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소설 <대박산마루> 제 8회 > 통일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통일게시판

조선소설 <대박산마루> 제 8회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5,688회 작성일 15-12-12 22:59

본문

 (제 8 회)

10

 

《…

이제는 김정일조직비서가 나의 사업을 많이 대신해주어 어느 정도 짬을 얻게 되였다. 세대가 바뀌여 혁명의 로투사들도 하나둘 가고 새로 자란 세대가 우리 혁명의 중진으로 되였다. 그들에게 민족과 더불어 한생을 살아오면서 체험한 문제들과 선렬들이 오늘을 위해 어떻게 자기 청춘을 바쳤는가를 알려주는것이 나의 의무로 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시간이 있는대로 한두줄씩 적어놓게 되였다.

…》

김일성동지께서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를 쓰게 된 소신을 밝히신 머리글의 한 대목이다. 이 글에서 알수 있는것처럼 회고록은 끝없이 소박한 취지에서 씌여졌고 그 내용도 겸허성으로 일관되여있다. 오히려 그것이 더 독자들속에서 폭풍과 같은 반향을 일으키게 하였고 다음권들에 대한 불같은 기대를 가지게 하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김일성동지께서는 회고록집필을 자주 중단하지 않으면 안되시였다. 이 시기 단군문제에 보다 많은 관심을 돌리시였기때문이다.

지금도 그이께서는 회고록을 쓰려고 펜을 드시였으나 생각은 단군문제에로 자꾸 돌아섰다. 단군을 생각하시는 그이의 마음은 매우 번거로왔다.

단군릉발굴문제를 지지하시였으나 어찌된 일인지 학계는 며칠이 지나도록 잠잠했다.

문득 생각은 《기자묘》를 파보던 때의 일로 뻗어갔다. 그때 학계는 물론 정계에서까지 론의가 분분하였다. 만일 그 무덤을 파헤쳤다가 기자의 유골이라도 나온다면 어쩌겠는가. 그렇게 되면 정말로 기자가 조선을 세웠다는것이 증명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파보지 않은것보다 못하지 않은가!

김일성동지께서는 그때 그 모든 론의들을 눌러버리시였다. 그때는 《기자묘》가 가짜일것이라는 견해가 확고하시였던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이께서는 머리를 기웃하시였다. 아무래도 불안하시였다. 왜 학계는 아직도 잠잠한가. 단군릉을 발굴하여 기대와 달리 단군실체나 고조선력사정립에 아무런 도움을 받을수 없다는것이 확증된다 해도 단군이 실재한 인물이라는것을 증명해낼 보다 합리적인 다른 대안을 찾고있는것이 아닐가?…

밤은 깊어가고있었다.

전화종이 울렸다. 김정일동지께서 걸어오신 전화였다.

수령님의 락중에 큰 락이 김정일동지의 전화를 받으시는것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언제나 기쁜 소식을 알려오시였던것이다. 모든 일을 완전무결하게 처리하시기때문에 알려드릴 걱정거리가 실지로 없었던것이다.

《무슨 일이요?》

김일성동지께서는 기대감을 가지고 물으시였다.

《사회과학원 당위원회에서 올라온 보고인데 수령님께서 기다리실것 같아 밤중이지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렇지 않아 궁금증이 났댔소.》

《그러실줄 알았습니다. 사회과학원에서는 단군릉발굴을 시작하겠다고 합니다.》

《그렇소?》

김일성동지의 얼굴에 순간 기쁨이 확 어렸다가 사라졌다.

《그 동무들이 덮어놓고 하자는건 아니요?》

《반대입니다. 보고에는 심중히 대하느라고 시작이 늦어졌다는 사실이 첨가되여있습니다.》

김일성동지의 얼굴에 만족한 미소가 어리였다.

《그 동무들이… 그랬단 말이지?… 그래야지.》

《전화가 길어져도 일없겠습니까?》

《괜찮소, 내 걱정은 말고 좀 자세히 말해보오. 그래 무슨 문제들이 론의되였다고 하오?》

수화기에서는 보고문건을 넘기시는듯 한 사르륵소리가 한동안 울리다가 김정일동지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수령님, 문제는 발굴조사업을 책임지게 되여있는 동무가 한마디 한것으로부터 제기되였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박진규의 《잡소리》문제를 간단히 설명하고나서 계속하시였다.

《그곳 당조직에서 여러차례 담화를 통해 알아본데 의하면 수령님의 교시까지 계시였는데 무덤을 팠다가 빈 무덤이면 당의 권위가 어떻게 되겠는가 하는것을 걱정한것입니다. 사회과학원 당조직에서는 그 동무를 몰아댄 일군을 비판하고 그 동무에게 발굴사업을 책임지우기로 결정했답니다.》

《일처리를 한걸 보면 그곳 당위원회도 괜찮소! 아무튼 이번 발굴사업이 큰 문제를 안고있는것만큼 복잡한 론의들이 있을수 있으니 당에서 많이 도와줘야겠소. 다른 문제는 또 없소?》

《수령님, 발굴은 땅이 다 녹은 다음에야 할수 있다고 합니다.》

《그건 나도 알고있소. 언땅을 파다가 유물이 상할수 있으니까. 그 문제는 학자들이 토론해보라고 하시오.》

《알겠습니다.》

《좋은 전화를 해주어 감사하오.》하고 김일성동지께서 송수화기를 놓으시려는데 《수령님.》하는 부름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무슨 일이요?》

《아닙니다. 래일 아침에 찾아뵙겠습니다.》

《무슨 일인데 아침까지 기다릴게 있소? 거기서 피곤하지 않으면 지금 와주오. 난 자려면 아직 멀었소.》

수화기에서는 한동안 침묵이 흐르더니 《알겠습니다.》라는 목소리가 간단히 울렸다.

반시간후.

두분께서 저택의 응접실에 마주앉으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 뭔가 대접하고싶어 댁으로 청하시였던것이다.

간단히 음식을 나누신 후 김일성동지께서 먼저 말씀을 떼시였다.

《〈핵문제〉요?》

《아닙니다.》

미국은 이해 1993년 정초부터 《핵문제》를 들고나오면서 조선반도의 정세를 극도로 긴장시켰다. 그들의 목적은 여러 사회주의나라들의 붕괴에 이어 우리 나라도 그렇게 하자는데 있었다.

허나 김정일동지께서는 오히려 오만한 도전자들을 눈알이 뒤집히게 호되게 다불러대고계시였다. 그러니 문제될것은 없었다.

《그런데?》

김일성동지께서는 의아해하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대답대신 들고온 서류가방에서 한통의 편지를 꺼내 수령님께 올리시였다. 그러시고는 수령님께서 편지를 읽으시는 동안 조용히 앉아계시였다.

그 편지는 김석진원사가 김정일동지께 드린것이였다.

《…

사회과학원 당위원회에서 단군릉을 발굴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당조직이 이러한 결정을 내린것은 백번 정당하며 또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저도 그 결정에 손을 든 당원입니다. …》

편지는 처음부터 매우 의미심장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안경을 추슬러올리며 저으기 긴장한 눈길로 편지의 다음구절들을 훑어내려가시였다.

《처음 저는 단군릉을 발굴할데 대한 수령님의 말씀에 몹시 격동되였으며 지어 대담한 거사라고까지 생각하였습니다.

민족에 대한 수령님의 지극하신 마음에 리성을 잃을 정도로 감복하였기때문이였습니다.

그러나 박진규동무의 〈잡소리〉문제가 제기되고 그것을 해명하는 과정에 그의 우려를 알게 된 순간 저는 리성을 되찾고 여러모로 음미해보면서 이번 발굴사업이 헛공사가 아니겠는가 하는 결론까지 도달하였습니다.》

여기까지 읽으신 김일성동지께서는 놀라운 눈빛을 들어 김정일동지를 바라보시였다.

이게 과연 김석진의 편지가 옳은가, 며칠전까지만도 정도이상으로 흥분했던 사람이!

그러나 다음순간 김일성동지께서는 역시 김석진이는 김석진이야 하는 생각이 드시였다. 물론 그의 론거는 편지를 다 봐야 알것이지만 얼마나 솔직하고 량심적이며 또 학구적인가, 그만이 감히 이런 편지를 쓸수 있다, 그가 이 편지를 쓰기까지 얼마나 괴로왔겠는가가 짐작되면서 그에 대한 고마운 감정이 느닷없이 살아나시였다.

《과학적견지에서 볼 때 첫째로, 유골이 묻힌 단군릉이 평양지방에 있을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고조선은 료동지역에서 발족하여 번성한 조상의 나라라는것은 품들여 밝혀낸 과학적결론입니다. 그렇다면 조상들이 자기의 시조왕을 료동에 매장하였으리라는것은 부인할수 없는 리치입니다.

현재 평양 강동의 단군릉이 고구려식의 무덤형식으로 되여있는 점으로 보아 고구려사람들이 만들었다는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물론 고구려가 평양으로 천도하면서 자기의 시조 동명왕을 이장할 때 고조선의 시조왕릉도 이장하였을수 있다는 주장도 서고있습니다.

그렇더라도 동명왕보다 수천년전에 묻혔고 또 이장하여 천오백년이 더 지난 강동의 그 무덤에서 동명왕릉에서도 나오지 않은 피장자의 유골이 나오리라는것은 믿기 어려운 일입니다.

강동의 무덤을 단군의것으로 본다 하더라도 그것은 고구려사람들이 자기 국가의 정통성과 유구성을 시위해야 할 필요에서 유골이 없는 무덤을 만들어놓은것으로밖에 달리 볼수 없습니다. 그 무덤이 우상이라는 저의 주장을 다시한번 상기시켜드리는바입니다.

평양지방의 수많은 단군전설도 이 우상을 믿게 하기 위한 필요에서 지어낸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가지 부언하건대 단군신화나 단군전설이 료동지방에 깃들어있지 않는것이 유감일뿐입니다.

둘째로, 일반적으로 과학, 특히 력사과학은 세계적인 뉴대, 세계적인 계률속에서 이루어지는 학문입니다.

세계에는 자기 민족의 유구성과 고대문명을 자랑하는 나라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시조의 유물을 찾은 나라는 아직 없습니다.

혹시 과학적으로 확증된 무덤에 대한 발굴이라면 몰라도 문제가 있는 무덤을 발굴한다는것은 거의나 무모한 모험이며 얻는것보다 잃는것이 더 많을수 있습니다.

정치적견지에서 볼 때 한마디로 당의 권위를 훼손시킬수 있습니다.

여기서 저는 박진규동무의 우려에 전적인 동감입니다.

단군연구에 온 생애를 바쳐왔고 온갖 심혈을 쏟아부은 그가 오늘에 와서 단군릉발굴문제를 놓고 당의 권위에 우려를 표시한데 대하여 저는 그의 과학자로서의 량심을 보았고 그 량심을 높이 사게 되였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

옥에는 티가 있어도 당의 권위에는 한점의 티라도 있어서는 안될줄 압니다.

그토록 바쁘신 장군님께 이런 편지를 올리게 되는 미천한 전사를 용서해주십시오.

사회과학원 원장 김석진 올립니다.》

편지를 다 읽고나신 김일성동지께서는 한동안 깊은 사색에 잠기시였다.

김석진의 주장이 그 한사람만이 아닌 과학계에서 전반적으로 굳어져있는 견해라는 사실을 알고계시기때문이였다.

조용히 그대로 앉아계시는 김정일동지…

두분사이에 무겁고 긴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수령님께서 《내가 회답을 쓰겠소.》라고 하시면서 김정일동지를 바라보시였다. 그러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말씀이 없이 서류가방에서 자루가 류달리 굵은 마지크를 꺼내 수령님께 드리였다.

그것을 받아드신 수령님께서는 김석진의 편지겉통에 다음과 같이 쓰시였다.

《선생의 량심적인 고백을 들으니 오히려 마음이 놓입니다. 당의 권위는 걱정 안해도 일없겠습니다. 당의 권위우에 민족의 권위가 있습니다. 나는 선생이 당조직의 결정대로 해줄것을 바라마지 않습니다.》

활달하고 큼직큼직하게 쓰신 글자마다에는 그 어떤 신념이 번뜩이는듯 하였다.

수령님께서는 김정일동지께 눈길을 돌리시였다.

《동의하오?》

김정일동지께서는 아무 말씀도 없이 마지크를 받아드시여 수령님의 존함밑에 자신의 존함을 써넣으시였다.

편지를 서류가방에 넣으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수령님을 이윽히 우러르시다가 나직이 물으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정말 단군을 믿으십니까?》

수령님께서는 아무 말씀없이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창가로 다가가시였다. 유유히 흐르는 대동강의 밤물결에 불야성을 이룬 동평양의 거리가 비꼈다.

어린시절 단군릉의 분향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자신께서 김형직선생님께 하신 질문이 생각나시였다. 그때 아버님께서는 뭐라고 대답하시였던가. 그래, 금돌과 막돌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지.

삼천리강산을 금돌로 꽉 채우고싶으신 김일성동지이시였다.

이윽고 김정일동지를 향해 돌아서시였다.

《과학이 그것을 증명할거요!》

김정일동지께서는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저도 그러리라 믿습니다!》

두분께서는 뜨거운 눈길로 마주 바라보시였다. 그 눈길에는 수만의 대화가 흐르고있었다.

《그런데 회고록은 언제 쓰시렵니까?》

《민족의 력사가 더 중하오.》

 

11

 

이슥한 밤 보통강가의 낚시터에 두사람이 낚시대를 드리우고 얼음구멍을 들여다보고있었다.

《여보게, 오늘까지 빈손이면 처한테 쫓겨나지 않겠나?》

빈정대는 이쪽사람의 목소리에 양털뜨개모자를 눈섭아래까지 푹 내려쓰고 맞은켠에 앉은 상대는 얼음구멍만 들여다보며 대꾸를 하지 못했다. 그러자 이쪽은 계속 부아를 돋구었다.

《아무래도 내가 몇마리쯤은 줘야 하겠는걸. … 그렇지 않다간 요전처럼 또 시장에서 사들고 가야겠는데 그 꼴이야 어떻게 보겠나.》

상대가 참지 못하고 맞받아 약을 올렸다.

《흥, 자기 주제에 누굴 흉봐? 품값도 못한다구 이젠 녀편네가 밤참도 안 싸준다면서?》

《내가 왜 밤참을 못 싸가지구 나와?》

그가 한옆에 놓여있는 가방을 발로 툭 건드리자 《쟁그랑ㅡ》하고 유리그릇이 부딪치는 맑은 소리가 얼음판우에 울려퍼졌다.

《이래두?》

벌써 그는 붕어탕에 술 한잔 받쳐먹을 광경이 눈앞에 떠오르는지 입이 벙글서 벌어졌다.

《안주감은 그물망태에 이미 들었겠다, 어때?… 좀 있으면 저가락이나 들구 기신기신 나한테 찾아들걸.》

밤낚시군들에게는 발바닥이 떡떡 달라붙는 날씨같은것이 애당초 무관계한듯싶었다. 하늘에는 뭇별들도 추위에 오돌오돌 떨고있는데 강반우에는 랑만이 한창이였다.

그들이 이런 수작들을 나누고있을 때 강기슭쪽 의자가 놓인 유보도에서는 아까부터 웬 처녀가 오도카니 앉아 점도록 일어날줄 몰랐다. 잡도릴 봐서는 장밤 새울 모양이였다. 그 처녀의 고민이 무엇인지는 누구도 모른다. 그만큼 누구도 그에게 주의를 돌리지 않고있었다. 밤이 너무 깊어 야등들도 꺼진 뒤였다.

어지간히 시간이 흘러 낚시군들이 마침내 주섬주섬 줄을 거두고 일어섰다. 뜨개모자가 내미는 그물망태에서 손바닥보다 작을사 한 붕어한마리를 받아든 개털모자가 얼굴을 찡그리였다. 그리고는 발치의 얼음구멍에서 자기의 그물망태를 들어올렸다. 화드득 하고 고기들이 뛰는 소리가 들렸다. 일여덟마리는 잘되는것 같았다.

《매번 내가 손해란 말야. 오늘도 내 어휙고 전량이 이 붕어 한마리와 섞여서 둘로 동등하게 나눈다는게…》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는 조금도 아쉬워하지 않는듯 했다. 가방안에서 붕어모양의 손칼을 꺼내든 그는 익숙한 솜씨로 고기들을 손질했다. 그는 흥얼흥얼 타령까지 했다.

《보통강붕어가 남비안에 들어가니 물고기세상 싫증나서 인간세상 찾은거냐. 애석한 일이로다. 낚시에 코꿰여 남비에 들어가는 네 신세도 가련커니와 랠부터 녀편네에게 코꿰여 밤낚시출입 못할 내 신세 또한…》

뜨개모자는 못들은척 하고 수굿하니 앉아 고체연료에 불을 달았다. 깜찍하게 생긴 늄남비가 올라앉았다. 한겨울이지만 다행히 바람이 세게 불지 않아서 남비는 인차 보골보골 귀맛좋은 소리를 냈다. 개털모자가 품안에서 체온으로 덥히던 술병을 꺼내들었다.

《자, 잔을 이리 달라구.》

그들이 한창 붕어탕을 끓이며 술잔을 나눌무렵에 의자에 앉아있던 처녀가 마침내 무엇을 결심한듯 일어섰다. 그담은 구두뒤축소리를 내며 유보도끝을 위태하게 걸어갔다. 발자국소리가 가락맞지 못하고 듣기에 불안했다.

한번 아차하면 얼음우에 떨어질 위험천만한 곳을 걷는걸 보니 그의 마음이 벼랑끝에서 헤매는듯싶었다. 처녀는 무슨 영문에선지 유보도에서 내려서 얼음판우에 들어섰다. 걸음이 비척거렸다. 설마 처녀가 술을 마셨을가. 강 한복판에 이른 그는 얼음구멍을 뚫어지게 노려보더니 손에 들었던 꾸레미를 머리우로 쳐들었다. 순간 몸이 휘친했다. 꾸레미만이 아니라 사람까지 빠져버렸다.

내미는 술잔을 향해 손을 뻗치던 개털모자의 손이 허공중에 굳어졌다.

《왜 그래?》

술잔을 내밀던 뜨개모자가 의아해서 뒤를 돌아보는 순간 녀자의 쇠된 비명소리가 그의 귀전을 때렸다.

《사람 살려요.》

개털모자가 먼저 화닥닥 뛰쳐일어났다. 그 서슬에 남비가 뒤집혔다.

그들이 달려갔을 때 처녀를 삼켜버린 얼음구멍안에는 불룩한 비닐구럭지가 물을 먹으며 가라앉고있었다.

도착은 개털모자가 먼저 하였지만 동작은 뜨개모자가 더 날랬다. 어느새 방한화를 벗어던지고난 그가 얼음구멍안에 뛰여들었다.

…처녀는 구급과 소생실에 정신을 잃은채 누워있었다.

다행히 동상은 입지 않았고 인차 건져낸 덕에 물도 얼마 먹지 않았다. 술을 마신것도 아니였다. 그렇다면 자정이 훨씬 지난 깊은 밤에 얼음구멍에 빠진 처녀를 어떻게 리해해야 하겠는가. 틀림없이 심리적타격을 받고 정신이 이상해진 까닭이리라. 캄파를 놓고난 녀의사가 이불을 두툼히 덮어주고나서 지켜앉아 의식이 회복되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처녀가 피여났다.

《여기가 어디예요?》

《병원이예요. 움직이지 말고 누워있어요.》

의사가 명령하듯 말했으나 처녀는 기어이 상반신을 일으켰다.

《내가 얼음구멍안에 빠졌댔지요?》

《예, 참 다행이예요. 어쩌다 그런 일을…》

《그런데 누가 날?…》

《다행히 사람이 그 근처에 있었더군요.》

처녀의 눈이 의식을 잃었던 사람같지 않게 반짝했다.

《그게 누구예요? 혹시?…》

《두사람이였어요. 보통강에서 낚시질을 하댔다더군요.》

《그래요?…》

그래도 처녀는 미련을 가지고 계속 물었다.

《다른 사람은 없었는가요?》

녀의사가 머리를 저었다.

반짝했던 처녀의 눈에 실망의 그늘이 덮이더니 고개를 외로 틀었다. 그 서슬에 머리맡에 놓여있는 비닐구럭지가 눈에 띄였다.

《이건?…》

《동무 물건이지요? 그 낚시군들이 가지고왔더군요.》

구럭지를 바라보는 처녀의 눈에 이름 못할 증오가 비꼈다.

《이걸 치워주세요. 제발 내곁에서…》

이윽고 처녀는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녀의사는 비닐구럭지를 침대밑에 쑤셔넣으며 머리를 기웃거렸다.

그는 병력서를 작성해야 할 자기의 임무를 잊어버린채 처녀를 측은히 굽어보았다.

(실련당한게로구나. …)

 

×

 

발굴현장에 도착한 박진규는 마음이 무거웠다.

(왜서일가?)

그는 곰곰히 생각을 정리해나갔다.

박진규에게는 다른것이 끼일 짬이 없었다.

공부를 할 때에는 학습에 전념했고 교편을 잡았을 때에는 강의에 전념했으며 과학자가 된 다음에는 연구사업에만 몰두했다. 그는 사소한 감정과 생활에 대해 일체 외면했다. 이것은 한생을 살아오면서 저도 모르게 몸에 습관된 일종의 계률이였다. 습관됐다기보다 자기자신이 이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고 철저히 준수해왔다. 그의 정신과 육체전체가 사업을 위해서만 존재하고있었다.

네 자식을 키워 살림을 차려줄 때까지의 모든 집안일은 마음이 느긋하고 신경질이라고는 전혀 낼줄 모르며 가정일에 들어서서는 무슨 일에서나 막히는것이 없는 농촌출신의 안해가 맡아주었다. 과학자로서의 앞날을 예견해서 얻은 안해인듯싶었다. 부뚜막손질이며 구멍탄을 빚는 일은 물론 자식들이 어렸을 때 썰매를 만드는것까지 안해가 맡아했다. 안해는 소박했다. 아빠트생활을 하는 그는 늘 방안보다 조금만 더 넓은 크기의 터밭이 있었으면 하는것이 소원이였다. 만약 그런 터밭이 실지 차례졌더라면 안해는 그 밭에서 3모작정도가 아니라 4모작, 5모작을 했을것이다. 그런 부지런한 안해를 둔덕에 자기의 《계률》을 지켜갈수 있었다.

지금은 그가 일생을 통해 지켜온 그 계률을 더욱 엄격히 지켜야 할 때였다. 어떠한 과제를 맡았는가!

김석진이 김정일동지께 편지를 올렸고 그 편지에 수령님께서 친필로 회답서한을 보내오시였다는 사실이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회답의 사상을 전달받은 사회과학원의 모든 사람들이 력사와 조상을 대하시는 수령님의 고결한 애국심앞에 더욱 머리를 깊이 숙이였고 민족의 후손으로서의 자신들의 의무를 자각하였다.

그때 김석진이 그를 자기 방으로 불렀다. 박진규는 김석진의 편지 겉표지에 씌여진 수령님의 친필서한을 눈으로 직접 보는 순간 가슴이 터질듯이 높뛰였고 세찬 흥분이 온몸을 휩쌌다. 흥분이 점차 가시여지자 그는 단군릉발굴을 두고 혹시 성과가 없을 경우를 예견했던 자기의 우려가 매우 어리석고 지어는 수령님앞에서 불손했다는 자책감까지 들었다.

그러자 머리가 전에없이 맹렬히 돌기 시작했고 지금껏 그를 유혹하고있던 강동지방의 단군전설들이 정설로 느껴졌으며 돌박산의 막돌이 금덩이로 변하는 환각이 왔다.

《내 편지도 마저 읽어보시오.》

그는 환각속에서 김석진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환각에서 깨여나지 못한채 당에 올렸던 김석진의 편지원문을 읽어내려갔다. 박진규는 김석진의 빈틈없는 과학적주장을 한두번만 들어오지 않았다. 그자신이 탄복한적이 한두번이였던가. 그러나 지금 그의 눈앞에서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것으로 여겨지고 김석진이 한자두자 모를 박아 쓴 편지의 글줄들이 모래알처럼 흩어지는것이였다.

박진규는 환각속에서 숨가쁘게 말했다.

《원장선생님!》

원사가 한손을 들어 그의 말을 밀막았다.

박진규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의식하지 못한채 원장의 입만 바라보았다.

《선생은 기적이 일어나리라고 믿소?》

기적이 일어나기를 누구나 바란다. 박진규의 말을 《잡소리》로 몰아붙인 리관직이 역시 기적이 일어나기를 너무도 바라던 나머지 그것을 기정사실화하고 의심을 가지는데 반발한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수령님께서는 기적을 고대하시는게 아니라 과학적인 해명을 바라고계신다, 철저한 과학적인 해명을… 한참만에 석진의 무게있는 목소리가 박진규의 귀청을 때렸다.

《박진규동무, 발굴준비를 다그치시오!》

박진규는 환각에서 깨여났다. 그리고 힘찬 걸음으로 원장방을 나왔다. 실로 그에게는 다른것이 끼일 짬이 없었다.

이번 발굴을 총책임진 리관직이 먼저 현지로 떠나겠다고 그를 찾아왔다. 자기의 동창으로서 어찌 보면 가장 가까운 사이여야 한다. 자기와 리관직의 인간관계력사는 적어도 40여년이 된다. 그런데 왜 자기는 그를 신뢰할수 없는것인가. 많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고있는 일군으로서 자기의 옛동창이며 또 상급인데…

한가지 마음이 놓이는것은 수령님의 친필서한을 전달받은 리관직이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달라졌다는 사실이였다. 그는 행동을 자중하였다. 그러한 그의 행동에는 전에없이 무게가 실려있었다. 그는 사람들앞에서 박진규를 대함에 있어 정중성을 표시하느라 애썼다. 《잡소리》문제를 사죄도 하고. …

그런데 조급성만은 여전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결함일수는 없었다. 수령님의 친필서한을 받은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지 않는가. 그러니 탓할것이 못된다. 마음속에 걱정주머니 여러개를 달아놓고 우려요, 뭐요 하는것보다 단순한것이 더 성실한것일수도 있다. 응당 그래야 하는것이다.

리관직이 박진규에게 상급다운 정중한 어조로 말했다.

《내가 먼저 현지로 내려갈테니 동문 좀더 준비를 하게. 빈틈이 있어서는 안되겠네.》

그의 말에 박진규는 기쁜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현지로 내려온 리관직은 지방당 및 정권기관일군들과의 긴밀한 련계밑에 발굴사업의 성과적보장을 위해 그 준비사업을 빈틈없이 해나갔다. 그는 릉주변의 개인집들을 철거시키고 발굴에 유리하도록 지대정리를 해놓았는데 이 사업에 금요로동대상인 군급일군들을 동원하였다. 발굴사업의 선행공정을 솜씨있게 해치운셈이였다. 역시 그는 조직적수완이 뛰여났다.

뒤따라내려온 박진규는 필요한 선행공정을 완료해놓은 관직의 소행에 사의를 표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래서 한마디 했더니 그는 성수가 나서 여전히 덤벼쳤다.

《너무 늦잡지 말고 어서 다그치게!》

그러나 박진규의 귀에는 그 소리가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 그는 자기 딸 례영이에 대하여 생각하고있었다.

발굴사업을 위해 떠나오기 전날 밤 집에 들어가보니 일찍 퇴근해서 출장준비를 해주겠다고 한 사랑하는 막내딸 례영이가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재밤중에 병원에서 전화가 왔는데 얼음구멍에 빠진것을 구급실에서 소생시켰다는것이다. 그길로 병원으로 달려갔다. 딸은 이미 정신을 수습했으나 아버지앞에서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화가 나도록 묻고싶은것이 많았으나 의사가 정신적부담을 주는것이 해롭다고 하기에 더이상 묻지 않고 온밤 머리맡을 지키고 앉았다가 다음날 아침 발굴조일행을 데리고 여기 강동땅으로 왔다.

일손이 잡히지 않았다. 딸의 꺼진 볼편과 실성한듯 허공을 쳐다보는 그 처량한 눈길때문에 긴장한 생활계률을 더는 지켜낼 힘이 없음을 의식한 박진규는 마음이 괴로

댓글목록

profile_image

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딸의 꺼진 볼편과 실성한듯 허공을 쳐다보는 그 처량한 눈길때문에 긴장한 생활계률을 더는 지켜낼 힘이 없음을 의식한 박진규는 마음이 괴로왔다. 다른 자식들이 시샘을 낼 정도로 박진규는 막내딸에게 애정을 기울여왔다. 례영이는 부모들이 흔히 말하듯 《어느것하나 깨물어도 아프지 않은게 없는 다섯손가락》중의 하나가 아니였다. 그 까닭이 무엇인지는 자기자신도 몰랐다. 다만 그의 기억속에 잊혀지지 않는것이 있다면 자기가 단군릉벌초사건으로 처벌문제가 제기되였을 때, 중학교 교원직도 그만둬야 한다는 말을 힘들게 집안에서 꺼냈을 때 묵묵히 침묵을 지키며 울먹거리던 다른 자식들과는 달리 《일없어요, 당신자신의 마음만 결백하면야…》하며 선선한 표정을 짓던 안해와 함께 《아부지, 일없어.》하고 당돌한 지지를 표명하던 짜개바지를 입은 막내딸의 모습이였다. 그것을 지금껏 귀중하게 기억하고있는것은 사실 철부지시절의 자식에 대한 어리석은 믿음인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그때의 례영이의 모습을 영원히 잊을수 없었다. 그 짜개바지를 입은 막내딸이 눈물겹도록 고마왔다. 다섯 자식의 표상은 각이하게 남아있다. 그러나 막내딸에 대한 표상은 언제나 그 모습이였다. 실은 그래서 막내딸에게 그때부터 남다른 애정을 기울여오는것이였다. 딸자식이 력사학을 전공하게 된것도 사실은 자기의 뒤를 이었으면 하는 박진규의 소원에 따른것이였다. 그 딸에게 불미스러운 일이 생긴것이다.
침상에 누워 입을 꼭 다문채 말 한마디 하지 않고있던 례영이의 모습이 얼른거렸다.
(단지 례영이때문인가?)
박진규는 머리를 저었다.
딸이야 믿음직한 안해가 든든히 지켜앉았는데 별일 있을라구. 자기가 없는것으로 하여 더 심각해질리는 없다. 자기는 마음속 소원밖에 아무런 도움도 줄수 없는 처지이다. 딸의 일은 마음속에서 얼마든지 지워버릴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는 드디여 리유를 찾았다. 리관직부원장이다. 바로 자기의 마음에 무겁게 드리우고있는 추는 딸에게 생긴 불미스러운 일이 아니라 리관직이라는 존재, 이번 발굴사업을 행정적으로 책임지고있는 자기의 직속상관인 어제날의 동창생 리관직이였다. 례영이가 왜 밤중에 혼자 유보도를 걸었으며 제 죽을줄 모르고 얼음구멍에 빠져든 사연 같은것은 후날에 얼마든지 해명될것이고 그리 큰 의의를 가지는 일도 아닌것이다.


서비스이용약관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상단으로


Copyright © 2010 - 2023 www.hanseattle1.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