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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소설 <대박산마루> 제 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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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7,619회 작성일 15-12-10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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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 회)

 

6

 

력사학계는 오랜 연구끝에 우리 나라 중세력사, 고구려의 력사를 거의 완전무결하게 정립하였다. 이러한 연구성과는 신화적인 인물인 고주몽에 대한 연구로 첫걸음을 떼였다.

그리하여 고주몽이 실재한 인물로서 기원전 298년 5월 14일(음력으로 4월 1일)에 태여났으며 기원전 277년에 첫 봉건국가를 세우고 국력을 강화하여 동방천년대국의 기초를 축성하였다는 력사적사실을 확인하였다. 후손들이 조상을 찾은것이다.

학자들은 많은 숙제를 남겨둔채 고조선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기초우에서 고구려가 강대한 외래침략자들을 반대하는 세기적인 투쟁을 통하여 멸망한 고조선의 령역과 주민들을 되찾음으로써 고조선의 력사적지위와 역할을 계승한 정통국가였다고 결론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결론이 단군조선의 력사가 완전히 정립된 기초우에서 내려진것이라면 얼마나 좋으랴.

새로 개건된 동명왕릉을 돌아보시는 전과정에 김일성동지께서는 줄곧 아쉬운 마음을 금할수 없으시였다.

그것은 차라리 아픔이라고 해야 정확한 표현일것이다.

동명왕릉은 현재 평양시 력포구역 룡산리에 자리잡고있는데 이 릉은 427년 고구려 장수왕이 수도를 압록강대안 즙안에서 평양으로 옮길 때 이장한것이다.

이 릉에 대해서도 처음에는 이러저러한 랑설이 많았다.

그러던것이 수령님의 말씀을 받들고 김일성종합대학 채희국 등 력사학부의 교원, 학생들에 의하여 발굴고증되였고 지금과 같이 웅장하게 개건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원상을 살린 릉의 본체와 정릉사 등 주변시설들을 돌아보시면서 별로 말씀없이 침묵을 지키시였다. 이미 형성도안을 보아주시였고 개건공사를 여러번 지도해주시였기때문에 그러실수도 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날 돌아가시여 정릉사를 옮겨앉힌것은 잘된 일이고 릉문은 좀 작은감이 난다며 칭찬도 하고 부족점도 지적하시였다.

그러나 지금은 묵묵히 다른 생각에 잠기신듯 한 표정을 짓고계실뿐이다. 이 표정을 눈주어 살핀것은 오직 한사람 김석진이였다.

지금 김일성동지를 수행하고있는것은 동명왕릉 발굴고증에 주역을 담당한 김일성종합대학의 몇명의 학자들과 당과 정부의 간부들이였다. 그들은 수령님의 침묵을 개건사업이 잘되지 않은데 대한 불감으로 리해하고 가슴을 조이였다.

김석진이만은 다르게 리해하였다.

그는 력사학회회장이라는것을 내놓고는 이 자리에 끼일 명분이 없었다. 그가 도착하여 인사를 올렸을 때 수령님께서는 《원사선생도 보시오.》라는 한마디로 응답하시였다. 원사는 이것을 자기에게 따로 하실 말씀이 있다는 암시로 받아들였다.

그것이 무엇일가? 김석진은 줄곧 그이의 표정을 살피였으며 그 표정을 통해 지금 그이의 눈길이 개건된 왕릉에 가있지만 마음은 다른데 가계신다는것을 확연히 짐작할수 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여전히 침묵속에서 릉을 돌아보고계시였다.

이때 누군가가 그 침묵속에 견딜수가 없어서 조심스러운 어조로 한마디 말씀올렸다.

《수령님, 동명왕릉이 개건되고 이제 수령님의 소원대로 왕건왕릉까지 개건되면 우리 인민들이 기뻐할겁니다!》

그 말에 대한 대답은 그이의 무거운 침묵이였다.

그 침묵속에서 김석진은 그이의 마음이 어디에 가계시는가 하는것을 더욱 명백히 짐작하게 되였다. …

《나는 오늘 생각이 많았소.》

김일성동지를 따라 그이의 서재로 들어간 김석진은 이러한 첫 말씀을 들었다.

《기초가 없는 건물을 보는듯 했단 말이요. 이제 왕건왕릉을 개건한다 해도 기초가 없기는 마찬가질거란 말입니다. 앉으시오, 앉아서 이야기합시다.》

김석진은 그이께서 권하시는 자리에 조심스레 앉았다.

서기가 들어와 차잔을 놓고 나갔다.

《차를 드시오. 난 선생과 좀 긴 이야기를 나누자고 합니다. 선생, 단군조선의 력사는 완전히 정립되지 못한 상태로 남아있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예. …》

김석진은 그이의 괴로움이 실린 심각한 말씀에 몸둘바를 몰라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우리가 고구려이래의 2천여년력사를 정리해놓으면 놓을수록 반만년을 자랑하는 민족사에서 고조선시기의 미해명부분이 더욱 부각될거란 말입니다.》

《저도 그 점을 마음쓰고있었습니다.》

《단군연구에서 무엇이 걸렸습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상념에서 깨여나며 문득 물으시였다.

김석진이 그이를 우러러보았다. 고령인 그이의 얼굴에 젊은이와도 같은 홍조가 비끼고 열정이 넘치고있었다. 그것이자신에게로 옮겨지고있음을 의식하며 원사는 대답을 올렸다.

《수령님께서 방금 말씀하신대로 관심과 열정, 각오라고 생각합니다.》

《그 문제에 대하여서는 견해의 일치를 본것 같습니다. 그러니 좀 구체적으로 론의해봅시다. 강동의 단군묘를 우상으로 간주하고있는 선생의 견해는 여전하겠지요?》

《…》

《난 단군이 실재한 인물이라고 믿고싶습니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렇게 전제해놓고 단군묘문제를 파고드는것이 옳지 않습니까? 우상이라고 전제하는것과 차이가 있지 않습니까? 기본은 관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전적으로 옳은 말씀입니다.》

《그런데요?》

《죄송하지만 력사연구는 선행시기의 기록과 발굴된 유적유물에 기초하고있습니다. 그런데 현재로서는 그 모든것이 미미합니다.》

《나는 학자가 아닙니다. 그러니 지금은 관점문제를 이야기합시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차잔을 드시였다.

그사이 김석진은 벽면을 꽉 채운 책들을 둘러보았다. 그이의 앞책상에도 산더미처럼 책이 쌓여있었다. 그는 력사기록이 어떻소, 유적유물이 어떻소라고 한 자기 말이 불손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령님께서 이미 많은 연구를 하시였다는것을 알았던것이다.

《그 무덤이 우상이라는 원장선생의 론거는 무엇입니까?》

《예, 그것은 학계의 굳어진 견해입니다. 그 론거는 단군자체가 신화적존재이기때문에 그 무덤에 유적유물이 있을수 없다는겁니다. 또 그것이 자연스러운것이 아니겠습니까. 1936년에 세운 단군릉 기적비에도 〈하늘로 올라갈 때 비록 그의 몸 붙들어놓지는 못하였으나 신기한 새들이 날아와 토한 구슬 무덤을 이루었도다〉는 매우 신비스럽고 지어 허황한 내용들이 씌여있습니다. 물론 무덤이 있는 강동지방의 구전설화에 기초한것이지만 말입니다.》

《결국 무덤존재의 경위자체가 과학적인것이 못되고 신비스러운 색채가 짙다는거지요. 그렇지만 말입니다. 왜 단군이 신화적인 존재로 전해오게 되였는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우리 조상들이 원시조인 단군을 신성한 존재로 여기고 그에 대한 여러가지 신비로운 전설을 많이 지어냈고 또 그것이 구전되여오면서 많은 내용들이 윤색가공되고 과장되였을거라는 자명한 리치를 중시해야 합니다.》

석진의 머리속에 언뜻 짚이는것이 있었다. 숭앙이 신비를 낳고 그 신비가 허구를 낳고 허구가 오늘에 와서는 다시 허황한것이라는 조건으로 되지 않았겠는가.

《우리 나라 문헌자료가운데서 단군릉의 존재에 대하여 처음으로 전한것은 16세기 초엽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이지요?》

《예, 하지만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이미전 15세기 말엽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을 약간 수정보충한것으로 보니만치 결국 그 시기로 보는것이 옳다고 봅니다.》

《옳습니다. 뿐만아니라 〈동국여지승람〉 역시 15세기 중엽 전국의 지도 및 지리지를 편찬할데 대한 세종왕의 령에 의해 나온 〈8도지리지〉에서 비롯된것으로 봐야 할것입니다. 오늘 각 도 지리지중에서 전해오고있는것은 경상도속찬지리지뿐이지만 그때 함께 나온 평안도지리지가 결국은 〈동국여지승람〉의 기초자료가 됐을것입니다.》

《지당한 말씀이십니다.》

석진은 수령님의 해박한 력사지식앞에 놀라운 표정을 짓고 그이를 우러렀다.

《그렇다면 민족의 시조인 단군의 무덤이 현실적으로 엄연히 존재하고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문헌자료가 15세기에야 나타나기 시작했겠는가? 이에 대해 생각해봤습니까?》

수령님께서는 질문을 던지시였지만 석진은 아무 대답도 올릴수 없었다.

《원장선생이 좀전에 그 대답을 하신것 같은데요.》

《예?》

《단군이 신화적인 인물로 우리 인민들속에 존재해왔다고 말입니다.》

《예에. ㅡ》

석진은 애매한 대답을 할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 조상들이 자기의 원시조를 신성시하려는데로부터 분석해놓은 신화적전설들은 시대가 경과함에 따라 사람들속에서 점차 신비경에 휩싸인 그러한 신화적전설들, 자료들을 더듬어가며 거기에서 당대 사회의 실재상을 반영한 알갱이자료들을 들추어 그 시기의 력사를 한걸음한걸음 정리해나가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력사발전의 합법칙적과정이지만 결국은 시대의 발전과 함께 신비성이 벗겨지자 단군묘가 우상이라는 결론을 도출하게 하지 않았겠는가 하는것입니다. 이번에는 그것이 엄연한 현실로 존재하는 단군묘에 대한 무관심을 낳게 되였다 그것입니다.》

석진의 머리속에 무엇인가 잡힐듯말듯 하던 실머리가 드디여 잡히는것 같았다.

《그래 어쩌면 좋겠습니까? 선생도 개성에서 온 편지를 보았겠지요? 생각되는 점이 없습니까?》

《조상들앞에서 불효자식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니 고맙습니다. 그래서 그 편지를 보라고 한것입니다. 뜻이 통했다니 다행한 일입니다.》

이때 김석진은 얼굴을 붉히며 그 뜻을 깨우쳐준 박진규에 대하여 말씀올렸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놀란듯 한 표정을 지으시였다.

《그 동무가 아직까지 혼자서 단군연구를 해오고있었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는 연구조를 무어달라고 하면서 그렇게 할수 없다면 자기 혼자라도 강동에 보내달라고 제기했습니다. 가서 거기에 있는 단군묘를 발굴해보겠다는겁니다.》

그이께서는 사뭇 놀라시여 이윽토록 김석진을 건너다보시였다. 《강동의 단군묘를요?》 생각이 깊어지시였다.

그이께서 박진규를 아시게 된지 꼭 30년이 되였다.

수령님께서는 어제런듯 그 일이 생생하게 기억되시였다. 수령님께서 60년대초 단군묘를 돌아보실 때 그래도 조상의 무덤이라고 벌초를 해놓았던 《지인》이 바로 박진규였다. 그래서 그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였으며 그의 처벌문제가 제기되였을 때는 당중앙위원회 일군을 직접 보내여 알아보게 하시였던것이다.

《참, 우리가 그 동무를 과학원으로 옮겨주었댔지요?》

이렇게 말씀하시는 그이의 뇌리에 대동강가에서 떠올랐던 그 어떤 계시가 다시금 번쩍하였다. 그것은 아직 딱히 짚이지 않는 그 무엇이였다.

《난 그 동무를 잊지 않고있습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따로 말합시다. 아무튼 우리와 뜻이 같은 사람이 없지 않다니 반가운 일입니다. 나는 그 편지에서 충격을 받고 대동강가로 나갔댔습니다. 그리고 자기반성을 했습니다. 나는 60년대초부터 시간을 좀 내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까리브해위기〉가 발생하고 경제국방병진문제가 제기되였습니다. 어려운 형편에서 7개년계획에 달라붙었습니다. 그다음 사회주의완전승리를 앞당겨야 했고 인민생활을 높여야 했습니다. 나라의 형편은 나에게 시간을 주지 않았습니다. 조상들앞에서 변명같지만 이건 사실입니다. 이젠 나도 80입니다. 마침 김정일동지가 모든것을 맡아주어서 틈이 좀 생겼으니 선생들을 도와주려고 합니다. 뭐가 걸렸습니까? 솔직히 마음이 조급합니다. 불안하기도 합니다. 민족과 력사의 요청앞에서 그리고 시대의 요구앞에서…》

수령님께서는 문득 얼마전 왕건왕릉을 찾았던 때를 회상하시였다. 옛무덤을 쓸어만질듯 지나가는 소슬바람, 지져대는듯 하던 봄볕, 별로 조급해지던 마음…

그이의 조국통일관은 오직 하나 민족의 동질성에 의한 민족대단결이다.

조선민족은 하나의 피줄로 련면히 이어온 유구한 단일민족이다. 이러한 민족이 둘로 갈라질수 없지 않는가. 력사의 이러한 요청을 외면할 조선사람이 어데 있겠는가!

김일성동지께서 내놓으신 조국통일3대원칙과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 등 모든 통일대강들이 해내외동포들의 한결같은 호응을 받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조국통일이 민족의 지상과제라고 한다면 우리 민족의 유구성을 중시하는 문제야말로 오늘의 견지에서 가장 절박한 시대의 요청이 아닐수 없는것이다. 《확실히 학계의 시야를 가로막는 장애가 있습니다.》하고 김일성동지께서는 계속하시였다.

《일제의 단군말살책동의 후과입니다.》

단군말살책동의 후과?! 일제의 단군말살책동에 대해서는 김석진이 누구보다 잘 알고있었다. 그자신도 어릴적 일제가 단군관계서적들을 불태우는것을 직접 보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 후과에 대해서, 더구나 그 후과가 단군연구를 가로막는 장애라는데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머리에 갑자기 된 타격을 받은듯 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우상은 일본사람들이 만들어놓은것입니다. 우리는 해방되자부터 일제의 잔재를 뿌리뽑느라고 여간 힘을 들이지 않았는데 학자들속에는 아직 일제의 잔재가 남아있는것 같습니다. 단군연구에 전진이 없는걸 보면 틀림없습니다. 일제에 의해 호두알처럼 굳어진 그 관념을 깨뜨려버려야 합니다. 무엇으로, 어떻게? 무기는 당정책입니다. 우리는 력사연구에서 주체를 세울데 대하여 한두번만 강조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주체를 세우지 않고서는 력사적사실들을 바로잡을수 없으며 유구한 우리 나라 력사를 정확히 밝혀낼수 없습니다. 학계는 언제나 주체적립장에서 제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견지에서 단군묘도 다시 보면 좋겠습니다. 나는 아직 력사기록을 많이 보지 못하였는데 거기에도 외곡이 있을수 있습니다. 지난날 우리 봉건통치배들이 사대주의를 하면서 우리 나라 력사를 정확히 서술하지 못했을수 있습니다. 유적도 그렇습니다. 〈기자묘〉만 봐도 그렇지 않습니까?》

기자라는 사람은 중국의 은나라 왕족으로서 주나라 무왕에 의해 은나라가 망하자 조선으로 왔는데 주나라가 그를 조선왕으로 임명했다는 가설적인물이다. 전쟁후 복구건설이 한창 벌어지고있을 때 수령님께서 모란봉기슭에 있는 《기자묘》를 파보도록 하시였는데 벽돌 몇장이 나왔을뿐이다. 그 무덤을 파는데 김석진이도 참가했었다.

수령님께서 분명 무슨 뜻이 있어 《기자묘》를 상기시키시였음에도 불구하고 김석진은 그이의 말씀을 긍정하고있을뿐 아직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말씀을 이으시였다.

《린방나라들의 력사책들도 다시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의 사가들이 우리 나라에 대한 기록을 대국주의적견지에서 썼을수도 있습니다.》

김석진도 고개를 끄덕여 수령님의 말씀에 동감을 표시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책상우의 책더미속에서 표지가 한자로 씌여진 두툼한 책 한권을 골라 김석진의 앞으로 밀어놓으시였다.

중국의 《위서》류의 책이였다. 우리 나라 력사책들가운데서 단군신화를 처음으로 전한 《삼국유사》에서는 그 첫머리에 《위서》라는 책에 실려있다는 단군의 건국기사를 소개하였다.

석진은 그 책에 씌여져있는 단군신화를 원문그대로 뜬금으로 외우고있었다.

《위서》라는 이름을 가진 책으로 오늘까지 남아있는것은 기원 3세기에 진나라의 학자가 쓴 《삼국지》의 《위서》와 6세기중엽 북제의 《위서》 두종이 있다.

그런데 이 두책에는 《삼국유사》가 《위서》의것이라고 하면서 소개한 단군기사가 전해지지 않고있다.

종래의 이마니시를 비롯한 일제의 어용사가들은 이것을 트집잡아 《위서》의 단군기사를 꾸며낸것이라고 떠벌였고 나아가서 단군신화까지 부정하려고 하였다.

김석진이 책을 받아들고 이러한 내용을 설명해드리자 김일성동지께서는 책상을 가볍게 치시였다.

《그러나 〈위서〉류의 책으로서 지금까지 전해져오는것보다 없어진것이 비할바없이 많지 않습니까?》

《예, 중국의 력사책들에는 〈위서〉라는 정식이름을 단 책보다 보통 〈위서〉라고 불리운 력사책이 더 많습니다.》

《그러니 이마니시의 주장이 얼마나 부당합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력사연구에서 지난 시기의 책들과 그 책들의 기록들을 주체의 견지에서 분석평가하고 리용해야 합니다. 이것이 주체입니다. 말이 난김에 이 책들을 마저 보십시오.》

김일성동지께서는 책더미에서 몇권의 책들을 더 골라내시였다.

종래의 대다수 력사가들이 비사로 보면서 인정하지 않고있던 책들이였다.

《이 책들을 어떻게 취급하겠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원사선생의 의견을 들어봅시다.》

김석진은 학자다운 론리적인 어조로 대답올리였다.

《이 책들에는 단군조선의 력사가 일정하게 기록되여있습니다. 그렇다고 문헌학적인 고증이 없이 무비판적으로 인용해도 안되지만 근세에 윤색첨가된 내용이 많았다고 하여 무시해버려도 안될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비사들은 저자의 편찬경위가 분명치 못하고 내용에서 민족주의감정에 의하여 가공된 흔적이 적지 않지만 아득한 옛날부터 내려오는 구전이나 기록이 미약하게나마 반영되여있다고 볼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치가 있는것으로 인정할수 있습니다.》

《동감입니다. 내가 보고있는것인데 원사선생도 다시 보시오.》

《예.》

《그럼 박진규동무에 대한 이야기를 합시다.》하고 김일성동지께서는 꺼내놓았던 책들을 거둬들이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그때 그 동무를 괴롭힌것은 개별적일군이였지만 당과 련결됩니다. 사실입니다. 개성의 왕무한이 국보를 지금껏 감추고있은 사실에 류의해야 합니다.

원사선생, 솔직히 말해보시오. 과학자들속에 자기의 연구결과가 당의 정책과 의도에 어긋나는 결과를 가져올가봐 주저하는 경향이 있는것은 아닙니까?》

김석진은 그 물으심에 인차 대답을 올리지 못했다. 눈앞에 리관직의 얼굴이 피뜩 스쳐지나갔던것이다.

리관직은 료동중심설을 부정하는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하면서 완강히 반대하였다.

김석진은 말씀올렸다.

《그런 경향도 없지 않습니다.》

《지금이라고 해서 완성된 일군들만 있는것은 아닙니다. 일군들도 세대가 자꾸 바뀝니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학자들은 당을 믿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수령님!》

김석진이 격동된 목소리로 챙챙히 대답올렸다.

《자, 차를 드시오.》

김일성동지께서는 원사에게 차잔을 들어주시고 자신도 잔을 드시였다. 향긋한 냄새가 방안에 감돌았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김일성동지의 신중한 목소리가 침묵을 깨쳤다.

《원사선생, 아까 박진규선생의 단군연구에 대해 말씀했지요? 내 생각도 바로 박진규선생이 제기한대로 강동의 단군묘를 파보자는겁니다.》

《예?!》

《단군묘를 파보자는겁니다.》

김일성동지께서 반복하시였다.

《박진규선생의 생각이 옳습니다. 단군조선에 대한 연구에서 중심고리는 단군이 실재한 인물이라는것을 확증하는데 있습니다. 여기에서 유골을 찾아내는것이상 더 확실한 증거는 없습니다. 그런데 어디서 그걸 찾아낸다는겁니까?

나도 사실 이 문제를 두고 오래동안 줄곧 생각해왔습니다. 방도가 없겠는가고 말입니다. 그 방도가 잡힐듯잡힐듯 머리속에 떠올랐다가는 사라지군 했습니다. 그것이 원사선생과 마주앉아 이야기하는 과정에 확증됐습니다. 어떻습니까? 원사선생?》

이 자리에서 석진은 한가지 사실을 그이께 상기시켜드리지 않을수 없었다.

《저, 수령님. 실은 해방직후에 이미 그 무덤에 대한 발굴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결국은 빈 무덤이라는 말뚝을 박는것으로 끝나버렸습니다. …》

《나도 그 사실을 알고있습니다. 그렇다면 한가지 물어봅시다. 해방직후 그 무덤에 대한 조사를 해보고 아무것도 없는 허황한 무덤이라고 말뚝을 박아놓았다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내가 알기에는 선생과 경성제국대학 동창생이라고 하던데?》

《예, 허진경이라고… 한책상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그 사람에 대해 좀 자세히 말해보시오.》

《공부도 잘했고 반일감정도 있었습니다. 공산주의에 대해 동경도 했구요. 그래서 저와 함께 평양에 왔고 아버지와 같은 처지에 있는 지주들의 땅이 몰수당하는것도 보았지만 입당청원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주출신이라고 하여 부결되였습니다. 그의 입당청원서를 받아들었던 머리를 길게 기른 사람은 청원서를 찢어서 그의 면전에 던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때 당내에 행세식맑스주의자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어서 계속 하십시오.》

《그때부터 그는 공산당에 대해 반감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풀어주려고 했는데 막무가내였습니다. 성격이 몹시 용렬한 사람이였습니다. 공산당에 대하여 아예 도리질이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그 사람이 무슨 발굴보고서 같은것이라도 해놓은게 없습니까?》

《그런건 없었습니다. 후에도 그런 글을 내놓은것 같지 않습니다.》

《선생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가 정말로 단군묘를 책임성있게 발굴했다면 학자적인 량심에서 그에 대한 과학적인 고증을 했어야 하지 않습니까?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민족의 력사를 중히 여겨 자각적으로 한것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그때야 석진은 어렴풋한 의문이 갈마들었다.

그렇다, 허진경으로서는 마땅히 그랬어야 한다. 그런데 자기는 왜 지금껏 그런 의심조차 하지 않고있었는가. 확실히 단군이 우상이라는 관념이 지배하고있지 않았는가. 명색이 력사학자인 자기한테…

그의 심중을 읽어보신듯 김일성동지께서 말머리를 돌리시였다.

《어딘가 석연치 못한데가 있습니다. 해방직후 어떤 사람들은 우리의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에 앙심을 품고 우리가 가지고있던 쌀창고에 불을 지르고 기계들을 파괴하고 남쪽으로 달아났습니다. 물론 원사선생의 동창이라는 사람은 그런 부류는 아니였을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학자로서의 그의 행동에는 의문시되는 점이 없지 않습니다. 혹시 어떤 사람들이 서뿌른짓을 할가봐 미연에 방책을 쓴것은 아니였을가요?》

《예?》

석진은 그이의 추리에 놀람을 금할수 없었다. 지금 그이께서 우리의 사상과 정치를 외면하고 반역의 길을 택한 인간에게 어떤 크나큰 기대를 싣고계시는것인가. 무엇이 그이로 하여금 한번도 본적없는 인간에게 그런 크나큰 믿음을 낳게 한것인가.

김일성동지께서는 원사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계속하시였다.

《준비되지 못한 일군들에 의해 일부 사람들이 이지러지고 진실이 오도되는 결과가 빚어졌습니다. 내가 혁명투쟁을 해오는 전기간 그런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나는 이것을 일제잔재와 함께 력사의 풍운으로 생각합니다. 이 풍운을 결정적으로 벗겨버려야 합니다. 그러면 오도되였던 진실이 드러납니다.》

김석진은 비로소 수령님의 말씀의 뜻을 리해하고 그이앞이라는것도 잊고 청높은 목소리로 웨치듯 말씀올렸다.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수령님!》

《덤비지 말고 선생도 잘 생각해보시오.》

《아닙니다. 수령님, 이것은 력사를 찾자는 학술적인 문제이기 전에 자기 조상에 대한 후손들의 관점문제입니다.》

《선생이 그렇게 생각한다니 나도 마음이 놓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마음먹었다고 하여 반드시 그 의도대로 결과가 떨어지는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잠시 말씀을 끊으셨던 김일성동지께서는 두손을 포개고 앉은 원사의 모습을 응시하시다가 계속하시였다.

《해방직후에 있었던 일이 생각납니다. 그때 우리는 멸악산줄기에 무진장한 희유광물이 매장돼있다는 한 지질학자의 말을 믿고 나라의 귀중한 재정을 털어 거기에 광산을 개발하자고 했었습니다.》

그것은 김석진은 물론 누구나 알고있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그는 감회에 젖은 수령님의 말씀을 새롭게 받아안았다.

《그런데 숱한 국가자재와 많은 로력을 들인 담에야 헛공사라는것을 알게 되였습니다.》

그담에 어떻게 되였는지도 석진은 잘 알고있다.

그 보고를 받으신 수령님께서는 피눈물을 흘리며 벌을 청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차라리 잘되였습니다. 거기에 비석을 세웁시다. 후손들이 이런 실책을 다시 범하지 말도록…》

석진이 조용히 말씀올렸다.

《수령님의 뜻을 알겠습니다.》

조용히 대답을 올리는 석진에게는 원시시대며 고대, 중세, 근대, 현대를 이루는 장구한 민족사가 자신의 두뇌속에 거대한 띠가 되여 자리잡는듯 한 감을 느꼈다. 그 무궁한 시공간속에서 로동당시대라는 보석같은 구간이 찬란한 후광을 내뿜고있다. 흘러온 과거뿐아니라 그보다 더 아득한 다가올 력사까지도 그 빛이 밝게 비치는것을 석진은 눈이나 머리로가 아니라 온몸으로 느끼였다. 수령님께서는 자신의 대에 후손들을 위해 할수 있는 모든것을 해놓을수 있는 최상의것을 하려고 하시는것이다.

《선생이나 내가 살아있을 때 못하면 후손들은 하기가 더 힘들어질것입니다.》

아! 위대하지 않다면 뭐라고 한단 말인가.

석진의 희여진 머리가 더욱 숙어졌다.

김일성동지께서 강동의 단군릉을 파볼 결심을 지지하신것은 김석진이로서는 알수 없는 많은 자료들을 연구분석하신데 기초한것이였다. 그 자료들은 지금 서재에 쌓여있는 과거의 력사책들만이 아니라 최근에 김정일동지께서 여러 경로를 통해 새로 구입하여 보내오신 단군관계자료들이였다.

그 자료들은 일제가 단군관계의 력사책들을 모조리 불사르던 시기 민족의 넋을 잃지 않은 지사들이 소실된 책에서 보았던 기억을 더듬어 살려놓은 매우 희귀한것들이였다.

이 자료들을 후세에 남긴 애국지사들중에는 일제가 날조한 《을사5조약》을 반대하여 《시일야방성대곡》이라는 글을 쓴 장지연, 3. 1인민봉기 당시 33명의 민족대표중의 한 사람으로 한때 《매일신문》의 사장을 한 오세창, 시인 리응상 등이 있었다.

민간에서 불리우는 단군에 대한 옛 노래도 찾아내였다.

 

단군자손 2천만 우리 동포

한형제 혈속이 분명하고나

반만년의 력사를 누려오면서

문명과 부강을 자랑했도다

 

7

 

김석진을 바래우고난 수령님께서는 잠시 방안을 거니시면서 어린시절 봉화리에서 사실 때의 아버님을 추억하시였다. 이제는 70년세월도 더 지나갔다.

검은 연기가 그물거리며 굴뱀처럼 뒤쫓았다. 금시 비가 쏟아져내릴듯 대기는 숨막히도록 답답한데 연기가 땅을 핥으며 맴돌았다.

길바닥에서 피여오른 황토먼지에도 끄스름이 오른듯 검게 보인다.

벌도 하늘도 온통 검게 물이 든듯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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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수탈당하고있는 이 강토에서 어디서나 흔히 볼수 있는 광경이였다.
주변에 널린 린근촌락들에서 무언가 무섭게 타고있었으나 아버님께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곧추만 걸어가신다.
그이의 뒤를 어리신 수령님께서 가쁜숨을 톺으며 따르고계시였다.
어리신 수령님께서 신으신 미투리앞코숭이에 붙은 꽃잎같은 리봉에 먼지가 뽀얗게 올랐고 먼길에 닳은 미투리층이 끊어져 너덜거린다.
두분께서는 점심무렵에야 한 골짜기어귀에 이르시였다.
청신한 수림속이였지만 끄스름내가 지독하게 떠돌았다. 검은 연기가 골짜기어귀를 막고있었다.
《한발 늦은것 같구나!》
아버님의 다급해하시는 말씀.
《…》
《성주야, 쉬지 않아도 되겠느냐?》
《옛!》
총알같이 여무진 대답소리였다.
두분께서는 다급히 골짜기에 접어드시였다. 뉘엿이 뻗어있는 길을 내놓고 크고작은 바위돌들이 무지를 이루고 머루넝쿨, 다래넝쿨, 칡넝쿨이 엉킨속을 헤치며 걸음을 줄이느라고 길아닌 길을 걸어가시였다.
어리신 수령님께서는 힘들었으나 참으시였다. 자신의 손목을 잡고가시는 아버님의 엄엄한 기상이 힘을 주었다.
아버님께서는 이른새벽 길을 떠난 후 말씀 한마디없이 그저 엄엄한 기색뿐이시였다.
그래서인지 아버님에게 팔목이 아니라 마음을 잡히고있는듯이 느껴지셨다.
골짜기가 깊어질수록 내내가 더욱 코를 찌르고 솜뭉치 같은것이 숨구멍을 막았다.
미구에 막바지 펑퍼짐한 곳에 주저앉은 집이 드러났다.
불길은 사그라졌으나 검은것이 타래쳐 푸른 창공을 뒤덮고있었다.
《아, 한발 늦었구나!》
아버님의 통분해하시는 말씀이였다.
어리신 수령님께서는 아버님의 이그러든 얼굴모습을 알아보고 손바닥에 손톱이 박히도록 작은 두주먹을 꼭 부르쥐시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어제밤 자정이 넘어 강동군 문흥리(오늘의 강동군 향목리)에서 찾아온 한 동지로부터 일제가 단군사당들에 대한 방화를 일제히 진행하고있다는 소식을 들으시였다.
이곳 강동지방에는 단군을 제사지내는 사당이 류달리 많았던것이다.
《성주야, 왜놈들이 단군사당을 불사르고있다. 내가 일전에 다녀온 솔골마을 외진 산골짜기에도 단군사당이 있는데 왜놈들이 닥치기 전에 먼저 가봐야겠다.》
그래서 떠난 걸음이였다. 두분께서는 해뜨기 전 이른새벽에 사립문을 나서시였다.
바로 얼마전에도 황해도일대를 돌아보고 오신 김형직선생님께서는 단군초상이 걸려있던 구월산 삼성사가 왜놈들에 의해 불타버렸다고 하면서 비분을 금치 못해하시였다.
그런데 오늘은 이렇게 향촌부락들에 널려져있는 자그마한 사당들에까지 왜놈의 촉수가 미치고있는것이다.
《나라를 잃으니 민족의 력사마저 잃게 되는구나!》
아버님의 절통하신 목소리가 어리신 수령님의 심중에 피방울처럼 퍼졌다.
후두둑…
갑자기 나무잎에 비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비발은 삽시간에 억수로 변했다.
번개가 일고 천둥이 쳤다. 수난의 강토가 몸부림치고있었다.
불탄 집터에 침통한 얼굴로 앉아계시는 아버님의 몸에 떨어지는 비방울이 단 숯에 떨어질 때처럼 칙칙 소리를 내는듯 하였다.
아버님께서는 더 참지 못하시고 눈물을 흘리시였다.
아버님의 슬픔을 다 알기엔 그때 수령님의 나이가 너무도 어리시였다. 하지만 하늘처럼 여겨오시던 아버님께서 어깨를 떨며 우시는것을 보셨을 때 가슴은 미여지는듯 아프시였다.
이윽고 아버님께서는 노래를 부르시였다. 노래라기보다는 차라리 그 어떤 울부짖음이였다. 가슴이 찢어지는듯 한 고통속에 부르시는 그 노래는 이전부터 부르시던것 같기도 하고 금방 새로 지어 부르시는것 같기도 했다.
전률에 가까운 큰 충격으로 하여 어리신 수령님께서는 똑바로 새겨들으실수 없었다.
천둥이 계속되고있었다.
하지만 비분에 떨고 격정에 목이 메는 그 노래소리를 누르지 못했다. …
이튿날 아침 고개를 쳐들어보니 하늘이 열려져있었다. 파아란 하늘이였다. 어둠을 몰아가고 비를 걷어간 내 나라의 파아란 하늘이 머리우에 열려져있었다. 시뻘건 점이 보였다. 흰 천에 댕그라니 그려넣은 피같이 시뻘건 점, 수령님께서는 그것이 일장기임을 알아보시였다.
아! 왜놈의 기발!
어데서인가 《기미가요》가 들려왔다.
내 나라의 맑은 하늘에 왜놈의 국기가 날리고 강 푸르고 들 푸른 천지간에 왜놈의 국가가 울린다.
이처럼 통분한 일이 어디 있으랴!
온몸이 부르르 떨리시였다.
아버님의 체험이 자신의 체험으로 흘러들고있음을 의식하시는 순간 아버님께서 부르시던 노래가 똑똑히 새겨지는것이였다.
 
슬프도다 조선민족아
사천여년 력사국으로
자자손손 복락하더니
오늘 이 지경 웬말인가
억사철사로 결박한 나를
동무들의 손으로 끊어버리고
독립만세 우뢰소리에
동해가 끓고 산이 동하리
 
남산초목도 눈이 있으면
우리와 같이 슬퍼하겠고
동해의 어별도 맘이 있으면
우리와 같이 슬퍼하리라

 
그 노래와 《기미가요》가 허공중에서 맞부딪치며 불꽃을 튕기는듯 하였다.
일장기는 여전히 펄럭이고있었다. 조상의 땅에, 조상이 열어준 하늘에 왜놈의 국기가 제땅에서처럼 날리고있었다.
지금은 그것을 뽑아던질 힘이 없었다. 억사철사로 결박당하지 않았느냐.
어리신 수령님께서는 가슴이 끓어번지였으나 진정 어찌할 도리가 없으시였다.
이날 아침 그이의 망막에 새겨진 일장기는 온 생애를 통해 지워지지 않는 증오의 표적이였다.
왜놈들이야말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해를 독차지하고 천대만대를 살아가려는 가장 악독한 놈들이였다.
어리신 수령님께서는 그 저주로운 일장기를 향해 마음속으로 총을 쏘시였다.
아직은 그렇게밖에 달리 하실수 없었다.
그로부터 얼마후 김형직선생님께서는 강동군 칠포리(지금의 강동군 강동읍)에서 동지들에게 일제가 단군조선의 력사를 말살하려고 악랄하게 책동하는 조건에서 기우제를 비롯한 여러가지 형식으로 단군릉에서 분향식을 자주 하도록 하며 단군릉수호회를 뭇고 단군릉을 지켜내도록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어느날 그이께서는 어리신 수령님과 함께 봉화리에서 얼마 멀지 않은 단군릉을 찾아가시여 분향식에 몸소 참석하시였다.
돌아오는 길에 수령님께서는 이런 질문을 하시였다.
《아버님, 왜놈들이 왜 그다지도 단군을 없애지 못해 야단입니까?》
《민족의 뿌리이기때문이다. 민족을 말살하기 위한 왜놈들의 발악은 그 뿌리인 단군의 력사에 돌려지고있는것이다. 단군은 민족의 얼이다. 배달겨레의 넋이란 추상화된 개념이 아니라 이렇게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사상감정이다. 뿌리깊은 나무는 없애버릴수 없는것처럼 뿌리깊은 민족도 없애버릴수 없단다.》
《그 무덤이 실지 단군의 무덤입니까?》
《단군에 대한 숭앙은 민족의 정신을 잃지 않으려는 의기이다. 저 묘를 한갖 우상으로만 봐서는 안된다. 신화뒤에 실화가 있는것이 세상리치이다. 나는 이 리치를 믿는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에게는 이 강산의 막돌도 금돌로 보이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금돌도 막돌로 보이는 법이란다.》

아픈 추억이였다. 어린 나이에 받아안은 아버님의 유지를 80고령에 이르러 다시 새겨보시는 수령님의 마음속에는 단군을 찾는 일을 더는 미룰수 없다는 결심이 더욱 굳어지시였다. 책임서기 전기철이 한아름의 문서를 안고 조심스레 들어섰다. 얼핏 보기에도 오래 묵은 자료들이라는것이 알리였다.
《그게 무슨 자료들이요? 혹시…》
김일성동지께서 반색을 지으며 물으시였다. 마치 기다리고계시던듯이…
《당력사연구소에서 김정일동지께 올린 자료들인데 수령님께 드리라고 지시가 계셨습니다. 새로 발굴된 항일무장투쟁자료들인데 국제당문서고에 있던 자료들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회고록집필에 도움이 될거라고 하셨습니다.》
쏘련이 해체되면서 많은 자료들이 새롭게 공개되고있었다.
《그래, 귀한 자료들이로군.》
김일성동지께서는 문건들을 한책한책 얼추 일별하시며 추억깊은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반세기전의 자료들인데도 이렇게 귀한것이 될줄이야. … 하물며 반만년전의 력사를 고증한다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소.》
그이의 사색은 반세기전이 아니라 반만년전으로 달리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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