인 버취의 정세분석에는 머리를 끄덕이면서도 그의 자신만만한 태도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당신의 말에도 론리적타당성은 있소. 그런데 문제를 너무 요란하게 보는게 아니요? 지금 우리에게는 북조선의 치산치수에까지 신경을 쓸만 한 여유가 없소. 당장은 김규식과 려운형의 좌우합작을 성사시키는게 우리 발등에 떨어진 불이요.

요새 서울공기가 좋지 않소. 특히 좌익계 언론들이 쏘미공위가 중지된 책임을 따지려들고 리승만의 단독정부수립설을 비판하는 도수가 높아졌단 말이요. 우리는 우익계용사들을 내세워 좌익계 언론들이 쏘미공위가 결렬된 원인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폭로하지 못하도록 방비대책을 세워야 하오. 그리고 이번기회에 남한땅에서 공산당세력을 뿌리채 뽑아버리자는거요. 그 전주곡이 될만 한 악보를 하나 만들어보라고 했는데 어떻게 됐소?》

《노불씨가 위조지페사건을 잘 꾸며놓았습니다. 좌익계신문사인 <정판사>에서 위조지페를 찍어냈다는 단서를 꾸며서 그것으로 범위를 확대하려고 합니다.》

《노불이 하는 일이면 실수가 없을거요. 그리고 서울-인천사이 군용도로건설과 38도선에 이르는 군용도로건설은 어떻게 돼가고있소?》

《지금 인부들을 모으고있습니다.》

하지는 공사가 지연되는게 불만스러워 미간을 찌프렸다. 남조선주둔 군사령관으로 부임되자마자 하지가 제일 관심하는것이 군사기지 건설이였던것이다. 이미 38연선지대들에는 수많은 전호와 철조망, 영구화점들이 전개되여 든든한 방어선이 구축되였고 남조선의 여러곳에서 비행장건설과 군항건설이 시작되거나 계획중에 있었다. 제주도에는 모슬포비행장을 중심으로 여러개의 비행장건설이 다그쳐지고 김포비행장도 B-29폭격기가 뜰수 있게 확장할 계획이였다. 또한 인천, 부산, 진해 등 여러 항만을 개축하여 해군기지로 만들 계획인데 한개의 어장에 불과하던 포항에 3백만딸라를 들여 군항으로 확장하는 계획안은 이미 국방성에 제출되여있었다. 이 땅의 실제적인 주인이 되자면 북조선의 강바닥파기공사에나 신경을 쓰지 말고 군사기지건설에 박차를 가해야 할것이다. 이 단순한 리치를 모르는 버취가 하지의 눈에는 애숭이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정치란 이런거요. 말로 안되면 총이 말을 대신하는게 정치의 본질이란 말이요. 나만큼 살고 나만큼 포연내를 맡아보면 내 말을 리해할거요.》

하지는 자기 인생을 긍지롭게 돌이켜보며 학생앞에 선 교사의 심정으로 타일렀다. 아직 젊었으니 모를수 있지. 하긴 저 나이에 정치를 론한다는것도 불행한 일이다. 정치라는게 치산치수나 하는게 아니라 그 비단보자기를 벗기면 피가 랑자하다는것을 이 젊은이가 안다면 세상이 얼마나 무서워보일것인가. 나이가 쉰한살이 되도록 피비린 살륙장만 찾아다닌 덕에 미제24군단 군단장의 자리에까지 올라앉은 하지이고보면 정치와 피를 동의어로 리해한다고 해서 크게 탓할것도 없었다.

그러나 버취도 하지의 훈시 몇마디에 고개를 숙일만큼 뼈대가 물렁물렁하지는 않았다.

버취는 미국 오하이오주출신으로서 얼마전까지 하지의 연설문초안이나 써주던 서른살미만의 하급장교였다. 정치도 인생도 풋내기이지만 야심은 만만치 않아서 운수좋게 벼락출세를 하자마자 남조선정국을 정치실습장으로 여기고있는 철없는 젊은이였다. 요새는 당년 66살의 김규식에게 찰거마리처럼 딱 붙어가지고 남조선의 한다하는 로정객들을 장기쪽처럼 주무르고있는데 자기가 음모하는 《좌우합작》을 중국에서 마샬원수의 중재하에 벌어지고있던 《국공합작》회담과 동급에 놓고있는판이여서 방금 하지의 설교에 코방귀를 뀔만도 했다.

그는 상전의 정치적감각이 무딘것을 속으로 한탄하며 짭짤하게 말했다.

《저에게도 포연내를 맡아볼 기회가 오면 마다하지 않을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각하의 정치보좌관으로서 권고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각하는 자신이 조선반도에서 미국을 대표한다는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는 자기를 력사적인물로 은근히 고여올리면서까지 제 견해를 양보하지 않으려는 버취의 고집스러운 성격이 별로 밉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그 공사가 완공되면 북조선의 인민정권이 강화되는것은 물론이고 남조선의 민심도 북으로 쏠린다는거요?》

버취로서는 그나마도 다행스러웠다. 머리가 천천히 돌아도 제 방향으로 돌기만 하면야…

버취는 자기 말귀를 조금씩 알아먹는 상전을 사뭇 기특하게 생각하며 얼른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각하. 북조선은 김일성장군의 민중정치에 박수를 보내면서 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자고 합니다. 이런 형편에서 우리에게는 북조선의 공산정권에로 쏠리는 민심을 파괴하는것이 급선무로 나서고있습니다. 때문에 이 공사를 파탄시키면 북조선정권은 민중을 우롱하는 정권이며 미래도 없다는것을 세상에 보여줄수 있습니다.》

《민심파괴라…》

하지의 얼굴에는 점차 심각한 기색이 떠올랐다. 만약 북조선의 보통강토목공사가 그처럼 중대한 정치적의의를 안고있다면 이 공사를 대수롭지 않게 대했다가는 그것이 자기의 정치적암둔성을 폭로하는 실례로 력사에 남을것이다.

정말 그렇게 된다면 무슨 망신이란 말인가.

하지는 모략가의 자질이 엿보이는 버취를 새삼스레 바라보았다.

《요구되는게 뭐요?》

버취는 그때까지 옆구리에 끼고있던 서류가방에서 얄팍한 문서를 꺼내놓았다. 구진배의 인물자료였다.

《평양출신으로서 8. 15전까지는 평남도청에 근무하던자인데 작년 11월에 평양대지주였던 부친과 함께 월남했습니다.

<쥐투>에서 주목하는 인물로서 이번작전의 적임자로 평양에 파견하려고 합니다.》

하지는 우멍눈에 돋보기를 걸고 인물자료를 들여다보았다.

《결국은 제 고향을 파괴하러 간다? 아주 비극적이고 재미있는 드라마가 되겠구만. 좋소, 내가 이자를 직접 만나보겠소. 그다음은?》

버취는 또 한장의 서류를 가방에서 뽑아들었다.

《평양대표부에 련락하여 일본인들에게서 넘겨받은 X망을 이자에게 배속시키려고 합니다.》

《그건 첩보부제씨들과 토론해보오. 이건 뭐요?》

문건을 훑어내려가던 하지는 두번째 조항을 소리내여 읽었다.

《공작자금으로 일본에서 새로 찍어온 조선은행권 1천만원을 지불한다. 이 돈은 북조선경내에 인플레를 조성하는 작전에도 동시에 리용될것이다.》

버취는 하지가 수표한 문건을 서류가방에 끼워넣으며 조심스레 여쭈었다.

《방금 문건으로 보신 인물을 혹시나 해서 대기시켜놓긴 했지만 그런 스파이급인물까지 각하께서 직접 만나시겠습니까? 차라리 작전이 성공하고 돌아온 다음에…》

하지는 엄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거요? 당신자신이 이 작전의 중요성에 대해서 방금전에도 말한것 같은데…》

그 한마디로 하지는 이번작전을 방관시했던 자기의 실책을 메꾸고 상전의 위신도 차린셈이였다. 일이 성공하면 그 공로는 당당히 하지의 몫으로 될것이다.

버취는 차렷자세를 취했다가 절도있게 돌아서며 나들문으로 향했다. 구진배는 어깨를 낮추고 문턱을 넘어섰다. 하지의 방은 대낮인데도 창가림을 드리우고있어 응접실보다 더 어둑시근했다. 구진배는 어둡기도 하고 당황하기도 해서 한참이나 돌미륵처럼 서있다가야 으리으리한 책상너머에 앉아있는 이 방의 주인을 알아보고 허리를 푹 꺾었다.

하지는 우멍한 눈으로 구진배를 말없이 지켜보면서 상대의 얼혼을 한절반 뽑아놓고서야 실무적인 표정에 실무적인 어조로 입을 열었다.

《당신이 맡은 임무는 대단히 중요하오. 당신도 짐작하고있겠지만 이 공사는 북조선정부의 선전포스타나 같소. 그네들도 일본사람들이 근 10년동안 해오던 공사를 올해 장마철전에 끝낼수 있다고는 애당초 믿지 않을거요. 어떤 명인이 말하기를 수술칼에 마취제가 따르듯이 집권자에게는 화려한 기만이 따른다고 했는데 이번 경우에 신통히 들어맞는 명언이요. 그러니 당신은 무지한 백성들에게 이것이 공산당의 정치책략이라는것을 폭로해서 그들이 스스로 공사를 태만하도록 해야 하오. 장마철까지 공사를 지연시켜서 공산당의 위신을 떨어뜨리고 북조선인민정권의 신뢰도를 약화시키는것이 당신의 임무요.》

《만약 공사결과가 우리 뜻대로 안되는 경우에는 어떻게 합니까?》

구진배는 용기를 내여 조심스레 물었다. 하지는 측은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다가 창문옆에 놓인 원탁으로 다가갔다.

전기싸모와르의 스위치를 넣고 물을 끓이면서 구진배를 다시한번 저울질해보았다.

(불쌍한 인간이군. 저런자에게 과연 작전을 맡길수 있을가? 현실을 진단하는 눈이 저렇게 어두워서야 인간이 어떻게 사는가?)

하지는 구진배에게 자신심을 안겨주려는듯 브라질산커피를 진하게 타서 그앞에 놓아주었다.

《당신은 공연한 걱정을 하고있소. 당신생각엔 그들이 공사를 해낼수 있다는거요?》

《그런건 아니지만 혹시…》

《단순하게 생각해보오. 뚜껑을 열어놓은 꿀단지에 숱한 파리들이 하루종일 달라붙어있었는데 저녁에 파리를 날리고보니 꿀은 조금도 축나지 않았소. 이것두 같은 리치요. 해방전과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람들이 같은 일을 하는데 기적이 일어난다 해도 두달동안에는 불가능하오. 지금 이북의 공산주의자들은 일본의 식민지통치에서 해방된 기쁨으로 현훈증에 걸려있소. 건국을 한다고 들썩거리면서 뭐나 다 자신있어 보이겠지. 그래서 자신들을 우상화하면서 인간이 창조자인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창조물이라는것을 망각하고있단 말이요. 그네들은 인간이 과학과 기술에 의거하여 우주만물의 주인으로 될수 있다고 망상하면서 자연의 섭리에 도전하려 하고있소. 그게 가능할것 같소?》

구진배는 자기가 그 단순한 리치도 모르고있었다는 생각으로 얼굴이 확 붉어졌다. 그는 얼른 커피잔을 들고 간장빛이 도는 씁쓸한 액체를 한모금 들이키다가 하마트면 식도를 델번 하였다. 얼마나 뜨거운지 저도 모르게 비명이 나갔다. 뜨거운 액체가 아래로 내려가면서 내장을 익히는듯 했다. 이 지붕밑에서 두번째로 당하는 봉변이였다.

하지는 신사답게 그것을 못 본척 하고 구진배에게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마음을 놓아서는 안되오. 당신네 나라 속담에도 개미떼가 동뚝을 무너뜨린다는 말이 있지? 당신은 백성들이 동뚝을 허무는 단합된 개미떼가 되지 못하게 해야 하오.》

하지는 할 말을 다했다는듯 구진배에게 등을 돌려댔다. 그옆에 서있던 버취가 다가왔다.

《당신의 별호는 <싸탄>이요. 성서에 나오는 싸탄은 에덴동산에서 최초의 인간인 이브에게 선악과를 따먹도록 하고 인류의 조상들이 에덴을 떠나 고행의 길을 걷도록 했소. 만약 싸탄이 이브에게 지혜를 지니도록 도와주지 않았다면 인류는 오늘처럼 지혜로운 인간으로 진화할수 없었을것이고 아직도 짐승들처럼 부끄러운 곳도 가리우지 못하고 살았을거요.

거기에 싸탄의 불멸의 공적이 있는거요. 그러니 당신도 공산정권하에서 맹종맹동하는 불쌍한 백성들을 계몽시켜서 그들이 자유세계를 동경하도록 해야 하오.》

그렇게 말하면서 버취는 자기야말로 진짜 싸탄이 아닌가 하는 느낌에 기분이 야릇해졌다.

구진배에게는 《싸탄》이란 대호가 마음에 들었다.

자기는 정사생으로서 뱀의 직성을 타고났으니까 뱀으로 변신하고 에덴동산에 기여들었던 성서의 싸탄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19

 

구진배는 저녁어스름이 깃들무렵에야 미군정청에서 놓여나왔다. 바지주머니는 방금 받아넣은 권총이 묵직하게 들어있는데 머리는 텅 비여버린듯 아무 생각도 없었다.

래일 저녁이면 여기를 떠나 평양으로 가야 한다. 《쥐투》의 모사들은 배천으로 가서 치악산을 넘어야 한다고 그에게 침투경로까지 구체적으로 알려주었다. 초행길에는 언제나 불안이 따르는 법이지만 그의 심기가 편치 않은것은 북으로 들어가는 경로가 미타해서도 아니고 자기 맡은 임무가 불안해서도 아니였다. 그의 심사가 편안치 않은것은 가문의 리권이 잠겨있는 보통강토목공사를 제손으로 파탄시켜야 한다는 기막힌 처지때문이였다.

하지만 다른 길은 없었다. 미국사람들의 지시대로 작전을 성사시켜야 일신의 영달과 앞날을 담보받을수 있었다. 까짓거, 고향이면 어쨌단 말인가. 고향의 숱한 재부를 공산정권에 말짱 빼앗기고 야밤에 솔가도주해온걸 생각하면 자다가도 주먹을 쥐고 벌떡 일어나군 하지 않았던가. 차라리 내가 못 가질바엔 아쉬운대로 말짱 쓸어버려야 한다. 구진배는 이를 사려물었다. 그래도 어쨌든 자기 집재산을 제 손으로 물거품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바로 거기에 구진배의 모순이 있었고 비극적운명이 결정되여있는것이였다.

(내 운명이 왜 이렇게 비참해졌단 말인가?)

해방전에 일본에 가서 사각모를 쓰고다닐 때에는 그래도 제 머리로 사고하고 행동할 권리가 있었다. 그 덕에 당시 대학에서 류행하던 좌익서적을 몇권 읽어보고 그 죄로 경찰에 련행되여가서 고추가루물을 한모금 먹고는 머리속에 조금 잡아넣었던 빨간물까지 말짱 토해버리고말았다.

중요한것은 살아남는것이였다. 맑스의 사상이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그것을 목숨과 바꿀수는 없었다.

그때문에 그는 대학에서 왜놈경찰의 손발노릇을 하지 않으면 안되였고 그 대가로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평남도청의 말직에 앉아 자기의 진짜 주인인 일본거류민단의 생명재산과 리권을 보호해주는 파수병노릇을 해야 했다.

해방후 그는 집안에 들이박혀 전전긍긍하다가 소작료 3. 7제를 반대한다고 기고만장해서 윽윽하는 애비를 겨우 설득시켜 38도선을 넘었다. 해방열에 뜬 백성들이 자기네 등가죽을 벗겨먹던 애비는 물론이고 일제의 고등문관시험합격자로 총독의 표창장까지 받은 철저한 친일파인 자기를 가만놔둘리 만무했던것이다.

그런데 《자유》를 표방하는 남조선에 오면 예전처럼 떵떵거리며 살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남조선의 주인은 미군이였다.

구진배는 주어진 현실에 순응하는 수밖에 없었다.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는 힘든 길을 포기하고 어제는 일본사람들의 손에, 오늘은 미국사람들의 손에 자기를 맡겨버린것이다. 따지고보면 자기 운명의 생사여탈권은 언제나 자기 아닌 다른 사람들의 손에 쥐여져있지 않았던가. 이제는 다른 길이 없다.

그는 발길 닿는대로 걸었다. 광화문거리를 따라 내려오다가 종로2정목으로 꺾어들었다. 길 량옆으로 처마를 맞대고 들어앉은 식당들과 유흥업소들에서는 초저녁인데도 벌써 불빛이 환하고 사람들의 래왕이 분주해졌다. 하루일에 지친 인생들 혹은 하루종일 유흥가의 도락을 그리며 저녁시간을 기다려온 무위도식자들이 꾸역꾸역 밀려들고있었다. 여기는 야만인의 욕구를 충족시킬수 있는 곳이였다. 여기는 존엄이니, 사상과 리념이니 하는 온갖 관념적인것들은 전혀 무의미한것으로 치부되고 만물의 령장인 인간이 제아무리 신사인체 위선을 떨어도 결국은 짐승의 한 종류에 불과하다는것을 확실하게 증명할수 있는 곳이였다.

구진배는 술생각이 나서 식당간판들을 훑어보다가 《에덴동산》이라는 캬바레에 눈길이 끌렸다.

식당안에 들어서던 구진배는 이곳에 왜 《에덴동산》이라는 간판을 내걸었는지 리해되였다. 무대우에서는 선악과를 먹지 못했는지 창피를 모르는 《이브》들이 거의 알몸으로 다리를 흔들대고있었던것이다.

구석에 놓인 식탁에 앉아 술을 마시며 무대를 바라보느라니 무겁던 머리가 개운해지는것 같았다.

(식당이름을 참 잘 달았군. 《에덴동산》에서야 고뇌를 모르고 쾌락만 알수 있지. 저년들이 내가 싸탄이라는걸 알기나 할가. 하긴 여기서야 내가 싸탄이 아니지. 이북에 가야…)

그 생각을 하니 또 머리가 무거워졌다. 그는 괴로운 현실을 잊으려는듯 연거퍼 술잔을 기울였다.

구진배는 어지간히 시간이 흘러서야 식당을 나섰다.

무슨 일이 생겼는지 길 한복판에는 사람들이 몰켜서있었다.

구진배는 잡스러운 무리에 섞이고싶지 않아 그대로 지나치려다가 인도로에 멀찌감치 선채로 지켜보았다. 길바닥에는 말이 무릎을 꿇고 엇비스듬히 넘어져있는데 마부가 사정없이 채찍을 내려치고있었다. 채찍을 맞을 때마다 말 못하는 가엾은 짐승은 앞발을 쳐들고 허공을 그러안으며 일어나보려고 안깐힘을 쓰다가 다시 곤두박질을 하군 하였다. 악에 받친 마부는 미군이 입던 헌 군복저고리앞섶을 제끼고 맵짜게 채찍을 휘둘러대건만 맥이 진할대로 진한 불쌍한 짐승은 커다란 코구멍을 벌름거리며 채찍세례를 고스란히 받고있었다. 커질대로 커진 동공에는 공포와 절망의 빛이 가득 담겼는데 이제는 일어나보려는 시도조차 포기한듯싶었다.

구경군들속에서는 동정과 비난의 목소리들이 끊기지 않았다.

《아이, 불쌍해라.》

《말 못하는 짐승이 무슨 죄가 있다구, 쯧쯧…》

녀학생복차림을 한 서너명의 처녀애들이 마부에게 들이댔다.

《아저씨, 때리지 말아요!》

《야 참, 때리지 말라는데…》

나중에는 한 녀학생이 격해서 소리쳤다.

《아저씨두 사람이예요? 말이 불쌍하지 않아요?》

마부는 허공중에서 휘파람소리가 나게 채찍을 휘둘렀다. 공기째는 소리가 아츠럽게 들리며 구경군들의 입을 단번에 틀어막았다.

《까불지 말구 제 갈길이나 가. 말이 못 일어서면 죽어! 알기나 해? 다섯식구 명줄이 이 말한테 달렸는데 말이 죽으면 내가 야단이지 너희들이야 무슨 걱정이냐?》

녀학생 하나가 눈이 올롱해서 물었다.

《아저씨! 말이 못 일어나면 왜 죽어요?》

《내가 그걸 알게 뭐야? 너희 선생님한테 물어봐라.》

녀학생들은 더 참견할수 없었다. 구경군들은 하나둘 흩어져갔다.

구진배에게는 채찍세례를 받고있는 불쌍한 저 말이 지금의 자기 처지와 일맥상통한데가 있는것 같았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알수 없지만 어쨌든 자기도 제 운명의 고삐를 남에게 맡기고 싫든좋든 힘이 진할 때까지 순종할수밖에 없는 처지가 아닌가.

한참이나 그쪽을 노려보던 구진배는 그 어떤 충동에 떠밀리워 성큼성큼 마부에게 다가갔다. 술기운에 더 대담해졌는지 어쨌든 가슴에 앙금처럼 쌓였던 울화가 한꺼번에 끓어올랐다. 금발머리 서기년에게 멸시당한것도, 버취에게서 받은 렬등인종에 대한 모욕감도, 평양으로 가야 하는 자신에 대한 서글픔도 동시에 분풀이할 대상을 찾아냈던것이다. 그렇게라도 자기 운명을 거역해보려는 일종의 몸부림이라고 할지…

《야!》

채찍을 든 마부의 손이 허공에서 멎어섰다. 구진배는 다가서자바람으로 철썩! 하고 마부의 귀뺨을 갈겼다. 또 한번 또 한번…

그리고는 바지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들었다. 마부의 눈이 말눈깔처럼 커졌다. 구진배는 말대가리에 총구를 겨누고 고개를 돌리며 방아쇠를 당겼다.

《땅!》

창졸간에 벌어진 일이여서 마부는 미처 만류할새도 없었다. 구진배는 양복주머니에서 돈지갑을 꺼냈다. 거기서 손에 잡히는대로 끄집어내여 마부의 발치에 던져주었다.

대충 짐작으로도 호마 두마리는 살만 한 돈이였다. 마부는 얼이 나갔는지 돈을 주어들 생각도 못하고 와들와들 떨기만 했다.

구진배는 그 자리를 떠났다. 속이 좀 후련해졌다. 자기도 만일 죽게 되는 경우에는 머리에 대고 자총하는게 좋겠다는 엉뚱한 공상까지 해보았다. 지금이라도 무의식중에 권총을 이마에 갖다댈것 같아 주머니에서 손을 뽑고 걸었다.

그는 몸의 중심도 잡지 못하고 어두운 밤길을 터벅터벅 걸었다. 인생길이란 이런것이다. 진창에 빠지기도 하고 더러운것을 밟기도 하고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면서 갈지자로 가다보면 그게 이미 정해진 운명의 길이라는것을 알수 있는것이다. 그걸 거역해보겠다고 리념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정보로만 걷느라 애쓰는 사람들을 보면 참…

집에 들어서니 늙은 에미는 아래목에 자리를 펴고 누웠는데 애비 구문선은 비단보료를 깔고 사방침에 팔굽을 고인 자세로 비스듬히 앉아 화투로 신수를 점치고있었다. 다 늙은 인생에 무슨 앞날이 있겠다고 야밤삼경에 신수보는 놀음을 하느냐고 한마디 쏴주고싶었지만 한켠으로는 불쌍한 생각도 없지 않았다. 서평양일대의 넓은 땅과 가문의 재산을 기울이였던 보통강토목공사의 리권을 해방바람에 날려보내고 달도 없는 그믐밤에 도적고양이처럼 38도선을 넘어왔으니 그 원통한 생각에 잠이 올리 없을것이다.

언제가면 잃었던 모든것을 되찾을수 있을가? 그때를 알아맞추느라고 남다 자는 깊은 밤까지 닳아빠진 화투목을 놓지 못하고있는것일가?…

구진배는 애비앞에 가앉았다.

《무슨 일이냐?》

구문선은 마뜩잖게 물었다. 당대 부모를 거들떠보지도 않던 자식이 전에없던 정중성으로 무릎까지 꿇고 효자의 자세를 취하는걸 보면 긴히 할 말이 있는 모양이였다. 또 놀음돈을 달라는 수작인가?

《아버지, 전 래일 평양에 갑니다.》

《뭐라구?》

구문선은 화투목을 집어던지고 앉음새를 고쳤다.

《평양엘?… 거긴 왜?…》

《평양에서 보통강개수공사를 시작한대요. 미국사람들은 나한테 그걸 파탄시켜야 한다고 했어요. 그래야 공산당의 위신이 떨어지고 백성들이 뭉치지 못한다는거지요.》

보통강에 대한 말이 나오자 구문선은 볼편을 실룩거렸다. 잠시 생각하는듯 마는듯 하더니 손바닥으로 제 무릎을 때리며 결패있게 말했다.

《그래, 미국어른들의 뜻이 옳다. 파탄시켜야 해!》

구진배는 아버지의 립장이 선뜻 납득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아버지만은 반대할줄 알았던것이다.

《아버지! 보통강토목공사야 아버지가 투자한 대상이 아닌가요?》

《이 시라소니같은 놈아!》

애비는 벼락같이 소리쳤다.

《네놈이 이 꼴을 해가지고도 아직 그따위 감상적인 소리를 하고있어? 공산당이 토목공사를 해서 백성들이 그 덕을 보면 저희들이 살기 좋은 세상을 지켜보겠다고 기를 쓰고 덤빌텐데 그럼 우린 영영 제땅을 못 찾아! 우리 세상을 되찾지 못하면 그 공사의 리권도 영영 못 찾는단 말이다! 알기나 해? 그까짓 공사야 우리 세상이 온 다음에 마저 하면 될게 아니냐?》

구진배는 정신이 펄쩍 들었다. 늙은 말이 길을 안다더니 역시 아버지는 아버지였다. 이제는 이발빠진 호랑이처럼 으르렁거리기만 하고 아무 맥도 못 추지만 그래도 아버지에겐 제나름의 확고한 립장이라도 있다. 그런데 자기는 구차스레 신세타령만 하면서 제 기분에 빠져있지 않았는가. 나 한사람의 존재라는것은 자기가 몸담고있는 계급이라는 큰 그릇에 담긴 모래알에 불과하다는것을 왜 망각했던가.

구진배는 이 공사의 운명이자 자기 가문의 운명이고 자기 운명이며 따라서 이발로 물어뜯어서라도 공산정권이 쌓는 제방을 허물어버려야 한다는것을 똑똑히 깨달았다.

그는 아버지에게 불쑥 물었다.

《아버지, 작인들중에 충실했던 놈이 없어요? 하다못해 어리숙한 놈이라도.》

《충실한 작인이라는건 애당초 말이 안되는것이고 어리숙한 놈을 골라보면… 가만있자… 그건 왜?》

《이번에 가서 손발노릇을 시켜볼가 해서요.》

구문선은 눈을 감고 웃몸을 흔들흔들하며 방금 머리속에 떠오른 소작인의 이름을 생각해내려고 애썼다. 언제 한번 제앞에서 머리를 못 들고 땅을 떼울가봐 쩔쩔매던 어리무던한 소작인, 평양에서 솔가도주하는 날 밤 대동강선창에까지 짐을 지고 따라와 공손히 허리굽혀 작별인사를 하던 소처럼 순한 소작인. … 이름이 뭐드라?… 구문선은 종시 생각나지 않아 토지문서를 꺼내 벌컥벌컥 뒤졌다.

《그렇지, 오성재! 오성재라고 토성랑에 사는 작인이 한놈 있다. 땅밖에 모르는 무골충이야.》

구진배는 오성재의 빚문서를 달래가지고 제 방으로 건너왔다.

잠자리에 누워서 궁싯거리는데 갑자기 지끈- 하고 벼락치는 소리가 귀를 멍하게 했다. 그는 화닥닥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먹물을 뿌려놓은듯 한 창밖에서는 비소리만 소란스레 들려왔다. 또 한번 새파란 번개가 밤하늘을 엇비슷이 째더니 꽈르릉!- 요란한 천둥소리가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무엇이 하늘을 크게 노엽혔는지 천둥소리는 그치지 않았고 창대같은 비줄기는 어두운 공간을 꽉 메운것 같았다.

구진배는 마음이 심란해서 제대로 잠들수 없었다. 밤새 악몽에 시달리던 그는 아침일찍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비는 멎고 하늘도 개였는데 집둘레에 파놓은 도랑으로는 흙탕물이 콸콸 흐르고있었다. 그는 뒤정원으로 발길을 옮기다가 그자리에 굳어졌다. 정원의 나무중에서 제일 큰 백양나무가 어제밤 벼락을 맞아 중둥이 잘리웠던것이다. 더 섬찍한것은 백양나무에 잠자리를 잡았던 참새들이 땅에 한벌 깔려있는것이였다. 구진배는 등골이 오싹해났다. 이 무슨 불길한 징조인가? 하필이면 내 집에 벼락이 떨어지다니? 하필이면 벼락에 맞아죽은 참새무리를 보자고 여태 아침산보를 모르던 내가 이쪽으로 발길을 했는가.

혹시 이게 앞날의 액운을 예고해주는건 아닐가?…

구진배는 얼른 발길을 돌렸다. 제집 정원에서는 마음대로 발길을 돌릴수 있어도 미국사람들이 정해준 길에서는 제 마음대로 돌아설수 없는 구진배였다.

그날 저녁 구진배는 졸개 한명을 대동하고 배천쪽으로 나와 밤중에 치악산을 넘었다. 두놈 다 큼직한 륙크샤크를 잔등에 짊어졌는데 거기에는 미군첩보부에서 넘겨받은 1천만원의 공작자금이 들어있었다.

이튿날 평양성안에 새여든 구진배는 그날부터 자기 임무수행에 착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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