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번영의 시대 제1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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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 회)
제 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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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명 가까운 인원이 루대에 올라와있었다.
산업국장이 서쪽란간앞에 서서 일군들에게 말하였다.
《다 아시는것처럼 우리는 래년도인민경제계획문제를 토론하고저 여기에 모였습니다. 원래는 김책동지가 오늘 협의토론을 보아주게 됐었는데 급한 일이 제기되여 오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대신 나섰는데 격식이 없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어봅시다.
계획작성방법, 계획수행방법 등 생각하고있는바를 터놓고 이야기합시다. 장군님께서는 인민경제계획은 우리 나라 력사에서 처음해보는 일이니만큼 집체적토의를 많이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란간턱에라도 걸터앉읍시다.》
산업국장은 어색하게 협의회를 선포하고 란간턱에 걸터앉았다. 뒤따라 다른 일군들도 적당히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맨처음 박창옥이 루대 복판으로 걸어나왔다.
그는 한손에 수첩을 들고 무게를 주어 허두를 뗐다.
《경제문제이자 정치문제이고 나라의 운명문제이기때문에 이 자리에서 생각하고있는바를 다 말하고저 합니다.》
박창옥은 수첩을 든 바른손을 세차게 흔들었다. 그는 원칙적으로 인민경제발전계획은 사적소유가 완전히 철페된 사회주의사회에서만 실시할수 있다는 전제를 세우고 민주조선의 경제형태를 분석하였다. 지금 우리 나라에는 사회주의경제형태, 소상품경제형태, 자본주의경제형태 등 세가지 경제형태가 존재하고있는 조건에서 전반적인민경제발전계획을 작성하는것은 무리한 일이라고 하였다.
《지금 우리 나라에는 공업부문에도 개인소유형태가 존재하지, 농업부문에선 전반적으로 개인소유제이지, 아직은 중공업을 발전시킬만 한 토대가 없지, 이런 상태에서 국가경제쁠란(계획)을 작성했댔자 실현할수 없는 쁠란으로 됩니다. 다시말해서 시기상조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전반적인민경제발전쁠란이라는 용어를 공개적으로 쓰지 말고 생산장성의 가능성이 보이는 일부 공장, 기업소들에만 생산장성목표를 주자는것입니다.》
그는 쏘련에서 네쁘(신경제정책)시기에 일부 국영공장들에 생산장성목표를 주었다고 하면서 오늘 북조선이 쏘련의 네쁘시기와 비슷하다고 하였다. 그는 김일성장군님께서 의도하시는 경제의 계획화 역시 쏘련의 네쁘시기에 레닌이 실시한바와 같은 일부 공장, 기업소에 국한된 계획화임을 믿어의심치 않는다고 하였다.
뒤따라 소비조합위원장 장시우가 일어나 박창옥의 의견을 지지하는 동질의 토론을 하였다. 그도 박창옥의 본을 따서 네쁘가 어떻고 소상품경제우크라드(경제형태)가 어떻고 하며 중언부언하였지만 그것은 일가견이 없이 박창옥의 토론을 그대로 반복하고 추어올리는 지원포와 같은 토론이였다.
장시우도 그렇고 박창옥이도 그렇고 토지개혁 당시에는 쏘련식의 아르쩰리 즉 농촌협동화를 주장하던 사람들이였다. 그때는 좌경적으로 나왔지만 지금은 시계추가 바른쪽으로 돌아왔다.
좌우경이란 본질에 있어서 같은것이였다. 결국 선행한 사회주의나라에 대한 사대주의, 교조주의로부터 생겨난 편향이였다.
두사람의 토론이 끝나자 간부들의 시선은 자연히 산업국장에게 쏠리였다. 그들의 토론에 대한 협의회집행자의 의견을 듣고싶어하는 얼굴들이였다. 그러나 산업국장은 박창옥, 장시우들의 토론이 본협의회의 취지에서 탈선된것을 간파하였으나 감히 옳다, 그르다 의견을 못 내놓고 《토론을 계속합시다.》 하고 침울하게 중얼거리였다.
산업국장과 대각선방향의 란간턱에 앉아있던 김광진이 천천히 일어섰다. 언제나 옷차림을 깔끔히 하는 그는 하얀 와이샤쯔목에 단정히 맨 푸른 넥타이매듭을 만지고나서 코허리에 처져내린 안경테를 추어올리였다.
《저는 장시우동무의 의견과는 전혀 다른 의견을 가지고있습니다.》
불쑥 내뱉는 김광진의 말에 놀란 사람은 장시우보다도 박창옥이였다. 장시우에 대한 반박은 곧 박창옥의 토론을 부정하는것으로 되기때문이였다.
박창옥은 내심 몹시 불쾌하고 지어 불안스러웠으나 태연자약히 앉아있었다.
《우리 나라에 세가지 경제형태가 존재하고있기때문에 경제의 계획화를 실현할수 없다는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중요산업이 국유화되기 전에는 계획경제를 실시할수 없었지만 산업국유화법령이후 90프로이상의 산업이 인민의 수중에 장악된 오늘에 와서는 얼마든지 계획경제를 실시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경제를 계획화하여야만 나라의 경제를 옳게 운영해나갈수 있고 인민생활문제를 해결할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장군님께서 여러차례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장군님께서 의도하시는 경제의 계획화는 쏘련의 네쁘시기의것과는 아무런 공통성도 없는 분명히 국가 전반적인 인민경제계획이라고 봅니다. 저는 그렇게 알고있습니다.》
박창옥은 여전히 태연한 자세를 흐트리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푹 가라앉은 소리로 점잖게 자기 변론을 하였다.
《나도 중요산업이 국유화된 조건에서는 경제의 계획화를 실시할수 있다고 하신 장군님의 말씀을 기억하고있소.
그러나 한편 장군님께서는 90프로이상의 산업이 인민의 손에 장악된 조건에서도 로동자, 기술자들이 주인구실을 제대로 못하고 고용자적근성을 없애지 못하면 경제의 계획화를 실현할수 없다고 말씀하셨소.》
박창옥은 손을 들어 남쪽켠을 가리켰다.
《왜 그런가? 전반적인 계획화를 하자면 모든 부문, 모든 공장들이 일시에 발을 맞추어야 합니다. 지금형편에서 발을 맞출수 있는가?
동무도 요즘 철도가 막연하다는 소리를 듣고있겠지요? 가뜩이나 비틀비틀하던 철도가 고열탄수입이 중지되여 조만간 철도수송이 마비될 위험에 처해있소.
철도뿐인가. 우리 나라 산업의 명줄을 쥐고있는 수풍발전소에서 큰 사고를 내고 에프론까지 파손시켜 전기생산을 당장 중지하고 에프론복구공사를 벌려야 할 형편입니다. 탄광, 광산들은 어떤가? 지질기술이 한심한 우리 나라에서는 석탄과 광물생산에서 투기성을 면치 못합니다. 어제는 석탄을 꽝꽝 잘 캐다가도 오늘은 탄주머니를 잃어버려 허탕을 칩니다.
이런 형편에서 전반적인민경제발전계획을 어떻게 수립하겠는가?
한 공장이 튀면 그와 련쇄된 다른 공장들도 튀는판인데 이때문에 전반적인 경제의 계획화는 사회주의사회에서만, 그것도 사상, 기술수준이 높아진 때에만 할수 있는겁니다. 위대한 쏘련도 사회주의10월혁명이후 12년만에야 전반적인민경제발전계획을 작성할수 있었습니다. 그전에는 다 부분적인 계획화였소.》
박창옥은 유유히 자리에 앉았다. 그는 앉은 자리에서 서글픈 미소를 지으면서 쏘련의 유명한 경제학자 누구누구도 북조선에서 계획화를 하겠다는것은 부등깃도 돋지 않은 새끼새가 하늘을 날겠다고 둥지를 뛰쳐나오는것과 같은 모험으로 보고있다고 하였다.
《원래 봉건사회인 조선에는 해방전까지 자기 태내에 자본주의적관계가 맹아상태로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조선에 존재한 자본주의적관계와 부르죠아운동은 모두 외부로부터 이식된것입니다. 이런 사회력사적바탕에서 민주건국을 하고있는 우리 나라가 어떻게 사회주의나라에서처럼 전반적인 인민경제발전계획을 할수 있겠는가 말이요!》
박창옥은 더 론의할 필요도 없다는듯 사람들을 외면하고 옆에 서있는 란간기둥을 돌아보았다. 합각지붕을 떠받들고있는 원형나무기둥에는 곳곳에 구멍이 숭숭 뚫려있었다.
(웬놈의 구멍이 이렇게 많은가?) 하고 박창옥은 고개를 기웃거리면서 구멍안에 무심히 손가락을 넣어보았다.
《저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리해할수 없습니다.》
불현듯 성난 목소리가 귀청을 때려 박창옥은 눈을 치떴다. 몇사람 건너 바로 장시우옆에 전기총국 기사장 리문도가 서있었다.
《조선에 존재한 자본주의적관계와 부르죠아운동은 모두 외부로부터 이식된것이라고 하는데 장군님께서는 썩어빠진 봉건통치배들때문에 우리 나라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지 못했지만 어쨌든 굼뜨게나마 력사의 합법칙대로 18세기부터 우리 나라 봉건사회태내에서 자본주의적관계가 싹트기 시작했다고 하시면서 이러한 사회관계를 반영하여 19세기말에 즉 1884년에는 부르죠아운동으로서의 갑신정변이 일어났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김옥균을 친일매국노로 보는 일부 학자들의 평가가 잘못됐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리문도는 박창옥을 마주보면서 말을 계속하였다.
《우리 아버지도 원래 인부를 500명이나 가지고있은 광주였습니다. 말하자면 자본가적인 착취자였지요. 그런데 망할놈의 리조통치배들이 사대주의정치를 하면서 유미자본가들과 왜놈자본가들에게 광산개발권들을 넘겨주었기때문에 그놈들한테 먹히우리라 생각하고 제꺽 광산을 팔고 땅을 샀습니다, 그래 결국 지주가 됐습니다. 아버지의 말에 의하면 그때 많은 수공업자들이 경제의 근대화를 시도하였지만 외래자본가놈들에 의해 초토화됐다고 합니다. 보다싶이 외부로부터 자본주의적관계가 이식된것이 아니라 반대로 자라나던 조선의 자본주의적관계가 그놈들때문에 억제당하였습니다.》
박창옥은 몸이 자릿자릿하면서 머리끝으로 피가 몰려오는것 같았다. 그는 뛰쳐일어나서 무례한 도전자의 뺨을 후려치고싶었다. 리문도는 한걸음 앞으로 나와 박창옥에게 물었다.
《그건 그렇구, 수풍에서 전기생산을 중지한다는건 도대체 무슨 소립니까?》
《무슨 소린가구?》
박창옥이 마주 눈총을 겨누며 반문하였다. 《쏘련에서 공업대학을 나온 박원구동무가 수풍에 가보고와서 그렇게 보고했소. 수풍에서 수문을 몽땅 열어놓아 압록강하류의 철도와 도로를 밀어버렸다면서? 에프론이 다 마사져서 전기생산을 죽이구 대공사를 하지 않으면 언제가 위험해진다고 했소. 이것두 다 사상, 기술문제가 걸린데로부터 생긴 사고입니다.》
《박원구동무가 정확히 반영하지 못한것 같습니다. 현재 에프론은 약간 패웠을뿐입니다. 언제에는 아무런 영향도 없습니다. 전기에 대해선 걱정하지 않아도 될것 같습니다. 인민경제발전계획을 수행함에 있어서 앞으로 전기때문에 지장을 받는 일은 단 한번도 없으리라는것을 확언하는바입니다.》
리문도는 자신있게 선언하고 자리에 앉았다. 무엇인가 조소하는듯 한 리문도의 표정을 일별한 박창옥은 또다시 뜨거운 피가 머리끝으로 확 몰려오는것 같았다.
그는 감정을 억제하면서 천천히 그러나 당중앙위원회 위원의 위엄을 싣고 리문도에게 압력을 가했다.
《내 언제부터 기사장동무에게 동지적인 충고를 주자고 했는데 동무에겐 과대망상에 가까운 자만병이 있습니다. 신심과 자만은 서로 별개의것입니다. 신심은 성공의 어머니이지만 자만은 실패의 화근입니다. 자만은 동무의 인생을 무너뜨릴수 있습니다. 동문 언젠가도 국장모임에서 기관차고열탄을 자기가 다 해결하겠노라고 하였다지요? 철도처장앞에서 〈당신이 고열탄을 해결하지 못하겠다니 내가 해결하겠소.〉 하구 흰소리를 쳤다면서?》
박창옥은 왼쪽에 기울이였던 고개를 바른쪽으로 획 돌리며 소리쳐 물었다. 《그래, 그후 고열탄을 가져왔소? 교통국장동무, 철도처장동무, 저 총국기사장동무가 고열탄을 가져다줍디까? 전기세도 받아온다고 소리치면서 남조선에 갔댔지만 한푼이나 받아왔는가? 동무가 흰소리를 칠 때 모두 당신을 뽀에마(서사시)의 영웅주인공처럼 우러러보았고 반대로 저기 철도처장동무에 대해선 비렬한 소극분자로 경멸했소. 오늘의 흰소리는 후날에 받게 되는 엄중한 경제의 후과가 용서하지 않습니다.》
박창옥은 봄날의 과오는 엄혹한 겨울이 용서하지 않는다는 격언을 그렇게 대입하고 목소리를 더 높이였다.
《동문 고열탄을 가져오기는커녕 수풍의 물로 철길을 파괴시켜 철도운행에 지장을 주었소. 철도처장의 신소를 받고 당중앙위원회에서는 동무네를 엄중히 취급하려고 하였지만 수풍발전소 세포위원장이 장군님앞에서 심심히 반성을 하구 두루 그래서 동무도 발전소지배인도 관대히 용서를 받았소. 그런데 아직도 채심을 못하고 계속 흰소리를 쳐서 되겠소. 그 자만병을 고치지 못하면 크게 경을 칠 때가 있습니다. 자기의 계급적처지를 생각해서라도 좀 자중하길 바라오.》
박창옥은 날카로운 가시로 리문도의 가장 여린 부위를 쿡 찔러댔다.
《박창옥동지가 아주 좋은 충고를 했습니다. 총국기사장동무가 동북에 가서 고열탄을 받아오겠다는 열의는 좋았지만 무모한것이였습니다. 그래 장군님께서 막으셨습니다.》
산업국장이 조심스럽게 하는 말이였다. 그는 두사람의 감정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상당히 신경을 썼다.
박창옥이한테 말을 가로채워 토론을 중단하고 자리에 앉았던 김광진이 다시 일어났다. 그는 당초에 박창옥, 장시우의 의견에 대치하여 토론을 시작하였던터여서 계속 그 방향으로 이야기를 연장시키였다.
《저는 리문도기사장동지가 근대민족경제에 대해 옳게 분석했다고 봅니다. 앞서 두 동지들은 쏘련의 실례를 들면서 오늘의 실정에서 우리가 경제를 계획화하는것은 시기상조라고 했는데 저는 인민경제발전계획을 론의함에 있어서 쏘련에 대비해서 고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쏘련에서 10월혁명이후 12년만에 전반적인민경제계획화를 실시하였다고 하여 우리도 12년만에 해야 된다는것은 형이상학적인 사고이며 교조입니다.》
《동무, 박동지가 어디 꼭 12년만에 해야 된다고 했는가?》
장시우가 참지 못하고 궁둥이를 들썩거리였다. 그러자 사방에서 웅성거리였다. 김광진의 토론을 중도에서 자꾸 가로막는데 대한 부정적인 반응이였다.
군중의 미움을 받고있다는것을 알아차린 장시우는 소태를 씹어삼키듯 낯을 찌프리며 치미는 감정을 삼켜버리였다.
《우리 나라에서 생산이 정상화되지 못하여 경제적련계가 이루어질수 없다고 보는것도 잘못된 생각입니다. 다 알고있는것처럼 일제는 패망하면서 조선의 산업시설들을 80~90프로 파괴해버렸댔습니다. 그러나 애국적근로자들의 건국투쟁에 의해 1년사이에 많이 복구정비되였습니다.
공업부문만 보아도 1 034개의 기업소들중 822개의 기업소가 현재 조업을 하여 정상적인 생산을 할수 있게 되였습니다. 파괴된 공장, 광산들을 복구하는 사업과 민족기술간부를 길러내는 사업이 같이 진행되여 현재 기술자, 기능공 3천여명이 새로 자라났습니다. 박창옥동지는 기관차용고열탄납입이 중지되여 장차 나라의 철도가 완전히 마비될 위험에 직면했다고 하는데 저는 절대로 고열탄때문에 마비되는 일은 없을것이라고 장담합니다.》
최대의 인내성을 가지고 자제력을 발휘하고있던 박창옥은 김광진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일어섰다.
《바로 동무와 같은 대외사업의 교란자들때문에 고열탄납입이 중단되였소.》
박창옥은 구두발소리를 크게 울리며 대여섯발자국 앞으로 걸어나갔다. 《고열탄문제가 제기됐으니 오늘은 빠개놓고 이야기합시다. 고열탄납입이 중단된것은 지난 기간 김광진, 정준택동무들이 쏘련사람들과의 관계를 잘못 가진것과 많이 관련되여있습니다.
쏘련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이 동무들이 지난 기간 쏘련사람들과 공동으로 적산조사를 하면서 계속 반쏘선전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뒤가 켕기니 산업국장으로 있던 정준택이 광산으로 내리뺐소.
지난 기간 이 동무들이 공동조사를 하면서 조그마한 기계 하나도 쏘련사람들한테 양보하지 않고 조선사람들속에 반쏘감정을 야기시켰으니 뭐가 곱다고 우리한테 고열탄을 주겠습니까?》
박창옥의 말은 모든 사람들을 경악하게 하였다. 그것은 김광진에게도 뜻밖의 말이였다. 그와 정준택은 지난 기간 쏘련군적산조사부의 일부 일군들이 적산처리를 잘못한데 대해 항의한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공동적산조사부안에서 벌어진 일이고 일체 외부에 나가서는 말하지 않았다.
적산조사사업을 총화할 때 김일성장군님께서는 김광진, 정준택이들이 일을 잘하였다고 높이 평가하시였다. 반면에 쏘련군적산조사부의 일부 간부들은 적산처리를 잘못한것으로 하여 쓰딸린으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았었다.
김광진은 침묵을 지킬수 없었다. 그는 조쏘공동적산조사기간에 있은 사실들을 낱낱이 까밝히였다. 《저와 정준택동무때문에 고열탄납입이 중단된것이 사실이라면 이 문제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쏘련의 일부 간부들이 개인감정을 가지고 조쏘관계에 균렬을 조성하는 부정행위입니다. 저는 이에 대해 묵과할수 없습니다.》
협의회분위기가 엄엄해졌다. 산업국장은 당황해하였다.
김광진이도 평시에는 산업국장처럼 량순하고 어진 사람이였다. 그러나 그와 다른 점은 부정의와는 타협할줄 모르며 그앞에서는 사나와지는것이였다.
김광진은 토론을 결속하려고 산업국장에게 눈길을 돌리였다.
《계획과 관련해서 제가 할 말은 다했습니다. 끝으로 한가지 더 제기하고싶은것은 간부사업에 대한 문제입니다. 물론 이것은 제가 끼여들 문제는 아닙니다. 하지만 다 아시는것처럼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웃기관의 큰 간부이건 아래단위의 초급간부이건 간부사업을 원칙적으로 심중히 할데 대하여 여러차례 강조하지 않으시였습니까.
그런데 아직까지도 간부사업을 무원칙하게 하는 페단이 근절되지 않고있습니다. 하나의 실례로 지금 로동단련기간인 상습적인 협잡군인 변대걸을 영제동의 소비조합상점 책임자로 등용시킨 사실을 들수 있습니다.》
김광진이 계획경제에 대한 토론이 간부사업문제로 빗나가고있다는것을 의식하면서도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군중들의 여론은 그가 상점에 들어가서도 또 협잡질을 하고있다고 합니다. 소비조합물품을 국가가격보다 더 높이 팔아서 돈을 뜯어먹는가 하면 모리간상배에게 되거리로 물품을 넘겨주고 약차한 뢰물을 받아먹었다고 합니다. 아무리 나라가 물품을 많이 생산하여도 이런 협잡군들이 있는 한 인민생활이 높아질수가 없습니다.》
일군들이 수선거리면서 소비조합중앙위원회 위원장이며 변대걸의 매형벌이 되는 장시우를 피끗피끗 스쳐보았다. 뭇사람들의 시선을 받고있는 장시우의 얼굴빛이 적동색으로 변하였다.
《한데 어떻게 되여 그런 협잡군이 상점책임자로 됐는가요?》
누구인가 묻는 말이였다. 장시우는 입을 꾹 다물고 검은 소가죽구두를 내려다보았다. 물론 변대걸을 상점망에 끌어들인 사람은 장시우였다. 해방직후 변대걸을 시보안서 감찰과장의 자리에 올려앉혔던 사람도 그였다.
(망할 녀석! 머저리같은 녀석! 또 그따위 우둔한짓을 해!)
장시우는 변대걸에 대한 혐오감으로 주먹을 우둘우둘 떨었다. 그의 귀전에서 김광진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이것은 법적으로 보아도 위법현상입니다. 구타사건으로 오천행청년이 강직되여 내려갈 때 변대걸에게도 제재가 가해져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오천행이가 주먹질을 하게 된것은 그가 먼저 손찌검을 하면서 달려들었기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는 병원에서 나오자바람으로 로동단련을 면제받고 동소비조합 책임자로 되였습니다. 물론 동소비조합 책임자가 큰 간부는 아니지만 인민생활과…》
《광진선생님!》
김광진은 자기를 부르는 소리에 말을 중둥무이하였다. 산업국장이 미안쩍은 얼굴을 하고 량해를 구하였다.
《저 오늘은 계획토의가 기본이니만큼 제기된 간부사업문제는 후에 따로 알아보고 장군님께 보고올립시다.》
《예, 알겠습니다.》
김광진은 군말없이 자리에 앉았다.
장시우는 가슴이 서늘해졌다. 변대걸의 문제가 장군님께 보고되면 재미없을것 같았다. 박창옥이도 결김에 자기가 실언했다고 후회하였다. 대외관계문제를 자기가 함부로 경솔하게 발설한것때문에 일이 복잡해질것 같은 예감에 가슴이 떨리였다. 분노의 결과는 분노의 원인보다 훨씬 엄중하다는것은 이런 때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싶었다.
토론은 계속되였다. 하지만 방법론적인 문제가 아니라 계획화를 할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로 계속 론난이 벌어졌다.
박창옥은 기분이 어수선하여 더는 론쟁에 참가하지 않고 란간기둥구멍에 손가락을 꽂으면서 자기 생각에 골몰하였다.
모란봉에 어스름이 질 때까지 격렬한 론쟁이 계속되였다.
평양역전광장앞에 자리잡은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청사는 3층 철근콩크리트건물이였다.
2층 동쪽끝에 김일성장군님의 집무실이 있었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면 대각선방향으로 집무탁이 보이고 가운데에 접견탁과 의자들이 놓여있는 검소한 방이였다.
늦은 저녁에 김책과 산업국장이 집무실에 찾아와 그이께 사업보고들을 하였다.
11월 3일 민주선거에 기권할 의사를 공개적으로 표명한 평양지구의 목사, 장로들을 설복하러 갔던 김책은 헛물을 켰다며 머리를 내저었다. 그는 유럽의 어느 한 문인이 마지막교회의 마지막돌이 마지막목사의 머리우에 떨어지지 않는 한 문명은 자기의 완성을 이룩하지 못할것이다고 하였다는데 그 말이 정말 옳을것 같다고 하였다.
장군님께서는 김책이가 그렇게까지 머리를 내젓는것을 보면 교직자들의 고집이 보통이 아니라고 생각하시였다.
《제가 어쨌든 래일 또 한번 례배당에 찾아가보겠습니다.》
산업국장도 협의회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였다고 사실그대로 말씀올리였다. 그는 협의회참가자들이 계획화를 실현하기 위한 방도문제를 토론하지 않고 하느냐마느냐하는 문제를 놓고 계속 론쟁을 벌렸다고 하였다. 《그래도 마음이 좀 놓이는것은 계획화를 할수 있다는편이 볼쉐비크(다수파)이고 할수 없다는편이 멘쉐비크(소수파)입니다, 허허허.》
산업국장은 어줍게 웃으면서 매 사람들의 토론내용을 구체적으로 말씀올렸다. 박창옥이가 협의회마감녘에는 토론에는 관심조차 돌리지 않고 란간기둥구멍에 손가락을 넣으면서 장난질만 하고있은데 대해서까지 말씀올리였다.
《박창옥동무가 오늘 한심한 말을 많이 했는데 란간기둥구멍에 손가락을 꽂으며 장난질을 할 때 주의를 환기시키지 않았습니까?》
장군님께서 안색을 흐리시였다.
《당중앙위원회 간부이고…》
《당간부라도 탈선되였을 때에야 회의집행자가 일깨워주고 주의를 환기시켜야지요. 무엇이 무서워서 말을 못합니까.》
장군님께서 기가 막혀 집무탁을 짚으며 일어나시였다. 《박창옥이 을밀대기둥구멍에 손가락을 꽂으며 장난질을 했다는걸 보니 그는 그 구멍이 무언지도 모르는것 같습니다. 총탄구멍이 아닙니까. 1894년 청일전쟁당시 청나라장수 마유곤의 부대가 평양에 와서 일본군대와 전투를 할 때 생겨난 상처이지요. 두 나라 외국군대가 이 평양에 들어와서 저마다 조선을 보위해준다고 하면서 싸웠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고기 한덩이를 놓고 으르렁거리는 승냥이들의 싸움이나 같은것이였습니다. 동방의 강성대국으로 불리우던 고구려의 도읍이 리조봉건통치배들의 사대정치로 하여 그 모양이 되고 종당에는 망국의 치욕을 당하게 되였습니다.
박창옥동무야말로 깊이 알아야 할 총탄구멍입니다. 일부 쏘련태생의 간부들이 쏘련에서 얻은 노루꼬리만 한 지식과 사업경험을 제일이라고 생각하며 자기 조국에 대한 학습을 하지 않으니 조선에 존재한 자본주의적관계와 부르죠아운동은 모두 외부로부터 이식된것이라는 말을 하고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조선혁명을 옳게 할수 있겠습니까? 내가 쏘련태생의 간부들에게 우선 조선의 력사와 지리에 대해서 허심하게 배워야 한다고 여러번 강조하였는데 오늘 보니 박창옥동무가 그 말을 명심하지 않은것 같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생각이 많아지시였다.
우리 민족 력사에서 처음으로 해보는 계획경제는 말그대로 초행길이니 간부들속에서 론난이 벌어질수 있었다. 이들속에는 계획경제라는 용어조차 처음으로 들어보는 사람들도 있고 조선의 실정과는 전혀 다른 큰 사회주의나라의 한 구역에서 계획화라는 산업대하의 거창한 흐름의 일부만을 목격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니 의견이 일치될수 없었다. 여기서 문제는 그 누구도 조선의 실정에 알맞는 계획경제전서를 내놓은 사람이 없으며 그 어디에도 그에 대해 가르쳐줄 선각자, 선험자도 없다는것이다. 장군님께서도 처음해보시는 일이였다. 다만 명백한것은 생산수단의 80프로이상이 국가소유권으로 된 우리 나라 실정에서 산업부흥의 유일한 출로는 경제를 계획화하는 길 이외에 제2의 길이란 있을수 없다는것이였다. 이 길이 순풍에 돛을 단것처럼 순조로이 걸어갈수 있는 그런 길이 아님을 그이께서는 너무도 잘 알고계시였다.
계획경제의 출로를 어떻게 찾아야 하는가?
장군님께서는 계획경제를 직접 담당수행하여야 할 생산자대중을 찾아가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하시였다.
계획경제를 실시하는데서도 역시 철저히 의거하고 믿어야 할것은 인민이고 생산자대중이였다.
장군님께서는 단호히 말씀하시였다.
《몇몇 경제전문가들이나 간부들이 모여앉아 리론투쟁이나 하는 놀음을 이제는 그만하고 국장, 처장, 과장들이 모두 생산자대중속에 들어가 군중토의를 보다 더 광범히 벌려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금년 12월말까지 모든 부문들에서 1947년도인민경제발전계획안을 작성해서 산업국통계부에 올려보내게 합시다. 계획작성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세가지 원칙이 있는데 그것은 과학성, 군중성, 발전성입니다.》
장군님께서는 김책과 산업국장을 보내신 다음에도 오래도록 사색에 잠겨 집무실을 거니시였다. 그이께서는 주대가 있는 든든한 사람을 경제부문에 들여앉혀야 되겠다고 생각하시였다. 김책의 얼굴이 먼저 눈앞에 떠오르시였다. 지금까지도 김책은 군건설사업을 하면서 경제사업을 많이 도왔지만 이제 선거를 통해 새 인민위원회를 창설하면 그를 들여앉혀 경제를 맡아보게 하실 결심을 내리시였다.
자정이 가까와올무렵 김책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장군님, 언제 짬을 봐서 제가 사동탄광에 나가 계획토의사업을 하겠습니다. 산업국장의 말을 들으니 무연탄생산은 계획화할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는데 제가 나가 알아보겠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기꺼이 허락하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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