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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혁명박물관》에 담긴 발자취들 (민족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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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4,854회 작성일 17-09-01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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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북75-19신]《조선혁명박물관》에 담긴 발자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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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만수대 언덕 선대영도자들 동상 뒤가 <조선혁명박물관>

민족통신 노길남특파원은  이번 75번째 방북취재 기간에 조선혁명박물관 참관했다그는 박물관은 만수대 언덕에 자리한 김일성주석과 김정일국방위원장의 동상이 세워진 바로 뒤에 있는 지하1층과 3층으로 되어 있는 대형건물이다. 1층에는 항일무장투쟁시기관 조국건설 시기관조국해방전쟁 시기관사회주의기초 건설시기관이 있고, 2층에는 사회주의 전면적건설시기관, 3대혁명심화 전시관온사회의 주체사상화 전시관사회주의 옹호고수시기관고난의 행군강행 시기관, 3층에 수령님들과 전우관이 있고지하층에는 조국통일관과 해외동포관이 위치하고 있다.” 설명하면서 이곳에 있는 이모저모 자료들을 밝혀주었다.[민족통신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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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북75-19] 


 《조선혁명박물관》에 담긴 조선발자취


 

[평양=민족통신 노길남특파원] 조선혁명박물관 들어가면 남녘동포들이나 남녘출신의 해외동포들에게는 처음보는 자료들을 접하게 된다 박물관에 소장된 자료들을 통하여 역사의진실들을 발견하게 된다항일투쟁시기에 우리민조그이 어느 세력이 진정으로 일제를 타도하기위하여 반일항일투쟁을 하여 왔는가를 알게 되고 중국혁명을 이끌어  모택동 세력이 조선에의해 지원을 받아 혁명에 승리하였는가를 시사해주는 역사도  박물관에 담겨있다그리고 조국분단의 주범들이 누구이며 진정한 우리민족의 애국세력들이 누구인가도 극명하게 보여주는귀중한 역사적 자료들이 보물처럼 간직되어 있다.

 

기자는  이번 75번째 방북취재 기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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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기자는  이번 75번째 방북취재 기간에 《조선혁명박물관》을 참관했다. 이 박물관은 만수대 언덕에 자리한 김일성주석과 김정일국방위원장의 동상이 세워진 바로 뒤에 있는 지하1층과 3층으로되어 있는 대형건물이다. 1층에는 항일무장투쟁시기관, 새 조국건설 시기관, 조국해방전쟁 시기관, 사회주의기초 건설시기관이 있고, 2층에는 사회주의 전면적 건설시기관, 3대혁명심화 전시관, 온사회의 주체사상화 전시관, 사회주의 옹호고수시기관, 고난의 행군강행 시기관, 3층에 수령님들과 전우관이 있고, 지하층에는 조국통일관과 해외동포관이 위치하고 있다. 이곳 1층, 2층, 3층과 지하층에는 총 13개관이 있다.



《조선혁명박물관》은 1948년 개관되었지만 당시에는 총론실과 전시실 93개 및 부대시설이 있었지만 1972년 4월 60번째 태양절을 맞아 현재의 위치로 옮겨 개관디었다. 박물관 정면에는 백두산을 소재로 한 가로 70메터, 높이 12.85메터의 대형 벽화가 그려져 있다. 이 박물관은 1991년 2월에 김정일 국방위원장 50번째 탄생일을 맞아 증설개건되었다가 2017년에 다시 현대적으로 개건되어 연건평 6만350여 평방메터에 달하는 개건증축공사가 진행되었고, 금년 3월28일 김정은 최고영도자께서 현지지도한 내용이 북언론에 보도된바 있었다.

 
《조선혁명박물관》은  우리민족의 역사의 진실들을 담아 놓은 민족역사 보고이기도 한다. 이 곳에는 남녘동포들이나 남녘출신 해외동포들이 처음보는 자료들이 수두룩하게 쌓여 있다. 조국이분단된 이후 남측 당국이 왜 북측에 대한 진실을 꺼려하여 왔는지도 알수 있다. 남측 사회에 왜국가보안법이 존재하여 왔는가도 알 수 있다. 남측 동포들이 왜 북측사회에 대하여 깜깜한가에대해서도 알 수 있다. 민족주의자인 김구선생이나 려운형선생이 남측의 정치지도자가 되지 못하고 왜 암살당해야만 했는지?  그리고 친미사대주의자인 이승만이가 초대대통령으로 앉아 미국의 하수인으로 역할하게 된 그 배경이 무엇인지도 알수 있다.



https://youtu.be/MHvSiJe8Kf0





 

<고난의 행군강행 시기관>



 

기자는 또한 《조선혁명박물관》을 참관하면서 김정일국방위원장 시대인 최고인민회의 제10기제1차회의(1998.9.5)를 통해 김일성주석을 영원한 주석으로 모신 후대들의  초대 지도자에 대한 뜨거운 마음을 헌법으로 제정한 역사적 계기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유훈정치가 왜 차질없이 착오없이 계승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유지되어 갈 것인가에 대한 그 토대들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선대영도자께서 서거하자 혁명을 계승하는 입장을 맞이한 1994년 가을 김정일 국방위원장께서는 그 해 11월1일 <사회주의는 과학이다>라는 노작을 발표했다. 그리고 그분은  이듬해인 1995년 1월1일 다박솔초소를 현지지도하며 선군정치의 기치를 높이들고 새해를 맞이했다. 그러나설상가상으로 한세기에 한번 올까말까하는 큰물피해를 맞아 경작지 75%나 되는 땅이 파괴되는피해를 입었고, 같은 시기에 소련이 붕괴되고 그 위성국들이 줄줄이 붕괴되어 무역대상국들이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었고, 미국은 대조선고립압살정책을 한층 더 강화하는 자세를 보이고있었다.



 

조선의 당면한 위기를 바라보며 미국과 그 추종나라들은 3개월을 못넘긴다. 3년을 못넘긴다고붕괴설을 내돌리고 있었지만 조선의 위상은 흔들리지 않고 앞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자강도 강계정신(1998.1.17)이 나오고 성진 제강소에 천리마대고조(1998.3.9)의 바람이 불었고, 대홍단에 감자혁명농사의 바람이 면서전기 생산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파괴된 경작지들은 토지정리사업에 의해 확장되어 갔고, 자연흐름식 물길공사들이 양곡을 위한 농사를 발전시키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대규모 수력발전소들도 일떠 섰지만 크고 작은 중소 발전소들도 증가했다.



 

 당시 김정일국방위원장은 “나라의 경제를 한꺼번에 추켜세울 생각을 하지 말고 개미가 뼈다귀를 야금야금 뜯어 먹는 전술로 결제사업을 하나 하나 개선해 나가야 합니다.”라고 지침을 준 것도 1998년이었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도 CNC를 위해 먹을 것을 줄이고 첨단과학에 투자한 지도자가 바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었다. 로동신문 송미란기자가 쓴 “최첨단 돌파하라”는 정론도 이 시기에 나왔다. 그리고 밖에서는 조선이 망한다고 비아냥 댔지만 조선은 1998년 8월31일 역사적인 인공지구위성 ‘광명성1호’를 창공에 날려 세계를 놀라게 했다. 김정일시대는 그 이후 조선의 첨단과학기술을 꾸준히 발전시켜 고난의 행군을 극복하는데 크게 기여해 온 시기로 아로새겨졌다.  그연장선상에서 김정일국방위원장은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대통령과 손잡고 6.15시대와 10.4평화번영 시대를 열어 놓았다.



 

하지만 조선은 2011년 12월17일  또다른 국상을 맞게 되었다.  조선은 설상가상으로 이명박정권과 박근혜정권에 의한 최악의 남북관계 정국을 맞이하게 되었고, 미국이 자행해 온 최악의 대조선적대시정책에 부딪치게 되었다.  지난 5년이상 지속된 김정은 시대는 매년 조미대결전으로조선은 미국과의 대결전에서 그 어느 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대결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해외동포관>



 

 기자는 <해외동포관>을 참관하면서도 느낀점들이 많았다. 항일투쟁시기 중국 동북3성에서 활동한 우리민족 성원들과 조선족들에 관한 자료들과 8.15해방정국을 맞아 통일을 위해 노력해온 재일동포들의 활약상, 특히 한덕수 선생, 서만술 선생, 허정만 선생 등이 이끌어 온  재일총련 조직의  발자취들은 참으로 놀랄만하였다. 세상에 이렇게 강한 조직은 없을 것이다.



 

해방직후인 1949년 3월의 동북3성에 있던 조선학교들 가운데 소학교는 1,500개(교원5,500명,학생수 18만명) 정도 되었고, 중학교는 학교수가 70개이고 교원이 550명이고, 학생수가 16,700명정도 되었다. 그 당시 일본에 있는 재일총련 학교수는 약 600여개가 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재일총련 자료중에는  1959년 제1차 귀국선을 타고 북녘으로 온 재일동포들이 975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만경봉92>에 의해 1992년 29차례에 걸쳐 11,470명이 조선으로 귀국하였고, 1996년에 30차례에 걸쳐 11,895명, 그리고 그 이후 10년동안 총326차례에 걸쳐 총 122,702명이 북조선으로 귀국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해외동포관>을 참관하노라면 세상에 재일총련 같은 강한 조직이 또 있을까라고 자문하게 된다. 이들 재일동포들은 대부분(97%)이 남녘출신들인데 북녘, 즉 조선을 조국으로 선택하고 조선공민으로서 일본에서 살고 있으면서 일본지배세력과 일본의 극우세력과 수십년 투쟁하여 왔다. 한편 같은 동족이지만 민단조직 상층부는 남녘 당국의 어용세력으로 재일총련 활동을 반대하여 온 반민족 사대매국 세력으로 비판받아 왔다.



 

<해외동포관>에는 재미동포들과 카나다 동포, 러시아 동포도 눈에 띄었다. 김일성주석을 만난 김성락목사가 1981년 7월3일 기념촬영한 사진 ,  최홍희선생이 1985년 5월28일 기념촬영한사진, 손원태 선생이 1992년 4월22일 기념촬영한 사진,  그리고 김정일국방위원장과 만나 기념촬영한 문명자 선생(2006.6.30), 러시아 동포 정일심 여사(남편 안동수 선생-105류경수 땅크사단 소속)의 사진 등이 보였다.

 

 

 

<조국통일관>

 

 

<조국통일관>에 속한 6개방에는 1948년 4월21일 남북연석회의에 관련된 사진들과 자료들이 소장된 방이 눈길을 끌었다.  여기에는 민족분단의 장본인을 미제국주의자로 규정했다.  국내외 동포들과 해외동포들에게 익숙한 얼굴들과 관련 자료들이 많이 보였다.



 

김일성주석과 기념촬영한 문익환목사(1989.4.1)를 비롯하여 리인모 선생(1993.4.15), 문선명목사(1991.12.6), 남녘 언론사 50여명의 대표들(2000.8.12),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난 현정은현대회장(2009.8.16) 등 각계 인물들이 눈에 띄었다.



특히 통일운동과 관련한 해외동포들 가운데에는 재일한통련 곽동의 선생을 비롯하여 유럽의 임민식 선생 등의 업적들이 반영된 범민련 통일운동과 6.15공동선언 추진운동 등의 발자취들도 여기저기에 반영되어 있었다. 재미동포 홍동근 목사의 통일운동 업적을 반영하는 사진도 발견되었고, 카나다동포, 재일동포, 재중동포 등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지만 통일의 한길에 바쳐 온 인물들의 업적들을 반영하는 자료들도 많이 발견되었다.



 

1972년 7월4일 7.4남북공동성명 관련 자료와 사진들을 포함하여 남북연방제(1980.10.10) 관련자료들, 1984년 9월28일에 북측에서 남녘 수해지역 지원 보도들(쌀5만석, 옷감 및 세멘트 10만톤, 의학품 등 759지함 등)도 보였고, 남북통일 관계 관련 사진들과 자료들이 각방마다 전시해놓았다.



 

기자는 <조국통일관>을 참관하고 나오면서 느끼는 감회도 많았다.



 

 분단70여년 동안 조국의 자주적 통일을 위해 노력해 온 것은 오로지 북부조국이었다는 사실들을 숨길 수 없다.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대부분 통일제안들을 북측에서 해 왔고, 통일관련 행사들도 북부조국에서 성과 열의를 다해 준비해 주었고, 조국통일의 방법론에서도 북부조국은 언제나 우리민족끼리 손잡는 통일을 강조해 왔는데 남측 당국은 언제나 미국과 그 추종나라들에 의존하려는 자세를 보여왔다.



 

다시말하면 진정으로 통일을 바라고 원하는 측은 북조선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남측 당국은 미국의 간섭과 지배하에서 있기 때문에 북측과 손잡고 싶어도 미국 지배세력에 눈치를 봐야하는 노예의 처지에 있기 때문에 남측 당국이 미국당국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은 국내외 동포들 대부분이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북관계 개선과 남북화해협력을 가능하게 하는 첩경은 남측이 무엇보다 미국의 지배와 간섭의 굴레에서 탈피하여야 한다고또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 문재인 정부의 처지도 촛불에 의해 탄생된 정권이지만 이 정부가 자기 스스로 결정할 수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싸드문제도 국민들 대부분이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입장에서 싸드를 설치해야 하는 입장에 있어 중국과의 관계가 난처한 상황이다. 무역적자가 태산같은데도 문재인정부는 싸드를 미국의 뜻에 의해 남녘땅에 들여다 놓아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입장에 있어이를 바라보는 촛불민심도 비판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조국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방법은 간단하다. 문재인정부가 미국을 향해 “대북적대시 정책을 그만두고 북미평화관계를 체결하라”고 요구하면 북핵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그렇게말할줄 알아야 조국반도 평화와 안전을 위해 운전석에 앉을 수 있는 자격을 가졌다고 말할 수있다. 문재인 정부가 지금처럼 처신하면 박근혜정권과 조금도 다를바 없다. 오히려 박근혜정권보다 더 교활한 정권으로 취급당할 수 있다.



 

북측은 이미  남측의 강경화 외무부장관을 가리켜 “강경화년”이라고 분노하고 있다. 문재인대통령이나 문재인정부 내각관료들이 이대로 간다면 차기 정권은 물론 현정권에서도 제대로 그임기를 마치지 못할 수 있다.


 

남측당국은 지금 북측 당국이 미국과 최후 결판을 준비중이라는 사실을 똑바로 인식해야 한다.그 결판에서 조선이 승리한다는 것이 과학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하루 속히 북과 손잡고 조국의 자주적 통일을 함께 준비하는 입장과 자세를 갖는 것이 후회하지 않는 올바른 자세라고 강조한다. 지금 국제질서는 이미 미국의 질서에서 조선중심 질서로 전환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수 있어야 한다.



 

두고 보라!



 

 조선은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그때가서 후회하면 때는 늦을 것이다.







 https://youtu.be/qQAheHpRvsw

   



  https://youtu.be/imDdOuYTt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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