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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군의 어머니 김정숙녀장군 46. 만경대혁명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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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5,278회 작성일 17-11-21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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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경대혁명학원

 

하늘땅끝에라도

 

유서깊은 혁명의 성지에 자리잡고있는 만경대혁명학원은 백두산위인들의 직접적인 발기와 지도에 의하여 창립된 혁명가유자녀들의 은혜로운 삶의 터전이며 배움의 전당이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조국에 개선하신 직후의 어느날 항일혁명투사들을 만나신 자리에서 광복전에 흩어져 행처도 생사여부도 알수없이 된 전우들의 유가족과 유자녀들을 찾아 우리가 잘 돌보고 잘 키워줘야겠소희생된 동지들은 조국이 광복되면 자기들의 어린 자식들을 공부시켜 혁명가로 키워달라고 하였소나는 어려운 싸움의 나날 어느 한순간에도 그들의 유언을 잊어본적이 없소유가족들과  유자녀들을 남김없이 찾아 잘 돌보고 공부를 잘시켜서 그들이 희생된 혁명선렬들의 뜻을 이어 어엿한 혁명가로 자라나도록 합시다라고 말씀하시였다.

혁명가유자녀들을 나라에서 공부시켜 어엿한 혁명가로 키우는것을 새 조국건설의 중요한 사업의 하나로 내세우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6(1947) 3월에는 만경대혁명학원 창립준비위원회를 결성하시고 몸소 위원장의 사업을 맡아안으시였다그리고 국내외 각지에 항일투사들을 비롯한 수많은 일군들을 파견하시여 유자녀들을 찾아서 평양에 데려오도록 조치를 취하시였다.

혁명동지들에 대한 숭고한 사랑과 혁명적의리를 지니신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녀사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은정깊은 조치를 받아안으시고 희생된 전우들의 유자녀들을 찾는 일에 각별한 관심을 돌리시였으며 그들을 나라의 핵심골간으로 키우기 위하여 모든 정력과 심혈을 다 기울이시였다.

조국의 아름다운 산천을 보시고도 희생된 전우들을 생각하시였고 색다른 음식이 생기여도 풀뿌리를 씹으며 함께 고생하던 투사들 생각에 목이 메여 수저를 들지 못하시는 녀사이시였다.

그럴 때마다 녀사께서는 전우들의 유자녀들을 따뜻이 보살피며 책임지고 잘 키워야 한다고 하신 수령님의 말씀을 가슴뜨거이 되새기시였다.

그러시기에 녀사께서는 부모를 잃고 사방에서 헤매고있을 유자녀들을 하루빨리 데려오시려 연줄을 찾아 밤을 지새우시였고 걸음을 아끼지 않으시였다.

녀사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을 받들고 유자녀들을 찾아떠나는 일군들을 일일이 만나시여 한두번 찾다가 없다고 되돌아서지 말고 이 세상 끝까지 가서라도 기어이 찾아오라고 간곡히 당부하시였다.

주체36(1947) 4월 어느날 얼마동안 회령에 나가 활동하게 된 한 항일투사는 김정숙녀사께 인사를 하러 찾아갔다.

거기에는 다른 항일투사들도 와있었다.

녀사께서는 그를 반갑게 맞아주시며 한창 유자녀들을 찾는 때인것만큼 지방으로 떠나게 되는 투사들에게 어디에 가든 유자녀들을 다 찾아내야 한다고 하시면서 색이 날은 작은 수첩을 품속에서 꺼내드시였다.

녀사께서 주체25(1936)년 초여름 마안산에서 혁명의 피줄기를 이어갈 후비대를 튼튼히 키울데 대한 수령님의 말씀을 받아안은 때로부터 가지고 다니시는 그 수첩에는 간고한 혁명의 길에서 용감히 싸우다가 희생된 전우들의 이름과 나이그들의 집주소와 가족들의 이름지어는 그들의 별명과 얼굴모습의 특징까지 알수 있는껏 하나하나 적혀있었다그 수첩은 한갖 글을 쓰는 책이 아니라 혁명동지에 대한 가장 숭고하고 고결한 사랑의 결정체였다.

총검의 숲을 헤치고 준령을 넘던 조국진군의 길에서도대부대선회작전의 준엄한 투쟁의 로정에서도조국해방의 최후결전의 길에서도 그 수첩은 언제나 김정숙녀사의 품속에 보물처럼 귀중히 간직되여있었다.

녀사께서는 해방후에도 자주 그 수첩을 펼쳐보시며 먼저 간 전우들을 추억하시였고 한지에서 헤매이고있을 유자녀들을 생각하시며 밤잠을 이루지 못하시였다.

그 수첩에 깨알같이 적혀있는 주소들에는 붉은색삼각표식동그라미표식 등 여러가지 표식과 부호들이 씌여있었다.

잠시 수첩을 들여다보시던 녀사께서는 현지에 가면 잊지 말고 이 사람들을 꼭 찾아서 알려달라고 하시며 유가족들의 주소를 알려주시였다.

녀사께서는 한달도 좋고 두달도 좋으니 어떻게 해서든지 꼭 찾아야 한다고 거듭 당부하시였다.

그때로 말하면 녀사께서는 아직 형제분들과 조카의 생사여부조차 알지 못하고계시였다.

투사들은 녀사께 이제는 전우들의 유가족들도 적지 않게 찾았는데 고향땅도 찾아보시고 일가분들의 행처도 알아보셔야 하지 않겠는가고 말씀드렸다.

한 일군도 유자녀들과 유가족들은 자기들이 책임지고 다 찾겠으니 이제는 부디 고향에도 다녀오시고 혈육들도 찾아보시라고 간곡하게 말씀드렸다.

《저를 생각해주는 마음들은 고마와요그러나 장군님께서 유자녀들때문에 한시도 마음놓지 못하시는데 제가 어찌 자기 친척부터 먼저 찾겠습니까?

저는 유가족들을 다 찾아 장군님께 기쁨을 드린 다음에 고향에도 가보고 일가친척도 찾겠습니다.

혈육들을 찾고싶은 마음이 누구보다 간절하시건만 녀사께서는 희생된 전우들의 자식들을 찾는 일을 그앞에 놓으시였다.

주체36(1947)년 여름 한 항일투사가 동만으로 들어가게 되였을 때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가 떠나기에 앞서 새로운 임무를 주시면서 동만에 들어가면 희생된 혁명렬사들의 유가족들과 유자녀들을 모두 찾아 내보내야 하겠다고 가르치시였다.

이리하여 그는 넓으나넓은 동만땅에 흩어져있고 생사여부도 모르는 유자녀들을 찾아야 할 어려운 과업을 맡고 길을 떠나게 되였다.

녀사께서는 길떠나는 그를 만나시여 장군님께서는 어제저녁에도 희생된 전우들의 유가족과 유자녀들을 생각할 때면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간리에 있는 학원림시교사를 하루라도 앞당겨 꾸리고 유자녀들을 모두 찾아다 공부시켜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고그들을 하늘땅 끝에라도 가서 찾아내겠다는 각오를 가지면 꼭 성과를 거둘거라고 말씀하시였다.

하늘땅 끝에 가서라도 유자녀들을 찾아 어엿한 혁명가로 키우시려는 위대한 수령님과 녀사의 이렇듯 고결한 혁명적의리에 떠받들려 1947년 여름에 들어서면서 먼 이국땅과 조국의 방방곡곡에서 유자녀들이 모여오기 시작하였다.

주체36(1947) 8월초 어느날이였다.

혁명가유자녀들이 도착하였다는 소식을 들으신 녀사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간리에 있는 학원림시교사를 찾으시였다.

그날 아침 녀사께서는 일군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유자녀들이 모여왔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잠도 이루시지 못하시였어요.

우리 아이들이 왔다는데 나가봐야겠어요몇이나 왔는지…

벌써부터 가슴이 설레이는구만요.

위대한 수령님과 김정숙녀사께서 타신 승용차가 학원마당에 들어서자 뛰놀고있던 원아들이 《김일성장군 만세!》의 환호를 올리며 막 달려왔다.

그런데 그렇게 기뻐 달려오던 아이들이 수령님의 품에 선뜻 안기지 못하고 주춤거리는것이였다자기들의 옷차림새가 한심하니 걸음을 멈추었던것이다.

어깨가 드러난 적삼무릎정갱이도 채 가리우지 못한 베잠뱅이신총이 닳아빠진 짚신… 아이들은 고개를 떨구며 울먹거렸다.

수령님께서는 억이 막히시여 더 걸음을 옮기지 못하시였다.

원아들의 모습을 한참이나 지켜보시던 녀사께서는 아이들에게로 다가가시여 한 유자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시며 타이르시듯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애들아이리 오너라장군님께서는 너희들이 헌옷을 입었다고 나무라지 않으신다너희들이 이렇게 못입고 못산것은 너희들의 죄가 아니다.

녀사의 은정넘치는 말씀에 유자녀들은 하나둘 흐느끼기 시작하였다.

이때 제일 나어린 꼬마가 《장군님!》 하고 웨치며 위대한 수령님의 품에 와락 안기였다.그러자 막혔던 물목이 터진듯 다른 아이들도 달려와 수령님의 품에 안기였다.

《장군님장군님!

유자녀들은 수령님과 녀사의 옷섶과 팔소매에 얼굴을 묻고 막 흐느끼였다.

조롱조롱 매달리여 모진 세월에 쌓이고쌓였던 설음을 한시에 터뜨리며 흐느끼는 아이들을 안으시고 그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시는 수령님의 눈가도 축축히 젖어드시였다.

《일없다울지들 말아라이제 옷도 좋은것으로 해입고 공부도 하고 … 그러면 된다.

몹시 갈리신 수령님의 말씀을 들으며 어린것들은 더욱 흐느끼기만 하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수령님의 품에 안겨 너무 기뻐 마음껏 흐느끼는 유자녀들의 어깨며 머리를 다정히 쓸어주시며 뜨거운 눈물속에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애들아울지 말아이 기쁜 날에…

이제는 너희들이 고아가 아니다장군님께서 너희들을 보살펴주고계신다김일성장군님은 너희들의 아버지이시다.

녀사께서는 그동안 원아들의 생활에서 있었던 기막힌 사연을 하나하나 알아보시고 같이 싸우다 희생된 그들의 부모들을 생각하시는듯 한동안 아무 말씀이 없으시였다.

그러시던 녀사께서는 일군들을 둘러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저 아이들이 많은 고생을 하였어요먹을것도 못 먹고 입을것도 못 입고… 누구 하나 살뜰하게 돌봐주는 사람도 없었고…

저애들을 보니 희생되면서 자식을 잘 키워달라고 부탁하던 동지들의 생각이 나서 가슴이 막 미여지는것 같군요.

장군님께서는 먼저 간 동지들의 아들딸들을 찾지 못하시여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셔요정말 그애들을 빨리  다 찾아야 하겠는데…》

안타까움이 그대로 가슴에 울려오는 그 말씀에 곁에 섰던 일군들은 녀사의 숭고한 혁명적의리와 높으신 인덕에 모두가 머리를 숙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와 녀사께서는 이날 학원을 돌아보시며 원아들을 빨리 안착시키고 잘 돌봐줄데 대하여 강조하시고 점심시간이 퍽 지나서야 댁으로 돌아오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유자녀들의 람루한 옷차림을 보고 못내 가슴아파하시면서 그들의 제복을 해입히는 일을 김정숙녀사께 맡겨주시였다.

그날 오후 녀사께서는 옷차림이 람루하여 장군님의 품에 선뜻 안기기를 주저하던 어린 원아들의 모습이 자꾸 눈앞에 떠오른다고 하시면서 일군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오늘 장군님께서 어찌나 가슴아파하시는지… 점심식사도 드시지 않으시고 심려하시였어요.

그러시며 녀사께서는 빨리 그애들을 잘 입히고 잘 먹일수 있게 되여야 장군님께서 기뻐하시겠는데 뜻대로 되지 않아 안타깝기만 하다고 하시였다.

녀사께서는 개원식전으로 원아들의 제복을 다 새로 해입히도록 하라는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관철하기 위한 사업을 정력적으로 조직진행하시였다.

녀사께서는 수령님의 가르치심대로 군복형식으로 학생들의 제복도안을 밤을 지새우시며 손수 하나하나 그리시고 수령님께 보여드려 완성하시였으며 달포나 되게 피복공장에 나가 살다싶이하시면서 학생제복을 훌륭히 만들도록 공장 일군들과 로동자들을 따뜻이 손잡아 이끌어주시였다그리하여 제복제작은 기한내에 끝나 개원식을 앞두고 학원학생들에게 일제히 새 제복을 입힐수 있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과 김정숙녀사의 정력적인 지도와 불면불휴의 심혈속에 학원의 림시교사가 짧은 기간에 꾸려지고 입학생들을 받기 위한 준비가 훌륭히 완료되게 되였다.

그리하여 주체36(1947) 10 12일 온 나라 인민들의 커다란 관심속에 항일혁명시기의 유자녀교육전통을 이어 만경대혁명학원이 창립되게 되였으며 뜻깊은 개원식이 진행되였다.

이날 김정숙녀사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혁명가유자녀들의 부모가 되시여 개원식에 참가하시였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개원식에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여러분의 부모들은 우리와 함께 싸우다가 광복된 조국을 보지 못하고 애석하게도 희생되였습니다그들은 희생되면서 자기들은 비록 조국의 독립과 해방을 보지 못하지만 조국이 해방되는 그날 자식들을 공부시켜 인민의 훌륭한 충복이 되도록 잘 키워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그리하여 우리는 조국에 개선하자 곧 혁명렬사의 유자녀들을 찾았으며 여러분들을 공부시키기 위하여 이 학원을 세웠습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연설에 접하여 유가족들과 원아들의 두볼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도 자주 손수건을 눈가에 가져가시였다.

김정숙녀사께서도 희생된 전우들을 생각하시며 흐르는 눈물을 걷잡지 못하시였다.

항일의 그날 일제와의 싸움에서 전우들이 희생될 때마다 너무도 가슴아프고 비통하시여 그들의 이름을 부르고부르시며 추도문을 쓰시고 밤깊도록 밀림속을 거니시던 수령님이시였고 희생된 전우들의 고향과 가족들의 이름이 기억에서 멀어질세라 수첩에 꼭꼭 적어두시던 김정숙녀사이시였다.

이러한분들이시기에 개원식에 참석하신 수령님과 녀사의 심중은 더없이 뜨거우시였고 그분들을 우러르는 원아들과 유가족들의 격정의 눈물은 바다를 이루었다.

이날 수령님께서와 녀사께서는 개원식이 끝난 후 원아들의 분렬행진도 보아주시고 운동회에도 참석하시여 원아들을 기쁘게 해주시였다.

항일의 빛나는 혁명전통을 상징하는 붉은 줄을 두른 새 제복을 입은 원아들의 름름한 모습에는 위대한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신 영광과 행복이 한껏 어려있었다그들은 부모잃고 모진 세월속에 버림받고 천대받던 어제날의 고아들이 아니였다백두산위인들의 품속에서 선군조선의 주인으로 당당히 등장한 귀중한 보배들이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만경대혁명학원의 창립은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가유자녀교육사상과 혁명적의리의 빛나는 결실이였으며 우리 혁명의 계승자들을 키우는데서 력사적의의를 가지는 사변이였습니다.

만경대혁명학원이 창립됨으로써 혁명가유자녀들은 당과 수령의 은혜로운 품속에서 마음껏 배울수 있게 되였으며 우리 인민은 선군혁명의 피줄기를 이어나갈 핵심골간들을 키워낼수 있는 믿음직한 기지를 가지게 되였다.

선군조선의 위대한 력사에 길이 빛나는 만경대혁명학원의 력사적인 배움의 장엄한 서곡은 이렇게 시작되였다.

 11

처음으로 세워진 수령님의 동상

 

혁명의 성지 만경대에 자리잡고있는 만경대혁명학원에는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의 동상이 정중히 모셔져있다.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건립된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이다여기에는 매일과 같이 수령님을 몸가까이 뵙고싶어 하는 유자녀들의 절절한 소망을 헤아리시고 그들에게 오로지 수령님만을 굳게 믿고 따르며 선군혁명위업수행에 한몸 다 바치는 참된 혁명전사의 굳은 신념과 의지를 안겨주시려는 김정숙녀사의 숭고한 념원이 깃들어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김정숙어머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을 몸가까이 모시고싶어 하는 원아들의 절절한 념원을 헤아리시여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만경대혁명학원에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을 건립하도록 하시였으며 혁명가유자녀들의 마음속에 오직 수령님만을 믿고 따르는 신념의 기둥을 세워주시였습니다.

김정숙녀사의 헌신적인 노력에 의하여 중국 동북지방을 비롯한 여러곳에서 항일혁명투사들의 유자녀들이 위대한 수령님의 품을 찾아 평양으로 왔다.

이국의 차디찬 들가에서 부모잃은 고아로 길가의 조약돌처럼 버림받던 아이들이였다.

그들은 위대한 수령님을 아버지로 믿고 따르면서 자나깨나 뵙고싶어 하였고 그 사랑을 몸가까이 느끼고싶어 하였다.

주체36(1947) 8 10일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학원림시교사에 나가신 녀사께서는 유자녀들과 담화하는 과정에 수령님을 날마다 뵙고싶어 하는 그들의 간절한 소원을 깊이 헤아리시고 새로 건설하는 만경대혁명학원에 수령님의 동상을 모실것을 발기하시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이날 동행한 일군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이애들이 이렇게 장군님을 뵙기를 소원하며 언제나 장군님의 품에서 살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어찌 그렇지 않겠습니까혁명의 길에서 부모를 잃고 갖은 천대와 구박을 받으면서도 오직 장군님만을 믿고 따르던 아이들이 아닙니까.

그러니…우리 만경대에 장군님의 동상을 모시고 학원아이들이 언제나 장군님의 영상을 우러르며 살도록 해줍시다이것은 원아들의 소원일뿐아니라 항일혈전의 길에서 먼저 간 전우들의 뜻이기도 합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을 모실데 대한 이 발기는 혁명가유자녀들을 수령님께 끝없이 충직한 선군혁명의 핵심골간으로 키워내려는 녀사의 철석같은 의지와 신념의발현이였으며 수령님을 높이 우러러모시려는 우리 인민의 한결같은 지향과 념원을 그대로 반영한것이였다.

그후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건립을 위한 준비사업을 하나하나 추진시켜오신 녀사께서는 학원개원식이 끝나자 이 력사적인 성업에 온 심혈을 깡그리 바쳐가시였다.

녀사께서는 창작가들과 기술일군들을 찾아내고 그들의 창작조건을 원만히 보장해주시였으며 동상건립을 맡은 일군들과 무릎을 마주하시고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은 반드시 항일무장투쟁시기의 모습으로 형상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동상의 규모와 그 형상방도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토론해주시였다.

녀사께서는 항일무장투쟁시기의 장군님의 모습으로 동상을 건립하여야 학원학생들로 하여금 경애하는 장군님을 따라 조국해방의 성스러운 싸움길에 나섰다가 영용하게 희생된 자기들의 부모들처럼 대를 이어 영원히 수령님의 충직한 전사로 살며 싸울 각오를 튼튼히 다지게 할수 있으며 잃었던 조국을 찾아주시고 오늘의 행복을 안겨주신 장군님의 은덕을 가슴속깊이 새기게 할수 있다고 말씀하시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동상창작현장에도 자주 나가시여 기술자들과 로동자들의 사업조건과 생활조건을 따뜻이 보살펴주시였으며 동상건립공사가 한창 진행될 때에는 후방물자를 가지고 현장을 찾으시여 건설자들을 고무해주시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만경대혁명학원에 우리 나라에서 제일먼저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을 건립하게 된 력사적인 사변이 마련되게 되였다.

림시교사로부터 혁명의 성지 만경대로 옮겨간 만경대혁명학원에서는 주체37(1948) 1024일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제막식과 함께 새 교사준공식이 성대하게 거행되였다.

녀사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이 경사스러운 행사에 참석하시였다.

새로 건설된 학원교사의 넓은 운동장에는 학생들과 유가족들준공을 축하하려고 온 당정권기관사회단체 책임일군들항일혁명투사들과 수많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제막선언에 이어 동상을 덮었던 제막포가 가을바람에 날리며 천천히 내리워지자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이 밝은 해빛을 받아 빛을 뿌리며 숭엄하게 안겨왔다.

한손에 쌍안경을 드시고 백포자락을 날리시면서 일제의 백만대군을 쥐락펴락하시던 항일무장투쟁시기의 모습그대로 거연히 서계시는 민족의 태양이시며 전설적영웅이신 위대한김일성장군님의 거룩한 영상!

순간 학원학생들과 군중들은 《김일성장군 만세!》를 높이 부르며 환성을 올렸다그들의 환호성은 영생불멸의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합창으로 이어졌다.

언제나 위대한 수령님을 몸가까이에서 뵙고싶어 하던 학생들은 자기들의 소원이 풀린것으로 하여 크나큰 기쁨에 넘쳐있었다.

김정숙녀사께서도 감격을 금치 못해하시였다.

녀사께서는 목청껏 만세를 부르는 오중흡련대장의 딸이며 아버지의 얼굴도 모르고 자라난 수많은 희생된 전우들의 자녀들의 모습을 바라보시면서 손수건을 눈가로 가져가시였다.

동상제막식이 끝난 후 녀사께서는 일군들에게 만경대혁명학원에 장군님의 동상을 모신것은 학원학생들의 더없는 영광이며 행복이라고이제는 자나깨나 장군님과 함께 있고싶어 하는 학원학생들의 소원이 풀리게 되였다고 하시면서 우리는 혁명가유자녀들을 장군님께 충직한 새 조선의 훌륭한 역군으로 키워 그들이 부모들의 뒤를 훌륭히 이어나가도록 하여야 합니다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동상제막에 이어 새 교사준공식이 진행되였다.

이어 위대한 수령님께서 마련하여주신 학원기발이 수여되였으며 장엄한 군악에 맞추어 원아들의 씩씩하고 름름한 분렬행진이 진행되였다.

학생들은 항일의 빛나는 전통을 계승한 영광의 학원기발을 대오앞에 날리며 위대한 수령님과 김정숙어머님을 우러러 목청껏 만세를 부르며 행진해나갔다.

붉은 줄이 간 모직제복에 가죽구두를 신고 보무당당히 행진해나가는 모습을 그들의 부모들이 볼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그들이 부르는 만세의 함성은 백두산위인들의 혁명적동지애와 숭고한 사랑과 의리의 응결체인양 높이 솟아 빛나는 학원청사를 울리며 선군조선의 하늘가로 메아리쳐갔다.

이날 김정숙녀사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새로 지은 학원교사의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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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이날 김정숙녀사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새로 지은 학원교사의 매 방들을 커다란 기쁨속에 일일이 돌아보시였으며 준공식축하연회에도 참가하시였다.
희생된 혁명렬사들의 념원을 풀어주고 유자녀들에게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생활의 보금자리, 배움의 전당을 마련해준것으로 하여 기쁨과 충격이 큰 뜻깊은 연회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너무도 기쁨이 크시여 노상 환한 웃음을 짓고계시였다.
그렇게도 기뻐하시고 즐겁게 웃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모습을 이윽토록 지켜보시며 녀사께서는 손수건으로 눈굽을 찍으시다 유가족들과 일군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나는 오늘 너무 기뻐서 눈물이 자꾸 나옵니다.
지난해 개원식이 있은 날 장군님께서는 댁에 돌아오셔서도 오래도록 마음을 진정하지 못하시였습니다. 그날 장군님께서는 희생된 동지들의 아이들도 다 찾지 못하고 좋은 청사도 지어주지 못한채 개원식을 했으니 아직 혁명동지들의 소원도 풀어주지 못하였고 유자녀들의 아버지구실도 못하고있다고 하시며 가슴아파하시였습니다.
그러시던 장군님께서는 오늘 아침 준공식에 나오시면서 이제야 그애들의 아버지구실을 한것 같다고 말씀하시였습니다.
오늘 장군님께서 저렇듯 기뻐하시는것을 보니 내 마음도 기쁩니다.
나는 오늘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어요.》
어머님께서는 유가족들에게 어서 음식을 들라고 권하시였다.
그러나 유가족들은 수저를 들수가 없었다. 혁명전사들에 대한 그처럼 숭고한 혁명적의리를 지니신 위대한 수령님과 수령님의 뜻을 높이 받드시여 오늘을 안아오시려 그처럼 온갖 심혈을 다 기울여오신 김정숙녀사의 품에 유자녀들이 안겼으니 북받치는 격정을 억제할수 없었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유자녀들을 걱정하시여 늘 심려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 기쁨을 드린것이 더없이 행복하시였다. 희생된 전우들과 유자녀들, 온 나라 인민들의 간절한 소원대로 학원에 수령님의 동상을 모신 기쁨이 한량없이 크시였다.
만경대혁명학원에 수령님의 동상을 건립하여 수령님을 그리는 유자녀들의 소원을 풀어주신 녀사께서는 원아들의 마음속에 오직 수령님만을 믿고 따르는 신념의 기둥을 세워주시기 위하여 온갖 심혈을 다 기울이시였다.
만경대혁명학원에서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제막식과 새 교사준공식이 성대히 진행된 때로부터 며칠이 지난 어느날이였다.
녀사께서는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모신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을 돌아보시려고 또다시 학원에 나오시였다.
녀사께서는 기쁨에 넘쳐 어쩔줄 모르는 원아들의 손목을 다정히 잡으시고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을 돌아보시였다.
동상을 다 돌아보신 녀사께서는 이날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시다가 그들에게 이렇게 물으시였다.
《그래, 너희들은 커서 앞으로 무엇이 되겠느냐?》
그러자 학생들은 서로 앞을 다투어 챙챙한 목소리로 땅크병이 되고 정찰병이 되고 비행사가 되겠다고 힘차게 대답올렸다.
학생들의 희망과 포부를 다 들어주신 녀사께서는 너희들의 생각이 다 좋다고, 인민군대가 되겠다는것은 칭찬할 일이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경건한 눈길을 들어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을 우러르시며 잠시 생각에 잠기시였다.
이윽하여 녀사께서는 다시 학생들을 둘러보시며 조용하나 신중한 어조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너희들은 땅크병이 되는것도 정찰병이 되는것도 다 아버지장군님을 위하여 싸우는 땅크병이 돼야 하고 아버지장군님을 위하여 싸우는 정찰병이 되여야 한다. 비행사도 그저 하늘을 지키는것이 아니라 아버지장군님께서 계시는 우리 나라의 하늘을 지키는 비행사가 되여야 한다.》
땅크병이 되고 정찰병이 되고 비행사가 되여도 아버지장군님을 위하여 싸우는 땅크병이 되고 정찰병이 되고 비행사가 되라!
녀사의 이 말씀속에는 아버지장군님을 떠나서는 조국의 운명도, 개인의 희망과 포부도 생각할수 없다는 철의 신념과 의지를 간직하고 하늘땅 그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 오로지 장군님 한분만을 믿고 따르며 장군님을 위하여 한목숨 서슴없이 바쳐 싸운 부모들처럼 살며 싸워야 한다는 웅심깊은 뜻이 담겨져있었다.
그것은 그대로 혁명의 피줄기를 이어갈 혁명가유자녀들모두가 그 어느 초소에 가든 마땅히 위대한 수령님께 끝없이 충직한 혁명전사가 되기를 바라시는 녀사의 크나큰 기대와 당부였다.
김정숙녀사의 크나큰 기대와 당부를 안고 유자녀들은 매일, 매 시각 수령님의 동상을 우러르며 혁명의 길에 한목숨 바친 부모들의 뜻을 이어 수령옹위의 전위투사로 자라나게 되였다.
참으로 만경대혁명학원에 수령님의 동상을 세워주시고 유자녀들의 가슴속에 수령결사옹위의 신념의 기둥을 세워주시려 바치신 어머님의 불면불휴의 심혈속에는 희생된 부모들의 넋을 이어 선군혁명의 피줄기를 억세게 이어나가게 하시려는 숭고한 념원과 혁명적의리가 깃들어있었다.
녀사의 그 숭고한 의리에 떠받들려 모셔진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은 오늘도 만경대혁명학원에 그날의 그 모습대로 여전히 높이 솟아 빛나고있다. 그 위대한 빛발속에 김정숙어머님의 숭고한 념원이 꽃펴나 선군혁명의 핵심골간들이 억세게 자라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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