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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를 갈아야 절망을 이길 수 있다 (김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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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2건 조회 3,080회 작성일 16-10-03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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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수 선생님의 다음 글을 공유합니다.
너무도 명쾌하게 오늘날 남한의 진보적인 민중이 헛갈리고 있는 문제를 짚어줍니다.

민주주의의 오류, 계급투쟁의 오류, 그리고 민족주의의 오류.  이 세가지에 대해서 통찰하여 쓴 짧은 아래의 글을 현명한 민중이라면 모두가 정확하게 인식하기 바랍니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바로 분단이고, 그 해답은 바로 통일입니다.



김갑수
7시간 · 

무기를 갈아야 절망을 이길 수 있다
‘사색 없는 운동은 아우성, 통찰 없는 투쟁은 수라장’

오늘 우리는 왜 절망하고 있는가? 미국과 박근혜 탓인가? 그래서 저들을 원망하고 저들을 저주하면 문제가 풀리는가? 허구한 날 광장과 거리에 모이면 뭐하는가? 그런다고 저들이 사라지나?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1987년 6.10 이후 우리는 ‘철학’의 문제를 너무도 소홀히 했다. 6.10이면 벌써 언제 때 일인가? 무려 30년 전의 ‘역사’가 아닌가? 단언하건대 6.10을 추억하는 진보는 더 이상 진보가 아니다. 그들이 완장을 차고 투쟁을 지도하는 한 절망만 더욱 깊어질 뿐이다. 우리에게는 사색과 통찰이 필요하다. 사색 없는 운동은 아우성이고 통찰 없는 투쟁은 수라장밖에는 되지 못한다.

우리의 역사가 특수하기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도록 하자. 어느 시대, 어떤 공동체든지 반동적인 기득권 집단과 이에 맹종하는 우민 집단은 완강히 존재했다. 이는 동서고금 인류 역사에서 예외 없는 사실이다. 그동안 우리는 친일, 친미, 독재, 부자 집단에게로만 그 책임을 돌려왔다. 맞다. 오늘 이 절망의 원인 제공자는 100% 그들인 것은 맞다.

그러나 그들과 싸워 이겨야 하는 것은 우리의 책무이다. 인정한다. 나름 열심히들, 줄기차게들 싸워 왔다. 하지만 이런 싸움들의 성과는 사실 오래 전에 이미 정체해 버렸다. 최근 10년래 아무리 싸워도 나아지는 게 하나도 없지 않은 이유를 헤아려야 한다.

싸움에는 무기가 있어야 한다. 아니 무기가 좋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무기는 낡아버렸고 우리의 전사들은 늙어 버렸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치명적인 오류 몇 가지를 여전히 성능 좋은 무기인 양 신봉해오고 있었다. 우리의 사색과 통찰은 바로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이 ‘무기의 오류들’을 직시하는 데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첫째는 ‘민주주의의 오류’이다. 우리는 1987년에 얻은 제도를 ‘민주주의’로 착각해 왔다. 하지만 그때 얻어 지금도 가지고 있는 이 제도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서구 기득권 모델의 ‘데모크라시’였을 따름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데모크라시를 민주주의라고 착각해 왔다.

더욱이 데모크라시가 신자유주의와 담합했을 때 그것은 민주주의와 더욱 거리가 멀어졌다. 이것은 제국주의와 야합한 서구의 데모크라시가 새로 분장한 가면일 따름이다. 그리하여 이따위 저급한 데모크라시를 신봉해 온 우리는 더 이상 이 나라의 주인(민주)이 아닌 것이 되고 말았다.

둘째는 ‘계급투쟁의 오류’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만국의 노동자가 단결할 수 있나? 미국과 스웨덴과 일본과 한국과 조선의 노동자가 단결할 수 있나? 단도직입적으로 하나 더 묻는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가능하다고 보는가? 이것은 불가능하며 또한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중국, 베트남, 조선, 쿠바의 혁명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이었던가? 아니지 않은가? 그들의 혁명은 다름 아닌 민족주의 혁명이었다.

셋째, ‘민족주의의 오류’이다. 민족주의가 우파의 전유물인가? 좌파가 민족주의자이면 안 된다는 것은 설익은 서구적 발상이다. 민족주의에 좌우가 있을 수 있는가? 우리 중의 다수는 아직도 유럽의 국가주의(nationalism)를 민족주의로 혼동하고 있다. 그래서 민족주의를 사회주의와 모순되는 개념으로 치부하는 근시안적 사고에 갇혀 있다.

유럽인 박노자 같은 이가 그러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식민지와 분단의 역사에 뼈를 저려야 할 조선의 지식인들이 이를 한사코 혼동하는 것은 문화적 사대주의와 무관치 않다. 사회주의와 민족주의가 모순된다면 어떻게 마오쩌둥과 김일성과 호치민과 카스트로는 사회주의자인 동시에 민족주의자일 수 있었겠는가?

우리를 실질적으로 절망시키고 있는 주범은 우리 자신일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절박한 것은 서구의 데모크라시, 서구의 계급교체, 서구의 좌파이념이 아니다. 오늘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절망은 명백히 ‘분단’이 낳은 것이다.

따라서 민족통일만이 오늘의 이 절망을 해소할 수가 있다. 민족은 그 어떤 동맹보다도 우월하다. 그렇기에 이 시점에서 민족통일을 외치지 않는 자는 진보가 아니다. 이토록 처절히 궁핍한 시대에서 민족통일은 그 어떤 혁명보다도 진보적이기 때문이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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봇짐신사님의 댓글

봇짐신사 작성일

핵심적인 지적으로 동감합니다.
우리의 경우 모든 부정적 사안들이 모두 민족의 분단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분단이 해결되면 관련된 주요 문제들의 대부분이 자연스레 치유되어
본래의 제위치를 찾아가게 될 것으로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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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킹님의 댓글

김킹 작성일

모두 맞는 말이긴하나
이 말에 동조할 우리 나라의지식인이 얼마나 될것인가?
억울한 죽음을 보고 당하며
아무리취직을 하려 해도 취직이 안되고
하루에 12시간씩 일을 하고도 배가 고프면 분노할 줄 알아야 되는데
분노란 것을 나쁜 것이라고 배웠으니
분노할 국민들이 너무도 적다는 것이
절망의 절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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