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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소설 <새나라> 3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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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5,230회 작성일 15-11-14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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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사동역은 이른아침부터 림시통근렬차를 타러 나온 사람들로 붐비였다. 남정들은 누구라없이 삽이나 곡괭이를 들고 꽁무니에는 보자기에 싼 밥곽을 혹처럼 매달고있었다. 홈바닥에는 남정네들뿐만아니라 처녀들과 녀인들도 작업도구를 들고 서있었다. 녀맹에서도 김정숙동지의 발기에 의하여 공사장에 나가기로 했던것이다.

《아니, 녀자들도 일하러 간다는거요? 거 희한한데…》

《사방에서 치마자락이 펄럭이문 얼이 빠져서 일을 제대로 할가?》

《공사판에서야 더우면 벗어내치구 고쟁이바람으로 일하군 하는데 녀자들이 있으면 곤난하군.》

남정네들이 심심풀이로 한마디씩 던지는 말을 녀인네들이 듣고 가만있을수 없었다. 몸이 좋은 녀인 하나가 한손을 허리에 얹고 한발 나서며 방금 말한 중년사내에게 기관총처럼 쏘아댔다.

《아니? 그 댁에선 아직두 총각행세를 하실려우? 고쟁이바람으로 일하든 홀딱 벗구 일하든 그걸 누가 쳐다나 보겠다구 내우를 해요? 그 나이에 부끄러운 흉내를 내는게 보기 부끄럽수다. 그리구 치마자락 펄럭이문 일 못하겠다는 아저씨! 바람쟁이 아니요? 치마만 보문 삭신이 노그라지는거야 바람쟁이지 뭐겠소? 그래두 우리가 공사판에 나가야 일이 헐해질거우다. 저마다 같이 일하고싶어하지 않나 두고보시우.》 그리고는 제김에 흐흐흐 웃었다.

남정들은 괜히 싱거운 소리 한마디씩 했다가 넋살이 떨어지게 얻어맞고도 또 지분거렸다.

《아주머니, 과부 아니요? 세차기는…》

《그래, 정말 과부라면 오늘중으로 시집보냅세. 아주머니, 말만 떼시우.》

남자들이 암만 느물거려도 녀인은 낯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그것 참, 알랑한 귀인을 만났수다. 그 댁들은 성인학교두 안다니시우? 우리 녀자들이 해방덕에 변한걸 모르는가 말이우다? 이제 남녀평등권법령두 나온다는데 그때 가서두 녀자들을 깔보면 법에 걸려요.》

저마끔 한마디씩 주고받으며 주변을 들썩하게 하는데 대피선에 있던 렬차가 기적소리를 울리며 구내에 들어섰다. 사람들은 와 모여들기는 했으나 렬차에 선뜻 매달리지는 못했다.

리명덕은 차문이 어디쯤 서겠는가 짐작하고 홈에 바투 서있다가 렬차가 채 멎어서기 전에 날쌔게 승강대로 뛰여올랐다. 역전에 매일 삯짐지러 나가군 한 덕에 그쯤한 요령은 알고있었던것이다. 객차방통은 전차처럼 량옆으로 긴의자들을 붙여놓았었다. 명덕은 가운데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도 리건국로력대에 배속되여 공사장에 일하러 나가는 길이였다. 사실은 제가 스스로 나가고싶어 나선것은 아니였다.

기림리에 사는 누이도 어제 아버지한테 대접하겠다고 찹쌀 한되를 들고와서 하는 말이 자기네 리녀맹에서도 공사장에 자원출동한다고 했다.

그러니 녀자들까지 열성을 보이는 공사에 빠진다는것도 시시한 노릇이고 더구나 로력동원증까지 받았으니 이왕이면 선참으로 제 몫을 해제끼고싶었다.

본래 뼈대가 굵어 힘꼴이나 쓰는데다 삯짐군으로 살아온 명덕에게는 그까짓 흙짐이나 지는건 문제 아니였다.

출발역에서부터 림시렬차는 사람들을 가득 태우고 떠났다. 명덕은 렬차안이 소란스럽건말건 고개를 수그리고 팔짱을 낀채 덤덤히 앉아있었다.

자기의 발앞에 다른 사람의 발이 바투 붙어있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나이지긋한 사람이 앞에 서있었다. 렬차를 처음 타보는지 삽자루에 몸을 의지하고 렬차가 흔들리는데 따라 휘청거리는데 보기가 민망스러웠다.

차안의 사람들이 자기를 지켜보고있는것만 같아 명덕은 얼굴이 절로 붉어졌다.

(이 두상은 왜 딱 내옆에 서가지구…)

바늘방석에 앉은것 같다더니 그 말이 그른데 없었다. 앉아 가는 대가로 마음속 고통을 당하느니보다는 서서 가는게 훨씬 편할것 같았다. 명덕은 자기의 그 생각에 스스로 놀랐다.

(어째서 내가 이런데 신경을 쓰게 되였을가? 예전에는 안 그랬던것 같은데…)

예전에는 정말 안 그랬었다. 남에게 양보하면 자기만 손해보는 세상에서 양보가 다 뭔가. 해방전에는 그런 생활륜리가 응당한것이였고 누가 탓하는 사람도 없었다. 극상해서 《말세로군.》하고 개탄하면 그만이였다.

그런데 지금은 어째서 자기의 리기적인 몸가짐이 사람들의 비난을 받을수 있다고 두려워하게 되였을가.

(젠장, 모르겠다.)

명덕은 끝내 자리에서 일어설 용단을 내리지 못했다.

렬차는 대동강역과 본평양역을 거쳐 어느새에 서평양조차장에 도착했다.

렬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삼삼오오 떼를 지어 조차장다리를 건너 각기 자기들의 작업구역으로 흩어져갔다.

아침부터 찌뿌둥해있던 하늘에서 10시쯤 지나자 보슬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예전같으면 이런 을씨년스러운 봄날엔 뜨뜻한 아래목에 엉치를 붙이고앉아 막걸리동이나 축내겠지만 오늘도 공사장에는 사람들이 한벌 덮여있었다. 사람들은 비가 오건말건 성수가 나서 일을 제끼고있었다.

《오늘은 일하기가 그저 그만이군. 해가 내려쪼이는것보다 좋거던.》

《이런 날에야 일자리가 푹푹 나지.》

명덕은 목고를 메고 부지런히 흙을 날랐다. 처음에는 오래간만에 집단로동을 해서인지 재미도 나고 힘들지도 않았다. 하지만 역시 토목로동은 놀음거리가 아니였다. 비에 젖은 땅이 질적거리고 신발에 망짝같은 흙덩이가 매달리군 하니 일은 곱절 힘들어지고 공연히 짜증이 났다.

소동은 전혀 별치 않은것으로부터 시작되였다.

공사장에서는 리단위로 작업구간을 맡겨주면 다섯명이나 열명씩 조를 무어 작업량을 정해주기때문에 벌집모양의 구뎅이들이 사방에 생겨났다. 명덕이네 옆에서는 대신리사람들이 일하고있었는데 그 경계선을 이루던 흙담벽이 대신리쪽으로 넘어졌던것이다. 그쪽에서 대번에 신경질이 날아왔다.

《이건 뭐야? 당장 치우라구.》

그러자 문수리사람들도 가만있지 않았다.

《왜 우리보구 큰소리야? 자기넨 상관이 없어?》

무너진 토량은 서너㎥ 잘되는데 누구도 그 흙무지에 삽을 박으려 하지 않았다. 그럴만도 했다. 문수리쪽에서 시비를 가르자고 나선 사람은 민주당에 소속된 사람이였고 대신리쪽에서 눈을 부릅뜨고 제일 크게 고아대는 사람은 신민당의 당원이였던것이다. 그들은 리유가 없으면 리유를 만들어서라도 개와 고양이처럼 으르릉가르릉거리군 했다. 무슨 일에서나 민주당은 자기나름의 관록을 시위하려 하고 갓 조직된 신민당도 세력확장에 모지름을 쓰던 시기라 민주당이 《산으로!》하면 신민당은 《바다로!》하기가 일쑤였다. 그러니 오가는 말이 고울수 없고 어느 쪽에서도 먼저 양보하려 하지 않았다.

《뭐가 어째? 시시해?》

서로 목에 피대들을 돋구더니 허우대 큰 대신리사람이 먼저 멱살을 잡았다. 사태는 점점 험악해졌다. 가만 놔두면 문수리사람이 밀리울판이였다.

명덕은 그들이 고아대는것을 처음부터 지켜보았다. 그에게는 량켠이 다 미웠다. 그까짓 흙이 몇삽이나 되겠다고 아낙네들처림 쬐쬐하게 논단 말인가. 그중에서도 대신리사람이 더 미웠다. 체통이 크다고 문수리사람들을 깔보는가.

명덕은 이런 공사판에 어느 정도 익숙되여있었다. 그는 구뎅이안에 뛰여들며 대신리사람을 콱 밀쳐버렸다. 그 사람은 몸의 균형을 잃고 저쯤에 나가넘어졌다.

《이자식이, 사람을 쳐?!》

넘어졌던 사람이 주먹을 쥐고 달려드는것을 명덕은 발길로 차버렸다. 그렇게 되자 대신리사람들도 가만있지 않았다. 싸움은 불가피한것이였다. 명덕은 자기 목고채를 잡아들었다. 량편에서 몇사람씩 삽이며 목고채를 들고 마주섰다. 이런 판에서는 먼저 공격해야 했다. 조금이라도 약한 구석을 보이거나 주춤거리다간 순식간에 반주검이 될수 있었다.

명덕은 목고채를 사선으로 비껴들고 발뒤꿈치를 들었다. 그찰나 벼락같은 고함소리가 울렸다.

《이게 무슨 짓들이야!》

몰켜선 사람들을 헤집고 장혁수가 구뎅이에 뛰여들었다. 그는 맨앞에서 목고채를 들고있는 명덕에게 사납게 소리쳤다.

《그걸 놓지 못해?》

명덕은 목고채를 집어던지며 쓰겁게 웃었다. 순간 장혁수는 명덕을 알아보았다. 언젠가 일자리를 달라고 찾아왔다가 돈을 안 주는 공사장에선 일을 안하겠다면서 책임자에겐 가족이 없느냐고 가슴을 허비고 사라진 그 젊은이였다. 장혁수는 머리끝까지 치밀어오르는 분기를 참지 못하고 명덕의 멱살을 거머쥐였다.

《네녀석이였구나. 그래 공사장을 싸움판 만들자고 왔냐? 돈을 안 주니까 그 밸풀이를 하자구 왔어?》

장혁수는 우악스런 힘으로 명덕을 흔들어대다가 왈칵 밀쳐버렸다. 명덕은 뒤로 비칠거리며 나가넘어졌다.

숱한 사람들앞에서 망신을 당한 명덕은 악에 받쳤다.

왜 나보구만 해보는가. 내가 뭘 잘못했는가?

장혁수는 명덕을 한대 후려칠듯 주먹을 떨며 소리쳤다.

《썩 사라져라! 너같은 자식은 필요없어! 다시한번 그랬다간 죽여버리고말겠다.》

《뭐야?》

명덕은 리성을 잃었다. 상처입은 자존심이 (자존심이라기보다는 울뚝밸이였다.) 그의 머리를 휘잡아둘렀던것이다. 그는 집어던졌던 목고채를 거머쥐고 일어섰다. 자기 목숨도 남의 목숨도 하찮게 생각되는 그런 순간이 닥쳐온것이다. 그의 눈에서는 살기가 흘렀다. 그때였다.

《명덕아!》

녀자의 다급한 웨침소리는 길길이 날뛰던 명덕의 운동감각을 순간에 마비시켜버리는듯싶었다.

명덕은 구뎅이우에서 싸리질통을 지고 자기를 내려다보는 누이의 겁에 질리고 원망어린 눈길과 마주치자 맥없이 목고채를 내리워버렸다. 사나운 파도처럼 날뛰던 격한 감정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대신 뜻모를 억울함과 서러움이 밀물처럼 쓸어들어 눈굽에서 찰랑거렸다. 작업장의 팽팽하던 분위기는 가라앉았다.

명덕의 누이는 그 자리에 서있기가 부끄러운듯 조용히 사라졌다. 장혁수조차도 망아지처럼 날뛰는 명덕을 단단히 혼뜨검내려던 생각을 잊어버리고 녀인의 뒤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현장에 나와있던 로이문이도 모든것을 낱낱이 지켜보고있었다.

작업은 다시 시작되였으나 명덕은 일할 기분이 나지 않아 봉수산기슭의 황철나무밑에 곰처럼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생각할수록 현장책임자라는 사람이 괘씸해서 견딜수 없었다. 전번에는 사정을 몰라서 돈을 안 주는 공사장에선 일을 못하겠다고 가버렸지만 그렇다고 원쑤대하듯 할게 있는가. 한번 밉게 보였다고 무작정 쌍욕을 퍼부어대니 명덕이로서는 억울할수밖에 없었다.

(제가 뭐길래 가라말라 하는거야? 체…)

밸대로 한다면 훌쩍 가버리겠지만 어쨌든 책임량이라는게 있으니 제 마음 내키는대로 할수 없었다. 또 그렇게 되면 문수리책임자가 집에 와서 아버지에게 미주알고주알 일러바치겠는데 명덕은 늙으신 아버지가 자기때문에 속을 썩이는것을 바라지 않았다. 이웃들이 무던한 로친네라도 데려다놓으라고 권할 때마다 징용갔던 아들이 온 다음에 며느리를 맞으면 걱정없다면서 기림리에 시집간 누이네와 세간을 합치는것도 반대해온 아버지였다.

생각은 누이에게로 이어졌다. 손우누이 정혜는 무슨 팔자가 그따윈지 3년전에 시집가서 반년만에 남편을 징용에 떠나보내고 그로부터 반년후에는 사망통지서를 받았었다. 다행이랄지 불행이랄지 유복자가 생겨서 그 애 하나를 데리고 청상과부로 살고있는 누이였다. 그 누이가 지금쯤 어느 구석에서 못난 동생때문에 속태우고있는것만 같아 명덕의 마음은 편안치 않았다. 그럴수록 시공책임자에 대한 고까운 감정을 금할수 없었다.



34

 

장혁수는 하루종일 1작업구역에서 실컷 땀을 흘렸다. 장군님께서 주신 삽으로 일하느라면 초인간적인 힘이 생기는지 아무리 땀을 흘려도 힘들지 않았다.

이제는 그 삽에 대한 전설이 공사장뿐아니라 온 평양시에 파다하게 퍼져서 일하러 나온 사람들은 저마다 그 삽을 한번만 써보자고 성화를 먹이군 했다. 하지만 장혁수는 미련한 사람들이 혹시 삽자루라도 부러뜨릴가봐 아예 제손에서 놓지를 못했다.

그렇게 일에 파묻혀있느라면 온갖 걱정거리가 다 달아나고 저절로 흥겨워지군 했다.

그러고보면 자기는 아무래도 책임자노릇이 팔자에 맞지 않는것 같았다. 그래서 무슨 문제가 생겨 사람들과 마주서면 머리가 아프고 화가 동하는 모양이였다. 하기야 사람을 다룬다는게 쉬운 일이겠는가. 오늘 문수리작업장에서 일어났던 소동만 봐도 하마트면 자기때문에 더 큰 싸움이 일어날번 하지 않았는가.

그러니 공사장에 나온 매 사람들이 하루에 흘려야 할 땀방울을 미리 천평에 달아보고 하루책임량을 정해줄수야 없지 않는가. 이게 다 평양을 위한 일이고 내 나라를 위한 일인데 아직도 옛날에 강제부역에 끌려나올 때나 남의 집에 가서 삯일을 해줄 때처럼 수판알부터 튕겨서야 어떻게 장마철전으로 공사를 완공한단 말인가.

그렇지 않아도 장혁수는 공사가 시작돼서부터 늘쌍 얼굴이 컴컴해있었다.

원래 계획에는 6월 중순까지를 1단계공사기간으로 정하고 그때까지 보통강의 옛 물길을 새로 째는 통수로로 돌리게 되여있었다. 그러므로 이 기간에는 새 통수로의 강바닥굴착작업을 기본으로 하면서 동시에 량쪽제방도 쌓고 봉수산을 45°경사로 푹 깎아서 물길을 넓혀야 했다.

이 기간에 처리해야 할 토량은 20만㎥이 훨씬 넘었다.

지휘부에서는 하루 평균 1만명씩 연 25만명으로 예견하였고 한사람당 1㎥의 토량을 하루책임량으로 정하였었다. 그런데 공사가 시작된지 닷새가 넘도록 어느 하루도 과제를 수행해본적이 없었다. 우선 동원로력이 제대로 다 나오지 않아서 나온 사람들은 설사 자기 책임량을 다 했다고 해도 총적인 공사량은 1인당 0. 3㎥정도 한것으로 집계되군 했다.

장혁수는 속이 탈대로 탔고 그래서 작업조건을 가지고 시비를 따지는 사람들을 보면 욕설부터 퍼붓군 했다.

자기같으면 차례지는 일감을 군말없이 맡아서 힘자라는껏 해제끼겠는데 사람들의 생각이 하나같지 않으니 야단 아닌가.

저녁총화시간이 되여 현장사무실에 올라가니 마당 한구석에 오성재가 쭈그리고 앉아있었다.

《날 기다리댔수?》

장혁수는 반가운 낯빛으로 오성재에게 다가갔다.

오성재가 매일 공사장에 나오는줄은 알았지만 우정 찾아오거나 조용히 만난적이 없어서 장혁수는 궁금한게 많았다.

《그새 어떻게 지내시우? 농사는 잘되나요?》

《잘되네. 수수가 벌써 무릎을 넘었네.》

《아주머닌 별일 없겠지요?》

《일없네. 로친넨 노상 밭에 나가살지.》

오성재는 문득 생각난듯 현장치료실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저기 현장치료대에 체네의사 있지? 그 체네가 바루 우리 로친을 살린 선생이네. 나랑 자기 집에 데려다 살게했다는 그 집일세.》

《그래요?》

이미 사연을 알고있었지만 그 고마운 사람이 수영선생인줄은 모르고있었다.

장혁수는 머리를 끄덕거렸다. 그러고보니 그 처녀의사는 생김새도 마음씨도 일색이다. 오성재와 같은 불행한 사람들을 위해주는 마음을 타고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런 공사판에 로동자들을 치료해주겠다고 자원해서 나올수 있겠는가.

장혁수는 잠시 동안을 두었다가 오성재에게 물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오셨소?》

오성재는 딱한 부탁이라도 있는듯 인츰 입을 열지 못했다.

《말해보시우. 형님이 나한테 감출게 뭐 있겠수?》

《감추기야 뭐. 자네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서…》

오성재는 어색하게 웃고나서 정근식의 동원증을 꺼내들고 사연을 이야기했다.

《사람이 은혜를 모르면 그게 무슨 사람이겠나. 그 집 주인어른은 나올 새가 없다니 내 몫은 내 몫대로 하고 그 어른 몫은 내가 대신해주고싶어 그러네. 내 육신을 놀려서 조금이라도 신세를 갚을수 있는 일이야 왜 못하겠나. 그것두 공짜로 일해달라는게 아니구 돈을 주겠다는걸 내 억지루 뿌리쳤네.

참, 그 어른은 쉽지 않은 사람이야. 그러니 여기다 도장을 좀 눌러주게.》

장혁수는 대뜸 소래기를 질렀다.

《정신있어요? 지휘부에선 로력을 사서 내보내는 현상을 없애라구 그만큼 강조했는데 형님까지 그러면 어찌겠소? 이리 내시우. 동원증을 회수하고말아야지.》

오성재는 황급히 손을 등뒤로 가져가며 한발 물러섰다.

《아니야, 그러지 말게.》

울상이 된 오성재를 바라보느라니 혁수는 마음이 약해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처녀의사의 외삼촌이란 량반이 괘씸하긴 하지만 성재형님도 사람의 도리를 지키자고 자기한테 힘든 부탁을 한것인데 규정만 규정이라고 떽떽거리면 그의 립장이 어떻게 되겠는가.

사실 성재형님의 경우는 간상배들이 로력을 돈으로 사서 내보내는것과는 사정이 다르지 않는가.

장혁수는 락심한 표정때문에 얼굴이 더 컴컴해보이는 오성재에게 손을 내밀며 무뚝뚝하게 말했다.

《동원증을 주시우. 도장을 찍어주겠수다.》

오성재는 선뜻 믿어지지 않는지 머밋머밋했다.

《참말인가? 회수하자는건 아니겠지?》

혁수가 피씩 웃어서야 오성재는 안심이 되는듯 어줍게 따라웃으며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현장사무실에 들어가 도장을 눌러가지고 나온 혁수는 동원증을 돌려주려다가 제 주머니에 넣었다.

《도장은 내가 열이틀동안 매일 눌러놓겠수다. 형님이 공사장에 매일 나온다는거야 내가 아는데 도장받으러 날 찾아다닐게 있소? 나중에 돌려주지요.》

《그러면 나야 고맙지. 자넬 믿겠네.》

오성재는 아직도 안심치 않는지 두번세번 다짐을 받고야 그곳을 떠났다.

공사총지휘부에 하루실적을 보고하고나서도 장혁수의 마음은 오성재의 일로 해서 개운치 않았다.

여름해는 아직도 형제산마루에 한발이나 남아있는데 공사장은 벌써 텅 비여있었다. 저녁이면 혁수에게는 늘 외로움이 밀려들군 한다. 일에 정신이 팔려 사람들과 섭쓸려 돌아갈 때에는 느끼지 못하던 외로움과 허전함이 공사장에서 사람들이 다 가버리고나면 어김없이 찾아와 그의 마음을 쓸쓸하게 해주군 했다. 남들은 이 시간이면 제집에서 안해와 자식들과 혹은 부모형제들과 모여앉아있겠지만 혁수는 혼자서 때식을 끓여먹고 래일아침까지 적적하게 빈집을 지켜야 한다. 아까 오성재에게 막무가내로 큰소리를 쳐서 그런지 오늘은 별로 쓸쓸해졌다. 차라리 혼자서라도 녹초가 되도록 일해서 마음속의 괴로움을 쫓아버리고싶었다. 그는 사무실에 세워두었던 삽을 들고 공사장으로 나갔다. 낮이 제일 길다는 하지가 스무날정도 남아있으니 요새는 저녁 8시가 지나야 날이 어두워진다. 그러니 이제 나가도 두시간은 일을 할수 있었다. 그는 새 통수로의 웃쪽으로 천천히 올라가며 공사장을 쭉 둘러보다가 한곳에 눈길을 멈추었다. 3작업구역에서 일하고있는 녀자를 발견했던것이다. 그 녀자는 혼자서 구뎅이의 흙을 파서는 소랭이에 담아 제방까지 날라가군 했다. 저 녀자는 작업시간이 지났는데 왜 아직도 일하고있을가? 가까이 다가가보니 그곳은 오전에 소동이 일어났던 문수리작업장이였다. 소랭이에 흙을 담아가지고 구뎅이에서 올라오던 녀인은 시공책임자가 우뚝 서서 자기를 내려다보는 바람에 어지간히 당황해했다.

장혁수는 그 녀자가 소동의 장본인인 명덕의 누이라는것을 첫눈에 알아보았다. 그런즉 이 녀자는 제 동생이 못다한 일을 대신하고있단 말인가.

녀인은 낭자를 틀어올린 머리에 흰수건을 썼는데 그래도 새파란 젊음은 차분히 내려깐 눈매며 꼭 다문 입술이며 탄력이 느껴지는 걸음걸이에 진하게 배여있었다. 아까는 조폭한 제 동생을 대번에 길들여놓고 조용히 사라지더니 지금은 남 안 보는 시간에 동생의 허물을 메꾸느라 혼자서 땀흘리고있는 이 녀인을 혁수는 무심히 대할수 없었다.

리유는 어쨌든 저녁늦게까지 일하고있는 이 녀인에게 고맙다는 인사라도 하고싶었다. 모든 사람들이 이 녀인처럼 성실한 마음으로 공사에 동원된다면 얼마나 좋으랴.

어디서 사는지 주소라도 알아두었다가 래일 현장속보에 내주고싶었다.

같은 남자끼리라면 손을 맞잡고 통성이라도 하고 어깨를 툭 치며 친구가 되자고 한마디 하련만…

그 녀자가 제방에 흙을 쏟고 돌아설 때에야 혁수는 자기가 그 녀자의 뒤모습을 얼없이 지켜보고있었다는것을 깨닫고 얼른 고개를 돌렸다.

그는 녀인이 가까이 온 다음에 퉁명스레 물었다.

《아주머닌 누구요?》

《…》

혁수는 다시 물었다.

《난 현장책임자요. 아주머닌 누구요?》

그의 목소리는 자못 엄엄했다. 정혜는 대답하지 않을수 없었다.

《저… 기림리녀맹단체인데…》

《그런데 왜 여기서 일하오? 여긴 문수리작업구간이란 말이요. 정말 이상하군. 이름이 뭐요?》

《리정혜예요. 난 사실…》

사실 정혜는 많은 사람들앞에서 동생을 욱박지르던 시공책임자가 밉살스러웠다. 그 사람이 동생의 멱살을 흔들어대지만 않았어도 일이 그렇게 험악해지지는 않았을게 아닌가.

정혜는 내키지 않는대로 사연을 설명하려 들었으나 혁수는 손을 획 내젓고 돌아섰다.

《됐소. 다 알고있소.》

《?…》

장혁수는 어안이 벙벙해진 녀인을 남겨두고 부리나케 현장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는 창고에서 제일 큰 질통을 골라들었다. 혼자서라도 일을 하려고 했었는데 마침 동무가 생긴셈이였다. 더구나 명덕이가 도중에 작업장에서 달아난데는 자기 책임도 없지 않은만큼 명덕의 누이와 함께 일한다고 해서 이상할것도 없었다.

장혁수는 명덕이 누이와 함께 일할 구실을 여러 각도에서 찾으려고 애쓰는 자신을 의식하지 못한채 질통을 덜렁거리며 작업장에 나타났다.

정혜는 다시 나타난 시공책임자가 반갑지 않았다. 남의 도움을 받는다는게 미안하고 외간남자와 단둘이 일하기가 난처하고 더우기는 시공책임자에 대한 첫인상이 나빴기때문이였다.

그러거나말거나 장혁수는 자기의 삽을 녀인에게 내밀었다.

《이 삽으로 담소. 김일성장군님께서 착공식날 쓰시던 그 삽이요.》

그 말에 사태는 완전히 달라졌다. 정혜는 흙묻은 손을 팔소매에 몇번이나 문대고서야 삽을 받아들었다. 삽자루도 쓸어보고 삽날도 만져보았다.

《장군님께선 그 삽을 나한테 직접 주셨소. 그리구 나같은 사람들이 건국의 주인이 돼야 한다고 말씀하셨소.》

장혁수는 그렇게 길게 말해본적이 없었다.

자랑이라는걸 모르는 사람이였는데 무슨 조화가 들었는지 그 녀인에게만은 제 자랑을 하고싶었던것이다. 그는 얼굴을 붉히며 질통을 돌려대였다.

《어서 담소.》

녀인으로서는 어쩔수 없는 정황이였다. 장군님의 손길이 닿았던 그 삽으로 한번 일을 해보려면 장승같이 우뚝 서있는 이 사람의 질통에 흙을 퍼담는 수밖에 없었다.

녀인은 적당히 담으려고 했지만 장혁수는 자꾸 더 담으라고 했다. 세번째만엔 짜증까지 냈다. 질통이 넘쳐나도록 흙을 담고도 힘들지 않게 구뎅이의 가파로운 경사면을 톱아올랐다. 대번에 일자리가 푹푹 났다. 일에 재미를 느낀 녀인도 이제는 낯선 남자와 일한다는 경계심을 잊어버린듯싶었다. 그러나 장혁수는 자기가 젊은 녀인과 일한다는 생각을 잊을수가 없었다.

아마도 그래서 질통이 넘쳐나게 흙을 담아도 힘든줄 모르고 시간이 가는줄도 몰랐던지… 두사람 다 말 한마디 안했다. 할 말도 없었고 그럴 용기도 없었다. 녀인은 남정에게 얼굴의 땀을 씻으라고 머리수건을 벗어주고싶었지만 차마 그러지는 못하고 구뎅이곁에 수건을 놓아두었다. 그러나 장혁수는 감히 그 수건을 집어들지 못했다.

갑자기 어디선가 갓난애의 울음소리가 자지러지게 울려왔다. 장혁수는 난데없이 들려오는 울음소리에 와뜰 놀랐다. 삽질을 하던 녀인이 얼른 구뎅이에서 나와 다른 구뎅이로 달려갔다. 거기에는 목고로 쓰던 가마니짝들을 뒤집어놓은 우에 포대기로 감싼 어린애가 눕혀져있었다.

《성학아! 응-》

녀인이 아이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장혁수는 예리한 송곳으로 심장을 쿡 찔리우는듯 한 느낌에 숨을 헉 들이그었다. 저도 모르게 그쪽으로 발길이 옮겨졌다. 두살이나 세살쯤 되였을가. 그는 아이를 안아드는 녀인에게 제 목소리같지 않은 갈린 음성으로 조용히 물었다.

《아이이름이 뭐라구요?》

《성학이예요.》

녀인은 피뜩 고개를 들며 대답했다.

장혁수의 얼굴은 이상하게 찡그러졌다. 가슴깊이 묻어두었던 추억이 또다시 머리를 쳐들고 그를 괴롭혔던것이다.

이때를 기다리고있었던듯 피로가 덮쳐들며 온몸이 나른해졌다.

그는 공사지휘부 자재과에 있는 로이문이가 제곁에 바투 다가와서야 고개를 들었다.

《여기서 뭘하시우?》

대답도 하고싶지 않았다. 질통을 지고있는걸 보면 모르는가. 로이문은 장혁수의 침울한 표정과 구뎅이안에 아이를 안고있는 젊은 녀인을 번갈아 바라보며 촉각을 곤두세웠다. 저 녀자는 분명…

시공책임자는 왜 저렇게 소태씹은 상인가?

로이문은 더러운 생각을 뽑아내려는듯 손가락으로 되박이마를 문지르며 메밀눈을 반짝거렸다.

《저 녀성동무는 누구요?》

《기림리에서 나왔다오. 혼자서 일하길래…》

장혁수는 더 일할 기분이 나지 않았다. 그는 녀인에게 간다는 말도 없이 삽을 찾아들고 로이문에게 물었다.

《날 찾아왔소?》

로이문은 녀자에 대해 좀더 알고싶었지만 장혁수를 따라서지 않을수 없었다.

《집에 가기 싫어서 같이 한잔 하자구 찾았댔소. 마당에 서서 공사장을 자세히 보느라니 시공책임자동무가 어물거리드란 말이요. 질통을 벗어놓구 같이 갑시다. 오늘 저녁엔 내가 한턱 내겠소.》

장혁수는 로이문을 잘 몰랐다. 시인민위원회 건설과에 있었다는데 이번 공사지휘부가 조직되면서 처음으로 면식을 익혔었다.

술소리가 나오자 그동안 잊고 살았던 술생각이 간절해졌다. 게다가 이래저래 마음이 울적해져서 한잔 마시지 않고는 잠들것 같지 않았다.

《갑시다.》

불덩어리같은 저녁해도 사라지고 지평선너머에서는 석양의 마지막잔광이 불타고있었다.

로이문은 봉수국수집으로 장혁수를 데리고 갔다.

공사장에 일하러 나온 사람들이 밀려드는 점심때에 비해 저녁에는 국수집이 퍼그나 조용했다.

웃방에 두어패 둘러앉은 사람들은 가설건물을 짓고 공사장에 나와사는 건국로력대원들 같았다. 로이문은 주인에게 아래방에다 술상을 차리게 했다.

《시공책임자동무가 처음 왔는데 잘 차려야겠소.》

《물론이지요. 개수공사 얼씨구 절씨구-》

식당주인이면 저절로 허리가 유연해지는 모양이다. 주인은 갑삭갑삭하며 부엌에 있는 녀자들을 재촉했다.

《천천히 하오.》

로이문은 점잖게 한마디 하며 담배갑과 성냥을 방바닥에 꺼내놓았다. 시간도 많은데 보챌게 있느냐 하는 태도였다. 그는 장혁수에게 담배를 권하며 사뭇 동정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책임자노릇을 처음 해보니 일이 힘들거요. 요새 시공책임자 얼굴이 축가는게 알린단 말이요. 나처럼 인민정권기관에서 일해본 사람들은 요령이라도 있는데 책임자동무야 언제 그런 요령을 배웠겠소. 불을 붙이오.》

로이문은 성냥을 그어 장혁수에게 내밀었다.

장혁수는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자기의 고충을 숨기지 않았다.

《아닌게아니라 책임자노릇하기가 베차오. 후-》

《너무 근심마오. 쏘련에서 인차 굴착기가 나올거요.》

《그게 정말이요?》

장혁수가 불쑥 어성을 높이는통에 웃방에 앉았던 사람들도 자연히 귀를 강구었다. 그것은 로이문이 바라는것이였다.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 로동부장을 하시는 오기섭동지가 그렇게 말했다오. 어디 가서 옮기지는 말고 혼자만 알고있소. 쓰딸린이 북조선에 굴착기를 주겠다고 약속했다누만. 사실 우리한테야 공산당에서 지시한대루 공사를 장마철전에 끝내겠다는 사상적인 각오밖에 더 가진게 있소? 맨주먹으로 공사를 해야 하는데 품삯도 못 받는 로동자들을 혹사시키기가 우리 정권기관 일군들의 립장에서 볼 땐 미안하단 말이요. 나나 당신이나 다같은 프로레타리아트들인데 우리가 로동자들을 걱정해주지 않으면 누가 해주겠소. 하여튼 너무 몰아대지 말구 굴착기가 나올 때까지는 쉬염쉬염 하기요. 굴착기만 나오면야 장마철전에 와닥닥 끝낼수 있지.》

웃방에 앉은 사람들속에서는 저가락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자기들의 사정을 헤아려주는 로이문이 절을 하고싶을만큼 고마왔을것이다.

인차 술상이 들어와 장혁수는 로이문과 마주앉았다.

술잔을 기울이면서도 장혁수는 방금 들은 말에 신경이 쏠려있었다. 굴착기가 나올 때까지 일을 쉬염쉬염 하라는 소리는 평양시민이 떨쳐나서 장마철전에 와닥닥 해제끼자던 애초의 립장과 차이나는 소리가 아닌가?

정말로 공사방향이 달라졌는가? 로동부장을 하는 어른이 그런 말을 했다면 근거없는 소리는 아닐것이다.

한가지 부정할수 없는것은 돈도 못 받고 일하는 로동자들을 같은 처지에 있는 자기가 다그어대지 말아야 한다는것이였다. 굴착기가 당장 나온다면야 뭣때문에 사람들을 힘들게 일시키겠는가.

(도대체 무슨 갈래판인지…)

장혁수의 혼탁된 심리를 더 휘저어놓으려는듯 로이문은 반들거리는 되박이마를 문지르며 또 다른 소리를 꺼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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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그보다 심각한게 뭔지 아오?》
《그게 뭐요?》
로이문은 장혁수의 애를 말리려고 소갈비를 한입 뜯어 오래오래 씹어삼킨 다음에야 뒤를 달았다.
《쏘련에서 굴착기가 나오든 안나오든 우리 인민들의 애국심만 높다면야 무서울게 뭐겠소. 문제는 우리 정권기관에서 그만큼 사상선전사업을 했는데도 공사에 동원되는 백성들의 사상상태가 떨떨한거란 말이요.
공사를 시작해서부터 하루실적이 계획보다 떨어지고있는것만 봐두 긴말할 필요가 없지. 하긴 이 방대한 공사를 각성되지 못한 군중을 믿고 그들의 자각적열성에 맡기려고 했던 우리 정권기관 일군들의 책임이 크오. 지금 항간에서 어떤 소문이 도는지 아오?》
장혁수는 눈을 치뜨고 그의 입에서 무슨 소리가 나오는가 기다렸다.
《엊그제 서성리에 산다는 건국로력대원이 하는 말인즉 옛날부터 대동강엔 어미룡이 살고 보통강엔 새끼룡이 살아왔다는거요. 그래서 보통강의 형세가 룡의 몸뚱아리처럼 우불구불하다누만. 이제 보통강을 다른데로 돌리면 어차피 룡이 자리를 옮겨야 하는데 그러면 룡이 꿈틀거리면서 보통강주변을 아예 쓸어버린다는거요. 결국은 이 공사를 해선 안된다는 소리지. 내 그 사람한테 미신딱지가 단단히 붙었다구 욕은 해주었지만 생각해보면 그것두 욕질이나 해서 넘길 문제가 아니드란 말이요.》
그것은 로이문이 앉은자리에서 되박이마를 문지르며 궁리해낸 수작이였다. 장혁수는 마치 그 말의 출처를 알기라도 하듯이 술상을 탕 치고 로이문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건 다 나쁜 놈들이 내돌리는 개수작이요.》
그의 손에 들려있던 저가락 두개가 갈구리처럼 휘여졌다. 로이문은 장혁수의 솥뚜껑같은 손을 바라보며 등골이 서늘해지는것을 느꼈다. 방금 먹은 음식들이 명치에 매달리는것 같았다. 밥상에 앉아서는 마음을 편안히 가져야 소화가 잘된다는데 쇠도리깨같은 놈과 마주앉아있자니 아무래도 소화제를 먹어야 할것 같았다.
로이문은 마음속에 스며드는 불안감을 씻어내려는듯 제앞의 술잔을 잡아당겨 입에 쏟아넣었다. 그리고는 슬쩍 화제를 돌렸다.
《기분잡치는 소리는 그만하고 술이나 듭시다. 참, 아까 함께 일하던 녀자 말이요? 정말 모르는 사이요?》
《모른다는데…》
장혁수는 공연히 어성을 높였다. 술기운때문인지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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