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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소설 <아리랑> 23-2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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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5,563회 작성일 16-01-25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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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자강도 현실체험을 갔다온 뒤 강진호의 교예장은 새로운 모습으로 일신하였다. 김정일동지의 교시대로 진호는 작품의 고루하고 도식적인 여러 부분을 대담하게 들어내고 굵직굵직하고도 참신한 요소종목들을 넣었으며 그와 동시에 새 기재의 제작과 조립을 다그쳐 인차 5월1일경기장에서 실동훈련을 할수 있게 준비하였다. 걸린 문제는 요소종목들에 출연할 배우들의 인원수가 결정적으로 모자라는것이였다. 특히 난도가 제일 높은 포탄비행과 물결날기를 담당할만 한 실력자가 없었다. 물론 극장에는 더러 있었으나 그들은 현재 외국공연에 나갔거나 국제교예축전을 준비하고있는중이였다. 그렇다고 그들을 소환해서는 안되였다.

며칠전부터 이 문제때문에 극장이며 조선체육대학을 나들던 강진호는 오늘도 오전내껏 교예학원에 가서 인원을 선발하다가 실망하고 돌아오는 길이였다.

경기장에 들어선 진호는 먼저 림진우총연출가의 방부터 찾아갔다. 대기실과 록빛주단을 깐 넓은 사무실을 거쳐 그와 맞붙어있는 아담한 창작실에 들어선 강진호는 무춤 걸음을 멈추었다. 앞차대에는 무용동작을 표기한 종이장들과 바닥대형그림들, 배경대축소판그림들이 되는대로 널려있었고 림진우는 눈을 감은채 진밤색3인용쏘파의 한쪽등받이에 웃몸을 비스듬히 기대고 앉아있었다. 두귀가 처지게 꾹 다물린 입술, 무거운 고뇌의 상징인듯 볼편이며 이마를 깊숙이 파며 질러간 주름살들, 옆차대우에 널려있는 커피통이며 잔들, 접시들, 창턱에 뭉그려놓은 겉옷.

강진호는 의혹에 차서 그것을 일별하며 조용히 뒤걸음쳐나왔다. 왜 그럴가. 물론 창작중일것이다. 하지만 처음 보는 림진우의 모습이였고 창작실의 어수선한 광경이였다.

진호는 총연출가를 잘 안다. 같이 일하며 체험한데 의하면 림진우는 여느 사람들과는 달리 단정한 분위기에서 책상우에 종이장 하나만 놓고 창작에 집념하는 절제가 강하고 정돈된 창작가였다. 주위가 산만하고 무질서하면 그것이 그대로 작품에 담겨진다고 하며 창작가들속에서 어설픈 창작태도가 나타나면 늘 엄격하게 꾸짖던 그가 아니였던가. 무슨 일일가?

강진호는 지하층에 있는 연출실에 이를 때까지 의혹을 풀지 못하였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김재근책임연출가며 여러 연출가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그의 얼굴을 주시한다. 원탁에 다가간 진호는 보온병을 기울여 물을 한고뿌 마시고나서 단마디로 대답해주었다.

《안되겠습니다.》

《그래? 쓸만 한 대상자를 하나도 고르지 못했단 말이지.》

김재근의 물음이였다.

《정 없는건 아니고 한둘이 있긴 한데 언제 그들을 훈련시키겠습니까. 시간이 우리를 기다려줍니까?》

《문젠 문제구만. 혹시 지방체육학원에 사람이 있지 않을가?》

《거기도 마찬가지일겁니다. 거기서 선발하느니 차라리 체육대학이나 체육단 예술체조에서 데려오는게 낫지요. 재근아바이, 내 오면서 생각해봤는데 준비위원회나 우리가 뛰여서는 안되겠습니다. 이 문제는 큰 범위에서 풀어야지 그러지 않고서는 안됩니다.》

《큰 범위?》

《예, 당적으로 말입니다. 외국공연날자를 얼마간 뒤로 미루든지 아니면 공중작품을 빼달라고 말입니다. 그러면 거기에 출연하는 배우들을 〈아리랑〉에 동원시킬수 있지 않습니까.》

김재근은 석연치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래서 내 이자 총연출가동지와 토론해보려고 방에 갔댔는데 아참, 그 아바이에게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들어가보니 고민하는것 같기도 하구 창작중인것 같기도 하고. 어쩐지 기분상태가 썩 좋아뵈지 않습니다.》

《그 사람 요즘 작품때문에 그럴거네. 두번씩이나 공전했으니까.》

《통일장이야 창작년조로 보나 생활경력을 봐도 총연출가동지에겐 파악이 있는 작품이 아닙니까.》

《글쎄 말이네.》

김재근책임연출가도 리해가 안되는지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건 그렇고. 이보게 진호동무, 여하간에 당에 보고를 올리는건 고려해보세. 당에서 〈아리랑〉이 제기하는것이라면 무엇이나 풀어준다구 가볍게 손을 내밀면 경우가 안되지.》

강진호는 불만스러웠지만 우기지 못하였다.

《오, 그리고 아까 아동장의 심혜영선생이 찾아왔댔네. 오면 자기에게 꼭 전화를 하라고 하데.》

강진호는 책임연출가의 책상우에서 송수화기를 끄당겨 들었다. 곧 약간 쉰듯 한 심혜영의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진호동지, 오늘 어느때든 시간을 내줄수 없겠어요?》

《시간, 마침 점심시간인데 지금이 좋지 않소? 그런데 왜? 무슨 일이 생겼소?》

《인차 알게 돼요. 그럼 제 먼저 청류벽쪽 유보도에 나가겠어요.》

 

점심시간이여서 그런지 오전내껏 경기장의 바깥원형광장에서 울리던 구령소리, 음악소리도 잦아들어 유보도는 오직 귀 따가운 매미소리가 들릴뿐 한적하기만 하였다. 원형광장을 가로질러 유보도에 내려선 강진호는 강기슭 바투 계단에 앉아있는 심혜영을 띄여보고 그리로 걸음을 옮겼다. 진호는 혜영이 일어서려 하자 손짓으로 제지시키며 그 녀자곁에 다가가 퍼더버리고앉았다.

《에- 참, 낮에 거 집단체조 연출부장이 새 탁구알까지 들고와서 도전을 하길래 한바탕 스트레스를 푸는가 했는데.》

《시간을 뺏어서 정말 안됐어요.》

진호가 롱담조의 푸념을 했건만 그래도 미안해하는 처녀였다.

《그래 말해보오. 아직도 강이가 영아를 떨구오?》

진호는 심혜영의 부탁을 받고 리강의 조형훈련을 종종 맡아해주군 하였다.

《아니, 아니예요.》

《그럼?》

《진호동지, 철건동지가 평양에 와있어요.》

《어- 철건이가?! 언제 왔게. 어디 있다오?》

《병원에 입원해있어요.》

강진호는 움쭉 놀라 두팔에 실었던 웃몸을 바로세웠다.

《건 또 무슨 소리요? 입원해있다니.》

《그건 이제 차차… 저, 진호동지.》 심혜영은 그의 이름을 불러놓고는 웬일인지 망설이다가 소심한 말투로 다시 이었다. 《근간에도 철건동지와 편지거래가 있었겠지요?》

《그렇지 않구.》

《그럼 혹시 철건동지가 편지에 이성문제라든가 제 얘기를 거든 일은 없는지.》

《없었소, 전혀.》 진호는 처녀를 의아하게 쳐다보다가 버럭 증을 냈다. 《혜영동무, 한데 왜 자꾸 빙빙 에돌기만 하는거요? 철건인 어떻게 입원하게 되였구 동문 왜 갑자기 이성문제를 거들며 심각해서 그러는가 직판 말해야 할거 아니요.》

심혜영은 대답없이 입을 꼭 다물고 바지가랭이의 끝단을 매만지였다.

《야- 이거 답답하구만. 어서 말하오, 대체 무슨 일인지.》

《그러니까 진호동지에겐 아무 내색을 안했군요.》

처녀는 애매하게 중얼거리며 조용히 한숨을 내쉬였다. 심혜영은 자기가 진호를 찾은 사연을 말해주었다.

어머니가 될 결심, 사랑의 일방적인 포기, 정치위원과 편지로 나눈 이야기내용, 박철건의 입원소식, 면회시 취한 철건의 랭정한 태도. 강진호에게는 이 모든것이 처음 듣는 말이였다. 그리고 심혜영이 말하는 문제가 자기로서는 체험해보지 못한것이여서 그 녀자에게 뭐라고 조언을 주어야 할지 몰랐다. 그저 혜영이라는 처녀를 다시 보게 되였고 친구가 진짜 좋은 녀성의 사랑을 받고있었구나 하는 부러움뿐이였다.

《그래서 철건일 의심한다는거요? 그러지 마오. 나는 철건동무를 소꿉적부터 잘 아는 사이요. 철건인 동무가 그랬다 해서 마음을 갈아대는 사람이 아니요.》

《…》

《혜영동문 아직두 철건일 사랑하오?》

심혜영은 대답없이 그저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럼 믿소. 나두 친구의 태도가 리해되지는 않지만 무슨 사연이 꼭 있을것 같구만.》

《글쎄 그랬으면 좋으련만.》

《오늘 저녁에 내 갈테요. 가보면 알게 되겠지. 한데 혜영동무.》 강진호는 한무릎을 그러안았다. 《자기에게 지나치게 모질지 않을가? 처녀의 몸으로 두 아이를 끌어안은데다가 역시 일생 다심한 거둠새가 필요한 철건동무를 놓지 않겠다고 하니. 우리끼리니 내 하는 말인데 혹시, 음- 》

심혜영은 웃었다.

《왜 마저 얘길 안해요. 그대로 표현하기가 두려운거지요. 말을 고르지 말아주세요.》

《까짓거, 그럼 툭 털어놓지 뭐. 난 심동무의 결심을 지지하고 높이 사. 그러나 혜영동무의 결심은 왜 그런지 의무감이라고 느껴지거던. 내 추측이 사실이라면 철건동무를 위해서도 그의 의향을 따르는것이 옳지 않을가?》

강진호는 혜영이 응대를 안하자 머리를 짓수굿하고 계단짬에 돋아난 쇠뜨기를 잡아뜯었다.

《무엇이나 바로 결심한다는것도 힘들지만 결심한걸 똑바로 실천하는것이 더욱 힘든거요. 동문 지금 자기에게 엄청난 요구를 제기하고있고 그걸 실천하려 하고있소. 두 아이를 데리고 사는것도 여간한 일이 아닌데 또 철건동무까지.

공명? 아닐거요. 량심? 이것도 맞지 않아. 오직 의무감, 의무감이라고밖에 달리는 볼수 없거던. 난 많이 못살아봐서 인생은 잘 모르오. 그렇지만 혜영동무의 결심을 놓고는 조언줄수 있소.

심사숙고하오. 의무감에 떠밀려가다가 나중에 훌륭한 내 친구의 이름을, 이제껏 내가 높이 보았던 혜영동무에 대한 나의 좋은 인식이 흐려지지 않도록 해주기 바라오.》

흑- 하는 흐느낌소리가 났다. 강진호는 계속 이으려다가 얼굴을 싸쥐고 어깨를 떠는 혜영을 띄여보고 그만두었다.…

원형광장쪽에서 심혜영의 이름을 겨끔내기로 부르는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혜영은 급히 눈굽을 훔치고 옷차림을 바로하며 몸을 일으켰다. 강진호도 따라일어섰다.

심혜영의 대답소리를 듣고 인차 아동장담당창작가며 여러 유치원의 교양원들이 진호네가 있는 장소로 달려왔다. 강진호에게 눈인사를 하고난 담당창작가는 다짜고짜 혜영의 두손을 잡으며 황급히 묻는것이였다.

《혜영선생, 강이 어데 있는지 모르지?》

《지금 렬차에 앉아서 한창…》

《아유- 까막천지구나.》

그 녀자는 혀를 차며 지청구를 했다.

《렬차가 다 뭐나. 평양역에서 좀전에 애순이라는 렬차원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개찰구에서 애를 잃어버렸대.》

《그럼 그 애가 또 달아났군요.》

혜영은 속상해서 부르짖었다.

《빨리 가자요. 어디 있는지 찾아봐야 할거 아니야.》

《진호동지!》

강진호는 무엇인가 말하려는듯 입을 우물거리는 심혜영에게 손짓을 하며 빨리 따라가라고 재촉했다.

《내 철건동무를 만나보겠소.》

 

 

24

 

몇년만이였던가. 군사대학을 다닐 때 두번 만나본 이후 해수를 세여보면 진호는 박철건을 5년만에 만나는셈이였다.

포옹이 끝난 뒤 강진호는 침대에 걸터앉아 박철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여전히 사내싸게 굵직굵직한 이목구비, 런닝그를 들추고 솟은 어깨며 가슴, 잔등의 울근불근한 근육들, 삼륜차를 꽉 채우고 앉은 거방진 자세는 확실히 한개 부대를 거느린 부대장다왔다. 한편으로 창백할사한 얼굴빛이며 환자복바지, 삼륜차를 보면서 진호는 마음이 아파났다.

《자식, 내가 뭐 마네킨인가? 뭘 그렇게 쳐다봐.》

제 모양이 썩 면구스러웠던지 진호의 눈길을 피하며 중얼거리는 박철건이였다.

강진호는 괴여오르는 련민의 아픔을 누르며 흔연히 맞대꾸를 했다.

《네가 내 친구가 맞나 해서 그래. 뭐야 이건, 여기 있으면 처녀보다 친구에게 먼저 알려야지. 안 그래?》

《혜영이 말해주던가?》

《그렇지 않으문.》

박철건은 얼굴을 약간 찡그리였다. 강진호는 그것을 못 본체하며 들고온것을 상우에 올려놓았다.

《어, 이거 괜찮은데.》

그가 꺼내는것을 두루 일별하던 철건은 과자곽만치 크고 흰 찬곽에 들어있는 섭조개구이를 띠여보자 손을 뻗쳤다. 그러던 박철건은 밥곽을 내려놓고나서 삼륜차를 빙 돌려 나들문으로 다가가 쇠를 걸었다.

《이런거야 거저 먹을수가 없지.》

되돌아온 박철건은 탁밑에서 불그스름한 액체가 든 작은 병을 꺼내더니 마개를 따고 두개의 고뿌에 부었다. 그는 들라는 손시늉을 하며 먼저 쭉 마시고 섭조개구이를 집어들었다.

《으음, 맛은 좋긴 한데 진짜는 아니구만. 어디거야?》

《서장물고기상점에서 산거네.》

《글쎄 싱싱한 맛이 적어. 그저 섭조개야 금방 잡아 나무불에 구워먹는게 제일이지.》

《더욱 좋기는 주먹바위까지 헤염쳐가서 거기 섭조개를 따가지고 구워먹는 맛이지.》

《새나루선창앞의 주먹바위. 옳아, 아직도 주먹바위에서 섭이 많이 난대?》

《나도 이따금 집에 내려가서 잘은 모르겠는데 어머니가 피끗 말하는걸 들으니 그쪽은 이젠 양식장이 됐다더라.》

《그래? 진호, 이걸 보니 고향생각이 나는구나, 어릴적의 일이랑.》

박철건은 입을 우물거리며 그답지 않게 퍽 감상적인 어조로 뇌이였다.

고향, 어릴적의 추억. 강진호는 저도 모르게 철건의 말에 이끌려 마음이 젖어났다. 이제는 퍼그나 아득한 과거로 되여버린 그 시절, 그것을 두고 친구와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눈다는것은 얼마나 기분좋은 일인가.

그들이 나서자란 고향은 북방의 해안도시 청진이였다. 어려서부터 문을 열면 바다가 보이는 마을에서 살아서인지 박철건이며 진호에게 있어서 바다는 생활의 한부분이였다. 특히 중학시절에 들어서서는 아예 그들의 령지로 되여버린 새나루선창앞의 주먹바위가 그러했다.

박철건이네들에게는 이 바위에 깃들어있는 임진조국전쟁시기 정문부의병대와 관련된 이야기며 남녀간의 애정비화를 엮은 옛 전설들도 귀맛이 좋았지만 어장으로도 마음이 끌리는 곳이였던것이다. 열기며 이면수, 어른손바닥보다 더 큰 가재미들이 언제든지 미끼를 물었고 물에 잠긴 부위도 바위투성이여서 문어며 방게들이 적지 않게 서식하고있었다. 그중에서도 섭이 많아 어물을 그물들이로 퍼내는 배군들이나 고급어족을 잡아내는 세소어업쟁이들에게는 눈에 차지 않지만 아이들에게는 어줍지 않은 어장이였다.

무슨 이야기인들 나누지 않았겠는가. 주먹바위에서 보게 되는 이른아침의 해돋이, 8월의 달밤정서, 한바탕 무릎싸움과 수영을 하고난 뒤에 맛보게 되는 혀도 함께 넘어갈듯 한 섭죽, 여름밤 작은 등바위에 기대앉아 유정한 파도소리를 들으며 그 회수에 맞춰 외국어단어를 암송하던 일, 생각해보면 공부도 운동도 오락도 모두 그 주먹바위에서 한듯싶었다.

그러던 어느날 진호네들에게는 이웃마을애들로부터 엄중한 도전이 걸려왔다. 주먹바위를 완전히 독차지할 심산밑에 그 애들이 싸움을 걸어왔던것이다.

원래 공동으로 사용하자고 합의했댔는데 심술을 또 부리는걸 보니 진호네보다 거리도 가깝고 나이나 머리수가 더 많은 저희네가 암만 봐야 손해라고 생각된 모양이였다.

승부를 갈라서 승리자에게 주먹바위소유권을 완전히 넘기자는것이 그들의 주장이였다.

진호네들은 선선히 동의했다. 수영에서 이기면 팔씨름에서 지고 무릎싸움에서 이기면 씨름에서 지고, 소유권을 둘러싼 싸움은 간단치 않게 치렬하여 도저히 승부가 나지 않았다. 나중에 주먹바위의 매 손가락부위를 차례차례 올라가며 물에 뛰여들어 한번에 누가 더 많이 섭조개를 따는가 하는 겨루기만 남았는데 이것은 진호네들에게 있어서 대단히 힘에 부친 일이였다. 이웃마을애들보다 자맥질이나 섭따기는 잘할수 있었지만 물에 뛰여들기는 퍼그나 약했기때문이였다. …

《에, 정말 그때 혼이 났어. 죽는가 했다니까.》

박철건은 찬곽우에 저가락을 놓으며 시뭇이 웃었다. 진호도 그때 심정이 생각키워 뒤를 달았다.

《나도 그래서 장지바위까지 올라갔다가 기권했댔지, 겁이 덜컥 나서. 그래도 동문 식지바위까지 올라가지 않았댔어.》

《그랬지. 독심이 나를 떠밀었어. 내 비록 잘못 뛰여들어 물밑의 바위에 머리가 터져 죽는다 해도 너들에겐 주먹바위를 못 준다하는 그것이였지. 실제로 거기에 꽃나무도 심고 학습터랑 꾸리면서 우리가 품을 좀 작게 들였어?

흠- 어쨌든 그 일을 말하니 기분이 좋구만. 자, 한잔만 더 들자구.》

둘은 잔을 기울이였다. 박철건은 섭살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찬곽을 턱짓했다.

《솜씨가 있어. 료리를 성의있게 만들었군. 누가 했나?》

《…》

《하긴 동문 합숙생이니 정미가 했겠구만.》

《정미가?》 강진호는 이마살을 찌프리며 쓰겁게 웃음을 지었다.

《이건 혜영동무가 직접 만들어준거네.》

박철건은 고개를 들었다. 열심히 우물거리며 섭살을 씹던 그의 입놀림이 떠지고있었다. 무의식적으로 병뚜껑을 돌리기만 하던 철건은 조금 있다가 진호를 건너다보았다.

《혜영이 무슨 말을 안하던가?》

《들었어. 알고있어.》

강진호는 철건의 손에서 병마개를 앗아내여 병을 채웠다. 그는 박철건에게 곡진하게 말을 건넸다.

《철건동문 정말 처녀와 그만두려는건가? 혜영의 립장은 여전해.》

《그러면 안되지. 됐어. 이젠 다른 말을 하자구.》

《그러지 말라구. 난 꼭 알아야겠어, 왜 포기했는지. 심동무에게 다른 대상이 있다고까지 말했다면서?》

《여, 강진호!》 불시에 박철건의 노기 띤 음성이 방안을 울렸다. 《친구를 모욕하지 말라우.》

둘사이에는 긴 침묵만이 흘렀다. 강진호는 아직 병중인 친구에게 지나친 질문을 한것 같아 몹시 미안스러웠다. 후날에, 사실 이런 문제야 후에 나누어도 되지 않는가. 그런데 박철건이 먼저 량해를 구하는것이였다.

《너그럽지 못한 속통머리때문에 어찌다 만난 동무를 노엽혔구만. 용서하라구. 그래주지?》

《아니야. 내가 안됐어. 동무의 속도 모르고 그만.》

박철건은 빙그레 웃으며 삼륜차등받이에 조심스레 잔등을 기대였다.

《진호, 저길 보라구.》

강진호는 철건의 손끝을 쫓아 창밖에 눈을 주었다. 거기 눈바투 거리에는 서늘한 저녁바람에 잎새를 가볍게 흔들며 서있는 한그루의 감나무가 보였다.

《응, 감나무? 근데 나무는 큰데 비해 열매는 적게 달렸구만.》

《비록 적게 달려도 충실한 열매면 되지 뭐.》

박철건은 손을 내리며 진호쪽으로 몸을 돌리였다.

《감나무란것이 신통한 놈이야. 꽃을 많이 피워서 열매를 가득 맺었다가도 힘이 진하거나 헛열매가 많으면 충실한 놈들만 내놓고는 모조리 떨궈버리고말아. 잡것들이 성하면 열매나무로서의 사명을 못한다는건지. 사람의 마음과 참 방불하거던.》

《!》

《마음속에 욕심과 허튼것이 가득찬 사람은 구실을 못해. 못난것들이지.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가. 요즘 저 감나무를 지켜보며 계속 자신에게 물어보기때문이야.

박철건이 너는 저 감나무처럼 마음속에 매달린 헛것들을 단호히 털어버릴수 있는가. 있다, 얼마든지. 나는 이미 절망과 좌절감을 털어버렸으며 앞으로 군복은 벗게 되겠지만 여전히 부대의 싸움준비완성에 남은 육신을 깡그리 바칠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렇게 대답하군 하지.

그런데 여전히 털어버리지 못한것이 무엇인가, 혜영이와의 관계야. 그걸 단호하게 털지 못했지.

진호, 내가 심혜영이를 받아들여야 옳은가. 그토록 훌륭한 녀성을 일생 고생시킨다는게 큰 죄악이라는걸 알면서도 받아들여야 옳은가. 사실 난 혜영이에게서 이야기를 듣고나자 불쑥 손을 내밀고싶어지더군. 떠나간 담에도 오라고 편지를 쓰고싶었고 전화를 하고싶었어. 허나 단념했어. 허튼 생각, 열매도 맺지 못할 처신이라고 여겨져서였지. 다른 대상? 내가 혜영일 놓고 어떻게 다른 처녀와 사귈수 있단 말인가.이게 다야. 진호, 뭘 더 알고싶어?》

《됐어. 그만하라구.》

무엇을 더 알고싶은것이 있겠는가. 진호는 묵묵히 앉아 미풍에 가볍게 나붓기는 창가림천의 가장자리만을 매만지였다.

《이젠 동무얘기나 듣자구.》

박철건은 헐겁게 웃으며 화제를 바꾸었다.

《정미와 같이 올걸 그랬어.》

《…》

《보구싶구만. 몹시 바쁜게지?》

《응, 그저 좀…》

정미? 이름조차 입에 올리기 싫다. 교예장에서 일어난 사고의 근본원인이 한정미에게 있었다는것을 알게 된 진호는 경악을 금치 못했었다. 그다음에 찾아든것은 격분이였다. 그걸 삭이느라고 강진호는 무진애를 쓰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런데 이후에 취하는 한정미의 태도는 진호를 쓰겁게 했고 환멸을 자아내게 했다.

당조직은 그의 엄중한 결함을 관후하게 처리해주었다. 날카로운 비판은 해주었으나 교예장훈련지도는 그냥 하도록 믿음을 주었다. 허나 그 일로 하여 둘의 관계는 된 추위를 만난 대동강처럼 풀리기는커녕 더욱 얼어붙고있었다.

훈련장에 내려가 부족점을 지적하고 조언을 줄라치면 그것을 듣는지마는지 새파래가지고 얼굴을 외로 돌리군 하는 처녀였다. 그럴 때면 목구멍까지 치밀어오르는 격한 심정과 함께 내가 과연 무엇을 보고 이런 처녀를 사랑하게 되였는가 하는 후회가 들군 하였다.

《무슨 일이 있었나?》

강진호의 얼굴에 얼핏 비끼는 떫은 기색이며 어정쩡한 태도를 여겨보며 의혹에 차서 묻는 그였다. 진호는 부러 태연한 인상을 지으며 얼버무리였다.

《후에 알게 되네.》

시간이 퍼그나 흘러 자리에서 일어난 강진호는 철건이 배웅해주겠다는것을 눌러놓고 병원을 나섰다. 그는 문수거리에 사는 시체육단 예술체조감독을 만나려고 뻐스정류소로 향하려다가 단념하였다. 친구에게서 받은 충격이 하도 커서 그것을 음미해보며 내처 걷고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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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나의 친구 박철건이, 나는 그와 유치원과 소학교, 중학교과정을 함께 마치였고 헤여질 때까지 한마을에서 살아온 동기동년생이다. 그런데 내가 철건이를 높이 보기 시작한것은 언제부터였던가. 중학시절 주먹바위소유를 둘러싸고 벌어진 승부겨루기에서 그가 취한 행동을 목격한 그때부터였다. 식지바위에서 서슴없이 뛰여내리던 친구, 물속에서 솟구쳐나와 섭구럭과 쇠갈퀴(섭을 따는 도구)를 높이 쳐들며 이겼다 하고 부르짖던 철건이.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전사령장을 달고 시그러운듯 눈을 쪼프리며 웃는 그의 얼굴이며 자동보총을 가슴앞에 틀어쥐고 군기앞에 서있는 엄숙한 자세, 어깨에 별 두알을 달고 찍은 소대장시절의 사진과 역두에서 만나 포옹할 때 느껴지던 그의 억센 손아귀힘, 묵직하게 안겨오는 중좌의 군사칭호로 바뀌며 해가 갈수록 박철건의 존재는 높아보이기만 하였다.

그것은 무엇때문이였던가. 높아가는 군사칭호. 무쇠를 부어만든듯 한 체격. 사내다운 생김새. 그럴수도 있다. 그러나 강진호는 그보다는 박철건의 언행에서 풍기는 그것, 진실한 인간만이 소유할수 있는 정신적높이와 세계라고 인정하고있었다.

이러한 정신력을 지닌 사람은 언제나 고난과 역경앞에서는 뒤걸음을 모르는 강자였고 사랑에서도 투철한 인간인것이다. 강진호는 철건이를 통하여 군인집단의 정신력이 어떤것인가를 더러 들어 알고있었다. 인민군장병들이 조국의 한치의 땅을 놓고 적들과 어떻게 피의 격전을 벌리는가를 들으며 충격이 컸고 그들이 동지를 위하여 어떻게 자기를 바치는가에 대하여 들으면서 매번 감동하군 했다. 그런데 오늘 그 정신력을 직접 곁에서, 철건이에게서 또다시 목격하게 되니 친구가 더욱 까마득히 높아보이는것이였다.

철건이, 너는 진짜 강한 인간이다. 그런 너였기에 심혜영이 그리도 사랑하고있으며 달리될수 없는 너였기에 마지막까지 자기를 태워 군인의 본분을 다하려 하고있지 않는가.

낮아보였다. 사람타발을 하며 출연자문제를 풀어달라고 당에 손을 내밀려 했던 자기가 초췌해보였다. 인간생활의 그 무슨 법칙을 운운하며 심혜영의 사랑을 저울질하려들었던 그것도 타매하게 되였다. 동시에 자기를 새롭게 가다듬으려는 충동에 휩싸였다.

옳다, 그래야 한다. 강진호는 끓어넘치는 정신적앙양에 달아 걸음을 멈추고 속으로 부르짖었다. 그는 단호하게 발길을 돌려 경기장쪽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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