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백현사람들 (김정필)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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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백현사람들
김정필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친솔하신 조선인혁명군 주력부대가 장백지방에 진출한것은 1936년 8월말경이였다.
장백지방에 진출한 인민혁명군부대들은 백두산기슭에 근거지를 설정하고 광활한 지역에서 무장투쟁을 전개하고있었다.
인민혁명군의 장백지방진출에 앞서 김일성동지께서는 우선 인민혁명군내의 정치간부들을 장백일대의 군중들속에 깊이 침투시켜 당조직을 내오는 한편 광범한 력량을 결속시키기 위하여 조국광복회망을 확장하였다. 그리하여 장백일대의 대중들의 정치적지반은 일층 강화되였다.
이와 같이 하면서 김일성동지께서는 인민혁명군주력부대를 이끄시고 국경지대에서 일련의 큰 작전들을 수행하심으로써 적들에게 심대한 타격을 가하였으며 항일투쟁에로 인민대중의 정치적열의를 불러일으키였다.
1936년 9월초 장백현 대덕수 및 소덕수전투를 서막으로 하여 장백현 반절구전투, 20도구전투, 2도강전투들과 그해 적들의 《동기대토벌》공세를 격파하기 위한 곰의골, 홍두산, 도천리, 리명수전투들은 바로 그 대표적인 전투들이였다.
장백지방에로의 인민혁명군의 진출과 국경지대 여러 전투들에서의 승리는 지방인민들을 반일투쟁에로 더욱 강력히 고무추동하였으며 그후 인민혁명군에 대한 그들의 원호사업은 일층 강화되였다.
1937년봄 김일성동지의 친솔하에 무송현 동강지대에 들어가 겨울을 난 주력부대가 아직 장백현지방에 나오지 않았을 때였다.
15명의 유격대원으로 구성된 소부대는 장백현 지양개치기에 밀영을 짓고 지방에 나가 정치공작도 하고 경제모연공작도 하였다.
나는 이때 군수관의 직무에 있으면서 주로 경제모연공작을 담당하였다.
이때에 적들은 지난 《동기대토벌》에 수만명의 병력을 집중시켜 발광하였으나 번번이 실패하고 인민혁명군주력부대들의 행적을 몰라 안달아 발광하면서 인민들에게 갖은 행패를 다하였다.
그러나 인민들은 굴함없이 자기의 모든 힘을 다하여 인민혁명군과 함께 싸웠다.
당시 조국광복회조직망은 기묘하게 조직되였었다. 적지 않은 동네의 조국광복회 지회조직들은 적들의 통치기구를 리용하였다. 그리하여 조국광복회 지회회장이 부락촌장을 겸하고있는곳이 많았다. 조국광복회 회원인 촌장들은 적들의 통치기구의 촌장이란 합법적인 직무를 리용하면서 인민들에게 정치적영향을 주는 한편 인민혁명군에 물심량면의 원호사업을 조직하였다.
얼핏 보기에는 부락주민들이 적들이 임명한 촌장을 중심으로 결속된것 같았다. 그러나 사실은 혁명조직의 주위에 뭉친것이였다.
그리하여 장백일대의 주민들은 거의 매일과 같이 쌀, 피복, 신발 등의 짐을 지고 인민혁명군부대를 찾아갔다.
이러한 형편에서 군중들의 혁명열의를 조직적으로 발동시키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였다. 나는 이를 위한 사업의 한 방법으로 적의 통치기구를 리용할것을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밀영에서 련대정치위원의 지도하에 각 촌장들에게 보내는 정식공문을 작성하였다.
공문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였다.
강도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고 조선의 독립과 인민의 해방을 위한 성스러운 싸움에 궐기한 조선인민혁명군의 승리를 위하여 어느날까지 어느 지점에 얼마만한 량의 물자를 반드시 가져오라고 쓰고 공문의 끝에 조선인민혁명군 군수관 김용수라고 새긴 도장을 찍었다. 공문을 작성한것은 적들에게 부락 촌장들이 혁명군의 원호사업을 조직하고도 피할수 있는 구실을 주며 인민들의 원호사업을 조직적으로 발동시키자는데 있었다.
나는 그때에 작성한 공문을 장백현관하 2도강, 지향개, 대덕수, 소덕수, 천상수리, 도천리, 13도구, 14도구, 우럭골, 반절구, 요방자 등 20여개의 부락에 하달하였다.
공문을 받은 조국광복회 회원인 촌장들은 표면에서는 생명의 위험에 못이기는척하면서 비밀리에 조국광복회조직들을 통하여 인민들에게 정치사업을 진행하였다.
항일유격대의 혁명적영향을 받은 인민들은 모든 힘을 다하여 자기의 혈육과 같이 사랑하는 우리 혁명군에 정성어린 원호물자를 조직적으로 보내주군 하였다.
1937년봄 1~2개월동안 장백현내 20여개의 툰에서 들어온 원호물자만 하여도 쌀 10여섬과 광목 100여필, 지하족 200여컬레, 초신 300여컬레에 달하였다.
나는 수많은 장백현사람들중에서도 항일유격대대렬에 참가한 300여명의 애국적청년들과 이해봄에 인민혁명군의 원호물자를 지고온 요방자부락 로인들을 잊을수 없다.
이해 4월 어느날, 나는 요방자부락에서 원호물자가 들어올 날자가 되여 약속된 지점인 큰골(14도구)치기에 이르렀다.
나는 산등성이에 올라 사방을 살피고있었다. 한참만에 멀리 아래 물홈타기로부터 올라오는 짐군들이 보였다. 틀림없는 요방자부락사람들이였다.
나는 그들을 반겨맞아 물홈으로 내려갔다.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하고 나는 인사하였다. 짐군은 모두 5명이였다. 키 큰 중년, 장년도 있으며 로인도 있었고 젊은 청년도 있었다.
그들은 나를 보고 옛친구를 만난듯이 동무 혹은 자네 하면서 얼마나 고생을 하는가고 인사하였다.
나는 먼저 제일 나이많은 로인의 짐부터 내려놓았다. 먼저 짐을 내려놓은분들은 다른 사람의 짐을 내려주었다. 짐을 내리며 그들은 사방을 유심히 살펴보고있었다.
나는 짐들을 은페지에 운반하였다. 해는 벌써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하였다.
모두 각기 휴식하기 좋은 자리들을 잡아앉았다.
나는 모두들 휴식도 하고 식사도 하라고하였다. 그리고 부락사람들을 인솔하여온 로인을 딴곳으로 데리고가서 부락지형이며 지고온 짐의 물품내용들을 물었다.
그는 품속깊이에서 글쪽지를 내놓으면서 촌장이 보내더라고 하였다.
내용을 읽어보니 물품은 부락인민들이 한푼두푼 모은 돈으로 산것도 있었으며 돈을 못내는 부락인민들이 직접 낸것도 있었다.
6필의 광목과 40컬레의 지하족, 수십컬레의 각반 등 지성어린 수많은 물품들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편지에는 물품을 운반하여온 인민들에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져있었다. 그들은 서로 피차의 래력을 자세히 모르나 3명은 조국광복회 회원이라는것이였다. 끝으로 우리들의 전투승리를 축원하는 말과 인수하였다는 수표를 하여보내라는것이 적히여있었다.
그 로인은 나에게 이번에 장군님을 뵈옵게 하여달라고 부탁하였다. 나는 장군님은 이곳에 계시지 않는다는것을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그 로인을 데리고 휴식하는 장소로 나왔다. 모두 식사를 시작하였다. 부락민들은 자기들이 가지고온 주먹밥을 내몫까지 따로 내놓았다.
나는 사양하다못해 감사를 드리고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하였다.
나는 부락민들에게 간악한 일본제국주의자들의 파쑈통치를 폭로하면서 우리 혁명군의 전과들을 소개하였다. 계속하여 조국광복회 강령내용을 해설하면서 김일성동지의 탁월한 령도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그들은 김일성동지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듣는바가 아니였으나 그 이야기를 듣는데 열중하고있었다. 내가 이야기를 끝마쳤을 때였다.
그들중 키가 작고 불그스름한 구레수염을 가진 중년남자는 내가 이야기할 때부터 몹시 흥분하여 듣더니 내말이 끝나자마자 불쑥 말을 꺼냈다. 《여보 군대어른, 내 꼭 말할게 있소다. 나는 지금 집에 몸푼 처를 두고 이 사람들이 산으로 들어간다는 말을 듣고 촌장하고 싸우다싶이하여 이곳까지 왔소다.…》 다른 사람들은 무슨 실언이라도 나올가봐 그러는지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있었다.
그는 말을 계속하였다. 《전해에도 짐을 지고 장군님부대를 따라갔으나 밤중에 우리를 돌려보내는 바람에 장군님을 뵈옵지 못했소다. 다른 소원이 없소다. 이번에 장군님을 꼭 만나게 해주오다.》
그제야 다른 사람들도 《옳소다. 우리모두 꼭 만나게 해주시오다.》고 하였다. 내가 무어라 말하기전에 내곁에 앉아있던 더덕더덕 기운 토스레 겉저고리를 입은 로인이 말을 꺼냈다. 《나는 장군님을 만나 이놈의 세상이 언제 뒤집히는지 알고싶소다. 우리 장군님이야 다 알게 아니외까.…》이렇게 말하면서 그는 두주먹을 불끈 쥐고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다른 사람들은 그 말에도 동감인듯 하였다. 나는 김장군님이 이곳에 계시지 않는다고 딱한 사정이야기를 하였다. 그들의 얼굴엔 퍽 서운해하는 기색이 보였다. 그러나 그들의 소원을 풀어줄수는 없었다. 잠간 침묵이 흘렀다.
그런데 제일 늙은 로인이 《여보 젊은 군대어른, 내 한마디 물어볼 말이 있소다.》이렇게 말하는 그는 곁눈질을 하면서 조심스러운 어조로 말을 이었다. 《우리 장군님께서 축지법을 쓰신다는데 정말이외까?》나는 빙긋이 웃었다.
부락사람들을 책임지고온분도 웃었다. 그런데 곰방대를 빨고있던 한 로인은 대통을 돌에 툭툭 털면서 《이 사람아, 축지법을 쓰다마다 그러길래 전해에도 우리 군대들이 왜놈들을 눈코뜨지 못하게 안시공, 2도강, 우적골을 치지 않았나. 장군님은 산을 다녀도 주름을 타서다닌다네. 여보 내말이 옳지요?》하면서 나를 보았다. 그는 마치 말다툼에서라도 이긴듯이 신이나 하였다. 그런데 곰방대를 든 그 로인이 큰 보물이라도 내놓듯이 말을 계속하였다. 《이보오다. 아, 우리 장군님에 대한 이야기야 더 할게 있습네까. 하늘이 낸 장수인데 글쎄 이 장백에 장군님이 나오시더니 밤삼경이면 은하수짬에 없던 새별이 더 반짝거리지 않소. 모두들 보지 못했소. 나는 전번에도 그 별을 보고 박령감하고 이야기했소다만 이제 큰 변이 날거우다. 왜놈들이 쥐락펴락하는 세상도 얼마 못갈게우다.》자신만만한 그의 말에 모두들 《그럼, 그럼》하면서 찬동할뿐이였다.
나는 구태여 그들의 이야기를 깨우쳐 설명하고싶지 않았다.
위대한 수령님을 믿고 그이께서 령도하시는 우리 인민혁명군에게 모든것을 의탁하고있는 그들에게 조국의 독립과 인민의 해방을 위한 투쟁의 선두에 선 김일성동지의 탁월한 령도와 우리 인민혁명군의 성스러운 사명에 대하여 강조하였을 따름이였다.
장백현사람들 ㅡ 우리 유격대는 이러한 인민들의 군중적지반을 가졌음으로 하여 15성상의 간고한 투쟁에서 빛나는 승리를 달성할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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