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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벽예감 226>백악관은 왜 박근혜의 몰락위험을 방관하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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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5,947회 작성일 16-1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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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벽예감 226>백악관은 왜 박근혜의 몰락위험을 방관하였는가?
한호석 통일학연구소장 icon_mail.gif
기사입력: 2016/11/07 [07:25]  최종편집: ⓒ 자주시보

 

<차례>
1. 한미관계와 무관하지 않은 박근혜-최순실 사건
2. 박근혜-최순실 사건 폭로조짐 방치한 주한미국대사관
3. 박근혜-오바마의 유별난 친밀관계에서 발생한 난기류
4. 사상 초유의 대격변 예고하는 박근혜퇴진투쟁

▲ <사진 1> 이 사진은 1976년 어느 날 유신독재자 박정희가 박근혜와 함께 대한구국선교단 야간진료센터를 찾아가 대한구국선교단 총재 최태민을 만나 환담하는 장면이다. 당시 박근혜는 대한구국선교단 명예총재였다. 그 무렵 기독교 목사로 행세하며 청와대와 밀착하여 사리사욕을 채운 최태민의 범죄는 그로부터 40여 년 뒤에 터져 나온 박근혜-최순실 사건의 뿌리이다. 박정희-박근혜 부녀와 최태민-최순실 부녀가 2대에 걸쳐 저질러온 범죄가 오늘 박근혜-최순실 사건에 응집되어 있는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1. 한미관계와 무관하지 않은 박근혜-최순실 사건

 

지금 한국에서는 괴기소설보다 더 괴기소설 같은 사건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으니, 그것은 세간에 박근혜-최순실 사건으로 알려진 괴기사건이다.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것처럼, 1970년대 중반 기독교 목사로 행세하며 청와대와 밀착하여 사리사욕을 채운 최태민의 범죄는 그로부터 40여 년 뒤에 터져 나온 박근혜-최순실 사건의 뿌리이다. 다시 말해서, 박정희-박근혜 부녀와 최태민-최순실 부녀가 2대에 걸쳐 저질러온 범죄가 오늘 박근혜-최순실 사건에 응집되어 있는 것이다. 그 응집된 범죄는 정치적으로 문란하고 부정비리로 부패한 친미독재자가 국민대중이 염원하는 민주주의를 정치문란행위로 파괴하고, 근로대중이 피땀 흘려 창조한 천문학적 규모의 사회적 재부를 부정비리로 갈취한 중세기적 만행 이외에 다른 게 아니다.


그러므로 박근혜-최순실 사건을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이 공모한 범죄사건으로만 인식하는 것은 절반의 진실밖에 알지 못하는 것으로 된다. 정치문란과 부정부패를 일삼았던 친미독재자 박정희의 범죄적 유산을 청산하지 않고 방치해온 구조적 모순이 40여 년 동안 누적, 심화되어오다가 결국 폭발한 사건으로 박근혜-최순실 사건을 인식할 때, 나머지 절반의 진실이 밝혀지는 것이다.


그런데 얼핏 보면, 박근혜-최순실 사건은 한미관계와 무관한 것처럼 보이지만, 숨겨진 연결고리를 파헤쳐보면 그런 게 아니다. 더욱이 박근혜-오바마 집권기간 두 정상의 관계가 유별나게 친근해졌음을 생각하면, 박근혜-최순실 사건과 한미관계가 어떤 형태로든 연관되었음을 감지할 수 있다.


2013년 5월 8일 제1차 박근혜-오바마 정상회담이 진행되었고, 2016년 9월 6일 마지막으로 제6차 박근혜-오바마 정상회담이 진행되었다. 두 정상은 2013년 5월부터 2016년 9월까지 약 3년 동안 무려 여섯 차례나 정상회담을 계속 진행한 것이다. 두 정상은 정상회담을 할 때마다 자기들의 친밀한 관계를 국제사회에 과시하곤 하였다. 


그런데 3년 동안 오바마 대통령과 여섯 차례나 정상회담을 진행할 정도로 백악관과 유별난 밀착관계를 맺은 박근혜 대통령이 박근혜-최순실 사건이 폭로되어 몰락위험에 차츰 빠져들고 있었던 때, 주한미국대사관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였을까?


장장 68년에 이르는 한미관계사의 이면을 파헤쳐보면, 한국의 정치판을 흔드는 대형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백악관이 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깊숙이 개입해왔으며, 심지어는 백악관이 직접 나서서 한국의 정치판을 갈아엎는 대형사건을 기획, 실행한 적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백악관이나 그 현지집행자인 주한미국대사관이 박근혜 정권의 몰락위험을 몰아오는 박근혜-최순실 사건이 폭로되었을 때, 그 폭로조짐을 초기에 제거하기 위해 은밀히 개입하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이 문제를 좀 더 구체적으로 파헤치려면, 박근혜-최순실 사건의 폭로조짐이 언론에 나타나면서 매우 불길한 예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던 지난 8월의 초기상황으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박근혜-최순실 사건을 최초로 폭로한 특종보도를 따낸 언론매체는 <TV조선>이다. 2016년 7월 26일 <TV조선>은 ‘청와대 안종범 수석, 문화재단 미르 500억 모금 지원’이라는 제목의 보도를 방영하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새누리당 정책위원회 부의장이었던 안종범을 2014년 6월 청와대로 불러들여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으로 임명했으며, 2016년 5월에는 그에게 대통령비서실 정책조정수석비서관의 중책을 맡겼다. 그런데 한국 언론보도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이 막후에서 조종하여 문화재단 미르와 K스포츠재단을 급조할 때, 재벌총수들을 총동원하여 설립자금 770억원을 불법적으로 모금하였는데, 안종범을 그 범죄의 실행자로 앞에 내세웠다고 한다. 문화재단 미르는 2015년 10월 27일에 설립되었고, K스포츠재단은 2016년 1월 13일에 설립되었다.

▲ <사진 2> 이 사진은 <TV조선>이 박근혜-최순실 사건을 최초로 폭로한 2016년 7월 26일 특종보도장면이다. 이 특종보도 이후 더 밝혀진 바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이 막후에서 조종하여 문화재단 미르와 K스포츠재단을 급조할 때, 재벌총수들을 총동원하여 설립자금 770억원을 불법적으로 모금하였는데, 안종범을 그 범죄의 실행자로 앞에 내세웠다고 한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지난 8월 문화재단 미르와 K스포츠재단의 특대형 비리의혹이 언론에 보도되는 바람에 검찰의 수사와 청와대 특별감찰관의 감찰이 시작되었다. 만일 지난 8월 검찰과 청와대 특별감찰관이 그 비리의혹을 제대로 수사, 감찰하였다면, 안종범-최순실-박근혜로 이어진 범죄인맥의 연결고리가 드러나게 될 판이었다.


위험조짐을 감지한 박근혜 대통령은 문화재단 미르와 K스포츠 재단의 비리의혹에 대한 검찰수사를 중단시켰고, 2016년 8월 29일 이석수 청와대 특별감찰관을 사직시켰으며, 9월 3일 자기의 공범인 최순실을 독일로 긴급히 도피시켜 안종범-최순실-박근혜로 이어진 범죄인맥의 연결고리를 끊어놓으려는 비상대책을 취했다.


그러나 그런 미봉책으로는 박근혜-최순실 사건이 세상에 폭로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결정적인 폭로의 시각이 다가오고 있었다. 마침내 2016년 9월 20일 일간지 <한겨레>가 ‘권력의 냄새 스멀...실세는 정윤회가 아니라 최순실’이라는 제목의 폭로기사를 내보내면서 상황은 돌변하기 시작하였고, 10월에 들어와 박근혜-최순실 사건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중세기적 만행이 언론보도를 통해 속속 드러나 세상을 경악과 충격에 빠뜨렸다.


지금 박근혜-최순실 사건의 거대한 소용돌이에 휘말린 박근혜 대통령은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고 몰락하였고, 이 땅의 통치체계는 대혼란에 빠져 사실상 마비되고 말았다. 박근혜-최순실 사건을 보고 격분한 각계각층 대중은 거리와 광장에 집결하여 박근혜퇴진투쟁을 벌이고 있고, 국제사회는 박근혜 정권이 몰락하는 과정을 불안한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다. 그런데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박근혜 대통령은 분노한 국민대중의 퇴진요구를 외면하면서 자기 임기를 채우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때는 너무 늦었다. 박근혜 대통령을 몰락의 소용돌이에서 구원해줄 사람은 없으며, 민심이 등을 돌린 그에게 다가오는 것은 파국적 결말뿐이다. 

 

 

2. 박근혜-최순실 사건 폭로조짐 방치한 주한미국대사관

 

한국의 정치판에 깊숙이 개입하여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오는 백악관은 지난 8월 문화재단 미르와 K스포츠재단의 비리의혹을 제기한 언론보도가 나오기 전에 이미 청와대 도청공작으로 박근혜-최순실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보는 논거는 미국의 보도전문매체 <CNN>이 2013년 10월 26일에 방영한 보도에서 찾을 수 있다. 그 보도에 따르면, 미국 국가안보국(NSA)은 박근혜 대통령을 포함하여 35개 친미추종국 국가수반들의 전화통화를 24시간 도청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미국 국가안보국이 박근혜-최순실의 도청자료를 확보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박근혜-최순실 도청자료를 통해 백악관은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박근혜-최순실 사건의 전개과정까지 속속들이 파악할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 <사진 3> 미국 언론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미국 국가안보국은 박근혜 대통령을 포함하여 35개 친미추종국 국가수반들의 전화통화를 24시간 도청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미국 국가안보국이 박근혜-최순실의 도청자료를 확보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박근혜-최순실 도청자료를 통해 백악관은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박근혜-최순실 사건의 전개과정까지 속속들이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백악관은 지난여름 문화재단 미르와 K스포츠재단의 비리의혹이 언론보도를 통해 처음 제기되었을 때, 그런 언론보도가 확대되는 경우 박근혜-최순실 사건의 전모가 드러날 것을 예감하였을 것이며, 따라서 주한미국대사관에 지령을 내려 비리의혹보도를 초기에 얼마든지 가라앉힐 수 있었다. 한국 언론계 안에 거미줄처럼 엮어놓은 친미비선들을 그림자처럼 움직이는 주한미국대사관 정치참사에게 그까짓 언론통제는 ‘식은 죽 먹기’처럼 쉬운 일이다. <위킬릭스(Wikileaks)>의 폭로를 통해 드러난 것처럼, 주한미국대사관이 작성하여 자기네 상급기관들에 보낸 수많은 비밀전문들은 주한미국대사관이 한국의 언론계, 정치권, 관료집단, 선거판 등을 어떻게 주물러왔는지 잘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백악관은 지난 3년 동안 오바마 대통령과 무려 여섯 차례나 정상회담을 진행하면서 끈끈한 친밀관계를 유지해온 박근혜 대통령에게 박근혜-최순실 사건의 폭로조짐이 얼마나 큰 위험을 불러오게 될는지를 간파하였으면서도, 그 폭로조짐을 초기에 제거하여 박근혜 대통령을 지켜주기는커녕 모르는 척 방치해버렸다. 그것만이 아니라, 박근혜-최순실 사건이 폭로되어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생명이 끊어지는 위급한 상황이 닥쳐왔어도 여전히 무관심한 척하면서 수수방관하였다. 이를테면, 2016년 11월 1일 조슈아 어니스트(Joshua R. H. Earnest) 백악관 대변인은 백악관 출입기자가 박근혜-최순실 사건에 관해 질문하자 이상한 답변을 꺼내놓았다. 그 이상한 답변내용 중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을 발췌, 번역하면 이렇다.


“나는 당신들이 작성한 언론보도자료들 가운데서 그 소식(박근혜-최순실 사건을 뜻함-옮긴이)을 읽어보았다. 나는 (오마바) 대통령에게 그 소식에 관해 보고하지 않았다. (줄임) 그것(박근혜-최순실 사건을 뜻함-옮긴이)은 남한 내부의 정치상황에 결부된 것이므로, 남한 국민이 토론하고 논쟁할 문제이며, 내가 끼어들고 싶지 않은 일이다. (that's something that I won't weigh in on)”


오바마 대통령과 끈끈한 친밀관계를 유지해온 박근혜 대통령이 박근혜-최순실 사건에 휘말려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았는데, 명색이 백악관 대변인이라는 사람이 공식정보자료를 통해 그 사건을 파악한 게 아니라, 백악관 출입기자단이 일상적으로 작성하는 비공식보도자료를 통해 그 사건을 파악하였다니, 이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게다가,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았다는 충격적인 정보를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고하지도 않고 보도자료만 대충 읽어보고 그만두었다면, 11월 1일까지만 해도 오마바 대통령이 박근혜-최순실 사건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말인데, 이건 또 무슨 낮도깨비같은 횡설수설인가?


만일 오마마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의 끈끈한 친밀관계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다면, 그 날 백악관 대변인은 이 정도의 발언수위로 답변했어야 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 사건에 관한 보고를 이미 여러 차례 받은 것으로 나는 알고 있다. 백악관은 미국이 중시하는 우방국에서 정치혼란이 일어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한국 정부와 국민이 정치혼란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하루빨리 안정을 되찾기 바란다.”


그러나 백악관은 뜻밖에도 너무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실제로는 오바마 대통령이 제임스 클래퍼(James R. Clapper) 국가정보국장의 매일독대보고를 통해 박근혜-최순실 사건의 전개상황에 관해 수시로 보고받았고, 사태가 심각해지자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대책을 논의하였던 것이 확실해 보이는데도, 그 날 백악관 대변인은 마치 오바마 대통령이 박근혜-최순실 사건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관심조차 없는 것처럼 거짓말을 늘어놓았던 것이다.

▲ <사진 4> 이 사진은 조슈아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이 백악관 출입기자들을 상대로 정례회견을 하는 장면이다. 그런데 그는 지난 11월 1일 백악관 출입기자가 박근혜-최순실 사건에 관해 질문하였을 때, 오바마 대통령이 그 사건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관심조차 없는 것처럼 답변하였다. 이것은 거짓말이다. 또한 그는 지난 11월 4일 백악관 출입기자가 박근혜-최순실 사건에 관해 질문하였을 때, 박근혜 대통령이 아니라도 한미동맹은 정상적으로 유지될 것이라는 식으로 답변하였다. 이것은 백악관이 박근혜 대통령과 거리를 두면서 그가 몰락하도록 수수방관해왔음을 말해주는 결정적인 증거가 아닐 수 없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박근혜 대통령의 몰락위험에 대한 백악관의 더욱 싸늘한 반응은 그로부터 사흘이 지난 11월 4일에 나왔다. 그 날 조슈아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과 백악관 출입기자 사이에 오간 질의응답 중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을 발췌, 번역하면 이렇다.


질문 - 그(오바마 대통령)는 남한의 박 대통령과 대화하였나? 그 두 사람은 지난날 매우 가까웠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는 그녀가 대통령직을 유지하기 바라는가? 아니면 (박근혜 대통령과) 거리를 두려고 하는가?


답변 - 강한 동맹이 지니는 특징들 가운데 하나는 다른 사람, 다른 인물이 나라를 이끌게 되어도 동맹은 존속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동맹관계에 있는) 두 나라 정부와 국민이 동맹을 위해 일하기 때문이다. (줄임) 명백하게도, 그녀(박근혜 대통령을 뜻함-옮긴이)는 어려운 국내정치상황에 직면하였는데, 그 문제는 내가 끼어들고 싶지 않은 일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공개적으로나 사적으로 그 문제에 끼어들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우리가 아시아에서 돌아온 직후 (9월 6일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열린 아세안정상회의 도중 별도로 진행된 한미정상회담 이후라는 뜻-옮긴이) 오바마 대통령은 그녀와 대화한 적이 없지만, 한미동맹의 다른 요소들은 모두 정상적이다. (줄임)


박근혜 대통령이 아니라도 한미동맹은 정상적으로 유지될 것이라는 식으로 언명한 백악관 대변인의 발언은, 최근 백악관이 박근혜 대통령과 거리를 두면서 그가 몰락하도록 수수방관해왔음을 말해주는 결정적인 증거가 아닐 수 없다.


백악관은 왜 박근혜 대통령의 몰락위험을 방관한 것일까? 거기에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어떤 비밀스런 사연이 있는 게 아닐까? 박근혜-최순실 사건의 폭로조짐이 언론에 나타나기 시작한 2016년 8월 이전 한미관계에서 은밀히 일어났던 움직임을 파헤쳐보면, 박근혜-오바마의 유별난 친밀관계가 갑자기 냉각될 수밖에 없었던 소설 같은 이야기가 드러난다.

 

 

3. 박근혜-오바마의 유별난 친밀관계에서 발생한 난기류

 

박근혜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을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2016년 9월 6일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열린 아세안정상회의 중에 별도로 진행된 제6차 박근혜-오바마 정상회담이다. 그보다 앞서 제5차 박근혜-오바마 정상회담은 2016년 3월 31일 미국 워싱턴 디씨에서 열린 제4차 핵안보정상회의 중에 진행된 바 있다.


지난 9월 6일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진행된 제6차 박근혜-오바마 정상회담은 자신에게 위험이 다가오고 있음을 감지한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을 독일로 긴급히 대피시킨 날로부터 불과 사흘 뒤에 진행되었다. 그런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불길한 예감을 느꼈을 박근혜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자기에게 확실한 지지의사를 공식적으로 표명해주기를 갈망하고 있었다.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과 회담을 진행한 직후 현장에서 공동언론발표문을 내놓으면 좋겠다는 뜻을 백악관에 미리 전했다. 청와대가 제6차 박근혜-오바마 정상회담 직후 현장에서 공동언론발표문을 통해 회담결과를 공개할 것이라고 밝혔다는 당시 한국 언론보도에서 그런 사실이 확인된다. 제3국에서 열린 다자정상회의 중에 양자정상회담이 별도로 진행되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다자정상회의 중에 별도로 진행된 양자정상회담에서 공동언론발표문이 나오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 <사진 5> 이 사진은 2016년 9월 6일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열린 아세안정상회의 중에 별도로 진행된 제6차 박근혜-오바마 정상회담이 시작되기 직전 장면이다. 사진 속에서 그들은 웃고 있지만, 이 정상회담은 자신에게 위험이 다가오고 있음을 감지한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을 독일로 긴급히 대피시킨 날로부터 불과 사흘 뒤에 진행되었다. 불길한 예감을 느꼈을 박근혜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이 자기에게 확실한 지지의사를 표명해주기를 갈망하였고, 그래서 정상회담 직후 현장에서 공동언론발표문을 내놓으면 좋겠다는 뜻을 백악관에 미리 전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은 박근혜 대통령의 절박한 요청을 거절하였다. 이것은 유별나게 밀착되었던 두 정상의 관계에 난기류가 발생하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박근혜-최순실 사건이 폭로되면서 궁지에 몰린 박근혜 대통령은 백악관에게 공동언론발표를 요청했지만, 정작 정상회담 현장에서는 그가 간절히 기대하였던 공동언론발표가 나오지 않았다. 오바마 대통령이 박근혜 대통령의 요청을 거절한 것이다. 이것은 박근혜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의 마지막 정상회담이 다소 썰렁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며, 그 이전까지만 해도 정상회담을 무려 다섯 차례나 진행할 정도로 유별나게 밀착되었던 두 정상의 관계에 난기류가 발생하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박근혜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이 다소 썰렁한 분위기 속에서 마지막 정상회담을 진행하기 넉 달 전인 2016년 5월 4일 청와대의 문을 열고 들어선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결정에 따라 미국 대통령의 밀사로 청와대에 급파된 제임스 클래퍼 국가정보국장이었다. 그 날 청와대 비밀회동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독대한 클래퍼의 입에서는 한미관계에서 공식적인 사용이 시종 폐절되어온 ‘평화협정’이라는 금기어가 줄줄 흘러나왔다.


나는 2016년 10월 17일 <자주시보>에 실린 ‘밀사의 청와대 비밀회동과 조선의 전략핵압박’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아니 그로서는 종내 생각하기 싫은 평화협정문제가 미국 대통령 밀사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충격적인 장면”이라고만 서술하였을 뿐, 그 자리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서술하지 않았다. 하지만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이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평화협정문제가 클래퍼 국가정보국장의 입에서 흘러나왔을 때 거부의사를 밝히며 조건반사적으로 반발하였던 것이 분명해 보인다.


미국 대통령 밀사가 비밀회동에서 제시한 평화협정문제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반발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진지하게 검토되고 채택된 평화협정문제를 정면으로 거부하였다는 뜻이다. 통속적으로 표현하면, 그 이전까지만 해도 백악관의 결정을 100% 지지하고 따랐던 박근혜 대통령이 갑자기 백악관을 향해 반기를 치켜드는 난기류가 발생한 것이다.


2016년 5월 4일 박근혜-클래퍼 비밀회동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강한 반발이 그런 난기류를 발생시켰으므로, 지난 6월 이후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발언강도가 극언수준으로 갑자기 높아진 이상현상이 나타났던 것이고, 지난 9월 6일 박근혜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만난 비엔티엔 정상회담이 뜻밖에 썰렁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는 이상현상이 나타났던 것이다. 통속적으로 표현하면, 백악관은 자기 밑에 있다고 여기는 박근혜 대통령이 자기들의 고심어린 결정에 대해 감히 반발한 것을 보고 그와 맺었던 친밀관계를 냉각관계로 전환시켰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올해 들어 조선이 날로 가중시키는 전략핵압박을 회피하기 위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조선이 핵시험과 장거리미사일발사를 유예하는 경우 그에 상응하여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협상을 시작하는 수밖에 없다는 고육지책을 격론 끝에 어렵사리 채택하였다는 것이 나의 분석인데, 박근혜 대통령이 그런 고육지책을 정면으로 반대하고 나섰으니 박근혜-오바마의 친밀관계가 냉각관계로 뒤바뀐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4. 사상 초유의 대격변 예고하는 박근혜퇴진투쟁

 

박근혜 대통령의 몰락이 기정사실로 굳어지고 있는 지금, 정세분석가들이 그의 몰락으로 일어날 대격변씨나리오를 예상하는 것은 응당한 일이다. 소설적 상상이 아니라 과학적인 분석으로 대격변씨나리오를 얼마나 치밀하게 예상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다.


내가 예상하는 대격변씨나리오의 첫 장면은, 박근혜 대통령이 민심의 버림을 받고, 미국으로부터도 외면당했으면서도 경향 각지에서 들불처럼 타오르는 국민대중의 퇴진요구를 거부하면서 끝까지 버티려고 하는 모습을 비춰주는 장면이다. 체면치레식 사과담화를 두 차례 발표하고, 제멋대로 국면전환용 개각을 발표하면서 국민대중에게 실망과 분노를 더해준 그의 행동은 그가 얼마나 맹목적으로 권좌에 집착하고 있는지를 잘 말해준다. 국민대중의 정당한 퇴진요구를 거부하면서 끝까지 버텨보려는 고집스런 행동은 세계정치사를 어지럽힌 친미독재자들이 집권말기에 보여준 전형적인 자해행위인데, 박근혜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대중의 정당한 퇴진요구를 거부할수록 각계각층 대중의 퇴진투쟁은 더욱 확대, 격화될 것이다. 부패한 친미독재정권과 분노한 국민대중 사이에서 타협을 배제한 적대적 모순관계가 형성되는 것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

▲ <사진 6> <AP통신>에 나온 이 보도사진은 2016년 11월 5일 저녁 광화문 광장과 그 일대에 구름처럼 모여든 성난 시위군중 20만명이 "박근혜 퇴진, 새누리당 해체"를 외치는 장면이다. 부패한 친미독재정권과 분노한 국민대중 사이에서 타협을 배제한 적대적 모순관계가 형성되는 것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 국민대중을 경악과 공분으로 몰아넣은 박근혜-최순실 사건은 민중항쟁을 불러일으킬 결정적인 폭발계기로 작용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주목되는 것은, 56년 전에 청년계층이 주도했던 4.19 민중항쟁을 폭발시킨 사회경제적 조건이 오늘 고도로 성숙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청년실업대란, 살인적인 저임금노동, 불안정한 취업상태, 경제적 궁핍으로 가장 심한 고통을 받고 있는 ‘헬조선’의 20~30대 청년계층에게 누적되어온 집단적 불만과 분노가 불꽃 한 점만 튕겨도 대폭발을 일으킬 정도로 위급한 오늘의 현실은 4.19 민중항쟁이 폭발하였던 1960년 당시의 사회경제적 현실을 아주 방불케한다. 하지만 오늘 이 땅에서 민중항쟁을 폭발시킬 사회경제적 조건이 그처럼 고도로 성숙되었는데도 민중항쟁이 폭발하지 않았던 까닭은, 뇌관역할을 하는 결정적인 폭발계기가 조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근혜-최순실 사건은 민중항쟁을 불러일으킬 결정적인 폭발계기로 작용하기에 충분하다. 20~30대 청년들은 물론 10대 청소년들까지 거리와 광장에 쏟아져나와 대중적 공분을 급속히 확산시키는 추세를 보면, 그런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1960년에 이승만 친미독재정권이 저지른 3.15 부정선거가 폭로되자 그것이 결정적인 폭발계기로 작용하여 4.19 민중항쟁이 일어났고, 1987년에 전두환 친미독재정권이 저지른 박종철 열사 고문살인만행이 폭로되자 그것이 결정적인 폭발계기로 작용하여 6월 민중항쟁이 일어났던 것처럼, 오늘에는 박근혜-최순실 사건이 결정적인 폭발계기로 작용하여 민중항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박근혜 친미독재정권과 분노한 국민대중이 정면충돌상태에 들어가면, 시위군중의 평화적인 퇴진투쟁이 민중항쟁양상으로 격화되면서 시위투쟁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게 될 것인데, 그것이 바로 청와대진격투쟁이다. 성난 시위군중이 청와대진격투쟁에 돌입하는 경우, 다급해진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폭력진압 이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지게 될 것이다. 성난 시위군중의 청와대진격투쟁, 그리고 그것을 저지하려는 경찰의 폭력진압은 유혈사태를 불러일으킬 것으로 우려된다.


그런데 민중항쟁이라는 대격변이 북에서 말하는 통일대전(reunification megawar)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동아일보> 2013년 8월 22일부 보도기사를 다시 읽어볼 필요가 있다. 그 보도기사에 따르면, 북은 2004년에 제정된 ‘전시사업세칙’을 2012년 9월에 개정하면서 ‘전시선포시기’를 새로 첨부했는데, 북이 전시로 규정하는 세 가지 조건이 명시되었다고 한다.


전후문맥을 정확히 이해하면, ‘전시사업세칙’에 나오는 ‘전시선포’라는 말은 선전포고라는 뜻이 아니라, 선전포고 없이 전격적으로 통일대전에 돌입한다는 뜻임을 알 수 있다. 만일 북이 정부성명을 통해 전시선포를 하고 나서 통일대전을 개전하면, 미국이 북을 먼저 선제타격할 것이므로, 북은 전시선포를 하지 않고 최고사령관의 총공격명령이 하달되는 시각에 전격적인 선제기습타격으로 통일대전에 돌입할 것으로 예견된다.


위의 보도기사에 따르면, 북은 ‘전시사업세칙’에서 통일대전에 돌입할 세 가지 조건을 열거하면서 그 가운데 한 가지 조건을 “남조선 애국력량의 지원요구가 있거나 국내외에서 통일에 유리한 국면이 마련될 경우”라고 명시하였다고 한다. 인용구에 나오는 “남조선 애국력량의 지원요구”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남측 민중세력이 북에게 무엇을 지원해달라고 요구할 때 북이 통일대전에 돌입한다는 뜻으로는 해석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남과 북을 격폐시킨 분단체제에서 남측 민중세력이 북에게 무엇을 지원해달라고 요구한다는 생각은 비현실적인 상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용구에 나오는 “남조선 애국력량의 지원요구”라는 말은, 남측 시위군중의 정권퇴진투쟁이 민중항쟁양상으로 격화되었으나 친미독재정권의 무차별 폭력진압으로 좌절될 때, 북이 통일대전에 돌입할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되어야 옳다.


위와 같은 맥락을 이해하면, 북의 ‘전시사업세칙’에 나오는 전시규정은 지금 날로 고조되고 있는 박근혜퇴진투쟁이 민중항쟁양상으로 격화되어 청와대진격투쟁이 벌어졌으나 경찰의 무차별 폭력진압으로 좌절되는 때, 북이 통일대전에 돌입할 것임을 명시한 것으로 이해된다. 다시 말해서, ‘72시간 통일대전’은 박근혜퇴진투쟁이 격화되어 일어난 청와대진격투쟁이 경찰의 폭력진압으로 좌절되는 유혈사태와 거의 동시에 일어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예상을 뒷받침하는 논거는 2016년 11월 4일 북측 언론보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 언론보도는 2016년 11월 3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조선인민군 제525군부대 직속 특수작전대대를 시찰한 소식을 전하였는데, 시찰소식 보도기사에서 두 가지 사실을 읽을 수 있다.

▲ <사진 7> 이 사진은 2016년 11월 3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조선인민군 제525군부대 직속 특수작전대대를 시찰한 가운데 전투원들이 모형헬기를 타고 적진에 침투하여 공중강습훈련을 진행하는 장면이다. 남측에서 박근혜퇴진투쟁의 불길이 타오르는 긴장된 시점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특수작전대대를 시찰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남측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북의 <전시사업세칙>을 다시 읽어보면, 박근혜퇴진투쟁이 격화되면서 마지막 단계에서 벌어질 청와대진격투쟁이 경찰의 폭력진압으로 좌절되는 유혈사태가 일어날 때, 북은 특수작전대대의 청와대습격전투로 '72시간 통일대전'에 돌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 상상을 초월하는 대격변씨나리오가 실제로 전개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첫째, 그 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현지시찰을 수행한 군사지휘관들은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 총참모장, 총참모부 제1부총참모장 겸 작전총국장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최고위급 군사지휘관 3명을 모두 대동하고 시찰한 것이다. 대연합부대 지휘부나 대규모 합동군사훈련이 아니라 대대급 부대를 시찰하였는데도, 최고사령관이 최고위급 군사지휘관 3명을 모두 대동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북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그 특수작전대대를 직접 조직하였고, “특별히 중시하며 제일 믿는 전투단위”이고, 대대병영을 최상의 수준에서 현대화하는 특별조치를 취해주었다고 한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그 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왜 최고위급 군사지휘관 3명을 모두 대동하고 특별시찰을 하였는지 알 수 있다.


둘째, <연합뉴스> 2016년 11월 4일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이번에 시찰한 제525군부대 직속 특수작전대대는 총참모부 작전국 직속 특수작전대대라고 한다. 북측 언론보도에 나온 표현을 그대로 인용하면, 그 특수작전대대는 “유사시 적구에서 자유자재로 활동하면서 정찰, 침투, 습격, 파괴 등 적후투쟁을 해야 하는 전투원들”로 편성되었는데, 최고사령관의 명령을 받으면 “단숨에 원쑤의 아성인 서울에 돌입하여 청와대와 괴뢰정부, 군부요직에 틀고 앉아 천추에 용서 못할 만고대역죄를 저지르고 있는 인간추물들을 제거해버리는 것을 기본전투임무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위에 열거한 두 가지 사실을 살펴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특수작전대대 특별시찰은 달빛 없는 깊은 밤에 방공레이더망을 감쪽같이 뚫고 들어가는 초저공 습격기(AN-2)의 무월광무소음활공비행으로 서울에 침투하려는 청와대습격전준비를 완료하고 대기 중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세상에 공개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박근혜퇴진투쟁이 격화되면서 마지막 단계에서 벌어질 청와대진격투쟁이 경찰의 폭력진압으로 좌절되는 유혈사태가 일어날 때, 북은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직속 특수작전대대의 청와대습격전투로 ‘72시간 통일대전’에 돌입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날로 확대, 격화되는 박근혜퇴진투쟁 → 성난 시위군중의 청와대진격투쟁 → 청와대진격투쟁을 좌절시킬 친미독재정권의 폭력진압 → 조선인민군 특수부대의 청와대습격전투 → 통일대전 돌입으로 이어질 전율적인 급변사태의 연속전개과정은 위에 열거한 여러 가지 정보자료들을 분석한 데 기초하여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대격변씨나리오이다. 


물론 지금쯤 주한미국대사관은 박근혜퇴진투쟁이 고조되는 양상을 면밀히 감시, 분석하면서 그 투쟁이 민중항쟁양상으로 격화될 위험에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긴박한 정황을 살펴보면, 박근혜퇴진투쟁이 민중항쟁양상으로 격화될 조짐이 보이는 경우 백악관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압력을 가해 그를 하야시킬 것으로 예견할 수 있다. 4.19 민중항쟁이 격화되자 백악관이 이승만에게 압력을 가해 그를 하야시켰고, 6월 민중항쟁이 격화되자 백악관이 전두환에게 압력을 가해 그를 하야시켰던 과거사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백악관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압력을 넣어 그를 하야시키는 것은, 그들이 북의 ‘72시간 통일대전’을 예방할 유일한 방책인 것이다. 


백악관은 박근혜 대통령이 하야하는 경우 그 뒤를 이을 새로운 대통령을 이미 예비해둔 것으로 생각된다. 새로운 대통령이 누구인지 이 글에서 밝히는 것은 너무 성급한 일이지만, 백악관이 한국의 대선예비주자들 가운데 미국에게 가장 순종적인 대선예비주자를 한국의 차기 대통령으로 이미 간택해두었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미국의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 땅에서 되풀이된 것은, 민중항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백악관의 압력으로 이승만이 하야하자 장면이 등장하였고, 백악관의 압력으로 전두환이 하야하자 노태우가 등장하였던 불행한 과거사였다. 자주성을 확립하지 못하여 미국의 불법적인 내정간섭을 허용하는 한,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은 이 땅의 민중항쟁사가 가르쳐주는 피의 교훈이다. “박근혜 퇴진, 한나라당 해체”를 외치며 거리와 광장으로 쏟아져 나온 이 땅의 국민대중은 백악관의 불법적인 내정간섭으로 부패한 친미독재정권을 청산하지 못한 불행한 과거사가 되풀이되는 것을 올겨울에 또 다시 보게 되는 것은 아닐까? 자주의식화되고, 행동조직화된 선진대중의 정의로운 투쟁만이 그런 불행한 과거사의 족쇄를 끊어버리고 참된 민주주의를 향한 사회역사발전을 힘있게 추동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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