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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소설 <아리랑> 4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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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2,090회 작성일 16-02-12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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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이즈음 전상음은 참으로 의미심장한 나날들을 보내고있었다. 상음은 강진호네며 혜영이네들, 여섯살잡이 유치원꼬마 리강이를 비롯한 《아리랑》에 참가하는 출연자들을 만났다. 전상음은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 이 평범한 인간들의 정신세계에 무엇이 차넘치고있는가를 알게 되였다. 동시에 《아리랑》이 내포하고있는 거대한 력사적의미와 무게, 절절하고 엄숙한 민족사적인 요구를 느끼게 되였으며 《아리랑》의 저력이 무엇인가를 다시한번 절감하게 되였다.

고대로 인류사를 돌이켜보면 각이한 사회정치적, 문화적, 경제적, 신앙적인 문제로 하여 분렬과 반목, 대립의 력사를 거치지 않은 민족이나 국가는 없었으며 그럴 때마다 정치가라고 하는 사람들은 그 해결방도를 모색해왔고 이른바 단합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 과정에 그들은 문제해결의 가장 합리적이고 정정당당한 방법은 오직 조직적인 폭력, 물리적인 강력한 힘이라고 인정하게 되였으며 또 그것을 피치 못할 력사의 순리로 여기며 전쟁이라는 수단을 서슴없이 선택하군 해왔다.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를 비롯한 아메리카나 서유럽나라들의 력사는 젖혀놓고서라도 가까운 곳에서 그것을 찾아본다면 중국의 력사가 지극히 적중한 사례로 되지 않는가. 힘으로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이 그랬고 명태조 주원장이 그러했으며 누루하치의 청나라가 바로 그렇게 일어섰다. 정말 이 세상의 대소국가들, 제 민족의 력사를 살펴보면 천하의 혼란과 대립, 불신을 해소하고 단합을 도모할수 있는 최상의 수단과 방법은 전쟁, 오직 이것뿐이였다.

이 나라의 력사를 소급해도 마찬가지였다. 역시 옛일은 그만두고라도 일본통치의 세상이 끝장난 뒤 나라가 둘로 갈라지고 그다음 이른바 잃은 땅을 회복하여 민족의 통일대업을 이룩한다는 명분하에 미국을 업고 리승만이 일으킨 6. 25동란이 그러한것이다. 이후에 남조선에서 일어난 파격적인 사회적혼란과 불안정한 사태들, 4. 19봉기며 80년대 초반에 일어난 광주인민봉기는 어떻게 끝을 맺었던가.

매번 국가의 조직적폭력으로 숨을 거두었고 류혈적인 대량살륙의 참극으로 막을 내리지 않았는가. 그러고보면 물리적인 힘에 의한 국정과 민족적인 안정은 그네들이 말하는 온갖 사회적혼란과 무질서, 대립과 모순을 해결하는 가장 지극히 옳은 방법인듯 하다. 하지만… 그러나 력사는 우리에게 진리는 그것이 아니라고 말하고있지 않는가.

전쟁으로 부를 이룩한 나라 영원한것을 보았는가. 물리적인 힘으로 저들의 영세부강을 떨친 민족이 이 지구상에 어디 있는가. 부에 대한 욕망과 타인에 대한 배타심에 떠밀려 가마속의 물처럼 서로마끔 솟구쳤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한때 한시절이였고 다름아닌 저들이 숭배하는 그것때문에 망했고 조락했으며 쇠약해지군 했다.

현세기에 제국이라 자칭하며 물리적힘을 만능으로 여기는 미국의 운명도 마찬가지일것이다.

그러면 《아리랑》이 남과 해외에 사는 우리 동포들에게 그리도 감격스러움을 한가득 안겨주는것은 무엇때문인가. 반백년동안 서로 다른 사상과 가치관의 영향속에 살아 극도의 이질성이 배인 우리들이 어째서 한순간에 울고웃으며 호응하게 되는것인가. 뿌리 든든한 자기 식의 경제력을 가지고 대단합을 주장한것이 아니라 세인이 인정하는 강대한 군사력을 시위하며 통일을 하자고 한것이 아니라 오로지 세상 고결하고 아름다운 예술로써 민족통일이라는 력사적대업을 성취하려고 결심하신 김정일국방위원장님의 뜻을 력력히 느껴서일것이다.

통일장창작과정에 이 상음이의 불민한 과거를 아셨지만 아량을 베푸시고 외려 친구를 허물한다 탓하며 바른 예술과 인간, 조국과 민족애에 대하여 하나하나 일깨워주셨다는 그분, 오늘 얘기를 들어봐도 위원장님께서 비단 통일장만이 아니라 《아리랑》의 모든 장, 경들도 자상히 관심해주셨다니 전작품에 흐르는 김정일국방위원장님의 열렬한 민족애를 느끼고는 어느 누구인들 가슴을 활짝 열어제끼고 《아리랑》을 받아들이지 않겠는가.

감격스럽다. 그저 감개무량하기만 하다. 예술을 통하여 인식되는 정치의 고상한 뜻과 지향, 정치에 의하여 가미된 예술의 신선미, 이것은 마치 트리스탄화성처럼 서로 배리되는것 같지만 조화의 극치를 이루며 북받치는 애정을 금할수 없게 한다.

오늘 인간재능의 높이는 우주의 령역을 헤아리는데까지 이르렀으나 그에 못지 않게 키를 다투는것은 온갖 비인간성이다. 사람들사이의 신뢰와 협조정신이 점점 사멸되여가고 고독과 우울, 염세와 타락, 야만적인 생물학적먹이사슬관계만이 존재하는 현대자본사회를 굽어보며 이런 예술작품이 등장하였다는것은 인류를 위하여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사실 예술이란 선과 정의, 사랑과 헌신을 비롯한 인간성정의 근본인 정한 마음의 반영이다. 이렇게 놓고볼 때 나는 누가 내게 《아리랑》이란 무엇인가고 묻는다면 단연코 진정한 힘에 대한 찬가라고 대답하고싶다.

《아리랑》!

세월의 년륜과 언제나 따라울리며 이 민족의 가슴을 저리게도 적셔온 이 노래, 해묵은 력사의 락엽을 들추어보면 그저 세태며 풍월이요, 기껏해야 향촌자랑, 애정비사였고 전민족적인 애가로 불리워졌던 1926년 그때에도 망국노의 통탄과 슬픔을 터뜨리는 비가였던 이 노래. 그랬던 이 《아리랑》이 오늘 새로운 뜻을 가지고 자랑스럽게, 영광스럽게 들리는것은 바로 이때문이 아니겠는가.

아! 내 이제 이 위대한 나의 북부조국을 위하여 할수 있는 일은 무엇일가. 비록 고목이 되였지만 나의 아리랑민족을 위해서, 우리들이 한결같이 희망의 등대로 여기는 이 소중한 북부조국을 위하여 무엇인가 확실히 기여해야 하지 않는가. 무엇으로, 무엇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

《이보게, 상음이!》

누군가의 목소리에 전상음은 상념에서 깨여나 머리를 돌렸다. 채양이 긴 흰 운동모에 아래우에 푸른빛운동복을 차려입은 림진우가 유보도로 내려오는 계단우에서 그를 찾고있었다.

《뭘 그러고 앉아있나? 인츰 체육대회가 시작되겠는데.》

《이리 좀 오라구.》 전상음은 손짓으로 진우를 불렀다. 《10시에 시작한다지? 아직 시간이 조금 있구만. 내 하고싶은 말이 있어 그러니 잠간 앉았다가 가세.》

진우가 내려와 한절반 물에 잠겨있는 바위우에 걸터앉자 전상음은 심중한 낯색을 지었다.

《내 오늘에야 모든것을 알게 된것 같애. 오늘에야 비로소 북의 진짜 힘을 알게 되였단 말이네.》

《?》

《자네에게 채 하지 못한 얘기가 많지만 이것부터 시작해야겠구만.》

전상음은 무릎우에 놓여있던 중절모를 한옆에 놓고는 올방자를 지으며 편안히 앉았다.

《내가 음악창작도 명예에도 환멸을 느끼고 돌아앉아 남과 북의 력사를 연구해보았으며 북의 정당성을 인정하기 시작하였다는것은 이미 들어 알고있을거네. 그러나 다는 몰랐지. 몰랐을뿐더러 아무리 정의로운 북이라고 해도 미국의 세계최대의 군사적힘과 거시경제의 위력에 의하여 언젠가는 슬픈 종말을 하고말것이라고 여겨왔구.

1993년에 있은 북미핵대결이 파국적인 지경에 이르렀을 때 이 상음이는 어쨌는지 아나. 부끄러운 일이지만 난 비애에 잠겨있었네. 미국의 전폭기며 미싸일들, 함선집단이 공화국을 위협하며 핵사찰을 강요하는것을 보고 캔지스 씨티교외의 한 시골식당 어두운 구석에 앉아 술을 동무삼아 약소민족의 서러움을 통탄하다가 머저리같이 극단적인 잡도리까지 했었지. 하지만 북은 나의 이 나약한 억측을 보기 좋게 뒤집어놓았네. 자국에 준전시상태 선포,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서의 탈퇴. 이보게 진우, 그때의 온몸이 흩어지는것 같던 격정이며 환희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세계를 진감시키는 대지진같은 사변은 그 이후에도 계속 일어났네.

지꿎게도 연구해봤네. 원인이 도대체 무엇인가 그걸 말이지. 〈세계유일초대국〉이라 자타가 인정하고있는 북미합중국이, 비위에 거슬리면 주권국가 하나쯤은 하루아침에 짓뭉개버리는 미국이 무엇때문에 자그마한 나라, 북부조국앞에서는 기신을 못하는가. 군사력때문인가? 물론 일리가 있는 견해야. 듣자니 북인민군의 강력에 대해서는 미국과 서방도 인정한다고 하데. 하지만 결코 이것만을 가지고는 의혹을 풀지 못하지. 그렇구말구.

그렇게 부심하며 알고저 무진 애를 썼던 원인을 내 오늘에야 찾게 되였구만. 이 5. 1경기장에서 〈아리랑〉을 보고나서야, 사람들을 다 만나보고나서야 비로소.》

림진우는 상음의 무릎우에 손을 얹었다.

《자네가 그걸 알았다니 정말 기쁘이, 비록 뒤늦은감은 있지만. 그렇네. 령도자와 천만군민이 하나의 혈육으로 맺어진 일심단결, 그것이 우리 공화국의 진정한 힘이지. 이것이 민족대단합의 기초이기도 하고.》

《옳네, 옳아. 아침에 진리를 깨닫고 저녁에 죽는다 해도 한이 없으리. 이건 누가 한 말이였던가. 음, 하긴 그게 문제는 아니지.》

전상음은 해빛을 한가득 이고 조용히 뒤척이는 강수면의 한곳을 지꿎게 응시하다가 말을 이었다.

《진우, 내 언젠가 미들강 서북쪽계곡에 갔다가 가파로운 여울목을 힘겹게 거슬러오르는 한마리의 송어를 본적이 있었네. 알을 쓸러 가는 길이였더군. 그런데 그 송어는 군데군데 비늘이 벗겨지고 상처를 입지 않았겠나.

오르다가는 떠내려가고 그러다가는 오르고. 물살이 빨라서보다도 굶주림에 불행이 겹쳐 기력이 떨어져서 그리하지 않겠나. 그래도 그놈은 속을 사려먹었는지 끝내 여울목을 넘어서고야말더군.

요새 그것을 몇번이고 생각해보느라면 이 상음이는 송어라는 미물보다 못한 인간이네. 들은데 의하면 송어라는 놈은 제 고장에 알을 쓸러 가면서 거의나 먹지 않는다고 하더군. 마치 나서자란 고향에 드릴 귀중한 새생명에 일이라도 생길가봐 그러는지.

한데 인간이라는 나는 이 땅을 뜬자체도 불효요, 와서도 불효라 조국례찬의 자그마한 즉흥곡 하나 들고오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량심의 가책도 못 느꼈으니 불효중의 이런 불효 세상에 어디 있겠나.》

《…》

《그래 내 자네의 도움을 받고저 하는것이 있으니 영향력을 좀 행사해주게.》

림진우는 당혹하여 그에게 반문했다.

《무엇인지 모르겠는데 진심을 바치는것이면 되지 뭐 나까지 필요한가. 도대체 무슨 일이게 그러나?》

《내 이제 북사람들을 격려하고 조국에 도움이 되는 음악작품을 쓴다는건 어불성설이고 그렇다고 해서 심장으로 느낀것을 토로한다는것은 번지르르한 빈말이 되겠고, 사실 그런 말이야 뭐가 힘이 들겠나. 해서 내가 결심한것은 내 재산을 통채로 조국의 강국건설에 희사하려는것이네. 이런 중요한 문제에 북예술계의 로명사인 자네가 나서주지 않으면 누가 나서겠나?》

《뭐라구? 재산을?》

상음은 놀라와하는 림진우의 태도가 오히려 불만스러웠다.

《그렇네. 한데 어째서 그러나. 내 재산이 적은것 같아서? 아마 자넨 동산, 부동산까지 합해서 내 재산이 어느 정도인가를 들으면 깜짝 놀랄걸세.》

《?!》

《혹시 이것두 적어서 그러나?》

《아니네, 아니야.》

림진우는 손을 저으며 급급히 부정했다.

《즉흥적인 결심은 해로운거네. 참참하게 다시 돌이켜보라니. 그래 만일 그렇게 되면 자넨 어떻게 살아가나, 응? 다름아닌 미국에서 말이야.》

《사람의 속을 함부로 평가하지 말게. 우리 나인, 더우기 내 나이엔 그런 말이 어울리지 않네. 뭐 내가 즉흥적인 결심을 했다구? 내 말을 마저 들어보고 얘기하게.》

전상음은 기가 막혀 벌컥 성을 내고는 진속을 털어놓았다.

《내 북에 와서 두루 돌아다니며 구경을 하면서 알게 되였네. 일본에 사는 김만유씨는 북에 병원을 기증했더군. 그 말고라도 많았네. 어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나? 며칠전엔 나와 함께 북에 온 재미동포들이 〈아리랑〉을 관람하고나서 어쨌는가. 그길로 주체사상탑앞에 가서 춤을 추고 〈아리랑〉을 부르며 밤을 샜다는거네. 그걸로 끝나면 이러지도 않을거네. 끝나서는 호텔에 돌아와 북부조국에 도움을 줄 토론을 했다는게 아니겠나.

원래 나도 그런 결심이 있었는데 역시 이 상음이는 〈부리당의 하늘소〉심정에 있대놔서 북사람들이 혹 시시하게 생각하지 않을가 하고 재댔지. 주위사람들의 행동을 보고서야 가책이 되더군.

그래 내 궁리하던 끝에 결심한건데 자넨 왜 이의를 표시하나. 내 아무렴 그걸 내놓고 당장 급사할것 같나. 천만에, 난 일없어. 홀몸인데다가 나를 인정해주는 우리 동포들이 있거던. 그러니 진우, 날 막지 말아주게. 나의 진정을 받아서 노력해주게. 그래주지?》

림진우는 대답대신 허허 하고 웃고말았다. 진정에서 우러나온 결심이라는것은 사실이나 쉽게 응해줄수 없는 심중한 문제이기때문이였다.

《하여튼 한번 알아봐주지.》

비록 믿음성이 부족한 대답이였으나 상음은 기분이 흥그러워났다. 많지는 않지만 그게 민족의 의기를 떨치느라 고생많은 북부조국에 보탬이 된다면 그리고 그것이 조국과 민족앞에 진 빚을 얼마만이라도 갚는걸로 된다면 여북이나 좋겠는가.

《자, 이젠 일어나세. 주석단명예손님이 여기 와 앉아있으면 어떻게 하나. 이자 보니 영접위원회사람들이 자넬 찾더군. 빨리 가야지?》

전상음은 일어나며 진우의 재촉에 흥뜬 어조로 응수했다.

《암, 빨리 거동해야지. 응원도 열심히 하고 구경도 실컷 해야 하구말구. 참, 자넨 어느 팀인가. 〈금강산〉 아니면 〈묘향산〉?》

《갑자기 건 왜 묻나?》

《이왕이면 자네팀을 응원하고싶어서 그래.》

《이런 편벽쟁이 봤나. 친구가 있다고 네편, 내편을 가를텐가. 〈아리랑〉을 부르는 이 5. 1경기장에서 말이야.》

《〈아리랑〉, 5. 1경기장.》

진우의 핀잔을 되뇌여보던 전상음은 머리를 쳤다.

《아뿔싸, 그렇지. 자네말이 옳으이. 팀이야 관계있나. 다 내 사람, 〈아리랑〉민족이니 모두 응원해야 하는게 우리들의 본자세렷다.》

《그렇구말구. 북, 남, 해외가 한마음을 쏟아 모두를 응원해야지.》

《한마음을 쏟는다. 좋구만. 가자구, 어서.》

서두르며 중절모를 쥔 전상음은 제잡담 일어서며 진우를 재촉했다.

 

석양빛이 청류벽을 연하게 물들이고있었지만 릉라도의 분위기는 여전했다. 흠뻑 체육경기를 하고 포식을 한 뒤라 모두들 너도나도 춤판에 뛰여들어 손을 휘젓고 어깨를 들썩이며 돌아갔다. 《양산도》가 끝이 나니 《노들강변》이 잇달으고 그뒤로는 《룡강기나리》며 《꿍니리타령가》가 련달아 따른다. 신록이 짙은 공원숲속은 흥에 뜬 북소리, 노래소리로 온통 끓고있었다.

《어- 좋구만. 한잔 또 주게.》

취기에 젖은 눈으로 춤을 추는 사람들을 얼이 나간듯이 구경하던 전상음은 거나해서 빈잔을 내밀었다.

《내 알기에는 자네 술엔 약골이댔는데 대단해졌구만. 벌써 두병째야, 인삼술 40도짜리.》

그러면서도 술을 부어주는 진우였다.

《흥 내가 약골이야. 모르는 소리. 저 미국에서 살면서 한때 90도짜리 술 이렇게, 이렇게.》

전상음은 열손가락을 두번 굽혔다폈다하며 으시대다가 그만에야 피씩 웃으며 손짓을 그만두었다. 취중에도 제 언행이 지나치게 과장된것이 부끄러웠던것이다. 그래도 정정은 안하고 뒤를 어물쩍하게 가무렸다.

《그 정도로 셌단 말이야. 그리고 아이오와에서 번민할 땐 아이구, 이런 실수 봤나. 자네넨 미국소리 하면 좋아 안하지, 미안하이.》

전상음은 술잔을 내려놓고나서 웃몸을 앞으로 내밀며 맞은편에 앉은 진우의 귀를 잡아당기였다. 그리고는 입을 바투 가져다대고 그로서는 조용히 말한다는것이 소리를 치다싶이 하였다.

《이봐 내 친구야, 내 자네에게 한마디 조언을 하겠는데 귀를 씻고 정히 듣겠나?》

《그러지.》

《〈아리랑〉 마스게임 둬달 연장하게.》

《그건 내 맘대루 못해.》

《무슨 소릴 하는건가. 자네야 김주석님의 예술상수상자이고 영웅에 국회의원인데 왜 못한다구 그래? 자금때문인가? 그럼 내가 대지. 그래도 사정이 여의치 못하면 이 전상음이 〈아리랑〉마스게임을 통채로 사겠어. 사가지고가서 미국땅 한복판에 〈아리랑〉 큰마당을 요란하게 펼쳐놓겠단 말이야. 그래 연장하겠나 못하겠나?》

《허허, 이거 참. 알겠네, 알겠어. 토론해보지. 한데 이건 좀 놓게, 사람들이 봐.》

둘러앉은 사람들속에서 웃음이 간간이 새여나왔다. 그제야 전상음은 귀박죽을 잡은 손을 놓았다.

《그래야 해, 이건 단순히 내 개인이 바라는것이 아닐세. 민족의 소망이야. 〈아리랑〉을 너무 서둘러 끝내려 하거던. 어-기분좋다!》

상음은 술잔을 들었다가 빈잔이라는것을 알고 도로 내려놓았다. 기분이 턱없이 떠서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았으나 그래도 주정을 하고싶은 심정이다. 하여 전상음은 진우에게 또 트집을 걸었다.

《이보게 친구, 내 임자 속을 꽤나 썩였지?》

《어느 고망적의 일이라구.》

《그래도 사람마음은 그렇지 않아. 삭여주지?》

《그래그래.》

《그럼 그걸 증명한다는 뜻으로 노랠 한마디 같이 부르자구. 알겠나?》

《뭘 부를가?》

《거 있지 않아? 자네랑 나랑 진애가 쩍하면 모여앉아 부르던거. 물을 팔고나서 저녁에 돌아올 때두 불렀구 생일날 범벅덩어리를 놓고 눈물을 흘리며 부르던 노래.

자네 벌써 잊은게 아닌가. 진애가 피를 팔고 누운 날 저녁 토방에 같이 앉아 진애가 좋아하는 노랠 부르며 그녀를 위로해주던거 말이야.》

《오오, 〈고향하늘〉, 그거였지. 좋아, 부르세.》

불렀다. 상음은 목안이 꽉 잠겨들었다.

 

새파란 고향하늘 그아래는

나서자란 고향집이 기다린다오

고향을 떠나온지 그 몇해런가

저 하늘만 바라보면 가고싶어요

 

추억깊은 노래였다. 애틋하고 소중한 옛시절의 고운 추억을 듬뿍 담아 실어오는 이 노래.

《아, 좋구만.》

림진우의 젖은 목소리가 귀전을 울린다.

《좋지. 그러나 그때 우린 제 하늘을 쓰고살지 못했지. 남의 험한 하늘을 이고있으면서도, 그 세상에선 절대로 안된다는것을 몰라가지고도 꿈과 희망을 읊조렸댔지.》

《그런가보이, 그게 어제일같은데 세월은 벌써 반백년나마 흘러갔구만.

추억이라! 추억은 귀한것이지만 그런 추억은 다시 와서는 안될 일. 그게 자네나 나의 지금의 심정일거네. 안 그런가?》

전상음은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렇지. 그 시절은 우리들의 인생에서 지우지 못할 귀중한것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되풀이돼서는 안될 시절이기도 하다.

그들이 앉아있는 곳으로 전상음이와 함께 호텔에 머무르고있는 낯이 익은 동포들이 다가왔다. 그 유명한 교예배우처녀며 교예장을 창작한 담당자가 여기 있다는것을 알고서는 무가내로 춤을 추자고 이끈다. 상음이들의 눈치를 보던 정미와 강진호는 림진우가 눈짓하자 몸을 일으킨다.

《가만, 같이들 갑시다. 나두 춤을, 춤을 춰야겠어.》

몸도 가늠을 못하면서 전상음은 끄른 넥타이를 아예 풀어내리며 진우를 일으켜세우려 했다.

《아니, 가만가만. 저들끼리만 가지 말라는데. 나를 버리고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탈난다, 여보시오, 벗님네들, 같이 가소이다. 이건 또 뭐야. 이건 또 무슨 엉터리야, 청승맞게.》

혀꼬부라진 외마디노래를 뽑아내던 전상음은 중언부언하며 혀를 찼다.

《자넨 안되겠어, 나도 그렇고. 우리같이 늙은것들이 어딜 끼운다고 그러나.》

《아참, 그렇지.》

전상음은 몸을 주체하기 힘들어서라기보다 춤을 청한 상대가 모두 젊은이들이여서 포기해버렸다.

《그런데 의견이 있어. 무, 무곡이 다 좋긴 한데 내가 좋아하는것이 아직두 나오지 않거던. 이봐 진우, 정미야, 진호군, 저기 가서 이 전상음씨가 그 노래, 그 노랠 듣고싶어한다고 알려주게.》

젊은 사람들이 의아해하였다. 상음은 저로서도 제목을 잊어버려 끙끙대였다.

《제목은 잘 모르겠는데 가사가 거 무슨 복숭아동산이 어떻고 흥흥하는 조흥구도 있는건데.》

《〈강성부흥아리랑〉 말입니까?》

상음은 반색을 하며 맞장구를 쳤다.

《그거지 그거야, 알겠나?》

곧 릉라도상공으로 《강성부흥아리랑》의 선률이 퍼져올랐다.

 

무릉도원 꽃펴가니 흥이로다 아리랑

제힘으로 세워가니 멋이로다 아리랑

장군님의 손길따라 주체강국 나래친다

아리아리 아리랑 스리스리 스리랑

강성부흥아리랑

 

그래, 그렇지. 저 노래야말로 현대 아리랑민족의 오늘과 래일이 비낀 노래이다. 앞길이 밝고 휘황한 이 민족을 누가 이젠 함부로 업수이 볼것이며 어느 누가 우리 민족이 가는 앞길 감히 가로막을소냐. 암, 안될 일이지. 우리의 정신이 청초하고 이렇게 굳센 담에야. 나는 왜 생에 황혼이 진하게 비낀 다음에야 진짜로 사는 맛을 알게 되였을가. 후- 오래오래 살고싶구나. 나의 귀중한 북부조국을 위해서, 새롭게 탄생하여 도도한 력사의 자취를 뚜렷이 찍으며 매진하는 우리 민족을 위해서.

한스러웠다. 헛되이 흘러가버린 귀중한 인생 칠십여년이 야속하기만 했다. 하지만 전상음은 후회하고싶지 않았다. 남은 여생이나마 통일성업에 바칠수 있는 힘과 정신의 뿌리가 가슴속에 깊숙이 내리였다는것을 드디여 알았던것이다. 어스름이 깃들고 여기저기 희푸른 외등들이 부드러운 빛을 뿌리는 공원숲속은 여전히 떠들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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