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통신 노길남 박사 방북보고회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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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엔젤레스=민족통신 손세영/김백호 편집위원]6월2일 밤 시내 제이제이 그랜드호텔2층연회장에서 열린 노길남 민족통신 대표의 69번째 방북보고회는 손세영 민족통신 편집위원의 사회로 미국진보계 인사들과 동포사회 진보계 인사들이 함께 참석한 가운데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노길남 특파원의 활약은 이미 130여명의 세계계기자들과 함께 취재경쟁을 벌이는 과정에서도 나타났지만 미국의3대 일간지중 하나인 ‘워싱톤 포스트’가 민족통신 특파원의 기획대담을 통채로 인용보도함으로써 그의 활약상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는 계기도 되었다. 이날 참석자들은 보고회가 시작되는 초두에 노길남 박사의 노고에 대해 큰박수로 격려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는 이번 연방상원 의원선거에 출마한 죤 파커씨와 주상원에 출마한 테드 최 후보도 함께하여 자리를 빛내 주었다.
노길남 박사는 이날 미국진보계 인사들의 참여관계로 방북보고를 영어로 하는 한편 뒷부분에서는 우리말로 축약하여 발표했다. 그는 집 떠난지 4개월만에 돌아와 여독을 풀 시간도 마다하고 그 날부터 정상활동을 개시했다. 그는 그 동안 중국 동북지역의 단동, 심양,장춘, 연길, 훈춘 등을 여행하면서 중국 한족들을 포함하여 조선족 중국공민들, 조선족 조선공민들을 두루 만나 중국내 동포사회의 현황을 파악한 내용들을 소개하는 한편 이들이 보는 미국, 이들이 보는 중국, 이들이 보는 조선과 한국 등에 관한 이야기를 비롯하여 남북관계, 북미관계, 북중관계, 북러관계, 북일관계 등에 관하여 폭넓게 설명해 주었다.
이날 노길남 박사는 한국 보수언론들의 조선에 관한 기사들은 대부분 왜곡되었고, 중상과 모략과 함께 사사건건 깎아 내리는 기사들에만 매몰되어 왔다고 지적하는 한편 국정원을 포함한 한국내외에서 언론들을 탄압하고 위협하는 그리고 물질로 회유해 온 국정원 관계자들의 공작들도 많았지만 이에 단호한 자세로 임하지 못하고 이들의 심부름하는데 급급해 온 국내외 언론기관들과 언론인들에 대해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노길남 박사는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를 전후하여 그가 취재하며 만난 국내외 동포들과 외국인들이 질문한 요지들을 하나 하나 떠올리며 이에 대한 그가 수집한 자료들에 의거한 정보들과 직접 겪은 체험들을 중심으로 국내외 동포들이 질문한 것들을 중심으로 설명해 주면서 이에 대해 부연설명하는 형식으로 보고회를 이끌어 나갔다.
“유엔제재 2270이후 북은 고립되었다고 한국언론들과 미국언론들이 보도해 왔는데 실제로 현지의 분위기는 어떠한가?”
그는 이에 대해 (1)제재효과가 특별하게 나타나지 않았다. (2)북에서는 사재가 있었고, 물가가 뛰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는데 그런 현상은 전혀 북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3)중-조무역이 저조했다고 남녘 언론들이 호들갑을 떨었는데 실제로 조-중무역은 제재조치가 시작한 3월4일부터 4월중순까지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조-중교역은 오히려 12.7%로 상승한 결과를 낳았고, 조중무역간 검문검색이 그 전이나 그 이후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고, (4)유엔제재 이후 북녘을 찾는 외국인들의 숫자는 증가했는데 우선 만경대국제 마라손대회에 외국인 아마추어 선수들과 전문선수등이 1천1백여명이 참가하여 체육축전을 이뤘고, (5)외국인 기업인들의 방문동향에서도 네덜란드를 포함하여 유럽 투자기업인들의 평양방문 숫자가 부쩍늘었고 이들중 GPI 상담소는 이러한 흐름을 포착하여 6,7월에 기업인들의 대거모집, 8월에 서방언론들 대거모집, 루핑이라는 영국의 국제여행사에서는 올 가을에 국제골프대회를 계획한다고 분주했고, 9월에는 원산에서 항공기 곡예공연(Air Show) 준비가 한창이라고 밝혔다.
유엔 제재결의이후 조선의 위상은 오히려 지난 시기보다 훨씬 높아졌다는 것이 노길남 박사의 평가이다.
그는 이어 다른 나라 사람들은 무엇보다 미국과 그 추종나라들이 너무나 과대보도를 하며 수소탄이며 광명성4호이며 꽝꽝날린다며 이것을 ‘도발’이라고 보도하였지만 이러한 현상때문에 세계인들은 오히려 북조선에 대한 관심도가 훨씬 높아졌다고 진단하면서 이것 때문에 조선이 얻은 광고효과는 수십억 달러가치의 선전효과를 보았다고 말한다면 거의 틀림이 없을 것이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이번 방문중 조선은 한미합동군사훈련이 ‘참수작전’이며, ‘평양점령작전’ 등 종래없던 용어들을 노골적으로 표시하며 북을 자극하는 핵전쟁훈련이 한창이었다며 반발하였는데 이에 대한 북의 대응이 무었이었으며 북이 그 기간에 보여준 여러가지 자위력 시험중 괄목할 만한 2~3개를 꼽는다면 그것들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노길남 박사는 이에 대해 좋은 질문이었다고 반응하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해 주었다고 말한다. 그는 이 기간에 가장 세계 주목을 받았던 것은 1월6일의 수소탄 시험성공과 4월8일 날린 ‘대륙간 탄도로케트 대출력발동기 지상분출시험에 성공’한 것이라고 열거하면서 다른 시험들도 많았지만 특히 위의 두가지 시험에 완전성공한 것은 미국 국방성 전문가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충격적인 첨단과학기술을 동원한 무기체계들이었다고 강조한다.
그는 이러한 북조선의 자위력 체계의 시험들이 성공한데 갖는 의미를 크게 두가지로 나누어 기술적 측면과 정치적인 측면으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기술적 의미에서는 첫째로 쏘련(지금의 러시아)이 여러번 실패끝에 성공한 발동기 사거리에 비해 훨씬 앞섰고, 그 이후에 개발한 미국의 발동기에 비해서도 훨씬 앞섰다는 점이다. 그리고 두번째로 획기적이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은 발동기 머리부분에 해당하는 ‘전투부’가 질량면에서 최대화되어 다탄두를 장착할 수 있다는 점인데 이것을 부연한다면 광명성4호 발사때 보다 분사색깔, 길이, 방법 등에서 한층 더 출력이 높다는 것이 국제사회 전문가들에 의해 검증된 점이다. 전투부에 다탄두가 적게는 2개에서 많게는 10개까지 새끼 탄두들이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이다.
지난 3월 조선은 이틀에 한번 꼴로 많은 무기체계들을 과시하여 세상에 보여주었지만 그 많은 시험들 중에 수소탄과 재돌입 대륙간탄도로케트 대출력발동기 지상시험에 성공한 이 두가지가 세상의 이목을 최대로 집중시킨 것들이라고 조선의 과학자들이나 국제사회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는 부문이다.
이 같은 시험은 지난 1960년 10월23일 국제사회에서 크게 보도된 기록이 있으나 서방 나라가 이 시험에 크게 실패하여 시험현장에서123명이 즉사하고 그 후 병원에 실려가 50명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그만큼 시험성공이 아주 어렵다는 뜻이다.
조선의 성공도 단번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사실상2012년 김정은 위원장께서 과학자들에게 이미 과제를 주었으나 그 동안 여러번 실패하여 온 사실들도 조선의 과학자들로부터 직접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성공하기까지 이러저러한 사연들이 많았다. 이번 시험에 성공하기까지 과학자들은 물론 김정은 위원장의 고민도 많았다는 것이다. 실패의 과정에서 김정은 원수께서 일일히 현지지도로 지침을 주어왔고, 이번 성공하는 장소에서도 처음에는 과학자들과 김정은 위원장 모두 긴장한 분위기였다는 것이다.
발사가 시작되려는 순간 서해안에는 짙은 안개가 끼었다고 한다. 김정은 위원장이 원격감시소에 올라가 시험장소를 바라보는 순간 직전까지는 짙은 안개가 끼었으나 최고지도자가 감시소에 도착한 직후부터 그 안개가 희한하게도 사라지면서 감시소와 시험장소가 서로 바라볼 수 있도록 되었다는 것이다. 모두들 놀랬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함께 또 하나의 일화를 발사현장에 있었던 높은 관계자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보통때 같으면 하나, 둘, 셋하고 발사하는데 이번에는 하나, 둘하는 순간 김정은 위원장은 그 때 “멈쳐!”하는 최고 지도자의 명령이 떨어졌다. 과학자들과 지도부 관계자들은 김정은 위원장을 바라보았다. 여유있는 표정을 지으면서 그는 하나, 둘 하지말고 열, 아홉, 여덟…하나 하고 발사하도록 명령했다. 그 명령이 떨어지자 과학자들의 표정들은 긴장된 표정에서 여유를 되찾고 차분한 표정으로 발사를 개시했다. 꽝하면서 귀청이 떨어져 나가는 광음이 울려퍼졌고, 지축이 흔들리고 성공이라는 지표가 뜨자 과학자들의 눈시울은 모두 젖어 있었고, 기쁨의 통곡소리로 “야!”하는 함성이 울려퍼졌다.
김정은 위원장의 표정은 만면에 미소가 담겼고, 젊은 과학자들은 물론 원로 과학자들은 유해가스가 많으니 장소를 옮기자고 제언했고, 김정은 위원장은 됐어, 됐어하며 연회장으로 안내하고 고급술로 축하연을 베풀고 기념촬영까지 해 주셨다며 현장에 참석한 과학자들은 기쁨에 벅차 어쩔줄을 몰랐다고 반복하여 회고하기도 했다.
“재돌입 대륙간타도로케트 발동기 지상분출 시험이 그렇게 어렵다는데 거기에 대해 쉽게 설명해 주면 좋겠습니다.”
노길남 박사는 자신도 과학에 대해서는 낮은 상식은 있지만 전문적인 지식은 없습니다. 그러나 과학계 종사하는 북녘 인물들을 통해 얻은 지식들을 소개한다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광명성4호 같은 경우는 대기권에서 벗어나는 지점을 성층권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지구에서 100킬로미터 정도 된다. 이 성층권을 벗어날 때 생기는 마찰이 아주 크기 때문에 인공지구위성도 대기권 밖으로 돌파하고 나가는 힘도 로케트의 힘이 강하고 그 위성을 만든 자료도 뜨거운 열에 견딜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인공지구위위성을 발사할 때 로케트기술도 중요하지만 대기권 밖으로 나갈때 뜨거운 열에 견딜수 있는 위성을 제작하는 기술도 최첨단기술이 동원되어야 한다. 광명성 4호는 대기권서 510킬로미터로 올라가 위성으로 활약중에 있다.
그러나 대륙간 탄도미사일이 성층권 밖을 나갔다가 다시 대기권 안으로 들어오는 과정이 훨씬 더 어려운 첨단과학기술이 필요한 부분이다. 이 때 1초에6~7킬로미터 속도를 낼 수 있어야 하고 그 발동기 전투부가 6000도 내지8000도의 열에 견뎌내야 한다. 기압도 15기압이 되고 해리현상도 일어나기 때문에 재돌입 발동기 지상분출시험에 성공한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를 알게된다. 게다가 이번 조선이 재돌입 발동기 시험에 성공한 것이(구)쏘련과 미국에 이어 세번째 나라가 되지만 성층권 밖에서 지속적으로 올라간 사거리에서 조선의 것이 쏘련과 미국의 기록을 깨고 최장사거리를 이룩했다는 점이 특기할 업적으로 기록되었다.
쏘련과 미국의 것은 그 사정거리가 5,600킬로미터 안팎이었는데 조선의 것은 훨씬 더 길었다는 것이다. 서방의 일부 전문가들은 조선의 사거리를 1만킬로미터에서 1만3천밀로미터로 분석하기도 했다.
“쏘련이 세계 최초의 재돌입 발동기 지상분출시험에 성공한 나라로 꼽는데 이들의 실패역사와 성공역사에 대하여 듣고 싶고, 그리고 조선의 발동기기 재돌입할때 8천도의 열기를 어떻게 뚫고 재돌입되었는지 이를 증빙할만한 자료를 제시할 수 있는가?”
노길남 박사는 이에 대하여 취재수첩을 들여다보며 그 질문에 답했다고 말한다. 1957년10월에 쏘련이 3차례 실패한 걸로 기록되어 있는데1차와 2차는 대기권을 뚫고 나가는 것 자체가 실패했고, 3차시험에서는 나가는것 까지는 성공하였는데 나갔다가 재돌입하여 대기권으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실패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나 그 이후에 성공하였고,쏘련의 성공이후 미국도 여러차례 실패하다가 두번째 성공한 나라로 기록되었다. 그리고 이번에 세번째로 성공한 나라가 조선이 꼽히는데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성층권 밖에서 최장사거리를 기록했다는 것은 카나다 토론토를 포함하여 지구상 그 어디에도 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으로 밝혀졌다. 여기에서 조선의 발동기가 재돌입할 때 그 뜨거운 열도(6000도에서 8천도)를 어떻게 뚫고 진입하였는가에 대한 질문인데 이에 대해 조선의 과학자들은 재돌입한 발동기 추진체 안에 온도계를 장착하였는데 그것을 점검하였을 때 그 열도가 8000도로 기록되었다는 것으로 확인된 사실도 밝혀졌다고 관계부문 과학자들은 대답한다.
“중국같은 나라나 다른 유럽의 선진국들 가운데 재돌입 발동기 성공한 나라들은 없는지?그리고 로케트 발사체를 액체연료로 쓴다, 고체연료로 쓴다는 경우들이 있는데 이 둘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중국같은 나라는 말로는 성공하였다고 하지만 실제로 시험을 해 본 기록이 없어 성공여부를 증명할 길이 없다는 것이 국제사회 전문가들의 논평이다. 그러나 유인우주선이나 인공지구위성에서는 많이 발전한 나라로 꼽히고 있다. 그런데 재돌입 발동기 시험은 대기권으로 벗아났다가 들어 올때 가장 어렵다는 점이다. 보통 강철을 녹이는데 1200도 내지 1550도의 열도가 필요한데 8000도의 열기에 견디려면 그 발동기 추진체의 소재들을 제작하고 만드는 공정이 간단치 않다는 것이다.
액체연료는 방사선 물질이 많아 유해가스가 많다는 점이고 고체연료는 그런 유해가스가 없다는 것이 첫째 차이점이고, 둘째 차이점은 액체연료를 사용하는 로케트는 3일안에 발사를 해야 하는데 고체연료는 그럴 필요가 없이 임의의 시간에 발사할 수 있다는 점고, 셋째로 차이점은 액체연료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일정한 장소에서 발사해야 되는데 고체연료를 사용하는 로케트는 임의의 시간, 임의의 장소, 즉 수중이나 이동식 트럭 등에서도 발사할 수 있다는 점을 차이점들로 들 수 있다.
“북-미대결, 즉 조-미대결의 역사가 70년을 넘기고 있는데 최근의 북-미관계 현황과 전망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많은 국내외 동포들이 묻는 질문들이었다. 우리 5천년 역사에서 20%는 큰나라들의 침략을 받고 설음을 받아 온 역사였다. 그 중에서 최근세사에 와서는 한세기에 두 제국주의자들로부터 침략받고 간섭받으며 나라 말과 글까지, 심지어는 이름까지 빼앗기며 여성들은 성노예의 아픔을 겪었지만 그것마져 진상규명되지 않고 이 시간까지 해결되지 않고 있는 처지입니다. 게다가 1945년 8.15해방을 맞았지만 그것도23일만 해방되었을 뿐 아직도 분단된 조국의 남녘땅은 외세의 강점으로 미군이 군사주권까지 움켜쥐고 좌지우지 하면서 우리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방해하고 있는 가슴아픈 역사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다.이런 상황에서 북과 미제국주의 세력은 한차례 전쟁을 치루고 정전협정을 하고 90일안에 고위급 정치협상을 통해 평화협정을 하고, 평화적으로 정상관계를 약속하였으나 그 같은 정전협정을 지키지 않고 지금까지 유엔의 모자를 미군의 모자로 바꾸어 쓰고 남녘에 주둔하면서 자기들 주둔비까지 남녘 국민들의 세금으로 받아 챙기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북조선은 전쟁을 치른이후 혼자서 미국과 그 추종나라들과 대결국면을 종식시키기 위해 고난의 행군을 이어오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 결과 북조선은 정치사상강국,군사강국, 첨단과학기술 강국이 되었고, 이제는 무력대 무력으로도 미제국주의 세력과 맞설 수 있는 자위력을 갖추게 된 것이 오늘의 북미간의 사정이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제 조선은 세상이 알수 없는 기상천외한 무기들을 가졌다는 것을 더 이상 숨길 필요가 없다고 선언하고 그 기상천외한 무기들의 일부를 지난 한미합동군사훈련 기간에 주요한 몇가지를 과시했고, 이에 충격을 받은 미 당국은 제임스 클래퍼 정보국장을 비밀리에 한국을 방문하게 하여 북미관계를 무력대결로 가서는 안되겠다는 의사를 비공개리에 남측 당국에 전달했고, 뒤이어 최근에 한미연합사령관으로 새로 취임한 흑인계 4성장군 부룩스를 통해서도 한미동맹을 공고히 하되, 북미간의 무력대결로서는 안된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이 뿐만이 아니라 북-미 당국자들은 독일 베를린에서도 조용히 만나 북미간의 관계개선을 타진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왔고, 요즘에도 북-미관계 개선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머지 않은 장래에 조국반도에는 평화의 봄이 올 것으로 내다보인다. 이러한 움직임은 조선이 미국이 담당할 수 없는 최첨단 무장력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도자와 군민이 하나같이 똘똘뭉쳐 있어 이라크나 리비아처럼 다룰수 없다는 데 비롯된 것으로 분석된다. 조선은 지금 전쟁으로서도 그리고 대화로서도 그 어떤 방법으로서도 분단70년을 끝내야 한다는 각오로 전 군민의 사기가 하늘에 달 정도로 충천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자의 두 눈으로 그리고 저의 통찰력으로 구체적으로 검증하고 돌아왔다. 그렇기 때문에 북-미관계는 조만간에 관계정상화될 수 밖에 없다는 정세라는 것을 확신한다. 이것은 미 당국에게도 유익한 정세가 될 것이다.
“조선과 중국관계의 현황과 그 미래 전망은 어떠한가?”
한마디로 새로운 단계로 들어섰다. 반드시 거쳐야 할 단계라고 본다. 조선은 자주성을 생명으로 여겨왔다. 그 누구, 그 어느나라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생명이기 때문이다. 조선의 주권지수(Index of Soverignty)는 지구촌 230개 나라들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에 있는 나라로 손꼽히고 있다. 그리고 사회주의 나라들이 몇개 있지만 가장 진정한 사회주의, 즉 진짜 사회주의로 가고 있는 나라도 오로지 조선 뿐이다. 이 말은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도 모두 사회주의로 가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다른 사회주의 나라들은 정치는 사회주의로 가지만 경제는 이미 개혁개방으로 자본주의 굴레에서 서성거리며 시간이 갈수록 가진자들과 갖지 못한 자들의 간격, 즉 계급(Class)의 격차가 심각할 정도로 심화되고 있는 것이 오늘의 사회주의 대부분의 나라들 사정으로 분석되고 있다.
조선은 러시아나 중국에 대해서도 어떤 사회주의를 하건 그것은 자기나라 사정에 맞는 것을 택하는 건 문제삼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사회주의 기본원칙인 집단주의를 저버리지 말고 사회주의 기본원칙중 하나인 반제국주의 원칙에 대해서는 배신하지 말아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 조선은 자주, 선군, 사회주의 3대원칙은 조금도 흔들림 없이 고수하며 진짜 사회주의로 가고 있다. 그래서 비동맹국 나라들이나 제3세계 나라들은 진보세계의 모범적 나라로 조선을 제일로 손꼽고 있는 것이다. 최근 유엔안보리에서 조선을 제재하기 위한 2270결정서에 대해서 중국과 러시아가 손을 들어준 것 때문에 국제사회 비동맹국가들이나 제3세계 나라들은 중국과 러시아를 다시한번 돌아보며 그 지위와 역할에 대해 실망의 뜻을 보내는 한편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중국과 러시아 당국자들은 피부로 느껴온 것으로 진단된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 인민일보는 지난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를 맞아 1면 머릿기사 자리에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명의로 경축사를 올린 것을 비롯하여 당대회 기간 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김정은 위원장에게 시진핑 주석이 자신의 명의로 축하문을 인민일보 1면에 올린것도 모두 위와 같은 맥락에서 풀이 할 수 있다.
한국 보수언론들은 유엔제재이후 중국이 조선을 배척한다면서 조중무역이 거덜나는 것 처럼 악의적으로 보도해 왔으나 제재이후 40여일 동안 조중무역이 4억9천만 달러로 증가해 그 증가폭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하여 12.7%가 증가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이외에도 국경무역, 변경무역은 전이나 지금이나 활발한 모습 그대로이다. 저조하다면 중국경제 전반이 지난 시기에 비해 저조해 준 결과에 비롯된 것으로 보면 그것이 사실과 부합된다고 보는 것이다.
또한 유엔안보리 제재 2270결의안이 중국의 찬성을 얻었지만 실제적으로는 그 효과가 별로 없이 조중간의 관계가 예전이나 같거나 아니면 한층 더 새로운 단계로 돌입하고 있다는 증후들을 여러국면에서 발견된다. 모란봉 악단과 국가공훈합창단이 중국공연을 갔다가 중국측의 부당한 간섭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 이틑날 짐을 싸고 돌아 온 조선의 자세는 바로 그런 자주성의 입장에 위배되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에 큰 교훈을 준 것으로 진단된다.
“조선과 러시아 관계의 현황과 그 전망은?”
조선과 러시아의 관계는 조중관계보다 조금 낫다고 볼 수 있다. 러시아는 후루시쵸부 시대이후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접고 자본주의쪽으로 기울어지면서 냉전체제가 무너짐과 동시에 미국과 밀월시대를 즐겼다고 볼 수 있다. 한편으로는 미국이 주적으로 삼았던 쏘련(리시아)과 중국을 주적의 테두리에서 거두고 그 이후시대 주적을 조선으로 삼아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러시아와 미국의 관계가 중국처럼 그렇게 순탄하지 않았다. 조선과 러시아의 관계는 ‘처지의 공통성’이 있는 나라들이다. 다시말하면 두 나라가 모두 이제는 반미전선에서 상호 공통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조선과 러시아 관계는 처지의 공통성으로 서로 밀접해 지는 경우들도 지난 시기에 비해 잦아 졌다고 보인다.
러시아는 지난 4월달 중국이 의장국이 된 유엔 안보리가 북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하자고 제기하는 안건이 나왔을때 러시아는 그 때 “검토할 시간을 달라”고 하면서 시간 끌기를 하다가 막바지에 반대소리를 냈다. 러시아는 그때 북조선만 규탄할 것이 아니라 한미합동군사훈련에 대해서도 조선이 몇차례 유엔에 제기했었는데 그것도 함께 문안을 넣자고 하자 그 성명발표는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결국 러시아가 부표를 던진 셈이었다. 러시아도 사실상 전 동맹이었던 리트비아, 라트바 등 작은 나라들이 미국과 합동군사훈련을 벌이며 러시아를 대상으로 도발행위를 한데 대한 보복자세로 해석 할 수 있다. 다시말하면 ‘처지의 공통성’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조선은 아무리 사이가 좋아지고 원만하여도 사회주의 기본원칙에 어긋나는 경우에는 단호히 원칙적인 대응을 하기 때문에 향후 조-러관계는 러시아가 사회주의 원칙을 고수하는가 아니면 그 기본원칙을 저버리는가에 따라 조-러관계의 미래가 결정된다고 보는 것이다. 지금은 상호 필요에 따른 관계로 서로 돕기도 하고 뒤돌아서기도 하는 그런 관계로 보면 좋을 것 같다.
“조선과 큐바사이의 관계는?”
조선으로서는 큐바와 미국과 사이에 국교정상화 된 것을 환영도 비난도 하지 않는다. 조선과 큐바사이는 전통적으로 우호관계에 있었고, 두나라 모두 미당국의 적대시 정책으로 고생하여 온 나라들이다. 그래서 큐바의 제2인자인 부위원장이 조선을 방문하였을 때 후한 대접을 받았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의 접견만 있었지만 마지막 순간에 김정은 최고지도자의 졉견을 받은바 있었다.
그 때 조선은 공연을 통해 ‘일심단결’로 사회주의 원칙을 견지하는 것이 미래의 번영이라는 것을 보여주었고, 무장력을 보여줌으로써 힘이 있어야 큰나라들과 대등외교를 할 수 있다는 교훈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지막 한가지는 “미국 믿지 못할 존재”라는 사실 하나는 귀띔을 준것으로 알려졌다.
큐바 2인자가 미국과 국교정상화에 서명한 이후에 조선을 방문한 것은 조선의 의견을 듣기 위한 수순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만큼 진보세계에서 차지하는 조선의 지위와 역할은 제3세계 나라들에게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조선과 이란과의 관계는?”
두나라 사이는 지금까지 반제반미 측면에서 공통성이 있었다. 이란은 종교적 가치관에 무게를 두는 나라로서 미제국주의에 시달려 왔기 때문에 그 공통성 때문에 조선-이란과의 관계는 그 어느 나라들보다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여 왔다.
지금 보수파가 무능하여 개혁파가 앞서고 있는 상황인데 향후 조선과 이란과의 관계는 그 전망이 어떻게 될지는 좀 더 두고 보아야 할 것 같다. 단지 반미전선인 경우 위기에 봉착하였을 때는 그 어떤 이념을 떠나 함께 하는 것이 국제관계의 경우들에서 비일비재하여 왔다.
“조선과 베트남(윁남)과의 관계는?”
지금의 베트남 상황은 개혁파를 밀어내고 보수파가 진입한 상황이다. 미 당국은 중국과의 견재문제로 베트남에게 호의를 베풀고 있다. 한국에도 주지 않는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해 주며 지원해 주고 있는 정도로 베트남을 아시아 지역에서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부단히 노력해 왔다. 그러나 향후 어떻게 될 것인가는 두 나라 사이에 이해관계에 비롯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조선과 베트남과의 관계는 혁명과정에서 우의를 다진 과거의 역사가 있어 서로 존중하는 관계에 있다. 그리고 한국과의 관계에서도 경제측면에서 여러가지 도움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으로 지금이나 앞으로도 조선과 베트남의 관계는 현상유지로 갈 것으로 보인다.
“한,미,일 동맹은 미국 각본대로 유지되며 성사될 것인가?”
한국이나 일본이 미국에 종속되어 있어 3각군사동맹으로 갈 가능성은 적지 않으나 여기에는 한국내 보수세력들이 반일감정이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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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한,미,일 동맹은 미국 각본대로 유지되며 성사될 것인가?”
한국이나 일본이 미국에 종속되어 있어 3각군사동맹으로 갈 가능성은 적지 않으나 여기에는 한국내 보수세력들이 반일감정이 강하다는데 그 걸림돌이 있을 것으로 전망되기도 한다. 게다가 일본이 “독도는 일본땅”, “위안부 문제는 우리 책임아니다”라는 식으로 나오는 등 대북, 대남 무시정책으로 나오고 있기 때문에 3각군사동맹이 이뤄질 수 있는 가능성에는 여러가지 장애물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일본은 지난 4월1일부터 전범국으로 재무장하지 못하도록 한 헌법 제11조를 폐기하고 군사재무장을 서두르고 있고, 일본내 보수세력들은 어떻게 하나 미국의 간섭으로부터 탈피하려는 독자노선을 갈망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중일관계를 개선해 보려고 하는 세력, 조일관계를 개선해 보려는 세력 등 다양한 세력균형 때문에 3각군사동맹 체제로 전환하는데에도 이러저러한 마찰과 갈등 등이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시기에 북조선이 곧 망한다고 미국과 그 추종나라들이 여론을 의도적으로 오도해 왔었는데 요즘에 와서 또 이런 여론을 퍼뜨리는 현상이 보이는데 조선을 69번째 방문하여 취재한 기자로서 그렇게 보이는지? 그리고 뉴스를 보면 ‘천지개벽’이니 하면서 아침과 저녁이 다르게 변화하는 모습들도 보여주는데 조선이 개발자금이 있는지, 또는 그 개발예산이 어디서 생기는지 대답해 줄수 있는가?”
망한다는 이야기는 지난 시기 3,3,3수법(3일이면 망한다. 3달이면 망한다. 3년이면 망한다)은 밥먹듯 해왔다. 요즘에는 국정원 요원들이 써주는 각본들을 외우고 또 외워 남녘 방송에 출연한 이른바 ‘탈북자들’이 앵무새처럼 노래 불러온 현상이 바로 그 수법이다.
이에 대해서는 한마디로 대답하면 “망한다를 흥한다”로 생각하면 그게 정답이다. 그 진위는 앞으로 시간을 갖고 보면 그것이 사실이고 진실된 표현이라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은 또 역사의 합법칙성에서도 유추할 수 있는 결론이다.
그리고 두번째 질문이 지금 친지개벽되고 있는 조선의 예산이 어떻게 마련되는지 그것에 대한 궁금증인 것 같다. 사실은 나도 그런 것이 궁금하여서 최근 방북취재 기간동안 그것에 대해서도 고위급 관계부문 인물들과 깊이 있는 대화를 주고 받음으로서 많은 사실들을 알게되었다.
1960년대 김일성주석께서 1백년 걸려도 힘들다는 전후 복구사업을 짧은 기간에 해치우고 그 당시에 전후복수사업이후 민생을 위한 계획으로 국방예산을 3%로 대폭축소하고 인민생활향상을 위한 민생예산을 97%로 대폭증액하여 민생경제에 총력을 기울인 결과 1970년대 조선의 경제는 활성화되어 남측의 미국지원구조경제 보다 질양으로 크게 앞섰던 것이다.
그러나 쏘련의 후루시쵸브가 개혁개방을 하고 개량적 사회주의로 돌아서자 쏘련 못믿겠다는 풍조가 일기 시작하면서 조선은 조선의 자기 길을 모색하기 위한 일련의 방법으로 국정운영을 국방과 경제를 함께 추진한다는 제1차병진노선을 발표하고 그 방책으로 예산균형을 국방에 30%, 민생에 70%로 편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서는 제2차 병진노선을 선포하였지만 국방예산과 민생예산 균형을 제1차 병진노선 시기와는 달리 핵보유국이 되고 최첨단 무기인 수소탄과 ‘대륙간탄도탄 로케트 대출력발동기 재돌입 지상분출시험’에 완전성공한 시기를 전후하여 예산편성을 국방비에 3%만 책정하고 민생경제에 97%를 배당함으로써 그 전환된 규모의 예산으로 천지개벽된 사회로 변모시켜 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지난 시기 국방비에 많이 투입되던 시기에는 총예산에서 1%만 배당해도 먹는문제가 해결된다고 하던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고난의 행군시기에도 외세의 침략책동을 막기위해 먹을 것을 줄여가면서, 국방예산을 지출해야 만 했다.
조선의 산업구조는 기본적으로 수입의존도 아니고 수출의존도 아니다. 초창기에는 ‘자력갱생’의 정신이었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자강력제일주의’를 부르짖고 있다. 희토류, 우라늄, 텅스텐 등 지하자원이 풍부하다. 최근에는 광명성4호에서 보내오는 정보에 의해 458개의 지하자원 소재지들을 발견하여 그것들을 개발할 움직임이다. 위성발사체를 만들어 제3세계 나라들의 필요한 주문에서 들어오는 수입, 기후자료, 지하자원 발굴 자료, 물고기 자원 흐름을 파악하는 자료을 공급하고 거둬들이는 수입, 지식경제시대에 걸맞는 인재들을 육성하여 고급인력을 우호적인 나라들에 파송하여 거둬들이는 수입, CNC 등 공작기계 제작품들을 포함하여 이런 기술을 전수시켜 주고 거둬들이는 수입,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로 인한 수입, 군사공업기술이나 무장력을 제작하여 이로 인해 들어 오는 수입들, 도-감청기재와 해킹들을 추적하여 그 흔적들을 찾아내는 기술이 이미 70일전투 기간에 왼료되었다. 이러한 첨단과학기술에 의한 시제품들을 계열생산으로 상품화 하여 거둬들이는 수입 등을 열거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재래식 무기에 들어가는 국방예산을 대폭줄이고 그 대신에 인민생활향상을 위한 예산에 몫을 대폭증가시켜 경제개발을 서두르고 있는 실정이다. 매번 갈때마다 놀랄만하게 변화하는 모습들을 보는 순간마다 감탄하지 않는 해외동포들이 없었다. 이북을 자주 방문하는 외국인들의 경우도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이것을 국내외 동포들이 이북을 방문하여 ‘천지개벽되는 세상이 이런 것이구나”라고 이구동성으로 감탄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조선이 보여주는 현실이다.
“6차당대회이후 36년만에 제7차당대회가 열렸는데 제6차당대회 시기에 비하여 조국통일 문제를 다룬 차이점들이 있다면, 혹은 특징적인 것들이 있다면 알고 싶다.”
나는 이번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가 당6차대회를 진행한 지난 36년 기간 ‘조-미핵대결의 승리역사’를 아로 새기고 북-미간의 새로운 단계를 정립하는 한편 조국통일의 제1단계인6.15시대를 정상적으로 부활시키는 제2의 6.15시대를 여는 새역사 창조를 선언한 대회로 평가했다.
이번 제7차당대회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강조한 조국통일문제는 큰 틀안에서는1980년 10월에 진행된 제6차당대회때 김일성 주석이 내놓은 조국통일 3대원칙으로 민족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을 비롯하여 고려민주연방창립방안에서 제시한 남과 북의 이념, 제도 등을 그대로 두고 연방의회를 구성하고 1국가2체제로 운영하다가 후대들에 의하여 완전통일로 가는 방도를 택하자는 것이고, 민족대단결을 위한 조국통일3대헌장에 담은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정신과 그 유훈을 이어가자는 입장에서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여기에서 적극적인 자세란 6차당대회 시기보다 조국통일문제에서는 훨씬 더 공세적인 입장과 자세라고 본다.
김정은 위원장은 총 3시간 연설에서 조국통일 부문에도 많은 시간을 할해하여 역대 조선의 영도자들이 심혈을 기울여 온 통일원칙들과 방안들을 상기시키면서 5.4조치도 거두고, 민중을 탄압하는 법도 없애고, 미군철수도 실시하여야 한다고 공세적인 자세를 보였다. 그의 연설에서 과거불문을 거론했고, 민족대단결을 역설하였지만 박근혜정권을 염두에 두고 한 말로는 느껴지지 않았다. 박근혜와 그 주변 인물들은 지금 이순간도 아프리카를 다니며 반북적대시 정책을 전개하는데 매몰된 자세를 보이면서 상전인 미당국자들이 주는 충언도 헤아리지 못하고 천방지축 배회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그 모습이 정말로 가련하게만 느껴온다.
어차피 국회가 역사적으로 ‘여소야대’로 전환하는 역사가 이뤄진 조건에서 차기정권에 어느 세력이 집권할 것인가가 국내외 동포들에게 지대한 관심의 대상이 될 것 같다. 오는 대선도 민심이 천심으로 되는 그런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조국의 자주적 통일을 바라는 사람들 모두의 바램인 것으로 보인다.
“노길남 민족통신 특파원께서는 조-미대결의 승리역사라고 규정했는데 이에 대한 조-미, 즉 북-미간의 핵대결에 관한 승리역사들을 간략하게나마 짚어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하여 제언하고 싶다.”
북핵문제하면 이것은 남과 북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북-미, 즉 조미간의 핵대결 역사라고 본다. 조선은 사실 당초부터 비핵화를 염원하였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고, 끝내는 조-미핵대결의 당사자로서 핵보유국으로 그것도 지난 1월6일에는 수소탄 보유국이 되었고, 지난4월8일에는 대기권 재돌입 발동기 지상분출시험에 성공하는 나라로 러시아-미국에 이이어 세번째 나라로 부상하게 되었고, 그것도 사거리에서는 러시아와 미국을 제끼고 최대사거리를 기록하여 지구촌 그 어떤 나라도 임의시간, 임의장소에 타격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 이것은 한마디로 ‘조-미핵대결의 승리의 역사’가 된다.
조선은 1974년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가입하여 가맹국들 사이에 원자력 발전소를 평화적으로 이용할 권한을 부여받았으나 미국과 그추종 나라들에 의해 부당한 대우를 받아아 왔기에 1993년 3월13일 제10조에 근거하여 탈퇴했다. 역사적으로 조선만 탈퇴한 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1985년 12월 핵확산방지조약(NPT)에 가입하였으나 가맹국에게는 핵무기 위협을 받지 않는다고 하였으나 미 당국에 의해 핵무기 위협을 지속적으로 받아 왔고 핵공격 대상7개국에 포함되는가 하면 악의 축이니, 돈세탁국이니, 마약밀매국이니 하면서 터무니 없는 모략책동에 시달리다가 1993년에 핵확산방지조약( NPT)에서도 탈퇴하고 말았다.
그 과정에서 나타난 미당국의 모략조작정책들은 헤아릴 수 없이 무수하게 전개되어 왔다. 요즘에도 조선이 위조지폐국이라고 또다시 근거없는 모략으로 조선을 폄훼하는 양상이 보이고 있다. 그러나 조선은 핵무력이 없던 1968년 프에블로 간첩선 납치한 사건으로 미당국의 공식사죄문을 받아냈고, 121미정찰기 추락사건, 판문점 미루나무 사건 등 그 동안 숱한 사건들이 있었지만 핵이 없던 시절이나 핵보유국이 된 이후에도 백전백승의 길을 걸어 온 것이 조-미대결의 결산이며 동시에 조-미핵대결의 결과라고 평가한다. 이에 대한 문제는 앞으로 자세하게 연대별로 분석하여 미당국의 죄악이 얼마나 잔인하고 허위조작으로 점철되어 왔는가를 실증하는 글을 다시 쓰기로 하고 이번에는 여기에서 마친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