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여인의 제안으로 소학교부터 대학교까지 국가에서 교복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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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변녀인의 소박한 말을 들으시고
주체46(1957)년 4월 평양에서는 전국녀성열성자회의가 열리였다.
회의가 끝난 다음날 몇몇 녀성일군들을 부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께서는 이번에 진행된 전국녀성열성자회의의 목적과 의의에 대하여 말씀해주신 다음 동무들이 녀맹사업에서나 생활하는 과정에서 애로되는 점이 있으면 제기하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들이 애로되는것이 없다고 말씀드리자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왜 애로되는것이 없겠는가고 하시면서 어려워하지 말고 허물없이 다 말하라고 거듭 이르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의 한없이 다심한 인정미에 끌려 녀성일군들은 어려움도 잊고 자신들의 사업과 생활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두서없이 제기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강원도 안변군 남계리녀맹위원장이 일어나 어버이수령님께 이렇게 말씀드리였다.
《지금은 정전직후보다 옷감도 많이 나오고 농민들의 생활도 향상되여 아이들에게 좋은 옷을 해입힐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각기 옷을 해입히다보니 겉보기가 달라서 단체로 행동할 때 학생맛이 안납니다.》
그 녀성의 소박한 말에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대뜸 반색을 하시면서 《아주 좋은 의견이요. 바로 이러한 문제들을 제기해야 하오.》라고 하시며 수첩에 적으시는것이였다.
잠시후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아직 나라사정이 곤난하여 모든 아이들을 다 해입히지는 못해도 소학교학생들까지는 국가에서 교복을 만들어주는것이 어떤가고 곁에 앉은 일군들과 의논하시였다.
모두 그렇게 하는것이 좋겠다고 하자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국가에서 만들어주자고, 금년에는 안되겠지만 명년부터는 꼭 해결하자고 말씀하시였다.
이렇게 되여 다음해인 주체47(1958)년부터 전국의 모든 소학교학생들에게 나라에서 교복을 해입히는 체계가 서게 되였으며 그후 점차 중학교, 대학생들에게까지 확대되여 수십여년이 흐른 오늘도 그 시책이 변함없이 이어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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