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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군의 어머니 김정숙녀장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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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4,570회 작성일 17-04-03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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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붉은기 휘날리는 유격구에서

 

 아동단원들을 선군혁명의 후비대로

 

조선인민의 첫 혁명적무장력인 반일인민유격대를 창건하신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적들의 야수적인 공격과 탄압으로부터 청소한 유격대와 혁명군중을 보호하며 혁명력량을 급속히 확대강화하기 위하여 해방지구형태의 유격근거지를 빨리 꾸릴데 대한 과업을 제시하시였다.

연길현 팔구혁명조직에서는 지형조건이 유리한 지역들에 유격구역을 창설하고 주변마을의 군중들을 그리로 이동시키는 조치를 취하였다. 그리하여 부암상촌에도 유격구역이 꾸려져 그 주변마을들에서 살던 혁명군중이 집단적으로 혹은 개별적으로 새로 꾸려지는 유격구역으로 이동하였다.

김정숙녀사께서도 주체21(1932)년 가을 오라버님과 사랑하는 조카와 리별하시고 동생과 함께 부암유격구역으로 들어가시여 구공청위원회 위원으로 사업하게 되시였다.

이때부터 김정숙녀사께서는 직업적인 혁명가로 활동하게 되시였다. 녀사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선군혁명로선을 유일한 신념으로 삼으시고 그것을 관철하기 위한 사업에 자신의 정열과 지혜를 남김없이 바치시였다.

팔구공청위원회는 구공청위원이신 김정숙녀사께 유격구역과 적구의 일부 공청단체들의 사업을 지도하시면서 중요하게는 팔구의 아동단원들에 대한 지도사업을 맡아수행하도록 분공하였다.

아동단은 어린이들을 혁명에 무한히 충실한 참된 혁명가로 키우기 위한 소년들의 혁명적인 정치조직으로서 당 및 공청과 함께 《3대동맹》을 이루고있었다. 그러므로 아동단사업을 강화하는것은 혁명의 믿음직한 후비대를 튼튼히 키우는데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지였다.

아동단지도자로 되신 김정숙녀사께서는 조직과 동지들의 신임과 기대에 꼭 보답하리라 굳게 마음다지시고 아동단지도사업에 달라붙으시였다.

아동단지도원들의 역할을 높이기 위한 사업에 선차적인 의의를 부여하신 김정숙녀사께서는 주체21(1932)년 11월 5일 부암유격구역 아동단지도원회의에서 하신 보고 《일제의 <봉쇄>책동에 대처하여 아동단지도원들의 역할을 더욱 높이자》에서와 그 이듬해 4월 5일 연길현 공청 및 아동단지도일군회의에서 하신 연설 《김일성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높이 받들고 아동단원들을 혁명의 후비대로 튼튼히 키우자》에서 아동단지도원들의 역할을 높이며 아동단사업을 개선하기 위한 과업과 그 수행방도를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다. 녀사께서는 모든 어린이들을 아동단학교에 받아들이고 그들에 대한 사상교양사업을 강화하며 학습을 잘하고 군사를 성실히 배우도록 이끌어주며 조직생활에 대한 지도를 강화하고 그들을 실천투쟁속에서 단련시키는 문제를 아동단지도원들이 수행해야 할 중요한 임무로 규정해주시였다. 그리고 아동단지도원들을 자주 만나시여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대로 아동단원들을 잘 교양하자면 아동단지도원들이 그들앞에 맑은 거울이 되여야 한다고 일깨워주기도 하시고 아동단원들에 대한 지도에 모든 정열을 다 쏟아부어 그들모두를 훌륭한 혁명가로 키워 부모들의 대를 더 잘 잇도록 할데 대하여 강조하군 하시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아동단원들이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끝없는 존경과 흠모의 마음을 간직하도록 하기 위한 사상교양사업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아동단원들에게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을 따르는 마음을 심어주기 위하여 적극 노력하시였다.

아동단원들이 아침에 뒤산까지 달리기를 한 후 해돋이구경을 하는것은 하루일과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있었다. 어느날 아침 해돋이시간에 아동단원들과 함께 산에 오르신 김정숙녀사께서는 그들에게 태양의 고마움에 대하여 말해보라고 하시였다. 어떤 아동단원은 태양은 밝고 따뜻한 빛을 준다고 했고 또 어떤 아동단원은 태양이 있기때문에 꽃도 피고 열매도 맺는다고 하였다. 비온 뒤에 고운 무지개를 만들어준다고 말하는 아동단원도 있었다.

김정숙녀사께서는 그들의 대답을 주의깊게 들으시고나서 정말 태양은 우리에게 헤아릴수없이 많은 혜택을 안겨준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세상만물이 태양이 없이는 살지 못하는것처럼 우리는 김일성장군님의 품을 떠나서는 살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하늘의 태양과 같은분은 바로 김일성장군님이십니다.

우리들에게 나라찾는 투쟁의 길을 밝혀주시고 우리들을 근거지의 품에 안아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키면서 혁명가로 키우시는 김일성장군님은 우리모두의 태양이십니다.

아동단원동무들은 김일성장군님을 높이 받들고 장군님만을 따르는 참된 전사가 되여야 합니다.》

그 시절 김정숙녀사께서는 비록 위대한 수령님을 가까이에서 모시고 사업하시지는 않았다. 그러나 녀사께서는 늘 《저는 배고프고 힘들 때면 김일성장군님을 생각하군 합니다.》, 《김일성장군님은 정말 우리의 은인이십니다.》라고 하시며 아동단원들이 수령님에 대한 끝없는 존경과 감사의 정을 깊이 간직하도록 하시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아동단원들에게 늘 이렇게 이야기하군 하시였다.

《아동단은 조선혁명의 후비대입니다.

동무들은 당의 지도밑에 공청의 뒤를 따라 일본제국주의침략자들과 악질지주, 자본가놈들을 때려부시고 새 사회를 건설하기 위하여 항상 준비되여있어야 합니다.

<항상 준비하자!>, 이것은 김일성장군님께서 가르쳐주신 아동단경례입니다.

장군님께서는 이 아동단경례가 행복하고 광명한 새 사회를 건설할 훌륭한 일군이 되기 위하여 항상 준비하겠다는 아동단의 맹세라고 가르쳐주셨어요.

동무들은 언제 어디서나 이 경례의 참뜻을 마음속에 새기고 장군님께 충직한 참된 전사들이 되여야 합니다.》

그러시며 녀사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국을 해방할 앞길을 환히 밝혀주시고 이르는 곳마다에서 강도 일제침략군놈들을 무리로 쓸어눕히는 이야기들을 자주 들려주시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아동단원들에 대한 애국주의교양, 계급교양도 심화시켜나가시였다.

열렬한 조국애, 애국주의를 떠나서 조선혁명을 잘할수 없다.

당시 아동단원들은 대부분이 이국땅에서 태여났거나 어려서 조국을 떠나온 사정으로 하여 조국에 대한 표상조차 똑똑히 가지고있지 못하였고 더우기 이역땅에서 자라다보니 자기의것을 잊고 다른 나라의 생활풍조에 물젖을수 있었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아동단원들에게 우리 조선은 문자그대로 삼천리금수강산이라고 하시면서 조국의 이름난 산과 강, 자원들을 알려주시고 우리 민족의 슬기와 재능, 찬란한 문화에 대하여, 외래침략자들과 용감히 싸워 나라를 지켜낸 우리 인민의 자랑스러운 투쟁력사와 우리 나라의 명인들에 대하여서도 자주 들려주시였다.

이런 교양사업은 아동단원들의 어린 가슴속에 크나큰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북돋아주었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아동단원들에게 우리 인민이 일제와 지주, 자본가들의 착취와 압박밑에서 당하고있는 고통과 부모들이 정든 고향을 떠나 낯설은 이국땅에서 망국노의 비참한 생활을 하게 된것이 무엇때문인가를 차근차근 일깨워주시였으며 조선의 어린이들이 학교에 갈 나이가 되여도 가지 못하고 고역에 시달리고있는 현실을 구체적인 사실을 들어가면서 알려주시였다. 그리고 아동단원들과 함께 밭에 나가 씨를 뿌리고 김을 맬 때에도 그들에게 땅이 없어 모진 학대와 주림속에서 살아온 아버지, 어머니들에 대하여 이야기해주시였다.

이러한 교양을 받으면서 아동단원들은 우리 나라를 강점한 일본제국주의자들, 지주, 자본가를 비롯한 착취계급, 착취사회에 대한 끝없는 증오심, 그와 끝까지 싸우려는 계급적자각을 키워나갈수 있었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선군혁명의 미래를 떠메고나갈 아동단원들을 거세찬 혁명의 불길, 소용돌이치는 혁명의 폭풍우속에서 강철의 투사로 키우기 위해 군사훈련과 체력단련에 힘을 넣도록 하시였다.

아동단원들을 장차 훌륭한 유격대원으로 키우자면 군사훈련과 체력단련을 잘하는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였다.

이로부터 김정숙녀사께서는 아동단원들의 심리적, 육체적특성에 맞게 보초서는 방법, 통신련락방법, 정찰방법, 수기신호법, 방위판정법, 불피우는 방법, 무기와 작탄을 다루는 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배워주시였다. 또한 아동단원들의 배낭속에는 언제나 미시가루가 든 식량주머니며 소금, 내의, 담요, 바늘과 실, 봇나무껍질에 싼 성냥, 공책, 연필 등이 들어있게 하고 비상소집훈련도 진행하여 아동단원들이 언제 어떤 정황에도 대처할수 있도록 준비시키시였다. 그리고 아침운동을 정상적으로 진행하며 군사놀이, 등산, 달리기를 비롯한 체육경기를 자주 조직하여 아동단원들이 체력을 끊임없이 단련해나가도록 하시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아동단원들을 데리고 나가 부암동 동골 서쪽산일대의 산릉선 여기저기에다 돌무지를 쌓아놓아 유격구역으로 달려드는 《토벌대》놈들을 족칠 만단의 준비를 갖추어놓으시는 한편 그들을 밤마다 유격구역의 곳곳에 보초도 세우고 유격대원호사업에도 동원시켰으며 인민들의 농사일도 돕게 하고 주구청산에도 망라시켜 실천투쟁속에서 단련되도록 하시였다.

김정숙녀사께서 아동단사업을 지도하시면서 특별히 깊은 관심을 돌리신것은 연예대활동이였다.

아동단연예대활동은 아동단원들의 정서를 풍부히 할뿐아니라 그들을 혁명적으로 단련하며 유격대원들과 군중을 혁명투쟁에로 불러일으키는 선전자, 선동자로 키우기 위한 중요한 사업의 하나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주체21(1932)년 12월 장재촌에서 노래를 잘 부르고 춤을 잘 추는 아동단원들로 첫 아동단연예대를 무으시였으며 그 이듬해 6월부터는 연길현아동단연예대사업을 맡아보시였다.

사실 학교문앞에도 가보지 못하신 김정숙녀사께서 아동단연예대를 지도한다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였다.

그러나 김정숙녀사께서는 순간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으시고 야학에서 배운 지식을 밑천으로 부단히 지식을 넓혀가시였기에 이 시기에 이르러서는 벌써 자신의 생활과정에서 체험하고 느끼신 소박한 감정을 가사에 담으실수 있었고 춤도 안무하실수 있었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초기혁명활동시기에 창작공연하시여 널리 보급전파된 작품들, 장군님에 대한 흠모의 정과 조국에 대한 사랑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공연종목으로 선정하시고 아동단원들이 그것을 훌륭히 형상하도록 이끌어주시였다.

그리하여 가무 《단심줄》과 《13도자랑》, 노래 《장군별 따라서 조국땅으로》, 무용 《흰갈매기》 등 사상적내용이 좋은 작품들이 아동단연예대 공연무대에 오르게 되였다.

김정숙녀사께서 이끄시는 아동단연예대는 연길현안의 여러 유격구역들과 유격대병실, 병원, 무기수리소를 찾아가 공연함으로써 유격대원들과 유격구역인민들에게 혁명적락관주의정신과 필승의 신념을 안겨주었다. 뿐만아니라 적통치구역인 팔도구광산과 왕청현 소백초구의 산간마을에까지 나가 로동자, 농민들속에서 적극적인 연예선전활동을 벌려 그들이 유격대를 원호하는 사업에 높은 열의를 가지고 떨쳐나서게 하였다. 그리고 서규오반일부대를 찾아가 힘있는 연예활동을 벌림으로써 그들을 반일인민유격대와의 련합전선실현에로 불러일으키는데 적극 기여하였다.

주체23(1934)년 봄 연길현아동단연예대는 왕청으로 가서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을 모시고 공연하는 영광을 지니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매 종목마다 박수를 쳐주시며 연길현아동단연예대가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잘 부른다고 하시면서 매우 만족해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연예대원들이 공연을 마치고 돌아갈 때 앞으로 계속 공부를 잘하고 연예대선전도 잘하라고 뜨겁게 고무해주시면서 그들에게 40개의 붉은넥타이를 선물로 주시였다.

왕청에서 돌아온 연예대원들은 김정숙녀사께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진행한 공연정형을 말씀올리고 수령님께서 보내주신 붉은넥타이를 드리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크나큰 격정에 싸여 붉은넥타이를  가슴에 안으시고 《장군님! 이 크나큰 신임과 기대에 꼭 보답하겠습니다.》라고 충정의 결의를 다지시였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그때를 회상하시여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연길현아동단연예대가 왕청에 왔을 때 나는 그들에게 40개의 붉은넥타이를 선물로 보내주었다. 그때 8구공청위원 겸 현아동단연예대 책임자로 활동하던 김정숙은 그 선물을 받고 몹시 감격하였다고 한다.》

붉은넥타이선물, 이것은 아동단연예대사업뿐아니라 김정숙녀사의 혁명활동전반에 대한 높은 표창이였으며 각별한 신임의 표시였다.

이처럼 김정숙녀사는 아동단원들을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의 참된 아들딸로, 선군혁명의 믿음직한 후비대로 훌륭히 키워내신 재능있는 아동단지도자이시였다.

김정숙녀사께서 아동단원들을 얼마나 훌륭히 키워내시였는가 하는것은 다음과 같은 일제의 보도자료에서도 충분히 찾아볼수 있다.

《…이번의 토벌때에도 8도구부근에서 일본군에 체포된 12살난 한 소녀는 품속에 수십매의 일본말로 씌여진 반전삐라를 감추고있었는데 심문에 대답하기를 죽음을 당하는 순간에 일본군병사들에게 그것을 보여 선전할 작정이였다고 대담한 언사를 던진 사실이 있었다.》

 당시 국제당에서 발간하는 잡지 《공산국제》와 중국의 《구국신보》를 비롯한 여러 나라 출판물에 실려 세상사람들을 감동시켰고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한 아동단원 금순이는 연길현아동단연예대에서 활동하던 소녀였다. 9살의 어린 소녀였던 아동단원 금순이가 일제놈들에게 체포되여서도 조직의 비밀을 지켜 굴함없이 싸우고 생명을 서슴없이 바칠수 있었던 그 근저에는 아동단원들을 선군혁명의 후비대로 키우시기 위해 모든것을 바쳐오신 김정숙녀사의 뜨거운 심혈과 노력이 깃들어있다.

김정숙녀사께서 심혈을 기울여 교육교양하신 아동단원들은 그후 한사람같이 훌륭한 유격대원, 재능있는 정치공작원이 되여 조국해방을 위한 투쟁에서 빛나는 위훈을 세웠다. 그가운데는 금순소녀뿐아니라 위대한 수령님을 위하여, 혁명을 위하여,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귀중한 목숨을 서슴없이 바치고 영생의 언덕에 오른 투사들도 수없이 많다.

간고한 항일혁명의 불길속에서 어린이들을 맡아키우는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였다. 그처럼 어려운 조건에서 어린이들을 맡아키운 사실은 아직 그 어느 나라 혁명투쟁력사에도 있어본적이 없는 일이였다.

선군혁명의 먼 앞날을 내다보시며 아동단원들을 혁명의 후비대로 억세게 키우시려는 위대한 수령님의 높으신 뜻을 받드시여 자라나는 새 세대들을 인민의 자유와 해방을 위한 성스러운 투쟁에 나선 나어린 혁명가로 키워내신것은 김정숙녀사께서 조국과 인민앞에 쌓으신 불멸의 업적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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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민혁명정부로선을 옹호하시여

 

주체22(1933)년 봄부터 유격구역들에서는 진정한 인민의 혁명정권인 인민혁명정부들이 창설되기 시작하였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주권문제를 혁명의 근본문제로 보시고 력사적인 카륜회의에서 우리가 앞으로 세워야 할 정권은 로동자, 농민을 비롯한 인민대중의 리익을 옹호하는 민주주의정권으로 되여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그리고 주체20(1931)년 12월 명월구회의에서는 앞으로 창설될 유격구역들에 세워야 할 혁명정권의 인민적성격과 그가 실시하여야 할 민주주의적과업들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밝혀주시였다.

그런데 위대한 수령님께서 갓 조직된 무장대오를 이끄시고 남만원정의 길에 오르신 사이에 유격구역들에 틀고앉은 좌경기회주의자들과 종파사대주의자들은 일부 지역들에 조선혁명의 실정에 맞지 않는 《쏘베트》정부를 내왔으며 일체 사적소유의 페지와 《공동생산》, 《공동분배》를 주장해나섰다. 그들은 반일적인 경향을 가진 부농들과 중농들의 토지와 집짐승까지 몰수하는 망동을 부리였다. 이자들의 책동은 근거지인민들속에서 커다란 불안과 혼란을 조성하였다.

바로 이러한 때 남만원정을 마치시고 왕청유격구역에 오신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혁명정권을 세우는데서 나타난 좌경적편향과 그 후과를 전면적으로 료해하시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결정적인 조치를 취하시는 한편 진정한 인민혁명정부를 세우기 위한 구체적인 방도들을 다시금 환히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인민혁명정부로선은 력사적인 카륜회의에서 제시된 주체적인 인민정권건설로선을 유격구역의 실정에 맞게 구체화한것으로서 혁명의 동력구성이 넓어진 새로운 력사적조건을 반영한 가장 정확한 로동계급의 정권건설로선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혁명정부로선을 관철하기 위하여 유격구역안의 당조직들에서 토의사업을 진행하게 하시였다. 그리고 각지에 지도성원들을 파견하시여 《쏘베트》를 해체하고 인민혁명정부를 세우는 사업이 편향없이 진행되도록 하시였다.

연길현에서도 인민혁명정부를 세우기 위한 투쟁이 힘있게 벌어지게 되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수령님의 인민혁명정부로선의 정당성과 생활력을 인민들에게 깊이 인식시키며 그들모두를 인민혁명정부수립을 위한 사업에 적극 떨쳐나서도록 이끌어주시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무엇보다도 인민들에게 새로 세우게 될 혁명정권의 성격과 사명, 그가 수행해야 할 과업에 대하여 여러가지 방법으로 해설선전하시였다.

주체22(1933)년 3월말 어느날 김정숙녀사께서는 장재촌유격구역에 인민혁명정부를 세우는 사업정형을 료해하시였다.

당시 이곳에서는 인민들속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인민혁명정부로선을 해설침투하기 위한 사업에 힘을 돌리지 못하고있었다. 그리하여 일부 사람들은 새로 세우게 될 인민혁명정부의 성격과 사명을 잘 알지 못하고있었다. 그리고 일군들도 선전사업을 활발히 벌릴만큼 준비되여있지 못하였다.

이러한 실정을 료해하신 김정숙녀사께서는 인민혁명정부로선에 대한 해설선전사업을 자신께서 맡아하겠다고 하시면서 저녁에 마을의 주민들을 모두 장재촌학교에 모이도록 하시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학교에 모인 군중들앞에 나서시여 해설사업을 시작하시였다. 녀사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인민혁명정부로선을 구현하여 작성발표된 인민혁명정부정강의 내용을 조항별로 읽어주시고 그것을 해설해주시였다.

김정숙녀사께서 일본 및 모든 제국주의와 매국노의 은행, 철도, 광산, 기업소, 토지 및 기타 재산을 몰수하여 반일군비로 충당하며 일부분은 빈곤한 인민들에게 분배한다는 조항을 해설하시고 모를것이 있으면 물어보라고 하시였을 때였다.

이때 앞줄에 앉아있던 한 아주머니가 자기 집 송아지문제를 제기하였다. 그 송아지는 지주놈의 윤두소를 길러주고 그 값으로 받아낸것인데 앞으로 인민혁명정부가 서면 그 송아지를 어떻게 처리하게 되는가 하는것이였다.

질문에서 김정숙녀사께서는 일체 사적소유를 부인한다고 떠들면서 부농들과 중농들의 토지와 집짐승까지 몰수하려고 하던 종파사대주의자들의 극좌적망동의 후과가 인민들에게 미치여 새로 내오려는 인민혁명정부의 성격과 사명을 반신반의하고있다는것을 포착하시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웃으시며 《그 송아지는 아주머니네것입니다. 아주머니네가 힘들여 받아낸것인데 누가 다치겠습니까. 인민혁명정부는 인민들이 피땀으로 마련한 재산은 무엇이나 철저히 보호하여드립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쏘베트》정부의 시책과 인민혁명정부의 시책의 차이를 생동한 실례를 들어 대비적으로 해설해주시였다. 그리고 인민혁명정부는 농민들의 사적소유를 부정하는것이 아니라 철저히 보호해주며 농민들에게는 토지개혁으로 땅을 분배해준다는것을 알기 쉬운 말로 차근차근 일깨워주시였다.

해설을 통하여 인민혁명정부가 인민들이 피땀으로 마련한 재산은 무엇이나 철저히 보호해준다는것을 비로소 깨달은 그 아주머니는 《그렇다면 누가 그 고마운 정부를 마다하겠소. 나는 찬성이우다.》라고 말하였다. 그바람에 교실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와그르 소리를 내며 웃었다.

장내가 진정되자 김정숙녀사께서는 앞에서 해설한 인민혁명정부의 정강은 로동자, 농민을 비롯한 광범한 근로대중의 리익을 철저히 옹호할뿐아니라 정치적자유와 권리, 안정된 생활조건을 담보하는 가장 인민적이며 혁명적인 정강이라고 다시금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녀사의 사리정연하고 설득력있는 해설은 사람들에게 크나큰 기쁨과 희망을 안겨주었다.

김정숙녀사의 이러한 해설선전에 의하여 사람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인민혁명정부로선과 그 정당성을 깊이 체득하게 되였으며 그 실현을 위해 적극 투쟁할 불타는 결의를 굳게 다지게 되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그후에도 각지 인민들속에 강연, 해설, 담화 등 여러가지 형식과 방법으로 인민혁명정부로선을 널리 해설선전하시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다음으로 쏘베트의 좌경적시책에 의하여 피해와 손실을 당한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이 위로하고 그들을 인민정권의 적극적인 지지자로 만들기 위한 사업에도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주체22(1933)년 6월 어느날 김정숙녀사께서는 아동단연예대를 이끄시고 진정한 인민의 정권인 인민혁명정부가 수립되여가던 왕우구마을을 찾으시였다.

촌인민혁명정부가 들어있는 집 지붕우에서 날리고있는 붉은 기발을 바라보시며 김정숙녀사께서는 하늘높이 휘날리는 저 붉은 기발을 볼 때면 김일성장군님에 대한 고마움이 가슴에 뜨겁게 안겨온다고 하시면서 우리는 피로써 쟁취한 인민의 정권을 끝까지 고수하여야 한다고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그날 마을에서는 아동단연예대의 공연이 진행되였다.

아동단연예대공연은 처음부터 군중들을 감동시켰다.

노래와 춤, 시랑송과 하모니카독주 등 공연종목이 바뀔 때마다 마을사람들은 손바닥이 깨여져라 박수를 쳤다.

아동단연예대의 공연내용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세워주신 인민혁명정부는 인민의 진정한 정권이라는것과 모두다 위대한 수령님을 따라 항일성전에 용감히 떨쳐나서 강도 일제를 쳐부시고 혁명승리의 북소리를 높이 울리며 조국땅으로 돌아가자는 사상으로 일관되여있었다.

공연이 끝나자 무대에 나서신 김정숙녀사께서는 관중들에게 연예대를 뜨겁게 맞아준데 대하여 인사를 드리신 다음 위대한 수령님의 령도따라 인민혁명정부를 세우고 근거지를 지켜 용감히 싸우고있는 왕우구마을인민들을 열렬히 축하하시고나서 절절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여러분! 우리는 실지 생활을 통하여 장군님께서 세워주신 인민혁명정부만이 인민들을 위한 진정한 인민의 정권이라는것을 똑똑히 알게 되였습니다. 착취와 압박이 없는 새세상에서 자유롭게 살아보려던 우리 인민의 오랜 념원이 바로 여기서 실현되고있으니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우리는 장군님께서 세워주신 인민혁명정부를 끝까지 지켜나가야 합니다.》

순간 우뢰와 같은 박수소리가 근거지의 골짜기들에 메아리쳐갔다.

잠시 동안을 두시였던 김정숙녀사께서는 말씀을 이으시였다.

《우리는 인민혁명정부로선을 반대하는 종파사대주의자들과 좌경기회주의자들의 책동에 대해 경각성을 높이며 그 어떤 자그마한 표현도 용서하지 말고 제때에 타격을 주어야 합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여기 왕우구와 같은 인민의 새세상을 온 나라에 세우시기 위해 피어린 투쟁을 령도하고계십니다.

강도 일제를 몰아내고 광복된 조국땅우에 근로하는 인민이 주인으로 될 새세상을 세우기 위하여 우리는 모두 항일의 혈전에 떨쳐나서야 합니다. 장군님께서는 나라를 사랑하고 일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 반일투쟁에 떨쳐나서야 한다고 가르치시였습니다. 일제놈들이 아무리 발광을 하여도 장군님두리에 전민족이 굳게 뭉쳐싸우면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것입니다. 우리모두 장군님께서 세워주신 귀중한 인민혁명정부를 목숨으로 사수합시다!》

열정에 넘치신 김정숙녀사의 연설을 들으며 왕우구마을 군중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세워주신 인민혁명정부를 목숨으로 사수할 결의들을 다지고 또 다지였다.

그날 밤 김정숙녀사께서는 어느 한 녀성공청일군과 함께 박로인의 집을 찾으시였다.

그집 내외분들과 따뜻한 인사를 나누신 김정숙녀사께서는 씨붙임은 다 하셨는가고 다정히 물으시였다.

박로인은 인민혁명정부에서 나누어준 밭에는 씨를 넣었는데 본래부터 부치던 뙈기밭에는 아직 씨붙임을 못했다고, 소만 있었으면 얼마든지 할수 있었겠는데 하면서 말끝을 맺지 못하였다.

박로인에게는 소문제를 놓고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다.

유격근거지가 창설된 첫해 겨울에 일제놈들의 《토벌》에 아들을 잃은 박로인에게는 보잘것 없는 몇뙈기의 부대기밭과 소 한마리가 있었는데 종파사대주의자들이 《쏘베트》를 들고나와 그를 《소부르죠아지》로 배척하며 못살게 굴다가 끝내 소를 빼앗아갔던것이다. 그러다나니 종파사대주의자들의 좌경적책동의 본질을 잘 모르던 일부 마을사람들까지 박로인을 《소부르죠아지》로 잘못 보면서 그 집 일을 잘 도와주려고 하지 않았던것이였다.

녀성공청원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듣고나신 김정숙녀사께서는 그런 일이 있었는가고 하시며 그동안 마음고생을 많이 하신 로인님들을 잘 도와드리지 못하여 죄송하다고 다정하게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이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근거지에 오시여 모든 일을 바로잡으시고 인민혁명정부를 세워주셨으니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것이라고 하시였다.

로인내외는 김정숙녀사의 두손을 잡으며 억울하기 그지없던 그때에도 백성들을 위하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오시면 모든 일을 바로잡아주시리라는 한가닥 희망을 품고 모진 고통을 견디여온데 대하여 눈물에 젖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따뜻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정말 옳게 생각하셨습니다.

그 마음이 귀중합니다.

우리 인민들은 오직 위대한 장군님만을 믿고 일제를 반대하여 견결히 싸우면 반드시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 행복하게 살수 있습니다.》

로인내외의 마음속에 신념의 기둥을 더욱 튼튼히 세워주는 말씀이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앞으로 늙은이들이 젊은 사람들의 손이 필요할 때가 많겠는데 아무때나 우리 공청원들에게 이야기하면 도와드리겠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로인내외는 정말 고맙다고, 친딸이면 이보다 더하겠는가 하며 감동을 금치 못해하였다.

박로인내외의 마음속에 서렸던 아픔을 풀어주시고 그들에게 신념과 힘을 안겨주신 녀사께서는 밤이 깊어서야 숙소로 돌아오시였다.

그 이튿날 김정숙녀사께서는 마을의 공청원들과 아동단연예대원들을 이끄시고 박로인네 집으로 가시여 마을 뒤골짜기에 있는 밭에서 씨붙임을 하시였다.

씨붙임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서 김정숙녀사께서는 왕우구유격구역의 공청원들에게 위대한 수령님께서 세워주신 인민혁명정부가 참다운 인민의 정권이라는것을 인민들속에 잘 해설해주면서 장군님께서 발표하신 인민혁명정부정강을 실천하는 투쟁의 앞장에 공청원들이 서야 한다고 간곡하게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인민혁명정부로선과 인민적시책을 더욱 깊이 깨닫게 된 박로인내외와 마을사람들은 김일성장군님에 대한 다함없는 흠모의 정으로 심장을 불태우며 모두다 힘을 합쳐 근거지를 튼튼히 지키고 인민혁명정부를 반석같이 다져갈 불타는 결의를 굳게 다지였다.

이처럼 김정숙녀사께서는 설득력있는 정치사업으로 인민들에게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인민혁명정부로선을 옳게 인식시킴으로써 유격근거지에 인민의 새세상을 세우기 위한 사업에 크게 이바지하시였다.

 22

 인민의 세상 - 근거지를 지켜

 

주체21(1932)년 여름부터 주체22(1933)년초까지 두만강 연안의 넓은 지역에는 많은 유격구역들이 창설되였다.

연길현에도 왕우구, 해란구, 석인구, 삼도만, 위자구 등지에 유격구역들이 꾸려지게 되였다.

일제침략자들은 인민혁명정부가 세워지고 인민적시책들이 실시되고있는 인민의 새세상인 유격근거지-해방지구를 그 요람기에 없애려고 단말마적인 발악을 하였다. 일제는 유격근거지를 《동양평화의 암》이라고 하면서 1933년초부터 유격구역들에 대한 경제적봉쇄와 함께 전면적인 《초토화작전》을 감행하였다. 조선강점군 《간도파견대》와 위만군, 경찰부대, 무장자위단 등 수만명의 병력과 함께 박격포, 비행대까지 유격근거지들에 대한 《토벌》작전에 동원되였다. 연길현의 유격구역들을 《토벌》하는데만도 수천명의 적들이 동원되였다.

유격구역을 일제의 침공으로부터 보위하는것은 출발의 첫 자욱을 뗀 항일무장투쟁의 확대발전과 전반적조선혁명의 운명과 관련되는 중요한 문제로 나섰다.

일제놈들이 《위공》작전에서 노리고있는것이 방대한 병력을 집중하여 유격구역들을 전면적으로 포위하고 장기적인 《토벌》로 《완전소멸》하는데 있었던것만큼 유격구역들에서 총을 잡고 싸울수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원쑤들을 물리치는 전투에 떨쳐나서야 하였다.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반군사조직들을 확대강화하고 유격구역들을 요새화할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유격구역에서는 유격대를 정치군사적으로 장성발전시킬뿐아니라 적위대, 소년선봉대 등 반군사조직들을 확대강화하고 전체 인민들을 무장시켜 유격근거지를 보위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유격대를 군사적으로 강화하고 근거지인민들을 무장시키며 유격구역을 요새화할데 대한 방침은 전인민적규모에서 전개되는 항일혁명전쟁의 성격과 필연적요구를 전면적으로 반영한 독창적인 방침이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유격구역보위방침을 관철하기 위하여 정력적인 활동을 벌리시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부암유격구역에 오신 첫날부터 소년선봉대원들을 비롯한 유격구역인민들을 유격구보위를 위한 투쟁에로 적극 불러일으키시는 한편 자신이 유격구역방어전투에 앞장서시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주체22(1933)년 2월 초순 부암유격구역 인민들과 소년선봉대원들앞에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여러분들은 적들과 싸워이기지 못하면 내가 죽고 자식들이 죽게 된다는것을 명심하고 우리의 세상인 유격구를 끝까지 사수하기 위하여 죽기를 각오하고 싸움에 나서야 합니다.》

김정숙녀사께서는 반군사조직인 반일자위대의 전투력을 높이는데 깊은 주목을 돌리시고 왕우구유격구역의 반일자위대와 삼도만유격구역의 반일자위대를 찾으시여서 유격대에서 총을 가져다줄것만을 바라고있는 그들에게 유격근거지의 전체 인민들을 무장시킬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방침을 해설해주시면서 무기를 자체의 힘으로 해결해나가도록 이끌어주시였다. 또한 소년선봉대원들이 적들의 《토벌》로부터 유격구역을 사수하기 위한 싸움에 적극 참가하도록 하기 위하여 그들이 군사훈련과 군사지식습득을 위한 학습을 열심히 하고 싸움준비에 적극 나서도록 이끌어주시였다.

한편 김정숙녀사께서는 부암동골에 주둔하고있는 반일인민유격대와 함께 근거지방어전투에 참가하시였다.

2월 어느날이였다.

이날 김정숙녀사께서는 소년선봉대원들과 함께 산에서 나무를 하시였다. 그런데 갑자기 팔도구방향에서 적들이 달려든다는 련락을 받게 되시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곧 소년선봉대원들을 동골 서쪽산에 오르게 하시고 자신께서는 그달음으로 마을에 내려가시여 어린이들과 인민들을 데리고 산으로 올라오시였다.

그때 소년선봉대원들과 인민들이 오른 곳은 유격대원들이 자리를 차지한 지점에서 얼마간 떨어진 산릉선이였다.

바로 그 릉선 서쪽코숭이의 눈속에 유격대원들이 매복하여 적《토벌대》놈들을 일격에 소멸할 전투태세를 갖추고있었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유격대지휘관들과 토의하고 소년선봉대원들도 싸울 준비를 하게 하시였다.

평시에 천리길도 단숨에 달려갈수 있도록 육체적으로, 군사적으로 튼튼히 준비해온 소년선봉대원들의 기세는 높았다.

이윽고 적들은 예견했던대로 유격대가 차지한 앞계선으로 밀려들기 시작하였다. 총창을 번쩍거리며 밀려오는품이 적게 쳐도 100놈은 실히 됨직하였다.

놈들이 가까이 접근하자 때를 기다린듯 유격대가 차지한 계선에서 야무진 한방의 총소리가 울리였다. 련이어 보총과 렵총쏘는 소리가 터졌다.

유격대원들의 집중사격에 놈들은 련속 너부러졌다. 불의의 타격에 넋을 잃은 적들은 살구멍을 찾지 못해 헤덤비면서 헛총질만 하였다.

그 광경을 내려다보시던 김정숙녀사께서는 소년선봉대원들에게 구호와 노래를 부르자고 하시였다. 그리하여 소년선봉대원들은 녀사의 선창에 따라 산판이 찌렁찌렁 울리게 구호를 부르고 혁명가요도 힘차게 불렀다. 소년선봉대원들이 부르는 구호와 혁명가요에 고무된 유격대원들은 기세를 올려 더욱 통쾌하게 적들을 족쳐댔다.

그런데 한동안 정신을 잃고 헤매던 한무리의 적들이 대렬을 수습하여가지고 유격대의 진지를 에돌아 소년선봉대원들과 인민들이 차지한 릉선기슭으로 달려들었다.

그러자 총 한자루 없는 군중은 당황하여 덤비며 흩어지기 시작하였다.

이때 김정숙녀사께서는 《동무들! 흩어져서는 안됩니다. 모두다 돌을 굴립시다. 우리의 돌벼락은 놈들의 총탄보다 더 위력합니다.》라고 웨치시며 대오를 수습하시였다.

소년선봉대원들은 김정숙녀사의 가르치심대로 곳곳에 쌓아놓았던 돌무지들을 차지하였다.

녀사께서는 놈들이 경사가 가장 급한 산중턱에 이르자 돌을 굴리라고 신호하시였다. 그 신호에 따라 소년선봉대원들과 인민들은 일시에 산릉선에 쌓아놓았던 돌무지들과 바위돌들을 내리굴리기 시작하였다.

쏟아져내리는 돌사태에 급해맞은 적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다가 돌에 맞아 곤두박히기도 하고 돌을 가슴에 안은채 죽어너부러지기도 하였다. 온 골짜기에 적들의 비명소리가 차고넘치였다.

결국 놈들의 측면공격은 김정숙녀사께서 지도하시는 소년선봉대원들의 투쟁으로 하여 좌절되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급히 소년선봉대원들을 데리고 달려 내려가시여 보병총만 하여도 8자루나 걷어가지고 올라오시였다.

녀사께서는 지체없이 총을 잘 쏘는 동무들을 골라 유격대진지로 달려드는 적들을 소멸하기 위한 사격을 하도록 하시였다.

소년선봉대원들과 인민들의 드높은 기세에 더욱 힘을 얻은 유격대원들은 살아남은 적들에게 련속 명중탄을 안기였다.

끝내 적들은 숱한 주검과 부상당한 놈들을 끌고 제 소굴로 돌아가고말았다. 전투는 유격대와 근거지인민들의 빛나는 승리로 끝났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어려운 전투정황속에서도 역경을 순경으로 전환시킬줄 아는 근거지방위의 용감한 기수이시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주체22(1933)년 12월 하순에 진행된 유격구역방어전투때에도 기민한 정황판단으로 전투를 승리적으로 결속하는데 크게 기여하시였다.

이날 김정숙녀사께서는 연길현 반일인민유격대의 1중대와 함께 부암유격구역 남쪽봉우리에 기여든 적들을 소멸하는 전투에 참가하시였다.

적들은 불의에 산우에 나타나 기관총을 쏘아대면서 달려들었는데 력량상 대비가 엄청난데다가 지형상으로도 불리한 형편이다보니 유격대는 놈들을 맞받아싸울 처지가 못되였다.

1중대는 이 위급한 사태에서 벗어나려고 재빨리 옆으로 빠지면서 남쪽낭떠러지에 난 홈채기쪽으로 달려갔다.

적들도 좌우릉선을 타고 유격대를 포위할 기세로 밀려내려왔다.

몇분만 더 우물거리면 커다란 손실을 당할수 있는 매우 불리하고 위급한 정황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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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모두가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몰라 망설이기만 하였다.
바로 이 순간 유격대와 함께 행동하시던 김정숙녀사께서는 예리하게 적정을 살피고 기민하게 주변 지형지물을 바라보시더니 바위에 의지하여 민첩하게 몸을 숨기시며 모두 그렇게 하라고 소리치시였다.
좌우릉선을 타고내려오던 적들은 유격대가 바위뒤에  몸을 숨기고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하고 바닥을 향해 냅다 달려내려갔다.
김정숙녀사의 기발한 착상에 의하여 위기를 면한 중대는 적들이 지나가자 곧 그 릉선을 차지하고 전투의 주도권을 틀어쥐게 되였다.
낭떠러지바닥에서 유격대가 간 곳을 찾지 못하게 되자 적들은 다시금 유격대가 차지한 릉선으로 기여오르려고 하였다.
바로 그때 김정숙녀사께서는 가지고 다니시던 《연길폭탄》에 불을 달아 놈들에게로 힘껏 던지시였다.
굉장한 폭음이 울리며 수많은 적들이 쓰러졌다.
이것을 신호로 유격대원들의 일제사격이 시작되였다.
불리한 처지에 빠진 적들에게 련속 명중탄을 퍼붓는 유격대의 화력앞에서 적들은 무리로 쓰러지고 전투는 유격대의 승리로 결속되였다.
유격대원들은 전투후 저저마다 불리한 전투정황을 한순간에 역전시켜 수많은 적들을 쓸어눕히고 전투승리를 보장할수 있게 하신 김정숙녀사의 기발한 착상과 용감한 전투행동을 두고 근거지의 녀장군감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후에도 근거지방어전투가 벌어질 때마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소년선봉대원들과 아동단원들을 이끄시고 인민들과  함께 전호도 파고 불비속을 뚫고 탄약과 끓인 물도 나르면서 반일인민유격대를 적극 도우시였으며 총을 잡고 전투에도 참가하시였다.
근거지방어전투의 나날 김정숙녀사께서는 부닥치는 애로와 난관 그리고 커다란 슬픔도 불굴의 의지로 이겨나가시였다.
주체67(1978)년 1월 28일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김정숙녀사를 형상한 소설의 한 장면을 깊이있게 분석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어머님에게 있어서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 희생된것은 비극의 절정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동생 기송이 희생되였을 때 어머님께서는 악독한 원쑤와 싸우려는 사람이라면 눈물을 고이는대로 쏟을것이 아니라 그 눈물을 가슴에 한동이씩 채우고 싸워야 한다는 내면독백을 하는데 이 말은 무심히 대할수 없는 말입니다. 어머님의 이 말씀에는 준엄한 혁명의 진리가 담겨져있습니다.》
어머님의 가슴이 그 얼마나 원쑤에 대한 증오심으로 세차게 끓어번졌는가를 보여주는 그 심리묘사는 철저히 력사적사실에 기초한것이였다.
주체22(1933)년 12월 김정숙녀사께서는 혁명조직으로부터 적들의 《토벌》에 대처하여 장재촌지역의 군중을 삼도만쪽으로 이동시킬데 대한 임무를 받으시였다.
100여명의 군중을 두 대렬로 갈라서 안전하게 이동시킬것을 결심하신 김정숙녀사께서는 선두대렬을 이끄시고 장재촌을 떠나시였다. 그런데 뒤에 떠난 대렬이 한창 서쪽 산을 톺아오르고있을 때 100여명의 왜놈《토벌대》가 그들을 발견하고 추격하기 시작하였다. 적의 기관총이 등뒤에서 짖어대고 총탄이 발치에 날아와박히는데 이동하는 군중과 《토벌대》놈들과의 거리는 점점 좁아졌다. 군중전체가 적들에게 참살당할 위험이 닥쳐왔다.
바로 이때 장재촌의 서북쪽 사슴페봉우리에서 유격대돌격나팔소리가 울려퍼지였다.
그 나팔소리는 유격대가 아니라 팔구아동단 분단장이며 아동단나팔수인 김기송동생이 부는 나팔소리였다. 조직으로부터 적정을 살필 임무를 받고 사슴페봉우리로 오르다가 위급한 정황을 목격하신 김기송동생은 적들의 시선을 자신에게로 돌려 위험에 처한 인민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유격대돌격나팔을 부시였던것이다.
갑자기 울려퍼지는 유격대돌격나팔소리에 적들은 공포와 혼란에 빠졌다. 《토벌대》놈들은 일제히 총구를 사슴페봉우리쪽으로 돌리였다. 김기송동생에게로 총탄이 비발치듯 날아오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는 자리를 옮겨가며 계속 나팔을 불었다. 적들은 나팔소리가 나는 곳으로 몰켜가며 더욱 미친듯이 총탄을 퍼부었다.
한순간 나팔소리가 멎었다. 김기송동생은 원쑤의 흉탄을 맞고 눈우에 쓰러졌다. 당년 열두살 너무도 짧은 한생이였다.
다음날 유격대원들과 인민들, 아동단원들의 참가하에 추도식이 거행되였다.
추도모임에서 김정숙녀사께서는 솟구치는 눈물을 삼키시며 말씀하시였다.
《우리 기송이는 희생되였으나 적의 <토벌>로부터 구원된 열, 백의 기송이가 혁명을 위해, 조국의 광복을 위해 희생된 기송이의 몫까지 합쳐싸울것이며 광복된 조국땅으로 돌아갈 날은 반드시 올것입니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조용히 누워있는, 그렇게도 담차고 의젓한 동생을 향해 말씀하시였다.
《내 동생 기송아! 너는 혁명을 위하여 한몸 바쳤구나. 너는 조국의 아들답게, 혁명의 아들답게 싸웠구나. 누나는 그것이 기뻐서 운다.
이 울음을 증오로 바꾸고 네 몫을 나의 몫에 합치여 원쑤를 쳐부시겠다.
내 귀여운 동생아, 고이 잠들어라.》
혁명이란 정녕 이렇듯 가슴저미는 희생을 동반해야만 하는것인가. 아버님과 어머님, 형님 그리고 이번에는 동생마저 잃었으니 녀사께서는 인간이 겪을수 있는 상실의 아픔이란 아픔을 너무도 일찌기 그리고 가혹하게 겪으신것이다.
허지만 피를 흘리면서도 혁명을 하여야 했다. 일제의 총칼에 맞아 쓰러지거나 굶주려 쓰러지면서도 빼앗긴 조국을 찾아야 했다.
녀사의 가슴에서는 복수의 피가 끓어번졌다. 복수하리라, 사랑하는 부모형제의 피값을 천백배로 받아내리라!
일제의 총에 맞고 칼에 맞아 무참히 숨진 수천만 겨레의 피값을 기어이 받아내리라!
이렇게 마음다지신 김정숙녀사께서는 슬픔과 아픔을 증오로 이겨내시며 결연히 일어서시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며칠후 사랑하는 동생이 목숨으로 구출한 혁명군중을 이끄시고 사방대로 떠나시였다.
사방대에서 녀사께서는 자신의 슬픔과 아픔은 마음속깊이 묻어두고 혁명군중의 식량을 해결하는 사업에 모든 심혈을 다 바치시였다. 인민들과 함께 눈속을 헤치며 마른 버섯과 참취, 풀뿌리를 캐고 떨어진 잣송이들을 주으시였으며 공청원들을 이끄시고 적구에 내려가 식량을 여러차례 해결해오시였다. 사방대에 모여온 혁명군중이 이해 겨울을 이겨내고 혁명의 길을 계속 걸어나갈수 있게 된데는 자신께 가해진 뼈아픈 슬픔보다 근거지를 사수하고 혁명군중을 구원하여야 한다는 높은 사명감과 필승의 신념을 안으시고 투쟁하신 김정숙녀사의 불굴의 희생정신과 노력이 크게 깃들어있었다.
일제놈들의 《동기토벌작전》을 짓부실데 대한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의 명령에 따라 적배후기습작전을 벌리게 되였을 때 김정숙녀사께서는 적구로 들어가는 소부대에 참가하여 안내자이면서 척후병, 정찰병의 역할을 수행하시였다.
소부대가 구도구에 들어갔을 때 김정숙녀사께서는 적들의 군수물자수송정형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심으로써 유격대가 매복전으로 물자를 호송하는 적들을 생포하고 많은 군수물자를 로획할수 있게 하시였다. 또한 적들의 《토벌》거점의 하나인 팔도구에 대한 정찰을 면밀히 하심으로써 유격대가 경찰분서에 대한 통쾌한 습격전투를 벌릴수 있게 하시였다. 그리고 북독교봉일대에서 몇개 부락《자위단》의 동태를 알아내시여 유격대가 일시에 놈들을 들이치고 수많은 무기와 탄약을 로획할수 있게 하시였다.
주체23(1934)년 3월 9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왕청현 마촌에서 진행된 반일인민유격대 군사정치간부회의에서 반일인민유격대를 조선인민혁명군으로 개편할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고 3월부터 5월사이의 짧은 기간에 반일인민유격대를 조선인민혁명군으로 개편하는 력사적조치를 취하시였다.
각 현에 조직되여있던 유격부대들은 하나의 통일적인 군조직체계에 소속되여 대규모적인 유격활동을 벌려나갈수 있는 혁명무력으로 장성강화되게 되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유격구역인민들에게 반일인민유격대가 조선인민혁명군으로 개편된것이 가지는 의의를 적극 해설선전하시였으며 그것을 경축하는 행사때에는 여러가지 중요한 행사일정을 맡아 훌륭히 수행하시였다. 낮에는 아동단사열식훈련을 지도하시고 저녁에는 연예대공연을 지도하시였으며 남들이 다 자는 밤에는 또 밤대로 강연제강을 준비하시였다. 그리하여 4월 연길현 삼도만유격구역 능지영에서 진행된 경축행사때에 있은 아동단원들의 사열식과 연예공연 그리고 《조국을 찾기 위한 빛나는 투쟁》이라는 제목으로 된 강연은 군민의 한결같은 절찬을 받았다.
일신상의 모진 슬픔을 가슴속에 묻어두시고 잠시의 휴식도 없이 오직 혁명사업에 전념하시는 녀사를 두고 사람들은 《혁명을 위해 이 세상에 태여난 사람》이라고 말하였다.
이처럼 유격근거지를 튼튼히 꾸리고 사수하기 위한 투쟁의 나날 김정숙녀사께서는 10대의 어리신 나이에 벌써 훌륭한 청년전위, 뛰여난 정치활동가, 미래의 녀장군으로서의 풍모를 남김없이 보여주시였다.
유격근거지를 튼튼히 꾸리고 사수하기 위한 투쟁에서 발휘하신 김정숙녀사의 끝없는 헌신성과 고결한 혁명가적품성, 높은 군사적자질은 자신을 혁명의 길에 내세워주신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님에 대한 다함없는 존경과 흠모, 수령님께서 이끄시는 혁명의 한길에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시려는 숭고한 인생관에 바탕을 두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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