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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소설 <새나라> 4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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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4,202회 작성일 15-11-26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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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새 통수로의 면모가 뚜렷해지고 제방뚝이 하루하루 높아가자 처음엔 고개를 기웃거리던 사람들도 열성적으로 작업에 동원되였다.

공사지휘부에서는 6월 15일까지 계획된 1단계공사를 마감짓기 위해 조직사업을 짜고들었다. 여기서 중요한것은 50m너비로 옛 강을 막는것과 일단 새 통수로로 물길을 돌린 다음에는 배수로작업을 할수 없는 조건에서 바닥파기작업을 빨리 다그치는것이였다.

장혁수는 자기가 작업조직을 해놓고도 어리둥절해질 때가 많았다.

아침에 작업량을 정해주면서 하루일감치고는 뻐근할거라고 생각했는데 점심때도 되기 전에 벌써 다했다면서 작업과제를 또 달라고 하는 단위가 한둘이 아니였던것이다. 그럴 때마다 그는 기쁨보다도 놀라움이 앞서군 했다. 어떻게 날마다 이런 기적이 생길수 있단 말인가. 공사초기에는 일인당 하루 평균실적이 0. 3㎥이였는데 한달이 지난 지금은 2. 5㎥이나 3㎥까지 해제끼군 한다.

그래서 요즘엔 정신을 차릴수 없었다. 온 공사장이 자기를 필요로 하는것 같아 한시도 가만 앉아있을수 없었다.

그러다가도 하루일을 끝내고 지친 몸으로 자리에 누워서든가 혹은 공사장을 돌아보면서 기림리구간을 지날 때면 애기를 눕혀놓고 혼자서 일하던 녀인의 모습이 기다렸던듯 머리속에 떠오르군 했다. 애기의 이름이 성학이라는것도 그리고 그가 혼자 사는 녀자라던 리주연부위원장의 말도 잊혀지지 않았다. 제일 잊혀지지 않는것은 공사장에 나오시였던 장군님께서 정혜라는 녀성을 어떻게 생각하는가고, 지난날에 포로되여있지 말고 생활을 사랑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혈육의 정으로 말씀하시던 그 순간들이였다. 자기같은 사람도 인간답게 살라고 장군님께서 친부모처럼, 친형님처럼 그렇게 마음써주실줄이야…

이제 와서 행복은 자기의 피할수 없는 운명인듯싶었다. 장혁수는 기회를 봐서 그 녀자를 정식으로 만나봐야겠다고 생각을 굳히였다. 그 녀자가 맨주먹밖에 없는 자기를 받아주겠는지는 모르겠지만 길고 짧은거야 대봐야 할게 아닌가. 그런데 그 녀자에게 어떻게 말을 붙여야겠는지 암만 궁리해봐도 신통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 녀자의 립장을 모르고 무작정 찾아가서 혼사말을 꺼낼수는 없었던것이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이런 때는 누가 좀 나서주었으면 좋으련만 누구에게 이런걸 부탁해야 할지 마땅한 적임자가 떠오르지 않았다. 리주연부위원장에게 부탁해볼가 했다가 인츰 도리머리를 저었다. 그런 시시한 일을 큰 간부들에게 들고다닌다면 도덕도 모르는 덜돼먹은 놈이라고 비난이나 받을것 같았다. 그러니 공사가 끝날 때까지는 이 문제를 덮어두어야 하는가…

그가 벙어리 랭가슴 앓듯 혼자서 속을 썩이던 어느날 저녁무렵이였다. 공사지휘부에 올라가 작업실적을 보고하고 현장사무실에 돌아온 그는 제 눈을 의심하였다. 김정숙동지께서 현장사무실마당에 서계시였던것이다.

《주인이 이제야 오는군요.》

《녀사님께서 어떻게?…》

장혁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인자하신 미소를 지으시고 뒤에 서있는 녀인에게 말을 건네시였다.

《아니, 왜들 서로 모르는척 해요? 정혜동무! 어서 와요.》

그때에야 장혁수는 큼직한 보퉁이를 안고 저쯤에 서있던 녀인을 알아보았다. 성학이 엄마!…

장혁수는 당황함을 숨기지 못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빠진 표정을 하고있는 장혁수의 심중을 눈치채지 못하신듯 활달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이번에 시녀맹원들이 현장합숙에 침구류들을 지원했는데 시공책임자동무에게도 하나 차례졌어요. 이건 정혜동무가 만든건데 꼭 시공책임자동무한테 주고싶다고 해서 이렇게 함께 왔답니다. 어서 고맙다고 인사나 하세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정혜가 들고있는 큼직한 보퉁이를 가리켜보이시였다. 그러나 장혁수에게는 고맙다는 인사를 차릴만 한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우릴 이렇게 세워만 두겠어요? 어서 방구경을 시켜주세요.》

어머님께서 말씀하셔서야 장혁수는 흩어진 정신을 수습하며 현장사무실로 향했다. 그러는걸 어머님께서 멈춰세우시였다.

《우리가 사무실에 가선 뭘하겠어요? 동무가 침식한다는 방에 가보자요.》

장혁수는 난처한 기색을 지었다. 누구도 관심해준적 없는 거처지였고 그래서 정돈조차 제대로 해놓지 않은 살림방을 어떻게 보여드린단 말인가.

김정숙동지께서는 허둥거리는 혁수에게 따뜻한 미소를 보내시였다.

《일없어요. 우린 손님으로 온게 아니예요.》

어머님께서는 장혁수의 사는 형편을 구경이나 하자고 오신것이 아니라 자식의 세간살이를 걱정하는 친어머니의 심정을 안고 찾아오신것이다. 세간난 자식의 집에 손님으로 가는 어머니가 있던가. 따라서 장혁수에게는 김정숙동지가 세상에서 제일 귀한 손님이시였지만 어머님께서는 자신을 손님으로 생각지 않으시였던것이다. 그 차이를 어떻게 말로 설명할수 있으랴.

장혁수는 사무실옆에 꾸려놓은 살림방으로 김정숙동지를 안내할수밖에 없었다. 방안에는 홀아비의 궁상스런 생활을 보여주는 직관물들이 여기저기 되는대로 널려있었다. 구석에 처박아놓은 빨래감이며 대강 뭉그려놓은 잠자리며 천정우에서 너울거리는 거미줄이며…

김정숙동지께서는 아픈 마음으로 방안을 둘러보시며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였다. 장혁수가 지난날의 함바생활습성을 버리지 못하고있는것을 비판하고싶으시였지만 차마 말이 나가지 않으시였다.

지금 그에게는 무절제한 생활에 대한 비판보다 따뜻한 보금자리를 마련해주는것이 더 필요하지 않겠는가. 장혁수라고 왜 이렇게만 살고싶겠는가.

김정숙동지께서는 방청소도 해주고 그래서 이 방안에 온기를 채워주지 않고는 떠날수 없으시였다. 그이께서는 멀찌감치에서 서성거리는 정혜에게 우정 큰소리로 말씀하시였다.

《정혜동무, 우리 왔던김에 청소랑 빨래랑 해주고 가는게 어때요? 시공책임자동무가 일이 바빠서 방도 제대로 못 거두었군요.》

바빠맞은 장혁수는 얼른 김정숙동지를 막아나섰다.

《이러지 마십시오. 제가 하겠습니다.》

그러나 어머님께서는 벌써 저고리소매를 걷어올리시고 방안에 들어가 빨래감들을 주어드시였다.

《같이 하자요. 혁수동문 천정에 거미줄부터 털어내세요. 난 강에 나가서 빨래를 해오겠어요.》

그때에야 정혜는 보퉁이를 내려놓고 어머님께 손을 내밀었다.

《빨래는 제가 하겠습니다.》

아마 장혁수와 단둘이서 방청소를 하기가 옹색했던 모양이였다. 어머님께서는 정혜의 심정이 리해되시여 순순히 옷가지들을 넘겨주시였다.

《그럼 수고해줘요.》

방청소를 하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어머님께서는 장혁수의 지난 생활의 흔적들을 털어내시듯 노전밑에 비벼끈 담배꽁초부터 시작하여 방안의 구석구석을 쓸고 닦고 하시였다. 큼직한 궤짝우에 정혜가 가져온 포단을 얹어놓고 바람벽에 못을 박아 옷가지들을 걸어놓으니 그래도 방안이 훨씬 깨끗해진것 같았다. 저 궤짝우에 이불보까지 산뜻하게 쳐놓으면 한결 더 아늑해질것이다.

어머님께서는 정혜에게 이불보를 하나 떠서 드리우라고 말해줄가 하다가 생각을 고쳐하시였다. 제살림이라고 생각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제스스로 해놓을게 아닌가.

청소를 끝내신 어머님께서는 당장 무엇을 더 해줄게 없을가 하고 방안을 두루 살피시며 온화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정혜동문 고생을 많이 한 녀자예요. 결혼해서 반년도 못살고 남편이 징병에 끌려갔는데 반년만에 사망통지서가 왔다더군요. 장동무생각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난 두사람이 새가정을 뭇고 행복하게 살면 더 바랄게 없겠어요.》

장혁수는 꿀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못했다. 자꾸 울고만싶어지는데 무슨 말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날은 이미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정혜는 강가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자리에서 일어서시였다.

《난 먼저 가겠어요. 정혜동무를 집에까지 꼭 데려다주세요.》

《녀사님!》

어머님께서는 조차장다리까지 따라오는 장혁수를 겨우 돌려보내시고 저택으로 향하시였다. 장군님께서 바라시던대로 그들 두사람을 마주세웠으니 발걸음은 한결 가벼우시였다.

며칠전 장군님께서 장혁수와 정혜에 대하여 이야기하신 다음날부터 어머님께서는 줄창 기림리 녀맹단체에 가서 일하시였다. 그 과정에 정혜와 친숙해지고 쉴참이면 그 녀성의 과거사도 들어주시였다. 들을수록 눈물겹고 그래서 더더욱 그의 앞날에 아름가득 행복을 안겨주고싶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정혜에게 장혁수에 대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꺼내시면서 자신의 감정을 터놓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장혁수동무가 하루빨리 새가정을 꾸리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고계신답니다. 난 정혜동무두 혁수동무를 남처럼 생각하지는 않을거라고 봐요. 그렇지요?》

그것은 사실이였다. 정혜에게는 그날 동생이 못다한 일을 말없이 함께 해주던 현장책임자가 고마왔었다. 그런데 명덕이가 사실여부를 알지도 못하고 망동을 부린것으로 해서 일이 복잡하게 번져지는통에 현장책임자를 볼 낯이 없게 되였다. 더구나 그 일로 해서 현장책임자가 철직된다는 말까지 돌아갈 때 정혜는 그 사람이 자기 형제들때문에 남의 말밥에 오르는것 같아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을 안고 살아왔었다. 그때부터는 장혁수가 생판 남일수 없었다. 녀자의 마음이란 그런것이다. 정혜는 고개를 다소곳하고 자기 생각을 파헤치듯 나무꼬챙이로 땅을 허비며 수집게 말했다.

《저… 그 사람은 장군님께서두 알고계시는 큰사람인데 저같은게… 그리구… 저한텐 아이가 있지 않습니까?》

그때 어머님께서는 노여운 어조로 정혜의 구김살 많은 생활태도를 다림질해주시였다.

《정혜동문 잘못 생각하고있어요. 장군님께서는 정혜동무에 대해서도 알고계신답니다. 그리구 혁수동무는 보통강물란리때 갓난아이를 잃은 사람이예요. 그런 사람이 정혜동무의 아이를 사랑하지 않을것 같아요? 그건 남자들을 욕되게 하는 생각이예요. 정혜동무! 어머니된 긍지를 가지세요.》

오늘 정혜는 제손으로 꾸민 포단을 가지고 공사장에 나타났다. 시녀맹에서 합숙침구용포단을 지원하자고 녀맹원들에게 호소했는데 정혜가 만들어온것은 다른것들보다 훨씬 크고 포근해보였다.

《아유… 목화솜만 넣었군요.》

《그 포단이 누구에게 차례지겠는지 복받았다.》

《꼭 첫날이부자리같구만.》

녀인네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하는통에 정혜는 어쩔바를 몰라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정혜의 마음을 읽으시며 미소를 지으시였다. 제손으로 성의껏 마련한 지원품으로 자기의 대답을 대신한 그의 소박하면서도 결단성있는 태도가 마음에 드시였던것이다.

《그렇게 품들여 만들어왔으면 제가 직접 가져다주어야지요. 그럼 일이 끝난 다음에 나랑 함께 가요.》

정혜는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히면서도 알릴듯말듯 고개를 끄덕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지금쯤 호젓한 들길을 나란히 걷고있을 두사람을 그려보시며 걸음을 재촉하시였다.

김정숙동지를 바래우고 돌아온 장혁수는 사무실마당에 선뜻 들어서지 못하고 주춤거렸다. 마당가에서 빨래를 널고있는 녀성의 자태를 알아보았던것이다. 마음같아서는 한달음에 그 녀자곁으로 다가가고싶었다. 더구나 장군님과 김정숙녀사께서 자기의 일신상문제를 걱정하고계신다니 이제 와서 행복은 자기의 욕심이기 전에 어쩔수없는 의무로 돼버린것이다.

혁수는 자기의 그 생각에 놀랐다. 행복이 어떻게 의무로 된단 말인가?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였다. 생활은 자기로 하여금 행복하게만 살것을 요구하고있지 않는가. 그렇기는 해도 자기같은 헌털뱅이는 그 녀자와 짝이 맞을것 같지 않았다. 자기에게는 그 녀자를 행복하게 해줄만 한것이 아무것도 없기때문이였다. 집도 없고 가장집물도 없었다. 당장 자수성가할 방도도 없고 가장의 구실을 할만 한 자신도 없었다.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아무것도 없을수 있을가? 아니다! 그는 아직 많은것을 모르고있었다. 자기같은 사람들의 행복을 담보해주는 인민정권이 있다는것을, 따라서 래일에 대한 희망이 있다는것을, 그것이면 인간의 행복에 필요한것은 다 가지고있는셈이라는것을 의식하지 못할뿐이였다.

어쨌든 혁수는 스스로의 자격지심때문에 그 녀자에게 다가서기를 주저하면서 지금은 오직 공사에 대해서만 생각해야 한다고 자신을 납득시키려고 애썼다.

날은 이미 완전히 어두워졌다. 빨래를 다 널어놓고 잠간 서성거리던 정혜는 혁수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기 무엇한지 이쪽으로 총총히 걸어왔다. 아마 그대로 돌아가려는 모양이였다. 장혁수는 할수없이 인기척을 내며 천천히 마당으로 들어섰다. 사무실 창문에서 흘러나오는 장방형의 불빛이 마당 한가운데 마주선 두사람을 국부조명처럼 비쳐주었다. 이런 때는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그들은 배워두지 못했었다.

녀자쪽에서 종시 견디지 못하고 침묵을 깨뜨렸다.

《저… 전 그만 가보겠어요.》

정혜가 발을 내짚을 때에야 장혁수의 입이 열렸다.

《우리… 공사를 끝내고 만나기요.》

그렇게밖에는 말할수 없었던가. 자기를 위해주려는 녀자에게 하는 말치고는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정혜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한자리에 굳어져있다가 알릴듯말듯 고개를 숙여보이고 자리를 떴다.

하긴 그 정황에서는 그 이상의 말이 어색하게 들렸을것이다.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아무리 바빠도 일을 핑게대는건 자신을 속이는 시시한노릇이라고 말하겠는가.

얼음장밑에서 흐르는 겨울의 시내물처럼 생활은 멈춰서본적이 없다고 행악질을 해야 속이 후련하겠는가.

정혜는 그렇게 유식한 말을 할줄도 몰랐고 그럴 생각도 없었다. 정혜는 장혁수의 거친 말투에서 가공되지 않은 진심을 읽었던것이다.

정혜가 큰길에 나섰을 때에야 장혁수는 황황히 녀자를 쫓아갔다. 김정숙녀사께서 그를 꼭 집에 데려다주라고 당부하신것도 있지만 밤중에 녀자를 혼자 보낼수 없었던것이다.

큰길에 나선 혁수는 저쯤 앞에서 언뜻거리는 흰저고리를 알아보았지만 가까이 다가설 용기는 내지 못하였다. 이제 그 녀자곁에 갔다간 길 한복판에서 그를 힘껏 그러안고 억눌러오던 자기의 감정을 깡그리 쏟아버릴것만 같았다. 혁수는 그게 두려웠다. 그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흰저고리를 호위하며 스적스적 걸었다. 자기가 따라온다는걸 모르지 않겠는데 정혜는 한번도 멈춰서거나 돌아보지 않았다. 마치나 그 녀자는 혁수가 자기를 호위해주는것을 당연한것으로 여기는듯싶었다. 그것은 그들 두사람 다 자기들사이의 간격을 의식하지 않았기때문이였다. 그들은 마음속으로 나란히 걷고있었던것이다. 서성교를 넘어 기림리에 들어설 때까지 두사람의 거리는 끝내 좁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장혁수는 혼자서 공사장으로 돌아오면서도 그날만은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다.

정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자기뒤를 따라오는 장혁수의 존재에 마음쓰면서도 멈춰서거나 걸음을 늦추지는 못했다. 생각이 온통 뒤에만 가있다나니 하마트면 집앞을 지나칠번 했었다. 집이라는게 즐거움을 모르고 살아온 제 팔자를 신통히도 닮아서 고삭은 밀짚이영을 뒤집어쓴채 웅크리고앉은듯싶은 단칸초가집이였다.

요즘엔 문수리에 사는 친정아버지가 몸이 불편해서 여기에 와있었다. 늘쌍 공사장에 나가사는 명덕이보다는 제손으로 아버지 병구완을 해드리는게 나을것 같아 며칠전에 자기가 우정 모셔왔었다. 아버지가 집에 계시면서 성학이도 봐주기때문에 정혜로서는 편리한 점도 없지 않았다. 정혜는 서둘러 삽짝문을 밀며 소리쳤다.

《성학아, 엄마왔다.》

그런데 방문을 여는것은 동생 명덕이였다.

《왜, 이제 오우?》

《응? 그저…》

아버지도 안심치 않은지 한마디했다.

《아낙네가 밤중에 다니면 못써.》

정혜는 우물우물하다가 말머리를 돌렸다.

《온지 오랬니?》

《응, 아버지도 없는 집에 가기도 싫구 해서…》

《잘했다. 내 얼른 저녁해줄게.》

《밥은 내가 했어. 성학이는 먼저 먹였어.》

《그래?》

아들애는 할아버지곁에서 쌔근쌔근 단잠에 들어있었다. 부엌에 들어서니 정말 저녁준비가 다 돼있었다. 정혜는 동생에게 동자질을 시킨것이 미안스러웠다. 그는 얼른 밥상을 챙겨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저마끔 말없이 숟가락을 놀렸다. 정혜의 마음은 여전히 자기가 오던 길을 헤매고있었다.

(그 사람이 인젠 현장사무실까지 갔을가? 아직 못 갔을거야. 조차장다리쯤 갔을가?)

《누이, 무슨 생각을 해?》

눈길을 들어보니 아버지도 명덕이도 숟가락을 멈추고 자기를 바라보고있었다.

《응? 아무것두 아니야.》

정혜는 당황한김에 얼른 밥그릇우에 머리를 숙였다. 그러나 조금후에는 또 장혁수에 대해 생각했다. 무슨 호위병처럼 십리 남짓한 길을 말없이 따라왔던 그 사람의 시커먼 형체가 도무지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았었다. 그것만 봐도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는게 틀림없었다.

《너 아무래두 무슨 일이 생긴게로구나.》

아버지의 목소리에 정혜는 와뜰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자기를 유심히 바라보고있는 아버지와 명덕의 눈길과 또 부딪쳤다.

《아니예요. 일은 무슨…》

저녁설겆이를 끝낸 정혜는 토방에 나와앉았다. 혼자서 생각에 잠겨있고싶었던것이다. 잠시후에 명덕이 방문을 열고 나왔다.

《누이, 무슨 일이 있었지?》

《아니라는데…》

정혜는 아직 자기의 마음을 누구에게도 헤쳐보이고싶지 않았다. 그런데 생각과는 달리 종시 참아내지 못했다.

《너 현장책임자 알지?》

《응.》

《아직도 그 사람 원망하니?》

《그건 왜 물어?》

《글쎄 대답해봐.》

정혜는 초조한 눈빛으로 명덕을 바라보았다. 그 녀자에게는 앞날의 행복을 결정하는데서 현장책임자에 대한 동생의 견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되였던것이다. 그럴수밖에 없는것이 장차 한집안식구가 되여야 할 사람들사이에 어떤 원한을 품고있다면 이 문제는 더 생각해볼 여지가 없지 않겠는가.

명덕은 애절한 빛이 떠도는 누이의 얼굴을 한참 쳐다보다가 비로소 깨도가 되는지 단마디로 대답했다.

《그 사람 좋은 사람이야.》

정혜의 얼굴에는 조마조마하던 표정대신 가벼운 홍조가 피여올랐다. 그 녀자는 저도모르게 호- 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며 조용히 미소를 머금었다. 쩍하면 속을 태우고 우둘렁거리기 잘하는 오랍동생에게 그때처럼 애틋한 정을 느껴보기는 처음인듯싶었다.

정혜는 부엌에 들어가 아껴두었던 밀가루를 퍼냈다. 동생이 좋아하는 지짐이라도 지져주고싶어서였다. 어쨌든 오늘 저녁은 정혜에게 례사로운 보통날 저녁이 아닌것이다.

《풍구를 좀 돌려라.》

동네는 고요한 정적속에 잠겨있었다. 사방에서 풀벌레 우는 소리만 들려오는 태평스러운 여름밤이였다. 지짐판에서는 기름이 뽀질뽀질 타며 고소한 냄새를 마당에 풍겼다. 정혜는 머리를 수굿하고 풍구를 돌리는 동생에게 참지 못하고 또 물었다.

《너 정말 그 사람 좋은 사람으로 보니?》

《응.》

《그건 왜?》

명덕이 풍구를 멈추고 얼굴을 들었다.

《그 사람이 김일성장군님과 친하다는거 알지?》

《친하다기보다는… 하긴 김일성장군님께서 착공식때 쓰시던 삽을 그 사람에게 주었다니까…》

《그게 친한거지.》

명덕은 다시 풍구를 돌렸다. 그 이상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하는 태도였다. 한참 풍구를 돌리던 명덕은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리구 그때 일은 확실히 내가 잘못했어. 그러니 내가 나쁘다고 사실대로 욕해주는 사람이야 좋은 사람이지. 안 그래?》

그리고는 씩 웃었다. 투박스럽기는 해도 솔직한 말이였다.

정혜는 혈육의 따스한 눈길로 동생을 바라보며 나직이 속삭였다.

《명덕아, 고맙다.》

《고맙긴… 제 행복은 제가 챙기랬어. 아, 지짐탄다.》



48

 

오늘은 1단계공사를 결속하고 새 통수로를 여는 날이였다. 공사장은 온통 사람천지였다. 각 단체돌격대와 리민돌격대가 총출동하고 법률학교, 광성중학교, 평양농업학교 학생들, 무소속으로 지원나온 사람들이 공사장을 한벌 덮었다. 이날은 공사가 시작된 이래 최고의 동원인원수를 기록한 날이였다. 사람이 많은것만큼 일하는 방법도 각양각색이였다. 들것, 목고, 질통, 밀차, 목조기중기… 농민들은 소달구지를 몰고나왔고 상인들은 세바리짐자전거까지 끌고나와 흙을 날랐다. 공사장의 곳곳에 기발이 나붓기고 《하루빨리 애국제방을 쌓자!》, 《건국은 우리의 힘으로!》 등의 구호들이 사람들의 발걸음에 힘과 률동을 더해주었으며 현장방송까지 설치되여 공사장분위기를 돋구어주었다.

대타령리 건국로력대원들은 현장방송에서 자기들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잠시 일손을 멈추었다.

《대타령리 건국로력대원들은 아침일찍부터 작업을 시작하여 오전 열한시 현재 하루책임량을 넘쳐수행하고도 통수식을 앞당기기 위하여 계속 혁신하고있습니다. 특히 정용주, 리창화, 최인수를 비롯한 많은 대원들이 집단주의정신을 높이 발휘하여 뒤떨어진 사람들의 몫까지 도와주고있는것은 해방조선의 건국투사들의 일본새라고 할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분들을 애국자라고 높이 자랑합니다. 모든 건설자들은 이들의 불타는 애국심을 본받아 1단계공사의 마지막돌격전에서 빛나는 위훈을 세워나갑시다. 그럼 대타령건국로력대원들의 작업성과를 축하하여 삼천리악단에서 노래를 불러드리겠습니다.》

삽질을 하던 갱핏한 중년남자가 주독이 오른 코마루를 버릇처럼 매만지며 방금 이름을 부른 사람을 부럽게 바라보았다.

《창화형님은 좋겠수다. 방송에 이름이 나와보기는 난생처음이지요? 애국자라는게 어디 간단한 말인가요? 예전에 이등박문을 쏴죽인 안중근이나 같다는 소린데…》

나이지숙한 사람이 웃는 얼굴로 퉁을 놓았다.

《그러게 임자도 애국자란 말 듣고싶으면 더 열성적으로 일하란 말이야. 밤새 막걸리동이나 안고있지 말구.》

중년사내는 그 말을 탓하지 않았다.

《그래야지요. 일을 많이 해서 우리 세상을 빨리 만들어놔야 나같은 인민두 막걸리랑 마음대로 마시면서 잘살수 있지요.》

창화라는 사람이 씨물씨물하며 중년을 시까슬렀다.

《체체… 제까짓게 무슨 인민이야? 주정뱅이지.》

《주정뱅인 뭐 인민이 아니요?》

《어림없지. 주정뱅인 그저 백성이라고 해.》

그 말에 중년은 어지간히 약이 올라 창화라는 사람을 쏘아보다가 가슴을 쑥 내밀며 결론했다.

《나두 인민이우다!》

그리고는 울뚝밸을 고스란히 삽자루에 옮겼다.

주위에는 즐거운 웃음판이 터졌다.

리주연은 이른아침부터 공사장 전구간을 다람쥐 채바퀴 돌리듯 하느라 다리쉼 한번 해보지 못했다. 통수식을 앞두고 그는 몹시 흥분되여있었다. 1단계공사를 마감짓는데서 기본은 10m너비에 7m깊이의 배수로작업을 완성하는것이였다. 일단 강물을 돌린 다음에는 배수로를 깊이 파는 작업을 할수 없기때문이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통수식때까지 배수로파기를 다그치자고 호소하군 했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통수식날이 다가올수록 건설자들의 자각적열성이 점점 높아졌던것이다. 우선 하루 로력동원수가 눈에 뜨이게 많아지고 소기계화를 비롯한 창발적인 작업방법들이 도입되여 공사속도가 빨라졌다. 예전에는 오후 서너시쯤이면 하루과제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기때문에 공사장이 텅 비다싶이 했는데 지금은 그날책임량을 다하고도 날이 어두워서야 작업장을 떠나군 했다. 임성민네 돌격대원들은 달이 밝다고 야간작업까지 했었다. 공사초기에는 일인당 하루실적이 반립방정도였는데 이제는 보통 세립방이상씩 해제끼군 한다.

어제 리주연은 장군님께 통수식과 관련한 문제들을 보고드리면서 자기의 놀라움을 덧붙여 말씀올렸다.

《저는 요즘에 대중의 힘이 무궁무진하다는 그 말씀의 참뜻을 새롭게 느끼군 합니다. 정말 놀랍습니다. 평양곡산공장돌격대원들은 하루작업을 끝내고도 야간작업을 했는데 한사람당 다섯립방의 토량을 처리했습니다.》

장군님께서도 놀라시였다. 놀라신만큼 기쁨도 곱절 크시였다.

《다섯립방?!… 대단하구만. 정말 기적이요!》

어제날 력사밖으로 밀려나있던 평범한 인민대중이 그 위대한 기적의 창조자인것으로 하여 그이께서는 더없이 기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리주연에게 공사속도에만 신경을 쓰지 말고 건설자들의 생활조건을 잘 보장해줄데 대하여 곱씹어 강조하시였다.

통수시간이 다가올수록 건설자들의 사기는 더욱 높아갔다. 오늘하루 배정받은 정력을 말끔히 소비하려는듯 건설자들은 질통이 넘쳐나게 흙을 지고 달리고 또 달린다. 리주연은 서성리작업장에서 달구지에 듬뿍듬뿍 흙을 퍼올리는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그들속에는 오성재도 섞여있었다.

《이게 몇탕째입니까?》

이른아침에 달구지를 몰고나온 토성랑의 리재익농민이 허리를 펴며 대답했다.

《일곱탕째올시다.》

《그러면 벌써 서너립방 제낀셈이군요. 하루에 열립방은 문제 없겠습니다.》

《열립방이야 더 해야지요. 우리 토성랑사람들이 마음편히 사는 일인데 우리가 앞장서는거야 응당하지요.》

《지금은 농번기인데 바쁘지 않습니까?》

《일없수다. 통수식이나 한 다음엔 며칠동안 김매기를 와닥닥 해제끼고 또 나와야지요. 그런데 총책임자어른!》

리재익은 정색해서 리주연의 앞에 다가섰다.

《오늘 통수식때 김일성장군님께서 나오시는가요?》

누구나 다 알고싶어하는 문제를 리재익이 먼저 꺼낸것이다. 주변의 사람들은 일손을 멈추고 긴장한 눈길로 리주연의 입을 바라보았다.

리주연은 그들을 실망시키고싶지 않았지만 사실대로 말해주었다.

《장군님께서는 어제 저녁에 지방현지지도를 떠나시였습니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아쉬워하는 표정이 동시에 떠올랐다. 리재익농민은 모두가 들으란듯이 위안삼아 한마디 했다.

《하기야 장군님께서 온 나라 정사를 다 보실래기 바쁘시겠는데 어떻게 시간을 내시겠소. 우리 미련한것들이 괜히 욕심을 부리는거지요.》

《아닙니다.》

리주연은 리재익농민보다 더 크게 말했다.

《장군님께서는 떠나시면서 오늘 통수식때 여러분들이 물머리를 돌리는 장면을 기록영화와 사진으로 잘 찍어두라고 하시면서 자신께서 꼭 보시겠다고 말씀하시였습니다.》

드디여 통수시간이 되였다. 건설자들은 배수로에서 일손을 떼고 새로 쌓은 량쪽제방우에 하얗게 늘어섰다. 공사를 시작하여 26일째되는 이날까지 건설자들은 공사총량의 절반에 해당하는 토량을 처리하였다.

리주연은 공사지휘부 일군들과 함께 배수로 웃머리에 서있었다. 그는 흥분으로 떨리는 손에 삽자루를 틀어쥐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참으로 감격스러운 순간이였다.

수수백년 제멋대로 흐르던 보통강이 오늘로써 인간의 무한대한 힘앞에 굴복하고 공손히 방향을 바꾸게 된것이다. 오랜 세월 무질서한 대자연의 희생물로 불행과 고통을 당해오면서 무기력한 존재로 락인찍혔던 그 인민들이 질통과 목고로 자연과 싸워 이긴것이다.

《시작합시다.》

리주연은 물목에 삽날을 지그시 박고 푹 떠서 넘겼다.

지휘부일군들도 삽을 들었다. 리주연은 주변에 모여서서 숨을 죽이고 지켜보는 건설자들에게 갈린 소리로 웨쳤다.

《여러분들도 다같이 제낍시다!》

그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모두들 와- 하고 달라붙었다. 삽이 없는 사람들도 손으로 흙덩이를 날랐다. 잠간새에 막혔던 물목이 터졌다.

처음에 졸졸 흐르던 물은 점점 물목을 넓히면서 팔팔 쏟아지다가 마침내는 와와 사품치며 흘러내렸다. 그래도 사람들은 물속에서 나오려 하지 않았다. 서로 웃고 떠들며 하늘공중 물보라를 휘뿌려올리는가 하면 옷을 입은채로 아예 풍덩 주저앉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제는 보통강이 불행을 주지 않을것이다. 만약 보통강때문에 울어야 한다면 그것은 행복과 기쁨의 눈물일것이다. 누가 먼저 선창을 뗐는지 《만세!》의 함성이 오래도록 공사장을 뒤흔들었다.

그날은 1946년 6월 15일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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