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강현 외차구전투 (박 성 철)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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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강현 외차구전투
박 성 철
외차구전투는 내가 참가한 수많은 전투중에서 가장 간고한 전투중의 하나이다.
이는 바로 하싼호사건(속칭 장고봉사건)에서 참패를 당한 일제가 수십만의 병력을 동원하여 우리 항일유격대를 《완전소탕》한다고 호언장담하던 때였다. 그러므로 적들의 발악은 심하였고 우리들의 행동은 곤난하였다.
이것은 벌써 오래전의 일이다. 그때의 그 모든 일을 지금에 와서 세세히 기억할수 없으며 또한 그때 함께 싸운 동지들의 수많은 영웅적위훈들에 대하여 개개의 례를 다 들수 없는것을 유감으로 생각한다.
여기서 이야기하려는 외차구전투에서도 다만 내가 기억하는 몇가지만을 전하는데 불과한것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전략적계획에 의하여 우리 부대는 1938년 봄부터 집안, 통화 등지에서 활동하다가 1938년 10월에는 림강에 있는 부대들과 련합하여 대부대로써 도발적행동에 날뛰는 적의 후방을 교란하며 더욱 큰 타격을 주기 위하여 다시 림강밀림으로 돌아오게 되였다.
그동안에 우리는 수십, 수백차례의 가렬한 전투를 진행하였으며 매 전투에서 승리를 거듭하였다. 그중 통화를 중심으로 한 집안현 대황구지구에서의 한개 실례만 들더라도 불과 500명밖에 되지 않는 우리들은 적 1개련대(2,000여명)를 대부분 섬멸, 포로하고 기관총, 보총 등(1,100여정)을 로획하는 승리를 쟁취하였다. 이와 같이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의 작전계획을 성과적으로 수행하였으며 일제침략자들의 중국본토에 대한 침공을 분쇄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던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투승리들이 어떠한 간난신고속에서, 어떠한 투쟁으로 이루어졌는가.
외차구전투직전만 하더라도 우리는 30일간이나 힘에 겨운 적들과의 가렬한 싸움속에서 밤낮없는 행군을 계속하였다. 적들은 무려 수만명이나 되는 병력과 비행대까지 동원하여가지고 불과 500명밖에 안되는 아군부대를 《포위섬멸》할 작정이였던것이다. 게다가 여러날째 식량을 보장받지 못한 아군부대의 전체 전사들과 지휘관들은 극도로 쇠약하여갔다. 참으로 중중첩첩한 적들속에서 2중3중의 간난신고를 극복해나가는 악전고투의 나날이 계속되였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의 명령대로 도처에서 수많은 적들을 격파분쇄하고 다시 그이께서 계시는 주력부대를 찾아가게 되였으니 그 기쁨과 희망은 무엇으로도 비길수 없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이제 어떤 새로운 전투임무를 주시려는지…》
가슴에 벅차오르는 그리움과 무한한 신심은 모든 간난신고와 악전고투속에서도 우리를 승리에로 이끌었다.
《어서 한걸음이라도 더 빨리 적들을 무찔러나가자!》
《림강은 이제 얼마남지 않았다. 더욱더 용감하게 싸워나가자!》
자신이나 동무들을 서로서로 이렇게 고무하면서 우리는 계속 싸우고 계속 행군하였다.
외차구전투는 바로 이러한 행군과정에서 첩첩히 둘러싼 적들의 포위를 돌파하고 끝내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게 되는 간고한 전투였다.
적들은 우리가 외차구골안에 들어서기 전날에 이미 비행대를 동원하였다. 비행기에서는 거듭 《투항하라!》는 삐라를 뿌렸다.
삐라에는 우리들이 통과해야 할 외차구일대의 지형을 그려놓고 14개 련대나 되는 적들이 우리를 《기다리고》있다고 《위협》을 했다. 이는 실로 적들이 오래전부터 준비해온 《포위작전》이였던것이다. 우리도 《포위》만은 인정하였다. 사실 어느 쪽을 보나 적들은 겹겹이 우리를 둘러싸며 나타났다.
시시각각으로 조여들며 으르렁대는 야수들처럼 들끓는 원쑤들의 함성은 그대로 숨이 막힐 지경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우리에게는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였다. 유격투쟁 그자체가 벌써 넓은 지역에 배치되여있는 적들속에서 진행되는 투쟁이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때문에 적들의 《포위》를 두려워하랴. 우리의 생각은 바로 이러했다.
명령대로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림강으로 가야 하며 림강으로 가자면 어차피 외차구골안의 적들을 격파해야 한다는 이 확고한 일념이 우리를 한덩어리로 묶어세웠다.
가렬한 전투는 계속되였고 해질무렵에야 우리는 외차구골안에 들어서서 한편 싸우면서 한편으로는 휴식장소를 정하게 되였다.
외차구지형은 골짜기 한가운데 나지막한 봉우리가 있고 동북쪽은 약간 펑퍼짐한 령마루이며 동남쪽은 깎아지른듯한 절벽이 둘러있었다. 그리고 어느곳을 둘러보아도 큰 나무라고는 없고 쑥대와 새초, 돌뿐이였다.
골안복판에 있는 낮은 봉우리에 기관총중대를 중심으로 수십명의 보초를 배치하고 부대전원이 휴식을 시작했다. 이러한 때에 적들은 그 부근에서 1만여명의 자위단과 반동주구들을 더 동원하여 우리를 사방으로 한겹 더 포위했다. 모두 합하면 2만~3만명의 적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겹겹이 성을 쌓은셈이였다.
이러한 속에서 하루밤이 깊어갔다. 적들은 날이 밝기전부터 기관총을 란사하기 시작했고 또다시 비행기를 동원했다. 비행기는 공중에서 아군의 동향을 정찰하여 지상에 있는 적들에게 알리는 한편 사격을 지휘했고 직접 기총사격을 퍼붓기도 했다. 동시에 적들은 점점 더 포위망을 좁히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투항하라!》는 삐라를 계속 뿌렸다.
이때 아군은 3개 대오로 나뉘여가지고 일부는 방어를 하면서 일부는 깎아지른듯한 동남쪽벼랑으로 기여오르고있었다.
적들은 벼랑우에서 내리쏘고 우리는 벼랑아래서 올려쏘면서 벼랑우를 향해 계속 한걸음한걸음 기여올랐다.
이렇게 한 고지를 빼앗으면 또 다음고지에 적이 있었다. 게다가 적의 비행기들은 계속 머리우를 감돌며 삐라를 뿌리고 기총사격을 퍼부었으며 폭탄까지 투하하였다.
이럴 때에 우리들의 앞병풍같이 생긴 바위우에서 흰기를 두르는 적들이 보였다. 그들은 위만군이였는데 비행기가 저희들에게 폭탄을 떨어뜨릴가봐 신호를 하는것이였다.
그들이 서있는곳은 우리가 기여오르는곳에서 불과 50~60m쯤 되는 벼랑우였다. 동시에 우측릉선에서 중기를 쏘며 달려드는 왜놈들과 산아래쪽에서 추격해오르는 왜놈들이 죽기내기로 덤벼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머리우에 위만군을 두고 돌아섰다. 옆릉선에서 사격하는 왜놈들과 산아래쪽에서 기여오르는 왜놈들을 대항하여 싸우지 않으면 안되였기때문이다.
이렇게 되고보니 적탄은 머리우에 쏟아지고 앞에서도 뒤에서도 그리고 바른쪽이나 왼쪽 어디서나 비발치듯 날아왔다.
아군은 참으로 위급한 처지에 빠졌다. 지휘부에서는 잠시 전진을 멈추고 진지를 꾸리면서 방어전을 하며 최후의 한사람까지 싸우라는 명령을 내렸다.
명령그대로 아군은 전체가 한덩어리로 되여 전후좌우 사방으로 맹렬한 반격을 가하였다.
당시 우리 제3련대의 련대장인 박선봉동지도 직접 보총을 잡고 싸웠다. 그는 보총 2개를 놓고 련락병에게 탄알을 재우게 하면서 계속 사격을 하였는데 그의 명사격에 의하여 쓰러진 적만하여도 80여명이나 되였다.
이와 같이 전부대의 기관총, 보총의 맹렬한 사격은 잠시동안에 적들을 무리로 쓸어눕혔다.
그러나 수량상으로 워낙 많은 적들은 쓰러지면서도 계속 그뒤를 이어 달려들었다. 그리고 어느 사이엔가 위만군들이 있는 벼랑우에서도 왜놈들이 시누렇게 내려왔다.
그것은 바로 우리들의 등뒤였다.
이때 박선봉련대장은 나를 향하여 소리쳤다.
《1중대는 고지우의 적을 맡으라! 아래쪽의 적은 내가 맡을테다!》
이리하여 우리는 3번째로 달려드는 적들을 전후좌우에 두고 맹렬한 불을 뿜었다.
이렇게 가렬한 전투가 진행되고있을 때였다. 나의 옆에서 싸우던 련락병 김익현동무가 다급히 소리쳤다.
《중대장동무, 련대장동무가 희생됐습니다.》
이말을 듣자 나의 가슴은 그 어떤 예리한 쇠끝에 박히운듯 숨이 꽉 막혔다. 나는 저도모르게 벌떡 일어나며 련대장동무가 있던곳을 돌아다보았다. 그러나 그때는 벌써 희생된 련대장을 업은 동무들이 골짜기아래로 내려간 뒤였고 왜놈들과 육박전을 하는 동무들도 이제는 골짜기아래로 내려밀리고있었다. 그리고 이미 련대장이 싸우던 부근에는 얼마나 되는지 짐작조차 할수 없는 왜놈들이 이리떼처럼 시누런 대가리를 맞비비며 기여오르고있었다.
《저놈들을 모조리 잡아라!》
나는 그만 목이 꽉 메도록 이렇게 웨치면서 기여오르는 적들을 향해 총을 쏘아댔다. 중대전우들도 일제히 맹렬한 불을 뿜었다. 얼마간 이렇게 싸우고있을 때였다.
우리가 있는 건너편 릉선(중간릉선)에서 우리들에게 급히 퇴각하라는 신호가 왔다. 그리고 그 릉선에서는 우리의 기관총수들이 우리 중대앞에 있는 적들을 겨누고있는것이 얼핏 보였다.
나는 대원들을 데리고 홈채기로 급히 뛰여내려서 지휘부가 있는 건너편 릉선으로 달렸다. 이때 아군 기관총수들이 우리에게로 달려드는 적들을 향해 맹렬한 화력을 집중했다. 적들은 그야말로 삼대 쓰러지듯 했다.
이윽고 해가 졌다. 해가 지자 적들은 더 달려들지 못하고 사방에 불을 피웠다. 약 5m간격에 하나씩 피운 우등불무지는 거의 20리주변을 빙둘러 불바다를 이루었다. 이렇게 하여 놈들은 우리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고 며칠이라도 지내면서 아군이 투항하기를 기다릴 태세를 취하였다.
총소리한방 들리지 않는 외차구골안에는 사방에서 놈들의 전호파는 소리와 인공장애물을 만드는 도끼소리, 메질소리가 소란했다. 그리고 저희들끼리 계속 신호를 주고받는 소리와 순찰대놈들이 악을 쓰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이렇듯 첩첩한 포위속을 돌파하자면 결사전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지휘관들의 회의가 소집되였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문제가 제기되였다.
… 다시 날이 밝을 때까지 우리가 여기 있을수는 없다. 우리는 오늘밤중으로 적들의 포위선을 뚫고나가야 한다.
우리가 살아서 림강으로 가느냐 여기서 전멸하느냐 하는 중대한 문제는 우리들의 투쟁여하에 달렸다.…
《어느 중대가 돌격대의 선봉이 되여 적들의 포위선을 뚫어헤치고 부대의 퇴로를 개척하겠는가!》
나는 이때 우리 중대에 그 임무를 맡겨달라고 선뜻 말하려하였으나 너무도 중대한 임무였으므로 감히 입밖에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어느 중대에 이 영광스러운 선봉중대의 임무가 맡겨지는가 하고 초조한 심정으로 좌우를 둘러보았다.
아니 그것은 나하나뿐만이 아니였다. 김인묵, 지병학, 문봉상 등 어느 지휘원들이나 다 불이 튀는듯한 눈길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나는 저도모르는 사이에 성큼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가까운곳에 적들이 있다는것조차도 잊어버릴 지경으로 큰소리로 말했다.
《우리 중대에 그 임무를 맡겨주십시오.》
막상 이렇게 말을 하고나니 속이 시원하면서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무거운 책임감에서였다.
이때 다른 지휘원들도 나와 거의동시에 앞으로 나서며 저마다 자기 중대에 그 임무를 맡겨달라는것이였다. 나의 마음은 또 초조해졌다.
그러나 어둠속으로 한사람한사람씩 더듬어보면 지휘관의 빛나는 눈길이 나에게서 멈춰졌고 《좋소! 제1중대가 이 임무를 집행하시오.》하고 쾌히 승낙을 하였을 때 나는 헤아릴수 없는 감격으로 하여 가슴이 뜨거워지고 목이 꽉 메여올랐다.
부대에는 인차 돌격조가 조직되였다.
마지막결사전을 각오한 나는 전체 대원들(이때 나의 중대에는 대원이 60명뿐이였다.)에게 배낭에있는 사품을 일체 소각해버리게 했다. 그리고 보병총에는 날창을 꽂고 탄환은 6발씩(한발은 장탄하였다.) 재우게 했다. 이 탄알을 다 쏘면 다음 탄알을 재울 짬도 없겠으니 그대로 육박전을 전개할 결심이였다.
수류탄을 모두 앞에 차게 하였다. 그리고 나는 자꾸만 흥분해지는 마음을 누르면서 《침착하자. 그리고 우리 부대 전체 동무들이 모두다 무사히 나가도록 적들의 포위선을 기어이 뚫고헤치자.》하고 몇번이나 자신을 고무했다. 동시에 대원들에게 우리가 결사전을 각오해야 할데 대하여서와 끝까지 침착하고 용감하게 싸우자는것을 강조했다. 그러자 모두들 다음과 같은 자기들의 결의를 표명했다.
《우리가 죽더라도 우리의 조국이 광복되고 우리의 후대들이 새 사회에서 자유와 행복을 누린다면 더 바랄것이 없습니다. 승리를 확신하면서 돌격선으로 나가겠습니다.》
이윽고 행동을 개시하라는 신호가 내렸다.
돌파구로 향할 때에 중대앞에는 보총수 2명을 세우고 그 다음에 기관총수 2명을 세운 다음 포복전진을 하였다.
앞에서 보총소리가 나면 전중대가 돌격할 작정이였다.
우리뒤에 다른 구분대들이 따라 서고 지휘부 바로 뒤에서 주력부대들이 행동했다.
우리들은 계속 산벼랑을 가로지르면서 적들의 불무지와 불무지사이를 목표로 하고 기여나갔다. 이렇게 얼마를 기여가던 우리는 마침내 적들의 불무지가까이에 이르렀다. 불무지마다 수십명씩의 적들이 총을 들고서서 경비를 서고있었다. 그중에도 우리 중대가 나아가는 정면에 있는 불무지에는 비교적 인원수가 더 많았고 장교놈들도 몇몇이 보였다.(후에 안 일이지만 이것은 적의 제2련대 지휘부였다.) 나는 그 불무지를 정면으로 습격한다면 그 부근에 있는 다른 불무지의 적들도 우리에게 쏠릴것이며 그사이에 아군이 빠져나갈수 있다는것을 생각하게 되였다.
그래서 불무지와 불무지사이를 뚫으려던 생각을 버리고 정면으로 적의 불무지를 습격소탕하기로 하였다.
이럴 때에 적들도 우리를 발견했다.
《누구냐?》하고 적들이 고함을 치자마자 우리는 일제히 불을 뿜으며 계속 밀고들어갔다.
정면의 적들이 불속에 거꾸러지고 좌우에 있던 적들이 혼란에 빠졌을 때에 우리들은 적들의 경기관총 2정을 로획하여가지고 더욱더 맹렬한 불을 뿜었다. 이바람에 그 부근에 있던 적들은 달려들 생각을 하지 못하고 우물거리고있거나 혹은 숨어버리기까지 하였다.
이틈에 우리들은 동남쪽령마루를 점령하고 아군부대의 퇴로를 엄호했다.
그런데 우리가 고지를 내려설 때에 대렬뒤를 따르던 지휘부와 일부 동무들이 보이지 않았다.
이때의 안타깝고 기막히던 심정이란 참으로 잊혀지지 않는다.
결사적으로 적들의 첩첩한 포위선을 뚫고 부대의 퇴로를 열었는데 지휘부가 못나왔으면 우리만 살아서는 무엇하랴 하는 생각이였다.
나는 중대를 되돌려세웠다.
바로 이때였다.
벌판쪽 수림지대에서 귀익은 나팔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틀림없이 우리의 지휘부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후에 안 일이지만 지휘부는 적들이 우리 중대에 쏠리는 틈을 리용하여 헤쳐진 공간으로 급히 탈출하였고 수림주변에 있는 적들을 물리쳤다. 그리고 우리가 고지를 내려설 때에는 그 고지 후면에 있는 적들을 계속 공격함으로써 우리를 엄호하여주었던것이다. 그러다가 우리가 다시 고지로 오르는 순간에 나팔로 신호를 하였던것이다.
지휘부와 기본부대동무들을 만난 우리는 계속 싸울 준비를 하면서 급히 행군을 시작했다.
어두운 밤이라 적들은 우리를 추격할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방심하지 않았으며 더욱 행군속도를 가했다.
이튿날 날이 밝아서야 적의 비행기가 또다시 떠올라서 아군의 행방을 알아내려고 미친듯이 날아돌았다. 그러나 이때에는 이미 아군이 4개의 대오로 나뉘여가지고 적들의 추격을 예상하면서 림강부근 깊은 수림속으로 들어선지 오래된 때였으므로 놈들이 우리를 발견할수 없었다.
그 다음날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림강밀영지에 도착하였다.
여기서 당시 제1군장이였던 양정우동지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외차구포위돌파전투에서 만약 박선봉, 박성철, 지병학, 김인묵, 문봉상동지들과 전체 전사들의 인내성있고 헌신적이며 대담한 돌격이 아니였더라면 우리 부대 500명은 섬멸을 당하였을지도 모른다.
참으로 조선동지들의 영웅성과 불요불굴의 투지를 항상 배워야 하겠다.》
이렇게 전체 우리 대원들과 지휘관들에게 격려와 치하를 하였다. 물론 과거에도 그랬지만 양정우동지는 외차구전투를 통하여 조선혁명가들의 불굴의 투지에 대하여 감탄하였던것이다. 이 전투에서 적들은 3,000여명의 손실을 보았다.
이렇듯 우리는 외차구전투를 통하여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이끄시는 항일유격대의 불패성과 강대한 위력을 거듭 시위하였다.
동시에 이 전투에서 조선혁명가들의 영예를 다시한번 시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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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금강님의 댓글
해금강 작성일
격전의 규모나 방식이 예상밖이기에 장소와 시기, 소속관계를 다시금 따져 보았는데 분명히 열하원정에서 엄청 실패하고 많은 역량을 손실당했으며 신념을 잃은 지휘관들과 부대들이 투항하어 생사기로에 놓인 양정우의 1군 지휘부를 임강현 남패자까지 무사히 안내하기 위한 조선인 부대들의 역할을 회상한 거로 보입니다.
<세기와 더불어>에 열하원정에서 실패하고 귀대하는 1군을 구출하기 위해 조선인 부대들이 교란전을 벌리며 포위된 1군 지휘부를 결사적으로 빼 낸데 대한 글이 있는데 이 회상글과 일치합니다.
그렇다면 이 글의 시작에서 장고봉사건과 연관시켜 회상한 것은 모순입니다. 아마도 열하원정을 말 하고 싶지 않았던 거로 보입니다.
국제당에 있던 왕명의 주관적인 욕망, 국제당의 지시에 맹종한 훗과로 빚어 진 열하원정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하며 유격부대 지휘관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용납안되는 교훈적인 격전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