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소설 <아리랑> 11-12회 > 통일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통일게시판

조선소설 <아리랑> 11-12회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8,922회 작성일 16-01-16 19:10

본문

11

 

길, 끝없이 지나치고 마주오는 길. 어느때 한번 쉽게 달려보신적이 없는 전선길이였다. 황해남도의 토지정리전투정형을 현지에서 지도하시는 최근간에는 례년에 보기 드문 고온이 전선길을 달구고있었다. 그래서인지 차창을 지나치는 나무들의 이파리도 늘어져있는것 같고 옆시창으로 쓸어드는 바람마저도 흣흣한 열풍이였다.

차창턱에 한손을 얹으신 김정일동지께서는 떠가듯이 지나가는 푸른 전야를 바라보며 방금 떠나오신 배천군의 거문재벌을 상기하고계시였다.

산기슭마다에 촘촘히 들어앉은 아담한 현대식문화주택들, 그앞에 욕심스레 드러누운 드넓은 전야. 정말 몰라보게 달라진 리의 모습이였다. 그곳 관리위원장이 이걸 자랑하지 못해 무던히두 그랬지. 장군님, 그전에는 우리 농장원들이 모짐을 지고 논배미를 찾아 멀리두 에돌아다녔습니다, 길이 너무 오불꼬불 험해 리에서 제일 멀리 떨어진 먼구리골논에 갈려면 새벽에 집을 나서야 했습니다, 그래두 아침나절이 퍽 지나서야 도착하군 했습니다, 이제는 신선놀음이 되였습니다, 논두렁길이가 줄어들구 부침땅면적이 늘어난데다가 새로 한 포전도로가 아주 멋있어서 양복차림에 넥타이를 매구 다니고싶을 정도입니다, 토지정리를 하니 반년사이에 우리 농장이 아예 젊어졌습니다라고 하면서.

반년사이에 변모된 청춘대지! 감회가 새로우시였다. 인민군군부대들과 각도 돌격대들이 황해남도토지정리전투에 진입한것은 불과 반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군대와 인민은 최고사령관의 명령관철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서서 사생결단의 전투를 벌려 이 기간에 1단계목표인 5만정보토지정리를 완성했으며 이제는 2단계전투에 진입하게 되였다.

모든것은 정신력에 달려있다. 최고사령관이 바라고 당이 바라는것이라면 일심동체가 되여 산도 떠옮기고 바다도 메울 각오에 넘쳐있는 우리 군대와 인민의 정신력. 그래, 이게 모든걸 결정하지. 이것으로 우리는 조선혁명을 승리에로 이끌어왔고. 얼마나 달라진 우리의 모습이고 얼마나 달라진 우리의 정신세계인가. 지난날 렬등민족, 약소민족으로 멸시만 받아오던 이 인민이 오늘 이렇듯 세상이 부러워하는 정신력을 가진 인민으로 된것은 조선민족사에서 참으로 위대한 전변이 아닐수 없는것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자신의 좌우명을 다시금 확신하게 되시였다. 그러느라니 생각은 자연 어버이수령님께로 흘러갔고 이런 인민을 키우신 수령님의 업적의 크기가 헤아려지게 되시는것이였다. 그렇지, 우리 인민이야 수령님께서 정을 들여 키우셨지.

배천군 읍소재지를 지난 야전차는 서북쪽으로 방향을 돌리였다.

여전히 한자세로 시창밖을 내다보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얼핏 련상되는것이 있어 오른손으로 옆좌석에 앉은 당중앙위원회 비서 김준남의 무릎을 가볍게 다치시였다.

《준남비서, 저게 어딘지 아오?》

준남은 허리를 구부리며 저앞, 염열에 녹고있는듯이 흐물거리는 봉우리들에 시선을 모았다.

《배천군 오봉리입니다. 감나무며 백도라지 그리고 최근엔 새 품종의 왕밤을 세상에 내놓아 유명한…》

《비슷하오, 한데 불충분하구만. 내 알기엔 저긴 소년농악무로도 소문난 고장이요.》

《아참, 옳습니다. 장군님, 오봉리의 소년농악무.》

김준남은 기억을 더듬다가 무릎을 탁 쳤다.

《일전에 텔레비죤으로 방영하는 전국농악무수들의 경연을 보시면서 장군님께서 이야기해주셨는데 제 미처.》

《기억난다니 됐소. 내 사실 저길 보면서 언뜻 미치는것이 있어 그러는데》

김정일동지께서는 차창턱에 얹은 손을 내리시였다.

《거 〈아리랑〉 있잖소. 저 오봉리의 소년농악무수들의 춤을 〈아리랑〉이 참고했으면 어떻겠는가 해서 그러오. 그래 그러니 동문 여기서 차를 돌려 평양으로 곧추 올라가오. 가서 림진우동무를 만나 의견을 나누어보는게 좋겠소. 합의가 되면 창작가들을 현지에 내보내는 조직사업을 빨리 하도록 하오. 내 일전에 성규동무에게 현실체험문제를 강조해서 〈아리랑〉창작가들이 이미 떠났을수도 있는데 방향이 다르면 사업조직을 다시 해서라도 오봉리에 꼭 들려보도록 이르오.》

 

김정일동지를 모신 야전차일행은 중낮이 조금 지나서 태탄군 류정협동농장에 도착하였다. 차에서 내리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수행일군들과 함께 군과 리의 책임일군들의 안내를 받으시며 토지정리전투가 마감고비에 이른 다네벌을 돌아보시였다.

그이께서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시였다. 물론 이러한 감정은 토지정리를 한 농장들에 가실 때마다 매번 느끼신것이였지만 류정협동농장의 다네벌을 보시는 감정은 류다르시였다. 수령님을 모시고 여러차례나 찾아오셨던 연고로 하여 다네벌은 생소한 고장이 아니였던것이다.

다네벌에 대한 그이의 표상은 벌 여기저기에 무질서하게 산재해있던 마을이며 들쑹날쑹한 둔덕과 재들, 거미줄처럼 생긴 논뚝으로 하여 곡창지대치고는 몹시 답답하고 숨가쁘게 생긴 벌이라는것이였다. 그러했던 다네벌이 지금은 미끈하고 젊음이 약동하는 대지로 변하였다. 하여 김정일동지께서는 멋있소, 정말 멋이 있소라고 거듭 격찬하시다가 관리위원장의 설명을 밀막으시며 리소재지의 북쪽이며 동남방향을 가리키시였다.

《정말 눈에 설구만. 저기 판자골이라는 마을이 있었지, 그 부근엔 광대틀이랑 률현동이 있었소. 여기 수렁들은 어디 갔는가? 또 그앞엔 배뚜리마을이랑 있었는데?!》

《리소재지와 저기 신촌에 살림집을 지어 옮기고 그 자린 불도젤로 밀어버렸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관리위원장은 그이께서 거듭 놀라움을 표시하시자 제잡담 승이 나서 뒤를 달며 자랑하는것이였다.

《요앞의 벌몰이랑 서재골, 효자틀, 하여튼 다네벌을 거창하게 만드는데 지장이 되는건 싹 밀어없앴습니다.》

《거창하게라! 한번 돌아보기요.》

김정일동지께서는 흐뭇하게 웃으시며 관리위원장의 말투를 받아외우시였다. 그이께서는 탄탄하게 다져지고 곧게 뻗어간 포전길에 올라서시였다.

《하여간 진짜 거창하게 달라졌소. 농민들이 좋아합니까?》

《예, 좋아합니다. 여기서 오래 산 늙은이들은 깊은 밤에두 자주 나와보는데 너무도 희한하여 〈8등불이〉전설을 외우군 합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관리위원장의 이야기를 주의깊게 들으시였다. 이 고장은 원래 갈매기소리만 울어예는 간석지였다고 한다. 그러던것이 어느때부터인지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제법 부락이 형성되였었는데 몇해 못 가서 다시 이 고장을 뜨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원인은 아무리 애를 쓰며 품을 들여도 간석지논에서는 벼가 아니라 다네풀만 승기를 부리며 자라 농사가 근본 되지 않았기때문이였다. 그 한이 너무도 가슴에 맺혀 이 고장을 뜨는 어떤 사람이 다네벌주변에 솟아있는 8개의 매 등성이들에 등불을 켜달고 여기는 사람 못살 곳이니 들어오지 말라고 소리친적이 있었는데 그다음부터 솔가이주하는 사람들마다 그의 본을 따서 남아있던 부락사람들은 그걸 들을 때마다 가슴을 뜯으며 눈물을 흘렸다는것이다.

《그리고나선 다네벌의 천지개벽의 력사를 또 죽 내리풉니다.》

관리위원장은 계속 이어나갔다. 제 말도 어지간히 섞인 자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해방이 되자 나라의 도움으로 개간한 간석지논에서 농사가 잘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등불을 켜들고 울며불며 떠나가는 사람들이 없어졌다고 한다. 전후엔 또 광탄천에 뚝을 쌓아 큰물피해를 막았으며 태탄군적으로 건설한 10여개의 저수지, 수백여키로메터의 물길, 천개도 넘는 고정양수장, 이동양수장, 관개구조물의 덕분으로 이제는 흉작이라는 말, 사람 못살 고장이라는 말은 영영 사라져버렸다고 하였고 게다가 오늘은 이렇게 토지정리까지 번듯하게 해놓고보니 다네골은 워낙 계속 번창할 운을 지닌 고장이라는것이였다.

수령님께서 들으셨으면! 수령님께서 보셨더라면!

또다시 가슴을 치는 수령님에 대한 생각이시였다. 생애의 마지막시기에도 농사가 걱정되여 그 불편한 몸으로 황해남도를 여러차례나 찾으셨던 우리 수령님이 아니시였던가.

김정일동지께서는 걸음을 늦추시며 곁에 바투 걷고있는 도와 군의 일군들에게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시였다.

《나는 요즘 나라의 토지가 사회주의땅답게 훌륭히 변모되는것을 볼 때마다 수령님께서 생존해계시던 15년전이나 20년전부터 토지정리사업을 하지 못한것이 못내 후회되군 합니다. 그때에 지금처럼 토지정리사업을 내밀어 번듯하게 정리된 포전들을 수령님께 보여드렸다면 얼마나 좋았겠소.》

김정일동지께서는 중낮이 퍼그나 지나서야 현지지도를 끝내실수 있었다. 그이께서는 현지에 나와있는 토지정리전투지휘부의 책임일군들에게 간곡하게 이르시였다.

《내 이미전에도 말했지만 우리는 이번 기회에 나라의 전체 토지를 사회주의옥토벌로 완전히 정리하려고 합니다. 우리 나라의 곡창지대에는 평안남도도 속하는것만큼 황해남도의 토지정리가 끝나면 평안남도의 토지정리에 지체없이 달라붙을수 있게 미리부터 준비사업을 잘해야 합니다. 이것 보오, 관리위원장.》

김정일동지께서는 일군들의 뒤에 서있는 관리위원장을 찾으시였다.

《내 좀 생각해보니까 8등불을 진짜로 켜놓아야 할것 같소. 얼마동안은 말이요.》

영문을 몰라하는 관리위원장이였다.

《여기에 사람들이 많이 오겠지?》

《예, 많이 찾아옵니다. 시집, 장가도 오구 친척집도 찾구 그리고 지원자들이랑 출장원들도 많습니다. 원래 곡창지대여서 이래저래 사람인총이 끊기지 않는 곳입니다.》

《그것보오, 내 그래 하는 권고요. 그들이 류정리를 찾았다가 잘못 왔나해서 되돌아가면 야단이거던.》

《군당에 찾아갈겁니다.》

김정일동지의 《걱정》을 진담으로 받아들이는 고지식한 관리위원장이였다.

《안되문 도당에라두 찾아가 류정리가 어디 있느냐구 상소할겁니다. 알겠습니다. 장군님, 제 인츰 등불을 켜놓겠습니다. 농장방송을 설치해놓구 여기가 류정농장 다네벌이 틀림없다구 알려주겠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일군들속에서도 폭소가 터졌다. 이윽고 김정일동지께서는 야전차에 오르시였다. 그이의 다음목적지는 황해남도 제1단계 토지정리전투를 마감고비에서 다그치고있는 재령군 재천협동농장 삼국동벌이였다.



12

 

평양에서 열린 협의회가 끝나자 박철건은 군사대학동창생이 집으로 가자는 따뜻한 권고도 마다하고 바삐 청사를 나섰다.

《내리라구.》

박철건은 금시 떠날 준비를 하고 부르릉거리는 군용차앞에 다가가 운전사에게 일렀다. 그런 다음 운전석에 올라앉아 차문을 후려닫고는 영문을 몰라 눈만 떼꾼해있는 운전사에게 청사쪽을 손짓했다.

《작전부의 최문성중좌를 찾아가오. 내 말해놨으니까 그 사람네 집에 가서 식사를 하고 기다리라구.》

청사의 철문을 빠져나온 차는 전승광장 앞도로를 지나 10분가량 달려서 5월1일경기장에 도착하였다. 경기장을 에워싼 원형광장을 따라 차를 몰아가던 박철건은 3호 수문앞에 이르러 속도를 늦추며 차창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아래우가 맞달린 새까만 운동복차림에 구명대를 멘 한무리의 아이들을 데리고 경기장으로 들어가는 교양원을 보았던것이다.

《혜영선생은 저기 너럭바위에서 한창 애들 빨래를 하고있습니다.》

철건의 물음에 허리가 날씬하고 애티나보이는 그 교양원이 릉라도 북쪽끝을 가리키며 알려주었다. 변속기를 성급히 잡아당긴 박철건은 속도를 높여 차를 그리로 몰아갔다. 인차 앞시창너머로 눈에 익은 처녀의 자태가 나타났다. 심혜영은 흰 운동복바지에 역시 같은 색갈의 반팔샤쯔를 산듯이 받쳐입고 새하얀 손수건으로 머리를 꽁지고앉아 빨래질에 열중하고있었는데 그 모습은 물가에 핀 한떨기의 청초한 꽃같았다.

박철건은 속도를 죽이지 않은채 제동기를 꾹 밟았다. 유보도를 물어뜯는듯 한 마찰음이 호젓한 강반공기를 아츠럽게 째는 서슬에 어디선가 한무리의 새들이 일시에 화드득 풍겨날아오른다. 처녀도 깜짝 놀라 이쪽을 돌아보다가 빨래감을 손에 든채 엉거주춤 일어서는것이였다. 심혜영의 얼굴에는 당황한 빛이 떠올랐다.

박철건은 주위를 휘둘러보았다. 강반의 가까운 아래웃녘에 조개잡이를 하는 사람들이 있어 말하기가 불편스러웠다. 그는 성큼성큼 다가가 빨래들을 바께쯔에 담아들고 제잡담 앞서걸었다.

《날 따라오.》

박철건은 고가 높직하고 생김새가 투박한 차뒤에 이르자 바께쯔를 놓으며 처녀쪽으로 성급히 돌아섰다.

《왜 회답을 안해?》

《…》

《벌써 몇번째야.》

심혜영은 고개를 외로 틀며 박철건의 성난 얼굴을 외면했다.

《어서 말해, 이 박철건이를 기다리기가 힘들어졌는가, 아니면 대상자가 나섰는가. 사연을 똑똑히 알아야 할게 아니야.》

혜영은 천천히 고개를 바로 들었다. 처녀의 얼굴에는 애원하는듯 한 빛이 진하게 비끼였다.

《철건동지, 생활에선 때로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말하지 말아야 할, 말하지 못할 경우가 있어요. 전 그걸.》

《좋아, 그럼 사연은 그 말하지 못할 경우인지에 밀어붙이자우. 난 한마디만 들으면 돼. 혜영인 이 박철건의 애인이 맞지?》

심혜영은 샤쯔단추를 채우며 눈을 내리깔았다.

《왜 대답을 못해, 왜.》

《…》

《그럼 남남인가?》

여전히 응대가 없었다.

《에익, 이걸 그저.》

박철건은 주먹을 들었다가 괜히 차체를 쾅 하고 후려갈겼다. 처녀는 움찔 놀라 몇걸음 뒤로 물러선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 생각할수록 묘연하기만 하여 어처구니가 없었다. 씨근덕거리며 물면우에 드러난 바위부리를 한참 응시하던 그는 목단추를 끄르며 처녀쪽으로 돌아섰다.

《됐어, 말하지 않아도 돼. 그런다고 그 숱한 부대장병들의 속을 다 알아맞히는 이 박철건이 혜영이 진속 하나 알아내지 못할것 같애? 명심해. 더는 묻지 않겠는데 왜 잊어야 하는가 난 그걸 꼭 알아야겠어. 한달 시간을 주겠으니 그 어간에 진속을 밝히오. 만일 내 말을 어길 땐 진짜 용서치 않겠어. 알겠지?》

박철건은 여전히 침묵하고있는 심혜영을 한번 지릅떠보고는 차에 올랐다. 그때 처녀의 안타깝고 애바른 부름소리가 들렸다. 그러건말건 철건은 차를 움직여 혜영의 앞을 지나쳐버리였다.

《철건동지!》

후사경으로 그를 부르며 어푸러지듯 따라오는 심혜영의 모습이 보이다가 이내 사라진다.

 

취침구령이 울리고 잠자리에 드는 부산스러운 소음이 잦아들었다. 이내 병실 여기저기서 코고는 소리며 잠꼬대하는 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침대 하단 맨끝에 자리를 정하고 누운 박철건은 아까부터 잠을 이루지 못해 뒤치락거리고있었다. 모포를 정수리까지 올려덮었으나 정신은 오히려 또렷해지며 생각은 처녀에게로만 달리는것이였다. 누군가가 가만히 흔들어서 박철건은 목밑으로 모포를 내리당겼다. 며칠전에 군단정치부에서 조직한 강습에 참가하러 떠난 정치위원이였다.

《아니, 이 밤중에 어떻게?》

《쉬- 》

정치위원은 목소리를 낮추라는 뜻으로 입앞에 손가락을 세워들었다.

《아까 오후에 끝나서 그길로 오는 걸음입니다. 한데 오늘부터 3중대에서 전사생활을 한다는걸 깜박 잊었댔군요. 글쎄 그런것도 모르고 온 부대를 찾아 돌아다녔다니까. 그래 어떻게 되였습니까?》

《잘되였습니다. 우리가 제출한 작전전술안이 그대로 통과되여 올해 우리 부대의 동기훈련에 도입하게 되였습니다.》

《그건 참모장동무에게서 들어 알고있습니다.》

《그럼 뭘 말입니까?》

《아, 거 이쪽문제 말입니다. 처녀를 만나보았습니까?》

《밑에서 아직도 자지 않구 말하는건 누구요?》

별안간 상층 구석쪽에서 잠에 취한, 그러나 엄격한 목소리가 날아왔다.

《이거 안되겠군. 어쩐다? 밖으로 나가지두 못하겠구.》

정치위원은 랑패한듯이 중얼거리였다. 박철건은 웃몸을 세워들고 옆자리를 더듬다가 그의 귀에 대고 속삭이였다.

《여기 들어오십시오. 마침 부분대장이 신병접수를 가서 옆자리가 비였습니다.》

정치위원이 잠자리에 들어오자 둘은 말이 새여나가지 않게 모포를 눈섭우까지 올려덮었다.

박철건의 이야기를 듣고난 정치위원은 왜 그런지 어깨를 조금씩 들먹이였다.

《남은 심각해서 말하는데 왜 웃습니까?》

《용서치 않겠다고 을러멨다는 얘길 들으니 부대장동지가 마치두 철부지총각애같이 여겨져서 그럽니다. 정말 용서하지 않을 작정입니까?》

《그럼 어떡합니까, 방도는 없지. 그저 해본 소리인걸요. 한데 정치위원동지, 동진 저보다 썩 생활선배니까 이런걸 잘 알겁니다. 집의 아주머니하군 련애로 삽니까? 련애를 하면서 곡절이 없었습니까?》

《글쎄, 우린 소개로 사는데 뭐 별로. 하지만 사느라면 의견상이가 더러 생길 때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동무가 모호한 태도를 취하드란 말이지요?》

《변했습니다, 틀림없이 달라졌습니다. 그 처녀는 내가 알고있는 심혜영이가 아닙니다. 그런데 무엇이 그를 달라지게 만들었을가.》

《부대장동지는 여전히 사랑합니까? 처녀를 믿는가 말입니다.》

한참 있다가 정치위원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박철건은 저도 모르게 격해서 목소리가 높아지는것도 느끼지 못하였다.

《난 변함이 없습니다. 제 언젠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제 몸엔 그 동무의 피가 흐른다고. 난 혜영이를 믿습니다.》

《허허, 병사들이 깨겠습니다.》 정치위원은 철건이 몸을 움직이는 통에 흘러내린 모포를 끄당겨 다심하게 여며주었다. 《그럼 됐습니다. 그 믿음이 중요한거지요. 처녀의 갑작스러운 태도를 미루어보아 터놓지 못할 곡진한 사연이 있는것 같은데 시간이 지나가면 알게 되겠지요.》

《거 정치위원동진 여느땐 좋은 의견을 잘 주던데 오늘은 어떻게 된겁니까? 강건너 불보듯 하면서. 이게 뭐 순 사랑이 깨지구말구에 귀착된 문제입니까?》

박철건은 의외로 범상한 그의 태도에 불만을 터뜨렸다. 그래도 정치위원의 언행은 여전했다.

《알지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주신 명령을 수행하는 문제라는것을 말입니다. 좋은 생각은 후에 떠오른다는데 부대장동지, 그러니 그 문제는 그만 밀어두고 이젠 우리 눈을 붙입시다.》

정치위원의 진중한 권고에 철건은 더 입을 열지 못하고 모포를 뒤집어썼다. 박철건이보다 나이가 썩 우인 그는 철건을 부대장으로 깍듯이 대하면서도 생활에서는 빈구석이 있을세라 웅심깊게 세심히 봐주군 했다. 그래서인지 박철건은 가끔 그가 정치위원이라기보다 무던한 맏형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정치위원동지가 저렇게 나오는걸 보니 무슨 방도가 있는 모양이다. 그는 내심 자기를 위안하며 돌아누웠다. 눈을 감았으나 아까처럼 도무지 잠이 오지 않는다. 또다시 생각은 심혜영이에게 달리였고 처녀에 대한 원망이 부걱거리며 괴여오르는것이였다, 어쩌면 그가 그럴수 있는가.

박철건이 심혜영을 알게 된것은 그가 속한 련합부대가 한창 쌍방훈련을 진행하던 몇해전 겨울 어느날이였다. 그날 철건은 《적》종심깊이 침투한 특수구분대의 지휘를 인계받을데 대한 임무를 받게 되였다. 그가 탑승한 비행기는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하였으나 철건은 뜻대로 락하하지 못하였다. 골짜기의 교차기류를 만나 왕청같은데로 떠밀려갔던것이다.

그 과정에 철건은 쀼죽쀼죽한 벼랑부리에 타박상을 입고 두다리가 골절되였으며 잔등에 박힌 예리한 돌쪼각때문에 상당한 피를 흘리며 의식을 잃고말았다. 그러던중 피끗 정신을 차린 그는 가까스로 지도를 꺼내여 현위치를 확정해보았다. 그가 누워있는 곳은 희천시 부성근방의 인적드문 청천강기슭이였다. 가물거리는 의식을 힘겹게 다잡은 박철건은 자동보총을 들어 허공중에 련발사격을 한 다음 다시 쓰러지고말았다. 후에 기억에 남은것은 방수포우에 누운 자기를 누군가가 끌고가고있으며 소란스러운 강물소리와 함께 이따금 후각에 미쳐오는 물비린내에 향긋한 머리비누냄새가 섞여있는것을 미루어 그가 녀성이라는것을 짐작했을따름이였다.

박철건은 이틀만에야 의식을 완전히 회복하였다. 눈을 떠보니 군병원 입원실이였다. 병원의사들이 루루이 고맙다는 인사를 거듭하는 철건에게 진짜 은인이 누군가를 말해주었다.

이름은 심혜영, ××중학교 졸업반 학생. 방학이 되여 외할머니네 집에 놀러 왔던 처녀는 미역을 감으러 나왔다가 인사불성이 되여 강기슭에 쓰러져있는 철건을 발견하였다고 한다. 리진료소까지 홀몸으로 끌고왔는데 수술설비가 없어 후송하자고보니 피를 너무 많이 흘려 도중에 불상사가 일어날수 있는 정황이 조성되였다. 이것을 알게 된 녀학생이 제 피를 뽑아 철건에게 넣어주었다고 하였다.

나이가 지숙해보이는 한 간병원녀인은 녀학생이 모르고 떨구고간 수첩까지 들려주는것이였다. 록색수지뚜껑을 한 수첩의 첫 갈피를 번지니 눈이 까맣고 량볼에 보조개가 옴폭 패여 아주 귀염상스럽게 생긴 애어린 처녀의 사진이 끼워져있었다. 박철건은 더운 숨을 내뿜으며 수첩을 가슴에 꽉 눌러붙였다. 내 언제든 꼭 만나서 인사를 하리라.

그후 철건은 외할머니를 통하여 그의 행방을 수소문했으나 집이 신의주에 있으며 중학교를 졸업하였다는것밖에는 알아내지 못했다. 그러던중에 박철건은 김일성군사종합대학으로 가게 되여 대대인계준비를 하느라 거기에 관심을 돌릴 겨를이 없었다.

넓고도 좁은것이 세상이라더니 이것은 박철건이네의 경우를 념두에 둔것은 아닌지. 그는 지금도 자기와 혜영이 관계를 생각하면 이 말이 늘 떠오르군 한다. 그도 그럴것이 2년이 지난 겨울 어느 일요일, 미술박물관에서 그와 면바로 만나게 될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그때 박철건이네 소대는 새 학년도 첫기훈련판정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3일간 표창휴가를 가게 되였다. 철건은 몇몇 동무들과 이전부터 별러오던 평양시구경을 하기로 작정하였다. 아침 일찌기 시내로 들어와 계획했던 대상들을 돌아보고 미술박물관에 도착한것은 오전 11시가 거의 될쯤해서였다. 고색이 짙은 력사화며 궁중회화작품이 전시된 1층을 돌아보고 2층에 올라간 그들은 한무리의 처녀들과 마주치게 되였다. 대학생처녀들이였다.

피가 뛰는 한창시절의 총각들인지라 박철건이네는 해설원의 지꿎은 눈총과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처녀들에게 집적거리며 동행하다싶이 그림을 보게 되였다.

《여 철건이, 이거 뗌뻬라화 맞지?》

전연군단에서 대대참모장을 하다가 온 최문성이 그의 팔소매를 끄당기였다.

《그런데 이 처녀동무들은 아니래. 어서 말해주라우. 동무네 모르지? 이 박철건동무로 말하면》

《가만있어.》

박철건은 팔을 꽉 잡아당겨 그의 헤픈 입을 제지시켰다. 그리고는 시선을 집중하였다. 그는 한 처녀를 유심히 뜯어보고있었다. 키가 자그마하고 귀염상스럽게 생긴 그 처녀는 일행의 화제에 끼우지 않고 조금 떨어져서 수첩에 무엇인가 열심히 적고있었다.

낯이 익다. 까만 눈, 인상적인 보조개. 어디서 보았던가. 뒤돌아선 철건은 품속에서 슬며시 수첩을 꺼내들고 사진이 있는 갈피를 번졌다. 순간 심장이 후두두 뛰였고 숨이 막히는듯 했다. 그 처녀다. 나의 생명을 구원해준 고마운 처녀 심혜영이. 그러니까 대학에 갔구나. 그는 북받치는 기쁨을 감추려고 얼굴을 돌리며 수첩을 덮었다.

《먼저들 가게.》

박물관을 돌아보고 밖으로 나왔을 때 철건은 그들에게 말했다.

《아니, 옥류관에서 국수를 먹으면서 오후일정을 짜자더니?》

《갑자기 사정이 생겨서그래. 리해해달라구.》

《정 이러긴가, 조직자가 빠지면 우린 어찌라는건가?》

《기껏해야 한시간 걸려. 인차 온다니까, 자 자.》

실뚱해있는 그들을 억지로 떠밀어보내고난 박철건은 반대켠으로 멀어져가는 녀대학생들쪽으로 걸음을 다우쳐갔다.

《저-》

일시에 고개를 돌리던 처녀들은 박철건의 눈길이 심혜영에게 가있는것을 띄여보자 서로 마주보며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는다.

《전 동무를 만나 할 얘기가 있습니다.》

《아는 사이니?》

심혜영의 옆구리를 툭 치며 곁의 처녀가 물었다. 혜영이 영문을 몰라 부정하자 례의 그 처녀가 한걸음 나서면서 보호자연하며 따지려드는것이였다.

《왜 그러십니까? 학생동지, 용건이 뭐인지 여기서 말하세요. 음- 이성문제 내놓고는 우리가 힘껏 도와드릴수 있어요.》

《이성문제? 젠장, 동무가 상관할건 하나도 없소. 그러니 쓸데없는 걱정말고 갈길이나 가란 말이요.》

박철건이 버럭 증을 내자 처녀는 실쭉해서 아래입술을 삐쭉 내민다.

《어마나, 큰소리는 왜 쳐요. 아니문 되는거지.》

그다음 제 동무들에게 뭐라고 속살거렸는지 처녀들은 일시에 웃음을 터뜨린다.

박철건은 처녀들의 모습이 사라지자 혜영에게 다가갔다.

《저를 모르겠습니까?》

《?》

《2년전 청천강기슭에서 피투성이가 되여 쓰러져있던 한 륙전대군관을 구원해준 일이 있지요?》

《아!》

처녀는 수첩을 떨어뜨리며 불시에 터져나오는 탄성을 막으려는듯 두손을 입에 가져갔다.

《그럼 동지가 그때.》

《그렇습니다.》 허리를 굽혀 떨어진것을 주어든 철건은 심혜영에게 내밀었다. 《바로 제가 동무의 구원을 받고, 동무의 피를 수혈받고 소생한 륙전대원 박철건입니다. 지금은 김일성군사종합대학 학생이구요.》

《그런데 저를 어떻게 알고, 어떻게 알아보았습니까?》

《수첩을 떨구고 갔더군요. 그속엔 사진도 있었습니다.》

《그 수첩이 거기에… 난 그런줄도 모르고.》

박철건은 처녀의 수첩을 꺼내들고 갈피를 펼쳐 사진을 뽑아내였다.

《내 동무를 찾느라 숱한 품을 들였댔습니다. 그렇게 훌 가버리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자, 수첩을 받으십시오.》

《저, 사진도.》

《이건 제가 평생 간직하고있겠습니다.》

혜영은 긴 속눈섭을 들어올리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내 동무의 은혜를 어떻게 잊겠습니까. 혜영동무도 내 경우를 당하면 나처럼 행동하였을것입니다.》

《고맙습니다. 근데 그 사진은 하나밖에 없는 중학교 졸업반시절의 독사진이고 또…》

《애인이 아닌 사람이 가지고있는것이 싫다는거지요? 좋습니다. 그럼 가지고있다가 동무가 시집갈 때면 돌려드리겠습니다. 그때 혜영동무의 남편이 될 그 사람에게 동무가 얼마나 훌륭한 녀성을 길동무로 택했는가 이걸 꼭 말해주겠습니다.》

처녀의 얼굴에 홍조가 발깃하게 피여올랐다.

눈내리는 잊지 못할 그날, 박철건은 대학기숙사까지 함께 걸으며 처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날 미역을 감다가 가까운 여울목에서 갑자기 련발로 터지는 총소리에 깜짝 놀랐다는것, 그래서 황황히 나오댔는데 자동보총을 안고 물가에 쓰러져있는 박철건을 발견했다는것, 끌고갈 때 무거워서 혼이 났다는것. 그때의 심정을 처녀가 털어놓자 박철건이도 스스럼없이 터놓았다, 의식이 가물거리는 속에서도 어떤 녀성일가 하는 호기심이 들었다고 하였다. 회복된 다음 은인을 찾지 않는다고 전우들에게서 무던히도 타매를 받았다고 했다.

처음 만나다나니 오간 화제는 대체로 이러한것들이였으나 그때 그들은 자기들의 가슴속에서 이미 련정의 불길이 조용히 타오르기 시작했다는것을 썩 후에야 알게 되였다. 그런 심혜영이 어쩌면 갑자기 알쑹달쑹한 태도를 취하는것인가.

이 시각 철건은 이성문제는 자기가 다 아는것처럼 강진호에게 훈시질한것이 못내 후회되였다. 그보다 근심스러운것은 얼마전 최고사령관동지앞에서 올해중에 꼭 장가를 가겠다고 대답올린 그것이였다.

어쩌면 좋단 말인가. 그는 얼굴을 찡그리며 한숨을 꺼지게 내불었다. 이밤 잠들지 못하고있는 사람은 박철건부대장만이 아니였다. 정치위원도 그 문제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있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서비스이용약관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상단으로


Copyright © 2010 - 2023 www.hanseattle1.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