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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절불굴의 정신력으로 조국의 영예를 떨친 세계적인 체조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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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1,638회 작성일 18-12-25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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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절불굴의 정신력으로 조국의 영예를 떨친 세계적인 체조강자

올림픽금메달수상자이며 3중세계선수권보유자인 로력영웅 인민체육인 리세광선수에 대한 이야기


평화시기에 조국의 존엄과 민족의 영예를 두어깨에 걸머지고 세계무대에 공화국기발을 휘날려야 할 사람들은 우리의 체육인들이다.

하다면 그렇듯 무겁고도 책임적인 사명을 지닌 우리 체육인들은 오늘날 어떻게 살며 투쟁하여야 하는가. 무엇으로 심장이 고동치고 어떤 각오와 의지로 순간순간을 이어나갈 때 조국의 기대와 인민의 믿음에 보답할수 있는가.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국제경기에 나가 우승하여 공화국기를 날리는 체육인들은 참다운 애국자이고 영웅이며 멋쟁이들입니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는 최근 4. 25체육단 기계체조선수 리세광동무의 국제경기성과를 높이 평가하시면서 우리 체육인들이 그의 정신세계와 도덕품성, 훈련기풍을 따라배울데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불타는 애국충정을 지니고 어머니조국에 련이어 금메달을 안아오는것으로써 위대한 김정은시대 주체조선의 체육인된 본분을 다한 리세광선수의 백절불굴의 정신세계는 체육인들만이 아닌 이 땅에 생을 둔 사람이라면 누구나 거울처럼 비추어보며 따라배워야 할 고귀한 모범으로 되고있다.


군인에게 불가능이란 없다


다부진 육체와 두눈에 넘쳐나는 정기, 자신만만한 배심이 어려오는 침착한 행동거지와 맹호와 같이 경기장을 달리는 담찬 기상, 완전무결한 동작수행…

이것이 텔레비죤을 보면서 누구나 눈에 익힌 리세광선수의 모습일것이다.

그처럼 강철같이 단단한 육체와 왕성한 혈기로 어머니조국에 승리의 금메달들을 안아온 리세광선수가 한때 기계체조선수로서의 전도를 놓고 선택의 갈림길에 서있었다는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2년전 3월 1일이였다.

아침부터 훈련에 열중하던 리세광선수는 륜, 안마훈련을 마친데 이어 평행봉에 올라섰다.

힘차게 발을 굴러 거꾸로서기, 뒤로 회전, 앞으로 회전…

뜻밖의 일이 벌어진것은 그때였다. 공중돌기를 성공하고 내리꽂히던 찰나 그는 평행봉에 부딪쳐 손가락에 심한 부상을 당하게 되였다.

당시 의료연구사였던 김성실동무가 긴급처치를 해주었지만 그는 더이상 훈련을 할수가 없었다.

그 시각 자기의 전도를 놓고 의사들과 감독들, 일군들이 얼마나 괴로와하는가를 그는 알수 없었다.

리세광선수가 앞으로 철봉과 평행봉, 륜, 안마와 같은 기재운동을 다른 선수들처럼 높은 수준에서 해낼수 없다는것이 명백해졌던것이다.

어느날 김재식감독이 그와 마주앉았다.

《세광동무, 의학적결론에 의하면 동무는 앞으로 다기재선수로는 될수 없소. 조마운동은 할수 있지만… 아마 힘들거요.》

그러면서 감독은 아직 젊었는데 선택의 길은 많으니 잘 생각해보라고 걱정어린 어조로 말하였다.

리세광선수는 자기의 상한 손가락을 내려다보며 아무 말도 못했다. 기계체조에서 어떻게 하나 성공해보려고 14년동안이나 애써온 노력이 허사로 된다고 생각하니 억이 막혔다.

(아, 이렇게 물러서야 하는가. 이 손가락 하나때문에!)

그는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사실 조마는 리세광선수가 제일 힘들어하는 종목이였다. 처녀시절 락하산을 탔던 어머니를 닮아서인지 어릴적부터 우에서 뛰여내리기를 좋아하던 그가 한번은 높은 곳에서 뛰여내리다가 다리를 다쳤었다. 그때 살을 꿰맨다, 주사를 맞는다 하는통에 혼쌀난 이후로는 높은 곳이라면 자신이 없어했다. 체조를 배우면서 담을 많이 키우기는 했지만 공중에서 기교를 수행해야 하는 위험한 조마운동만은 익숙하기 어려워했다.

(그런 내가 이런 손을 가지고도 조마에서 꽤 성공할수 있을가?)

그는 끝내 대답을 주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저녁 아들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과학연구사업으로 나가살다싶이 하던 아버지가 바쁜 시간을 내여 집에 들어왔다.

《그래 이젠 물러날셈이냐?》

배길수선수처럼 기어이 금메달로 조국의 영예를 빛내이고 아버지, 어머니에게 기쁨을 안겨주겠다고 외우던 그였기에 차마 입을 열수 없었다. 이윽토록 대답이 없이 고개를 숙이고있는 그의 귀전에 아버지의 목소리가 울렸다.

《리수복영웅은 원래부터 화구를 막자고 태여난 사람인줄 아느냐? 조군실영웅은 팔다리가 성해서 고지를 지켰다더냐? 어깨우에 별을 단 군인이라는게…》

《…》

《너야 전장에서 살고 전장에서 쓰러져야 할 군인이 아니냐.》

그날 밤 리세광선수는 잠을 이룰수 없었다. 괴로움에 모대기던 그는 자기의 손때묻은 훈련일지들을 펼쳐들었다.

군복을 입은 첫날 훈련과 경기마다에서 병사답게 용감하리라고 써놓았던 글발이 아프게 가슴을 허비였다. 당의 따사로운 품속에서 체조에로의 첫걸음을 내짚고 체조와 함께 울고웃으며 걸어온 나날이 돌이켜졌다.

어릴적 만경대학생소년궁전의 해빛밝은 훈련장에서 체조훈련을 하던 나날은 그에게 있어서 정말 행복한 시절이였다. 철부지였던 자기를 한걸음한걸음 체조의 용감한 세계에로 이끌어주던 소조지도교원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처음 군복을 입던 일도 어제일이런듯 삼삼히 떠올랐다.

4. 25체육단으로 떠나는 날 아버지는 그의 군복을 어루쓸며 말하였다.

《세광아, 이 군복을 입고 청춘시절 아버지, 어머니는 조국을 지켰다. 너는 이 군복을 입고 조국의 존엄과 영예를 세계에 떨쳐야 한다.》

조국의 존엄과 영예, 아직은 그 말뜻을 다 리해할수 없었던 나이였지만 그때 그는 자기의 꿈과 포부가 바로 그 군복과 함께 실현될것이라는것을 믿어의심치 않았다.

체육단에서의 훈련 첫날부터 그는 두각을 나타냈다. 남보다 앞서지 않고서는 잠을 자지 못하였고 명절날과 휴식일에도 스스로 내세운 훈련과제를 수행하고서야 마음을 놓았던 그였다.

겉표지에 《1997년 2월-2002년 10월》이라고 씌여진 훈련일지를 한장한장 번져가던 그의 눈길은 어느 한 페지에서 멈춰섰다.

《1998년 2월 10일, 육체훈련 경기장계단오르내리기 5번, 속도달리기 60m 5번…》

군인체육인다운 완강한 투지를 키우던 훈련의 날들가운데서 가장 잊지 못할 하루였다.

그날 국내경기를 앞두고 5월1일경기장에 이동훈련을 나온 리세광선수를 비롯한 6명의 선수들은 송순봉감독의 지휘밑에 한다리로 계단을 오르내리는 훈련을 하게 되였다.

시간이 흘러 육체적능력이 한계에 이르자 선수들이 한명한명 주저앉았다. 힘겹게 계단을 오르던 리세광선수도 털썩 주저앉았다.

몇초나 흘렀을가. …

《일어섯!》

감독의 웨침에 리세광선수는 습관적인 대렬동작을 취하며 벌떡 일어났다. 온몸의 힘을 다시 모아 다리에로 뻗치며 그는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그날 오직 리세광선수만이 수백개나 되는 계단오르내리기훈련과제를 다 수행하였다. 한계단한계단 이렇게 극한점을 정복할 때마다 가슴속에 차오르는 긍지와 자부심은 그를 더 높은 목표를 향하여 분발시켰다.

남보다 이악하고 성실하게 훈련한 보람이 있어 리세광선수는 남자기계체조종목의 6가지 운동을 원만히 수행할수 있게 되였다. 국내경기에서 여러개의 금메달을 쟁취하고 개인종합순위에서도 앞자리를 차지하군 하였다. 하여 그는 같은또래의 선수들보다 3년이나 먼저 어깨우에 별을 달았다.

그는 아픈 마음으로 훈련일지의 마지막장을 펼쳤다. 거기에는 그가 손가락을 상한 후 훈련과제를 수행하지 못한 보름동안이 공백으로 남아있었다.

육체적부담이 매우 큰것으로 하여 체육선수들은 도중에 물러서는가, 성공을 위하여 계속 앞으로 나가는가 하는 운명적인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있는데 리세광선수는 끝내 자신을 이겨냈다.

군인은 심장이 살아있는 한 자기의 전호를 떠날수 없으며 마지막 피 한방울까지도 깡그리 바쳐 체육전장에 공화국기발을 휘날려야 함을 자각한 그의 가슴속에서는 새로운 활력을 되찾은 심장의 박동소리가 울리고있었다.

온밤을 뜬눈으로 새운 그는 다음날 훈련장에 다시 나섰다.

그는 잃은 시간을 모두 되찾으려는듯 무섭게 훈련에 달라붙었다. 아직 상처가 다 아물지 않은 조건에서 구간누워밀기, 한손철봉현수, 구간들기 등 상체와 다리힘을 발달시키는데 훈련을 집중하였다.

조마운동경기를 할 때 남자선수들의 달림거리는 25m, 발자욱으로 보면 보통 열다섯발자욱이며 동작시 선수가 날아오르는 공중높이는 대략 3m, 동작수행시간은 약 5초이다.

리세광선수는 바로 그 열다섯발자욱을 리수복영웅이 불뿜는 적화점을 향해 돌진한 최후의 열다섯발자욱으로, 동작수행의 5초를 길영조영웅이 보여준 최후의 25초의 한 부분으로 간직하고 훈련장에 나섰다.

훈련과정에 그는 부상도 여러번 입었지만 백절불굴의 정신으로 다시 일떠서군 하였다.

5초, 그 한순간을 위해 청춘시절을 깡그리 다 바치는 한이 있어도 기어이 조국에 금메달을 안아올 그의 각오와 의지는 변함이 없었다. 그는 체육선수이기 전에 용감한 조선인민군 군관이였으며 세계의 하늘가에 승리의 기발을 휘날리기 전에는 물러설수 없는 병사였다.

드디여 그의 어깨우에 빛나는 별과 금메달이 하나로 합쳐진 날은 오고야말았다.

리세광선수는 그해 12월에 진행된 제15차 아시아경기대회 기계체조 조마운동에서 첫 국제경기금메달을 안아왔던것이다.

첫 국제경기금메달, 그것은 체조무대에서 사라질번 하였던 한 군인체육인이 전화의 영웅들의 백절불굴의 정신세계에 자신의심장의 박동을 맞추고 다시 일떠서 순간순간을 초인간적인 의지와 상상을 초월하는 완강한 노력으로 안아온 용감성의 결정체였다.

첫 국제경기금메달과 더불어 리세광선수의 어깨우에서는 또 하나의 별이 빛나게 되였다.

《이 별이 크지 않아도 결코 금메달보다 가볍지 않소.》

상위의 군사칭호를 받던 날 감독이 그에게 한 이 말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전환시킨 용감한 군인체육인의 선수생활 전 과정을 관통하는 좌우명으로 되였다.


세계를 압도하는 우리의것을 창조하라


《리세광선수처럼 훌륭한 선수를 가지고있는 조선이 부럽다.》

이것은 리세광선수가 2014년 10월에 진행된 제45차 세계기계체조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였을 때 세계체조계에서 울려나온 찬탄의 목소리이다.

누구나 쉽게 올라설수 없는 승리의 상상봉에 올라선 리세광선수, 그는 어떻게 제노라 하는 조마강자들을 물리치고 세계패권을 쥐였는가.

2007년에 진행된 제40차 세계기계체조선수권대회에 참가하였던 리세광선수는 조마운동에서 3등을 하였다. 세계적인 강자들과 대결하여 주눅이 들지 않고 그만하면 경기를 잘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리세광선수의 마음은 몹시 무거웠다.

다른 나라 선수들이 난도높은 동작들을 펼쳐보일 때 난도가 낮은 동작으로 그에 대응한 자신이 한스러웠다. 더우기 그의 가슴을 아프게 짓누른것은 다른 나라 선수의 이름으로 불리우는 동작을 수행하다가 실수한 자신에 대한 불만감이였다.

당시 그가 수행한 동작은 로므니아선수의 이름으로 된 난도 5. 6의 동작이였다. 그 동작도 실은 간고하게 숙련하여 아시아경기대회에서 금메달을 안아왔었는데 세계적인 조마강자들은 그쯤한 동작은 다 수행할수 있었다.

(남이 창조한 동작을 모방하여 세계패권을 쥐려 했던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

리세광선수는 그때 세계와 경쟁하자면 자기가 창조한 동작, 자기식의 난도높은 동작이 있어야 한다는것을 뼈저리게 절감하였다.

조국에 돌아온 그는 리만섭책임감독과 함께 새로운 난도의 동작을 창조하는데 달라붙었다. 고심어린 탐구끝에 이들이 구상한것은 앞전회 앞공중 몸굽혀 세바퀴 돌며 옆으로 180°돌기동작이였는데 이것은 누구도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고급한 동작이였다.

그가 동작완성을 위하여 훈련에 진입하였을 때 모두가 걱정하였다. 원래 조마운동자체가 위험성이 많은데다 착지할 때 발목에 대단히 큰 힘이 실리는데 리세광선수가 수행하려는 동작은 다른 동작들에 대비할수 없는 큰 힘이 발목에 실리게 되여있었던것이다.

하지만 리세광선수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세계와 당당히 경쟁할수 있는 동작, 세계를 압도할 동작을 창조하기 전에는 물러설 잡도리가 아니였다.

그는 휴식시간이면 종이장에 자기가 수행할 동작들을 그려보며 동작수행의 요령에 대하여 생각하였고 동작수첩을 늘 가지고 다니면서 자기의 훈련정형을 꼭꼭 기록하군 하였다.

발구르기와 손구르기자세를 해결하기 위하여 아침일찍 남먼저 일어나 훈련하였고 탄력망에 올라 한동작한동작을 익혀나갔다.

육체적준비가 좋은 그였지만 성공은 쉽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몸을 돌보지 않고 정력적으로 훈련하던 어느날 그는 또다시 발목을 상하게 되였다.

발목에 붕대를 감아주던 리만섭책임감독이 몹시 힘들어하는 그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이런 의견을 제기하였다.

《세광이, 동작의 난도를 좀 낮출가?》

《예?…그건 절대로 안됩니다. 아무렴 세계를 압도할 조선의 동작이 그렇게 쉽게 나오겠습니까.》

세계의 그 어느 선수도 흉내낼수 없는 조선의 새 체조동작을 창조하겠다는 야심을 품고 나선 리세광선수에게서 다른 대답이 나올수가 없었다.

그의 굳은 각오앞에 내심 감복하며 책임감독은 저 혼자소리로 이렇게 말하였다.

《교예배우들처럼 안전바를 차고 훈련할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자기가 자주 부상을 입는것이 얼마나 안타까왔으면 그런 말을 다 하랴 하고 생각한 리세광선수는 피씩 웃어보이며 말하였다.

《우리 조마선수들은 그걸 용감성으로 대신하지 않습니까.》

말은 그렇게 하였지만 발목의 아픔으로 하여 그는 선듯 훈련기재에로 다가서지 못하였다. 상한 발목을 야속하게 내려다보는 그의 뇌리에는 나라의 체조발전에 자기의 뚜렷한 자욱을 새긴 전세대 체조명수들의 이름이 떠올랐고 그들이 력사에 남긴 자취가 하나둘 눈에 밟혀왔다.

국제체조련맹에서는 세계적으로 인정되는 가장 독창적인 동작들은 그 동작을 처음으로 수행한 선수의 이름으로 명명하고있는데 조선사람의 이름으로 명명된 체조동작들도 적지 않았다. 1970년대에는 철봉운동에서 《리송섭동작》이, 1980년대에는 안마운동에서 《리철헌동작》과 고저평행봉운동에서 《김광숙동작》이, 1990년대에는 고저평행봉운동에서 《박경실동작》이, 2000년대에는 마루운동에서 《리정성동작》이 세계체조계에 등록되였다.

그런데 조마운동에서만은 아직 조선의 동작이 없었다.

(전세대들도 이런 순탄치 않은 길을 걸어 새 동작을 창조하였을것이다. )

자기의 두어깨우에 얼마나 무거운 사명감이 지워져있는가를 다시한번 자각하며 리세광선수는 책임감독에게 절절히 말하였다.

《이 과제를 다음세대에 넘길수 없습니다. 리수복영웅이 다른 병사에게 화점을 맡기지 않은것처럼 말입니다.》

세계를 놀래우는 조선의 새 체조동작을 기어이 창조할 각오로 충만된 리세광선수를 보며 감독도 다시한번 용기를 가다듬었다.

《좋아, 그럼 훈련결과를 다시 분석해보자구.》

그들은 콤퓨터에 마주앉아 밤을 새워가며 탐구를 거듭하였다. 이 과정에 남보다 더 어려운 동작을 수행하자면 결정적으로 조약을 더 높이 하여 공중에서의 시간예비를 조성하여야 한다는것과 그렇게 할수 있는 비결까지도 마침내 찾아내고야말았다.

얼마후 리세광선수는 조마기재앞에 나섰다. 리만섭책임감독이 긴장한 눈빛으로 그를 지켜보았다.

출발선을 박찬 리세광선수가 열다섯발자욱을 자신만만하게 내짚었다. 5초가 흘렀다. 이 짧은 순간에 그의 온몸, 온 정신은 하나로 융합되여 말그대로 리상적인 동작을 공중에 펼쳐놓았다. 마지막착지동작까지 주의깊게 지켜보던 리만섭책임감독은 환성을 지르며 리세광선수에게로 달려갔다.

《세광이, 드디여 해냈소. 해냈단 말이요!》

바로 이 순간을 위해 얼마나 많은 창조의 날과 달이 바쳐졌던가.

그는 2012년에 진행된 제5차 아시아체조선수권대회에서 그 동작을 처음으로 펼쳐보여 우승의 단상에 올랐다. 세계체조계는 법석 끓었다.

리세광선수는 몇십개의 금메달에도 비길수 없는 우리의것을 창조함으로써 군인으로서 조국앞에 지닌 의무를 지켰고 전세대들이 물려준 바통을 이었다. 그리하여 2010년대에도 조선의 동작이 세계체조계에 당당히 등록되게 되였다.

그러나 그는 여기에 만족할수 없었다. 조마에서는 서로 다른 두개의 동작을 수행하여 점수를 종합하는데 그는 두개의 동작을 모두 새 동작, 조선의 동작으로 수행하고싶었다.

그가 감독의 지도를 받으며 새로 구상한 동작은 속전회 무릎굽혀 뒤로 두바퀴 돌며 옆으로 360°돌기동작이였는데 제일 어려운것이 착지동작이였다.

이미전에 입은 발목부상으로 몹시 불편했지만 그는 절대로 훈련을 중단하지 않았다. 밤이면 퉁퉁 부어오른 발에 찬물과 더운물을 갈아대며 찜질을 하다가는 그대로 잠들군 한 날이 몇번인지 모른다. 온밤 신음소리를 내는 그의 곁을 감독이 지켜서있군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가증되는 훈련부담으로 온몸의 피가 부은 발목에 몰리며 마치 쇠꼬챙이로 쑤시는듯 아팠다. 그의 눈앞이 흐려졌다. 달아오른 얼굴, 비오듯 흐르는 땀…

안타깝게 이름을 부르는 감독들과 선수들의 모습이 어렴풋이 어려왔다.

《세광이! 일어나라! 일어나라!》

그 소리는 그를 의지의 힘으로 일으켜세우게 하는 자기자신의 마음속웨침이였다.

이렇게 매일, 매 순간 훈련장을 생사를 판가리하는 전장으로 여기고 창조의 결사전에 나선 체조강자앞에 두번째 동작도 성공의 문을 열어주고야말았다. 리세광선수는 조선의 새 체조동작들을 창조하는데 7년이라는 20대의 귀중한 청춘시절을 바쳤다.

세계는 제45차 세계기계체조선수권대회에서 리세광선수가 창조한 두개의 새로운 동작을 보게 되였다.

경기장에 나선 리세광선수는 자신만만하게 두번째 동작까지 정확히 수행하였다.

후날 《리세광동작1》과 《리세광동작2》로 명명된 이 체조동작들은 난도가 가장 높은것으로서 시작달리기로부터 공중에서의 돌기와 착지까지 속도가 빠르면서도 재치있는 련결동작을 배합한 최고급의 기술동작이였다.

이때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착지까지 정확히 하고 두손을 들어보인 리세광선수가 그 자리에서 움직일념을 못하고 그냥 서있는것이였다.

관중들의 놀라운 눈빛이 그에게 집중되였다.

사실 그는 한주일전에 발목이 부상당한 상태에서 경기에 참가하였었다. 그런것으로 하여 동작수행이 끝나는것과 함께 참고참았던 아픔이 온몸에 엄습하였던것이다. 퉁퉁 부은 발을 도저히 내디딜수가 없었다.

강의한 의지로 한발을 내짚었으나 그것은 순간, 다시 그는 멈추어섰다. 마지막힘까지 깡그리 바쳐 눈부신 성공의 상상봉에 오른 리세광선수의 백절불굴의 정신이 어떤것인가를 세계가 똑똑히 보았다. 감독의 부축을 받으며 경기장을 내려서는 리세광선수의 두볼로 강자의 눈물, 승리자의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바로 세계는 이러한 리세광선수에게 아니 조선을 향해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던것이다.

조선의 이름으로 세계체조계에 또 하나의 분수령을 만든 리세광선수, 신념의 강자일뿐아니라 창조의 능수인 그의 승리의 희열은 정녕 이 세상에서 제일 값비싼것이였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는 주체103(2014)년 10월 리세광선수를 비롯하여 여러 국제경기에서 금메달을 쟁취한 선수들을 만나주신 자리에서 그들이 거둔 경이적인 성과는 조선인민의 높은 존엄을 걸고 싸워 이긴 위대한 승리이며 경기들마다에서 보여준 완강한 투지는 투쟁하는 우리 군대와 인민의 기상그대로였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그 사랑, 그 믿음을 심장에 간직하고 그는 다음해에 진행된 제46차 세계기계체조선수권대회에서 또다시 금메달을 쟁취하였으며 2016년에는 제31차 올림픽경기대회에서도 우승하여 10여년동안 그렇게도 바라던 꿈을 이루었다.

조선의 존엄을 걸고 창조한 《리세광동작》들은 이렇게 련이어 금메달을 낳았다.

어머니당에서는 조국앞에 실로 영웅적위훈을 세운 리세광선수에게 공화국공민의 최고영예인 로력영웅칭호와 인민체육인칭호를 안겨주도록 함으로써 체육인으로서의 그의 삶을 최상의 높이에서 빛내여주었다.


조마왕의 깨끗한 량심-떳떳하라


리세광선수의 나이는 올해 33살이다.

얼마전에 진행된 제48차 국제체조련맹 세계기계체조선수권대회에 참가한 남자선수들가운데서 리세광선수는 가장 나이많은 선수였지만 금메달을 들어올렸다.

남자기계체조선수들은 보통 27~28살이면 은퇴하는것이 례사로운 일로 되고있다. 하다면 리세광선수는 어떻게 되여 체조선수로서는 은퇴하고도 남을 그런 나이에 또다시 세계선수권을 보유하고 승리와 영광의 단상에 오르게 되였는가.

우리는 리세광선수와 함께 생활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았는데 그들은 한결같이 리세광선수가 훌륭한 도덕품성과 깨끗한 량심을 지닌데 대하여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조훈, 최경복, 송순봉, 김건, 김재식, 리만섭, 신명수…

이들은 리세광선수의 26년간에 달하는 훈련의 나날 그를 지도해온 스승들이다.

자기들이 직접 체험한 리세광선수의 인간적면모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하나라도 더 해주고싶어 진지하게 추억을 더듬고 그의 훌륭한 품성에 대하여 명쾌하게 말해줄 적중한 표현을 고르느라 애쓰던 사람들의 모습이 우리에게 남긴 여운은 정말 컸다.

벼이삭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금메달개수가 늘어나고 명예가 높아져도 언제나 한모습, 한본새로 훈련하고 생활하는 훌륭한 인간적풍모는 조선의 체육영웅을 더욱 돋보이게 하였다.

그의 이러한 고상한 도덕품성은 어머니조국앞에 무한히 성실하고 당과 수령을 깨끗한 량심으로 받들어나가는데서 최고의 정화로 분출되였다.

지난 8월말 제18차 아시아경기대회에서 리세광선수는 순위권에 들지 못하였다.

청춘거리 경경기관에서 있은 경기대회총화모임이 끝난 후 어깨가 처져있는 그에게 한 일군이 물었다.

《세광동무, 이젠 선수생활을 그만두는것이 어떻소?》

이런 물음은 처음이 아니였다. 하지만 일군들의 그 진심어린 권고가 그때처럼 리세광선수의 가슴을 허빈적은 없었다.

일군들과 선배들이 나이는 속이지 못한다, 괜히 욕망을 앞세우다가 체면이 깎일수 있다, 훌륭한 선수들을 키워서 조국앞에 내세우는 일도 중요하다고 말해줄 때마다 그는 머리를 가로저었었다. 지어 어떤 사람들이 세계선수권보유자가 국제무대에 나가 퇴보한 모습이나 보여준다면 망신이 아닌가고 말해줄 때에도 그는 아직 당의 사랑과 은정에 보답하려면 멀었다고 자신을 다잡군 하였다.

그런데 현실로 된 결과앞에서 할 말이 없었다.

올해 3월에 진행된 국제경기에서도 성과를 거두지 못한 그를 두고 체조부문의 일군들은 세계적인 체조강자의 명예가 더 떨어지지 않게 8월에 진행되는 아시아경기대회에는 보내지 말자고 토론하였었다. 그런데 기어이 참가시켜줄것을 요구하는 그의 완강한 제기앞에 일군들이 물러섰던것이다.

그는 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기어이 우승하려고 훈련강도를 높였었다. 이미전에 부상당한 발목과 손목이 말썽을 부려 치료와 훈련을 동시에 내밀게 되였는데 육체적부담은 말할수없이 컸다. 게다가 신경통까지 겹쳐 결국은 빈손으로 조국에 돌아온것이다. 하지만 불편한 몸으로 경기를 치르었다는 사실만으로는 량심의 죄의식을 보상할수 없었다.

련이어 실패한 그로서는 일군들의 권고앞에 더는 할 말이 없었다.

그는 조용히 경경기관을 나섰다. 마당에서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은정이 어린 승용차가 기다리고있었지만 그는 걸어서 집으로 향했다. 마음에 따라서지 못하는 야속한 자기 육체에 처벌을 내리는듯 상한 발을 끌고 내처 걷는 그에게는 발목의 아픔보다도 조국앞에 떳떳치 못한 가슴속아픔이 더 컸다.

(정말 이젠 물러서야 하는가?)

착잡하고 괴로운 마음을 달래며 그는 어느새 보통강반에 위치한 체육인살림집앞에까지 이르렀다.

《1층 3호 리세광》이라는 문패를 보는 순간 이 사랑의 집에 떳떳이 들어설수 없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7살때부터 자기를 애지중지 품을 들여 체육영웅으로 키워준것은 결코 그의 부모가 아니였다. 온갖 정을 쏟아부어 키워주고도 우승의 성과를 거두었을 때에는 모든 영예와 행복을 고스란히 자기에게 돌려준 어머니당에 대한 고마움이 눈물겹도록 사무쳐왔다.

그는 차마 문손잡이를 잡을수가 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국제경기에서 우승하고 돌아올 때마다 해빛처럼 흘러든 당의 사랑과 은정을 전하는 훈장들과 명예칭호증서들이 벽면이 좁다하게 걸려있을것이다. 당 제7차대회와 제7차 전국체육인대회를 비롯하여 여러 계기에 경애하는 원수님을 모시고 찍은 뜻깊은 기념사진은 또 얼마인가.

(그 사진속의 행복한 리세광선수가 어깨가 축 늘어진 지금의 리세광을 본다면 무엇이라고 하겠는가. )

그의 눈앞에는 주체93(2004)년 5월 1일 위대한 장군님의 훈련지도를 받던 영광의 시각이 떠올랐다.

새 체육기재들을 품을 들여 마련해주시고 몸소 리세광선수를 비롯한 선수들의 동작수행을 하나하나 지도해주시던 위대한장군님.

세월이 흐를수록 더해만지는 그 사랑에 보답할 한마음으로 충정의 훈련길을 걸어온 그였다.

그는 발걸음을 경경기관으로 다시 돌려세웠다.

(육체가 따라 못 서도 훈련장은 떠나지 않으리라. )

설사 은퇴한다 하더라도 마지막까지 자기의 훈련장을 떠나지 않는, 쓰러지는 순간까지 고지를 사수하는 군인의 모습을 새 세대 선수들에게 남기고싶었다.

능력이 다할 때까지 훈련 또 훈련!

심장이 뛰는 한 보답 또 보답!

이런 각오를 안고 그는 다음날부터 훈련장에 또 나섰다. 전혀 딴 사람이 된듯 한 그의 훈련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10년전의 전성기가 다시 오지 않았는가고 놀라움을 표시하였다. 그에게 은퇴를 권고했던 일군들도 다른 눈으로 그를 보게 되였다.

기계체조협회의 일군들은 그를 11월에 진행되는 제48차 국제체조련맹 세계기계체조선수권대회에 참가시키자고 일치한 의견을 제기하였다. 어머니당과 조국의 사랑과 믿음에 온넋을 다 바쳐 심장이 다할 때까지 보답하려는 리세광선수의 높은 충정심과 애국심, 체육인으로서 선수생활의 마지막을 보다 떳떳하게 빛내고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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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떳떳하게 빛내고싶어하는 그의 깨끗한 량심을 믿었던것이다.

그가 사랑하는 안해와 귀여운 아들이 있는 집에서 출퇴근을 하면서 훈련을 한다고 탓할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어린 선수들과 꼭같이 규정대로 생활하였다. 명절날과 일요일에도 자기를 특수한 존재로 여기지 않고 신입선수시절처럼 규률생활에 자각적으로 참가하였으며 어쩌다 집에 사정이 있어 갔다가도 그날 저녁에는 돌아와 다음날 새벽 어김없이 아침운동에 참가하였다.

그의 겸손하고 성실한 훈련태도는 한계를 초월한 의지로 분출하여 훈련장에 고귀한 땀방울로 새겨졌다.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량심의 샘줄기에서 흘러나온 그 땀방울들은 바치고바쳐도 모자라는듯 끝없이 뿌려졌다.

백절불굴의 정신력의 강자인 조선의 리세광선수는 마침내 3중세계선수권보유자로 세계앞에 당당히 나서게 되였다.

지난 11월 3일, 까타르의 수도 도하에서 람홍색공화국기가 높이 오르던 그 시각 리세광선수의 심장속에서는 조국의 영예를 또다시 빛내인 승리의 희열이 끓고있었다.

세계 여러 나라의 신문, 통신, 방송들은 《무서운 돌풍을 련이어 일으키고있는 세계적인 조마강자 리세광》, 《세계적인 조마강자 리세광선수는 줄곧 신비로운 존재로 간주되고있다.》 등 격찬의 목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공화국기발을 향하여 우승의 시상대에서 4. 25체육단 기계체조선수 리세광동무가 드린 승리의 경례는 바로 조국의 고지를 영용히 지켜 싸운 한 전사가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 삼가 올리는 충정의 보고였으며 자기의 가정과 고향의 친구들, 동지들과 스승들앞에 깨끗한 량심으로 드리는 떳떳한 인사였다.

체육인의 명예는 단 한개의 금메달로도 얻을수 있으며 설사 그것으로 은퇴한다 하여도 명예에는 손상이 가지 않는다. 리세광선수가 자신의 리익이나 명예만을 생각했다면 이미 은퇴하였을것이다. 하지만 그는 저 하나만을 생각하지 않았으며 그처럼 많은 부상을 당하고 그처럼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끝까지 물러서지 않았다.

한두번의 위훈이 아닌 계속혁신, 계속전진, 계속승리의 공적을 세우고도 탕개를 풀지 않고 새로운 승리만을 생각하는 리세광선수, 어머니당과 조국앞에 더 떳떳이 살고싶어하는 그의 위치는 지금도 여전히 강도높은 훈련으로 날과 날이 이어지는 훈련장이다.

《조국이여, 나의 심장이 뛰는 한 승리의 금메달을 기다려달라!》

군인의 선서마냥 피끓이는 이 뜨거운 맹세를 스스로 심장에 쪼아박고 리세광선수는 이 시각도 충정과 애국의 구슬땀을 흘리고있다. 이 깨끗한 량심은 우리의 조마왕을 조국앞에 보다 떳떳하고 장한 모습으로 나설수 있게 할것이다.



* *



우리는 리세광선수에 대한 취재과정에 우리의 체육인들이 쟁취하는 금메달 하나하나가 어떻게 간고하게 마련되는가를 잘 알게 되였다.

당과 조국, 인민의 기대를 심장에 새겨안고 순간순간을 완강한 공격정신과 비상한 창조정신, 깨끗한 량심으로 불태우는 백절불굴의 투사, 참된 애국자, 훌륭한 인간만이 조국앞에 련이은 금메달을 안아올수 있으며 온 세상이 우러러보게 우리의 공화국기를 휘날릴수 있다.

모든 체육인들이 리세광선수처럼 훌륭한 정신세계와 고상한 도덕품성, 강의한 훈련기풍으로 자신을 준비해나간다면 누구나 자기 종목에서 패권자로, 강자로 이름떨칠것이다.

어머니당과 조국은 이런 미더운 체육인들을 평화시기에 국제무대에서 공화국기발을 휘날리는 체육영웅으로 값높이 내세워주고있으며 온 나라 인민은 그들을 우리 국가의 보배로, 자랑으로 두고두고 기억한다.

본사기자 주령봉

본사기자 강효심

로동신문 기사 2018년 12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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