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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수령님과 <머슴살이>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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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4,044회 작성일 16-08-17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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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오늘에서 공유

우리 수령님과 《머슴살이》(1-2)

 

 

 

김일성 주석이 항일무장투쟁시에 무장투쟁의 대중적 지반을 꾸리기 위하여 친히 머슴으로 가장하고 인민들 속에 들어가 농촌마을들을 혁명화한 역사적 사실을 조선의 오늘 사이트가 다음과 같이 전하였다.

 

1982년 초 어느날이었다.

 

김정일 장군님은 일꾼들과 자리를 같이하고 담화를 하다가 이렇게 교시하였다.

 

《수령님의 위대성에 대하여 많은 글을 썼지만 아직 수령님의 숭고한 풍모에 대하여 천만 분의 하나도 옮겨놓지 못하였습니다.》

 

1930년대 초 김일성 주석이 안도현일대에서 반일인민유격대 창건준비사업을 지도할 때였다.

 

안도현 푸르허근방 돈화현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곳에 크지 않은 농촌마을이 있었다.

 

돈화현과 통하는 길목이어서 앞으로 무장투쟁을 벌이기 위해서 반드시 혁명화하지 않으면 안 될 지점이었다.

 

그런데 마을에는 적의 밀정들이 배겨있어서 그곳에 가는 지하공작원들과 연락원들은 영낙없이 체포되거나 살해당하곤 하였다.

 

김일성 주석은 마을을 혁명적으로 꾸리기 위하여 여러 차례 공작원들을 파견하였지만 누구도 발을 붙이지 못하였다.

 

그 마을에 조직원 한 사람이 있기는 하였으나 그의 힘 만으로는 마을을 혁명화할 수 없었다.

 

마을을 혁명화하는 것은 한시도 지체할 수 없는 문제였다.

 

동지들은 김일성 주석의 신변을 염려하여 극력 만류하였지만 주석의 결심을 돌려세울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김일성 주석은 《비천한 머슴》으로 가장하고 온갖 수모와 멸시를 받으며 끝내 마을을 혁명화함으로써 반일인민유격대창건의 앞길에 가로놓였던 또 하나의 난관을 몸소 헤쳐나갔던 것이다.

 

일꾼들과 함께 항일혁명투쟁시기에 있었던 이러한 사실을 회고하던 김정일 위원장은 이렇게 말하였다.

 

《수령님께서는 그때 이불도 없이 목침 하나를 베고 주무시며 강낭죽에 갓김치로 끼니를 에우시면서 〈머슴살이〉를하시였습니다.

 

수령님은 아직 10대의 청년이시였는데 그 마을을 혁명화하시는 과정에 한평생 잊으실수 없는 귀중한 생활체험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러고는 우리 인민의 항일혁명투쟁사에서 빛나는 한 페지를 장식하고있는 김일성 주석의 그 불멸의 사적을 말해주었다.

 

김일성 주석은 마을의 조직원과 약속한 날 헌 누데기를 걸쳐 입고 세수도 안 한 얼굴에 머리도 깎지 않은 채 마을을 찾아갔다.

 

그러고는 마을어구에서 조직원을 만나 그의 소발구를 타고 마을로 들어갔다.

 

마을사람들은 며칠 전부터 그 집에 데려온다고 하던 머슴꾼이 왔다고들 하였다.

 

그런데 마을에서의 공작은 첫 걸음부터 아슬아슬한 고비를 넘기지 않으면 안되었다.

 

김일성 주석은 저녁밥을 들려고 할 때 마을에서 한 20리 떨어진 곳에 주둔하고 있던 기마경찰대놈들이 달려들었다.

 

벌써 밀고가 들어간 것이었다.

 

갑자기 어디로 피신할 수도 없게 된 김일성 주석은 마당으로 나가 도끼를 들고 나무를 패기 시작하였다.

 

마당으로 달려든 기마경찰대놈들은 자기들이 잡으려는 혁명가는 머리에 기름도 바르고 신사옷차림을 한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그런데 허름한 옷차림을 한 젊은이가 나무를 패고 있는 것을 보자 별로 수상히 여겨지지 않았던지 집주인인 조직원에게《웬 사람인가?》고 물어볼 뿐이었다.

 

집주인은 자기네 집에 《머슴》으로 데려온 사람이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기마경찰대놈들은 여기저기를 두루 살피고 나서 그냥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이렇게 첫날에 위급한 순간을 넘긴 김일성 주석은 다음날부터 계획대로 마을을 혁명화하기 위한 사업을 지도하였다.

 

아침 일찌기 나무하러 가시는 것처럼 발구를 끌고 산에 올라 조직원과의 사업을 진행하였다.

 

이처럼 비공개로 사업하다나니 마을사람들은 모두가 김일성 주석을 정말 머슴으로 알고 업수이 여기기까지 하였다.

 

 

- 조선예술영화 《조선의 별》 제5부에서 나오는 우물가의 한 장면 -

 

 

아낙네들은 아침에 물을 길러 나왔다가는 서슴없이 반말을 하며 우물가의 얼음을 까달라고 하였다.

 

김일성 주석은 그런 수모를 당하면서도 묵묵히 얼음을 까주곤 하였다. (계속)


우리 수령님과 《머슴살이》(2)

 

그런데 하루는 맞은편 집에서 잔치가 있었는데 마을의 젊은이들이 위대한 수령님을 찾아와서 함께 가서 일을 좀 도와주자고 하는것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때 일을 눈앞에 그려보시다가 못내 가슴이 아프신듯 안색을 흐리시며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그날밤 수령님께서는 한평생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고 천대와 멸시속에서 살아가는 머슴들의 기막힌 처지를 생각하시며 잠을 이루지 못하셨다고 합니다.

일제침략자들을 하루빨리 때려엎고 모든 가난한 사람들이 잘사는 세상을 반드시 세워야겠다는 새로운 결심도 다지셨고봉건적사회제도가 얼마나 인간의 자주성과 존엄을 유린하는가 하는것도 뼈저리게 체험하셨다고 합니다.

다같이 나라를 잃고 이국땅에 가서 고생하는 처지인데 머슴이라고 하여 그렇게 업수이여기는 농민들을 보시고 아무리착취받고 압박받는 인민대중이라도 그들을 의식화하고 조직화하지 않는 한 결코 자기 운명의 참다운 주인이 될수 없다는것을 더욱 깊이 느끼셨다고 합니다.》

일군들의 눈앞에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령하 40도까지 내려가는 안도의 겨울날에 산에 오르시여 나무도 하시고 우물가에서얼음도 까시며 농촌의 최하층속에서 머슴이 당하는 고초를 몸소 체험하시면서 혁명의 길을 개척해나가시던 그 력사의 나날이 금시 펼쳐지는것만 같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때 한달반동안 《머슴》으로 계시면서 지하조직도 내오시고 사람들도 교양하시여 온 마을을혁명화하시고 그곳을 떠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이러한 력사적사실을 이야기하시고나서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수령님께서 가르치신바와 같이 혁명적세계관의 형성과정은 결코 간단하지 않습니다. 혁명적세계관은 꾸준한 사상교양과 실천투쟁속에서 의식발전의 일정한 단계를 거쳐서 형성되고 공고발전됩니다.

사람들의 혁명적세계관형성은 사물현상의 본질을 파악하는 인식단계와 계급적으로 각성되는 단계를 거쳐 착취없고압박없는 새 사회를 건설하려는 혁명적각오를 다지는 단계를 거치게 됩니다. 사람들은 사상의식발전의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참다운 혁명가로 자라납니다.

그런데 중요한것은 혁명적세계관이 선 다음에도 실천투쟁속에서 그것을 공고발전시키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누구나 참다운 혁명가로 될수 없으며 생명의 마지막순간까지 변함없이 혁명에 충실할수 없습니다.

이것은 수령님께서 지난 반세기동안 간고한 혁명투쟁을 령도하여오시면서 몸소 자신의 체험으로 검증하신 진리입니다.

수령님께서 우리 일군들과 인테리들에게 늘 현실속에 들어가서 자신의 혁명적수양을 쌓으라고 강조하시는것도 그때문입니다.》

위대한 장군님의 이 교시는 어버이수령님께서 항일혁명투쟁시기 일신의 위험을 무릅쓰시고 《머슴살이》까지 하셨다는력사적사실을 하나의 비범한 일화로, 한갖 지식으로만 알고있던 일군들에게 참으로 두고두고 잊지 못할 크나큰 충격을 주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활동력사에서 하나의 사실을 놓고서도 심오한 사색의 세계를 펼치시며 거기에서혁명의 계승을 위하여 귀중한 교훈을 찾아내신것이였다.

조국해방의 길에 나서신 첫날부터 늘 인민들속에 들어가시여 그들과 함께 생사고락을 같이하여오신 우리 수령님의 《머슴살이》와 위대한 장군님의 그날의 잊을수 없는 이야기는 오늘도 우리 천만군민의 가슴을 세차게 울려주고있으며 위대한수령님들의 념원대로 우리 조국땅우에 사회주의강국건설위업의 최후승리를 눈부시게 앞당겨오게 하고있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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