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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천보전투 (오 백 룡)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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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4,137회 작성일 19-09-13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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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천보전투

 

오 백 룡

 

우리 항일유격대가 조국땅에 진출하기 위하여 장백현으로 나온것은 1936년 가을이였다.

그해 초에 녕안현에서 력사적인 남호두회의가 열리였다.

이 회의에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반일민족통일전선운동을 더욱 발전시키며, 당창건을 준비하며, 국내혁명운동에 대한 지도를 강화할데 대하여서와 조선인민혁명군을 압록강과 두만강국경일대에 진출시킬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였다.

이 회의후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는 위대한 수령님의 친솔밑에 장백일대에 진출하여 무장투쟁을 확대하여갔다.

이에 당황한 일제침략자들은 각곳의 병력을 모아가지고 우리 부대의 활동을 막아보려고 갖은 발악을 다했다. 그러나 적들은 우리가 장백현에 진출한 가을 한두달동안에만 하여도 대덕수, 소덕수, 반절구, 이도강, 20도구 등 이르는곳마다에서 섬멸적인 타격을 받았고 그해 겨울에도 곰의골, 문암동, 홍두산, 도천리, 리명수전투 등 여러차례의 전투에서 참패를 당하였다. 그리하여 놈들의 《동기토벌》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이와 같이 우리 부대는 무장투쟁을 강화하는 한편 장백현일대에 당조직들과 조국광복회 조직망을 확대하면서 광범한 반일력량을 묶어세워 튼튼한 혁명적군중지반을 닦아놓았으며 국내혁명운동에 대한 지도를 강화하였다.

이 시기 일제침략자들은 중국 본토와 쏘련을 침공하며 나아가서는 전아시아를 강점할 흉계를 꾸미면서 조선에 대한 략탈과 탄압을 더욱 강화하였다. 놈들은 《내선일체》니 《동조동근》이니 하고 떠벌이면서 국내의 애국자들을 모조리 검거투옥하려고 날뛰였으며 조선의 모든 자원을 깡그리 긁어가고 조선인민을 중세기적암흑속에서 허덕이게 하였다.

일제의 검은 마수는 이 국경지대의 깊은 산간에도 악착하게 뻗치였다. 원래 삼수, 갑산지방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멀리 타지방에서 일제와 지주의 착취에 시달리다 못해 부대기나 일구어먹으려고 모여온 사람들이였다. 그러나 일제는 천년묵은 백두의 원시림을 모조리 찍어내면서도 산림을 《보호》한다는 구실밑에 이곳에서 부대기마저 마음대로 일구지 못하게 하였다.

지금은 옛말로 되였지만 입을것이 없어서 화전민들이 추운 겨울에도 마대쪼박으로 간신히 허리를 감고지냈다는것도 이때의 일이다.

바로 이러한 때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을 거느리시고 국경대안에 진출하여 령활한 전술로 원쑤들에게 련속적인 타격을 주셨다.

이 감격에 찬 기쁜 소식은 전체 조선인민의 가슴을 새로운 희망과 흥분으로 설레게 하였으며 항일유격대가 하루빨리 국내에로 진격하여나오기를 갈망하게 했다.

우리들은 장백지대에 나온후 조국산천의 숨결을 몸가까이에 느끼며 그 품에 안길 날을 손꼽아기다렸다.

국내진공을 앞두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미 입수한 각종 정찰자료에 근거하여 부대행군로의 거리, 시간, 습격대상과 습격방법, 전투대오의 편성, 군중들에 대한 정치사업 등 제반문제에 대하여 주밀한 전투계획을 세우시였다.

나는 그때 전령병으로 있은 동무에게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천막에는 며칠밤을 계속하여 동녘이 밝아올 때까지 등불이 꺼지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드디여 력사적인 조국진군의 날, 1937년 6월 2일이 왔다.

7련대와 8련대, 경위중대에서 선발된 150여명의 대원들로 구성된 원정대는 위대한 수령님의 령솔밑에 조국에로 진군을 개시하였다.

우리는 이날 예정된 시간에 23도구어귀 부락에 도착했다. 마을사람들은 우리를 지성껏 환영했다.

여기서 우리는 군중정치사업을 진행하면서 하루밤 휴식하였다.

이튿날 아침 구시골둔덕에 오른 우리는 천년만년을 두고 흘러내리는 압록강의 푸른 물결이며 허리에 흰구름을 감고 높이 솟은 조국의 산봉우리들을 바라보았다.

얼마나 보고싶던 산과 강인가! 눈앞에 바라보이는 조국땅에서는 이 시각에도 강도 일제놈들이 인민들의 고혈을 빨아내며 온갖 만행을 감행하고있으리라는것을 생각하니 두주먹이 떨리며 치솟는 격분을 참을수 없었다.

해가 저물자 부대는 어둠을 리용하여 다시 진군을 개시하였다.

대오는 흥분과 긴장속에서 묵묵히 나아갔다. 구우수강과 압록강이 합치는 물동부근 도하지점에서 우리는 이미 준비하여놓은 떼목다리로 강을 건넜다.

압록강을 건는 다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떼목다리를 지키며 부대의 철수를 보장하기 위하여 도하지점부근에 한개구분대를 매복시키셨다.

전대오가 곤장덕에 올랐을 때는 벌써 날이 밝아올 무렵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원들에게 휴식명령을 내리셨다. 모두들 드러누웠으나 누구하나 피로를 느끼지 않았고 종시 잠들지 못하였다. 어느덧 동쪽하늘이 훤히 밝았다. 6월 4일, 조국땅에서 맞는 첫 아침이다. 우리는 황홀한 눈으로 주위를 바라보았다. 무연한 밀림속에 거연히 솟은 백두산은 아침해살을 떠이고 더욱 눈부시게 빛났다.

《웅장하구나! 얼마나 아름다운가!》

모두 감격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조국땅의 큰 품속에 안긴 벅찬 심정을 이기지 못하여 어떤 동무들은 나무를 그러안고 돌아갔고 어떤 동무들은 풀우에 막 딩굴었다. 그리고 흙을 움켜쥐고 코앞에 갔다대기도 하고 뺨에 비비기도 했다.

이날낮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원들에게는 휴식을 명령하시였으나 자신께서는 조금도 쉬지 않으시고 이제 시작할 전투를 더욱 빈틈없이 준비하시기에 여념이 없으시였다.

6월 4일은 보천보 장날이여서 한낮이 되면서부터 거리는 사방에서 모여든 장군들로 들썩거렸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복잡한 틈을 리용하여 마동희, 김확실동무들을 거리에 파견하시였다.

그들은 닭알장사군 혹은 행인으로 가장하고 보천보거리를 다니면서 적들의 동태를 탐지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친히 망원경으로 보천보시내에 도사리고앉은 적기관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살피시였다.

오후에 곤장덕수림속에서는 지휘성원들의 모임이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모임에서 각 구분대에 다음과 같은 전투임무를 내리시였다.

명령에 의하면 1개구분대는 산림보호구, 면사무소, 농사시험장, 우편국을 습격하게 되였고 다른 1개구분대는 기관총 1문을 가지고 혜산으로 통하는 도로와 전화선을 차단하고 그 방향으로부터 오는 적의 증원부대를 소멸하게 되였다.

그리고 기관총 2문을 가진 1개구분대는 경찰관주재소를 습격하는 동시에 무산방향으로 통하는 도로를 차단할 임무를 맡았으며 나머지 1개구분대는 시내 각곳에 삐라와 격문을 살포하며 주민들에게 선전해설공작을 하는 동시에 로획한 적의 군수물자를 운반할 임무를 담당하였다.

지휘처는 가림천강변 황철나무밑으로 정하였으며 공격개시시간은 밤 10시였다.

전투임무가 전체 대원들에게 알려지자 모두 사기충천하여 원쑤격멸의 결의를 더욱 굳게 다지면서 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드디여 해가 서산으로 기울어졌다.

이윽고 위대한 수령님의 출발명령이 내렸다. 우리는 척후대를 앞세우고 1렬종대로 곤장덕을 내려갔다.

대렬은 단숨에 가림천강변에 당도했다. 보천보를 감돌아흐르는 가림천기슭에는 물방아간이 있었다. 우리는 그 강을 건너 은밀하고 신속하게 각각 지정된 목표에로 접근했다.

나는 기관총을 으스러지게 틀어잡고 주재소로 한발자국한발자국 다가갔다.

주재소에 접근하여 안의 동정을 살펴보니 때마침 경관 두놈이 죄없는 농민 두사람을 심문하는중이였다. 한놈은 몽둥이를 쥐고 옆에 섰고 다른 놈은 이쪽에 등을 대고 거만하게 앉아있었다. 나는 참을수 없는 분통이 치밀어올랐다.

바로 이때에 위대한 수령님의 신호총소리가 암흑의 밤을 깨뜨리며 보천보의 거리를 뒤흔들었다. 나는 원쑤의 가슴팍을 겨누고있던 기관총의 방아쇠를 당기였다. 한놈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고 남포등이 깨여졌다.

그러자 다음놈이 뛰려고 했다. 그 순간 나는 기관총을 무릎우에 놓고 사격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안으로 돌입하였다. 팔을 얻어맞은 경관놈은 대항할 생각도 못하고 돼지우리속에 들어박혀 벌벌 떨고있었다. 우리는 주재소에 있는 적들을 통쾌하게 소멸하고 경기, 보총, 권총 등 여러정의 무기와 많은 탄약을 로획하였다.

때를 같이하여 면사무소, 산림보호구, 농사시험장, 우편국부근에서도 콩볶듯 하는 총성이 일어났다.

인민들의 피땀을 빨아먹던 일제기관들에서 타오르는 불길은 하늘을 찔렀다.

이날밤 산림보호구주임(일본놈)의 《영전》을 축하하느라고 시내의 《유력자》들은 거의다 료리점에 모여 주연을 벌려놓고놀다가 무리죽음을 당하였다.

보천보의 거리를 뒤흔들며 울려퍼진 항일유격대의 총소리는 인민들을 새로운 투쟁에로 불러일으켰다.

거리는 침묵을 깨뜨리고 일어났으며 혁명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보천보는 낮처럼 밝았다.

《조선독립 만세!》, 《조선혁명 만세!》, 《김일성장군 만세!》

골목골목에서 떨쳐나온 남녀로소들은 소리높이 만세를 부르며 유격대원들을 그러안고 눈물을 흘리였다.

선전공작대원들의 눈부신 활동으로 삽시에 온 거리가 흥성거리고 《조국광복회 10대강령》《포고》와 선전문이 도처에 나붙었다.

《포고》내용은 이러하였다.

《간악무쌍한 강도 일본제국주의는 조선을 강점하고 20여년동안 총독정치라는 식민지통치로써 조선동포들을 유린학살하고있다. 그러므로 우리 조선동포들은 놈들에게 피와 땀으로 된 재산을 모조리 략탈당하고 비참한 식민지노예의 생활을 하게 되였다. 뿐만아니라 놈들은 우리 민족을 제2차대전의 〈선봉대〉로 하여 중국을 침략하는 전쟁의 도구로 내몰고있다.

우리 조선민족은 생사존망의 위기에 봉착하였다.

우리들은 자기 민족의 출로를 개척하고 자기 살길을 타개하며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고 조국을 광복하기 위하여 싸우는 조선인민혁명군이다. 우리들이 6~7년간 만주광야에서 필사적투쟁으로 일본제국주의략탈자들에게 치명적타격을 준것은 세인이 다 인정하는바이다.

본군은 조선에 있는 애국지사와 열혈적인 본군용사들의 강력한 단결에 기초하여 조선민족의 피를 빨아 배를 불리는 흡혈귀 조선총독부와 직접 싸울 목적으로 두만강과 압록강을 건너 함남북일대에 원정하게 되였다.

가련한 조선동포형제들! 속히 출동하여 반일민족통일전선에 단결하여 각종 투쟁으로써 본군의 유격전쟁에 호응하라!

하루속히 일제통치를 분쇄하고 진정한 조선인민의 정부를 수립하는데 매진하자!》

이 절절한 호소는 인민들에게 끓어넘치는 애국심과 적개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날밤 선전대원들은 높은곳에는 목말을 타고 올라서서 전보대들과 벽, 나무, 울타리, 문짝 할것없이 사처에 삐라를 붙이였다.

김일성장군님께서 오셨다! 우리 혁명군대가 왔다!》고 하면서 인민들은 앞을 다투어 주재소앞거리로 밀려나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환호하는 군중들에게 뜨거운 답례를 보내시면서 그들에게 일제침략자들의 흉악무도한 만행을 폭로규탄하고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하여 일체 반일애국력량이 굳게 단합하여 원쑤를 반대해싸울것을 호소하는 열화같은 연설을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연설은 군중들의 가슴을 한없이 격동시켰으며 그들에게 조국의 자유와 광복에 대한 굳은 신념을 북돋아주었다.

그렇게도 깊이 흠모하고 존경해온 민족의 영웅이시며 절세의 애국자이신 위대한 수령님의 영명한 모습을 우러르는 인민들은 다함없는 기쁨과 감격속에 잠기였다. 여기저기서 감격적인 상봉이 벌어졌다.

거리는 환희와 희망으로 들끓었다.

한참후에 부대의 철수를 알리는 나팔소리가 울렸다. 석별의 정을 금치 못해하는 인민들은 저마다 로획물자를 지고 우리를 따라나섰다.

《조국이여, 보천보여 잘 있으라! 이제 그대를 영원히 해방하는 날이 반드시 오리라!》보천보를 떠나는 대원들은 저마다 이렇게 결의를 다지였다.

대원들은 정든 조국의 땅을 잊지 못해 흙을 한줌씩 배낭속에 깊이 간직했다.

대오는 다시 압록강변에 왔다. 떼목다리는 벌써 준비되여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둠속에서 전체 대원들이 강을 건느는것을 한사람씩 보살피신 다음 제일 마지막에 강을 건느셨다. 그이께서는 항상 이처럼 인자한 어버이의 심정으로 대원들을 아끼고 사랑하시였다.

몇시간후에 보천보의 소문을 들은 일제군경들은 《긴급회의》를 열고 덤벼쳤다. 놈들은 경찰대를 보천보에 급히 파견하는 한편 압록강상류인 농산과 독산방면에도 경찰대들을 출동시켰다. 그리고 혜산에 있던 놈들의 수비대와 기타《토벌대》들을 총동원하여 가림리쪽으로 내몰았다. 보천보전투의 소식을 듣고 대경실색한 총독부에서는 군부와 경찰책임자들을 불러놓고 비상대책을 세우느라고 혈안이 되여 돌아쳤다.

6월 5일 아침 우리를 추격하여 제일먼저 강을 건너온 놈들은 오가와경찰대였다.

이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로획물자를 지고 우리를 따라온 약 200여명의 인민들을 집으로 돌려보내시면서 이미 온 길로는 적들이 추격하여오고있으므로 그들에게 피해가 없도록 하기 위하여 다른 방향의 오솔길을 택하여 돌아가라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돌아가기 서운해하는 이들과의 작별에 앞서 다시금 그들앞에서 연설을 하시였다.

이때 그이께서는 비록 오늘은 우리가 철수하지만 우리와 다시만날 날은 멀지 않았으니 집에 돌아가서도 앞날의 승리를 확신하고 일제를 반대하는 투쟁에서 끝까지 용감할것을 강조하시였다.

그리고 그들이 이처럼 항일유격대를 도와준데 대하여 거듭 사의를 표하시고 매 사람들에게 전리품을 나누어주셨다.

강을 건너온 적들은 우리를 추격하자니 겁이 나고 돌아가자니 상관의 《명령》을 거역하게 되므로 할수없이 《결사척후대》라는것을 만들어가지고 경기 2문을 앞세우고 경사진 구시산턱으로 헐레벌떡거리며 게바라올라왔다.

그러나 이미 산마루의 유리한 진지를 차지하고 만단의 전투준비를 갖추고있던 우리 부대는 놈들에게 섬멸적타격을 주었다. 놈들은 이날 전투에서 수십명이 살상되고 경기관총 1정과 적탄통을 비롯한 많은 무기와 군수기자재를 내버리고 달아났다. 일제군경들은 거듭 참패를 당하였다.

구시산전투에서 이런 성과를 달성한 우리 부대가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행군을 계속하여 간삼봉지역에 다달았을 때였다.

6월 30일 새벽 보초소로부터 대규모의 《토벌대》가 나타났다는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곧 간삼봉지역에서 적을 섬멸할 구체적인 전투계획을 세우시고 산아래 경사진 릉선에 각각 부대들을 배치하시였다.

놈들은 2,000여명의 정규군을 동원하여 3개 방향으로 이른바 포위진을 치면서 우리를 공격하였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의 탁월한 작전계획과 침착하고 령활하신 전투지휘에 의하여 새벽부터 저녁까지 전개된 전투에서 적들은 1,500여명이나 살상당하였으며 놈들의 《3면포위공격》기도는 완전히 분쇄되였다.

이리하여 력사적인 1937년 6월의 국내진공작전은 성공적으로 수행되였다.

 

*            *

 

그때로부터 많은 세월이 지나갔다.

그러나 보천보전투에 대한 이야기는 세월이 흐를수록 조선인민을 무한한 감격속에 잠기게 한다.

그것은 이 전투가 우리 민족이 생사존망의 위기에 처한 가장 암담한 시기에 모든 조선인민들의 심장속에 혁명의 거센 불길을 지펴놓았으며 청사에 길이 빛날 위훈을 남겨놓았기때문이다.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의 지휘밑에 진행된 보천보전투의 력사적승리는 일제통치의 암흑속에서 신음하던 조선인민에게 승리의 신심과 희망을 안겨주었을뿐만아니라 오늘도 우리 인민들을 보다 빛나는 승리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키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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