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7은 조선의 전승절이다] 이준무
페이지 정보
본문
[7.27은 조선의 전승절이다]
평양에서 열렸던 “30차 사월의 봄 예술축전”에 참가하는 동안 시간을 내어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전승기념관)을 찾아보게 되었다. 그 전에도 몇번 와 본적이 있었지만 이번에 와서 체함한 감동은,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컸다. 이 작은나라의 절반밖에 되지 않은 조선이, 세계 최강이라고 자부하는 제국주의 미국을 타승한 역사의 현장에서 느끼는 긍지는 걷잡을 수 없었다.
대전(大田)관이라는 전시관에 들어 섰을 때의 일이다.
입체적으로 전쟁 때의 상황을 재현해 놓은 것도 대단했지만, 예술적으로도 그 진가를 가늠하기 힘든 거창한 작품이었다. 미국과, 유엔의 깃발로 위장한 15개 추종국가들을 몰아내기 위하여 조선은 얼마나 피어린 투쟁을 하였고 얼마나 많은 희생으로 나라를 사수했던가를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무엇때문에 침략자들에 맞서 피를 흘렸고, 무엇 때문에 귀중한 청춘을 서슴없이 불길 속에 던졌던가라는 명제들에 대해 생각을 하게 해주었던 순간이었다.
붙잡혀 포로가 된 미제 침략군 사령관의 별 두개가 뚜렷한 투구와 제 2차 세계대전 때 유럽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는 미군 제2사단의 빛 바랜 사단 기를 보느라 정신이 팔려 있을때, 대전전투가 세계전쟁사에 유례가 없는 크나큰 승리라고 강조하는 해설강사의 말이 뇌성처럼 들려왔다.
혁명시인 전동우는 조국을 다음과 같이 노래 하였다.
“아~ 내 고향 푸른들 한줌의 흙이 목숨보다 귀중하고, 들꽃피는 고향의 그 언덕이 둘도 없는 조국”이라 하였다. 그리고 시인은 어머니라 부르는 조국이 다름아닌 “장군님의 그 품”이라는 사실을 피를 토하듯 강조하고 또 강조하였다.
지금도 1950년 6월 25일에 일어났던 조선(한국)전쟁은, 지칭하는 이름에서 조차도 남과 북은 판이한 인식의 차이를 보인다. 6.25전쟁을 조국해방전쟁이라 부르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견해와 북(조선)의 남침으로 가련했던 자기들의 운명을 미국이 구원해 주었다는 <대한민국>의 역사관이 자주(북)와 예속(남)으로 달라져 있는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주체사관과 식민사관을 비교라도 하듯이 말이다.
이북에서는 6.25전쟁을 ‘조국땅에 기어든 침략자들을 몰아내고 인민들에게 진정한 조국의 해방을 안겨주자’라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이남(한)은 ‘남침이냐 북침이냐를 놓고 엉뚱하게 시간을 허비하며 본질을 호도하려고만 하고 있다. 제국주의 침략전쟁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도록 교묘하게 시야를 가려놓고 있지만 그 엄연한 진실을 어떻게 가리울 수 있으랴!
7.27은 조선이 승리한 전승기념일이다
정전협정 조인 당사자인 미군참모총장이자 유엔군 총사령관이었던 클라크는 정전 직후 미국의 국회에서 다음과 같이 의미심장한 귀국보고를 하였다. “조선은 초토화되어 석기시대로 돌아갔다. 앞으로 한 세기 정도는 다시 문명사회를 일굴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본관은 미국군대를 이끌고 전쟁에 나아가서 이기지 못하고 돌아온 미국 역사상 첫 번째 장군이 되었다.”고 술회 하였다.
지금도 미국은 그때 당한 참패의 분함을 참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다시 한번 붙어보자는 심산인지 미국은 남(한)과 해마다 북침핵전쟁훈련을 광란적으로 벌이고 있다. 전쟁이 다시 일어난다면 미국은 자기들의 승리를 보장할 수 있을까? 대답은 ‘NO’다. 이것은 군사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지금은 북(조선)도 미국을 소총으로 대적하지 않는다. 김정은위원장의 영도를 받는 핵으로 무장된 천하무적의 조선인민군첨단전략군은 핵전쟁이든 싸이버전이건 그 어떤 형태의 전쟁에도 상대해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호언한다. 만약 조금이라도 전쟁의 불집을 터트리게 된다면 항복서에 도장을 찍을 놈도 없이 쓸어버리겠다고 하지 않은가? 적들은 이 말을 절대 흘려듣지 말아야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나의 기고문 중에서]
- 이전글현정권하에 간첩을 만드는 괴물들아! (홍성규) 17.07.25
- 다음글앵무새작전 (김웅진) 17.07.24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