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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걸고 (림춘추)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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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4,177회 작성일 19-09-11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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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걸고

림춘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령도하신 항일유격대가 일정한 무장력량으로 장성발전되기까지에는 허다한 난관들을 극복해야 하였다.

그중에서도 무장획득사업은 가장 큰 난관이였다.

이것은 초기 왕청현에서의 무장획득투쟁을 보아도 잘 알수 있는 사실이다.

1932년 8월에 이르러 왕청현유격대는 보병총 60여정과 약간의 권총을 소유한 70여명의 무장대오로 장성되였다. 보병총 60여정, 물론 이것은 많지 못한 무장이다. 그러나 보병총 한정이 오늘의 기관총 몇정 맞잡이로 귀중하였던 당시에 있어서 이것은 얼마나 위력한것이였던가! 실로 이 무기 한정은 수십수백정의 새로운 무기를 낳았고 이렇게 새끼를 친 무기들은 침략에 날뛰는 왜놈들의 머리우에 복수의 불벼락을 들씌웠던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한정의 무기를 위하여 모든 힘과 지혜와 지어는 생명까지 바쳤다.

보병총 60여정을 얻기전까지 우리가 가지고있은 무기란 도끼와 낫, 창과 곤봉 등과 같은 원시적인 무기뿐이였다. 이것을 가지고는 신식무기로 장비된 왜놈들을 마음대로 섬멸해치울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무장획득사업을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로 제기하시였다.

이 중대한 과업을 수행하기 위하여 곳곳에서 피어린 투쟁이 벌어졌다.

1932년 1월 15일, 김철동지가 책임진 10여명의 동지들은 왕청현 대감자 《공안국》을 기습하여 토퉁 7정을 탈취하였다.

적수공권으로 토퉁 7정이나 탈취해낸다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왕청현유격대의 무기획득투쟁에서 처음으로 되는 승리였다. 이 승리에 고무된 동지들은 그후 더욱 용감하게 무기탈취투쟁에 나섰다.

그리하여 그들은 얼마후에 또 왕청현 석현자위단을 기습하여 보병총 10여정을 빼앗아냈다.

무장획득투쟁은 고조에 달하였다. 이 투쟁에는 비단 유격대뿐만아니라 조직의 영향하에 있는 지방청소년들, 지어는 환갑을 넘은 로인들까지 참가하였다.

당시 왕청현 석현에 살고있는 오태희로인은 왕청현 제5구(가야허를 중심으로 한 혁명구)당책임서기였던 아들 오중화동지에게서 무장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평소에 서로 속을 주고받으며 가장 가깝게 지내던 로인들로 《무기공작조》를 조직하였다. 여기에는 오태희로인 형제들과 강봉세, 김석환, 오영삼, 최관세, 오봉삼 등 로인들이 망라되였다.

《무기공작조》는 곳곳에서 은밀히 무기탈취의 기회를 탐색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강봉세로인이 두루마기자락을 휘날리면서 오태희로인을 찾아왔다.

《방금전에 석현경찰서에서 장총을 멘 자위단원 한놈과 칼을 찬 순사 한놈이 장골로 떠났소. 그놈들은 저녁녘에 고개길을 넘어 석현으로 돌아온다우.》

오태희로인은 보고를 받자 시렁에 감춰두었던 《밥상다리권총》을 꺼냈다. 그것은 이런 기회에 쓰려고 그가 만들어두었던 나무권총이였다. 꼬부라진 밥상다리 아래부분을 잘라서 검은칠까지 한 그것은 제법 권총과 같았다.

허리춤에 《권총》을 감춘 오태희로인은 장골로 통하는 고개길 가둑나무숲속에 매복하였다.

저녁녘이 거의 될무렵 보병총을 멘 자위단원놈을 앞세운 순사놈이 고개길에 나타났다.

오태희로인은 재빨리 수건으로 머리를 동이고 《권총》을 꺼냈다.

한잔 얼근하게 처먹은 놈들은 마치 산보나 하듯이 느릿느릿 올라오고있었다. 적들이 바로 눈앞에 다가왔을 때 오태희로인은 가둑나무숲에서 뛰쳐나와 자위단원놈의 가슴팍에 《권총》을 들이댔다.

《꼼짝말아라. 움직이면 쏜다!》

뒤따르던 순사놈은 《권총》을 보자 넋을 잃고 꽁무니를 뺐다. 홀로 남은 자위단원놈은 부들부들 떨면서 목숨만 살려달라고 애걸하였다.

오태희로인은 그놈에게서 무기와 탄알을 빼앗자 《나는 항일유격대원이다. 앞으로 또 왜놈의 개질을 하면 그냥 두지 않을테다.》하고 오금을 박아놓은 다음 그놈을 돌려보냈다. 자위단원놈은 정말 로인을 유격대원인줄로만 안 모양이였다.

로인들의 《무기공작조》는 그후에도 2정의 보병총을 유격대에 보냈다.

이와 같이 유격대와 인민들의 피어린 투쟁속에서 60여정의 무기를 획득하게 된 왕청현유격대는 그후 마록구고개길에서 구분대의 집단적력량으로 이동하는 적을 치고 무장을 탈취하였다.

그것은 1932년 초가을이였다. 왕청현 백초구에서 위만군 맹영부대가 대황구쪽으로 이동한다는 정보가 유격대에 들어왔다.

김철중대장은 대원 40여명을 인솔하고 적을 앞질러 남하마탕 마록구고개길에 당도하였다. 김철동지는 길좌우켠 고지의 유리한 지형지물을 리용하여 대원들을 매복시켰다. 그리고 길아래웃쪽에 방차대를 배치하였다.

이 전투에는 유격대뿐만아니라 《도수대》도 참가하였다. 《도수대》란 무기없이 맨 주먹만 가진 대란 말인데 여기에는 적위대와 돌격대원들중에서 가장 용감한 청년들이 망라되였다. 그들은 무기만 있으면 그 즉석에서 유격대원이 될수 있는 우수한 청년들이였다.

또한 이 전투에는 작탄만 가진 대도 참가하였다. 이 대들은 모두다 무기가 부족한 까닭에 구성된것이였다. 그러기에 적의 무장을 빼앗아내야 하겠다는 절박한 념원은 전투참가자들의 매 가슴마다에서 불타고있었다.

유격대가 길좌우켠에 매복한지 얼마후에 적들이 나타났다. 유격대원들은 무기를 단단히 틀어잡고 적들의 일거일동을 주시하였다. 《도수대》원들은 저마다 손아귀에 돌멩이들을 쥐고있었다.

60명가량의 적들이 길게 행렬을 지어 고개길을 올라오고있었다. 그뒤에는 우마차들이 따라섰는데 거기에도 적들이 섞여있었다.

유격대원들은 적의 선두부대를 그냥 통과시켰다. 그것은 적아간의 력량대비로 보아 선두부대보다 우마차들속에 섞인 적들을 습격하기가 알맞춤하였기때문이였다.

선두부대의 적들이 지나간후 얼마되지 않아서 우마차행렬이 매복선내에 들어섰다.

김철중대장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한놈의 적을 겨누어 첫발을 쐈다. 그것을 신호로 길좌우켠에서 일제사격이 벌어졌다. 작탄도 여기저기서 터졌다. 눈깜박할 사이에 10여명의 적들이 쓰러졌다. 불의의 타격에 조우한 나머지 적들은 살길을 찾아 황급히 돌아쳤다. 그러나 일부 적들은 우마차밑에 숨어서 대항하기 시작했다.

이때 유격대원들은 저마다 구호를 웨쳤다.

《손을 들어라. 그러면 생명을 구한다!》

《우리는 무기를 요구하지 생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유격대의 위력에 압도당한 적들은 탄띠를 풀어 무기에 걸자 그것을 머리우에 받쳐들고 항복하기 시작했다. 유격대원들과 《도수대》원들이 날래게 달려들어 그놈들의 무장을 해제하였다.

어떤 놈들은 우리 《도수대》원들이 무기를 받아쥔후 손에 쥐였던 돌멩이를 길바닥에 내던지자 흠칫 놀라 몸을 움츠러뜨렸다. 그러나 그것이 터지지 않는 돌멩이라는것을 알았을 때 적들은 너무도 어이가 없어서 크게 벌린 입을 한동안 다물줄을 몰랐다.

우리의 매복선앞을 통과한 적의 선두부대놈들은 총소리를 듣고 되돌아서 대항하려고 서둘렀으나 방차대의 사격을 받자 황급히 도망치고말았다. 적들은 유격대의 력량이 대단히 많은줄로 생각한 모양이였다.

이렇게 적들의 무장을 성과적으로 탈취하고있을 때였다.

우마차밑에 숨어서 대항하던 일부 적들은 정황이 불리하게 되자 더욱 발악적으로 사격을 하였다.

김철중대장은 몇몇 대원들과 함께 발악하는 적들에게 맹렬한 불벼락을 들씌웠다. 적의 화력을 한곳에 집중시킴으로써 놈들의 무장을 해제하는 대원들의 활동을 용이하게 하려는것이였다.

그런데 이때에 화력전을 전개하고있던 김철중대장이 적의 흉탄에 가슴을 맞았다. 치명상을 입은 김철중대장은 그 자리에 쓰러졌다. 대원들은 그를 업고 재빨리 철수하였다.

이날 김철중대장은 전투를 지휘하면서 자신이 4정의 무기를 탈취하였던것이다. 그는 얼마가지 못하고 전우들의 품속에서 눈을 감고말았다. 숨을 거두는 마지막순간 그는 자기를 둘러싼 미더운 전우들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슬퍼마우. 내 한몸이 죽는것은 아무 일도 아니우. 다만 나는 이 무기들이 우리 혁명에 도움을 줄걸 생각하니 퍽 기쁘오.》

그러나 사랑하는 중대장을 잃은 대원들의 심정이야 어떠하였으랴! 혁명승리를 위해선 모든것을 바쳐싸운 중대장을 적의 흉탄에 빼앗긴 그들은 치밀어오르는 분노에 가슴을 떨었다. 그들은 피로써 탈취한 무기를 가지고 오직 혁명승리를 위하여 더욱 완강히 싸워나아갈 굳은 결의를 다질뿐이였다.

이날 마록구에서의 매복전투에서 유격대는 적 10여명을 살상하고 10여명을 생포하였으며 마레샹(구식보병총의 일종)13정과 칠성자 1정, 탄알 1만여발을 로획하였다.

승리한 유격대는 왕청현 요영구로 돌아왔다.

이리하여 1932년가을에 벌써 왕청현유격대는 무장한 대원만도 90여명으로 장성되였으며 기타를 합하면 100여명의 무장대오로 되였다. 그후 왕청현유격대는 더욱 많은 무기를 획득하였으며 더욱 강력한 대오로 장성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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