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한 군대: 박찬주현상의 기원 (김주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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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주 현상의 기원
70년대에 군 생활했던 나에겐 박찬주 대장의 공관병 이야기가 보도가 되고 공론의 장으로 나와 비판을 받고 있다는 자체가 신기하다. 70년대만 하더라도 꿈도 못 꿀 일이다. 해방된지 30년쯤 지난 시절이었는데 군대 내의 부패와 부조리는 일상화 되어 있었다.
부대가 주둔하는 섬에는 당시 탱크와 발전용 자동차용 등의 군용 기름이 드럼통에 담겨져 인천부두에서 배로 수송되는데, 아예 인천에서 트럭채로 기름을 빼돌려 그 돈을 나누어먹었다. 그래서 유류저장고 담당은 제대하면서 인천에 집을 한 채 또는 두 채 마련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또 부식으로 나오는 통닭들은 병사들에게 가기 전에 먼저 부대 밖에서 보급담당 선임하사가 물색해놓은 사람에게 빼돌려지고 남은 것이 부대로 들어간다. 팔아서 돈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용을 아는 주계병들은 그것을 '삐약이 엄마가 웃통벗고 철조망 넘어 도망갔다!'고 표현했다.
또 부대에 들어가서도 주방장에 의해 부대장 이하 간부들 회식용으로 빼돌리고 남는 것을 요리해서 배식하기 때문에 규정상 정해놓은 양의 반 정도가 병사들에게 돌아갈 정도였다.
70년대가 그 정도였다면 60년대는 실제로 병사들에게 배급될 쌀부터 반 정도만 배급되고 말아 젊은 병사들을 거의 굶겼다. 그래서 짬밥통에 손을 넣어서 건더기를 입에 넣는 일들이 벌어진 것이다.
더 구차한 것은 부대안에서 생활하는 중대장 등 장교와 고급부사관들은 병사들에게 나온 치약이나 치솔까지도 챙겨서 공관으로 가져간다는 것이다.
나는 전에도 글을 올렸지만 중대장 당번실에 근무하면서 한 달에 두 번 새벽 2시 경 쌀가마니를 지고 부대가 있던 산에서 2킬로미터 떨어진 중대장 공관까지 날랐던 경험이 여러번 있다.
새벽에 쌀가마니를 어깨에 매고 헌병대와 공동묘지 귀신들을 피해서 집에 가져다 줘도 방문도 안 열어보고 물 한컵 안 주며 내다보지도 않고 그냥 놓고 가라는 그 아내가 박찬주의 아내와 같은 심성일 것이다. 심지어 대문도 안 열어줘서 담을 넘어가서 쌀가마니를 마루에 놓고 오곤 했었다.
이러니 국방비는 창군 이래 지금까지 계속해서 끊임없이 줄줄 새고 있었다. 우리나라 부패의 원천이 군대다.
가장 비인간적인 부패사건은 이승만의 심복들이 저지른 '국민방위군사건'이었다. 1950년 초겨울 서울 등 수도권에서 징집된 장병들을 대구와 부산 등의 후방으로 이동시키는데, 걸어서 가도록하면서 먹을 식량과 겨울 옷 그리고 담요를 이승만의 심복인 국민방위군 사령관과 그 참모들이 거의 전부 빼돌려서 팔아먹은 사건이다.
그때문에 수만명의 장정들이 훈련을 받기도 전 행군 중에 길가에서 얼어죽고 굶어죽었다. 20세기 최대의 부패사건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지러고도 이승만은 10년을 더 집권했었다.
우리 사회 부패의 기원은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 식민지 시기 일본군 하에서 군생활을 하고 해방 후 우리 군의 간부가 된 사람들에게 있을 것이다.
그들은 우리사회에 획일적인 조직문화를 형성하고 부패하는 방식을 퍼뜨린 사람들이다. mbc에서 흔히 방송하던 진짜사나이 같은 프로그램은 그런 획일적인 군대문화 현상이 지금까지도 한국인들의 머리 속에 남아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왜 멀쩡한 여자 연예인들까지 군대훈련을 받으며 고생하는 걸 재미있게 보도록 만드는지 이해가 안 간다.
문제는 군대가 행정시스템이나 기술 등 우리 사회보다 먼저 서양식 제도를 받아들이면서 각종 부패현상도 가장 먼저 나타났으며 그 시스템하에서 몇년씩 생활했던 한국의 남자들이 제대 후 그 부패구조를 사회에 고스란히 옮겨심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부패공화국이 되는데 군대조직은 일등공신이다. 박찬주현상은 그런 문화를 당연시 했던 전통이 만들어낸 하나의 현상이다. 장담하건데 현재 그 비슷한 일이 우리 군 내에 수 백 수 천건이 더 있을 것이다. 박찬주 대장 사건은 부조리와 부패 두 가지 관점에서 봐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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