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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소설 <새나라>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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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9,732회 작성일 15-10-30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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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며칠후 김운상은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 로동부장 오기섭의 호출을 받았다. 오기섭은 공사설계를 료해하겠다면서 계획서를 작성해가지고 오라는것이였다. 운상은 계획서를 어떻게 작성해야 할지 난감해서 구두로 대답할 준비를 해가지고 갔다.

오기섭의 방은 책상이며 의자며 마루바닥이며 모든게 거무틱틱해 보였다. 로씨야적위군들이 입던 상의에 가죽혁띠로 뚱뚱한 배를 묶은 오기섭은 당꼬바지에 넣었던 손을 힘있게 내밀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반갑소! 건축가선생, 앉으시오!》

오기섭은 운상에게 자리를 권하고 활달한 동작으로 책상을 에돌아 자기의 가죽회전의자에 가앉았다. 거무틱틱한 책상우에는 전화기와 문갑, 로어로 된 책들이 무질서하게 쌓여있었다.

얼핏 제목을 보니 《맑스주의와 수정주의》, 《자본론》, 《웨. 이. 레닌전집》 등이였다. 그 책들은 이 방 주인의 유식을 증명해주고 또한 이 방에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위압감을 주는 역할도 맡아하는듯싶었다. 철궤들이 놓여있는 바람벽우에는 《프로레타리아여, 일어나라. 유산자들을 숙청하라!》는 구호가 걸려있고 오기섭의 뒤에는 한폭의 붉은기가 드리워져있었다.

오기섭은 운상을 해부학적으로 료해하려는듯 노트를 펼치고 꼬치꼬치 물었다. 나이, 고향, 경력, 출신성분…

《자작농이라… 그러니 빈고농출신은 아니구만. 음, 일없소. 공산당은 이미 친일파, 매판자본가를 제외한 광범한 근로대중의 단결을 호소했으니까.》

그러면서 벽우에 걸린 구호를 흘끔 올려다보았다.

《일본에 가서는 고학을 했겠소? 집에서야 학비를 어떻게 다 보내주었겠소.》

《예.》

《고생했겠구만. 음, 장가는 갔소?》

《아직 안 갔습니다.》

《아직두?》

오기섭은 흥미있다는듯 만년필을 노트우에 던지고 의자에 몸을 제꼈다.

《부럽소, 아주 부럽소. 평양은 물이 좋아서인지 미인이 많소. 좌우간 1등미인을 쟁취해보오. 그러나 미인들만 따라다니면서 계급성을 무시하면 안되오. 반드시 혁명가의 집안에서 미인을 골라야 하오. 내 얼마전에 철도공장에 료해사업을 나갔댔는데 글쎄 공산당총각이 민주당집안의 처녀와 결혼식을 했다는거요. 기가 막혀서… 그래 공산당과 민주당이 한이부자리에서 동침할수 있소? 그렇게 쁘라스해서 수정주의밖에 더 나오겠는가? 그러니 건축가선생은 사랑을 해도 계급적선에서 탈선하지 말아야 하오. 우리 조선에도 쟌 다르크같은 영웅미인들이 있을거요. 평양에 그런 옛말이 있지? 적장의 목을 베도록 도와준 기생말이요. 이름이 뭐드라?》

《계월향입니다.》

《그래, 그런 미인이 그때만 있었겠소?》

오기섭은 한참 시큰둥한 소리를 늘어놓다가 다시 책상에 몸을 수그렸다.

《설계는 어떻게 돼가오? 계획서를 가져왔소?》

운상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계획서가 특별히 필요할것 같지 않아서… 물어보는대로 답변해 올리겠습니다.》

오기섭은 어이없다는듯 두팔을 벌렸다.

《여보! 이게 어떤 공사라고 그렇게 주먹구구식으로 한단 말이요? 동무야 설계를 맡은 사람으로서 언제까지 설계를 끝낸다구 단계별로 계획을 세워야 할게 아니요? 여기 뭘 모를게 있소?》

《설계는 한 열흘쯤이면 끝낼수 있습니다.》

오기섭은 자기가 말을 잘못 듣지 않았나싶어 운상을 한참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책상을 탕! 쳤다.

《동무! 지금 제정신이요? 이 공사의 중요성을 모르는가?》

언성을 높이던 오기섭은 아무래도 이 인테리겐챠를 정치적으로 각성시키는 사업을 제가 맡아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손세를 써가며 설명했다.

《이 공사는 우리 공산당의 위신문제란 말이요. 내 당신한테만 하는 말인데 우리가 이 공사를 장마철전으로 끝내자는게 어떤 타산이 있어서 그러는줄 아오? 이게 다 정치란 말이요. 이쯤 말하면 당신도 눈치가 있으니 알겠지? 그러니까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설계를 잘해놓소. 한달쯤이면 넉넉하겠지?》

김운상은 머리가 뗑해져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공사예산은 대략 얼마나 잡았소?》

운상은 자기가 추산하고있는 수자를 불렀다. 그것이 또 오기섭을 격분시켰다.

《동문 정말 깜깜이로구만. 동무 눈엔 나라형편이 보이지 않소?》

운상은 욕만 먹을수 없었다.

《장군님께서는 이 공사를 만년대계로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답니다.》

《여보, 동문 설계가요, 정치가요? 김일성동지야 정치가이니 응당 그렇게 말씀하실수 있지. 그러나 동무야 설계를 맡은 실무가로서 선 하나, 점 하나를 책임적으로 찍어야 할게 아닌가? 동무의 손에 따라 나라의 수백만금이 왔다갔다하는데 지금 형편에 무슨 돈이 많아서 토목공사에 물쓰듯 하겠소. 나참.》

오기섭은 전반적인 나라형편은 안중에도 없는 운상의 정치적우매성을 진심으로 개탄했다.

운상은 오기섭에게서 욕을 먹는게 억울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되였다. 리주연으로부터 처음 공사설계를 맡으라고 할 때 어째서 이 공사를 중시하는가 하는게 잘 납득되지 않았는데 지금 오기섭의 말을 듣고보니 어느 정도 륜곽이 잡히는것 같았다.

그런데 리주연부위원장은 설계를 최단기간내에 끝내라고 하지 않았는가. 오기섭의 말에도 모순이 있다. 공사가 바쁘지 않으니 천천히 잘하라고 하면서도 나라형편을 생각해서 적당히 설계하라는것은 또 무슨 소리인가. 그러면서도 공산당의 위신을 세워야 한다는건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것인가. 정말로 공산당의 위신을 세우자면 리주연의 말대로 장마철전에 끝내야 할게 아닌가.…

운상은 고무방망이로 뒤통수를 한대 얻어맞은것처럼 뗑했지만 더 물어보고싶지 않아 건성으로 인사하고 그 방을 나왔다.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의 정문을 나서는 그의 발걸음에는 맥이 없었다.

건국대업에 한몸 바치리라던 열정과 자부심은 졸지에 사그라져버리고 캄캄한 동굴속에서 동서남북도 모르고 미로를 헤매는것 같은 불안감이 온몸을 사로잡았다.

그는 누구든 붙잡고 흉금을 터놓고싶었다. 도대체 나는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하는가. 이 공사의 본질이 도대체 무엇인가.

정말 장마철전으로 공사를 끝내긴 끝내자는것인가. 정말 만년대계로 해야 할 공사가 옳긴 옳은가.… 무엄하다고 귀뺨을 맞을지언정 속시원히 묻고싶었다. 그는 리주연을 찾아 도인민위원회로 가다가 발길을 멈추었다. 그한테 가야 자기가 바라는 대답을 들을것 같지 못했다. 리주연부위원장은 이미 공사를 빨리 끝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때는 너무나 명백해서 물어볼 말이 없었다. 그럼 오기섭의 말을 해명해줄 사람은 누구인가?

그날 저녁 경상동 오기섭의 집에는 몇명의 친구들이 모여앉았다. 태반은 오기섭이 함흥에서 데리고 올라온 사람들이고 나머지는 해방후에 쏘련에서 나온 얼마우재들이였다. 아래방은 조선식으로 치장했지만 웃방은 유럽식으로 꾸려져있어 손님들은 모두 웃방 한가운데 놓인 큼직한 원탁에 둘러앉아있었다.

상우에는 산해진미가 떡 벌어지게 차려져있었다. 큰상이 다 찼는데도 오기섭의 큰딸은 음식들을 계속 들여왔다.

오기섭은 축배잔을 높이 들고 점잖게 한마디 했다.

《오늘은 국제로동계급의 위대한 수령 칼 맑스의 탄생일입니다. 맑스주의를 신봉하여 투쟁에 나섰던 우리들이 혁명이 승리한 오늘 국제프로레타리아운동에 쌓아올린 그분의 공적을 잊어서는 안될것입니다. 그래서 지난날 함께 투쟁하던 동지들과 그분을 추억하며 회포를 나누고싶어서 자리를 마련했으니 차린건 없지만 량껏 들기 바랍니다. 축배!》

《축배!》

모두들 맑스의 명복을 빌며 축배를 들었다.

평남도당에 한자리를 차지한 박도완이 생복접시에 저가락을 가져가며 한마디 했다.

《평양장안 40만인구중에 맑스의 생일을 기억하고 모여앉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정말 오기섭동지의 투철한 맑스주의정신에 탄복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오기섭은 닭의 날개죽지를 깨소금그릇에 찍으며 짐짓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그래두 한때 좌익서적을 읽은 사람들이야 오늘같은 날 감회가 깊을텐데 왜들 가만있겠소?》

《그건 천만의 말씀입니다. 조선사람중에 맑스나 엥겔스를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다구요.》

《그렇기도 하오. 그래서 백성은 따라오게 할수는 있어도 알게 할수는 없다고 하는거요. 조선이 동방의 은둔국이라는걸 증명하는 실례가 어디 그뿐이요? 자! 술이나 듭시다.》

그들은 맑스-레닌주의의 영원성을 위해서, 국제로동운동의 전세계사적승리를 위해서 연방 잔을 찧었다. 누구도 조선을 위하여 축배를 들자는 사람은 없었다. 술이 몇순배 돌아서부터는 신사표식으로 졸라맸던 넥타이를 늦춰놓고 걸쭉한 육담도 입에 올리며 껄껄거렸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지나가는 소리로 보통강개수공사를 화제에 올렸다.

《내 그런 말하는 사람에게 욕을 해주었습니다. 지금이 어느때게 그따위 류언비어를 퍼뜨리는가구요.》

《그건 류언비어가 아니라 사실이요.》

《사실이라구요? 우리 힘으로 그 공사를 한단 말입니까?》

오기섭은 주량도 세고 식성도 좋아서 여전히 시작할 때의 속도로 저가락질을 하며 대꾸했다.

《말은 그렇지만 우리 힘으로야 안되지. <쁘라우다>라는게 진리라는 소린데 거기에 꼭 진리만 싣습데? 정치란 그런거요. 토목공사라는게 말처럼 쉽소? 그래서 내 쓰딸린동지한테 엑스까와똘을 몇대 달래자구 김일성동지께 말씀드릴 생각이요. 그렇지 않으면 쏘미공동위원회때문에 서울에 나간 슈띠꼬브가 온 다음에 내가 직접 제기하던가.… 음.》

《하긴 쏘미공위가 제대로 진척돼서 조선에 후견제가 실시되면 굴착기같은거야 문제될게 없지요. 혹시 미국사람들때문에 공위가 파탄되면 북조선은 쏘련의 가맹공화국이 돼야 할겁니다. 우리 힘만으로야 건국이 어림없지요.》

《그건 옳소. 그러나 지금 민주당이다, 신민당이다 갈래가 많은 때에 공산당에서 이 공사를 맡아나서면 민심이 어디로 쏠리겠는가 생각해보오. 설사 장마철전으로 공사를 끝내지 못한다 해도 공산당이 백성들의 생활에 무관심하지 않다는 인식은 줄수 있으니까 우리는 큰 리득을 보게 된단 말이요. 이게 바로 정치요. 난 이번 일을 통해서도 김일성동지의 정치가로서의 위대성에 대해 다시한번 탄복하게 되오.》

오기섭은 진심으로 자기가 발견한 《진리》를 력설했고 좌중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중에서 박도완이 모를게 있다는듯 오기섭에게 물었다.

《이제 쏘련에 굴착기를 부탁해서 언제야 나오겠습니까?》

《빠르면 래년쯤에야 나올수 있지. 하여튼 인민들의 질통만 믿고 공사를 벌린다는건 말이 안되오. 당신두 쏘련에서 살아봤으니까 기계의 힘이 얼마나 위력한지 잘 알겠구만. 지금이야 인력으로 피라미트를 쌓던 때두 아니구 만리장성을 쌓던 때두 아니지 않소? 그러니 준비를 착실히 해놓고 기다려야지.》

밤이 깊어감에 따라 취기도 깊어졌다. 오기섭의 딸은 적산창고에서 끌어다놓은 피아노를 똥땅거리고 주정군들은 《까쮸샤》를 불러댔다.

맑스를 추억하자고 모여앉았다는 사람들이 그렇게 란장판을 벌려놓았으니 사색적이고 지성적인 맑스의 령혼이 설사 그 자리에 왔댔다 해도 진저리를 치며 가버리지 않을수 없을 지경이였다.

다음날 오기섭은 머리가 지끈거려 꿀물을 두대접이나 마시고 집에 누워있다가 오후에야 림시인민위원회청사로 나갔다.

그는 서기실에 앉아있는 안길에게 보통강개수공사와 관련하여 장군님께 직접 말씀드릴게 있으니 보고드려달라고 이야기했다. 안길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말했다.

《장군님께서는 오늘 일정이 몹시 바쁘신데 나한테 말하면 안되겠소?》

《내가 료해한 문제이니 내가 직접 말씀드리는것이 좋을것 같소. 내 방에 가있겠으니 장군님께서 시간을 내시겠다면 전화해주오.》

그리고는 자기 방으로 돌아와 대통에 가치담배를 부스러뜨려넣고 가죽회전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앉았다.

허공으로 흩어지는 담배연기를 바라보며 그는 자기가 장군님께 말씀드리려는 문제에서 모순이 없겠는가를 다시한번 따져보았다. 크게 걱정할건 없을것 같았다.

오기섭이 김운상에게 한 말이나 어제 술친구들에게 한 말은 다 그의 진심이였다. 그는 정말로 보통강개수공사를 아무런 기계수단도 없이 장마철전으로 할수 있다고는 믿지 않았던것이다. 부언하건대 그는 장군님의 뜻을 의도적으로 반대하려고 하지는 않았다는것이다. 그의 과오는 그가 자기 인민을 너무도 모르고 또 알려고 하지 않은데서부터 생긴것이였다. 그는 자기 조국, 자기 인민과 너무도 멀리, 너무도 오래 떨어져있었다. 따라서 그는 조선인민에 대해 잘 알수 없었으며 인민이 자기 힘을 자각할 때 어떤 미증유의 기적을 창조할수 있는가를 알수 없었다. 그에게 있어서 인민이란 제힘으로 행복을 쟁취할 능력이 부족하기때문에 양떼를 몰아가는 목동처럼 자기같은 정치인들이 이끌어주고 돌봐주어야 할 수동적인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사실이 그렇지 않은가. 남들이 증기기관차로 산업혁명의 시대를 펼쳐놓을 때 조선인민은 버선발에 짚신을 신고 하늘소를 타고다녔으며 무식이 부끄러운줄 모르고 노전우에 앉아 막걸리동이를 기울이며 아리랑타령을 불렀었다. 낮에는 나무그늘밑에서, 밤에는 고콜불아래서 《범이 담배 피우던 때인데…》하고 옛말이나 하면서 세월을 보내던 그 인민을 하루아침에 각성시켜 무산혁명의 한마당으로 이끌어낸다는게 말처럼 쉽겠는가. 그는 리광수의 《민족개조론》을 옳다고 생각지는 않았지만 그런 글을 쓴 필자의 심정이 결코 가볍지는 않았을것이라는것만은 리해하고싶었었다.

그러한 정치적제약성으로 하여 오기섭이라는 인간은 자기 인민에게 헌신할수 없었고 자기 수령의 사상에 끝까지 충실할수 없었던것이다.

오기섭이 장군님께서 부르신다는 련락을 받고 그이의 집무실에 들어섰을 때는 저녁무렵이였다.

장군님께서는 오기섭에게 의자를 권하시고 담배통도 밀어놓아주시였다.

《보통강개수공사와 관련해서 제기할게 있다지요?》

《그렇습니다.》

오기섭은 자리에 앉으며 사업노트를 펼쳐들었다.

《어제 공사설계를 담당하고있는 건축가를 만나 담화를 해봤는데 그 사람이 사상적으로 잘 준비되지 못한것 같습니다.》

《왜 그렇게 봅니까?》

《우선 설계를 날림식으로 해치우려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욕을 좀 해주고 한달쯤 품을 놓고 잘해야 한다고 납득시켰습니다.》

《설계를 한달씩이나 한단 말입니까? 설계가도 동의했다구요?》

《그렇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억이 막히시여 한동안은 말이 나가지 않으시였다. 이 사람은 장마철전에 공사를 끝내야 한다는 말을 어떻게 리해했는가? 이거야 공사를 파탄시키려는 의식적인 행위와 무엇이 다른가?

《그리구 쓰딸린동지에게 엑스까와똘을 몇대 요구하시지 않겠습니까? 김일성동지께서 부탁하시면 쏘련정부에서두 거절하지 못할겁니다.》

《그러니까 로동부장동무는 평양시민들의 힘만으론 공사가 어렵다는겁니까?》

《사람의 힘이 기계만이야 하겠습니까?》

오기섭의 태도는 너무나 당당했다. 자기 발언을 얼마든지 정당화할수 있다는건데 이런 때는 과연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하는가.

장군님께서는 얼마전에 함남, 함북지방을 돌아보시면서 만나시였던 로동계급의 믿음직한 모습을 다시 그려보시였다. 그이께서는 이번에 동해안의 공장, 기업소들을 현지지도하시면서 로동계급의 들끓는 건국열의를 후덥게 느끼시였으며 그들에게서 큰 힘을 얻으시였다. 특히 흥남비료공장의 로동자들은 토지를 분여받은 농민들에게 더 많은 비료를 보내주자고 결사대를 조직하여 공장을 복구하고 밤낮없이 전투를 벌리고있었다. 현장에서 로동자들과 자리를 같이하신 장군님께서는 새 조국건설에서 로동계급이 지니고있는 사명을 깊이 깨닫고 모두다 로동영웅이 되여야 한다고 뜻깊은 말씀을 해주시였다. 로동자들은 사람값에 못 들던 자기들을 제일 값있는 존재로 내세워주시는 장군님의 진정에 감격하여 2만톤의 비료를 더 증산할것을 결의해나섰다.

그이께서는 비료공장뿐아니라 본궁화학공장, 룡성기계공작소, 흥남제련소 등 여러곳을 돌아보시면서 인민의 무궁무진한 힘을 총동원하면 얼마든지 자체의 힘으로 새 나라를 건설할수 있다는 신념을 굳히시였었다.

그런데 지금 이 사람은…

장군님께서는 오기섭이 나간 뒤에도 일손을 잡지 못하시다가 송수화기를 드시였다.

《리주연부위원장과 평양시인민위원장동무를 이제 곧 불러주시오.》

이밤중으로 공사준비정형을 료해하지 않고서는 마음을 놓을수 없으시였던것이다. 일군들이 장군님의 집무실에 들어섰을 때는 밤이 깊어서였다.

《밤늦게 찾아서 미안합니다. 공사준비정형을 알고싶어서 불렀습니다.》

리주연이 먼저 일어섰다.

《그러지 않아도 저희들은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받자던 참이였습니다. 이런 큰 공사를 처음 맡아해보자니 어떻게 해야 할지 조막손으로 닭알 만지는 격입니다.》

장군님께서는 리주연의 보고를 다 들으시고나서 공사에 대중을 동원시키는 문제로부터 지휘부구성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밝혀주시였다. 장군님의 말씀을 받고서야 일군들은 자기들이 여직껏 외지밭을 헤매고있었다는것을 깨달았다.

처음에 그들은 평양시내 공장, 기업소들을 며칠간씩 문을 닫아매고 통채로 동원시키는 방법에 매달리려고 하였다. 그렇게 되면 생산도 문제이지만 직장생활을 안하고 집에서 수공업이나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겠는가 하는 문제가 골치거리로 나섰다. 그렇다고 행정구역별로 하자면 장악통제사업이 더 복잡해질것 같았다.

리주연은 자기들의 고충을 그대로 말씀드렸다.

《그렇게 하면 안됩니다. 공장은 공장대로 생산을 내밀면서 로력조직을 해야 합니다. 시인민위원회에서는 공사지휘부를 든든히 꾸리고 로력조직을 빈틈없이 해야겠습니다. 내가 래일 공사장에 나가보자고 하는데 동무들도 같이 나가봅시다.》

리주연은 환성을 터칠번 하였다. 그러나 자기들이 일을 제대로 못해서 장군님의 바쁘신 시간을 빼앗게 되였다는 죄스러움이 터져나오려는 환성을 눌러버렸다.

《장군님께서 직접 나오시여 대책을 세워주시면 저희들은 좋지만…》

《아무리 시간이 없어도 공사와 관련한 일은 미룰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래일 현지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토론해봅시다.》

《알겠습니다. 그럼 래일 아침에 장군님을 모시고 나갈 준비를 하겠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돌아가려고 일어서는 리주연을 손짓으로 멈춰세우시였다.

《김운상동무를 만나보았습니까?》

《며칠동안은 보지 못했습니다. 지금 공사설계를 수정하고있을겁니다.》

내막을 알수 없던 리주연은 제 짐작대로 말씀드리고나서야 장군님의 안색이 어두워지신것을 알아차렸다.

《김운상동무가 설계를 한달쯤 걸려야 완성하겠다고 했답니다.》

《예?》

리주연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도대체 그 사람이 제정신인가?

장군님께서는 여전히 무거우신 안색으로 말씀하시였다.

《난 그것이 운상동무의 본심이라고는 믿지 않습니다. 일종의 강요에 의한 투항이라고 할가… 하지만 난 실망했습니다. 그는 우리가 왜 이 공사를 장마철전에 끝내자고 하는지 모르기때문에 일부 사람들의 견해에 맹종맹동한것입니다. 건국의 앞장에 서야 할 지식인인데…》

리주연은 장군님앞에서 자기를 뉘우쳤다.

《제 책임이 큽니다. 전 그 동무에게 설계를 맡겨놓고는 아직 한번도 찾아가보지 않았댔습니다.》

《혼자서 설계를 안고 씨름하자니 힘들것입니다. 운상동무에게 래일 내가 공사장에 같이 나가보잔다고 전해주시오. 주연동무가 래일 아침 여기로 올 때 데리고 오시오. 그 동무 혼자 거기까지 걸어가게 할수야 없지 않습니까?》

《알았습니다.》




15

 

다음날 김일성동지께서는 리주연이네들과 약속한 시간이 되기도 전에 현관앞에 나와계시였다. 봄날치고는 류달리 맑고 따스한 아침이였다. 여름이 시작된다는 립하를 배웅한지 이틀밖에 안되는데 아침부터 해가 쟁글쟁글 내리쪼이며 대지를 달구었다. 거리로 오가는 사람들의 차림새도 며칠전과는 헨둥하게 달라졌다.

리주연네 일행은 장군님께서 나와계시는것을 보고 황황히 달려왔다.

장군님께서는 그들을 안심시켜주시며 마치 변명이라도 하시는듯 말씀하시였다.

《동무들이 늦은게 아니라 내가 먼저 나왔습니다. 공사장에 나갈 생각을 하니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구만.》

그것은 사실이였다. 장군님께서는 오늘 아침에 계획하시였던 일을 마무리하지 못하시였다. 래일 열리는 북조선민주녀성동맹 제1차대표자회에 참가할 녀맹일군들앞에서 하실 연설문의 초안을 잡아보시려고 책상에 앉으시였댔는데 자꾸만 공사장이 얼른거려 도무지 글을 쓰실수 없었던것이다.

장군님께서는 리주연과 시인민위원장의 얼굴을 번갈아보시며 의아스러운 표정을 지으시였다.

《그런데 김운상동무는 안 왔습니까?》

리주연이 좀 당황한 기색으로 말씀드렸다.

《어제 밤에 제가 그 동무의 하숙집에까지 갔댔습니다. 장군님말씀을 전달하고 오늘 함께 가자고 했는데 좀전에 들려보니 새벽에 떠났다고 합니다.》

장군님께서는 그럴수 있다는듯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그가 이 자리에 싱글벙글 웃으며 나타난것이 아니라 혼자서 걸어갔다는 사실에서 그의 모대김이 느껴지고 그래서 더 정이 가고 믿음이 가시였다.

《우리도 떠나봅시다.》

장군님께서는 리주연과 함께 승용차에 오르시였다.

두대의 승용차는 종로를 거쳐 만수대를 넘어 서평양쪽으로 달리였다. 서평양조차장다리를 넘어선 승용차는 서포천과 형제산강이 합수되는 봉수산서북쪽기슭에 멎어섰다.

차에서 내리신 장군님께서는 한손을 허리에 얹으시고 공사장과 주변일대를 부감하시였다. 멀리 제산리와 형산리벌판에는 흰옷 입은 농민들이 점점이 널려있었다. 씨붙임이 한창인 벌판에서 아지랑이가 피여오르며 눈이 사물거리게 했다. 이 나라 어디에 가나 볼수 있는 봄풍경이였다.

봄이여! 너는 허구한 세월 해마다 겨울을 이겨내고 이 땅에 찾아오군 했었다. 하지만 이 봄날처럼 사람들의 가슴에 그렇듯 크나큰 희망과 행복을 안겨준적 있었더냐! 봄이여! 우리 이제 이 땅우에 위대한 새시대를 창조하려 하나니. 력사는 세세년년 해방조선의 첫봄을 기억하게 될것이다!

아지랑이 가물거리는 벌판을 바라보시던 장군님께서는 문득 오성재농민의 땅에는 아직 씨앗을 묻지 못했을것이라는데 생각이 미치시였다. 그 순간에 그이의 시야에서는 아지랑이도 사라져버렸다.

장군님께서는 공사지휘부쪽으로 천천히 발길을 옮기시였다. 장군님의 승용차를 알아본 장혁수가 먼발치에서부터 구을듯 달려왔다.

《장군님!》

장군님께서는 장혁수와 인사를 나누신 다음 주변을 두루 살피시며 그동안 해놓은 일들을 물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이미전에 일군들로부터 장혁수의 가족을 봉수산 양지바른 곳에 잘 안장해주었다는 보고를 받으시였다. 그러나 본인의 마음속상처를 건드릴것 같아 우정 내색하지 않으시고 장혁수에게도 그런 말을 할 틈을 주지 않으시였다.

《오성재농민이 토성랑을 떴다지요?》

그렇지 않아도 장혁수는 오성재가 토성랑을 떠난데는 제게도 책임이 있다고 자책하고있었다. 오늘같은 날이 이렇게 빨리 올줄 알았으면, 그래서 자기를 찾아왔던 오성재에게 속시원한 대답을 주었더라면 그가 제땅을 버리는 망녕된짓은 안했을게 아닌가.

장군님께서는 대답을 못하고있는 장혁수의 등을 가볍게 두드려주시였다.

《너무 걱정마오. 이제 공사를 한다는 소문이 시내에 퍼지면 그가 제발로 찾아올거요. 그런데 그 땅엔 아직 봄씨앗을 뿌리지 못했겠구만.》

장혁수는 그제서야 제 몫을 발견하고 얼굴을 들었다.

《그건 제가 한동네 농민들에게 말해서 땅을 묵이지 않게 하겠습니다.》

《그래주면 좋겠소.》

장군님께서는 미소를 지으시며 다시 주변을 살피시였다.

《여기에 설계가동무가 나와있겠는데…》

장혁수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한곳을 손으로 가리켰다.

《저기 있습니다.》

《가서 데려오시오.》

장혁수가 데리러 가서야 운상은 고개를 숙이고 장군님앞에 나타났다.

《김운상동무! 반갑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진정으로 반가우시여 그의 손을 힘있게 잡아주시였다.

운상은 뒤늦게야 몸가짐을 바로하며 장군님께 인사를 올렸다.

《장군님!》

《이미전부터 한번 만나보고싶었습니다.》

《장군님, 용서하십시오. 제가 장군님의 뜻을 받들지 못하고…》

《그 이야긴 그만합시다.》

장군님께서는 운상의 사죄의 말을 막아버리시고 대신 공사에 대해 물으시였다.

《설계자가 한번 말해보시오. 수정한 설계대로 한다면 공사규모가 얼마쯤 될것 같습니까?》

《아직 설계를 완성하지 못해서 구체적으로는…》

《일없소. 대략적으로만 말해보시오.》

운상은 정신을 가다듬으며 말씀올렸다.

《장군님께서 강폭을 45°경사각으로 넓히라고 하신 말씀대로 설계를 수정하면 강의 너비는 50m, 깊이는 7m로 파야 하는데 그러면 총토량이 대략 60만㎥으로 추산됩니다. 그리고 3개의 수문과 6천㎡에 달하는 호안석축공사를 해야 합니다. 또한 세개의 뚝을 새로 쌓아야 하는데 하나는 서포천과 형제산강이 합수되는 곳에서 웃쪽으로 뚝을 쌓아야 하고 또 하나는 서포천의 량쪽에 쌓아야 하며 형제산강의 물길을 새 물길로 꺾어들리는 곳에도 쌓아야 합니다. 뚝의 전체 연장길이는 시오리정도 될겁니다. 이 숱한 일감을 장마철전에 처리하자면 연 백만명의 로력이 동원되여 일인당 하루 0. 7㎥이상의 토량을 제껴야 합니다.》

김운상은 열두번도 더 타산해본 공사량을 단숨에 말씀드렸다.

장군님께서는 장혁수에게 물으시였다.

《왜정때는 하루 운토량이 평균 얼마였습니까?》

《겨우 0. 3㎥이였습니다.》

《그러니 두배가 넘는셈이구만.》

장군님께서는 한동안 생각에 잠기시였다가 일군들쪽으로 돌아서시며 확신성있게 말씀하시였다.

《할수 있습니다. 이달중에 공사를 시작하면 장마가 시작되는 7월말전으로 얼마든지 할수 있습니다. 서평양과 보통강일대주민들을 큰물의 피해로부터 보호하자면 장마전에 무조건 끝내야 합니다.》

《장군님!》

운상은 어떤 충동에 떠밀리우듯 한걸음 나섰다. 설계가로서 솔직히 말씀드려야겠다는 생각에 흥분을 걷잡지 못하고 나섰으나 장군님의 시선이 자기 몸에 와닿는 순간 그는 입이 얼어붙고말았다. 도대체 자기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한단 말인가, 감히…

《어서 말하시오.》

장군님께서 용기를 보태주시였으나 김운상은 그냥 머뭇거리기만 했다.

《혹시 이 공사를 장마철전으로 끝낼수 없다고 생각하는게 아닙니까?》

장군님께서 정통을 찌르시는 바람에 운상은 정신을 차렸다.

《그렇습니다. 방금 제가 말씀드린것은 종이장우의 계산에 불과한것입니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운상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기적이 일어날것입니다. 난 그렇게 믿고싶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을 향해 돌아서시며 이 공사는 단순한 자연개조가 아니라 민주건설의 첫 출발로 되는것만큼 공사를 통해서 사람들의 건국열의가 최대한 발현되도록 하여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시였다.

《이 공사는 인민위원회가 주동이 되여 진행하는것만큼 공사지휘부를 구성할 때에도 각 정당, 사회단체들을 다 망라시키는것이 좋습니다. 또한 공사과정에 민주력량의 단결을 강화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민주건설에 대한 풍부한 경험을 체득하게 함으로써 새 조국건설에서 승리의 신심을 가지도록 하여야 합니다. 이 공사를 완공하면 앞으로 보통강물줄기를 대동강과 련결시키는 운하를 파서 수상운수로를 개척할수도 있으며 보통강일대를 풍치좋고 아름다운 유원지로 만들수도 있습니다.》

일군들은 한손으로 허공을 긋기도 하시고 주먹을 힘있게 흔들어보이시며 이 땅의 래일을 설계하시는 장군님의 열정적인 모습앞에 넋을 잃은듯싶었다. 오랜 세월 세상의 버림을 받아오던 토성랑에 인민의 유원지가 건설된다니 넋을 잃지 않고서야 그 황홀함을 어떻게 그려볼수 있겠는가.

장군님께서는 많은 시간을 바치시여 공사장의 여러곳을 돌아보시면서 있을수 있는 애로와 난관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다.

《일제놈들이 근 10년동안에도 완성하지 못한 공사인것만큼 단 두달동안에 끝내려고 한다면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것이고 반동분자들의 책동도 있을것입니다. 때문에 계급적각성을 높이고 시민들속에 공사의 중요성을 널리 선전하여 그들을 사상적으로 동원시키는 한편 사전에 조직사업을 잘하여야 합니다.》

일군들은 모두가 심봉사가 눈을 뜬 기분이였다. 앞이 환하니 신심이 생기고 용기가 백배해졌다.

공사장을 떠나시기 전에 장군님께서는 김운상을 따로 부르시였다.

그이께서는 운상의 팔을 끼시고 산기슭을 따라 거니시였다. 발밑에서는 마른 락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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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발밑에서는 마른 락엽이 바삭바삭 밟히였다.
《난 조국에 개선해서 운상동무와 같은 건축가가 있다는 말을 듣고 기뻤습니다. 그리고 동무가 내 고향 만경대를 찾아가보고 새집을 설계한다는 말을 들었을 땐 정말이지 인간적으로 고마웠습니다. 한번 만나면 꼭 인사를 하고싶었습니다.》
그이의 말씀 한마디한마디는 운상의 가슴을 불로 지지는듯싶었다. 그는 달아오르는 흥분을 묵새길수 없어 마음속의 고충을 한꺼번에 털어놓았다.
《장군님, 전 오늘까지 헛살아왔습니다. 해방전에는 나라가 없는탓에 현대건축학을 배우고도 제 할 일을 못 찾았고 해방후에는 기중기같은 건설기계 하나 없으니 현대적인 건축설계가 소용없다고 한탄하면서 제 기분내키는대로 무의미하게 살아왔습니다. 이번에 장군님께서 저를 믿구 큰일을 맡겨주시였는데도 제정신을 못 가지고 살아온탓에 그 뜻을 제대로 새기지 못하구 장군님을 실망시켰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량심의 가책에 시달리는 그를 믿음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시다가 오던 길로 돌아서시였다.
《알았으면 됐습니다. 난 동무가 농촌주택들을 기와집으로 개량할 꿈을 안고있다는 말을 듣고 나와 뜻이 같은 동지를 알게 되여 기뻤습니다. 대대로 못살던 우리 인민들을 기와집에서 살게 해주겠다니 난 평생 동무를 업고다니고싶습니다. 운상동무의 고향은 강남이라지요?》
《예.》
《부모님들은 무슨 일을 하십니까?》
《벽지도리에서 남새농사를 짓습니다.》
《그것 보시오. 운상동무도 농민의 아들인데 달리될수 있겠습니까? 물론 우리에게는 아직 부족되는게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아빠트를 하나 짓자고 해도 기중기도 없고 강철도 없고 세멘트도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모든것을 제힘으로 만들어내여 이 땅우에 인민이 주인된 나라를 세울것입니다. 그러니 운상동무, 마음껏 설계하시오. 우리 인민정권은 동무의 리상을 반드시 실현시켜줄것입니다.》
리주연이나 리병설이 초조한 마음으로 승용차곁에서 서성거리고있었지만 장군님께서는 좀처럼 떠나실념을 하지 않으시였다. 헤여지고싶지 않은 사람과는 화제거리가 동나지 않는 법이다. 장군님께서는 운상에게 생활의 사소한 문제들까지 세세히 물으시였다. 형제는 몇인가, 하숙생활이 불편하지 않는가, 왜 아직 장가를 안 갔는가, 봐둔 처녀는 있는가…
기다리다못해 리병설이 다가오는것을 보고서야 그이께서는 시계를 들여다보시며 아쉬운 표정을 지으시였다.
오늘 공사장을 돌아보시면서 그이께서는 평양시인민위원회 주최로 각 정당, 사회단체련합회의를 소집하며 시당에서는 이 문제를 가지고 확대회의를 해야겠다고 계획하시였던것이다. 그러자면 이제 들어가서 해당 기관 일군들과 련합회의를 성과적으로 진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토의사업을 하셔야 했다.
장군님께서는 차에 오르시기 전에 운상의 손을 다시 꼭 잡아주시였다.
《이제 공사를 하느라면 건국의 출발선에서 조선의 건축가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잘 알게 될겁니다. 운상동무, 정말 할 일이 많습니다. 난 앞으로도 큰 집을 지을 일이 생기면 동무부터 찾겠습니다.》
《장군님, 저같은 놈을 그렇게까지 믿어주시니…》
운상은 끝내 고개를 떨구었다. 그는 인간으로서, 건축가로서 세상에 새로 태여나는 기분이였다.
장군님께서 떠나가신 뒤 운상은 공사장에서 하루해를 보냈다. 그는 새로운 안목으로 공사현장을 오르내리며 물흐름량과 속도를 계산하고 강바닥의 토질을 분석했다. 원래는 설계만 끝내고 공사장에서 손을 떼려댔는데 지금은 생각이 달라진것이다. 그는 공사가 끝날 때까지 여기에 남아있으리라 결심했었다. 그만큼 그가 장군님으로부터 받아안은 충격은 강렬한것이였다. 그래서인지 해질녘까지 바지가랭이를 걷어올리고 감탕판을 걸어다녔는데도 힘들지 않았다.
저녁무렵에야 공사장을 떠난 그는 가슴속에 그대로 남아있는 흥분과 환희를 누구에게든 터쳐놓지 않고는 견딜수 없었다. 그런데 저녁때가 다 되였으니 건축가친구들을 만나자면 래일 아침까지 기다려야 했다.
서평양조차장다리를 건너 시내로 들어오던 운상은 제1인민병원이 눈에 뜨이자 태호생각이 났다. 그와 동시에 지금껏 잊고있었던 수영이라는 처녀의사의 얼굴도 떠올랐다. 운상은 오늘에야 비로소 처녀를 만나야 할 리유가 명백해진듯싶었다. 그전에는 다만 마음씨 착한 처녀를 오해하고 모욕한데 대해서 사죄해야 한다는 리유밖에 없었다. 그때 태호의 말대로 처녀를 찾아갔더라면 그럭저럭 자기 인격은 지킬수 있었을것이다. 그런데 자기가 실수한것때문에(그것은 분명 실수였다.) 처녀를 우정 찾아가 용서를 빈다는것은 그의 성미에 맞지도 않았고 어딘가 인위적인데가 있는것처럼 느껴졌었다.
그래서 선뜻 찾아가지 못했고 그후에는 일이 바빠 잊고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처녀에게 진심으로 할 말이 생겼다. 그는 오늘 조선민족이 태양처럼 우러르는 김일성장군님을 직접 만나뵈왔고 인민의 건축가가 되자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가르치심도 받아안았다.
말하자면 장군님께서 삶의 좌표를 새롭게 정해주시였다. 사실 운상은 그때 자기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처녀를 훈시했던것이다. 운상은 처녀에게 이걸 말해야 했다. 그래야 솔직한 사죄가 될수 있었다.
저녁시간인데도 치료실에는 환자들이 있었다. 빠끔히 열린 문틈으로 들여다보니 예전처럼 태호는 없고 처녀의사 혼자서 환자치료를 하고있었다.
운상은 복도에서 서성거리며 환자들이 뜸해지기를 기다렸다. 그의 인내력을 시험하려는듯 환자들은 끊기지 않았다. 일단 치료실에 들어간 환자는 병을 다 고쳐가지고야 내보내는 모양인지 좀처럼 나올줄 몰랐다. 그렇게 기다리는게 초조하기는 해도 지루하지는 않았다. 성미 급한 운상으로서는 이상한 일이였다. 운상이자신도 그게 이상해서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내가 지금 왜 처녀를 만나려고 하는가? 처녀를 오해한데 대해 용서를 빌자는거지? 그게 단가?)
그는 번거로운 생각을 날려버리듯 숨을 크게 내쉬였다.
《안녕히 가세요.》 하는 처녀의사의 상냥한 목소리와 함께 마지막환자가 문을 닫고 나가자 치료실에는 고요가 깃들었다.
《다음환자 들어오세요!》
운상은 대담하게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십니까?》
시종 따스한 빛이 흐르던 처녀의 두눈은 서서히 차거운 빛으로 바뀌여졌다. 상대는 환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처녀는 마스크를 벗었다. 병력서들을 간종그려놓고 책상우에 널려있던것들을 빼람에 넣었다. 애당초 운상의 존재는 안중에도 없는듯 했다. 운상으로서는 응당한 대접이라고 생각할수밖에 없었다. 그는 제 목소리같지 않은 억양으로 서두를 뗐다.
《난 수영씨에게 사죄하러 왔습니다.》
그래도 처녀는 대꾸를 안했다.
《수영씨가 용서해주고말고 하는건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죄하지 않고는 내자신이 견딜수가 없어서 그래서 왔습니다. 난 오늘 김일성장군님을 만나뵈웠습니다.》
처녀는 흠칫하며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운상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인간사랑의 장중한 음악서사시를 온몸으로 들었다.
운상은 수영에게 장군님께서 올해장마철전으로 보통강개수공사를 끝낼데 대해서와 자기에게 공사설계를 맡겨주신데 대해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
《그런데 난 장군님의 뜻을 제대로 받들지 못해서 그분을 노엽혔댔습니다. 난 오늘에야 깨달았습니다. 인민을 사랑할줄 모르는 사람은 장군님을 노엽힌다는걸 알았단 말입니다. 난 부끄러웠습니다. 보통강개수공사를 건국의 맨 앞자리에 놓으신 장군님의 뜻을 미처 몰랐던게 부끄러웠구 그 주제에 동무를 심장이 차겁다고 큰소리쳤던게 부끄러웠습니다. 난 장군님의 고향을 잘 꾸리는것으로부터 건국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장군님께서는 보통강을 다스리는 일부터 해야 한다고 하시였으니… 그래서 왔습니다. 수영선생에게 우리 장군님이 어떤분이신가를 알려주고싶었고 우리가 어떤 세상에서 살게 되는가를 말해주고싶었습니다.》
운상은 호흡이 가빠나서 더 말을 이을수가 없었다. 달리기경주라도 한듯 전에없이 숨이 차오르는것 또한 이상한 일이였다.
수영은 운상에게 의자를 권했다.
《앉으세요.》
예상치 않았던 호의였으나 운상은 앉고싶지 않았다.
《난 이 공사에 나자신을 깡그리 바치겠습니다. 그래서 장군님의 사랑을 받는 건축가가 되겠습니다. 그때 가면 수영선생에게 무례했던것두 용서가 되겠지요.》
《아니예요. 그땐 제가… 하여튼 앉아서 말씀하세요.》
《난 다 말했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운상은 누가 쫓아내기라도 한듯 얼른 그 방에서 나왔다. 말하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숨이 더 가빠나서 견딜수 없었던것이다. 밖에 나와서야 그는 이마의 땀을 손바닥으로 훔치며 후- 하고 긴숨을 내불었다.
(젠장, 왜 그렇게 숨이 찼을가? 그 처녀가 앉으라고 권하는데도 바보처럼 뛰쳐나오다니… 허참.)
한편 수영은 운상이 나간 뒤에도 오래동안 진정을 못했다. 설계가청년이 폭풍처럼 들이닥쳐 자기 마음속에 일쿼놓은 풍랑때문에 진정할수가 없었다. 수영은 보통강개수공사가 어떤 의의를 가지는가는 잘 몰랐다. 서울에서 살다가 평양에 들어온지 몇달밖에 안되였으니 잘 알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공사가 보통강변 특히는 토성랑사람들에게 유리하다는것만은 알고있었다. 그리고 세상일에 문외한이라 해도 지금과 같은 나라형편에서 그런 자연개조공사가 어렵다는것쯤은 알고있었다. 그런데 장군님께서 그 공사를 그토록 중시하신단 말인가?
문득 오성재농민때문에 토성랑에 처음 다녀온 날 몸에 불결한 냄새가 묻어온것 같아 옷도 갈아입고 목욕도 하며 부산을 피우던 생각이 났다. 자기는 고작 제 몸에서 토성랑냄새를 없애자고 찬물을 마다않고 밤늦게까지 부산스러웠는데 장군님께서는 백성들전체를 걱정하시여 토성랑을 아예 없애려 하신다니 방금 김운상 그 사람의 말처럼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인민을 제일 사랑하시는게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여기가 정말로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란 말이 현실화되여가는 세상이란 말인가?…
수영이로서는 눈앞의 현실을 한마디로 규정할 자신이 없었다.
하기야 자기같은 처녀가 세상일을 어떻게 다 알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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