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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는 동지애가 부족해 쪼그라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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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2,761회 작성일 17-04-03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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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는 동지애가 부족해 쪼그라들고 있다.

작성자 편집국 17-04-03 07:06 댓글0건

진보는 동지애가 부족해 쪼그라들고 있다.

 

2017년 4월 2일글쓴이 : 우리사회연구소 

 

 

온 국민의 촛불투쟁으로 박근혜 정권을 탄핵시켰다. 박근혜가 서울구치소에 구속수감되면서 대한민국을 유신으로 되돌리려던 박근혜 정권은 사실상 종언을 고하였다. 우리 국민들의 촛불투쟁은 이제 부역자 처벌과 적폐청산의 목소리를 높이며 민주회복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역사의 격동기에 진보진영의 모습은 아쉽기 그지없다. 지금껏 한국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였으며 각종 진보적 의제로 사회변화에 크게 기여하였던 진보진영이 정작 중대한 사회변화의 이 시기에 사분오열로 흩어져 정국의 중요한 역할을 전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진보진영이 전략적으로 단결하지 못하고 분열하였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진보운동은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누구의 논리가 맞는가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 진보운동은 사람이 하는 일이며 사람의 힘을 모으는 것이 핵심이다. 돈과 권력의 뒤를 쫓는 보수정치는 기득권의 힘에 기대어, 그들의 돈과 권력에 기대어 ‘편안하게’ 정치할 수 있다. 그러나 기득권에 맞서 서민의 권리를 쟁취하려는 진보정치는 절대로 보수정치의 흉내를 내면 안 된다. 진보정치는 무엇보다 사람의 힘을 믿고 동지적 단결을 통해 경쟁력을 만들어 내야 한다.

 

사람은 이성과 더불어 감정을 가진 사회적 존재이다. 논리적 증명에만 매달려서는 동지적 단결은 평생가도 실현될 수 없다. 동지적으로 단결하려면 동지애가 필수적 요소이다.

 

진보정치는 동지애가 있으면 아무것도 없는 엄동설한의 칼바람에서도 정권의 기틀을 형성할 수 있지만, 동지애가 없으면 그 어떤 대중적 조건에도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다.

 

일본공산당의 사례가 그를 잘 설명해줄 수 있다고 본다.

 

1945년 일제가 패망하면서 일본좌익운동이 사회주의 정권을 수립할 수 있는 좋은 조건들이 형성되었다. 국민들은 군국주의의 망령에 몸서리쳤으며 모욕적인 미국의 군정통치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외적으로 보아도 인접한 조선노동당이 북한정권을 세우고 중국공산당이 국공내전에서 승리하면서 일본의 좌익운동도 정권쟁취로 나아갈 가능성을 부인할수 없었다.

 

그러나 일본공산당은 1922년에 창당해 상당한 역사를 가졌지만 끊임없이 분열하면서 정치대열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최근 일본공산당이 지역풀뿌리운동을 통해 다소간 세력을 형성하는 모습이 있지만, 독점재벌을 타파하고 사회주의 정권을 세우겠다는 공산당의 본래 노선보다는 지역시민단체의 성격이 두드러진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일본공산당은 어떻게 분열하였나.

 

첫 번째 갈등은 1950년 1월에 시작된 소감파와 국제파의 갈등이었다. 당시 일본공산당의 노사카 신조는 미국이 천황체제를 접수하였다며 “미 점령군은 해방군이며 대미 평화노선”을 밝혔다. 이에 코민테른(국제공산당)은 1950년 1월 <프라다>에 “일본정세에 대하여”란 글을 발표하며 일본공산당을 비판하기에 이르렀다. 일본공산당은 미국을 제국주의로 지칭하지 않으면서 미국과 싸우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일본공산당이 미군정 아래에서 혁명을 잘못하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코민테른의 비판이 나오자 노사카 신조는 ‘소감성명’을 발표하며 코민테른의 지적사항은 이미 해결되었다고 밝혔다. 이들을 소감파라고 한다. 그러나 미야모토 겐지를 비롯한 세력은 국제파를 형성해 소감파의 입장을 비판하며 반미투쟁에 나설 것을 요구하였다.

 

두 번째 갈등은 1952년, 미군정이 종식된 후였다. 당시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때라서 일본공산당은 적극적인 반전평화운동을 통해 대중적 지지를 형성할 수 있었다. 당시 적극적인 반전평화운동에 나섰던 이들은 대다수가 조선인들이었다고 하며 이들은 이후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을 결성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일본공산당은 1952년에 시골에서 유격구를 형성하는 무장투쟁을 추구하다 대다수 조직을 모두 노출시켰다. 오히려 일본공산당 내부에 스파이가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일본공산당은 총점검운동을 벌이게 되었다. 이러한 총점검운동은 공산당을 강화하기 위해 스파이를 가려낸다는 논리로 자행되었지만, 동지가 동지를 의심하고 동지가 동지를 고발하면서 일본공산당의 단결력을 와해시키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세 번째 갈등은 폭력혁명에 실패한 일본공산당이 갑작스럽게 노선을 대중운동으로 전환하여 발생하였다. 당시 일본공산당은 구조개혁파와 전학련이 갈등하였는데 구조개혁파는 일본은 후진자본주의 국가로, 미 식민지 종속을 해결한 후에 자본주의 타도가 가능하다는 2단계 혁명론을 주장하였다. 이에 전학련은 일본은 레닌의 제국주의 지표를 충족하기 때문에 일본은 제국주의라고 주장하면서 과감한 폭력운동을 주장하며 대립하였다.

 

급기야 1958년, 전학련은 일본공산당이 비정치적 활동만 한다고 비판하면서 공산당을 탈당하였다. 이들은 1970년, 미일안보협약을 반대하는 신안보투쟁에서 폭력시위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대중과의 사업에 소홀하여 대중들로부터 고립되었다. 이들을 신좌파운동이라 부르는데 이들의 패배 이후 일본좌익운동은 풀뿌리-지역운동으로 정착되고 말았다.

 

네 번째, 반핵운동에 있어서도 일본은 분열하였다. 1954년 비키니 환초에서 미국이 수폭실험을 하였을 때, 남태평양에서 조업중인 일본어민들이 피폭당하면서 일본사회에서 반핵여론이 들끓었다. 당시 원수폭 금지 일본협의회(원수협)는 일본공산당이 주도하며 일본사회 각지에서 무려 2천만명의 서명을 이끌어내는 등 대중적인 반핵운동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이들은 사회당 계열 인사들과 갈등하였다. 1963년부터 일본공산당이 사회주의 형제국으로 보는 소련과 중국의 핵무장을 두고 분열한 것이다. 소련과 중국의 핵무장도 반대하는 사회당 계열 인사들은 1965년 원수폭금지일본국민회의를 결성해 원수협과 대립하였으며 이들은 헬싱키 세계평화대회에서 싸움을 벌이기에 이른다.

 

애당초 일본공산당은 의견이 다른 동지들을 설득하려는 노력보다 일방적으로 제명하는 ‘제명파동’을 반복하며 제 살을 깎아먹었다. 1956년 후르시초프가 스탈린을 비판하자 일본공산당은 미봉적인 수정강령을 제시하였는데 수정강령에 반대하는 중앙위원 10명을 당에서 일방적으로 제명시켰다. 1964년에는 중국이 핵실험을 하자 시가 요시오 등은 중국의 핵보유를 부분적으로 찬성하다가 공산당에서 제명당하였다. 중소분쟁의 경우에도 일본공산당은 처음에는 중국의 입장에 서려 하였지만 중국공산당이 소련에 대한 비판이 약하다고 지적하자 이번에는 중국을 비판하며 갈등을 겪었다.

일본공산당의 과거사에는 동지애를 찾아볼 수 없었다. 이처럼 동지애가 없는 단결은 모래알로 쌓은 성에 불과하다.

 

일본 공산당의 교훈을 현 진보진영에 비춰보면 어떨까. 사방팔방에서 ‘동지’라는 이름은 난무하지만 자파중심적 사고방식이 난무하고 있다. 애정이 없는, 복제된 컴퓨터 로봇 같은 주장에 국민들이 애정을 줄리 만무하다. 

 

이러다간 정말로 지금 촛불의 민심을 받들지 못하고 진보운동이 사분오열될까 우려된다. 혹여나 촛불투쟁이 사그라져 정권교체가 미완에 그치기라도 한다면 그 때는 또 누구 책임이냐를 두고 책임공방을 벌일까 걱정되는 것은 기우일까? 어쩌면 역사는 지금의 진보운동을 동지애가 없이 오직 자기세력이 제일 잘났다고 사분오열하다 함께 망해버린 ‘공멸세대’라고 칭할 지도 모른다.

 

진보를 끝내 갈라놓을 것인가. 공동의 목소리를 중시할 것인가. 선택은 온전히 진보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달려 있다.<끝>

 

[출처: 우리사회연구소]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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봇짐신사님의 댓글

봇짐신사 작성일

세상을 보는 시각과 인식, 그리고 인생관/가치관이 다른 사람들과
동일한 목적의 일을 수행하기란 매우 어렵다.

하고자 하는 바 일에 대한 시각이 다른 사람들 사이에 진지한 동지애가
형성될 수 있겠는가.  동지애의 부족이라기 보다는 같은 뜻을 가진 인원의
수가 실질적으로 작은 이유인 것으로 보아야 한다.

특히나 정치 사상과 연관된 업무는 거의 불가능하다 볼 수 있다.

그룹의 단결은 결국 같은 동아리내 세력 중에서 상대적으로 힘이 큰
세력의 긍정적 아량과 포용력에 오직 좌우될 수 있는 일이다.

따라서 집합군내 력량을 결집시키고자 한다면, 스스로의 힘을 키우고
세를 넓히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후에 쳐내어 정리할 세력과 함께할 세력을 구분하는 일은 순전히
그들 스스로 의사에 근거한 전략적 판단에 의거하게 될 뿐이며..

이런 과정을 두고서..진보나 보수의 약점이니 폐악이니 망하는 길이니
하는 것은 모두가 말의 유희가 될 뿐이다. 

동아리 내에서, 오직 무소의 뿔처럼 꾸준히 밀고나가는 자세가 중요하다.
내쳐지면 다시 또 시작하면 되며.. 언젠가는 주도하는 시기가 오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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