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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련희의 북녘생활 4. 남에서는 의사와 말한 값도 내야 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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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1,722회 작성일 16-06-19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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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고향인 평양으로 돌려보내달라고 요구하는 김련희 씨의 북녘생활 4를 
자주시보에서 공유합니다.

[김련희의 북녘생활4] 남에서는 의사와 말한 값도 내야 한다니!
-북 의사, 월급보다는 사회적으로 높이 우대
김련희 북녘동포 icon_mail.gif
기사입력: 2016/01/14 [00:19]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북 의사들의 월급은 그리 많지 않지만 생명을 책임지는 일을 하고 있기에 모든 봉사에서 우대를 받는 다고 한다. 이를 테면 소소한 일이기는 하지만 식당에 줄이 서 있어도 의사와 교사는 먼저 식사 봉사를 받는다고 한다. 생명과 아이들의 미래를 책임지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자주시보

 

 

우리 북녘의 인민보건법은 무상치료, 예방의학, 의사담당구역제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의료시설로는 일반병원과 특수병원이 있으며 위생, 방역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위생방역소가 있다.

 

인민들은 대체로 거주지 의료시설을 이용하며 특수질병, 의학연구대상환자는 도(직할시)군에 있는 특수병원인 결핵병원, 간염병원, 정신병원이나 적십자병원, 대학병원으로 후송된다.

 

내가 여기 남쪽에 와서 제일 자주 들은 이야기가 어머니와 남편이 의사이니 잘 살았겠다는 말이었는데 처음에는 의사가 왜 잘사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실 나도 학생시절부터 의사가 되는 것이 꿈이였다. 수업을 마치고 어머니가 일하시는 병원에 가보면 하얀 위생복을 입고 환자들 앞에서 미소를 지으며 아픈 이들의 이야기를 성의껏 들어주시던 나의 어머니의 모습이 세상에서 가장 우아하고 멋져보였다.

 

어머니의 넙적다리에는 3곳의 허물자리가 있다. 병원에 실려 온 심한 화상환자에게 의사들이 제일 먼저 수술대에 올라 자신들의 피부를 떼주었는데 어머니는 환자들에게 3차례의 피부이식과 피도 수혈해주셨다.

환자들을 위해 자신의 피와 살도 서슴없이 바치는 어머니의 높은 정신세계를 보며 나도 의사가 되고 싶었다.

 

▲ 북 언론이 보도한 김련희 씨의 가족 사진     © 자주시보 이창기 기자

 

▲ 김련희 씨  부친과 의사인 모친,  그리고 가운데는 김련희 씨 딸인 리련금 씨, 손주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의 정이 보통이 아닌 듯 하다.     © 자주시보, 자주시보 이창기 기자

 

우리 담당의사선생은 온화하고 친절한 여선생이었는데 한 달에 한 번씩 저녘에 모든 세대들이 퇴근하면 진행되군 하는 인민반회의에 나와 계절에 따르는 건강관리와 여러 가지 병증세들의 상식에 대한 위생선전을 진행하군 한다.

 

한번은 이른 아침에 진료소에서 매 세대마다 쪽지를 돌렸는데 집에 있는 주민들은 낮에 진료소에 와서 예방주사를 맞고 직장출근 하는 주민들은 저녘 퇴근길에 진료소에 들려 주사를 맞으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아픈 예방주사를 맞기 싫어 일부러 저녘 늦게 퇴근하며 진료소에 들리지 않고 곧바로 집으로 갔는데 글쎄 아파트 현관 안에 담당의사선생이 위생가방을 들고 지키고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어쩔 수 없이 주사를 맞고야 집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약골이라 누구보다도 병원신세를 많이 진 것 같다. 고등중학교시절에는 만성간염으로 60일짜리 요양소를 2번이나 갔다 왔고 심심치 않게 병원입원생활을 자주 하였다.

내가 중국으로 나오기 한 해 전에는 간경화, 간 복수 진단을 받고 6개월 동안을 김책공업종햡대학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나는 6개월 동안 내가 무슨 주사를 맞고 무슨 약을 먹는지, 그 약들은 얼마의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으며 그냥 병원에서 알아서 치료해줄 거라는 믿음뿐이었다.
이렇게 나는 아프면 언제든지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고 약값이 얼마인지를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하지만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면서 심각한 경제난으로 의약품부족과 의료진에 대한 식량배급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해 병원에서의 환자치료는 적지 않은 난관에 부닥치게 되었다.

 

전국의 봉사시설이나 공공장소, 편의시설마다 “교원, 의사, 우선 봉사합니다.”라는 글이 붙어있다.
의사와 교원을 사회적으로 우대하는 것은 그들이 인민의 생명과 나라의 왕이자 미래인 어린이들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남쪽에 와서 처음으로 병원에 간 것이 피부과였다. 우리 북쪽에는 피부과라고 하면 습진이나 피부염을 치료하는 시설인데 여기 인터넷을 보니 피부과에서 여자들의 기미와 잡티를 없애주고 성형수술을 해준다고 한다.

 

나도 여자인지라 호기심에 집주위에 있는 피부과에 가서 접수를 하고 과장선생님을 만났다. 과장선생님에게 나는 얼굴에 기미가 많은데 여기서 없애준다고 해서 찾아왔다고 하자 250만원을 내라는 것이었다.

남쪽에 온지 몇 달 안 되었던 나는 깜짝 놀라 미안하다고 인사를 하고 방을 나와 가려고 하자 복도에 있던 간호사가 돈을 내고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어 “저 지금 약도 안 먹고 주사도 안 맞았어요. 치료받지 않았는데 무슨 돈을 내야 하나요?” 라고 물었다.
그러자 간호사는 과장선생님과 상담비를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병원은 치료하는 곳인데 말한 값도 내야 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나는 여기 남쪽에서도 여러 번 병원신세를 지게 되었다. 의사선생님들도 정성을 다했고 간호사들도 친절하였다.
퇴원할 때쯤 되면 병원비가 얼마 나왔을까 하는 걱정만 없다면 다른 것은 모두 편하고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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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괴자님의 댓글

자괴자 작성일

의사와 교사가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는 사회라면
그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대충 짐작이 갈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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