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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40일 (김철호)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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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3,571회 작성일 19-09-02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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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40일

김철호                

 

1939년도에 나는 대부대와 떨어져서 주로 소부대활동에 참가하였다.

그해 음력 8월초순에 우리 일행 6명은 화전현 쟈피거우지방으로 떠나갔다. 목적은 지방조직들과 련계를 취하며 또한 식량공작을 하자는것이였다.

그때 나는 떠나기 며칠전부터 허벅다리에 종처가 생겨서 뜨끔뜨끔 아팠으나 동무들에게 그런체를 하지 않고 길을 떠났다.

길을 떠난 바로 다음날 우리는 갈대가 우거진 큰 골짜기의 오솔길을 지나고있었는데 선두에 섰던 한 동무가 갑자기 《〈토벌대〉온다!》하고 소리치며 갈밭으로 뛰여들어가는 바람에 뒤에 섰던 우리들도 전투준비를 갖추고 모두 갈대숲을 헤치며 피신했다.

적들은 우리쪽에 대고 경기관총과 보총을 란사하기 시작했다. 탄알이 비발치듯 우리의 전후좌우를 누볐다. 이런 때일수록 덤비며 갈대를 설렁거리게 하면 오히려 적들의 목표로 된다는것을 알고있는 우리들은 살금살금 갈밭속을 빠져서 겨우 수림속으로 들어갔다.

이날 적과의 조우에서 선두에 섰던 한 동무가 희생되고 부상을 입은 한 녀동무는 그만 놈들에게 잡혔다. 결국 우리 일행은 4명으로 줄어들었다.

우리는 동지를 빼앗아간 원쑤에 대한 적개심을 안고 그날도 진종일 험한 길을 걸었다. 나는 종처가 점점 더 아파나서 빨리 걸을수가 없게 되였다. 우리 일행중에 후방책임자인 아바이가 있었는데 그는 나를 고무하면서 팔을 끼고 걸어갔다.

날이 갈수록 다리의 종처는 점점 더 커지면서 참을수 없이 아팠다. 나는 몇번이나 숲속에 들어가서 나무꼬챙이로 종처를 터뜨려보려고 애썼으나 곪기 시작한 종처에서는 피만 흘러내렸다. 나는 쇠꼬챙이로 쑤시는듯이 아픈 다리를 끌며 근근히 동무들을 따라갔다.

사방 100여리에 인가하나 없는 산중무인지경에 이르렀을 때 나는 고열이 나서 더 발길을 옮겨놓을수가 없게 되였다.

일행이 산중턱에서 쉬는참에 후방책임자는 《어찌겠는가 철호동무! 그 종처는 곪아터져야 나을것이니 이곳에 한 사흘가량만 남아있소. 우리가 지방조직을 찾아가서 약과 식량을 구해가지고올테니까.》하고 말하는것이였다. 나는 물론 한시라도 대오를 떨어져 혼자남게 되는것이 싫었으나 동무들의 행동에 짐이 될바에야 더 따라가겠다는 말을 할수가 없었다.

후방책임자는 저수리나무가지를 찍어다가 조그만 초막을 지어주었다. 그리고는 그앞에 우물도 파놓고 불을 피울 나무도 한아름 해다놓았다.

4명의 배낭을 뒤지니 쌀이 한공기나 되게 있었다. 후방책임자는 그것을 먹으면서 사흘만 견디라고 재삼 당부하였다.

그날밤 그들은 길을 떠나가고 나는 홀로 산중초막에 남게 되였다.

나의 머리속에는 혁명대오에 참가하면서 조국을 위하여 생명을 바치겠다고 맹세하던 생각 또는 부모에 대한 생각 등 별의별 생각이 다 떠오르며 지나간 가지가지의 추억들이 눈앞을 스치고지나갔다.

그때는 음력 8월하순께여서 밤이 이슥해지자 추위가 온몸에 배여들었다. 달도 없는 밤하늘에는 무수한 별들이 졸듯이 깜박이고있었으며 어디선가 철잃은 벌레소리가 마지막신음처럼 찌륵찌륵 흐느끼고있었다.

나의 마음속에는 한가지 근심이 떠돌았다. 그것은 종처가 곪아터지기전에 적들의 습격을 받게 되면 어찌나 하는것이였다. 만약 그런 경우가 닥쳐온다면 나는 마지막피값이라도 해야 할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나는 기병총을 몸곁에 바싹 당겨놓고 돌멩이들도 앞에 모아놓았다.

밤이 퍽 깊어진 때였다. 나는 갈피없는 생각을 더듬다가 몸의 피곤을 느끼며 깜박깜박 졸고있었는데 초막뒤에서 바삭바삭하는 괴이한 소리가 들려오는바람에 소스라쳐 정신을 차렸다. 날카롭게 신경을 돋구고 귀를 기울이니 그것은 분명히 무슨 발자국소리였다. 나는 온몸에 소름이 끼치며 머리칼이 곤두서는것을 느꼈다.

나는 종처가 주먹같이 되여 자유롭지 못한 다리를 겨우 뒤로 옮겨놓고는 그 자리에 엎드려서 총을 꼬나들고 안전장치를 풀었다.

발자국소리가 점점 가까와지더니 씩씩거리는 숨소리까지 들렸다. 그놈이 무엇인가 초막에 대고 비비적거리는바람에 지붕에 덮었던 나무잎이 몇잎 떨어졌다. 나는 어떤 놈이 초막문을 찾는것으로 짐작하면서 숨을 죽인채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그런데 그놈은 내앞으로 나타나지 않고 한참이나 머무적거리고있더니 이윽고 저벅저벅 발자국소리를 내며 어디론가 가버렸다.

나는 틀림없이 적특무놈이 왔다간것으로 짐작했다. 나는 한잠도 자지 못하고 그냥 엎드린채 밤을 새웠다.

날이 밝은후에 밖을 내다보니 아무런 변동도 없었다. 나는 초막밖으로 기여나가 주위를 살펴보았다. 거기에는 분명히 어제 없었던 발자국이 나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곰의 발자국이였다. 그제야 나는 마음을 놓고 지나치게 긴장되였던 자신을 돌이키며 속으로 쓴웃음을 웃었다.

나는 초막주변을 기여다니며 먹을만한 풀뿌리들을 뜯어다가 요기를 하였다. 그런데 다리의 종처는 점점 더 커졌다. 나무꼬챙이로 몇번이나 찔러보았으나 소용없는 일이였다. 오히려 더 쑤시며 열이 오르는바람에 나는 그만 꼼짝 못하고 앓음소리를 치며 초막속에 누워있었다.

약속한 사흘이 지났으나 동무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닷새가 지났는데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나는 동무들의 신상에 무슨 뜻하지 않은 변동이라도 생기지 않았는가고 하고 마음을 죄였다.

초조한 가운데 또 며칠이 지나갔다. 그동안에 종처는 곪아서 덜 쑤시게 되였고 팽팽하던 헌데거죽이 약간 쭈글쭈글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만약에 종처가 터진후에까지도 동무들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혼자서 쟈피거우통신처로 찾아떠나려고 결심했다. 그러나 그곳까지는 산중 수백리길이였으므로 량식없이는 도저히 갈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한그릇의 쌀을 한알도 다티지 않을 심산으로 그릇채로 봇나무껍질에 싸서 땅속에 파묻어놓았다. 그리고는 주로 풀뿌리와 버섯 같은것을 삶아먹으며 날을 보냈다.

어느덧 10여일이 지나갔다. 나는 만일의 경우를 생각하여 초막에 있지 않고 그곳에서 100여m 쯤 떨어진곳에 은페지를 택했다. 거기에는 아름드리 로목이 썩어넘어진것이 있었는데 나는 그밑을 파고들어가 마른 나무잎들을 덮어쓰고 지냈다. 9월에 들어서면서 날씨는 점점 추워졌다.

내가 산중에 홀로 남은지 13일만이였다. 어디선가 돌연히 총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온몸의 신경을 눈과 귀에 모으고 사방을 살펴보았다. 한참후에 내가 있는 바로 뒤산릉선에 누런 복장을 한 사람들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처음에 나는 혹시 유격대원들이 아닌가 하고 그들의 거동을 여겨보는데 때마침 나팔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틀림없이 적들의 집합신호였다.

나는 《토벌대》놈들이 무슨 냄새를 맡고 온것이라고 판단했다. 나는 더 생각할 여지없이 총을 손에 쥐고 산옆으로 내려가다가 나중에는 디굴디굴 굴었다.

골짜기바닥까지 내려가니 온몸은 가시에 찔리고 나무그루에 뜯기여 상처투성이가 되였다. 그러나 이러는바람에 다리의 종처가 자기도 모르는사이에 터져버렸던것이다.

골짜기의 개울을 건너서 언덕을 기여올랐는데 터진 상처는 물에 씻기여 깨끗하게 되였었다. 나는 숲속에서 치마폭을 뜯어 대강 종처를 싸맸다.

계속 산벼랑을 톺아올라가니 그곳에는 아지가 사슴뿔처럼 생긴 큰 고목이 있었다. 나는 적정도 살필겸 그우로 기여올라갔다.

나무우에서 건너다보니 《토벌대》놈들은 내가 있던 초막두리에 몰켜와서는 뭐라고 벅적 떠들며 야단을 쳤다. 그러나 놈들은 그 초막의 주인인 나를 발견해내지는 못했다.

나무우에 앉아있는 동안에 종처에서는 피고름이 흘러내려 나무아지에 뚝뚝 떨어졌다.

《토벌대》놈들은 초막주변을 개처럼 싸다니며 소란스럽게 날뛰더니 끝내 초막에 불을 달아놓고는 어디론가 이리떼처럼 몰켜갔다.

나는 몇시간동안 나무우에 그냥 앉아있었다. 온몸의 맥이 빠지고 다리도 아팠으므로 꼼짝도 하고싶지 않았으나 혹시 그동안에라도 우리 동무들이 왔다가 초막이 탄것을 보고 나를 적들에게 잡혀간것으로 인정하고 가버릴가봐 다시 나무에서 내려와 본래있던곳으로 건너가기 시작했다.

《토벌대》놈들이 오는 바람에 골짜기를 건너올 때는 그리 먼것 같지 않았는데 다시 건너가려니까 길은 몹시 험하고 멀었다.

나는 나무숲과 덤불을 헤치며 한걸음한걸음 건너가는데 나무가지와 가시덤불에 상처를 찔릴 때마다 이를 악물고 걸으며 기며 했다. 이렇게 고통을 겪으면서도 나는 먹을만한것이 눈에 뜨이면 그냥 갈수가 없었다. 말라빠진 검정버섯, 넉시리(느릅나무에 돋는 버섯), 쏠쌈풀 등을 뜯어 치마폭에 쌌다. 그러나 가파로운 산턱을 톺아올라가다가 넘어지기만 하면 그것들은 쏟아져 뿔뿔이 아래로 흩어져내려갔다. 나는 그때마다 그 귀중한 량식들을 버릴수 없어서 다시 주어가지고오군 하였다.

해질녘에 초막자리에 와보니 재만 남고 주위에서는 까마귀들이 까욱까욱 울어댔다.

《토벌대》놈들은 조그만 남비하나 있던것마저 돌멩이로 족쳐놓았으며 심지어 우물을 파놓은것까지 묻어버렸던것이다.

나는 초막이 불타버린 자리에 서서 어떻게 할것인가 하고 궁리하다가 불탄 자리의 재를 손바닥으로 고르게 펴놓았다. 그것은 혹시 내가 모르는사이에라도 동무들이 오면 초막이 불탄후에도 내가 살아있다는것을 알게 하자는것이며 또 나는 발자국을 보고 그들이 왔다간것을 알수 있게 하자는것이였다.

나는 다시 나무밑 은페지로 갔다. 몸은 몹시 쇠약해졌으나 종처에서는 진물이 나며 새살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나는 나무잎에 송진을 바른것이나 혹은 강태잎을 종처에 붙였다. 이리하여 아픈것도 한결 나아가고 다리를 쓰기도 점차로 자유로와졌다.

당시 나에게 있어서 가장 곤난한 문제는 역시 식량이 없는것이였다. 처음에는 여러가지 풀잎과 풀뿌리 그리고 버섯 등을 뜯어다가 깨진 남비쪼각에 끓여먹기도 하였으나 차차 날씨가 추워지면서 그것도 없어져갔다.

나는 시든 취잎과 마른 머루덩굴을 뜯어다 먹기도 하고 흔히는 소나무껍질을 벗겨서 씹었다. 어떤 때는 골짜기개울에 내려가서 살얼음을 끄고 개구리를 잡아다 구워먹었다. 그러나 소금이 떨어진 다음부터는 매우 먹기가 곤난했다.

나는 어느날 먹을것에 대하여 궁리하다가 산공당(산신에게 제사 지내는곳)을 찾아떠났다. 나는 이전에 그런곳에 먹을것이 놓여있는것을 본 일이 있었으며 또 한가위가 갓 지나간 때여서 혹 음식물이 있을수도 있다는 추측에서였다.

한곳에 가보니 곰팡이가 새까맣게 끼고 나무그루터기처럼 말라굳어진 떡쪼각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집어다가 물에 불궈서 먹었다.

나는 이런 요행수를 바라고 그 근방일대의 산공당을 모조리 찾아헤맸다.

하루는 어느 산공당을 찾아갔는데 접시우에 주먹만한 만두 같은것이 놓여있었다. 나는 그만 눈이 번쩍 띄여 덮치듯 그것을 집어들고 돌아왔다. 그런데 그것을 한참동안 물에 담가두었다가 먹으려니까 도무지 이발이 들지 않았다. 나는 너무 오래동안 말라굳어진때문이라 생각하고 몇번이나 다시 물에 불궈가지고는 입으로 가져갔다. 나는 련이틀동안이나 그것을 불궈보군 했으나 아무리 해도 깨물수가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 물건인가 하고 자세히 살펴보니 그것은 만두인것이 아니라 동글한 돌멩이였던것이다. 나는 그만 어이없고 부아가 나서 그것을 홱 집어던지고 말았다.

이러고있는 동안에 어느덧 40일 가까운 시일이 지나갔다. 나는 동무들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며 매일 날자가는것을 알기 위하여 나무꼬챙이 하나씩을 꺾어놓았다.

다리의 종처는 거의다 아물고 먹을것만 있다면 얼마든지 걸을수 있을것 같았다.

나는 마지막으로 닷새만 더 기다려보고 그래도 동무들이 오지 않으면 미리 결심한대로 통신처를 찾아떠나려고 마음먹었다.

나는 땅속에 묻어두었던 쌀그릇을 파내놓았다.

그러나 달포가 넘는 동안을 쌀한알 먹지 못한채 굶주림에 시달린 나의 몸은 쇠약할대로 쇠약해졌으며 나중에는 기진맥진하여 늘어진채 일어나 앉을 힘도 없이 되였다. 나는 나무밑 은페지에 누운채 몸을 가눌수 없게 되였고 차차 가물가물 정신이 흐려지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하다가 죽어버리겠구나 하고 생각되는 순간 나는 몇번이나 소스라쳐 눈을 뜨고는 있는 힘을 다하여 몸을 일으키려고 애썼다. 그러나 이미 몸은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나의 눈앞에는 어느덧 환상이 떠돌기 시작했다.

…안개속에서 씩씩한 전우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혁명가를 부르며 대렬이 전진한다. 《그런데 왜 나는 대오에서 떨어졌단 말인가?》나는 소스라치며 가시덤불속에서 허우적거린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금이 떨어지지 않는것을 어찌하랴! 《동무들! 나를 함께 데리고가주어요!》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소리친다. 그러나 그 소리는 목구멍안으로 잦아들기만 한다. 대렬은 점점 멀어져간다. 나는 기를 쓰며 일어나려고 버둥거린다. …이때였다. 인자하게 웃으시며 나의 앞으로 다가오는 한분이 계셨다. 그분이 바로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가 아니신가! 그이는 손을 들어 앞을 가리키며 부드럽고 억센 음성으로 말씀하신다.

《우리가 저 언덕에 올라서면 붉은 태양을 보게 될것이요. 난관을 뚫고나가야 하오. 어서 일어나서 대렬을 따르시오!》

나는 그이가 가리키는곳을 바라본다. 아! 거기에는 붉은 려명이 아름답게 물들고있지 않는가? 《나도 가야 한다! 그이께서 가리키는 길로 전우들과 함께 저 붉은 언덕으로 가야 한다!》나는 벌떡 일어선다. 그리고 힘있게 한발자국을 내디딘다.…

순간 나는 번쩍 정신을 차렸다. 나의 눈앞에는 아무런 그림자도 없었다. 그러나 웬일인지 나의 온몸에서는 새힘이 솟아오르는것 같았고 삶에 대한 욕망이 강하게 나를 잡아흔들었다.

《살아야 한다. 살아서 김일성장군님과 전우들을 만나고 혁명의 승리를 보아야 한다!》고 중얼거리며 나는 누운채로 쌀그릇에 손을 뻗쳐 입에 쌀알을 집어넣고는 억지로 그것을 씹어넘겼다.

또 며칠이 지나간 어느날 아침이였다. 꿈속에서처럼 사람의 말소리를 들었다. 나는 혼미상태에서 겨우 눈을 뜨고 신경을 도사렸다.

《〈토벌대〉놈들에게 희생되였거나 잡혀간것이 틀림없을것 같수다.》

귀에 익은 남자의 굵은 목소리였으나 딱히 알수가 없었다.

《철호가 그렇게 놈들에게 순순히 잡혀갈 사람은 아니지. 만일 희생되였다면 이 부근에 시체라도 있을것이니 잘 찾아봅시다. … 자 이것보우. 초막이 탄 자리에 재를 이렇게 고루펴놓았으니 필경 〈토벌대〉놈들이 왔다간후에도 살아있는것이 틀림없소.》

이것은 분명 후방책임자아바이의 목소리였다.

나는 《아바이! 아바이!》하고 힘껏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그것은 흡사 모기소리와도 같이 겨우 입밖에 새여나갔을뿐이다.

후방책임자가 나에게 달려왔다. 그는 진대나무밑에서 나를 발견하자 《오! 철호동무가 아직 살아있구나.》하고 목메인 소리를 치면서 나를 안아일으켰다. 나는 그만 사경에서 혁명전우들의 구원을 받게 되는 반가움과 기쁨으로 하여 아무말도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

그들은 나를 두고간후 사방으로 조직들을 찾아다니며 식량공작을 하다가 끝내 한 동무는 《토벌대》놈들에게 희생되고 천신만고하여 내가 있는곳으로 돌아왔던것이다.

나의 용모는 형편없이 되여있었다. 처음 얼마동안은 매일 세수도 하고 머리도 빗었으나 배고프고 맥이 진하게 되자 나는 몸거둘 생각도 못했던것이다. 후방책임자는 나를 앉혀놓고 세수도 시켜주고 머리도 빗겨주었다.

후방책임자는 깨진 남비쪼각에다가 쌀을 넣고 죽을 쑤었고 고등어토막도 구워주었다. 그리고는 굶은 사람이 갑자기 많이 먹으면 취하며 몸이 부어오를것이니 조금씩 먹으라고 일러주었다. 그는 나를 친딸처럼 살뜰하게 보살펴주었다.

나는 죽 몇술을 떠먹었는데 잠시후에는 혼곤히 취해왔다. 후방책임자는 자기 배낭을 베워서 나를 눕혔다. 나의 몸은 차차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얼굴이 부어서 눈시울이 맞붙으면서 앞을 볼수 없게까지 되였다.

우리는 그곳에서 하루밤을 지냈다. 다음날에는 부었던것이 좀 내리기 시작하였다. 낮이 되면서 눈도 차츰 보이게 되였다.

그날밤에 우리는 다시 투쟁의 길을 떠났다.

 

*                      *

 

이것은 물론 항일무장투쟁시기에 내가 겪은 한토막의 간고한 체험을 적어놓은데 불과하다. 그러나 이 짧은 회상기를 통하여 15성상의 장구한 시일에 걸쳐 우리 항일유격대원들이 중중첩첩한 난관을 뚫고 빛나는 승리를 쟁취할수 있게 한 그 힘의 원천이 무엇이였던가를 인식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나는 더없는 영광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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