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교육부재문제'에 대한 비판적 소고 (정기열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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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긴 자료를 굳이 소개한 목적이 있다. 위 자료에는 북미주동포사회 “민족교육”의 실체가 과연 무엇인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역사적 자료, 정보들이 비교적 자세히 소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자료에 기초하면 해외동포사회 특히 북미주이민사 전 기간 ‘민족교육’이라 불릴만한 내용이 실재(实在)했는지 혹은 부재(不在)했는지에 대한 사실 파악이 가능하다. 이 자료에는 민족교육이 실재했다면 그것은 무엇인지, 부재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특히 남녘역대정부의 민족교육에 대한 생각의 한계가 무엇인지 등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내용들이 담겨 있다. 위 자료에 의하면 부끄럽게도 100년 북미주이민사에서 “민족교육”이라 부를 수 있을만한 내용이 거의 전무하다는 사실이다. 있다면 “한글학교”가 유일하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인용한 자료 여기저기에 밑줄 긋고 두껍게 덮어쓴 내용들이 있다. 거의 모두 ‘한글학교’ 이야기다. 자료에는 “867개의 한글학교에서 민족교육을 담당하고” 있다는 대목이 있다. 앞에서 간단히 언급했듯 북미주한글학교는 기초적(초등학교) 수준의 “모국어(우리말)교육”을 가르치는 주말학교가 대부분이다. 그것도 주로 주말에만 모이는 ‘한인교회 부속 한글학교’가 대부분이다. 문제는 1주일에 한번 주로 한인교회에서 가르치는 ‘초등학교 1-2학년 수준의 한글학교’에서 어떻게 ‘민족교육’이 가능했는지에 대해 아무런 설명이 없다는 것이다. ‘한글학교에서 민족교육을 담당했다’는 [한국]정부 주장을 뒷받힘할만한 자료 또한 그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민족교육부재현상’은 북미주만 아니라 해외동포사회 또한 거의 같다. 대동소이다. “민족교육”이라 부를 수 있는 교육내용은 실은 “부재했다” 혹은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거의 전무했다”는 단정적 결론은 따라서 틀리지 않다. 크게 무리가 없다.[xvii]
II부: 문화제국주의(미국화)와 재일본조선인 민족교육운동의 인류사적 보편성(Universality)
20세기 전반 일본강제이주사, 20세기 북미주이민사는 근본에서 같고 다르다
미주이민사가 시작된 20세기 초는 주지하듯 카츠라-테프트조약 같은 미일제국주의자들의 밀약에 의해 나라와 민족의 운명이 좌우지되던 때다. 미국이 필리핀을, 일본이 조선을 타고 앉기로 비밀리 체결한 1세기 전 나라 잃은 망국노가 되어 세상을 떠돌던 시절 해외이주사는 시작된다. 우리민족의 해외이민(주)사는 그러므로 지역이 어디건(그것이 중국이건 일본이건 미주건 과거 쏘련방국가들이건 상관없이) 근본에서 모두 우리민족에 대한 100년을 넘긴 미일제국주의침략사와의 상호연관 속에서 이해해야 옳다. 식민지종주국 일본땅에 강제징병, 징용으로 끌려간 식민지망국노들과 그 후예들에 의해 시작된 20세기 초반의 일본강제이주사는 그러므로 같은 시기 만주, 일본, 북미, 남미 등 세상천지 곳곳으로 뿔뿔히 흘어져간(혹은 팔려간) 20세기 초반 해외이민사(북미주 포함)와 근본에서 다르지 않다. 그러나 재일동포강제이주사는 전쟁 뒤 거의 100% 남녘출신 동포들로 구성된 북미주이주사와는 근본에서 다르다. 1세기 전 ‘상갓 집 개만도 못하다’는 ‘나라 잃은 백성’으로 식민지종주국에 노예처럼 끌려갔던 재일동포강제이주사는 전쟁 뒤 거의 대부분 ‘경제적 이유’로 조국땅을 떠나 “자발적으로 형성된” 북미주동포이민사와는 근본에서부터 다르기 때문이다. 1세기 전 특히 전쟁 뒤 급증하기 시작 오늘도 카나다 포함 북미주 그리고 주로 백인국가들인 유럽대륙국가들과 호주, 뉴질랜드로 이어진 남녘동포들의 ‘탈남러시’ 곧 해외이주(이민)행렬은 기본 “경제적 이유”에서 출발한 역사다.
서구사대주의가 뿌리 깊고 ‘조선민족차별주의’가 극심한 식민지종주국 일본땅에서 식민지망국노들이 주체가 되어 70년 ‘민족교육운동’을 발전시켜왔다는 사실 자체가 기적이다. 위대한 기적이다. 불가사의다. 남녘과 해외동포사회 나아가 세상 많은 곳들에서 제대로된 민족교육이 100년 넘도록 부재(거의 전무)할 수 밖에 없던 역사를 돌아볼 때 정녕 기적이 아닐 수 없다. 민족교육부재문제는 앞에서 논한 것처럼 근본에서 “미국화의 세계화”(혹은 온 세상의 미국화) 결과다. 세상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자본과 제국논리가 지배하는 일본사회에서 꽃핀 재일본조선인들의 70년 민족교육운동사는 그러므로 미국화 곧 문화제국주의 문제를 극복했기에 가능했던 역사다. 일본땅에서 꽃핀 민족교육운동은 미일제국주의자들과의 문화제국주의전쟁에서 승리하지 않고 결코 지속될 수 없는 운동이다. 바로 이 측면이 민족교육운동의 인류사적 위대성을 논하지 않을 수 없는 제일 중요한 역사적 근거다. 바로 그 측면에서 민족교육운동의 인류사적 보편성(Universality)을 논해야 한다고 믿는다. 민족교육운동이 유네스코에 무형문화유산으로 이미 오래 전 등재되었어야 옳다고 주장하게된 배경이다.
그러나 남녘과 해외동포사회 민족교육부재문제는 우리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그 문제는 범세계적 문제다. 그 어디도 예외가 없다. 있다면 지구촌 유일의 “제국주의천적” 혹은 “미제천적”으로 불리는 “조선”과 조선과 반제자주사회주의 성향, 지향, 특히 사회주의혁명국가 건설 배경이 같거나 노정이 비슷한 쿠바, 이란 같은 극소수의 제3세계국가들 뿐이다. 개혁개방시기 ‘급속히 서구화/미국화된’ 문제를 염두에 두더라도 큰틀에서 중국 역시 예외라고 할 수 있다. 그들 가운데서 자타가 공인하듯 ‘조선’이 대표적 예외라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예외도 있다. 조선과 운명과 숨결을 같이한 재일본조선인들의 민족교육운동 또한 예외다. 국가가 아닌 틀과 배경, 처지에서 민족교육을 그것도 70년 발전시켜온 역사는 총련동포들의 민족교육운동이 인류사에 유일한 예외다. 민족교육운동을 인류사 초유의 사건으로 전대미문의 위대한 기적의 역사라 기록해야 하는 이유다. 정치사상문화적 측면에서의 ‘동질화’ 곧 ‘획일화’(Homogenization) 즉 “온 세상의 미국화” 구도에서 볼 때 ‘조선’이란 ‘불가사의한 존재’와 ‘위대한 민족교육운동사’는 따라서 인류사에 대단히 특수한 예외적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조선이 70년 미국의 온갖 제국주의책동을 이기고 오늘 우주핵강국으로 우뚝 선 역사와 총련동포들이 일본 당국의 온갖 차별, 탄압, 제재를 극복하고 오늘 민족교육운동을 활짝 꽃피어낸 역사는 그러므로 근본에서 같다. 두 역사 다 미국화(문화제국주의)문제를 이긴 지구촌 유일의 예외적 역사다. 온 세상의 민족교육부재문제 곧 미국화가 그들에겐 통하지 않은 것이다. 완벽하게 실패한 것이다. 오히려 반제자주적인 민족교육운동을 조선은 국가차원에서, 총련동포조직은 전국단위에서 모두 70년 아름답게 꽃피워낸 역사다. 정녕 위대한 인류사적 사건이라 아니할 수 없다. 미국화가 남녘과 해외동포사회 속에 민족교육을 질식(말살)시킨 근본배경, 원인이었던 역사를 감안할 때 재일동포들의 70년 민족교육운동사의 인류사적 위대성은 따라서 더욱 빛나지 않을 수 없다.
재일동포 ‘민족교육’은 남녘, 북미주 포함 해외동포사회는 물론 지구촌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70년 재일동포운동사는 곧 ‘총련동포운동사’다. 총련동포운동사는 곧 ‘70년 민족교육운동사’다. 즉 민족교육운동 언급없이 재일동포운동을 논할 수 없고 그 반대 역시 같다. 재일동포사회에서 꽃핀 민족교육운동은 그러나 남녘과 해외동포사회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한(恨)많은 식민지종주국 일본땅에서 그 어떤 상황, 조건, 처지에도 조국과 운명과 숨결을 같이 하며 70년 피땀으로 일구고 가꾼 재일동포들의 민족교육운동 같은 경험은 우리민족뿐 아니라 지구촌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 재일본조선인들의 위대한 민족교육운동사는 인류사에 전례가 없다. 전무하다. 재일동포들이 70년 꽃피운 민족교육운동이 인류사적 의의를 갖는다고 주장하는 근거다. 인류사 그 어느 갈피에도 재일동포들이 꽃피운 것과 같은 민족교육운동 경험은 역사에 존재하지 않는다. 식민지종주국에서 조선사람들에 의해 활짝 꽃핀 민족교육운동을 위대한 인류사적 사건이라고 정의해야 하는 이유다. 그래야 합당하다. 그래야 옳고 타당하다.
민족교육운동이 인류사적 의의를 갖는 주요 근거 중 하나는 무엇보다 먼저 그 운동이 제 나라 제 땅에서 행해진 일반적인 평범한 교육환경에서 꽃핀 운동이 아니란 것이다. 해방 직후 “민족교육운동”의 첫 걸음을 뗀 ‘국어강습소’ 운동에는 강제징용, 강제징병, 유학 등 일제시대 식민지종주국에 식민지노예로 끌려간 이들이 주축이 됐다. 그 운동은 1948년 도쿄 도내 ‘조선학교 폐쇄령’에 맞서 싸우다 당시 오사카에서 16살 소년(김태일)이 일본경찰 총에 맞아 사망하는 “4.24한신교육투쟁”처럼 일본당국의 온갖 탄압, 제재, 억압과 끝까지 맞서 싸우며 70년 계속된 운동이다. 민족교육운동이 최악의 환경, 조건 속에서 꽃피어난 위대한 민족교육운동이라 아니할 수 없는 역사적 배경이다. 바로 이 배경이 민족교육운동을 인류사에 전무한 위대한 인류사적 민족교육운동경험이 되게한 가장 중요한 근거다.
<조선학교 이야기-차별을 딛고 꿈꾸는 아이들>(지구촌동포연대 엮음·선인) 추천사를 쓴 서경식 도쿄경제대 교수의 말은 경청할 만하다. “(재일동포에 대한 일본사회의 차별은)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광복 뒤 70년 동안 일본 지배층의 일관된 정책으로 집요하게 재생산돼 온 것이다. 조선학교는 항상 식민지지배 책임을 부인하려는 일본지배층에게 상징적인 표적이 되어 왔다. 그 압력에 대한 저항은 조선반도 남이든, 북이든, 재일이든 분단이데올로기를 넘어 전 민족적으로 공유해야 할 과제다. 조선학교는 이 투쟁의 최전선에 놓여 있다. 최전선에 선 사람들을 고립시켜서는 안 된다.”[xviii]
식민지종주국에서 70년 활짝 꽃핀 재일동포들의 민족교육운동은 인류가 정녕 일찍이 모르는 경험이다. 그리 단정해 틀리지 않다. 해방과 분단 이후 일본땅에서 겪은 재일본조선인들의 민족교육운동경험은 그러나 일제시대를 산 2-3천만 조선민족에겐 전혀 낯선 경험이 아니다. 조선사람 전체가 일제시대 이미 경험한 역사다. 일제시대 악랄하고 혹독한 민족차별정책이 장기화되며 우리민족은 자신의 성과 이름, 말과 글을 뺐겼음은 물론 점점 많은 동포들이 점점 자신의 말과 글, 얼, 넋, 뿌리의식을 잃어갔다. 500년 서구지배 속에서 세상 거의 대부분이 ‘서구화’ 하며 자신의 뿌리 곧 말, 글, 얼, 혼, 전통, 문화를 잃어버린 경우와 같다. 500년을 지나며 많은 경우 아예 자신의 말, 글, 뿌리가 무엇인지조차 모를 정도로 잃어 버렸다. 500년 서구식민주의가 뿌리내린 아프리카대륙과 중남미 경우가 대표적이다. 후자가 특히 더하다. 후자 경우 그들 언어는 수백 년 100% 서반아(西班牙)어로 바뀌었다. 브라질에서만 포르투갈어(Portugese)가 쓰이는 것을 제외하고 중남미는 100% 서반아어를 쓴다. 제국주의자들의 언어가 피식민지 민중의 언어가 된 것이다. 사람의 사고와 의식세계는 일반적으로 그 사람이 쓰고 말하는 언어의 지배를 받는다. 사고는 언어의 지배를 받는다.[xix] 인류사 모든 제국주의역사가 증명하는 명제다. 말, 언어를 잃은 민족 치고 제국주의지배에서 살아남은 민족은 거의 없다. “언어제국주의”(Linguistic Imperialism)[xx]에 대한 해석과 정의가 분분하지만 언어제국주의는 북중남미대륙에 대한 500년 서구식민지배를 가능케한 결정적 요인 가운데 하나다. 말, 글이 그렇다면 ‘종교’(“가장 치명적인 문화제국주의”) 또한 같다. 전자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문화(종교)제국주의(Culture Imperialism)는 무력을 앞센 군사제국주의보다 그 후과가 더 치명적이고 오래 간다. 군사력으로 중앙아시아, 서아시아, 러시아, 중동 나아가 동유럽의 일부까지 지배했던 대몽골제국이 중국대륙에 세웠던 위대한 원제국(元帝國)은 한자(漢字)라는 무기(문화)를 가진 중원(中原)의 “문화대국”(文化大国) 한족(漢族)에게 ‘동화(식민화)되어’ 역사에서 사라지고만 경우가 좋은 예다. 중남미 식민지민중의 종교는 500년 뒤 오늘 거의 100% 식민지종주국 종교인 “서구기독교”(흔히 “구교” 혹은 카톨릭)다. 스페인에게서 300년 넘게 식민지배(1571-1898)를 받은 필리핀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재일동포민족교육운동: 식민지종주국에서 식민지민중에 의해 꽃핀 역설적인 인류사적 사건
전국적 단위의 단일한 지휘체계를 갖춘 ‘준(準)국가적’ 조직체계로 정치경제적으로 독립적이며 하나의 옹근 독립국가 지위, 위용에 걸맞는 국제외교관계와 자체의 고유한 언어, 문화, 정신, 얼, 넋, 전통, 생활을 옹호, 유지, 보존하며 유치원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완벽하게 독립적인 초중고교육체계를 갖춘 총련조직의 70년 민족교유운동사와 같은 역사는 인류사에 전례가 없다.[xxi] 그것도 식민지종주국에서 끝없는 민족차별, 탄압, 방해, 제재, 온갖 형태의 불이익에도 흔들림없이 70년 꽃핀 민족교육운동사는 인류사에 더더욱 없다. 사람과 집단의 위대성이, 조직과 집단에 속한 개개 사람의 용기, 사랑, 의지, 신념, 지혜, 슬기, 아름다움이 집대성된 민족교육운동 같은 위대한 역사적 경험은 인류사에 없다. 재일본조선인들에 의한 초유의 그 인류사적 경험을 전대미문의 “위대한 무형문화유산”이라 정의해야 하는 이유다. 그때에야 비로소 인류사적 의의를 갖는 민족교육운동의 위대한 정치경제문화역사적 의의, 가치가 ‘통전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 믿는다.
70년 민족교육운동사는 그러므로 개인과 집단 곧 사람의 아름다움이 총출동/집대성된 위대한 사랑의 대서사시라 정의해야 옳다. 그리 정의해서 틀리지 않다. “끝없는 사랑과 기적의 연속” 그 자체인 위대한 그 대서사시는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탄생한 것일까? 민족교육운동 탄생의 역설적 아름다움은 어디서 어떻게 시작된 것인가? 그 역설은 제국주의 특히 일제 잔재가 제도적/구조적으로 계속되도록 용인한 워싱턴의 교활한 분열(분단)지배전략과 70년 그에 편승한 역대 일본당국의 반조선(재일본조선인)정책이 탄생시킨 역설이다. 그 역설적 아름다움은 제국주의 잔재가 70년 가장 지독하게 뿌리내린 서울, 동경에서 탄생했다. 일본사회의 극심한 조선민족차별과 반총련문화가 탄생시킨 역설이다. 민족교육운동의 역설적 아름다움을 극한의 조건, 처지, 환경을 극복한 채 꽁꽁 언땅을 뚫고 솟아오르는 인동초(忍冬草)역설적 아름다움에 비교한 이유다.[xxii] 정치경제사회문화교육적으로 모든 것이 척박(瘠薄)한(barren, infertile, sterile, poor) 땅 일본에서 재일본조선인들에게 70년 강제된 극한의 그 모든 시련이 인류사 초유의 위대한 민족교육운동을 탄생케 했다는 역설은 따라서 틀리지 않다. 정녕 위대한 역설이라 아니할 수 없다.
III부: 재일동포민족교육운동을 <유네스코 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해야 옳다
일제 패망 뒤에도 일본지배계급의 제국주의본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워싱턴 비호 아래 교묘하게 숨겨지고 보호됐다.” 아베 총리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 전총리가 대표적 경우일 것이다. 주지하듯 그는 “A급 전범”이었다. 70년 숨겨졌던 제국주의본성은 그러나 주지하듯 오늘 또 다시 ‘워싱턴 비호 아래” 아베로 상징되는 신군국주의세력에 의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평화헌법’을 파기하고 군국주의부활을 꿈꾸는 아베로 대표되는 일종의 ‘신제국주의세력’이 그들이다. 일본지배층에게 그대로 남아 있는 제국주의잔재는 70년 재일동포사회와 민족교육운동을 대하는 역대 일본당국의 반조선반총련 정책, 자세, 태도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확인된다. 70년 조선민족차별과 반총련반민족교육운동사는 오늘과 과거 일본지배계급의 제국주의본성이 근본에서 그 어떤 차이도 없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아베정권과 역대 일본당국의 조선인차별정책이 근본에서 크게 차이가 없다고 단정할 수 있는 근거다. 제국주의 성향이 그대로 남아 있는 일본지배층의 반조선, 반총련, 반민족교육말살정책은 따라서 일제시대나 한신교육투쟁시대나 오늘 아베시대나 근본에서 차이가 없다. 민족교육운동을 끝없이 탄압하고 압살을 시도한 역사적 사례, 근거는 70년 반총련, 반민족교육운동사에 수두룩하다. 역대 일본지배계급은 일제 때와 똑 같은 논리, 배경, 이유에서 재일본조선인들의 민족교육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아베는 따라서 특수한 예외가 아니다. 제국주의 속성이 그대로 남아 있는 일본지배계급의 숨겨진 본성이 오늘 아베를 통해 그대로 드러난 것에 불과하다. 숨겨졌던 제국주의 본성이 아베에 와서 솔직하게 드러난 것일 뿐 특수한 예외는 아닌 것이다.
이쯤에서 민족교육운동이 70년 무엇을 목적하고 지향했으며 어떤 꿈과 희망을 가진 교육운동이었는가에 대한 분석이 필요할 것 같다. 간단하게라도 민족교육운동의 본질적 성격에 대해 생각해보자. 첫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민족교육운동의 민족(주의)적 성격이다. 식민지시대 민족차별정책이 계속되는 일본에서 동포들의 정치경제사회문화사법민족적 권익을 옹호, 고수하기 위한 재일본조선인들의 민족교육운동이 민족(주의)적 성격을 띠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당연한 것이다. 둘째 분단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조국통일운동 성격이다. “공화국 해외공민”들인 재일본조선인들이 주체가 되어 벌린 민족교육운동이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것 또한 너무도 당연하다. 바로 그 성격이 70년 재일동포사회를 다른 지역 해외동포사회와 근본에서 서로 다른 지위에 놓이게 만든 배경이라 믿는다. 해외동포사회 그 어디서도 같은 유례를 찾을 수 없다. 셋째 민족교육운동의 반제자주적 성격이다. 이 역시 세상 그 어디서도 전례가 없다. 민족교육운동은 따라서 재일본조선인들의 정치경제사회적 권익을 옹호, 고수하기 위한 민족(주의)적 성격 뿐만 아니라 분단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지향하고 한편 본질에서 반제자주적인 성격을 가진 진보적 민족교육운동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재일본조선인들의 민족교육운동은 “지구상에서 가장 반제자주적인 사회주의국가 ‘조선’”과 70년 “운명과 숨결을 같이” 했다. 그 정치적 선택 때문에 70년 재일본조선인들은 이루 말로 다 형언키 어려운 대가와 희생을 치렀다. 오늘도 치르고 있다. 그러나 총련동포들은 그 어떤 조건, 처지, 환경에도 조국통일과 반제자주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 어떤, 환경, 처지, 조건에도 그들의 ‘동포사랑, 민족사랑, 조국사랑이야기’ 곧 ‘아름다운 사람들의 사랑이야기’가 끝없이 계속되는 민족교육운동은 단 한번도 걸음을 멈춘 적이 없다. 무엇보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그들의 ‘조국방문’ 걸음은 멈춘 적이 없다. 단 한번도!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중동, 북중남미대륙 등 서구제국주의 지배를 받은 피식민지국가들과 민족들 중 침략자들의 말, 글이 아니라 제 민족의 말과 글, 얼, 혼, 전통, 문화가 살아 70년 지난 오늘도 대를 이어 살아 맥박치는 민족교육운동경험은 재일본조선인들 외에 인류사에 선례가 없다. 그것도 1-20년도 아니고 반세기가 훌쩍 넘도록 실천한 나라와 민족은 더더욱 없다. 전무하다. 해방 뒤 재일본조선인들의 민족교육운동은 그러나 과거 식민지 시대 민족차별과 근본에서 같은 아니 더욱 교활한 형태의 탄압, 제재, 불이익을 끝없이 받았던 70년 분단시대 꽃펴났다. 그러므로 민족교육운동은 이미 오래 전 <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에 일찍이 등재되어 세상에 널리 소개되었어야 옳다. 세상이 일찍이 모르는 전대미문의 최악의 교육 조건, 환경, 처지 속에서 꽃펴난 재일동포들의 민족교육운동경험이 지역, 인종, 민족, 피부, 지역에 상관 없이 모두에게 대단히 이로운 “인류사적 보편성”(Universalilty)을 띠고 있다 믿어 의심치 않는다. 민족교육운동이 인류사적 의의를 갖지 않을 수 없는 이유라고 믿는다. 고조선(高朝鲜) 시조 단군왕검(檀君王儉)의 “홍익인간”(洪益人间), “이화세계”(理化世界)[xxiii] 사상이 뜻하듯 민족교육운동이 “세상에 널리 이로운”(洪益人间/理化世界) 인류사적 교육운동경험이라 정의하는 것은 따라서 전혀 무리가 없다. 민족교육운동이 70억 인류에게 대단히 이로운 귀중한 민족교육운동경험이라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유네스코(UNESCO)에 민족교육운동을 <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일은 그러므로 뒤늦게나마 대단히 지당하고 천만 번 정당한 일이라 믿는다.
나가는 말: “조선의 승리는 과학이다”, “민족교육운동의 승리는 과학이다”
본 논문은 지난 몇년 위대한 민족교육운동의 인류사적 의의에 대한 연구가 무르익어가면서 1차적으로 정리된 생각들을 모은 글이다. 무엇보다 논문에서 다룬 문제들은 일회성으로 연구하고 쓰고 발표하고 멈출 일이 아니라 믿는다. 좀 더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갖고 문제의식을 함께 공유하는 분들과 집단적인 중장기연구가 뒤따라야 할 과제라 믿는다. 끝으로 유네스코등재 관련 좀 더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중장기전망, 방안, 대책을 연구하는 후속논문들이 뒤이어 나올 수 있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 최근 <로동신문> 론설위원 동태관 선생의 <조선의 승리는 과학이다>란 제목의 정론 기사가 화제다. 동 선생의 기사 논조, 시각에 100% 동조하며 같은 논조, 시각에 기초해서 아래와 같은 명제로 부족한 미완성의 논문을 끝맺는다: “조선의 승리가 과학”이듯 총련동포들에 의한 “민족교육운동의 승리 또한 과학이다.”
2016년 10월 25일 작성
<끝>
미주(Endnotes)
[ii] http://tip.daum.net/question/48622561
[iii] http://tip.daum.net/question/48622561
“… 또 하와이에 간 조선인들이 노예취급을 당한다는 소식을 접하자 정부로서는 국민을 노예로 팔 수 없다는 것이었다. …”
[iv]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823072
[v] http://tip.daum.net/question/48622561
[vi] <동아일보> 1998, 02, 25자 “고국을 떠났던 선조들 한민족 流民史(유민사)…발자취를 좇아서 (7) 구한말 하와이 농장이민”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8022500209130001&ed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8-02-25&officeId=00020&pageNo=30&printNo=23804&publishType=00010
관련하여 서울의 학술논문 하나를 소개한다: <19세기 말∼20세기 초 하와이 이민에 관한 연구>
http://academic.naver.com/view.nhn?doc_id=47039151&dir_id=0&page=0&query=20%EC%84%B8%EA%B8%B0%20%EC%B4%88%20%ED%95%98%EC%99%80%EC%9D%B4%EB%85%B8%EB%8F%99%EC%9E%90%20%EC%82%AC%EC%A7%84%EC%8B%A0%EB%B6%80&ndsCategoryId=10305
[vii] 북미주(카나다 포함)동포사회에 약 3,500에서 4,000개의 ‘한인교회’들이 있다는 주장이 있다.
http://cafe.naver.com/enpost001/1810
http://blog.naver.com/ohgom12/220223255943
[viii] “특정 사회에서 이루어진 문화적 선택이 다른 나라에서도 채택되어 동일한 문화 현상을 보이는 것을 문화적 동질화라고 한다. 문화의 동질성 현상에 대해 국가들 간 상호교류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주장과 힘이 강한 중심국가가 이익과 필요에 따라 주변국에 일방적으로 자국의 문화를 침투시킨 결과라는 주장이 대립한다.” [네이버지식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691428&cid=42251&categoryId=42252
[ix] “통전”(統/通全)적은 한자의 통할 통(通)과 통합/통일할 통(統) 그리고 전체의 전(全)을 복합하여 만든 새로운 우리말 신조어다. 영어로 holistic이라 흔히 쓴다. 제국주의논리는 기본적으로 이분법적이고 분열적이다. 사람의 사고체계를 끝없이 쪼개(분열시켜)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사물, 상황을 얼른 제대로 파악치 못하게 한다. 명확하고 분명한 것이 아니라 거꾸로 혼란, 혼돈(Chaos)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제국주의자들이 오늘 지어는 ‘혼돈의 제국’(Empire of Chaos)이라고까지 불리게된 배경이다. 통전적이란 신조어의 뜻은 따라서 사람들이 사물, 상황을 얼른 바르게 전, 후, 좌, 우, 상, 하를 통일적으로 일관되게 파악하고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x]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61024000607
[xi] 결국 서구논리이자 20세기 후반 풍미했던 서구철학의 한 조류인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세상일반의 설명 또한 “서구중심적”이다. 그래서 세상은 이래저래 서구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거의 모든 것이 500년 서구중심으로 구조화된 이유다. 500년 서구구도를 사고와 의식, 말, 표현, 철학, 종교, 문화에서 깨지 못하면 서구로부터의 해방은 없다. 그러나 말 자체가 도대체 무엇인지를 위해 아래 서울 <두산백과사전>의 포스트모더니즘 정의를 소개한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63925&cid=40942&categoryId=32856
[xii] 미합중국 성조기의 51번째 별이 되자!
http://blog.naver.com/stekideau/150124590527
한국이 미국의 51번째 주로 편입된다면?
http://blog.naver.com/sjm880219/30021460471
우리나라는 미국에 편입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11&dirId=111001&docId=58060586&qb=66+47ZWp7KSR6rWtIDUx67KI7Ke4IOyjvA==&enc=utf8§ion=kin&rank=3&search_sort=0&spq=0&pid=TsxHvlpySEKssbkCf4KsssssssK-126940&sid=XbrPKE5o7C9FnDkV5O7pXQ%3D%3D
[xiii] 김용택의 참교육이야기 [언어 파괴의 심각성. 이대로 좋은가?]
http://chamstory.tistory.com/2493
[xiv] http://blog.naver.com/sten1/10187491584
[xv] “최근 한국사 연구에 있어서 탈민족주의 경향에 대한 비판적 검토”, 강종훈(한국고대사연구소, 2008)
http://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01104577
“민족주의, 이제는 버려야 하나”, 이서민(삼성경제연구소, 2008)
http://www.yes24.com/24/goods/3194086
[xvi]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795445&cid=46615&categoryId=46615
[xvii] http://academic.naver.com/view.nhn?doc_id=12445136&&page.page=1&ndsCategoryId=10915
[xviii] “일본정부가 조선학교 차별하는 이유 아시나요?”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660602.html
[xix] http://cafe.naver.com/social86/37801
[xx]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579964하듈蔰듈﷽﷽﷽﷽﷽﷽﷽﷽
[xxi] <민족교육 ― 재일조선인학교 민족교육 주요년표>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총련) 자료
http://www.chongryon.com/k/edu/index8.html
<민족교육-민족교육의 체계> (총련 자료)
http://www.chongryon.com/k/edu/
[xxii]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11&dirId=1116&docId=58466680&qb=7J2464+Z7LSI&enc=utf8§ion=kin&rank=1&search_sort=0&spq=0&pid=TsAObspySoVsstmiCRwsssssssN-062771&sid=hQfoNVQowbqM2%2BVYReuOBw%3D%3D
“인동초는 추운 겨울에도 죽지 않고 굳굳하게 살아남아 푸른잎을 유지하며 강인하게 겨울을 나는 생명력이 강한 식물이다. … 겨울은 모든 식물의 생존에 아주 불리한 계절이다. 대부분 식물은 겨울에 잎이 다 떨어지거나, 잎과 함께 일부의 줄기가 죽기도 한다. 일년생 식물은 종자만 남기고 모든 부분이 죽는다. 일부 다년생 경우 뿌리만 살아남아 이듬해 뿌리에서 새싹이 돋아나고, 새싹에서 자란 줄기에서 꽃을 피운다. 인동초라는 식물은 겨울 동안에도 죽지 않고 살아남아 피는 꽃이기에 겨울을 ‘이기는 꽃’ 혹은 ‘인내하는 꽃’이라 하여 ‘인동’(忍冬)의 뜻을 담아 인동초라 부른다.” “8월 18일 오늘, 제15대 대한민국 김대중 전 대통령이 우리 곁을 떠난 지 일곱 해가 되었습니다. 투옥, 망명, 연금. 그리고 다섯 번의 죽을 고비 속에서도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던 그. 국민과 민족의 화합을 이끈 김대중 전 대통령의 숭고한 정신과 업적을 추모합니다.”
[출처]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인동초,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7주기
http://blog.naver.com/siheungblog/220790438776
[xxiii] “단군왕검이 건국이념을 ‘홍익인간’으로 정한 까닭”
“….. 홍익인간이라는 말은 이화세계(理化世界)라는 말과 한짝을 이루는 것으로 당연히 함께 생각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화세계는 말 그대로 세계를 이화한다는 겁니다. 理라는 것은 이상, 윤리, 진리를 연상하면 되는 데, 인간이 할 수있는 최상의 도덕적 이상사회를 만들어 보자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조상들의 생각의 폭과 깊이가 오늘을 사는 우리보다 [훨씬] 넓고 깊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지금 사람들은 이상사회를 꿈도 꾸지않고 현실에만 안주하며 급급하지 않습니까. 홍익인간도 이화세계라는 말과 같습니다. 인간이란 것이 사람이란 뜻만 있는 게 아닙니다. 시간, 공간, 세간 하듯이 간(間)이라는 것은 세계라는 뜻이 있습니다. 홍익인간은 세상 세계를 심지어 우주 자연 모두를 이롭게하고 위한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위대합니까. 우리 선조는 국가를 세우면서 세계와 우주를 생각했습니다…”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11&dirId=1111&docId=60851158&qb=7KGw7ISg7J2YIOyLnOyhsCDri6jqtbDsmZXqsoAg7ZmN7J217J246rCE&enc=utf8§ion=kin&rank=1&search_sort=0&spq=0&pid=TsV1/dpySpsssvv5Qj0sssssssd-499682&sid=Xyrh3YUCFP1aQwKucUXZHg%3D%3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