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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이 고동치는 한   (윤 태 홍)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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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1,617회 작성일 19-09-18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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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이 고동치는 한

 

윤 태 홍

 

1937년 겨울, 전례없이 혹독한 추위와 깊은 눈이 동북산야를 뒤덮었다. 당시 우리 부대가 활동하고있던 장백령기슭에도 눈이 길길이 쌓여서 키높은 이깔나무마저 겨우 끝머리만 내다보이는데가 많았다. 모닥불을 피우고 쉬느라면 어느결엔가 한두길씩되는 눈속으로 사람과 불무지가 한데 잦아들군 하였다.

행군을 하기 위하여 다시 눈구뎅이속에서 기여나와 머리를 들면 거센 바람과 맵짠 눈가루가 금시 숨이 막히도록 얼굴을 후려갈겼다. 땀과 눈에 젖은 옷은 소가죽처럼 뻣뻣하게 얼어버려서 팔다리를 놀리기가 더욱 어려웠다.

바로 이러한 때에도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와 그이의 전사들인 항일유격대원들은 산과 들에서 지내면서 적과 싸웠으며 때로는 며칠씩 굶으면서도 원쑤와의 격렬한 싸움에 불덩어리가 되여 내달렸다. 그런들 어느 누가 춥고 배고프다 하였으며 이 길이 고되다 하였으랴. 오직 《억천만번 죽더라도 원쑤를 치자》는 일념에 불탔고 혁명의 승리를 위하여 억센 발걸음을 내디디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명령으로 1사 사단지휘부의 일부 간부들을 호위하면서 우리가 장백령을 넘어 먼 행군을 하게 된것도 바로 이러한 때 일이다. 적들의 《토벌》을 물리치면서 무인지경인 삼차령밑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량식이 떨어졌으나 보충받을곳이 없었다.

바위산전투를 하게 된 그날은 이틀째 불조차 피우지 못했고 더운 물 한모금 마시지 못했다. 그러면서 계속 험준한 령을 넘고 사나운 눈보라속을 헤치며 나아가느라니 지친 몸은 돌에 눌린듯 무거웠고 땀은 계속 흘렀다.

그럴수록 우리는 휴식시간을 더욱 줄여가면서 행군을 계속했다. 굶주리고 지친 몸으로 혹한속에서 활동을 멈춘다는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다.

바로 이러한 때에 적들은 또다시 우리앞에 나타났다. 우리를 《토벌》하겠다고 개처럼 싸대던 적들이 인원을 보충받아가지고 장백령 뒤등으로부터 달려넘어온것이다.

이때 아군의 력량은 지휘부인원과 내가 인솔하는 경기관총분대원들 17명까지 합하여 40명밖에 안되였다. 또한 우리는 지형상으로도 극히 불리한 위치에 있었다.

지척을 분간할수 없는 눈보라속에서 비록 어방치기로 내두르는 적들의 총탄이였지만 워낙 수량상으로 많은 놈들의 화력이라 골짜기안은 금시에 뒤집힐듯 하였다.

우리는 지휘관의 결심에 따라 급히 벼랑밑으로 다가붙었다. 그리고 총은 한방도 쏘지 않고 우선 침착하게 적정을 살폈다. 적들은 등마루와 벼랑턱에서 계속 경기관총을 란사하였고 동시에 반월형으로 포위망을 조이면서 벼랑아래 골짜기로 차츰 내려오고있었다.

위험은 각일각으로 조여들고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당황하지 않았다. 우리는 오직 지휘관을 믿었고 지휘관은 우리를 믿었다. 이러한 일심동체의 행동은 항상 승리를 떨치게 하였으니 바로 그러한 자부심으로하여 우리의 마음은 든든하였다. 공포에 질려서 소란스럽게 날뛰는것은 오직 적들뿐이였다. 미친듯 짖어대는 기관총소리와 아우성소리… 얼마동안 긴장한 시간이 흘렀다.

뼈속까지 얼어드는듯한 혹독한 추위속이였지만 저마다 차디찬 총신을 가슴에 품고 엎드려서 지휘관의 명령을 기다리는 대원들의 얼굴에서는 열기가 확확 피여올랐다. 참으로 지휘관의 숨소리 하나 놓칠세라 온 정신을 가다듬고있는 나의 품에서도 기관총의 총신이 따뜻한 체온을 받아들이면서 《어서 저 원쑤들에게 마음껏 불을 뿜게 해달라.》는것 같았다.

사실 우리가 자기 심장의 한 부분처럼 여기는 무기는 마치 생명을 가진것처럼 잠을 잘 때에도 품속에 안겨 꿈을 즐겁게 해주었다. 《어서 원쑤에게 마음껏 불을 뿜게 해주.》

나는 그때에도 이러한 심정으로 가슴밑에 기관총을 더 당겨안으며 지휘관에게로 계속 눈길을 돌렸다. 적들의 흉악한 기도와 약점을 민속히 포착하고 지형지물을 세심히 판정한 지휘관은 드디여 명령을 내렸다.

그것은 우선 내가 책임진 1개분대(경기관총분대)로 하여금 벼랑우에 있는 적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리도록 유인하면서 다음명령을 기다리는것이였다. 그리고 이틈을 타서 리련대장이 지휘하는 기본력량은 사나운 눈보라와 험준한 골짜기를 리용하여 적들의 배후인 산마루에 오르라는것이였다.

이러한 지휘관의 명령은 지체없이 행동에 옮겨졌다. 비록 여러날의 어려운 행군과 굶주림에 지친 몸들이였지만 명령앞에 항상 승리를 확신하는 일념과 수백수천차례의 가렬한 싸움과 산악지대에서 단련된 우리의 몸에서는 산이라도 뒤엎을듯한 힘이 솟았다.

나는 기관총을 들고 벼랑우측 선두에 서고 김택만동무는 벼랑좌측 선두에 서서 각각 3명씩의 보총수들과 함께 벼랑우의 적을 향하여 기여오르면서 맹렬한 사격을 시작했다.

물론 아슬하게 깎아지른듯한 높은 절벽우에 있는 적들을 이런 방법으로 완전히 소멸할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는 적들의 시선을 우리에게로 집중시키면서 아군부대의 기본주력을 골짜기우로 우회시키고 적들의 배후인 등마루로 오르게 하는데는 가장 좋은 방법이였다.

적들의 시선이 우리에게로 쏠리고 화력이 교차되는 틈을 타서 아군의 기본주력이 산마루로 올라 반격태세를 갖춘것은 약 20~30분후이였다.

이사이에 우리 분대는 《돌격!》소리를 치면서 달려내려오는 놈들부터 쏘아눕혔다. 그중에 어떤 놈들은 급한 벼랑끝에 달려나왔다가 우리의 총탄을 맞고 허궁 넘어지면서 우리들이 기여오르는 절벽아래로 떨어졌다. 바위산절벽의 경사는 급했다.

우리가 적들의 턱밑을 치받아오르면서 올리사격을 맹렬히 전개하자 절벽우의 적들도 더욱더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적아간의 격렬한 총소리는 귀가 먹먹하도록 골짜기안을 뒤흔들었고 사나운 눈보라와 적들의 아우성소리는 절벽을 휩쓸고있었다.

이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이제 아군의 기본력량이 적들의 배후로부터 나타나기만 하면 우리는 포위상태에서 벗어날뿐만아니라 오히려 적들을 포위하고 뒤집어때리게 될것이였다. 그러나 이때 우리 분대에 사격을 계속할수 있는 무기는 불과 몇자루 없었다. 내가 사격하던 경기관총도 이미 사격을 중지하게 되였고 다른 동무들의 무기도 거의 빈총뿐이였다. 다만 내가 예비로 차고있던 싸창과 김택만동무가 차고있던 싸창만이 한탄창씩의 탄알이 있을뿐이였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일가? 산우로 오른 아군주력은 거의 한시간이 넘도록 감감 소식이 없었다. 게다가 절벽은 우로 오를수록 더욱더 행동하기 어려웠고 바위우에는 얼음이 뒤엉켜서 발을 옮겨디디기 힘들었다. 그러나 나는 지휘관의 명령을 굳게 믿었다. 《적들의 시선을 한곳에 집중시키면서 맹렬히 반격하라! 그러면서 다음명령을 기다리라!》

나는 약 30m 좌측에서 머리만 내다보이는 김택만동무와 서로 손신호를 해가며 번갈아 사격을 계속했고 한걸음씩 우로 기여올랐다. 머리우에서 무너져내리는 눈이 계속 뒤덮이므로 총한방을 쏘고는 한참씩 눈을 헤쳐야 했으며 한걸음을 옮기고도 뒤덮이는 눈속에서 몸을 끌어내야 했다.

그러다가 우리들의 사격이 뜸해지면 적들의 기관총사격은 더욱 심해졌다. 마침내 적들은 5정이나 되는 경기관총을 벼랑끝에 걸어놓고 불을 뿜기 시작했다.

머리를 들면 적의 탄알이 귀전을 스치고 절벽에 몸을 붙이면 무너져내리는 눈이 계속 뒤덮여서 앞을 분간할수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이런 위험과 곤난은 아무렇지도 않고 아군주력의 그후 일이 궁금하고 가슴이 조였으며 적에 대한 참을수 없는 증오로 당장 절벽우로 기여올라가서 육박전을 전개하고싶은 생각이 부쩍부쩍 머리를 쳐들게 하였다.

심장이 고동치는 한 투쟁을 멈출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한쪽 겨드랑이에 경기관총을 껴안고 눈속에 몸을 묻어가며 계속 기여올랐다. 이때 내뒤를 따라오르던 김택만동무가 다급히 소리쳤다.

《아, 분대장동무. 머리우를 조심하세요. 적들이…》

그 소리에 나는 머리를 들었다.

적들의 경기관총구가 바로 손이 닿을듯한 곳에서 불을 뿜고있었다. 이 순간 내 머리에는 적의 경기관총을 빼앗을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한걸음 더 앞으로 몸을 올려밀었다. 팔소매없는 개털등거리에 털모자를 뒤집어쓴 왜놈 헌병들이 벼랑우에 시누렇게 엎드려서 골짜기에 대고 마구 총을 쏘아대는것이 보였다.

《옳지, 됐다.》하고 나는 탄알이 없는 경기관총을 바른손에 옮겨쥐며 눈속에 몸을 푹 파묻었다. 그리고 물속을 헤염쳐나가듯이 머리만 들고 배밀이로 벼랑턱을 기여올랐다.

이때 기본주력을 인솔하고 산마루로 올라간 리련대장은 안타깝게 골짜기쪽을 내려다보고있었다.

그는 만단의 반격태세를 갖춤과 동시에 《경기관총분대원들은 속히 퇴각하라.》는 명령을 주어 련락병을 파하였다. 그런데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나도록 골짜기아래서는 분대원들이 퇴각을 하지 않고 계속 싸우고있었다. 뿐만아니라 골짜기아래서 들려오는 총소리는 점점 더 격렬하여지고 적아간의 거리는 차차로 좁혀진다는것을 짐작할수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일가?》

등마루에서 초조히 기다리고있던 지휘관은 이렇게 혼자말을 하면서 두서너걸음 더 앞으로 나서서 산마루아래를 굽어보았다. 그러나 사나운 눈보라속에 뒤덮인 골짜기에서는 총소리만이 자지러지게 울릴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경기관총분대원들이 너무 깊이 달려들었다가 적들에게 휩싸여서 악전에 빠진게 아닐가?》

너무 대담한것이 오히려 념려될 지경인 귀중한 대원들에 대해서 이렇게 가슴을 조이고있던 리련대장은 또 다른 련락병을 보내기로 하였다.

사실 우리 분대가 적들과 가까이 접근하고있는 조건에서는 아군주력이 적의 배후를 칠수는 없는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분대가 있는 골짜기로 다시 내려올수도 없고 그래서 지휘관은 리동화련락병을 우리 분대에 거듭 보내였다.

그러나 두번째 파견한 리동화련락병도 얼마쯤 내려오다가 적들의 총탄에 왼쪽다리를 맞고 눈속에 쓰러졌던것이다.

이때 우리 분대는 이미 절벽우로 거의 기여올랐으며 김택만동무와 나는 각각 적의 경기관총 1문씩을 목표로 행동을 개시하였다.

제정신 모르고 미친듯이 불을 뿜던 왜놈의 경기관총 사수 하나가 바로 턱밑에 다가든 나를 발견했는지 무어라고 기겁스런 소리를 치며 총구를 나에게로 돌리는것이였다.

그러나 이때 나는 이미 눈속에서 뛰쳐일어났고 손에 든 싸창으로 그놈을 겨누었다. 나는 왜놈의 경기사수와 부사수 그리고 그옆에 있는 3명의 왜놈헌병을 연거퍼 쏴갈겼다. 왜놈의 경기사수를 벼랑끝에 차던지고 그놈의 경기관총을 집어든 나는 계속 그 부근에 있는 놈들을 휘둘러갈겼다. 이때 벼락불을 맞고 쓰러지는 왜놈들은 별의별 기괴한 비명을 다 질렀다. 그러나 나는 그놈들을 거들떠볼 사이가 없었다. 바로 내가 서있는 웃턱에는 아직도 수없이 많은 적들의 기본주력이 있었고 내가 경기를 빼앗은 지점에도 적들이 아직 남아있어 저항하였다.

로획한 경기관총을 잡은채 나는 급히 사격위치를 정하고 엎드렸다. 그리고 뒤에 올라오는 분대원들을 엄호하기 시작했다. 후에 안 일이지만 이때 나의 좌측에서 나타난 김택만동무도 두곳이나 부상을 당하여가면서 끝내 적의 경기사수 한놈을 쏴눕히고 경기관총 1문을 또 빼앗아들었다. 좌우옆에 쏟아지는 적탄을 돌볼새없이 경기관총을 두르며 앞고지 턱밑에 뛰여든 내가 적의 기본주력이 있는 방향에 불을 뿜기 시작하였을 때에 바로 김택만동무가 나의 좌측에서 뛰여나가며 적을 향하여 련발사격을 하는것이 보였다.

이에 새 기운을 얻은 나는 더욱 용기를 내여 계속 적들에게로 기여오르며 련발사격을 퍼부었다.

한편 리동화련락병은 부상당한 다리를 끌고 적들이 조여드는 맞은편 산턱을 더듬어내리다가 갑자기 다리에 힘을 잃고 또다시 주저앉아버렸다.

그는 적탄에 거듭 부상을 당한것이였다. 그는 눈무지를 짚고 일어나려 하였으나 바른쪽다리마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는 안타깝게 입술을 깨물며 다리를 보았다. 이미 부상당한 다리에 감았던 헝겊은 어느 틈엔가 풀어져버렸고 거듭 부상을 당한 오른쪽 무릎마디에는 시뻘건 피가 내배였다.

그는 분한 생각을 금할수 없었다. 그는 옷자락을 찢어서 상처를 동이고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다리는 여전히 말을 듣지 않고 상반신이 앞으로 숙어지며 어푸러졌다. 그는 그만 벼랑밑으로 굴러떨어졌다.

《이 일을 어쩌나…》

상처의 아픔보다도 련락을 보장해야 할 책임감이 동화동무의 가슴을 죄였다. 그는 눈우에 내쳐진 총을 더듬어들고 엎디여기기 시작하였다. 내리막길이기는 하였으나 얼굴을 휩싸갈기는 눈보라가 앞길을 방해했다. 그런데다가 싸창목갑이 자꾸 흘러내려서 오른쪽 팔굽을 때리기때문에 더욱 전진하기 힘들었다.

총소리로 판단해서는 경기관총분대원들은 그리 멀지 않은곳에 위치하고있는것 같았다. 그는 급한 경사를 골라서 굴러내리기로 하였다. 그것은 위험하기는 하지만 분대원들을 단 1분이라도 속히 만나는데 더 쉬울것 같았다.

그는 경사진데를 찾아서 골짜기아래로 다리를 뻗고 손으로 눈을 짚으며 몸을 콱 내밀었다.

상한 다리를 몇번인가 나무옹이에 부딪쳐 깜박깜박 정신을 잃을것 같은 고통을 받았으나 엎드려서 기기보다 빠르게 골짜기로 내려갈수 있는것이 기뻤다.

골짜기에 다 내려간 그는 총소리를 분간해들으면서 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제는 손마저 얼어서 마음대로 놀려지지 않았으며 눈은 부어서 앞을 잘 볼수 없었다.

그럴수록 리동화동무의 머리속에는 지휘관의 명령이 불길처럼 력연했다.

(경기관총분대를 구원하는것도, 전체 부대의 승리를 앞당기는것도 나의 임무수행여부에 크게 달려있다.)는 생각이 리동화동무를 채찍질했다.

그는 끝내 분대원들이 있는 지점에 이르렀다. 그는 부은 눈을 문지르며 벼랑턱을 바라보았다. 눈보라속으로 얼씬얼씬 보이는것은 경기관총분대원들이 분명했다.

《아, 여기에들 있었구나.》

리동화동무는 기뻤다. 그래서 목이 멘 소리를 지르며 급히 일어서려고 했다. 그렇지만 그는 일어설수 없었다.

눈우에 쓰러진 그의 심장은 더욱더 참을수 없는 적개심으로 불탔다. 그리고 그는 또 생각했다.

(전우들이 내가 부상당한걸 안다면 …그렇다. 그들은 급히 퇴각하여 아군주력으로 하여금 적들을 몽땅 소멸하게 해야 할것이 아닌가? 나를 업거나 끌고가느라고 이이상 더 시간이 지체되면 어떻게 하나.)

이렇게 생각한 그의 눈앞에는 산우에서 초조해할 지휘관과 전우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한놈의 적이라도 더 오래 살려놓을수 없으며 한놈도 놓쳐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명령을 들을 때처럼 머리속에 선명히 떠올랐다.

그는 목갑에서 재빨리 싸창을 뽑아들고 눈속에 다리를 묻은채 엉거주춤이 허리를 폈다. 그리고 분대원들을 향하여 소리를 쳤다.

지휘관의 명령을 전달하는 그 짧은 사이에도 그는 상처의 고통으로하여 몇번이나 정신을 잃을 지경이였다.

그러나 그는 끝내 언덕우에 있는 동무들에게 지휘관의 명령을 알려줄수 있었다. 동시에 자기의 부상을 감출수 있었다고 생각하니 기뻤다. 그는 분대원들이 후퇴하기 시작할 때에 눈보라속을 리용하여 옆으로 빠졌다. 사나운 눈보라로하여 앞이 더욱 흐려져서 잘 보이지 않아 그는 절반 손짐작으로 언덕을 의지하고 나무그루들을 잡아가며 절벽쪽으로 기여갔다.

그러면서도 그는 분대원들의 총소리가 골안으로 몰리는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는 그만 기운이 진하여 나무밑둥을 그러안은채 쓰러졌다.

잠시동안 그는 정신을 잃었다. 모진 눈보라가 그를 뒤덮는줄도 몰랐다.

요란한 총소리와 눈보라소리가 얼마간 계속되였다. 그러다가 그뒤를 이어 유격대의 함성소리와 적들의 비명소리가 일어났다.

그뒤에도 얼마후에야 리동화동무는 머리를 들었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하고 깊이 뒤덮인 눈속에서 거의 본능적으로 가슴에 품은 싸창을 꼭 그러안았다.

(숨이 살아있는 한 무기를 손에서 놓지 말라!)

그의 심장은 몹시 뛰고있었다. 이럴 때에 어디선가 지휘관과 동무들이 그를 찾고있는것 같은 소리가 들리는듯 했다. 차츰 정신이 들기 시작한것이다. 그는 눈보라소리도 느꼈고 골짜기안에 어둠이 짙어오는것도 알게 되였다. 《아, 다들 어떻게 됐을가?》

그는 상처의 모진 고통보다도 지휘관과 전우들이 한없이 그리웠다. 그는 머리를 들었다. 그리고 문득 어디선가 웅성이는 말소리를 들었다.

《적이냐? 아군이냐?》

리동화동무는 이렇게 소리쳐보고싶었다. 그러나 목소리가 나가지 않았다.

그는 싸창을 꺼냈다. 싸창의 손잡이를 더듬어서 방아쇠에 손가락을 건 그는 다시 귀를 기울였다. 그의 귀에는 자기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리동화동무는 총구를 하늘로 추켜들고 간신히 방아쇠를 당겼다.

《탕!》

이 총소리는 리동화동무를 찾고있던 전우들을 기쁘게 했다. 얼마후에 그는 전우들의 등에 업히여 산마루로 올랐다.

적을 섬멸한 지휘부와 전우들은 다른 부상자들과 함께 리동화련락병도 서로 번갈아업으면서 행군의 길에 올랐다.

나는 이 전투에서만 하여도 우리 전우들이 어떻게 싸워 승리하였는가 하는것을 일일이 다 이야기할수 없다. 다만 내가 체험한것과 지금도 기억하고있는 리동화동무의 이야기의 일단을 전하는데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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