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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소설 <대박산마루> 제 1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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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3,842회 작성일 15-12-14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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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0 회)

14

 

《여보게, 고조선글자를 연구한다지?》

박진규가 려관의 불켜진 방을 찾아 들어서며 첫말을 뗐을 때 진웅은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순간 박진규의 오불꼬불한 지팽이에 눈길이 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딱 한번 찾아가 만난 일밖에 없는 그가 오랜 지기인듯이, 적어도 그사이 여러차례 만나 과학담을 나누기라도 한듯이 아닌밤중에 남의 방에 뛰여들어와 인사말 한마디없이 이렇게 묻자 듣던바대로 과학밖에 모르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으며 그의 성격을 특이하게 생긴 지팽이와도 련결시키지 않을수 없었던것이다.

그는 반갑게 박진규를 맞이하였다. 괴로운 추억을 털어버리기 위해서라도.

《예, 선생님.》

《고조선에 글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정설로 믿나?》

《예, 믿습니다.》

《신념이겠다?》

《예, 선생님.》

어정쩡해서 침대에 걸터앉아있는 그의 앞에 박진규는 긴 이야기를 펼칠듯 의자를 들어다가 편안하게 자리를 잡고 앉았다.

《과학은 신념으로만 되는건 아니지.》

《과학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거니까요.》

추억은 말끔히 사라져버렸다. 그는 이 박진규와 만나 론쟁해보고싶은 생각을 한두번만 가지지 않았다. 그는 박진규를 존경하였다. 그래서 그의 《성당》에 찾아갔던것이고.

박진규가 말을 이었다.

《례컨대 추운 겨울날 봄이 빨리 오라고 아무리 발버둥질쳐야 봄은 오지 않네. 모든 과학이 다 그러하지만 특히 력사과학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력사기록과 유적, 유물에 기초해야만 되는거지. 동무에게 그런 기초가 있나?》

《아직은 빈약하지만…》그는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리 나라 옛기록들은 《훈민정음》창제이전에도 일정한 우리 글자가 쓰이였다는것을 적지 않게 전하고있다. 《훈민정음》창제에 적극 참가했던 중요성원의 한사람인 신숙주의 후손인 18세기의 신경준도 《훈민정음운해》에서 우리 나라에 옛날부터 민간에서 쓰이는 글자가 있었는데 그 수가 다 갖추어지지 못하고 그 모양이 일정한 규범이 없어 한 나라의 말을 적어내기에는 모자라나 일부 제한된 범위에서는 쉽게 쓸수 있게 되였다고 했다.

또한 고려와 탐라(제주도)에서도 한자가 아닌 어떤 고유글자가 쓰이였다는 기록이 있다. 실학자들이 쓴 기록에서는 11세기초에 호부상서 장유가 중국의 강남에 갔을 때 마침 고려에서 떠내려간 《술》이라는 악기의 밑바닥에 쓰인 글을 중국사람들은 도무지 읽지 못하여 그저 한문으로 옮겨주었다는 이야기를 전하고있는데 이것은 곧 고려에도 일정한 조선고유글자가 있었다는것을 말해주고있다. 박지원의 《연암집》과 한치윤의 《해동역사》와 중국의 옛책 《몽계필집》 등에도 탐라(제주도)에서는 한자가 아닌 고유민족글자가 쓰이였다는것을 담은 기록이 있다. 특히 주목을 끄는것은 《훈민정음》창제당시 집현전부제학을 하던 최만리가 《훈민정음》창제를 반대하여 세종대왕에게 낸 상소문에서 《혹시 말하기를 언문은 다 옛글자이지 새 글자가 아니라는데…》또는 《설사 〈언문은 전 왕조(고려)때부터 있었다〉고 하여도 따로 쓸것인가?》라고 한것이다.

이상의 력사기록들을 통하여서도 《훈민정음》이전에 우리 나라에 한자와 다른 우리 나라 고유의 글자가 계속 쓰이였다는것을 알수 있다.

《연구를 많이 했구만!》

박진규가 경탄한 나머지 그의 말을 끊었다.

《그 글자의 현물이 〈녕변지〉와 옛 질그릇들에 몇자 남아있습니다. 아직 더 연구해봐야겠지만 문제는 고조선의 존재유무에 달려있습니다. 고조선의 력사만 정립된다면 저의 연구가 한줄에 설수 있습니다. 선생님, 문자는 국가성립의 중요한 여건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저도 그 성립자를 찾는 선생님의 이번 발굴사업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겁니다. 말하자면 명줄을 걸고있지요. 선생님, 성과를 믿습니까?》

《믿어야지.》

《무슨 근거로요?》

《그저 예감뿐이네.》

진웅이 씩 웃었다.

《선생님답지 않은 말씀이군요.》

《여보게, 동명왕릉발굴에 참가했나?》

《예, 학생으로 발굴에 동원되였댔습니다.》

《음, 나는 〈기자묘〉발굴에도 참가해본적이 있는 사람일세. 해방후부터 지금까지 력사학은 위대하신 우리 수령님의 발상에 의해 바로 잡혀왔다고 할수 있네. 백발백중이였지. 그런 의미에서도 수령님은 참으로 위대하시단 말이네.》

박진규의 예감이란 곧 수령님의 천리안에 뿌리를 두고있었다.

《그런데 왜 안할 말씀을 하셨습니까?》

리관직이 말하던 《잡소리》를 념두에 두고 하는 소리였다.

《옥에 티가 있을지언정 그 위대성에 티가 있어서는 안되네. 그래서 심중하자고 한것이지 무슨 딴 생각이 있어서는 아니였네.》

《선생님!…》

그는 격동되여 부르짖었다.

지금 그의 앞에 오불꼬불한 오리나무뿌리로 만든 지팽이를 짚은 고고학에 한생을 바친 늙은이가 앉아있었다. 남들이 고집불통의 표적으로 여기는 지팽이가 이 순간 그의 눈앞에서 황금지팽이처럼 되여 눈을 부시게 했다.

《선생님!》 그는 존경어린 눈으로 박진규를 다시 바라보았다.

이때 그의 마음속에서 《그 아버지에 그 자식이라는데…》하는 소리가 저도 모르게 울리고있었다.

박진규가 나타나기 전까지 더듬고있던 불쾌한 추억이 다시 머리를 쳐들려는 순간 박진규가 문득 물었다.

《어떻게 돼서 고대문자를 연구하기 시작했나?》

《아버지가 저를 어문학부 어학과에 들어가라고 신신당부했습니다.》

《아버지가 학자이시오?》

《아닙니다, 농장원입니다.》

《그래?…》

그 말을 하는 순간에 젊은 연구사의 얼굴에 얼핏 불안한 그늘이 지나갔다. 박진규의 호기심은 사라졌다.

그때 만약 박진규가 다감한 사람이여서 그의 얼굴표정을 감촉했더라면, 혹은 좀 더 청년연구사에게 친근감을 표시해 고향이나 부친에 대해 자세한 물음을 했더라면…

《강동? 내 강동에서 여러해동안 중학교교편을 잡고있어서 혹 알수도 있는데… 아버지의 이름이?…》

그럼 이 젊은이를 얼마나 난처하게 할번 했는가. 그러나 박진규는 역시 박진규였다. 그는 벌써 딴 생각을 하고있었다.

《자네 이름이 뭔가?》

《어학연구소의 로총각이라면 모르는 사람들이 없는데요.》

《그래? 아이아버지인가?》

《로총각이라구 하지 않았습니까.》

《허허… 그렇지!》

과학밖에 모르는 박진규의 머리에 이 순간 분명 다른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저런 젊은이가 사위감이라면?)

생활이 없는 사람이란 없다.

다른것이 끼일상싶지 않은 박진규는 사위감을 생각했고 로총각은 《그 아버지에 그 자식》이라는 속담을 떠올리며 꿈같이 흘러간 련애시절(물론 그것도 지금 돌이켜보건데 그렇게 말할수 없고 직접 겪을 때에는 그 생각도 미처 못했었다.)을 가슴아프게 추억하였다.

그와 함께 바로 어제 밤 발굴현장에 찾아왔던 아버지를 상기했다. 그가 아버지를 만난것은 우연이였다. 밤이 깊어 례영이의 생각으로 번민에 빠져있던 그는 답답한 가슴을 식힐 생각으로 숙소에서 나왔다. 실실 연기를 피워올리는 발굴현장주위를 걷던 그는 한쪽 유측진 곳에 까딱 움직이지 않고있는 한 형체를 알아보았다. 발굴조성원인줄 알고 무심히 지나치려던 그가 문득 걸음을 멈춘것은 다음순간이였다. 그는 륙감으로 혈육을 알아보았다.

《아버지!…》

예서 30리도 더 떨어진 곳에 있을 아버지가 이밤중에 나타날줄이야.

아버지는 아침에 헤여졌던 아들을 만난듯이 범상히 맞이했다.

《너도 여기에 와있었구나. 잘 됐다.》

아버지는 더 말하지 않고 릉주위를 살펴보았다.

《이 밤중에 웬일이십니까?》

《잠에 들수가 있어야지. 래일 발굴을 시작한다지?》

《예.》

《박진규선생이 책임자라지?》

《예.》

《편안하시냐?》

《예.》

《한번 보고싶구나. 그리고 밤새도록 말두 나누고…》

《지금 저기 숙소에 계십니다.》

《아니, 됐다. 난 그저 돌아가겠다. 날씨가 찬데 몸간수를 잘해라. 무거운 일을 맡았는데… 그리구 집엔 언제 한번 다녀가려니?》

《요즘같아선 짬이…》

《그럴테지. 그런데…》

아버지는 아들의 손을 꼭 잡았다.

《새해 잡혀 나이를 또 하나 먹었다. 아버지의 말뜻을 알겠니?》

《알고있습니다.》

《알았으면 됐다.》

돌아서서 발걸음을 내짚으려던 아버지가 돌아섰다.

《혹시 말이다. 여기서 단군무덤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나오지 않으면 박진규선생의 립장이 어떻게 되니? 그 선생한테 또 무슨 다른 후환이…》

《…》

《아니, 아니지. 내가 무슨 쓸데없는 걱정을… 지금이야 그런 일이 없을테지.》

아버지는 조용히 돌아갔다. 진웅은 아버지의 말속에 담겨있는 속대사를 충분히 알아들었다.

아버지는 30년전에 박진규의 머리에 복고주의의 감투를 씌웠던 사람으로서 자기를 뼈아프게 반성하고있는것이며 그런 일이 반복될가봐 우려하는것이다. 그와 함께 발굴사업에서 기적이 일어나기를 여생의 심혼을 다 바쳐 바라고있는것이다.

매 인간들의 생활은 제나름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제나름의 생활속에도 공동변수가 있었으니 당과 수령의 사상의지대로만 살려는 지향이다. 이것이 로동당시대의 인간생활의 진면모이다.

날이 밝아오고있었다.

사람들은 하나의 사상, 하나의 의지로 발굴사업을 진행할것이다. 이러한 일에 과연 실패가 있을것인가!

 

15

 

단군릉발굴을 위한 준비사업이 마감고비에 이르고있을무렵 뉴욕의 맨하탄에 있는 고급호텔 면담실에서 전례없이 성대한 기자회견이 진행되고있었다. 그 호텔은 이미 지구상에서 없어진지 오랜 한 아메리카원주민종족의 이름을 달고있었다. 이 호텔의 면담실로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뉴욕의 주요 신문, 방송기자들과 《워싱톤 포스트》 등 미국 전역의 이름있는 보도언론계들에서 특파된 기자들이 모여들었다.

이 기자회견을 주최한것은 미국력사학회 동방부였으며 사회는 동방부장 맥콘이 맡았다.

마이크앞에 나선 사람은 재미교포들속에서 교세를 확장하기 위해 미국에 와있던 남조선의 대종교의 14대 교주 안효식이였다. 그는 대종교라면 쓴외보듯 하던 미국력사학회가 이처럼 큰 규모의 기자회견을 조직하고 짐짓 성의를 보이는데는 그 어떤 리면이 있다고 여기고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처음부터 몸을 도사리였다. 특히 그의 눈길을 끈것은 기자가 아닌 재미교포력사학자 허진경이 맨 앞자리에 고개를 쳐들고 앉아있는 사실이였다. 허진경으로 말하면 대종교를 반대하는데 악명을 떨쳐온 사람이였다. 그가 반박정희감정때문에 미국으로 건너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안효식은 쓰거운 웃음을 지었었다.

그래서 안효식은 처음부터 그를 알아보았지만 랭랭한 표정을 지었다.

턱에 흰수염을 길게 드리우고 조선옷(흰 비단바지저고리)을 입고 마이크앞에 서있는 안효식은 1902년생이다. 경상남도의 의병출신으로 1924년 중국 상해동제대학 예비과를 졸업하였으며 1933ㅡ1945년기간 서울보성전문학교 교수를 지냈고 해방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교수로 있었다. 1948년에는 리승만괴뢰정부 초대문교부장관을 하였다. 그후 배달문화연구원 원장도 하였고 건국대학교 동아대학에서 교수로 지낸적도 있었다. 1969년 남조선《대통령》특사로 세계를 일주하였으며 1970년에 민족관건립위원회 위원장을 하였다. 악명을 떨친 남조선의 반동녀류시인 윤도숙의 첫 남편이기도 하다.

지난해 대종교의 14대 교주로 되였다. 경력이 보여주는바와 같이 한생이 반공으로 얼룩진 그가 민족종교인 대종교의 교주로 된걸 보면 인생말년에 정신적개변이 일어난것만은 사실이다. 홍안의 젊은시절부터 기르기 시작한 수염과 바지저고리를 입는 습관을 오늘까지 고수해온것은 그가 반공을 하면서도 민족의 얼만은 기나긴 생애를 통해 한번도 잃지 않았다고 봐야 할것이다.

관계부문에서 그의 최근동향을 분석한데 의하면 그는 우리의 자주통일로선을 지지하고있는것이 확실했다. 이것은 화석화된 그의 반공의식에 금이 가고있다는것을 의미하는것이 아니겠는가.

이 점을 미국력사학회(뒤에 미중앙정보국이 있겠지만)가 주목한것이다.

맥콘이 기자들에게 첫 질문을 요구하면서 한 기자에게 눈길을 돌렸다. 목적이 있는것만큼 주최측은 질문자를 미리 선정해둔것이 분명하였다. 동양인처럼 키가 작은 기자가 일어났다. 그는 류창한 영어로 한가지 질문을 제기하였다.

안효식은 영어를 알고있었지만 통역을 요구하면서 일어서느라고 뒤로 밀어놓았던 의자를 당겨다앉고 동시통역용레시바를 귀에 끼였다. 레시바에서 조선말이 울려나왔다.

《대종교의 발생과 교리에 대해 알고싶은데요?》

《예, 말씀드리지요.》안효식이 젊은 사람처럼 챙챙한 목소리로 첫말을 떼였다.

기자회견이 영어로 진행될줄 알았던 청중들이 일제히 레시바를 귀에 끼는데 조선사람인 허진경까지도 그렇게 했다. 모국어를 잊기라도 한것처럼… 하지만 실은 자기와 안효식과의 먼 간격을 강조하자는 심리에서였다.

은연중 그에게 신경이 가있던 안효식은 그 행동을 띄여보자 갑자기 영어로 돌려 말을 이었다.

《1909년 1월 15일 라철(본명은 라인영, 호는 홍암입니다. )은 서울북부 제동의 취운정에서 망국을 통탄한 민족주의자 수십명과 함께 북쪽벽에 단군의 신위를 모시고 하늘에 제사를 지낸 후 〈단군교포명서〉를 공포하였습니다. 이듬해 6월 교명을 대종교로 고쳤습니다. 이때부터 대종교이고 라철은 1대 교주입니다. 그는 〈백두산의 신령〉으로부터 〈3. 1신고〉라고 하는 단군의 뜻을 서술한 교리를 받았습니다.》

안효식은 그에 대하여 좀 더 설명했다.

그 교리를 요약하면 진리를 통달하고 공을 닦으면 죽어서 한울님앞에 가서 영원히 복락을 누리게 된다는것이다. 이것은 동학의 주문과 비슷하다. …

《한개 교의 교리로서는 너무 협소한데요?》하고 첫 질문자가 언질을 잡으려고 했다.

《난 아직 교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안효식이 긴 수염을 느릿느릿 내리쓸었다. 오랜 세월 포교활동을 해온 그는 확실히 자기 감정을 나타내지 않고 너그럽게 처신할줄 알았다.

《교리를 말하기에 앞서 대종교를 창시하면서 하신 1대 교주의 말을 먼저 전하겠습니다.》

그는 라철의 말을 전하였다.

《〈리왕조의 유생들이 단군의 신성한 시절은 기록하면서도 공맹정주 즉 공자, 맹자, 정자, 주자 등 유교학자들의 글에 치우쳐 단군의 신성한 교는 연구하지 못하였으며 자가(자기 집)를 지켜주신 성신(단군)을 받들어 공경하지 않고 받들지 않으면서 남의 조상을 높이며 남의 신을 공경하며 받드니 어찌 이렇게 리치에 거슬리고 상도에 어긋나는 일이 있으리요.〉라고 하면서 한 민족의 얼과 전통을 계승발전시켜야만 나라의 독립과 민족의 행복을 되찾을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말하고난 안효식은 첫 질문자를 한참 바라보았다.

질문자는 그가 뭐라고 말하는데 자기가 듣지 못하는줄 알고 귀에서 레시바를 떼여 손질하고 다시 끼였다.

그러나 늙은이들이란 말하기에 앞서 상대를 오래도록 바라보는 법이다.

《대종교는 정연한 자기의 교리를 가지고있습니다. 〈단군교8리〉와 〈천부경〉, 〈3. 1신고〉가 그것입니다. 〈단군교8리〉는 엄청나게 많은 량이여서 〈천부경〉부터 말하려고 합니다. 〈천부경〉은…》

이럴 때 포교인의 심리가 작용되는것이다. 과연 안효식이 심중의 심리를 몰라서 교리를 해설하겠는가.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신자들앞에서처럼 자연스럽게 교리를 풀어나갔다.

…《천부경》은 대종교에서 《3대경전》의 하나로 삼고있는 책으로서 우주만물의 생성원리를 밝힌것이라 하여 조화경이라고도 한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천부경》은 환웅시대로부터 구전으로 내려오다가 《단군전비》라는 비석에 알지 못할 문자로 기록한것을 신라시대의 시인이며 대학자였던 최치원이 한문 81자로 번역한것을 대종교를 창시하면서 현재의 우리 글로 번역하였다고 한다.

안효식의 설명에 청중은 벌써 지루감을 표시하고있었다. 하지만 안효식은 대종교의 최고교직자답게 조금도 주저하거나 당황해하지 않고 《천부경》에 대한 설명을 끝까지 계속하였다.

그것이 끝나자 《3. 1신고란…》하고 안효식은 주문을 외우듯 거침없이 내리엮었다.

하나속에 셋이 있고 하나로 돌아가는 세상리치에 관한 신의 가르침이란 뜻으로 하늘에 대한 가르침, 신에 대한 가르침, 천궁에 대한 가르침, 세계에 대한 가르침, 진리에 대한 가르침으로 분류되는바 그것을 일일이 풀이하자면 날이 아니라 달도 모자랄것이라고 하면서 안효식은 《그러니 〈단군교8리〉를 말하자면…》하고 청중을 둘러보았다.

《그건 너무 난해하구만!》

맥콘이 제가 질문자이기라도 한듯 손을 홱홱 내저었다.

안효식이 흰수염을 내리쓸며 허허 웃고나서 말했다.

《난해하기는 그리스도교의 성서나 이슬람교의 코란경도 마찬가지지요. 불교의 경전은 더 말할것도 없고. 말이 난김에 한마디 더 한다면 성서나 코란경을 문학이라고 한다면 경전은 철학이요. 철학은 원래 난해한 학문입니다.》

이때 좌중에서 누군가가 불쑥 일어섰다.

《당신이 걸고든… 지나친 표현이라면 용서하시오. 그리스도교나 이슬람교, 불교의 신자는 50억 세계인구의 과반수가 되오. 그러나 당신의 대종교의 신자는 얼마인가요? 고명하신 교주님!》

안효식은 이 기자회견이 조직된 목적이 대종교를 묵살하려는데 있음을 명백히 간파하였다.

《당신은 신자입니까?》

《아닙니다.》

《래세를 믿습니까?》

대답을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상대를 주시하던 안효식이 말했다.

《지옥에 가기는 두려운 모양이구만.》

좌중에 가벼운 웃음이 일었다.

그 웃음을 랭소로 일별한 안효식은 의분이 치밀어 큰소리로 명백히 대답했다.

《50만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더 늘어날거요. 5백만, 5천만, 전체 배달동포가!… 이번에 미국에 와서 교포들속에서 선교하면서 그것을 확신하게 되였습니다.》

사회자를 제쳐놓고 누군가가 또 일어섰다.

《세계의 3대 교리는 그 창시자가 있습니다. 예수와 모하메트, 석가모니이지요. 당신이 이자 렬거한 대종교의 교리는 누가 창제한겁니까? 그 허황한 단군인가요?》

장내에는 폭소와 함께 야유의 목소리, 지어는 휘파람소리까지 울려나왔다. 기자회견은 주최측이 노린대로 언쟁마당으로 변했다.

안효식은 침착성을 잃지 않고 떠들대로 떠들라고 내버려두었다가 잠잠해지자 여전히 젊은 청으로 말하였다.

《대종교의 교리는 우리 겨레가, 우리 배달민족이 창조한거요! 기자제씨들, 참가자 여러분! 저는 지금 이 기자회견의 진의도를 알게 되였습니다. 당신들이 우리 대종교를 얕잡고 내든 세계3대종교로 말하면 그것은 사람들을 하느님에게로, 래세에로 부릅니다. 그래 당신들은 하느님이나 래세가 있다고 믿습니까? 21세기를 눈앞에 둔 현 세계에서 그걸 믿는 사람은 없을것입니다. 그렇지만 믿습니다. 왜, 무엇때문에? 왜 대답이 없습니까? 제가 대답해주지요. 그건 하나의 지향이고 희망입니다. 우리 대종교의 교리도 솔직히 지향의 교리입니다. 우리 배달민족이 하나의 피줄을 이어온 단일민족임을, 우리 나라가 반만년의 력사국임을, 그래서 둘로 갈라질수 없음을 지향합니다. 허황한 하느님이나 래세보다는 얼마나 현실적이고 경제학적으로 말해서 얼마나 실리가 있습니까? 우리 배달민족이 원시조라 일컫는 단군이 당신들의 말대로 허황한 존재라고 인정합시다. 그래도 하느님보다는 허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믿습니다. 하느님보다는 낫기때문에!》

대답이 막힌 장내에 잠시 침묵이 깃들었다가 다시 끓기 시작했다. 야유하는 소리, 휘파람소리…

《아니다! 헛나발이다!》

《단군은 꾸며낸 거짓이다.》

삽시에 반발이 일어났다. 좌중은 웨쳐대는것으로도 모자라 일어나서 발을 굴렀다. 양키식 광증이였다.

안효식은 여유있게 서있다가 말을 계속하였다.

…우리 나라 력사기록에는 단군이 실재한 인물임을 립증하는 기록이 허다하다. 평양 강동에는 단군묘가 있다. 우리 조상들이 오래전부터 거기서 제사를 지냈다. …

항변하던 안효식이 목이 갈리여 기침을 했다.

이때 맥콘이 회심의 미소를 짓고 마이크를 입가까이에 끌어다놓았다.

《교주님, 그 무덤은 빈 무덤입니다. 당신네 나라가 해방된 직후 그 무덤을 발굴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제 그가 그것을 증명할것입니다. 그 사람은 우리 학회에 적을 둔 허진경박사입니다.》

그 말이 얼마나 무게가 있었던지 일시에 사위가 조용해졌다.

긴장한 눈길들이 허진경에게로 쏠리고 사진기의 렌즈들과 촬영기들이 일제히 허진경에게로 향했다.

허나 허진경은 고개를 숙이고 그린듯이 앉아있었다.

언쟁의 전과정에 그렇게 앉아있는 모습을 안효식이 이따금 띄여보았다. 안효식은 그가 이제 일어서기만 하면 무슨 말을 할것이라는것을 알고있다. 그 말을 한두번만 들어오지 않았으니까. 허진경은 여전히 까딱않고 앉아있었다. 자세히 보면 그의 얼굴이 해쓱하게 질려있고 식은땀이 이마에 내돋은것을 볼수 있을것이다. 그는 좀체로 일어설 잡도리가 아니다. 아니, 일어서고싶어도 일어설 힘을 잃은 허탈상태에 빠진 사람모양 축 늘어진 상태이다. 그는 장내의 모든것, 방청자들의 뭇시선들과 촉수를 세우고있는 렌즈와 마이크들, 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 조명이 집중된 속에서 스르르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

장내의 맨 구석에 앉아 이 광경을 지켜보다가 왜서인지 안도의 숨을 내쉬는 녀인이 있었다. 그는 머리에 백발을 얹었으나 젊은 시절의 미모가 그대로인 리금순이다.

리금순은 승리자인 안효식에게 축하의 눈길을 보냈다.

그때 안효식은 품속에서 모서리가 불에 끄슬린 흔적이 있는 흰기발을 꺼내들었다. 거기에는 흡사 신령의 모습과도 같은 거인의 초상이 그려져있었다.

《우리 대종교는 창제이래 일제의 탄압을 받아왔습니다. 일제의 탄압으로 국내에서 견디지 못한 많은 교인들은 멀리 만주땅에 피신하지 않으면 안되였습니다. 그러나 일제는 너무나 집요하고 악착하였습니다. 그들은 만주까지 쫓아와서 교인들이 사는 마을을 무차별적으로 초토화하였으며 단군유물을 불살랐습니다. 그러나 배달의 얼은 불사른다고 없어지고 짓밟는다고 죽지 않는 영원한 신령입니다. 이 단군초상기는 만주의 재더미속에서 살아남았고 대대로 전해져 오늘은 대종교의 교기로까지 승화되였습니다.

미국의 여러분, 신사숙녀 제씨들!

본인은 여기 미국땅에 와서 북조선적대시정책을 똑똑히 알게 되였습니다. 당신네 당국은 조선민족의 얼이 하나로 합쳐지는것을 바라지 않고 영원히 둘로 갈라놓으려고 하고있습니다.

지금 미국은 〈북핵문제〉를 들고나오면서 동포의 나라인 북에 선전포고를 하려고 하고있습니다. 대종교는 이를 반대합니다. 북에 대한 선전포고를 전민족에 대한 선전포고로 간주합니다.

바로 그것이 두려워서 당신들은 우리 대종교를 질시하고 고립, 와해시키려고 하는것입니다.

그러나 안됩니다.

우리 수십만의 대종교인들은 하나가 열, 백이 천이 되여 단군성왕을 지켜낼것입니다.》

안효식은 단군초상기를 마구 흔들어대며 소리높이 웨쳤다. 아흔에 난 늙은이같지 않았다.

《단군성왕이야말로 우리 조선민족의 얼이며 민족의 종자입니다!》

리금순은 정신없이 박수를 쳤다.

혼자서 치는 박수였지만 그것은 온 장내를 흔들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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