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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 6. 8… 잔고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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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6,305회 작성일 19-09-11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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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 6. 8… 잔고 0》

 

우리 공화국의 평안남도 평원군 원화협동농장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를 명예농장원으로 모신 온 나라가 다 아는 농장이다.

며칠전 나는 원화혁명사적관을 돌아보면서 이곳을 살기좋은 락원으로 전변시켜주신 절세위인들의 불멸의 업적과 고매한 덕성에 대하여 더 잘 알게 되였다.

그날에 받아안은 느낌가운데서 나는 평생 잊을수 없는 하나의 사실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강사의 해설을 들으며 사적관에 전시된 자료들과 전시물들을 살펴보던 나는 어느 한 전시물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어버이수령님의 저금통장이였다.




한 나라 수령의 저금통장이 어느 한 협동농장에 보관되여있다는 사실자체도 놀라왔지만 그보다 더욱 나의 눈뿌리를 잡고 놓아주지 않는것은 저금통장의 어느 한 란에 기록된 다음과 같은 사실이였다.

《1994. 6. 8 출금 105 318. 65, 잔고 0》

1994년 6월 8일이면 어버이수령님께서 서거하시기 꼭 한달전이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 수령님께서는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시기 자신의 저금을 어디에 깡그리 쓰신것인가.

강사는 눈물을 머금고 우리들에게 그 가슴치는 사연을 이야기해주었다.

주체82(1993)년 어느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자신께서 원화협동농장의 명예농장원이 되시여 지금까지 분배받으신 몫이 돈으로 환산하여 총 105 318원 65전이 된다는것을 알게 되시였다고 한다.

저금액수를 혼자소리로 외워보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환하게 웃으시며 무엇인가 수첩에 계산해보시였다고 한다. 이 많은 분배를 어디에 다 쓸가라고 하시며 흥그러워지는 자신의 마음을 노래가락에도 담을듯 기뻐하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원화리인민들은 협동조합이 조직될 때 이불 한채 변변한것이 없었다고 하시며 그들에게 이 돈으로 자동차들과 뜨락또르 10대를 사서 보내주자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고 한다.

이렇게 되여 어버이수령님의 저금통장의 잔고가 《0》으로 되였다는것이다.

《0》으로 된 우리 수령님의 저금통장.

한평생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영원불멸할 업적을 쌓아올리시고도 자신을 위해서는 그 무엇도 남기지 않으신 우리 수령님의 애국헌신의 세계를 사람들에게 똑똑히 보여주는 전시물이였다.

저금통장에 기록된 《0》이라는 수자와 더불어 우리 인민이 잊지 못하는 력사의 진실들은 얼마나 많은가.

항일의 나날 소중히 간수하고계시던 사연깊은 돈 20원을 마안산의 아동단원들을 위해 깡그리 쓰신 우리 수령님.

어버이수령님께서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겼던 우리 인민에게 조국해방이라는 크나큰 선물을 안고오실 때 가지고오신것 역시 빈배낭 하나뿐이였다.

해방후 여느 일군들과 다름없이 생활비를 받으시면서도 그것을 저축해두셨다가 학교건설에 깡그리 돌려쓰도록 하신분이 바로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정녕 우리 수령님의 한생은 합치면 인민뿐이고 자신을 위해 남기신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우리 수령님께서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시기까지 사용하신 보통 비닐실내화에 대한 이야기며 집무실의 금고안에 간수하고계신 한상의 사진에 대한 이야기 등이 그리도 인민의 가슴을 뜨겁게 울리는것이 아니겠는가.

내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깡그리 바치신 어버이수령님의 위대한 한평생을 가슴뜨겁게 되새겨주는 수자 《0》!

참으로 그 수자는 조국과 인민을 위한 절세위인의 무한대한 사랑의 세계를 말해주는 뜻깊은 수자였다.

평양시 만경대구역 리춘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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