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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련희 수기, 따뜻한 내나라] 7. 한국에 입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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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2,680회 작성일 16-10-25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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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시보에서 공유

▲ 김련희 북녘동포     © 자주시보



2011년 9월 16일 드디어 한국에 입국하게 되며 인천공항에 대기하고 있던 버스에 실려 곧바로 국정원으로 들어갔다.

 

나는 독방에 감금된 상태에서 국정원담당자에게 내가 브로커에게 속아 잘 못 왔으니 내 가족이 있는 고향으로 돌려보내달라고 애원하였다.

 

담당자는 나를 보내면 북에서 남쪽에 갔다 왔다고 죽일 텐데 어떻게 보내주겠냐고 하였다.

 

나는 혹시 죽는대도 내 고향에, 내 부모 곁에 묻힐 것 아니냐, 죽어도 내 가족 곁에 가서 죽겠으니 보내만 달라고 하소연도 해보고 한 달 동안 단식도 해보았지만 그들은 나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나중에 국정원은 나보고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겠다는 서약서를 써야 밖에 나갈 수 있다며 서약서를 쓰지 않으면 죽어도 국정원에서 나갈 수 없다고, 그러면 네가 여기서 죽었다는 것을 그 누구도 모를 것이라며 협박하였다

 

당시 나는 대한민국국민이 아닌 당당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공민이었다

 

자국민이 아닌 사람을 국정원 독방에 한 달 동안 감금하고 자국민이 되겠다는 서약서를 강요하는 것은 철저한 국제법위반이다.

 

나는 공포 속에 너무나 무섭고 두려웠다.

 

평양에서 북으로 송환되신 비전향장기수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걸어서 들어갔다가 누워서 나온다는 안기부의 무서운 고문과 폭행에 대해 공포감을 가지고 있었던 나는 국정원의 말처럼 정말 살아서는 밖에 나갈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독방에 갇혀 있는 한 달 동안 단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식사시간이 지나면 9시부터 12시까지, 13시부터 17시30까지, 19시부터 21시까지 매일 불려나가 조사를 받았다.

 

어느 날 저녁 나는 고된 조사와 스트레스로 그만 갑자기 위경련을 일으켜 경기도 안산병원에 실려갔다.

 

병원에 가서야 내가 지금 간복수가 와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었다.

 

입원치료 3일만에 국정원 직원이 나를 퇴원시키라고 지시하자 응급실 과장은 현재 배에 복수가 있는데 조금 더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하였다.

 

하지만 국정원 직원은 당장 링겔을 뽑으라고 압박하며 끝내 그 자리에서 나를 국정원으로 끌고 갔다.

 

독방에 다시 들어온 나는 어떻게나 꼭 살아서 가족의 품으로 가야겠다는 한 가지 생각으로 어쩔 수 없이 국정원 직원이 강요하는 대로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겠다는 서약서를 쓰고서야 하나원으로 갈수 있었다.

 

사회에 나가서 6개월만 있으면 여권이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된 나는 이제 가족에게 갈 수 있는 길은 이 방법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이 나는 국정원에서 한 달 동안 독방에 갇혀있었지만 6개월 동안 독방에 갇혀있었던 탈북자들도 여러 명 된다.

 

국정원에서의 탈북자들은 철저한 죄인취급을 받는다.

 

한국 실정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변호사나 다른 사람들과 일절 만날 수 없으며 독방에서 고된 조사와 두려움으로 하루빨리 국정원을 나서고 싶어서 간첩허위자백까지도 한다.

 

국정원에서 조사 중에 죽은 탈북자가 있는데 그가 무엇 때문에 어떻게 죽었는지는 국정원 밖에 누구도 모른다.

 

국정원은 그 탈북자가 간첩이라고 자백하고 나서 마음속 괴로움으로 자살했다고 발표하고 연고 없는 사람들이 있는 공동묘지에 묻었다고 한다.

 

상식적으로 봐도 차라니 간첩이 들통날까봐 자살했다고 해야 설득력이 조금 있지 간첩이라고 자백하고 나서 자살했다니 정말 웃지 못 할 코미디이다.

 

죽은 탈북자와 중국에서 함께 생활해온 친구는 그가 간첩이라는 것이 말도 안 된다며 중국에서 나쁜 짓을 해 중국공안에 갇혀있기도 했다고 하였다.

 

국정원 독방에 6개월을 감금되어 있었던 한 탈북자를 만났는데 매일 불려나가 조사를 받으면서 계속 북의 간첩임무를 받고 들어오지 않았냐고 솔직히 말하라고 위협을 하면서 제대로 자백하면 칼기 폭파범 김현희처럼 잘살게 해주고 북에 있는 가족도 데려다 주겠다고 회유했다는 것이다.

 

6개월 동안 독방에서 너무도 지치고 힘들어서 차라리 간첩이라고 허위자백하고 몇 년 감옥살이 하는 것이 편할 것 같아 북에서 (자신이)살았던 동(洞-마을) 보위원에게서 간첩임무를 받고 왔다고 말하자 국정원직원은 임무를 준 동(洞) 보위원의 이름과 나이, 얼굴생김새를 말하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동(洞) 보위원의 이름을 모르고 있던 그는 어쩔 수 없이 자기 옆집에 살던 병원의사 아저씨의 이름과 얼굴 생김새를 말 하였더니 며칠 뒤 조사 때에 국정원직원이 하는 말이 “알아보았더니 그 사람이 보위원이 맞다”고 하면서 간첩임무 받은 것을 자세히 적으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옆집 아저씨의 이름과 얼굴 몽타쥬를 말해 주었는데 그게 보위원이 맞다고 하니 그 말을 들으면서 그는 비로소 이것이 정말 간첩을 만들기 위해 허위자백을 받아내기 위한 함정이라는 것을 깨닫고 모든 자백을 뒤집고 간첩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자 국정원직원은 다른 사람들도 7~8번씩 자백을 번복하는데 이제 겨우 3번을 번복했으니 아직 시간이 많으니 괜찮다고 얼리면서 잘 생각해보라고 하였다고 한다.

 

조사 도중에 막말과 협박, 벌세우기, 유혹으로 간첩자백을 강요했으나 끝내 간첩허위자백을 하지 않자 6개월만에 독방에서 풀려나 하나원으로 갈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국정원 조사과정을 회상하며 치를 떨면서 하나원에서는 국정원에서 거짓말을 했으니 불이익을 준다며 매 개인당 차례지는 정착금에서 3백 만원을 떼고 주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과 중국에서부터 함께 온 친구는 끝내 견디지 못하고 간첩이라고 자백하여 국정원 6개월 독방에서 바깥세상을 보지도 못하고 간첩으로 청주여자교도소 독방에 갇혀있다고 한다.

 

국정원에서 나와 하나원에서 3개월 동안 한국사회정착에 필요한 여러 가지 교육을 받으면 사회에 나가게 된다.

 

한국에 입국한 탈북자들에게 한 사람당 6백 만원의 정착금이 차례지는데 하나원을 나가기 며칠 전에 3백만 원을 먼저 통장을 새로 만들어 넣어주었다.

 

브로커 비용을 갚으라는 것이다.

 

탈북자들은 브로커를 통해서만 한국에 입국하게 되는데 거리에 따라 3백만 원부터 1,500만 원의 비용을 브로커에게 주어야 한다.

 

브로커는 중국에 있는 북쪽 사람들을 한국으로 데려오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로서 이미 오래전에 한국에 들어와 있는 탈북자들이나 기독교 목사들이다.

 

하나원 직원은 우리들에게 그 비용을 제때에 갚지 않으면 사회 나가서 브로커들과 재판까지 가게 되는데 당신들은 한국의 실정도 잘 모르고 변호사 비용도 엄청나 빚을 지게 된다며 이 3백만 원을 빨리 브로커들에게 보내주라고 하였다.

 

나는 하나원에서 가르쳐준 대로 250만원을 브로커에게 계좌이체 해주고 50만원을 가지고 사회로 나왔다.

 

나머지 3백만 원은 이제부터 3개월만에 백만 원씩 지급되기에 9개월이 되어야 내 손에 정착금 3백만 원을 전부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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