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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번영의 시대 제3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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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3,434회 작성일 19-11-04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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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장

2

 

1947년 6월 16일 오후 3시경 김은식은 후레 드리크 미군소장과 함께 북조선인민위원회 산업국 전기처 회의실로 안내되였다. 넓고도 아담한 그 방은 일제시기 김은식이 몇번 들어와본적이 있는 서선전기회사 회합실로서 그때와 달라진것은 별로 없었으나 한쪽 벽을 가득 채운 전기부문에 대한 김일성장군님의 현지지도날자들을 적은 판이였다.

김은식이 자못 놀란것은 김일성장군이 조국에 개선하신 후 맨 처음으로 현지시찰을 하신 기업소가 바로 서선전기회사이며 바로 그날 이 방에서 수십명의 로동자, 사무원들과 담화를 나누신 사실이였다.

《우리 장군님께서는 예로부터 먹는것을 천지천 즉 하늘의 하늘이라고 했다시며 전기는 현대산업의 식량이므로 하늘의 하늘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김은식은 안내원의 해설을 들으며 눈이 둥그래졌다. 김일성장군이 전기를 이처럼 귀중히 여기시는분인가? 그때부터 전기부문에 대하여 얼마나 많은 교시를 하시였는지 현지지도날자와 교시 장소, 제목만을 쓴것이 넓은 벽을 가득 채운것이였다.

교시제목들만 보아도 김일성장군이 전기를 비롯한 공학부문에 대단히 박식하시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드리크도 안내원의 해설을 같이 듣고있었는데 통역은 김은식이가 하였다. 회담시간이 아직 안되였지만 드리크가 회담장을 먼저 구경하고싶다고 제기하여 행사 안내자가 우에 알아보고 그를 데리고 왔었다.

《실례이지만 전 좀 앉아있어야 하겠습니다. 몸이 좀 불편해서… 실례합니다.》

안내원의 해설도중 드리크는 고개인사를 하고 회의장 한쪽에 꾸려놓은 회의탁으로 걸어갔다. 김은식이도 안내원의 해설을 더 듣지 못하고 드리크의 뒤를 따라 회담탁으로 가서 《김은식선생》이라는 이름표가 얹혀있는 탁상을 마주하고 앉았다.

회의실 유선방송기에서 마침 오후보도를 하는 녀성방송원의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첫 소식은 김일성장군님께서 오전에 평양학원과 중앙보안간부학교를 현지지도하시고 오후 첫시간에 북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차회의를 소집하셨다는것이였다.

정력적인 활동을 벌리고계시는 김일성장군님에 대한 소식을 들으며 김은식은 위압감에 짓눌려 부지중 온몸을 떨었다.

방송원은 계속하여 생산에서 기적적인 혁신을 일으키고있는 각지 공장, 기업소들과 모범로동자, 기술자들에 대한 소개를 하였다. 그들중에 김은식이 일제시기부터 알고있는 오천행의 이름도 들어있었다. 오천행이 책임지고있는 전기처 청년작업대 대원들과 양덕군청년들이 동양리에서 수력발전소건설을 다그치고있어 이제 두달후에는 고콜불로 살아가던 산골마을이 환한 전기불을 보게 될것이라고 하였다.

뒤이어 방송원은 국가가격을 일부 인하할데 대한 북조선인민위원회 결정 제138호(1947년 5월 27일)와 공장, 기업소들에서 도급제, 상금제, 식량특별배급제를 광범히 실시할데 대한 인민위원회결정 제47호(1947년 6월 8일)를 보도하였다. 보도문에는 인민들에게 기쁨을 안겨주는 이 결정은 1947년도 인민경제발전계획을 수행하는 과정에 벌써 생산품이 증대되고 자금이 축적되여 실시할수 있게 된 인민적시책이라는것이 특별히 강조되여있었다.

(남조선에선 물가가 천정부지로 올라가는데 여기선 내려가누나! 혹시 남조선대표가 들으라고 조작한 허위보도가 아닐가? 정치란 그런것이니까. 왜 하필 오늘 보도하는가? 그전에도 몇번 보도한것을 반복하는가?)

중요보도물은 대체로 두번이상 반복보도한다는것을 김은식이도 모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방송원은 오늘 오후 4시부터 북조선인민위원회 산업국 전기처 회의실에서 전력대가부채처리와 관련한 북남회담이 진행되는데 대한 예비보도를 하였다.

드디여 정각 4시가 되자 북조선대표들이 회담장에 나타났다. 그뒤로 통역원들과 팔에 완장을 두른 북남기자 몇명이 따라들어왔다.

회색외겹양복에 넥타이를 맨 리문도가 가운데자리에 앉고 량옆에 산업국 부국장과 군복차림의 쏘련군소장이 앉았다. 그들의 뒤에 북조선인민위원회 외무국의 영어통역원이 서있었는데 이 자리배치는 북조선측의 주탁이 리문도라는것을 말해주고있었다.

남조선측에서는 드리크와 김은식이 나란히 앉아있어 어느 자리가 주탁인지 알수 없었다. 일부러 주탁의 위치를 아리숭하게 만들기 위해 남측에서는 세명이 아니라 두명이 참석했는지 모른다. 그들의 뒤에도 저들의 로어통역원이 서있었다.

기자들이 분주히 돌아가며 사진기샤타를 눌러대서 한동안 회담장안에 섬광이 번뜩거리였다.

처음 북남 량측에서 간단한 인사말들을 나누고 인차 본회담에 들어갔다.

리문도가 첫 발언을 하였다.

《본 회담의 취지에 대해서는 다 알고있는 문제이니 여기서 언급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본 회담에서 토의할 전력대가부채문제를 원만히 그리고 공정하게 해결하기 위하여 먼저 1945년 8월 15일 이후부터 1947년 6월 15일까지 우리가 남조선에 보낸 전기량과 전기대가부채량에 대해서 알려드리겠습니다.》

리문도는 상대측에서 송전통계자료들을 볼수 있도록 기록문건들을 회담탁에 내놓았다. 리문도의 자세는 당당하고 의젓하였고 발언하는 어조 또한 자신만만하였다.

원래 운동선수인 리문도는 이마가 훤칠하고 체구가 그쯘하였으며 모든 언행이 패기에 넘쳐있었다.

김은식의 귀전에는 《친구간이 적대자가 되여 담판을 하게 되니 일막의 비극이야.》 하던 윤일중의 서글픈 목소리와 《당신은 머지 않아 리문도가 스스로 무덤속으로 찾아들어가는 기이한 모습을 보게 될거요.》 하던 드리크의 목소리가 겨끔내기로 울리였다.

(아, 아 우리 조선의 운명, 조선사람들의 운명은 왜 이리도 기구하단 말인가?)

《1945년 8월 15일부터 1947년 6월 15일까지는 정확히 22개월 즉 1년 10개월, 2개월이 모자라는 2년입니다.》

리문도는 김은식이가 아니라 드리크를 지겨보며 말하였다.

《해방후부터 1947년 5월 31일까지 북조선에서 남조선에 송전한 전력량은 수억키로와트시나 됩니다. 구체적인 수자는 문건에 씌여있으니 보십시오. 이것을 현재 적용하고있는 전기단가로 계산하면 무려 7억여원에 달합니다. 역시 문건에 구체적인 액수가 씌여있습니다.》

리문도는 드리크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고 이번에는 김은식을 지켜보았다. 은식은 등골로 주먹같은 얼음덩이가 굴러내려가는듯 온몸이 서늘해지면서 머리끝이 쭈볏이 일어섰다. 엄청난 빚돈때문에 전률을 일으킨것은 아니였다. 이제부터 시작될 일문일답이 그에게는 무서운 일이였다. 한마디라도 실언을 하면 후에 미군정앞에서 전기대가부채에 못지 않는 무서운 대가를 치르어야 하는것이다. 여기서는 한마디한마디가 목숨과 관련되는 운명적인 말이였다.

마침 드리크가 새노란 털이 부스스하게 일어선 손으로 턱을 만지면서 점잖게 물었다. 《동북지구에도 전기를 보내주었습니까?》

영어에 능통한 리문도는 통역을 거치지 않고 즉각 대답하였다.

《물론 보내주었습니다.》

《동북지구에도 전기를 보내주었군요.》

드리크는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그곳에서는 전기료금을 제대로 다 처리했는가고 물었다.

《아시다싶이 중국은 내전으로 인해 정세가 매우 복잡합니다. 중국의 전력대가부채문제는 내전이 완전히 가라앉은 다음에 토의하여야 될것 같습니다. 오늘은 장개석국민당이 있던 자리에 래일은 민주련군이 들어오는 판이니 전기문제를 토의에 붙일 형편이 못됩니다. 여기서 부언할것은 북조선인민위원회는 생활이 령락된 중국의 전재민들에 한해서는 전력대가부채를 면제시키도록 합의를 보았다는겁니다.》

《그렇습니까? 북조선의 인도주의적조치에 대하여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드리크는 눈을 내리깔며 고개를 한번 숙여보이고 《남조선인민들도 참 불쌍합니다. 그들은 모두 가난하게 살고있습니다. 나는 북조선인민위원회가 남조선인민들에게도 그러한 인도주의적조치를 취하게 되리라는것을 믿어의심치 않습니다. 같은 동포들이니까요. 더두말구 서울에는 처장선생의 아버지, 형님 그리고 두 자식이 있으니, 허허허.》

드리크는 김은식을 돌아보며 그렇지 않느냐고 물으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김은식은 이마와 두볼로 벌레가 기여가는것 같아 얼굴을 붉히며 기침을 깇었다.

리문도의 눈빛이 날카로와졌다.

《당신은 무슨 말을 그렇게 합니까? 당신들은 이미 남조선주민들에게서 전기세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까. 남연백지구 농민들에게선 구암, 례의저수지의 물세도 받았지요. 그것도 높은 값으로… 우리는 지금 당신들이 받아먹은 그것을 요구하고있습니다. 현재 전기단가는 1원 60전이지만 우리는 1945년 8월 15일부터 1947년 5월 31일까지는 현재 단가의 10분의 1이 되는 16전을 받으려고 합니다. 당신들은 남조선주민들에게서 16전단가의 거의 20배나 되는 고률의 전기세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16전 단가의 돈만을 요구하니 그 액수를 제외한 나머지 돈들을 남조선주민들에게 돌려주시오.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인도주의적조치입니다.》

리문도는 숨돌릴사이없이 계속 다불러세웠다.

《전기세는 전기를 쓰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지불합니다. 북조선에 주둔한 쏘련군대도 지불합니다. 그 전기세로 새로운 전기를 생산합니다. 전기세를 물지 않는것은 오직 당신네뿐이요. 우리가 동북지구 전재민들에게 전기부채를 면제시키는것은 그들이 이미 걸머진 그 많은 부채를 도저히 지불할 능력이 없기때문이요. 남조선주민들에게서 매달 전기세를 받아먹고도 전기대가부채전량을 면제시켜달라며 인도주의를 론하니 너무도 철면피하지 않는가?》

리문도는 류창한 영어로 드리크의 면상을 후려갈기였다.

김은식은 드리크의 두터운 낯가죽에서 검은 피가 줄줄 흘러내리는것 같은 환각에 몸서리를 쳤다.

그러나 드리크는 태연하였다. 그는 슬픈 표정을 지은채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중얼거리였다.

《나는 그런것을 전혀 몰랐습니다. 남조선주민들에게서 전기세를 받은 사실을 모르고있었습니다. 김은식부사장! 왜 그 사실을 나한테 알려주지 않았습니까?》

드리크는 연방 고개를 저으면서 자기는 급작스레 회담에 참가하라는 지시를 받고 준비없이 총총히 떠나왔으므로 전기세와 관련된 전후관계를 전혀 모른다고 하였다.

《부사장, 정말 그게 사실이요? 당신네가 남조선주민들에게서 전기세를 받고도 북조선에 바치지 않았다는게?》

드리크는 짐짓 성난 표정을 짓고 김은식에게 캐여물었다.

그는 실로 김은식에게는 철면피한 악을, 리문도에게는 평화를 위한 위선을 보이고있었다. 철면피한 악과 위선을 배합하는것이 미국식정치방식의 하나인지도 몰랐다.

《김은식부사장? 그것이 사실이라면 빨리 전기세를 물어야 합니다. 대단히 잘못했습니다.》

리문도는 급전하는 드리크의 태도에 한순간 어리둥절해졌다.

체르넨꼬브소장도 천만뜻밖인듯 어깨를 으쓱하며 두손을 펼쳐보이였다.

김은식이까지도 드리크가 이러한 각본을 써가지고 회담에 참가한줄은 모르고있었다. 위선과 철면피는 서로 상반되는 두 측면인것 같지만 사실상은 하나의 토양에 뿌리를 두고있는것이다.

《어서 문서에 서명을 합시다.》

드리크가 김은식에게 재촉하였다.

리문도는 이미 준비해놓은 조약문건을 내놓았다. 조약문건에는 남조선전업회사와 남조선주둔 미군사령부가 해방이후부터 1947년 5월 31일까지 북조선에서 남조선에 보낸 전력에 대한 전기료금을 16전 단가로 1947년 8월 31일전으로 북조선인민위원회 산업국 전기처에 전량 지불하며 아울러 1947년 6월 1일부터는 현재의 전기단가 1원 60전으로 매달 정상적으로 지불할데 대한 내용이 밝혀져있었다.

후레 드리크와 김은식은 곧 조약문건에 조인하였다. 하여 회담은 예상외로 화기로운 분위기속에서 30분 남짓한 짧은 시간에 끝났다.

회담후 김은식은 리문도와 따로 만나 사담을 나누고싶었으나 속히 숙소로 돌아가자는 드리크의 불같은 재촉으로 하여 리문도에게 서울집안소식을 전해줄 여유조차 얻지 못하였다.

돌아가는 길에 드리크는 승용차안에서 김은식을 돌아보며 《지금 리문도는 개선장군처럼 어깨가 으쓱해있을테지만 그는 이제 1년안팎으로 북조선의 붉은 칼에 맞아죽을거요. 조약문건이란 휴지장에 불과하지.… 앞으로 북조선에서는 전기의 혼란이 일어나게 되고 우리는 공짜로 더 많은 전기를 받아쓰게 될거요.》 하고 입가에 야릇한 웃음을 띠며 실눈을 지었다.

김은식은 가슴이 떨리였다. 리문도가 붉은칼에 맞아죽는다는것, 조약문건은 휴지장에 불과하다는것, 앞으로 북조선에서는 전기의 혼란이 일어나게 되고 우리는 공짜로 더 많은 전기를 받아쓰게 된다는것, 드리크가 뇌까린 그 세가지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은식은 정확히 알수 없었으나 몸서리가 쳐지도록 무서웠던것이다.

승용차가 대동교를 건느자 웬일인지 드리크가 갑자기 손을 쳐들며 차를 멈추게 하였다. 이때 차창으로 기이한 광경이 비치였다. 숱한 사람들이 두겹세겹으로 둘러서서 늙은 할머니들의 춤판을 구경하고있었다.

머리에 인생의 서리가 내린 여라문명의 할머니들이 어깨를 들썩거리며 덩실덩실 춤을 추고있었다. 한 할머니는 물대야에 바가지를 엎어놓고 앉아서 《좋다, 좋지.》 하며 장단을 치고있고 한 할머니는 양철통을 꽹과리마냥 두드리면서 흥타령을 불렀다.

 

    얼씨구 절씨구 인민정권 좋을시구

    물건값 낮추라는 나라 결정 내렸네

    인민시책 펼쳐주신 김장군님 받드세

 

할머니들의 즉흥타령이였다.

가식을 모르는 늙은 할머니들의 저 밝은 표정과 즐거운 웃음에는 조그마한 허위도 있을수 없었다. 전기회담이 있은지 10여일후 6월 30일 평양방송에서는 1947년도 상반년도 인민경제발전계획을 초과수행하였으며 애국주의증산경쟁에서 평양곡산공장이 제1위를 쟁취한데 대한 특대보도를 하여 북조선의 전지역이 명절처럼 흥성거리였다. 이날 국영상점들과 소비조합 상점들에는 면양말, 비누, 성냥, 담배, 비료, 면직류천, 각종 건재품 등 여러 종의 상품들의 인하된 가격을 공시하였다.

그날 평양시 근로자들과 시민들은 상반년도계획을 넘쳐수행한 자랑을 안고 민주주의조선림시정부수립을 요구하는 평양시군중대회를 진행하였다.

이날은 비가 내리였다. 그러나 32만여명의 평양시민들은 쏟아지는 폭우속에서도 《조선민족의 영명한 지도자 김일성장군 만세!》, 《조선인민은 민주주의조선림시정부수립을 요구한다》, 《친일파, 민족반역자들을 쏘미공동위원회 협의대상에서 제거하라!》 라는 표어를 들고 만세와 구호를 웨치며 평양시 거리를 행진하였다.

 

행사가 끝난 뒤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집무실로 돌아와 송수화기를 들고 수풍발전소 지배인을 찾으시였다. 장군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오리라는것을 예견하고 대기하고있은듯 수화기에서 지배인의 목소리가 울리였다.

《수풍발전소 지배인 리지찬 전화를 받습니다.》

《지배인동무! 상반년도계획을 넘쳐수행한 수풍발전소로동계급에게 축하를 드립니다.》

《장군님!…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지배인의 목소리는 감격에 떨리면서 토막토막 끊기였다.

《내가 오늘 지배인을 찾은것은 수풍저수지때문이요. 지금 평양에서는 비가 내리고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비내리는 창밖을 내다보시였다. 시뿌연 구름이 덮인 하늘은 인차 개일상싶지 않았다. 지배인은 장군님께서 무엇을 걱정하고계시는지 알고있었다.

《장군님, 걱정마십시오. 지난해 10월 10일 장군님께서 교시하신대로 요즘 몇개 수문을 정상적으로 열어놓고있습니다. 46년 8월에 있었던 그런 사고가 다시는 없을테니 걱정을 놓으십시오.》

《고맙소. 5월에 보낸 려객선은 고장없이 잘 다닙니까?》

《예, 정상운행합니다. 저도 려객선을 타고 신의주에 몇번 갔다 왔습니다. 모두 기뻐합니다. 려객선도 오고 짐배도 오는걸 보니 인민경제계획이 정말 좋은거라고들 합니다.》

《그래요?》

장군님께서는 잠시 동안을 두었다가 말씀을 이으시였다. 《하반년도부터는 본격적으로 기계배들을 생산하게 됩니다. 래년도에는 500톤급 철선을 설계해보라고 했습니다. 전기부문에서도 자만하지 말고 계속혁신을 일으켜야 합니다. 우리는 너무도 뒤떨어졌습니다. 이제 겨우 려객선을 타고다니는데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남들이 한걸음 내디딜 때 우리는 백걸음 내디뎌야 합니다. 오늘은 이만합시다.》

장군님께서는 송수화기를 놓고 창가로 걸어가시였다. 창밖에서는 허연 비줄기가 장살처럼 세차게 내리꼰지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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