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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껑껑이와 아버지란 호칭 (김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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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3건 조회 2,041회 작성일 16-06-12 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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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웅진 선생님의 조선에서의 아버지란 용어의 설명입니다.
우리의 정서로 친구의 아버지도 아버리라 부르는데 나라의 위대한 지도자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기독교에선 처음부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 부르는 것을 아무도 지탄하지 않는 것도 기억해봅시다.


문화의 지역적 특색은 오해로 연결될 수 있다. 경북 '안동 껑껑이'들은 세상에서 아마도 가장 무뚝뚝한 부족일거다. 안동출신인 나는 서울 사람들이 남의 부모들을 '어머니'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에 놀랐다. 친구들이 어떤 친구 집을 방문했을 때 그 집 부모님들을 그렇게 불렀다. 장인, 장모를 그렇게 부르는 것도 이상했다. 나는 속으로 고개를 저으며 '나는 디졌으면 디졌지 저렇게는 못한다' 생각했다.
가만 보면 이북출신들이 남들에게 '아버지' '어머니'를 더욱 쉽게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그냥 '어르신' 정도의 표현으로 사용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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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수령님도 인민들을 어머니, 아버지라고 불렀다.

①1932년 대장장이 리태순 노인에게 "《아버님, 놈들이 청년들을 만나기만 하면 파리잡듯이 자꾸 잡아죽이는데 우리가 올방자를 틀고 가만히 앉아있을수야 없지 않습니까?》“

②1933년 소왕청유격구 방어전투 무렵 "《아버님, 왜 장밤 한숨만 쉬고계십니까?》
나는 이불자락을 걷어젖히고 로인쪽을 향해 모로 돌아누웠다.“
"《...그런데 아버님, 이 일을 어쩌면 좋습니까? 적은 수천명이나 되는데 소왕청을 지키는 우리 군대는 적의 100분의 1이나 되나마나하니…》"

③장백현 사람들에게 "《아버님, 수고가 많았습니다. 이런 보리쌀은 처음 봅니다. 어떻게 찧었기에 이다지도 새하얗습니까?》“

④해방후.. "나는 1958년에 현지지도차로 량강도에 갔을 때에야 비로소 렴보배어머니가 혜산에서 살고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역에서 어머니를 만났는데 머리에 흰서리가 내려있었다.
《어머니, 종근이도 먼저 가고 종근이 아버지도 세상을 떠나고… 오늘 이렇게 머리에 흰서리가 내린 어머니를 만나니…》
나는 목이 메여 뒤말을 이을수가 없었다(...)나를 부둥켜안은 어머니의 눈에서는 눈물이 쏟아져내리고있었다. 《어머니, 난 그전에 어머니네 집을 제집처럼 드나들었는데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해방이 되여 10년세월이 지나도록 왜 나한테 찾아오지 않았습니까. 편지라도 한장 하면 안된답디까.》 나는 어머니의 터슬터슬한 손을 쓸어만지며 섭섭한 말을 하였다."

⑤<유격대의 어머니> "백두산에서 여러해동안 우리와 함께 고락을 같이한 전우들가운데는 《어머니》로 불리운 녀성유격대원이 한명 있었다. 그는 사령부작식대원 장철구였다(사진)(...) 
나이는 우리보다 10살나마 이상이였다. 10살 정도의 차이라면 《누이》나 《동무》라고 불러도 무방할 나이이다. 그러나 나도 평시에는 그를 《동무》라 부르지 않고 《철구어머니》라고 부르군하였다. 장철구보다 나이가 어방없이 많은 《대통령감》까지도 《철구어머니》, 《철구어머니》라 하여 웃음을 자아냈다."

⑥아동단들도 그랬다. "<아이들이 또 사람은 얼마나 따르는지…어른들만 보면 십리밖에서부터 아동단경례를 붙이구 <할아버지>, <아버님>, <아재>,<누나>,<언니>하면서 찰찰 감겨돌아가는데…하여튼 평이 대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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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봄 마안산에서 민생단(일제의 밀정)으로 몰려 절망에 빠진 수백명의 유격대원들과 그 아이들(아동단)은 김일성 수령에 의해 무죄가 되고 구원되었다. 넝마를 걸친 아이들은 수령이 모친으로 받은 유산과 같은 20원을 아낌없이 사용, 새 옷을 해 입혔다. 아직 젊은 김 수령은 그 때부터 아버지, 어버이 호칭을 듣기 시작했다. 그들은 조선인민혁명군의 대오를 이루어 백두산으로, 조국 땅으로 진군했다. 생존자들은 '수령결사옹위'의 핵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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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사전 지식이 있으면, 조선 인민들이 김일성주석을 아버지, 어버이로 부르는 것이 터무니없다고 생각될 수 없으며, 당 7차 대회기간 중 최고 가요로 선정된 <세상에 부럼 없어라>의 가사가 크게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사회주의 대가정인 조국을 노래한 것이며 위대한 수령님(지도자)을 아버지로 부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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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하늘은 푸르고 내마음 즐겁다 손풍금 소리 울려라 사람들 화목하게 사는 내조국 한없이 좋네
(후렴) 우리의 아버진 김일성 원수님 우리의 집은 당의 품 우리는 모두 다 친형제 세상에 부럼없어라.
2.우리 힘 꺾을 자 그 어데 있으랴 풍랑도 무섭지 않네 백두의 넋을 이어 빛나는 내조국 두렴 몰라라
3.동무들 다함께 노래를 부르자 손풍금 소리 맞추어 천리마 나래펴는 내 조국 백화가 만발하였네


세상에 부럼 없어라   https://www.youtube.com/watch?v=iSm5ideW0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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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세상에 부럼 없어라

https://www.youtube.com/watch?v=iSm5ideW0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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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킹님의 댓글

김킹 작성일

영국에선 King Father-Queen Mother 라고 하고 있고
캄보디아에선 시아누크가 죽을 때까지 King Father 라고 불렸읍니다

대만에선 손문이 국부로 추앙받고 있고
우리 나라에선 이승만 국부론이란 얼빠진 주장을 하는 얼빠진 자들도 있지만

아버지다운 사람을 아버지라 하고
어머니다운 사람을 어머니라 부르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읍니까?

역사적으로 많은 국가에선 관례적으로
왕다운 왕과 왕비다운 왕비들을 국부나 국모로 칭했읍니다
북조선의 관레만 관례를 관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오누이간을 시작으로 해 친족들간의 혼인이 전세계적으로 당연한 관례였던 시절이 있었건만
지금은 동성동본간의 혼인을 범죄보듯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 하겠읍니다

唯仁者 能好人 能惡人
유인자 능호인 능오인
오직 인자만이 타인을 사랑하고 미워할 자격이 있다는
논어의 한 구절을 남을 평가할 때는 꼭 잊지 말아야하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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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님의 댓글

백마 작성일

김킹님의 말씀이 아주 교훈적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김일성을 어버이라 호칭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남한에서는 북한을 아주 미친 국가로 대부분 간주하고 있지요.
그러고보면 어느쪽이 미친 국가인지 분별이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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