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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심장들 (김 룡 연)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 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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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1,605회 작성일 19-10-13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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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심장들

 

김 룡 연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전략적방침에 의하여 우리 유격대가 대부대활동으로부터 소부대활동으로 이행하던 1941년경의 일이다.

그때 우리 소조는 녕안현 핼랑허에 숙영지를 정하고있었는데 한번은 일제군경놈들이 우리의 숙영지를 포위하였었다.

놈들은 눈이 깊어서 우리가 있는 산우로는 기여오르지 못하고 《유격대를 굶겨죽인다.》고 하면서 산밑에서 며칠씩 감시만 강화하고있었다. 우리 소조는 적들의 이러한 포위속에서 5~6일을 지냈다. 유일한 식량이던 파잎사귀와 배추시래기마저 다 먹어버렸으므로 그대로 더는 머물러 있을수 없게 되였다. 그렇다고 서뿔리 산을 내려가거나 포위를 돌파하려다가 우리의 위치와 력량을 적들에게 폭로시키는것은 더욱 위험한 일이였다.

이러한 때에 장복동무와 왕정대라는 중국인 동무가 식량공작을 나가겠다고 탄원해나섰다.

그러나 소조책임자는 두 동무를 자기 위치에 가서 잠시 기다리게 한다음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눈속을 헤치고 내려간 그는 적정을 더 세심히 연구하고 통로를 확정하였다. 그 다음에 두 동무를 식량공작으로 파견하였다. 《동무들은 식량공작에서의 일반적준칙외에 특히 다음사항을 류의해야 하겠소. 즉 적들을 만나더라도 극력 전투를 피하면서 절대로 인원의 손실을 내지 말아야 하겠소. 그리고 인민들로부터 식량을 구입할 때에도 그 집에 식량이 넉넉한가를 확인한 다음에 돈을 주고 사도록 해야 하오. 물론 동무들이 다 잘 아는 문제이지만 다시한번 강조하는게요.》

그러면서 소조책임자는 한참이나 더 그들이 행동해야할바를 세세히 일러주었고 만일의 경우를 고려하여 예비통로와 련락장소까지 지적해주었다.

두 동무는 소조책임자의 주의사항을 명심하면서 놈들의 감시와 포위를 무사히 뚫고 50리 떨어진 중국부락에 도착하였다. 핼랑허는 우리 유격대가 여러차례 적들을 물리친곳이고 혁명군중들이 많은 부락이였지만 두 동무는 자신들이 《김일성장군님 부대》라는것을 내색하지 않고 보통행인으로 가장한 다음 돈을 주고 쌀을 구입하였다.

그들이 부락을 떠난것은 그 다음날 저녁때였다. 그들은 급히 오고싶었지만 소조책임자의 지시를 더욱 명심하면서 적을 피하여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우정 먼길을 돌아걸었다.

그러나 적들의 발악이 극도로 심한 때였으므로 그들은 어느 수림지대에서 적과 조우하게 되였다.

어둠을 리용하여 급히 몸을 피하였으나 추격해오는 적들이 함부로 쏘는 총알에 왕동무는 다리와 어깨를 부상당했다.

장동무의 부축을 받으면서 놈들의 사격권안에서 벗어나 산마루에 올라섰을 때는 왕동무는 상처의 심한 출혈때문에 그이상 더 걸을수 없게 되였다. 게다가 추위는 혹독하고 눈은 깊어서 왕동무의 고통은 극심해졌다. 그러나 그는 자기 상처의 고통보다도 임무수행을 지체시키게 된 일이 더 걱정이였다.

《왕동무, 너무 근심할게 없소. 어서 내게 업히오.》

이렇듯 태연스레 말하면서 자기의 웃옷을 벗어서 왕동무의 상처를 더 싸주고 위로는 했지만 장동무 역시 가슴이 조여들었다.

왕동무가 겪는 고통이 자기의탓인것처럼 생각되여 저혼자 속으로 울먹거리면서 그를 업은 장동무는 쌀주머니 두개를 목에 걸고 깊은 눈을 헤치며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업히지 않으려던 왕동무는 불과 몇걸음을 못가서 내려놔달라고 애원했다. 그러다가 그는 마침내 장복동무의 등을 떠밀고 눈우에 펄썩 내려앉았다.

《한시빨리 가져가야 할 식량이 아니요. 장복동무, 어서 동무가 먼저 가서 식량을 전해주오. 나는 잠시 쉬다가 천천히 기여서 뒤따라갈테니…》그에게서 뜻하지 않게 이런 말을 들은 장복동무는 그만 가슴이 철렁했다. 《왕동무, 무슨 당치 않은 소리를 하고있소. 동무라면 나를 여기 두고갈수 있겠소? 자, 어서 업히오.》

서로 밀고당기고 하는사이에 또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드디여 장복동무는 그를 잡아일으키면서 등을 돌려댔다. 그러나 왕동무는 장복동무의 등을 떠밀면서 업히려 하지 않았다.

《장복동무, 안되오. 한두마장도 아닌 50리 눈길에 어떻게 나를 계속 업고가겠소. 그러지 말고 동무는 한시바삐 먼저 가서 동무들에게 식량을 전해주오.》

왕동무를 업고나서면 길이 더딜것을 장복동무도 물론 잘 알고있다. 그러나 혁명전우요, 더구나 중상을 입은 그를 뒤에 두고는 한발자국도 내디딜수 없었다. 뼈가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부상자를 업고가야 했다. 그는 자기 목에 둘렀던 명주목도리를 풀어 왕동무의 허리를 든든히 처맨 다음 식량자루들을 목에 걸고 왕동무를 덥석 둘쳐업고 목도리를 한데 꽉 졸라맸다. 그 다음 왕동무가 어떠한 말을 해도 그는 응대하지 않고 수걱수걱 걷기만 했다. 다만 그의 손만이 등에 업힌 동무의 몸을 이리저리 더듬어가며 그의 상처가 얼지 않게 하느라고 자주 움직일뿐이였다.

두사람의 무게로 해서 눈길을 헤치며 걷는 장복동무의 몸은 걸음마다 깊은 눈속으로 허리까지 빠져들어갔다. 그리고 목에 건 식량자루들이 가슴아래로 자꾸 늘어졌다. 그러나 장복동무는 왕동무가 떼를 쓰지 않고 순순히 업혀있는것만도 다행으로 여겼고 그의 따뜻한 체온이 자기 등에 전하여지는것이 마치 자기가 어린 시절에 동생을 업어주던 일처럼 느껴졌다.

굽어드는 허리에 자주 힘을 주고 또 앞으로 숙어지는 몸을 자주 젖히군 하면서 그는 한번도 쉬지 않고 산 하나를 넘어섰다.

그런데 등에 업힌 왕동무는 장복동무의 량어깨를 끌어잡은채 점점 혼수상태에 빠져갔다. 그 춥고 힘든 가운데서도 등에 업힌 전우의 숨소리 하나도 놓치지 않고 걸어가던 장복동무는 이것을 곧 알수 있었다.

그는 그만 울음이 탁 터질 지경이였다. 그는 자기의 격한 감정을 꾹 참으면서 오직 전우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쉬지 않고 계속 눈길을 걸었다. 이렇게 얼마를 걷고있던 그는 차차로 다리맥과 손맥이 풀려갔고 등에 업은 부상자의 체중이 몸에 부쳐갔다. 게다가 사나운 눈보라와 허리에 치는 눈길은 자꾸만 장복동무의 몸을 쓰러뜨리려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내가 넘어져서는 안된다. 시간이 지체돼서는 안된다.)하고 채찍질하면서 더욱더 숨가삐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차차로 진해가는 그의 힘은 걷잡을수 없었다.

그의 눈앞은 불이 붙는것 같았고 목에서는 겨불내가 났으며 손발의 감각은 거의 없다싶이 되였다.

그러나 그의 강한 책임감과 동지에 대한 뜨거운 사랑의 정신만은 흐려지지 않았다. 그는 저도모르는 순간에 눈앞이 아뜩하여져서 푹 꼬꾸라지기도 했다. 눈속에 묻힌 그의 얼굴이 차디찬 눈의 감촉을 느끼자마자 심장에서는 소조책임자가 하던 말이 솟구쳤다.

… 인원의 손실을 내지 말아야 한다! 동지를 구원해야 한다!

불처럼 뜨거운 욕망이 그를 추켜세웠다.

그는 왕동무의 얼어드는 손발을 주물러주고 또 그의 두발을 자기 가슴에 넣어 녹여준 다음에 한참씩 뛰여가군 했다. 그러다가 그가 마지막산턱에 접어들었을 때였다.

장동무는 또다시 눈앞이 어두워지고 눈에 불이 어리면서 앵… 하는 소리와 함께 눈속에 푹 꼬꾸라졌다.

그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에 등에 업혔던 왕동무도 눈속에 묻힌채 잠잠하였다.

장동무는 급히 머리를 들고 허리의 끈을 푼 다음 왕동무를 주물러주고 그의 손발을 자기 가슴에 넣어보았다. 그러나 얼마전까지 느끼던 그 따뜻한 촉감은 좀처럼 되살아나지 않았다. 이렇게 훌륭한 동지를 잃어서는 안된다. 이것이 그의 온 마음을 사로잡은 한가지 신념이였다.

그는 자기의 손과 발이 얼어드는것을 생각할새없이 왕동무를 더 힘있게 주물러주고 가슴에 품어가며 구원하기에 전력을 다했다.

잠시후에 다시 그를 업고일어선 장복동무는 눈보라속을 헤치며 산마루를 마저 기여오르고있었다. 한걸음한걸음이 힘겨웠으며 눈앞은 자주 캄캄해왔으나 왕동무가 어느정도 의식을 회복하고 자기의 두어깨를 꾹 잡아주게 된것이 기뻐서 그는 왕동무의 량쪽발을 얼지 않도록 계속 주물러가며 눈보라를 뚫고 올라갔다. 그는 날이 밝을녘에야 소조책임자가 지적해준 예비통로를 거쳐서 부상자를 업고 식량자루를 목에 건채 밀영지에 닿았다.

동지들이 왁 달려들어 장복동무를 얼싸안았다.

등에서 왕동무를 안아내리고 목에서 식량자루를 벗길 때까지 그 자리에 꼿꼿이 서있던 그는 더 견디지 못하고 그만 자리에 쓰러져버렸다.

장복동무가 동지들의 부축을 받고 일어났을 때 그옆에 누워있던 왕동무도 의식을 회복하였다.

장복동무를 바라보는 그의 두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있었다.

이것이야말로 피로써 맺어졌고 목숨으로 굳세여진 조중인민의 친선과 단결의 모범이며 항일유격대원들의 고상한 혁명적동지애의 모범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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