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포오리공장에 깃든 인민사랑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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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포오리공장에 깃든 인민사랑의 이야기
우리 공화국의 가금업부문에서 어머니공장, 굴지의 오리고기생산기지로 불리우는 광포오리공장에는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으신 백두산절세위인들의 헌신의 로고가 뜨겁게 깃들어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이민위천은 수령님의 좌우명이자 나의 좌우명이며 나의 정치철학입니다. 》
광포오리공장이 전쟁의 포화속에서 그 터전이 마련되고 전쟁이 끝난지 5일만에 창립되였다는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못할것이다.
전쟁이 승리한 다음 나라의 도처에 오리공장, 닭공장들을 일떠세워 우리 인민들에게 고기와 알을 마음껏 먹이시려는것이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숭고한 뜻이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불비쏟아지는 전화의 나날 최고사령부에서 몸소 50여마리의 닭을 키우시면서 가금의 특성과 사양관리방법을 구체적으로 연구하신것도 바로 이때문이였다.
가렬한 조국해방전쟁이 한창이던 주체40(1951)년 6월 14일에 채택된 내각결정 제295호에는 함경남도에 오리목장을 꾸릴데 대한 내용이 반영되여있다.
전쟁의 운명을 책임진 최고사령관이 최고사령부에서 닭을 키우고 오리목장건설에 대한 내각결정을 채택하였다는 사실은 우리 수령님의 혁명력사에서만 찾아볼수 있는 전설같은 이야기이다.
위인의 각별한 은정속에 첫걸음마를 뗀 그때로부터 광포오리공장에는 위대한 사랑의 서사시가 펼쳐졌다.
전쟁이 끝난지 석달도 안된 주체42(1953)년 10월 19일,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온 나라가 재더미속에 파묻혔던 그때 나루배를 타시고 넓은 광포호수를 건느시여 처음으로 공장을 찾으시였다.
그날 공장이 우리 수령님께 보여드린것은 초가이영을 한 다섯채의 자그마한 오리사와 얼마 안되는 오리 그리고 목장운영이 잘되지 않아 신심없어하는 일군들의 모습이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 모든것을 탓하지 않으시고 과거에는 돈많은 부자놈들이나 고기를 먹었기때문에 그 생산량이 얼마되지 않아도 일없었지만 인민정권하에서는 우리 인민모두에게 고기를 풍족하게 공급해야 하므로 당과 국가가 책임지고 고기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그러시면서 광포에 오리목장을 건설하는 목적은 흥남의 로동계급을 비롯한 함흥시민들에게 고기를 정상적으로 공급하자는데 있다고, 그러므로 광포오리목장의 능력은 함흥시민들의 수요를 충족시킬수 있도록 크게 조성하여야 한다고 간곡히 교시하시였다.
주체62(1973)년 11월 또다시 공장을 찾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 몸소 만년필을 드시고 평면도에 새로 확장할 직장들의 생산규모와 능력을 동그라미까지 그어가시면서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다.
그 나날 어버이수령님께서 광포오리공장에 바치신 심혈과 로고는 끝이 없었다.
당시 사양관리경험이 없었던것으로 하여 공장에 많은 난관이 조성되였을 때에도 또다시 이곳을 찾아오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공장을 추켜세울 방향과 방도를 환히 밝혀주시고 몸소 비행기로 수백개의 종자오리알까지 보내주시는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여기서 까난 종자오리가 마침내 수천마리로 불어나 우리 수령님의 축복속에 《광포종》으로 불리워 온 나라에 물결치게 되였다.
이뿐이 아니였다.
공장을 찾으실 때마다 때로는 오리의 무게도 저울에 달아보시고 리상적인 속성비육법도 가르쳐주시며 먹이원가를 낮추기 위한 대책과 방도까지 밝혀주시면서 오리는 버릴것이 하나도 없다고 오리훈제와 오리순대, 발쪽료리와 오리묵을 비롯한 가공방법까지 하나하나 가르쳐주신 어버이수령님.
공장에 대한 현지지도의 길에서 오리알은 절구어먹으면 더 맛있다고 하시면서 절구는 방법을 가르쳐주시고 주체57(1968)년 4월에는 자신께서 몸소 저택에서 시험해보신 짠알견본품을 넣은 단지까지 공장에 보내주신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주체63(1974)년 새로 확장된 광포오리공장을 돌아보시면서 오리고기가 쏟아져나오는 광경을 만족하게 바라보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광포오리공장은 《오리의 왕국》이며 함흥시민들의 고기공급기지라고 크나큰 기쁨에 넘치시여 교시하시였다.
《오리의 왕국》!
진정 어버이수령님의 인민에 대한 위대한 사랑을 떠나서 광포의 력사, 이 나라 가금업의 력사에 대하여 말할수 없다.
어버이수령님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가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 광포오리공장을 개건할데 대한 대담한 작전을 펼쳐주시였다.
주체89(2000)년 11월 도에 대한 현지지도의 길에 계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함경남도에서는 어떻게 하나 어버이수령님께서마련해주신 광포오리공장을 살려 그 덕을 보아야 한다고 교시하시였다.
돌이켜보면 1960년대부터 여러차례 공장을 찾으실 때마다 광포오리공장은 수령님께서 친히 꾸려주시고 종자오리를 보내주시였으며 여러차례에 걸쳐 현지지도하여주신 뜻깊은 공장이라고 하시면서 크나큰 믿음과 사랑을 안겨주신 위대한장군님이시였다.
주체94(2005)년 9월 14일 개건된 광포오리공장을 찾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공장의 현대화를 더욱 완성하기 위한 크나큰 사랑과 믿음을 또다시 돌려주시였다.
하기에 수십년세월이 흐른 오늘도 《오리의 왕국》을 찾는 국내외의 수많은 사람들은 수십만마리의 오리가 꽉 들어찬 여러개의 비육직장들과 종금직장들, 수백만개능력의 알깨우기장, 수천t능력의 가공직장과 랭동창고, 덩지큰 배합먹이공장과 화물렬차, 자체탄광 등 오리고기생산을 위해 필요한 모든것을 그쯘히 갖춘 이런 공장은 처음 본다고 경탄을 터뜨리고있다.
오늘도 광포오리공장의 일군들은 공장에 깃든 백두산절세위인들의 불멸의 업적을 심장깊이 간직하고 인민들에게 더 많은 고기와 알을 보내주기 위해 생산에서 혁신적앙양을 일으켜가고있다.
본사기자 조선의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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