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운동이란 북 바로알기이다 (황선)
페이지 정보
본문
어쩌면 통일운동이라는 것은
결국 ‘북 바로알기’인 것이다.
분단유지를 위해 가장 왜곡해 온 것들을 바로 보고 바로 아는 것.
우리는 분단적폐들이 왜 그 짓을 해왔는지, 우리는 왜 속아왔는지를 아는 것에 집중해야한다.
그것은 한 때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있었네’ 수준의 각성이었고
그것은 한 때 ‘대동강 물이 맑다’거나 ‘대동강 맥주 맛이 좋다’거나 하는 감상 조차 감옥으로 보내야 직성이 풀릴 수준이었으나,
결국 이젠 종북몰이에 눈 감던 언론들마저 저마다 평양지국을 기획하고 저마다 ‘북맹탈출’ 프로그램을 기안하는 시대가 되었다.
사실 돌아보면 대동강맥주 맛이 떨어지거나 북에 핸드폰 갯수가 형편없다한들 대세에 무슨 영향이 있겠는가. 다만 그런 말초적이고 지엽말단에 예민한 우리의 취향을 스스로 저격한 것일 뿐.
우리의 색안경은 겹겹이다.
북이 사람이 사는 또 하나의 사회라는 것을 인정하고 나니 곧 바로 사회주의에 대한 무지와 몰이해가 눈 앞을 가로막고, 그걸 알자니 국가보안법이 성가시지만, 그렇다고 요즘같은 시대에 그정도 장막을 못 벗을 일도 아니니 어찌저찌 그 레드콤플렉스를 벗어던지지만,
이젠 북의 지도자를, 그곳의 지도자와 민의 관계를 이해해야만 하는 단계가 기다린다.
세상에 이렇게 양파같은 색안경이 또 있을까.
38선이니, 군사분계선은 형식적인 분계선이지만, 어느 순간 부터 우리에게 훌쩍 높아진 분계선은 이것이다.
북의 사람들, 특히 그곳 지도자와 관련된 강한 이미지.
독재자, 탐욕스런 파시스트, 인권박해자. 이 이미지와 다른 해석은 일체 용납되지 않았다.
북을 향한 모든 정보는 북 지도자와 관련한 허용된 이미지를 만족시키는 것으로만 가공되었다.
북의 집단체조를 하나 봐도, 영화를 보거나 려명거리나 마식령스키장, 백두산 등산로에서도 직시해야 할 것이 그곳의 지도자와 군민의 관계, 그리고 그 속에서 구현된 집단주의에 대한 이해인데, 그걸 분리시켜두고 화해를 도모하자니, 늘 결정적 순간에 그 틈새를 거짓선전분열의 공세가 파고든다.
통일을 한다는 것은 기술적으로 1945년 8월 38선을 그은 미국의 대한반도정책과 1953년 정전협정을 극복하는 것이고, 내용적으로는 백년에 걸친 민족내 적대감고취와 분열공작을 파탄내는 것이다.
그 중심이 김정은 국문위원장의 등장과 행보를 제대로 알고 이해하는 것이다.
1980년대 선배들이 ‘북한바로알기’라는 순한 이름으로 대장정을 시작한 뒤 30년, 드디어 고지가 보이는 시대가 되었다.
별 것도 아닌 시시한 이야기를 숨죽여가며 했던 시절, 수배와 투옥으로 뿌린 ‘가난한 노래의 씨’들이 조만간 만개할 것이다.
비록 인걸 중 상당수는 간 데 없어도 그래도 고마운 일이다.
어느 때라도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노래’를 잊지않고 ‘목놓아 부르지’ 않겠는가.
머지않았다.
- 이전글인민사랑을 전하는 평양기초식품공장을 찾아서 18.11.27
- 다음글창해일속과 같이 작던 나라가 세계의 중심에 우뚝 서다 외 (김웅진) 18.11.26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