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애족으로 빛나는 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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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애족으로 빛나는 한생
오늘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의 증조할아버님이신 김응우선생님의 서거 139돐이 되는 날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증조할아버지는 남의 묘를 봐주는 산당지기였으나 나라와 향토를 열렬히 사랑하는분이였다.》
김응우선생님의 한생은 열렬한 애국애족의 한생이였다.
김응우선생님께서는 평양 중성리(당시)에서 탄생하시여 어리실 때부터 농사일을 하시다가 1860년대에 어느 지주집의 묘지를 보아주기로 하고 만경대로 이사나오시였다.
김응우선생님께서는 만경대에 터전을 잡으신 이후 일가분들과 마을사람들에게 늘 나라가 있어야 백성들이 있다고 하시면서 외래침략자들을 반대하여 싸운 우리 인민의 자랑찬 투쟁력사를 이야기해주군 하시였다.
만경대사람들은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애국심이 남달리 높고 봉건관료배들과 외래침략자들에 대한 항거의 정신이 강하신 김응우선생님을 몹시 존경하고 따랐다.
그러던 1866년 미제침략선 《셔먼》호가 우리 나라의 대동강에 침입하였다는 소식이 만경대에까지 전해지였다.
오래전부터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에 대한 략탈행위를 감행해온 《셔먼》호는 국적도 밝히지 않고 《통상》이요, 《무역》이요 하는 황당한 거짓말을 늘어놓으면서 우리 나라 서해를 거쳐 대동강에까지 기여들었다. 《셔먼》호를 타고 대동강을 거슬러 양각도밑에까지 올라온 미제날강도무리들은 대포와 총을 쏘아대며 사람들을 마구 죽이고 재물을 략탈하였으며 방화를 일삼고 부녀자들까지 겁탈하였다.
미제침략선 《셔먼》호의 날강도행위는 평양성안팎의 전체 인민들을 크게 격분시켰다.
김응우선생님을 선두로 한 만경대마을사람들을 비롯하여 평양성안팎의 많은 사람들이 침략자들을 쳐물리치기 위해 앞을 다투어 대동강기슭으로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침략선이 대동강에 기여든 이후 《셔먼》호의 움직임을 주의깊게 살펴오시던 김응우선생님께서는 불배를 띄워 공격하는 《화공전술》로 침략선을 소멸할데 대한 제안을 내놓으시였다.
김응우선생님의 지도밑에 평양성인민들은 관군과 함께 썰물때를 기다리다가 나무단을 가득 실은 불배를 《셔먼》호쪽으로 띄워보내여 가증스러운 침략선과 적들을 대동강한복판에 수장해버리였다.
김응우선생님의 지도밑에 우리 인민은 《셔먼》호를 흔적도 없이 불살라버림으로써 침략자들을 추호도 용서치 않는 조선민족의 의지와 기개를 남김없이 과시하였다.
미제침략선 《셔먼》호는 당시로서는 발전된 무장함선이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미국의 해외침략력사에는 중무장한 전투함선이 그 어느 나라에서도 격침된적이 없었다.
《셔먼》호가 격침된 후에도 미제침략자들은 배의 행방을 알아본다는 구실밑에 또다시 군함 《쉐난도아》호를 대동강하류에까지 침입시켜 살인, 방화, 략탈을 일삼았다.
이때에도 김응우선생님께서는 만경대와 그 주변인민들로 의병을 조직하고 관군들에게 인민들의 투쟁에 합세해나설것을 호소하심으로써 놈들을 쳐물리치는데서 선봉적역할을 하시였다.
열렬한 애국자이신 김응우선생님은 군사가가 아니시였다. 선생님께서 배우신것은 농사일밖에 없었다.
조국과 겨레를 사랑하는 숭고한 애국애족의 의지, 바로 이것이 김응우선생님으로 하여금 침략자들을 반대하는 투쟁에 모든것을 다 바칠수 있게 한 힘의 원천이였다.
그때로부터 백수십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우리 군대와 인민은 대동강을 반침략투쟁의 불길로 붉게 물들이던 그날의 싸움과 더불어 김응우선생님의 애국의 한생을 영원히 잊지 않고있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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