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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번영의 시대 제3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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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6,521회 작성일 19-11-06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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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장

5

 

오천행은 산기슭에 서서 발전소건설장을 감회깊이 둘러보고있었다.

둥그런 갱구 하나가 절벽중턱에 아구리를 벌리고있었다. 그 갱구에서 굵은 철관이 절벽밑으로 내리뻗었는데 철관과 잇닿인 시내기슭에 기와를 얹은 집 한채가 아담하게 서있었다. 그것이 바로 동양발전소 기관실이였다.

갑자기 어디선가 떠드는 소리에 오천행은 고개를 돌리였다.

절벽 서편 산기슭으로 구부러져나온 자드락길로 청년들이 허둥지둥 달려오고있었다. 그들중 누구인가 손을 허우적이며 소리쳤다.

《대장동무! 빨리 오라요. 장군님께서 오셨어요. 저기 저수지에 계셔요.》

《뭐라구?》

화닥닥 놀란 오천행은 종주먹을 쥐고 달려갔다. 그는 어떻게 산굽이를 돌고 수로를 짼 풀밭길을 달려 저수지곁에 이르렀는지 알수 없었다.

자나깨나 뵙고싶던 장군님께서 여러 수원들과 함께 언제곁에서 푸른 저수지를 바라보고계시였다.

《장군님!》

그는 목이 꽉 잠겨 소리가 제대로 나가지 않았다.

장군님께서 고개를 돌리시였다. 먼길을 오신듯 회색 가을외투에 중절모를 쓰신 장군님의 얼굴은 볕에 그슬리고 까만 구두에는 먼지가 뽀얗게 올라있었다.

《오천행동무로구만! 수고했소.》

장군님께서는 다가와 선 오천행의 어깨를 두드리시였다.

《이 동무가 오천행이요. 련애질만 하구 일을 하지 않는다는 그 오천행이요, 허허허.》

장군님께서 수원들을 둘러보며 웃으시였다. 수행원들은 입술이 트고 고동색으로 얼굴이 탄 장대한 젊은이를 바라보며 벙글거리였다.

장군님께서는 발전소건설자들이 다 잘 있는가, 앓는 사람은 없는가, 일할 때 배가 고프지 않았는가 일일이 알아보신 다음 《오천행동무, 안내하오. 하나하나 설명하오, 들어봅시다.》 하고 말씀하시였다.

오천행이 곤색작업복깃을 여미고 저수지를 향해 돌아섰다. 골개강을 통나무언제로 막은 꽤 넓은 인공호였다. 물빛이 파아란 저수지는 혼성림이 우거진 산발에 에워싸여있었다.

《그전에는 여기에 너비가 5메터남짓한 좁은 골개강이 흘렀습니다. 그러던걸 통나무로 언제를 쌓아 이렇게 저수지를 만들었습니다.》

저수지 앞머리에는 물을 조절하는 수문이 있었다.

오천행은 꼭대기에 둥근 운전틀이 달려있는 철수문앞에서 산기슭을 따라 길게 뻗어간 수로를 가리켰다. 그는 락차를 얻기 위해 산굴을 뚫고 수로의 물을 굴속으로 뽑았다고 하였다.

오천행은 장군님을 모시고 수로를 따라 걸어갔다. 저수지의 수문으로 빠져나온 물이 수로를 따라 줄기차게 흘러가고있었다.

모래와 진흙, 자갈과 나무뿌리들이 널려있는 수로주변을 찬찬히 살펴보시던 장군님께서 문득 걸음을 멈추시더니 흙벽을 누비며 흘러가는 도랑물을 들여다보시였다.

《오동무, 좀 품이 들더라도 물길에 나무수채도 만들어놓고 토관을 놓을데는 토관을 놓아 물이 새지 않게 해야겠소. 동무네야 물을 아끼는 사람들이 아닌가.》

《장군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오천행은 얼마후 산굴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여기서부터 3도 경사로 70메터 산굴을 뚫었습니다.》

장군님께서 산굴을 들여다보시였다. 저편에 불그스름한 굴아구리가 보이였다.

《굴속에 들어가봅시다.》

《장군님, 굴속이 어지럽습니다. 그리고 다니는 길이 아주 좁습니다.》

《일없소. 동무네가 수고스럽게 뚫은 굴인데 안 보고 가면 되겠소?》

장군님께서는 굴속으로 들어가시였다. 키가 큰 사람들은 허리를 구부려야 다닐수 있는 굴이였다. 굴바닥에 물이 흐르는 깊은 홈이 있고 그 량옆에 사람이 다닐수 있게 좁은 길을 냈다.

쭐렁 쭐렁 쭐렁… 굴안에서 울리는 물흐르는 소리가 목금소리처럼 들리였다. 직선으로 관통된 량편 아구리로 아침해빛의 여광이 비쳐들어 굴안은 등불이나 전지가 없이도 다닐수 있었다.

장군님께서는 물기에 축축해진 굴벽을 만져보시였다. 정말 무쇠같이 굳은 규암이라는 바위돌이였다.

《이렇게 굳은 돌을 뚫자니 얼마나 고생했겠소.》

장군님께서는 발전소건설자들의 잔등을 애무하시듯 굴벽을 쓰다듬으시였다.

《장군님, 사동탄광의 김고망아저씨가 휴가를 받고 여기로 와서 도와주고 갔습니다. 그 아저씨한테서 굴뚫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김고망이?… 정말 훌륭한 탄부요! 우린 이제 그 동무를 외국에 휴양을 보내자고 하오. 어렸을 때부터 캄캄한 굴속에서 살아온 동무인데 세상구경을 좀 시켜야지.》

장군님께서는 질적질적한 굴바닥을 밟으며 걸어가시였다. 그이의 뒤를 따라 걸어가는 여러명 수행원들의 발자국소리가 굴천정과 벽에 반사되여 웅글은 음향으로 오천행의 가슴을 크게 울려주었다.

굴밖으로 나오신 장군님께서는 가파로운 돌계단을 밟아 기관실이 있는 곳으로 내려가시였다.

기관실에는 물레방아식 수차가 있고 그옆에 소형발전기가 있었다. 발전기는 우르릉우르릉 고르로운 음향을 울리고있었다.

《발전기소리를 들어보니 기계는 순조롭게 잘 돌아가는것 같습니다.》

장군님께서 발전기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말씀하시였다.

오천행은 산굴에서 급경사지게 놓은 쇠관을 따라 세차게 떨어지는 물이 수차와 발전기를 돌리고있다고 말씀올리였다.

기관실들을 돌아보고 나오신 장군님께서는 전기줄이 뻗어간쪽을 바라보시였다. 귀틀집과 초가집들이 옹기종기 들어앉은 산간마을이 멀지 않게 바라보이였다.

《그러니 지금 저 마을이 전기불을 보고있겠구만.》

《그렇습니다. 장군님의 말씀대로 지난 9월초에 준공식을 했습니다. 그날 정말 굉장했습니다.》

오천행은 그때를 생각하며 눈을 슴벅이였다.

그때가 정각 밤 9시였다.

둥! 둥! 둥!… 갱구가 있는 절벽우에서 북소리가 울리였다.

순간 캄캄한 어둠속에 묻혀있던 동양리마을에서 수많은 전등불들이 확 돋아올랐다.

하늘의 성좌가 내려앉았는가. 별, 별, 별… 행복의 별이 돋아오른 마을에서 《김일성장군 만세!》를 부르는 환호성이 산천을 진감하였다.

장군님께서 이윽토록 동양마을을 바라보시였다.

《나는 원래 46년 8월, 동양마을에서 극소형발전소를 건설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여기에 와보자고 했지만 시간이 없어 못왔습니다. 이번 준공식때도 사정이 생겨 오지 못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그때 당중앙위원회 검열위원회 위원장 김용범의 병이 위급해져 자리를 못뜨고 계시다가 9월 9일에 끝내 그의 장례를 치르게 되시였다. 그후 장군님께서는 마음이 안정되지 않아 십여일동안 평양에서 당중앙위원회와 인민위원회사업을 지도하시였다. 그러시고 나라의 동서와 남북을 종횡단하는 머나먼 현지지도를 단행하시였다. 그리하여 함경북도 청진시로부터 고무산, 경성군 염분진의 어촌을 거쳐 길주, 성진, 강원도 고산군, 안변군, 원산시를 돌아 동부지구에서 서북지구로 횡단하여 오늘 여기 양덕군 동양리로 오신것이였다.

이날은 3. 4분기가 하루 남아있는 1947년 9월 29일이였다.

장군님께서는 동양리마을을 바라보며 말씀하시였다.

《나는 오늘 정말 기쁩니다. 오랜 세월 고콜불을 켜놓고 살던 이곳 농민들이 이제는 전기불을 보게 되였으니 이 고장의 큰 경사입니다. 이 동무들처럼 지혜와 열정을 다 바쳐 새 조국건설에 떨쳐나선다면 우리 인민은 가까운 장래에 남부럽지 않게 잘살게 될것입니다. 이 동무들이 대단히 장한 일을 하였습니다. 비록 발전소는 크지 않지만 전기부문 로동계급과 동양마을 농민들이 힘을 합쳐 해방후 처음으로 건설한 인민의 발전소이므로 큰 의의가 있습니다. 동양발전소건설은 우리 나라에서 중소형 수력발전소건설의 시초로 됩니다. 이제 저 마을에 라지오를 가져다놓으면 온 마을 농민들이 다 중앙방송도 들을수 있습니다.

천행동무, 고맙소. 동무네가 내 소원을 풀어주었소. 다음에는 더 큰 발전소를 건설합시다.》

《장군님, 이 못난것이 장군님의 뜻을 잘 받들지 못했습니다.》

오천행은 별안간 어깨를 떨면서 흐느껴울었다.

《울지 마오. 이 기쁜 날에 왜 우는가?》

오천행의 넓은 잔등을 다독이시는 장군님의 눈에서도 물기가 번쩍이였다.

《내 오늘 밤 동양리마을의 전기불을 보러 다시 오겠소. 사람들이 19세기는 증기시대, 20세기는 전기시대라고 하는데 조만간 우리 나라 그 어느 두메산골에도 전기불이 다 들어가게 해야 하겠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주먹을 흔드시며 힘있게 걸음을 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동양리에서 하루를 보내시고 양덕군 구지골로 가시여 어느 한 농가를 방문하시였다.

장군님께서 자기 집에 오셨다는것을 목책에 적어 자손들에게 물려주겠다고 하는 주인집로인에게 그보다는 모든 산에서 황금을 따내라고 적어서 물려주는것이 좋겠다고 하신 장군님의 그 유명한 말씀의 일화는 이날 이 농가에서 있은 일이였다.

3. 4분기 마지막날인 1947년 9월 30일, 구지골마을에서 비로소 이번에 진행하신 그이의 현지지도로정은 마감을 짓게 되였다.

그이께서 양덕군인민위원회앞에 이르시였을 때 길가의 전주대에 매단 확성기에서 전국적으로 3. 4분기계획을 완수했다는 북조선인민위원회 기획국 통계처의 보도가 힘차게 울려나오고있었다.

장군님께서는 방송을 들으며 오래도록 묵묵히 서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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