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벽예감 638] 붉은 특공대는 죽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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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벽예감 638] 붉은 특공대는 죽지 않는다
한호석 정세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25-07-07
<차례>
1. 화염과 폭음이 지축을 흔든 반제공동전선
2. 전선에 반원형으로 배치된 특수작전여단들
3. 은폐물 없는 개활지에서 적진 향해 돌격했다
4. 달빛 없는 밤에 붉은빛 비추는 손전등 들었다
5. 지뢰밭 돌파하고, 무인기 격추했다
6. 목숨을 버릴지언정 항복하지 않았다
1. 화염과 폭음이 지축을 흔든 반제공동전선
‘조선과 로씨야 사이의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 체결 1주년을 맞은 2025년 6월 29일 올가 류비모바(Olga B. Lyubimova) 로씨야 문화상을 단장으로 하는 로씨야 문화성 대표단이 로씨야 예술단을 인솔하고 평양을 방문했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의하면, 김정은 총비서는 그날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본부 청사에서 류비모바 문화상을 접견하고, “문화 분야에서의 교류협력과 관련한 전망적인 계획들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고 한다. 그날 오후 로씨야 예술단의 방문 공연과 조선 예술인들의 답례 공연이 각각 다른 공연장에서 차례로 진행되었다. 김정은 총비서는 류비모바 문화상과 함께 그 두 공연에 연속 참석하였다.
뜻밖에도 조선 예술인들의 답례 공연 배경 화면에 전투 장면이 나타났다. 꾸르스크 전투에 참가한 조선인민군 파병부대의 전투장면들을 촬영한 영상들이다. 꾸르스크 전투에 관해 알아보자.1) 꾸르스크주(Kursk Oblast)는 로씨야 남서부에 있다. 우크라이나군 정예부대들과 극우무장대들 40,000명이 우세한 병력과 무장장비를 동원해 꾸르스크주를 기습, 침공한 것으로 하여 전투가 시작되었다. 꾸르스크 전투는 2024년 8월 6일부터 2025년 4월 26일까지 8개월 20일 동안 계속되었다.
2) 2024년 8월 9일 미 제국 언론매체 ‘폴리티고(Politico)’에 실린 탐사보도 기사는 미 제국이 우크라이나군의 꾸르스크 침공을 배후에서 사주했다는 사실을 세상에 폭로했다. 우크라이나군은 미 제국에 넘겨준 무기를 장비했고, 미 제국군 훈련 교관 밑에서 작전연습을 실시했고, 미 제국군으로부터 침공 지령을 받았다. 제국의 군대가 괴뢰국의 군대를 앞세워 무력 침공을 자행한 전쟁 범죄들은 세계 전쟁사에 무수히 기록되었다. 그런 역사적 사실을 상기하면, 미 제국의 지령을 받고 꾸르스크지역을 침공한 우크라이나군이야말로 괴뢰군의 전형이라는 사실이 자명해진다.
3) 꾸르스크 전투는 2025년 7월 현재 계속되고 있는 로씨야-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가장 치열한 격전이었다. 2025년 3월 17일 영국 언론매체 ‘BBC 뉴스’ 보도에 의하면, 꾸르크스 전투에 참가한 우크라이나 괴뢰군 전투원은 파괴된 수백 대의 차량과 장갑차들이 도로에 즐비하고, 수많은 부상병과 전사자들이 쓰려져 있었던 전투 현장이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과 같았다”라고 말했다. 로씨야군이 발표한 우크라이나 괴뢰군 사상자는 69,700명이고, 우크라이나 괴뢰군이 발표한 로씨야군 사상자는 62,400명이다. 격전이 계속된 8개월 20일 동안 양측 사상자는 132,100명에 이르렀다. 조선인민군 파병부대는 그런 죽음의 격랑 속에 용감히 뛰어들었다.
4) 꾸르스크 전투에 참가한 조선인민군 파병부대는 로씨야군에 불리한 전세를 역전시켰고, 꾸르스크 전투를 승리로 결속하는 데서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 우크라이나 괴뢰군 제225독립강습연대 연대장 올레흐 쉬리아이에브(Oleh Shyriaiev)는 2025년 6월 16일 미 제국 언론매체 ‘NPR’에 실린 자신의 전투 체험담에서 “그들(조선인민군 전투원들)은 꾸르스크에서 임무를 완수했다. 만일 조선이 지원해주지 않았더라면, 로씨야는 자기 영토를 되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5) 꾸르스크 전투는 조선인민군이 역사상 처음으로 유럽지역 반제공동전선에 참가한 전투였다. 지난 시기 조선인민군은 아시아지역 반제공동전선에 참가한 적은 있었지만, 유럽지역 반제공동전선에 참가한 것은 꾸르스크 전투가 처음이다. 조선은 1967년 윁남민주공화국을 지원해주기 위해 전투비행사들과 공병부대를 파병했었고, 1973년 10월 에짚트와 수리아를 지원해주기 위해 제4차 중동전쟁에 전투비행사들을 파병했었다.
6) 꾸르스크 전투는 조선과 로씨야의 동맹관계를 혈맹관계로 끌어올렸다. 혈맹은 동맹의 최고 발전 단계다. 조선인민군과 로씨야군이 꾸르스크 전투에서 함께 싸우며 피를 흘린 것은, 두 나라가 반제공동전선에서 혈맹관계를 맺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앞으로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로씨야가 “지체 없이” 파병하여 조선인민군과 함께 한미연합군에 맞서 싸울 것으로 예상된다.
7) 2025년 1월 28일 미 제국 언론매체 ‘CNN’이 보도한 동영상 화면은 꾸르스크 전투에서 목숨을 잃은 조선인민군 전사자의 유품들을 보여주었는데, 전사자가 남긴 수첩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미제와 괴뢰 한국 쓰레기들에게 우리 특수작전군 병사들이 죽음의 철추를 내릴 그날은 멀지 않았음을 이번 전투를 통하여 세계 앞에 똑똑히 보여주리라.” 이런 사정을 보면, 꾸르스크 전투에 참가한 조선인민군 파병부대는 한미연합군에 대한 적개심을 가지고 우크라이나 괴뢰군을 공격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전선에 반원형으로 배치된 특수작전여단들
2025년 1월 26일 우크라이나 온라인 매체 ‘이보케이션 인포(evocation.info)는 조선인민군 파병부대의 구성과 전선 배치에 관한 정보를 공개하였다. 그들이 공개한 정보에 의하면, 조선인민군 파병부대는 제91특수작전여단, 제92특수작전여단, 제93특수작전여단, 제94특수작전여단으로 구성되었다. 1개 특수작전여단은 3,000명이므로, 꾸르스크 전선에는 4개 특수작전여단 12,000명이 배치된 것으로 추산된다. 그들이 공개한 정보에 의하면, 조선인민군 제91특수작전여단과 제92특수작전여단은 꾸르스크 지역 북쪽에 동서 방향으로 배치되었고, 제93특수작전여단은 동쪽에 배치되었고, 제94특수작전여단은 동남쪽에 배치되었다. 지도를 보면, 조선인민군 4개 특수작전여단은 인구가 5,000명 정도 되는 마을 숫쟈(Sudzha)를 중심에 두고 북쪽-동쪽-동남쪽을 잇는 반원형으로 배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인민군 파병부대가 꾸르스크 전선에서 어떻게 싸웠는지를 말해주는 정보는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 하지만 꾸르스크 전투에서 전사한 조선인민군 장병들이 남긴 유품들은 치열했던 전투상황을 말해준다. 우크라이나 괴뢰군은 조선인민군 전사자들의 유품을 전투 현장에서 수거해 언론에 공개했다. 또한 꾸르스크 전투에 참가한 우크라이나 괴뢰군 지휘관들과 전투원들의 체험담을 들어보면, 조선인민군 파병부대가 어떻게 싸웠는지 알 수 있다. 그들의 전투 체험담은 미 제국 주요 언론매체들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2025년 1월 10일 미 제국 언론매체 ‘NK 인싸이더(Insider)’는 꾸르스크 전투에서 전사한 조선인민군 제94특수작전여단 군관이 자기 여단의 전투경험과 교훈에 관해 서술한 문서를 공개했다. ‘94려단 전투경험과 교훈’이라는 제목의 문서에는 “작전 전투 2일간 전투원들은 적들의 포격이 우박치고 자폭 무인기가 벌떼처럼 달려드는 속에서도 희생정신을 발휘하면서 맹호와 같이 전장을 달려 최신 무기로 장비한 적들을 전율케 하고 쁠레호브지역을 해방하였다”라고 기록되었다. 꾸르스크주 쁠레호브(Plekhov) 지역을 해방한 전투는 조선인민군 파병부대가 참전한 이후 첫 번째 대승을 거둔 전투였다.
로씨야-우크라이나 전쟁의 특징은 무인기를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것이다. 그 전쟁에서 가장 치열했던 꾸르스크 전투에서도 무인정찰기와 자폭 무인기가 중요한 전투 수단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무인정찰기가 적의 위치와 동향을 신속, 정확하게 포착하면, 자폭 무인기를 발진시키거나 포격을 가해 적을 소멸하는 작전이 계속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대대급 또는 중대급 전투 병력이 집결하면, 그들의 위치가 적의 무인정찰기에 노출되고, 곧바로 자폭 무인기 공격이나 집중적인 포격을 받게 된다. 그래서 조선인민군 파병부대 지휘부는 꾸르스크 작전환경에 맞춰 기본 전투단위를 22명으로 축소한 타격대로 재편했다. 2025년 3월 22일 ‘주간조선’은 조선인민군 파병부대 제22타격대에서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문건들을 공개했다. 문건을 보면, 제22타격대는 다음과 같이 편성되었다.
타격대장 – 중위 최대연
정치지도원 – 중위 조철호
지도성원 – 소좌 김영주
군의 – 대위 리관호
제1조 – 전투조장을 포함해 6명
제2조 – 전투조장을 포함해 6명
제3조 – 전투조장을 포함해 6명
화력전과 기동전을 결합한 전통적인 공격 전술은 꾸르스크 전선에서 통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화력전과 기동전을 준비하기 위해 대규모 전투 병력과 무장 장비를 집결시키면, 적의 무인정찰기에 노출되어 집중 타격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규모 전투 병력이 참가한 돌격전과 습격전을 결합시킨 새로운 공격 전술로 전환해야 했다. 그런데 적의 무인정찰기가 머리 위에 날아다니고, 지뢰지대가 앞을 가로막고, 어느 순간에 적의 정밀타격을 받을지 알 수 없는 위험천만한 전선에서 벌어지는 돌격전과 습격전은 고강도 전술훈련으로 다져진 강한 전투력을 요구했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담력과 용맹성을 요구했다. 그런 강한 전투력과 용맹성을 가진 정예부대가 그리 많지 않은 로씨야군은 꾸르스크 전선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런 전황을 간파한 김정은 총비서는 돌격전과 습격전 전술훈련을 장기간 연마하고, 육탄정신과 자폭 정신으로 무장한 특수작전여단을 꾸르스크 전선에 파병하였다.
육탄정신과 자폭 정신으로 무장한 조선인민군 특수작전여단이 꾸르스크 전선에 도착한 이후 로씨야군은 후방으로 물러났고 조선인민군 파병부대가 최전방에서 돌격전과 습격전을 전개했다. 조선인민군 특수작전여단이 돌격전과 습격전으로 적진을 격파하면, 로씨야군이 출동해 뒤처리를 맡았다. 우크라이나 괴뢰군 제225독립강습연대 연대장 올레흐 쉬리아이에브는 2025년 4월 8일 미 제국 언론매체 ‘ABC 뉴스’에 실린 자신의 전투 체험담에서 “그들(조선인민군 전투원들)은 언제나 공격했고, 로씨야군은 조선 병사들이 장악한 지대를 안정화(secure)했다”라고 말했다. 2025년 1월 22일 ‘뉴욕타임스’가 보도한 우크라이나 괴뢰군의 전투 체험담에 의하면, 조선인민군 전투원들은 적진을 점령하면, 로씨야군에 점령지를 인계하고, 후방으로 물러나 다음 전투를 준비한다고 한다.
3. 은폐물 없는 개활지에서 적진 향해 돌격했다
꾸르스크 전투에 참가한 조선인민군 특수작전여단은 육탄 정신과 자폭 정신을 발휘하는 용맹무쌍한 돌격전으로 우크라이나 괴뢰군을 전율케 했다. 2025년 1월 22일 ‘뉴욕타임스’ 보도기사에서 우크라이나 괴뢰군 무인정찰기 조종수는 다음과 같은 전투 체험담을 들려주었다.
“그들(조선인민군 전투원들)은 눈 덮인 들판에서 작은 흑점들처럼 보였다. 그들은 우크라이나군 진지 부근까지 약 8킬로미터를 걸어와 돌격대형을 갖추었다. 그들은 50명 정도 되었다. 그들 가운데 몇 명은 (돌격전에서) 부상을 당했지만 그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들은 증원부대를 기다리면서 계속 공격했다. 돌격조는 5~8명으로 편성되었다. 그들은 오직 앞으로 나아갔다. 그것은 열의와 규율과 엄격한 훈련에 의한 행동이었다.”
2025년 1월 28일 ‘CNN’이 보도한 동영상 화면은 우크라이나 괴뢰군 제6특수목적연대가 무인정찰기로 촬영한 조선인민군 전투원들의 돌격 장면을 보여준다. 촬영거리가 너무 멀어서 화면에는 전투원들의 모습이 점으로 보인다. 조선인민군 전투원 130여 명은 우크라이나 괴뢰군이 구축한 7개 진지를 향해 여러 방향에서 매우 빠른 속도로 돌격했다. 각각 20명씩 편성된 7개 타격조가 우크라이나 괴뢰군 7개 진지를 동시에 공격한 것이다. 우크라이나 괴뢰군 제8특수목적연대 전투원은 2025년 6월 16일 ‘NPR’에 실린 전투 체험담에서 “2024년 12월 조선 병사 20~30명이 무인기에 의해 포착될 수 있는 들판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튼튼했고, 빨랐고, 재빠르게 기동했다. 그것은 로씨야군보다 훨씬 더 많은 훈련을 받은 전투 행동이었다”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괴뢰군 제8특수목적연대 전투원은 2025년 4월 8일 미 제국 언론매체 ‘월스트릿저널’에 실린 전투 체험담에서 “그들은 돌격하면서 조선말로 (전투 구호를) 외쳤다. 함성이 엄청났다”라고 말했다. 2025년 4월 8일 ‘월스트릿저널’에 실린 우크라이나 괴뢰군 전투원들의 체험담에 의하면 “조선 병사들은 바로 옆에서 전우가 쓰러져도 계속 돌격했고, 공격을 받으면 잠시 뒤로 물러섰다가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또다시 돌격했다”라고 한다. 2025년 1월 11일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한 우크라이나 괴뢰군 전투원들의 체험담에 의하면, 꾸르스크 전투에 참가한 조선인민군 전투원들은 그들의 머리 위에 적의 무인기가 날아다니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으며, 심지어 자기 전우들이 바로 옆에서 부상으로 쓰러지거나 죽어도 진격을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을 은폐할 지형지물이 없는 개활지에서 벌어지는 돌격전의 승패를 좌우하는 것은 돌격 속도다. 돌격 속도가 늦으면 적의 공격을 받을 수 있고 돌격 속도가 빠르면 적의 공격을 피할 수 있다. 그래서 꾸르스크 전투에 참가한 조선인민군 특수작전여단 돌격대원들은 자신의 몸에서 무거운 장비를 내려놓아야 했다. 우크라이나 괴뢰군 중대장은 2025년 1월 28일 ‘CNN’에 실린 자신의 전투 체험담에서 “그들(조선인민군 전투원들)이 우크라이나군 진지를 향해 매우 빠른 속도로 돌격하려면, 무장의 무게를 가볍게 해야 하므로, 무거운 방탄모와 방탄조끼를 벗어놓고 돌격한다. 그들은 매우 빠르게 움직이고, 매우 빨리 달린다. 그들의 기동력은 뛰어나다. 무인기로 그들을 공격하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전통적인 기동전에서는 탄약 공급 차량이 기동부대 후미에 따라붙어 탄약을 공급해주지만 돌격전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고 전투원들이 각자 탄약을 챙겨야 한다. 꾸르스크 전투에 참가한 조선인민군 특수작전여단 전투원들은 전투 배낭에 전투식량 대신 탄약을 가득 넣고 출전했다. 2025년 1월 28일 ‘CNN’ 보도에서 우크라이나 괴뢰군 중대장은 조선인민군 전사자가 남긴 전투 배낭을 취재기자에게 보여주었는데 그 배낭에는 많은 탄약과 작은 생수병 몇 개가 들어 있었다. 2025년 1월 27일 영국 언론매체 ‘스카이 뉴스(Sky News)’에 실린 우크라이나 괴뢰군 특수목적연대 제1전투대대 전투원의 전투 체험담에 의하면, 그들이 수거한 조선인민군 전사자의 전투 배낭에는 많은 탄약과 초콜릿 몇 개가 들어 있었다고 한다. 초콜릿은 강추위 속에서 급격히 떨어지는 체온을 유지하기 위한 비상 식량이다.
4. 달빛 없는 밤에 붉은빛 비추는 손전등 들었다
우크라이나 괴뢰군이 집중 타격으로 조선인민군 특수작전여단 전투원들의 돌격전을 잠시 저지하는 경우, 조선인민군 특수작전여단은 돌격전을 습격전으로 전환했다. 원래 조선인민군 특수작전군의 전문분야는 야간 습격전이다. 달빛도 없는 캄캄한 밤에 적진의 측면이나 후미로 우회기동해 습격하는 것이다. 2025년 1월 12일 미 제국 언론매체 ‘AP통신’에 실린 우크라이나 괴뢰군 전투원들의 체험담에 의하면 3~5미터 간격으로 전투 대오를 형성한 조선인민군 3개 습격조가 붉은빛을 비추는 손전등을 들고 야간 습격전을 전개했다고 한다. 2025년 1월 10일 ‘NK 인싸이더’는 꾸르스크 전투에 참가한 조선인민군 파병부대 제94특수작전여단 군관의 유품 중에서 「94려단 전투경험과 교훈」이라는 제목의 문서를 공개했는데, 이 문서에는 습격전에 관한 전술 방침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다.
1) “습격 제대를 습격대, 엄호대, 수색대, 보장대, 반장갑방어대로 편성한다.” 보장대는 습격조에 전투물자를 공급해주고, 반장갑방어대는 발사관(유탄발사기)으로 적의 땅크와 장갑차를 공격한다.
2) “대대급 습격부대들의 구성은 18명으로 구성된 9개 정도의 습격조를 조직한다.”
3) “습격 개시 전에 정찰 및 습격대로 적 종심의 무인기, 포병, 땅크를 소멸한다.”
4) “1습격대가 적 방어거점을 공격하여 방어로 넘어간 후 견지 임무를 수행할 때 2습격대가 1습격대의 견지 계선을 지탱점으로 하여 다음 적 방어거점을 공격하는 방식으로 습격 행동을 조직한다.”
5) “습격 행동은 주로 어둠을 리용하여 진행하는데, 새벽 6~9시, 저녁 5시 30분~9시까지 어슬어슬한 어둠을 이용하여 습격 행동을 진행한다.”
위에 인용한 「94려단 전투경험과 교훈」이라는 제목의 문서에는 “출발 대기 구역에서 공격출발진지까지 1습격대는 50킬로미터, 7습격대는 41킬로미터, 10습격대는 43킬로미터를 은밀히 진출하여 적이 상상하지 못하는 주거 구역의 북쪽과 동서쪽, 수림지에서 불의에 적들을 공격함으로써 31시간 만에 신속히 전투를 결속할 수 있었다”라고 기록되었다. 이것은 꾸르스크 전선에서 장거리를 은밀히 행군해 적진에 침투한 조선인민군 제94특수작전여단 3개 습격대가 3개 방면에서 습격전을 벌여 적을 섬멸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5. 지뢰밭 돌파하고, 무인기 격추했다
꾸르스크 전선에서 조선인민군 특수작전여단의 돌격전을 가로막은 장애물은 대인지뢰였다. 우크라이나 괴뢰군은 수많은 대인지뢰를 공중에서 살포해 드넓은 지뢰지대를 조성해놓았다. 우크라이나 괴뢰군 제225독립강습연대 연대장 올레흐 쉬리아이에브는 2025년 6월 16일 ‘NPR’에 실린 전투 체험담에서 “우리는 지뢰를 매설했다. 우리는 그들이 우리를 공격하기 시작하면 우리가 매설한 지뢰밭에 굴러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라고 말했다.
전통적인 기동전에서는 지뢰 제거 차량을 앞세우고 진격하는데, 꾸르스크 전선에서는 적의 무인정찰기에 쉽게 노출되어 공격을 받는 지뢰 제거 차량을 동원할 수 없었다. 그런 사정을 간파한 우크라이나 괴뢰군은 꾸르스크 전선에 15미터 간격으로 대인지뢰를 매설했다. 꾸르스크 전선의 돌격전은 죽음을 각오하고 지뢰지대를 돌격 속도로 돌파해 적진을 공격해야 하는 전투였다. 육탄 정신과 자폭 정신으로 무장한 조선인민군만이 그런 극한상황의 전투를 할 수 있었다.
2025년 1월 22일 ‘뉴욕타임스’ 보도기사에서 우크라이나 괴뢰군 무인정찰기 조종수는 처음에 표준 매설법에 따라 대인지뢰를 15미터 간격으로 꾸르스크 전선에 파묻었지만 효과가 없어서 5미터 간격으로 조밀하게 파묻었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괴뢰군은 꾸르스크 전선에 5미터 간격으로 대인지뢰를 파묻었지만, 조선인민군 특수작전여단 전투원들은 그처럼 조밀한 지뢰밭도 돌파했다. 지뢰 폭음이 울리는 죽음의 지뢰밭도 조선인민군의 돌격전을 가로막지 못했다.
꾸르스크 전투에서 조선인민군 특수작전여단을 가로막으려고 한 장애물은 죽음의 지뢰밭만이 아니었다. 우크라이나 괴뢰군이 날려 보낸 4축 정찰무인기(quadrocopter reconnaissance drone)와 제1인 시야 자폭 무인기(first-person-view suicide drone)도 있었다. 회전날개가 4개 달린 4축 정찰무인기는 밤낮으로 적정을 정찰했고, 회전날개가 4개 달린 제1인 시야 자폭 무인기는 폭탄 한 발을 매달고 날아가 적을 공격했다. 제1인 시야 자폭무인기는 열린 출입구나 환기구를 통해 날아 들어가 내부에서 폭발했다. 그래서 참호, 교통호, 은신처, 안가, 지하 시설 안에서도 안심할 수 없었다.
꾸르스크 전투에 참가한 조선인민군 특수작전여단은 밤낮으로 계속되는 무인기 정찰과 무인기 공격에 맞서 싸웠다. 우크라이나 괴뢰군 제61기계화보병여단 공중정찰부대 지휘관은 2025년 6월 16일 ‘NPR’에 실린 전투 체험담에서 “우리는 다른 무인기들보다 더 요란한 소리를 내는 무인기를 사용하는데, 로씨야군은 이 무인기를 무서워한다. 이 무인기가 로씨야군 부대에 접근하면 그들은 뿔뿔이 흩어져 버린다. 그런데 조선 병사들은 무인기를 무서워하지 않고 작전 임무를 계속 수행한다”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괴뢰군 제225독립강습연대 연대장 올레흐 쉬리아이에브는 2025년 4월 8일 ‘ABC 뉴스’에 실린 전투 체험담에서 “그들(조선인민군 전투원들)은 신체적으로 최상의 준비를 갖추었다. 그들은 명사수다. 그들은 무인기를 상대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총을 쏴 무인기를 격추한다“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괴뢰군 무인기 조종수는 2025년 6월 16일 ‘NPR’에 실린 전투 체험담에서 “조선 병사들은 들판에 침착하게 서서 우리 무인기를 향해 매우 정확하게 총을 쏜다. 그들은 내가 조종하는 무인기를 여러 차례 격추했다”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괴뢰군 대대장은 2025년 1월 28일 ‘CNN’에 실린 전투 체험담에서 “그들(조선인민군 전투원들)은 몇백 미터 거리에서 날아오는 무인기를 격추하는 사격술을 보여주었다. 그들이 고도의 사격훈련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 2025년 4월 28일 로씨야 언론매체 ‘따쓰통신’ 보도에 의하면, 꾸르스크 전투에 참가한 조선인민군 파병부대 전투원들은 12구경 산탄총을 사용해 4축 무인기를 격추했다고 한다. 2025년 1월 10일 ‘NK 인싸이더’는 꾸르스크 전투에 참가한 조선인민군 제94특수작전여단 군관의 유품 중에서 「94려단 전투경험과 교훈」이라는 제목의 문서를 공개했는데, 이 문서에는 “적들이 무인기로 아군의 이동을 정찰하고 포병사격을 호출하여 점타격을 하는 정황이 발생하였을 때, 적 무인기에 대한 유인 및 집중사격을 조직하여 많은 무인기들을 격추시켰다”라고 기록되었다.
6. 목숨을 버릴지언정 항복하지 않았다
꾸르스크 전투에서 우크라이나 괴뢰군은 자기들이 상상하기 힘든 육탄 정신과 자폭 정신으로 무장한 조선인민군 특수작전연대의 전투력을 목격하고 공포와 충격을 느꼈다. 쿠르스크 전투에서 조선인민군 특수작전연대는 무비의 담력과 용맹성을 발휘한 돌격전과 습격전으로 우크라이나 괴뢰군에 궤멸적 타격을 가했다. 조선인민군 특수작전연대의 전투력을 말해주는 체험담을 들어보자.
우크라이나 괴뢰군 제6특수목적연대 지휘관은 2025년 1월 28일 ‘CNN’에 실린 전투 체험담에서 “우리는 그들(조선인민군 전투원들)을 투항시키려고 온갖 시도를 다 해보았지만, 그들은 전투를 계속했다”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괴뢰군 제225독립강습연대 연대장 올레흐 쉬리아이에브는 2025년 4월 8일 ‘ABC 뉴스’에 실린 전투 체험담에서 “그들(조선인민군 전투원들)은 항복하지 않았다. 우리가 그들을 포로로 잡은 경우는 없었다. 우리는 부상병을 몇 명 사로잡았지만, 그들은 심한 부상으로 곧 죽었다”라고 말했다.
2025년 1월 22일 ‘뉴욕타임스’ 보도기사에서 우크라이나 괴뢰군 장성급 지휘관 올렉싼드르 씨리스키(Oleksandr Srysky)는 꾸르스크 전투에 참가한 조선인민군 전투원들이 “높은 열의를 가졌고, 잘 훈련되었으며, 용감하다”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괴뢰군 제225독립강습연대 연대장 올레흐 쉬리아이에브는 2025년 4월 8일 ‘ABC 뉴스’에 실린 전투 체험담에서 “조선 병사들은 충성심이 강해서 전투에서 영웅적으로 전사하는 것을 영예로 여긴다“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괴뢰군 제61기계화보병여단 공중정찰부대 지휘관은 2025년 6월 16일 ‘NPR’에 실린 전투 체험담에서 “그들(조선인민군 전투원들)은 자기 주변에 포탄이 떨어져도 피하지 않는다. 그들은 무인기가 날아와도 피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위에 서술한 체험담들은 꾸르스크 전투에 참가한 조선인민군 전투원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불사조처럼 싸웠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2025년 1월 22일 ‘뉴욕타임스’에 실린 전투 체험담에서 우크라이나 괴뢰군 전투원들은 전투에서 입은 심한 부상으로 피투성이가 되어 쓰려진 조선인민군 전투원에게 다가갔을 때, 그는 수류탄을 턱으로 고정시키더니 성한 손으로 안전핀을 뽑아 자폭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괴뢰군 제61기계화보병여단 지휘관은 2025년 6월 16일 ‘NPR’에 실린 전투 체험담에서 “우리는 전투에서 부상을 당해 대오에서 떨어진 조선 병사 한 명이 폐건물 안에 들어갔다는 알고, 그를 포로로 붙잡으려고 했다. 우리 병사들이 그를 붙잡으려고 했으나, 그는 담을 넘어 사라졌다. 나중에 우리는 부상 당한 그가 총과 전투 배낭을 들고 절뚝거리며 뛰어가고 있는 모습을 (무인정찰기로) 포착했다. 우리 병사들이 그에게 다가갔고, 그는 구석에 몰렸다. 그는 우리 병사들이 자기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수류탄을 꺼내 자폭했다”라고 말했다. 2025년 4월 8일 ‘월스트릿저널’에 실린 전투 체험담에서 우크라이나 괴뢰군 전투원은 “2024년 12월 꾸르스크에서 우크라이나군 특수작전부대에 포위된 조선 병사는 ‘김정은 장군 만세!’를 외치며 수류탄을 터뜨려 자폭했다”라고 증언했다. 2025년 1월 28일 ‘CNN’이 보도한 동영상 화면에는 전투 중에 심한 부상을 입고 쓰려진 조선인민군 전투원에게 우크라이나 괴뢰군 전투원들이 총구를 겨누고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장면이 나온다. 그들은 땅바닥에 쓰러져 움직이지 못하는 조선인민군 전투원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아보려고 그의 발목을 잡아당겼다. 그 순간 그는 “김정은 장군 만세!”를 외치며 수류탄을 터뜨려 자폭했다. 2025년 1월 16일 우크라이나 언론매체 ‘끼이우 인디펜던트(Kyiv Independent)’에 실린 전투 체험담에서 우크라이나 괴뢰군 특수목적연대 전투원들은 조선인민군 전투원을 포로로 붙잡으려고 했지만, 그는 “조선로동당 만세!, 김정은 장군 만세!”를 외치면서 수류탄을 터뜨려 자폭했다고 증언했다.
육탄 정신과 자폭 정신으로 무장한 조선인민군 특수작전연대의 용맹성을 목격하고 기겁한 우크라이나 괴뢰군은 그처럼 용맹한 군대를 상대로 싸우다가 전멸할 것을 우려해 나중에는 슬슬 피해 다녔다. 우크라이나 괴뢰군 제225독립강습연대 연대장 올레흐 쉬리아이에브는 2025년 6월 16일 ‘NPR’에 실린 전투 체험담에서 “나는 우리 병사들에게 조선인민군과 직접 전투하는 것을 피하라고 지시했다”라고 말했다.
2025년 4월 28일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는 꾸르스크 전투가 승리적으로 종결되었음을 선언한 문서에서 꾸르스크 전투에 참가한 조선인민군 파병부대가 “높은 전투 정신과 군사적 기질을 남김없이 과시하였으며 대중적 영웅주의와 무비의 용감성, 희생성을 발휘하여 우크라이나 신나치스세력을 섬멸하고 로씨야 련방의 령토를 해방하는 데 중대한 공헌을 하였다”고 치하하면서 “불멸의 위훈을 세운 특수작전 그루빠 지휘관들과 전투구분대 전체 군관, 하사관, 병사들에게 가장 열렬하고 뜨거운 축하를 보냈다”라고 하였다.
그 문서에는 김정은 총비서가 붉은 특공대에 주는 최상의 평가가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자랑스러운 아들들의 영용성을 칭송하여 우리 수도에는 곧 전투위훈비가 건립될 것이며 희생된 군인들의 묘비 앞에는 조국과 인민이 안겨주는 영생 기원의 꽃송이들이 놓일 것이다. 강자의 위대한 명함과 승리자의 영광을 떨친 군인들의 전투정신과 영웅성은 후세토록 존경과 명예의 높은 단상에서 길이 빛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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