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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공화국의 녀성들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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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5,054회 작성일 17-02-06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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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오늘에서

내가 본 공화국의 녀성들 (1) 

 

새해를 맞고보니 조국인민들 누구나의 가슴속에 소중히 자리잡고있는 부름이 다시금 되새겨진다.

나의 일터!

비록 직종과 직위는 달라도 조국의 녀성들이 맡은 일터마다에서 자기의 본분을 다해나가고있었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일터를 지키고 빛내여갈 자각을 심어주었을가.

이에 대해서 나는 지난해 조국방문의 나날에 만났던, 지금까지 나의 기억속에 잊혀지지 않는 공화국녀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서 전하려고 한다.

조국방문의 나날에 깊은 인상을 받았던 평범한 녀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천짜는 로력영웅

 

내가 조국에서 처음으로 알게 된 사람은 김정숙평양방직공장에서 직포공으로 일하는 문강순녀성이다.

 

 

- 로력영웅 문강순(오른쪽으로부터 두번째) -

 

그가 처음 공장에서 일을 시작하였을 때 직포종합직장 1직포직장에는 오랜 기간 공장에서 성실히 일하여 로력영웅이 된 직포공이 4명이나 있었다.

비록 조국을 위해 요란한 공적을 세운것은 없어도 한생토록 성실하게 천을 짠 직포공들을 나라에서는 영웅으로, 시대의 전형으로 내세우고 삶을 빛내여주었다. 그들의 삶과 영광은 문강순녀성에게 있어서 자기 일터, 자기 직업에 대한 애착을 심어주었고 영웅들처럼 어머니조국에 더 많은 천을 짜서 바치리라는 결심을 굳혀주었다.

그래서 그는 남들이 걸을 때 뛰고 남들이 1대, 2대의 직기를 맡아볼 때 10대, 20대의 직기를 맡아안고 충정의 순회길을 달리였다. 그런 그를 조국에서는 새로운 혁명적대고조의 기수로, 경공업전선의 선구자로 내세워주었고 그의 앞가슴에 공민의 최고영예인 로력영웅메달도 보란듯이 달아주었다.

내가 공장에 찾아갔을 때 한 일군이 나에게 이렇게 물은적이 있었다.

《선생은 하루에 최고 몇리나 걸어봤습니까?》

《?!》

너무도 뜻밖의 질문에 나는 한동안 대답을 못했다. 내가 최고로 많이 걸어본 그때가 언제더라…

나는 잠시 머리를 굴리며 기억을 더듬었다.

...

그때는 내가 중학교에 다닐적이였다.

삼촌네가 사는 시골에 놀러 길을 떠났었는데 뻐스가 잘 다니지 않는 시골이여서 할수 없이 걸어서 령을 넘어야 했다.

오불꼬불 뽀얗게 흙먼지 날리는 길을 걸어 삼촌집에 당도하니 땅거미가 질무렵이 되였다.

삼촌이 딱총을 놓아준 발바닥을 들여다보며 집에 돌아갈 일을 걱정하던 그때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일생에 가장 힘들게, 가장 오래 걸어본적은 아마 그때뿐이라고 기억된다.

지금 생각하면 그 거리가 20리는 실히 잘될것이다.

나의 대답을 들은 일군은 처녀때 문강순동무는 하루에 150리를 걸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매일 150리길을?!)

얼마나 놀라운 녀성인가!

지난 고난의 행군, 강행군시기 하루에 백여리길을 달리며 제국주의자들의 고립압살책동과 가혹한 경제제재에 과감히 맞서 승리를 이룩한 문강순녀성을 비롯한 이 공장녀성들의 불굴의 투쟁정신은 나를 무한히 감동시켰다.

문강순녀성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보면서, 이 미지의 녀성에 대해서 파고들면 들수록 그들이 한없이 돋보였다.

그후 문강순녀성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조국의 한 소박하고 평범한 녀성이 나라의 영웅으로 성장하게 된 과정을 더 잘 알게 되였다.

조국에서는 나라와 인민, 사회와 집단을 위하여 그 녀성처럼 말없이 진심을 바쳐 일을 한 사람은 누구나 인민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영웅이 될수 있다는것을.

정녕 고금동서력사의 갈피마다에 기록되여있는 영웅담들중에 이런 이야기는 아마 찾아보기 힘들것이다.

비범한 기질을 가진 걸출한 사람만을 영웅으로 생각하던 사람들에게, 가깝게는 나에게 문강순에 대한 이야기는 영웅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하였다.

문강순녀성과 헤여질 때 나는 이렇게 물었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하려고 합니까? 》

《저야 직포공인데 천짜는 일을 하지요뭐. 앞으로도 우리 인민들이 좋아하는 천을 더 많이 짜렵니다.…》

이것이 그가 나에게 한 말의 일부이다.

지금도 자기 일터, 자기 직업을 사랑하는 이 녀성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척 보기에도 화장기 없고 훤한 얼굴에서 순박하고 강직해보이는 그 녀성의 모습이. (계속)

 

 

 

재로씨야동포 한 류드밀라


내가 본 공화국의 녀성들 (2) 

 

위생시설수리공이 시대의원으로

 

내가 조선에서 느낀것의 하나는 직업의 귀천이 없다는것이다.

공화국에서는 남들이 주저하는 험하고 궂은 일을 하는 사람들을 더 내세워주고있다.

그런것으로 하여 사람들이 자기 직업에 대한 애착과 긍지를 가지고 삶의 보람을 느끼며 살아가고있다.

내가 만나본 신의주시인민회의 대의원 최정순녀성도 그러한 사람들중의 하나이다.

그는 수십년간을 신의주물정화사업소 위생시설수리공으로 일하고있다.

위생시설수리공!

자본주의사회에서 위생시설수리공이라고 하면 너무도 천한 직업을 가진, 사회의 최하층부류로 취급되는 사람이다.

그런 사회에서 첫자리에 놓이는 대상은 재벌가와 권력가, 다음으로는 법률가, 그다음으로는 예술계나 체육계의 유명인, 이렇게 꼽아가느라면 위생시설수리공과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은 마직막 어디쯤이나 있겠는지…

돈많고 권력있는 사람은 아득히 높은 곳에서 없는자를 굽어볼수 있으며 많은 사람들로부터 부러움의 시선을 받게 되지만 하층, 최하층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은 천대와 멸시, 눅거리동정을 받으며 사는것이 자본주의사회이다.

하지만 조국에서 만나본 위생시설수리공은 이와는 정반대였다.

최정순녀성은 해방직후부터 오늘까지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의 뒤를 이어 위생시설수리공이 된 녀성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최정순녀성의 가정은 도시경영부문의 한 직업에서 3대를 이어오며 일해오고있다.

그는 누구나 선뜻 택하기 주저하는 이 직업에서 한생 험한 일을 하며 여직껏 살고있다.

사람들은 위생시설수리를 천한 일로 생각하지만 사실 인간생활에서 무시할수 없는 중요한 일이다.

위생시설이 고장나면 그때 당하는 생활상 고충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나도 한때 부엌의 물이 잘 빠지지 않아 며칠 고생을 겪은적이 있었다. 그때 위생시설수리공을 찾느라고 온 거리를 헤매였다.

생활에서 이렇듯 중요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사회에서 위생시설수리공은 천시의 대상으로 되고있다.

하지만 공화국에서 단발머리처녀시절부터 오늘까지 위생시설수리공으로 일하고있는 최정순녀성은 시대의원(시의회 의원격)이고 자기가 하는 일을 긍지롭게 여기며 인민들을 기쁘게 해주는 재미에 한생 험한 일을 하고있다.

이런 그를 두고 사람들은 《우리 위생시설수리공》, 《우리 대의원》이라고 친근하게 부른다고 한다. 집에 별식이 생기거나 경사가 났을 때는 우정 일거리를 만들어서라도 물정화사업소의 《공훈수리공할머니》(최정순녀성을 두고 하는 말)를 찾아 즐거움과 기쁨을 함께 나눈다고 한다.

《물은 흔적을 지우며 흘러가지만 위생시설수리공이 그 물속에 흘린 땀방울은 인민의 마음속에 보석같은 량심의 흔적으로 오래오래 남아있는 법입니다.》

헤여질 때 최정순녀성이 한 이 말은 나에게 깊은 여운을 남겨주었다.

시인민회의 대의원인 최정순녀성은 지금 일흔이 넘었지만 네자식들과 함께 오늘도 변함없이 위생시설수리공으로 인민을 위해 일하고있다. (계속)

 

 

재로씨야동포 한 류드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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