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권이 통일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연내에 통일헌장을 발표하겠다고 밝혀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이미 우리민족에게는 7.4남북공동성명에서 밝힌 조국통일의 원칙과 그에 입각한 6.15공동선언, 그리고 10.4 선언이 있기 때문이다. 이 기회에 조국통일의 근간이 되는 7.4 남북공동성명, 6.15 공동선언, 10.4선언을 소개한다. 1. 남북 최초의 7.4 남북공동성명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이던 1972년, 지금의 국가정보원장 격인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은 몰래 평양을 방문해서 김일성 주석을 면담하고 7월 4일에는 김영주 조선노동당 조직지도부장과 함께 7.4 남북공동성명을 합의하였다. 합의문에 남북은 서로 상부의 뜻을 받든다고 명기하여 이것이 박정희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의 재가에 따른 성명임을 밝혔다. 7.4 남북공동성명은 ‘첫째, 통일은 외세에 의존하거나 외세의 간섭을 받음이 없이 자주적으로 해결하여야 한다.’는 자주의 원칙과 ‘둘째, 통일은 서로 상대방을 반대하는 무력행사에 의거하지 않고 평화적 방법으로 실현해야 한다.’는 평화의 원칙, 그리고 ‘셋째, 사상과 이념,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우선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하여야 한다.’는 민족대단결의 원칙을 합의하였다. 아울러 공동성명은 긴장완화와 신뢰조성을 위해 상대를 비방중상하지 않으며 자주적 평화통일을 촉진시키기 위해 남북간 다방면적 교류를 실시하기로 하였다. 특히 돌발적 군사사고를 처리하기 위해 남북간 군사직통전화를 개설키로 하였으며 세부사항을 남북조절위원회를 구성해 처리하기로 하였다. 외세를 극복하고 민족의 번영을 지향하는 조국통일의 성격에 맞게 통일은 응당 자주의 원칙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지난날 전쟁의 참화를 목도한 우리민족의 뻐저린 경험과 군사적 개입을 통해 이뤄지는 외세의 개입을 고려할 때 통일은 평화적 방법으로 수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민족의 대업인 조국통일은 마땅히 온 민족의 대단결로 이뤄져야 한다. 이처럼 이미 40년전에 남북은 조국통일의 근간이 되는 통일의 원칙을 합의하였던 것이다. 2. 남북정상회담이 낳은 6.15 공동선언
2000년 6월 13일에는 중앙정보부장이 아니라 대한민국 대통령이 직접 평양을 방문하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진행하였다.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평양 순안공항까지 나와 김대중 대통령을 직접 맞이하였으며 수많은 평양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남측 대표단을 환영하였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대한민국의 언론과 방송에 생생히 전달되었다. 6월 15일, 남북정상은 6.15 공동선언을 발표하였다. 6.15 공동선언은 1972년에 합의한 조국통일의 원칙에 맞게 제1항에서 ‘1.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합의하였다. 나아가 2항에서는 ‘2.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고 하였다. 6.15 공동선언에서 최초로 남북통일방안의 공통성을 인정함으로써, 조국통일을 실질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되었으며 통일이 이제 시작되었다는 각계각층의 벅찬 환희와 감동의 물결을 이뤄내었다. 남북협력과 관련해서도 선언은 ‘4. 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 문화, 체육, 보건, 환경 등 제반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서로의 신뢰를 다져 나가기로 하였다.’고 합의해 경제협력과 사회문화협력을 나누어 접근하였으며 협력의 목표를 서로의 신뢰를 다져나가는데 두어 통일에 복무하는 협력을 할 것을 합의하였다. 6.15 공동선언은 그야말로 50년 분단역사를 종식시키고 조국통일의 파도를 일렁이게 하는 민족의 쾌거였다. 6.15 공동선언을 전후하여 금강산 관광사업과 개성공단 등 남북협력사업이 추진되었으며 남북장관급회담과 군사회담인 남북장성급회담이 이어져 통일논의가 급격히 고양되었다. 3. 구체적 통일 로드맵을 그린 10.4 선언
2007년 10월 4일, 육로를 통해 휴전선을 밟고 북한을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회동하고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이란 제목의 10.4 선언을 발표하였다. 10.4 선언은 1항에서 ‘남과 북은 6.15 공동선언을 고수하고 적극 구현해 나간다.’고 합의해 6.15 공동선언의 정신을 그대로 계승하였으며 군사적 적대관계를 종식시키고 상호존중과 신뢰의 관계로 나아가기로 합의하였다. 이어 10.4 선언에서는 조국통일을 앞당기는 문제와 관련해 종전선언을 추진하는데 협력하기로 하였으며 남북경제협력에서 공리공영과 유무상통의 원칙을 합의하였다. 특히 10.4선언에서는 조국통일을 이행해나가는 구체적 합의사항이 도출되었다. 남북은 의회의 대화와 접촉을 추진해 정치교류를 넓히기로 하였으며 NLL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를 조성하고 남북공동어로구역을 설정하기로 합의하였다. 이어 10.4 선언에서는 다양한 사회문화교류와 인도적 협력사업을 합의하였으며 백두산관광문제, 이산가족 상봉문제, 심지어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남북응원단 참가문제까지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합의하였다. 4. 모든 것이 다 있는데 왠 통일헌장인가
지난 70년간 남북은 그저 대결만 한 것이 아니다. 이미 40년전인 1972년부터 남북은 조국통일의 원칙을 합의하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도대체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무엇을 배웠는가. 2000년 6.15 공동선언에서는 통일방안을 합의하였다. 6.15 공동선언이 채택된 덕택에 박근혜 대통령도 2002년 5월, 미래연합 대표 자격으로 단독으로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회담할 수 있었다. 당시 방문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김일성 주석이 출생하였다는 만경대 생가를 방문하였고 북한의 주체사상을 선전하는 주체사상탑을 방문하였다. 방북 후 박근혜 대통령은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보고 “서로 마음을 열고 이끌어낸 약속들을 가능한 한 모두 지키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요즘같으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즉시 구속되어 종북정치인으로 낙인찍힐 일이었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행적과 발언에 대해 아무런 불이익을 받지 않았다. 이 모든 행보가 6.15 공동선언 덕택에 가능하였다. 10.4 선언에는 정치, 군사, 외교, 경제, 사회, 문화 부문의 협력사업을 모두 합의해 놓았다. 각 부문별 협력원칙과 방법은 남북의 현실에 가장 부합하는 내용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