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를 침공한 베트남 (해금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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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를 침공한 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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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쟁이 끝나고 베트남이 통일된 후 베트남의 국제적 위상과 군사적 위력은 대단했습니다. 세계최강을 자랑하는 미군과 싸워 이겼으니 그럴만도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베트남의 사회경제상황은 엉망이었습니다. 특히 파괴된 북베트남을 복구하면서 남베트남의 민심을 수습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대체로 사람들이 1970년대후반기부터 약 15년간 베트남의 사회경제상황이 어떠한 가에 대해서는 비교적 잘 알지만 어떻게 되어 전승국인 베트남이 그처럼 어려운 상황에서 헤메었는지 그 원인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 하는데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사실 베트남이 자주적인 입장에서 전후복구건설을 하고 외교와 정치를 했다면 전쟁후 어려운 상황에서 빨리 벗어 날 수도 있었습니다. 그만큼 국제정치상황은 유리했습니다.
그런데 전후에 베트남은 전 세계를 놀래운 사변을 또다시 일으켜 자기를 스스로 좌초시켰습니다. 바로 과거의 피침략자가 침략자로 돌변하어 전쟁기간 저들을 성의있게 지원해 준 캄보디아를 저들의 속국으로 만들기 위한 전쟁을 일으킨 것입니다. 처음에는 캄보디아를 중국의 영향권에서 빼기 위해 압력을 가하었지만 말을 안 듣자 무력으로 침공하었습니다. (이 시기 베트남-캄보디아 관계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약합니다.)
캄보디아를 침공한 베트남의 전략전술은 소련군의 전형적인 공격전술인 일체식 공격방식인데 어찌하면 1979년 아프가니스탄침공과 유사합니다. 마지막 결말도 같습니다. 아마도 소련이 베트남의 캄보디아침공에서 교훈을 찾았다면 그의 카피인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기획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캄보디아의 군사력은 미군과 맞서 승리한 베트남에 대비할 레벨이 아닙니다. 아프가니스탄의 군사력 역시 소련군에 대비할 레벨이 아니지만 최종적으로는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물러났습니다.
이 사건이 일어나자 중국과 소련, 중국과 베트남사이의 관계는 더욱 악화되고 유엔에서 베트남을 비난하는 결의가 채택되는 등 당시 국제정세는 혼란스러웠습니다. 이 사건은 중-소분쟁과 중-베분쟁과도 직간접적인 연관이 있습니다.
캄보디아가 어려운 상황에 처하자 중국은 처음에 베트남을 외교적으로 압박하다가 베트남이 소련을 믿고 아전인수격으로 나오자 베트남과 전쟁을 선포합니다. 이때 중국이 치명적인 전략적오류를 범합니다. 그것은 베트남군대가 20여년간 제국주의자들과의 현대전쟁에서 단련된 군대이고 전쟁기간 저축된 전략물자, 특히 탄약보장능력이 무제한하다는 것을 고려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중국은 수년간의 전쟁으로 지친 베트남을 며칠내로 굴복시킬수 있다고 속단하고 10정량의 전쟁물자를 준비한 후 전쟁을 일으켰는데 전쟁이 한달이상 지연되자 탄약과 물자부족으로 작전과 전투를 치르기 곤난하게 되었으며 오히려 베트남군이 게릴라전법을 적극 활용하면서 반격해 오자 견디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더는 전쟁할 능력이 없음을 판단한 중국은 스스로 전쟁을 포기합니다.
중-베분쟁까지 치르면서 베트남은 더욱 과대망상에 빠집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20세기에 들어 와 영국, 프랑스, 미국, 중국과 군사적으로 싸워 이긴 유일한 나라입니다. 그래서 더욱 신심을 가지고 캄보디아전쟁을 결속하려고 하었습니다.
그런데 베트남이 캄보디아전쟁에서 처참하게 패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미국이 베트남전쟁에서 패하듯이 베트남이 캄보디아전쟁에서 패한 것입니다. 베트남전쟁때 자기들의 처지가 캄보디아전쟁에서 캄모디아게릴라들의 처지와 꼭 같음을 예상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결국 베트남은 베트남전쟁시기 미군이 활용한 전법을 많이 운용했고 캄보디아군은 베트남전쟁시기 베트공들이 활용한 전법을 활용하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리라는 것을 미리 예측하었다면 캄보디아를 침공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몇년간 캄보디아전쟁을 결속하지 못하고 유엔제재까지 받으며 국제적인 고립속에서 허우적거린 베트남의 사회, 정치, 경제, 외교는 엉망이 되었습니다. 그때 베트남군대는 몇년전 베트남전쟁때 미군이 헬기들을 대량동원하어 자기들을 기습하던 전법이 한없이 부러웠다고 합니다. 그러나 미군과는 달리 당시 소련과 베트남은 미군만큼 헬기를 대량 동원할 가능성이 없었으므로 캄보디아 게릴라들에게 얻어 맞기만 하었습니다.
베트남은 그때에 와서야 현대전에서 정규전과 게릴라전의 본질을 똑똑히 알게 되었으며 미군처럼 최첨단 장비들을 대량 투입하어도 게릴라전을 이기기 힘들다는 교훈을 찾게 되었습니다. 몇년전에 저들이 게릴라 전법으로 활용하여 첨단기술로 무장한 미군을 이기고도 그 진리를 깨닫지 못한 훗과가 전후 베트남을 최악의 상황에 빠뜨린 것입니다.
더는 캄보디아전쟁을 치를 능력이 없어진 베트남은 캄보디아에서 철수하고 캄보디아 및 중국과 관계개선을 요청합니다. 말이 관계개선이지 실지로는 정치적 항복입니다.
어쨌든 이로 하어 베트남은 한숨 돌리게 되었는데 얼마후 세계정치정세에서 중대한 변화가 일어 납니다. 그때까지 소련만을 믿고 허장성세 해 왔는데 소련이 망한 것입니다. 결국 베트남은 완전히 버림받은 신세가 되었습니다. 베트남은 소련을 추종한 것을 후회했으나 때 늦은 후회입니다.
이제 베트남이 선택할 여지는 자주와 친미인데 이미 베트남의 내부는 수정주의로 변질되었으므로 중국의 길을 따라 당연히 친미를 선택하었습니다. 본질은 미국에게 정치적으로 투항입니다. 미국에 투항한 베트남은 미국과 서방에게 자기를 개방하었으며 미국과 서방의 경제적투자를 받아 들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베트남사람들은 과거에 미국과 피 흘리며 싸운 역사가 아니라 미국산 오토바이를 더 귀중히 여기며 사회주의의 가치보다 돈의 가치를 더 잘 아는 속물로 되었습니다.
침략자들과 맞서 피 흘리며 군사적으로 싸워 이겼지만 총 한방 쏘지 못하고 사상정신적으로, 정치외교적으로 제국주의자들에게 투항한 베트남, 참으로 격동적인 베트남의 70여년 역사는 다른 사람들에게 귀중한 경험과 교훈을 줍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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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해오름님의 댓글
해오름 작성일역사의 교훈을 잘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해금강 님의 귀중한 글로 궁금해했지만 어떻게 된 것인지 잘 모르고 그저 추측해오던 부분인데 늦게나마 귀중한 공부를 합니다. 저도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