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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원하는 것은 '반정'이 아니라 '혁명'이다 (김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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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1,778회 작성일 16-11-02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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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수 선생님의 글을 공유합니다.


김갑수

우리가 원하는 것은 ‘반정’이 아니라 ‘혁명’이다
- 때가 무르익었다, ‘역사적 우’를 반복하지 말자

혁명이란 무엇인가? 하늘의 명을 간다는 뜻이다. 혁명이 없는 공동체는 단명한다. 혁명을 위장하는 공동체는 패멸한다. 역사적으로 보아 혁명을 위장하는 것으로 '반정'이 있었다. 하지만 반정은 교언에 불과하다.

1506년 9월 연산군이 폐위되고 진성대군이 옹립되었다. 이른바 중종반정(中宗反正)이다. 연산군의 폭정과 혼정은 우리가 익히 아는 바이다. 당시 민심의 이반은 극에 달해 있었다. 호남지역에서 시작한 연산군 폐위 거사 격문이 서울 장안에 나돌고 있었다.

이에 대신 세력이 중심이 되어 연산군을 끌어내렸다. 당시의 주동자는 ‘3대장’으로 일컬어지던 이조참판 성희안, 지중추부사 박원종, 이조판서 유순정 등이었다. 끌어내려진 연산군은 강화도 교동(喬桐)에 유배되었다. 그리고 진성대군이 왕위에 올랐는데 그가 조선왕조 제11대 왕인 중종이다.

그러나 국가 권력은 반정 주동세력인 공신들이 장악했고 중종은 그들에게 이끌려 갈 수밖에 없었다. 다시 말해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한 것이 아니라, 이미 연산군 대에 공직에 있던 인물이 왕을 교체한 후 다시 기득권을 유지하는 상황이 빚어진 것이다.

이로부터 117년 후인 1623년 4월, 또 하나의 반정이 발발했다. 이른바 인조반정(仁祖反正)이다. 이것은 서인 일파가 광해군 및 대북을 몰아내고 능양군을 옹립한 사건이다. 광해군은 과도한 왕궁 공사로 경제를 파탄시켰고, 친형 임해군을 사사했으며 이복동생 영창대군을 죽이고 인목왕후를 폐비시켜 서궁에 유폐하였다. 이 같은 광해군의 패륜 정치 척결을 명분삼아 서인 김류, 김자점, 이귀, 이괄, 심기원 등이 거사한 것이다.

광해군도 강화도로 유배되었다. 이후 광해군 정권 때의 권세가였던 이이첨, 정인홍, 유희분을 비롯하여 무려 40여 명이 참수되었고, 200여 명이 유배되었다. 반정에 공을 세워 집권한 이귀, 김류 등 33명은 정사공신(靖社功臣)의 훈호를 받고 각기 고위 벼슬을 차지했다. 그러나 논공이 공평하지 못한 나머지 반정 세력은 잇단 내부 분열에 시달렸다.

인조반정을 일으킨 서인 일파는 지나치게 명분에 집착하였고, 이에 따라 광해군이 추진한 중립외교 정책을 비판하면서 구체적인 전략도 없이 무조건적인 친명배금 정책을 실시했다. 이는 국제정세의 흐름을 제대로 간파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결국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 일어나 백성의 삶은 더욱 도탄에 빠졌다.

반정이란 ‘올바르게(正) 되돌린다(反)’는 뜻이다. 하지만 이 두 차례의 반정에서 올바르게 되돌려진 것은 별로 없다. 피상적으로 보아 이전보다 조금 나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기실은 권력이 교체되었을 따름이지 백성들의 삶과는 거의 무관했던 것이 반정이었다.

박근혜는 ‘폐위’되어야 마땅하다. 그의 폭정, 혼정은 연산, 광해에 뒤지지 않는다. 박근혜와 한 몸통인 새누리 권력은 추방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들은 더도 덜도 없이 외세 의존 기득권 집단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의 야당 즉, 민주, 국민, 정의당은 무엇인가? 그들은 기껏 해야 반정세력에 불과하다. 오늘의 이 변란을 그들이 주도하여 해결하게 맡긴다면 우리는 고작 '반정’의 결과밖에는 얻지 못할 것이다.

엄밀히 말해서 4.19는 혁명이라고 할 수 없다. 굳이 혁명이라고 한다면 ‘실패한 혁명’이다. 4.19가 왜 실패했는가? 권력이 외세 의존 기득권 세력인 한민당의 후예 민주당에게 돌아갔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해서 4.19는 ‘반정’이지 혁명이 아니었다.

6.10은 어떠했는가? 이것은 혁명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니 6.10은 반정도 못되었다. 타도의 대상이었던 5공 파쇼정권의 후계자 노태우가 권력을 쥐었는데 어떻게 반정이란 말인가? 6.10은 권력 집단 간의 ‘타협 또는 담합’으로 결과되었다.

지난 600년 역사에서 우리에게는 혁명의 기회가 한 번 있었다. 그것은 동학항쟁이었다. 그러나 불운하게도 당시는 제국주의의 무력 침략기였다. 외세의 무력 침공으로 인해 동학은 혁명이 되지 못하고 ‘항쟁’에 그치고 말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금은 최소한 우리의 항쟁에 외세가 직접 군대를 파견하지는 못하는 정세다. 그러니 오늘의 이 사태를 야당에게 맡기지 말자. 오로지 백성의 힘으로 박근혜 사교정권을 퇴출시켜 백성을 진정으로 대변하는 대표자들에게 주도권을 위임하여 행사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만이 당면한 백성의 삶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킬 것이고, 우리의 숙원인 민족통일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이것만이 우리 공동체의 미래를 온전하게 구축하는 역사의 정도이다. 바야흐로 때가 무르익었다. 600년 역사에서 단 한 번도 이루지 못한 ‘역성혁명’을 일으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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