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소설 <아리랑> 3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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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늦은 저녁.
부대지휘부현관문을 열고 나선 박철건은 아까부터 요란한 동음을 울리며 대기하고있던 장갑차에 올랐다.
《3대대 1중대로.》
철건은 변속기를 당기며 뒤를 돌아보는 운전수에게 목적지를 알려준다음 늘 하는 버릇대로 포가에 얹혀있는 기관포탄띠를 손에 쥐고 매만지였다. 줌이 벌게 감촉되는 포탄알들, 페부에 스며드는 매캐하면서도 약간 시큼한 배기가스, 6개의 바퀴들이 굴러가는 력동적인 움직임, 늘 익은 환경이였다. 박철건은 안정감을 느끼며 기관포의 포가에 한어깨를 비스듬히 기대였다.
며칠전부터 그는 초긴장상태에서 일하고있었다.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철건이 심혈을 기울여 작성한 4단계훈련안을 검토하시고 대단히 만족해하셨다는 내용을 전달받았기때문이였다. 이것은 곧 4단계훈련이 시작된다는것, 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이 떨어지면 신속정확히 임무를 수행할수 있게 부대의 싸움준비상태를 완전무결하게 갖추어야 한다는것을 의미하는것이였다. 그만큼 박철건의 부대는 대련합부대의 주타격집단중에서도 예각을 맡고있는 부대였다.
하여 그의 부대는 폭풍전야의 긴장된 분위기속에서 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을 기다리고있었으며 박철건에게 있어서 매일 관하구분대들의 훈련진입정형을 재검열, 재검토하는 사업은 하나의 습관처럼 되였다. 새 장비도입문제때문에 부대에 내려온 장비부문 일군들과의 협의회를 앞두고 3대대 1중대에 내려가는것도 이런 연장선에서 하는 걸음이였다.
불원간 명령은 떨어질것이다. 그러면 어차피 부대는 기동전개를 해야 할것이고. 그런데 어데로 기동하게 될것인가. 동부? 서부? 타격목표는 무엇이겠는지. 탄띠를 매만지며 부대의 행동방향을 예측해보던 박철건은 이내 지레짐작을 그만두었다. 어떤 조건과 환경이 조성되든지 부대는 오직 명령을 무조건 수행해야 하며 무쇠주먹전투집단답게 훈련에서 본때를 보여야 하는것이다.
하지만 박철건은 어쩐지 불안했다. 이 한달동안만 해도 몇차례나 내려와 몸상태를 검진하는 군의국일군들이며 은근히 휴양소걸음을 권고하는 정치위원과 련합부대장의 눈치를 보니 내적으로는 건강문제로 자기를 훈련에서 이미 제외시키지 않았는가 하는 우려가 있었던것이다.
중대에 도착한 박철건은 우선 장갑차며 전투기술기재의 동원상태를 검열한 다음 병실로 향하였다.
《김중철이 안 보인다?》
마지막으로 3소대병실에 들어선 박철건은 어둑한 방안을 까근히 살펴보다가 하층 맨끝의 두번째 자리를 가리키며 중대장에게 고개를 돌리였다.
《3소대장과 야간훈련중에 있습니다.》
《무슨 훈련인데?》
《일 대 일 맞서기훈련입니다.》
《일 대 일 맞서기?! 모를 일이다. 중철이 그걸 못하다니.》
《저두 리해가 안됩니다. 강하훈련이나 사격같은건 신병들중에서 제일 우수한데 맞서기만은 아예.》
《그렇소? 훈련장소가 어디요? 가보자우.》
박철건은 마저 돌아보라는 뜻으로 참모장에게 손짓하고는 중대장을 앞세우고 병실을 나섰다.
김중철과 그의 소대장은 소대병실로부터 오십보가량 떨어진 산탁밑의 림시화목장에서 한창 훈련에 열중하고있었다.
군복저고리의 웃단추를 하나 벗긴 철건은 옆구리에 손을 얹고 땀을 철철 흘리며 맞서기훈련을 하고있는 두사람, 특히 김중철의 동작을 유심히 뜯어보았다. 혼자서 수행하는 동작은 나무랄데가 없었다. 그런데 맞서기를 할 때면 이따금 사달이 나군 했다. 동작수행은 둘째치고라도 상대방이 공격속도를 높이면 제절로 무기를 떨궈버리고는 허리를 구부리며 두손을 펼쳐든채 무엇인가 덮치는 자세를 취하는것이였다.
《이젠 쉬구들 하지.》
박철건은 구령을 치려는 소대장을 제지시키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철건은 소대장이 조금 숨을 돌리기를 기다렸다가 그에게 물었다.
《중철이 왜 자꾸 무기를 버리고 자세를 다르게 취하는것 같소?》
《몸에 익은 레스링자세를 버리지 못했기때문입니다.》
20대 초반의 애젊은 소대장은 차렷자세를 취하며 거침없이 대답했다.
《극복방도는?》
《부단한 숙련과 대상훈련입니다.》
박철건은 수긍하며 중철에게 몸을 돌리였다.
《어때, 중철이. 퇴치할수 있어?》
《빠른 시일내에 무조건 퇴치하겠습니다.》
철건은 곁에 선 중대장에게 병실쪽을 손짓하며 일렀다.
《내 중철이 훈련을 조금 봐주고 가겠으니 소대장은 남고 동문 먼저 내려가오. 참모장동지에겐 한시간후에 떠나잔다고 말해주.》
부대가 주둔하고있는 곳은 북부지방이여서 초봄이라 하지만 날씨는 되게 추웠다. 게다가 이날따라 바람이 어찌나 센지 훈련장에 여러개의 백열등을 켜놓았으나 수시로 이는 눈보라때문에 한치앞도 가려볼수 없을 때가 드문했다. 철건은 웃동을 벗고 직접 대상해주며 부족점을 퇴치해주고싶었지만 그것은 욕망뿐이였다. 아직 몸상태가 좋지 못했던것이다. 중철의 훈련을 한참이나 봐주고난 박철건은 시계를 피끗 보고나서 그를 불러세웠다.
《그만하자우, 힘들지?》
《예, 힘듭니다.》
철건은 김중철의 솔직한 고백이 마음에 들었다.
《이겨내야 돼. 힘이 들 때면 항상 나는 영웅 김명철의 동생이다, 이걸 명심하라구.》
《알았습니다.》
《어서 옷을 입으라우. 감기 걸리겠어.》
솜군복상의를 집어든 중철은 량어깨부위를 잡고 빨래를 털듯 세게 흔들었다. 그 서슬에 주머니의것들이 떨어졌는데 그중의 하나가 바람에 날려 박철건의 발치에 굴러왔다. 철건은 그것을 주어들었다. 편지였다.
《평양시 모란봉구역 인흥중학교 장영수 올림, 누군가?》
《어릴적부터 저를 친형처럼 따르던 한동네 앱니다.》
《그래, 봐도 될가?》
중철이 응하자 박철건은 편지를 펼쳐 눈바투 가져다댔다. 철건은 16절지의 앞뒤에 빼곡이 박아쓴 내용을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편지서두부분에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오자 사랑하는 처녀가 련상되며 류다른 친근감과 그리움이 불쑥 솟구쳤던것이다. 그는 심장이 섬벅섬벅해나는듯 한 괴로움을 한숨에 실어내뿜으며 편지를 내밀었다.
《애가 여간내기가 아니구만.》
《그렇습니다, 그 앤…》
김중철은 상관의 목소리에 비낀 이상한 음영을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 제 흥에 겨워 영수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는것이였다.
《회답편지를 보냈소?》
《아직은…》
뒤를 가무리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김중철이였다. 그는 박철건이 캐물어서야 실토정을 했다. 영웅이 된다고 큰소리치며 떠나온지 반년도 퍽 지났는데 영웅은 고사하고 이렇다 할 자랑거리조차 없어 회답을 못하고있다는것이였다. 앞으로 모범병사가 되기 전에는 영수만이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편지를 하지 않을 결심을 세웠다고 한다.
《각오는 좋은데 그러면 안되오. 회답은 꼭 해야 돼. 중철이야 최고사령관동지를 만나뵈온 병사가 아닌가. 그건 모범병사보다 더 큰거야. 편지를 보니까 〈아리랑〉참가자들이 이 엄동설한에 여간 수고를 하지 않는데 그들을 고무해줄겸 회답을 해주라구. 그래야 자기도 분발이 돼. 알았어? 중철이.》
《알았습니다.》
《자, 이젠 우리두 가자우.》
박철건은 손채양을 하며 다른 손으로 중철의 어깨를 그러안았다. 골바람은 여전히 부연 눈보라를 일으키며 모든것을 삼켜버릴 잡도리인듯 기승을 부리고있었다.
사전에 충분한 료해사업이 있어서인지 장비부문 일군들과의 협의회는 예상외로 빨리 끝나게 되였다.
《최동문 왜 가나?》
박철건은 자기네 부서일군들을 따라 밖을 향하는 최문성대좌를 불러세웠다.
《오늘은 나와 함께 밤을 지내야지?》
《그야 물론, 한데 조금만 기다려주게. 래일 하게 될 802(박철건이네의 이웃에 주둔하고있는 부대)료해사업때문에 우리 동무들끼리 토론할것이 있어 그래.》
말을 마친 최문성은 나가려다가 군복웃주머니를 뒤적이며 그에게로 돌아섰다.
《깜박 잊을번 했구만. 받게, 집사람이 동무에게 쓴거야.》
《최동무에게 전하면 되지 뭘 이렇게 편지까지, 남편이 알면 안되는건가?》
《내가 왜 편지내용을 모르겠나. 에이참, 오죽했으면 제 심정을 글로 썼겠어?》
최문성은 무엇이 불만스러운지 혼자 혀를 찼다.
《좌우간 편지를 읽게. 이따 와서 진지하게 얘길 해보자구.》
박철건은 그가 나가자 편지겉봉을 뜯었다. 그는 가슴이 아까처럼 또다시 섬벅해나는감을 느끼며 빠르게 글줄을 읽어내려갔다. 최문성의 안해 김원향이 보낸 편지의 내용은 순전히 그와 심혜영의 관계문제였다. 사랑은 거리에 정비례된다, 혈붙이도 왕래를 안하면 남과 같이 되는데 련인관계는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박철건이네처럼 특수한 관계는 남자의 주동적인 행동을 절실히 요구하니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처녀를 만나야 하며 그것이 바쁘다면 편지라도 자주 해서 변함없는 굳은 결심을 처녀가 알도록 해야 한다, 편지의 골자는 이러하였다. 거리, 시간, 특수한 관계.
박철건은 편지를 접으며 허거프게 웃었다. 4단계훈련이 박두한 지금 언제 여기에 신경을 쓸 겨를이 있는가. 사실 그도 요즘 처녀를 몹시 만나고싶었다. 정치위원이 평양에 출장갔던 길에 심혜영이를 만났다는 소식을 들은 다음에는 더욱 그러했다. 최고사령관동지의 사랑속에 두번다시 생을 받은 사연을 듣고 심혜영이 그리도 감격해하더라는것이였다. 언제 식을 올리자는가고 물으니 얼굴이 빨개져가지고 대답은 피하더라고 한다. 정치위원은 그러면서 철건이 편지를 써보냈으면 하는 의향을 내비치는것이였다. 편지는 무슨, 맹꽁이같은것. 좀더 속이 타서 울라지.
불현듯 울리는 문기척소리에 철건은 편지를 겉봉에 넣으며 응대하였다. 문을 열고 들어선 군관은 통신과의 상급변신참모였다. 박철건은 그가 내미는 변신문을 받아들었다. 온몸은 전투적흥분과 긴장감으로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박철건은 변신문에서 눈을 떼며 버쩍 고개를 들었다.
《참모부성원들과 최문성부국장을 5분내로 지휘부에 도착시킬것. 내 차를 준비하오. 부대 폭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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