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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번영의 시대 제1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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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3,302회 작성일 19-10-26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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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4.jpg

(제 16 회)

제 4 장

1

 

1947년 1월 1일 어뜩새벽에 대동강에서 별안간 얼음 터지는 소리가 포성처럼 요란히 울리였다.

많은 력사적과제를 안은 1947년 설날 신새벽에 평양시가를 진동한 그 얼음강판의 울부짖음은 사람들속에 갖가지 괴이한 이야기들이 떠돌게 하였다. 절대다수의 주민들은 그것이 새해에 대통운이 틀 징조라며 좋게 해석하려고 하였으나 나라가 망할 흉조라고 요설을 퍼뜨리는 반동놈들도 있었다. 아무튼 대동강에서 얼음 갈라지는 소리가 그처럼 크고 장엄하게 울려본적은 일찌기 없었다고 한다.

설날부터 평양에서는 련일 혹한이 계속되였다. 추위에 움츠러든 한난계의 눈금이 령하 20도의 계선에서 오돌오돌 떨고있는 날이 적지 않았다.

소한도 지나고 벌써 1월 중순에 접어들었다.

어둠이 깃들기 시작하는 평양시가엔 매운 바람이 사납게 울부짖었다. 강한 서북풍이 휘파람소리를 내며 시허연 눈가루를 허공에 말아올리는가 하면 방향도 모를 미친 바람이 무시무시한 소리를 지르며 허공을 썰어댔다.

추위는 온 거리를 얼어붙일듯 하였으나 전차들이 종을 울리며 분주히 달리고 길 좌우 인도로에는 하루일을 마치고 퇴근하는 로동자, 사무원들이 물결처럼 흘러갔다. 거리 곳곳에는 《1947년도인민경제발전계획을 완수하자!》, 《김일성장군님의 신년사를 받들고 생산투쟁에 총매진하자!》 라는 구호판들이 나붙어있었다.

사창장마당근처의 전차정류소에서 내린 김광진은 경상사진관 뒤길로 돌아들어가 ㄱ자형의 합각지붕을 얹은 기와집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의 집이였다. 김일성종합대학 경제법학부장인 그는 하루교수와 학부사업총화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였다.

지붕처마를 뚫고 검은 기와지붕우로 솟아오른 붉은 벽돌굴뚝에서 흰 연기가 뭉글뭉글 타래쳐오르고있었다. 그의 집 량옆과 뒤쪽에도 단층기와집벽체들이 병풍처럼 비좁게 다가둘러져있었다.

도시안의 주택지대가격이 폭등된 일제시기부터 최대의 리윤을 추구하는 상적인 행위로 말미암아 평양에도 오랜 세월 우리 나라에서 계승되여오던 앞뜰과 뒤뜰의 여유있는 정원조직이 다 파괴되고 이런 밀집된 주택마을이 형성되였다.

문득 옆집 웃방에서 어린이의 글읽는 소리가 들려왔다.

 

    새벽하늘에

    샛별같이 빛나는

    새 나라 조선의 800만 어린이여!

    새해와 한가지로 새 복을 받아

    굳세고 씩씩하게 무럭무럭 자라서

    무궁한 새 조선의 새 일군 되소서

 

김광진은 가슴이 뭉클하였다. 그것은 김일성장군님께서 1947년 새해를 맞이하여 전국의 어린이들에게 보내신 사랑의 축하문이였다. 이쪽 옆집에서는 다듬이질소리가 들려왔다. 혹은 빠르고 혹은 느리게 토닥토닥 가락맞게 울리는 다듬이질소리는 마치도 겨울밤의 정서를 탄주하는 목금소리처럼 흥취있는 선률로 광진의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주었다.

예로부터 어린이의 글읽는 소리, 녀인의 다듬이질소리, 애기의 힘찬 울음소리를 3희성(세가지 기쁜 소리)이라 일러오고 초상난 집의 초혼소리, 불난 집의 아우성소리, 도적을 쫒는 소리는 3악성(세가지 나쁜 소리)이라고 전해왔다.

(우리 집에서만은 조용하구나.)

김광진은 불깃한 불빛이 비쳐나오는 아래웃방의 덧문을 지켜보며 중얼거리였다.

옆집어린이의 글읽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1947년 새해를 맞이하면서 새 조국건설을 위하여 주야로 분투하고있는 전국동포들에게 열렬한 축하를 드린다.》

김일성장군님의 신년사를 읽기 시작한다.

김광진이 방송으로도 듣고 신문으로도 여러번 읽으며 학습한것이지만 어린이의 목소리로 재현되는 신년사는 류달리 그의 가슴을 쿵쿵 울려주었다.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이해 신년사에서 제반민주개혁을 실시하여 이 땅에서 착취와 압박의 근원을 없애버린 1946년을 자랑스럽게 총화하고 1947년에 수행하여야 할 8개 항목의 주요과업을 제시하시였다. 그중 첫째 항목이 인민정권을 강화하는것이고 둘째 항목은 일제에 의하여 파괴된 경제를 복구하고 인민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하여 나라의 경제를 계획화하는것이였다.

이 두번째 과업이 내외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북조선이 1946년에 비해 2배, 3배 지어 5배이상의 생산장성을 시도하는 인민경제발전계획을 작성하고있다는 말을 소문으로만 들어오던 내외의 반동들은 그이의 신년사가 나가자 입을 모아 북조선에서 《허황한 꿈을 꾸고있다.》고 비난을 퍼부어댔다. 우방국가의 일부 정치가, 경제리론가들까지 머리를 내저었다.

인민경제의 전반적계획화에 대하여 당초부터 반대해나선 국내의 일부 사람들은 세상의 비난거리로 되고있다고 불평을 부리면서 사회의 분위기를 어수선하게 만들고있었다.

지난 1월초에는 서평양에 있는 화학원료생산공장에 큰 화재가 일어나 시민들의 기분을 흐려놓았다.

김광진은 덩치 큰 공장건물이 재더미로 되여버린 신년벽두의 그 사고로 하여 박창옥이한테 압력을 받던 일이 새삼스레 상기되였다.

어느날 아침 대학학부로 전화가 걸려왔었다.

《광진선생! 서평양 화학공장에 불이 난거 알고있는가요?》

물어보는 박창옥의 목소리는 낮았으나 노기가 등등했다. 《하나도 건지지 못하고 공장이 재더미로 되였으니 류산, 염산, 가성소다를 생산원료로 리용하는 평남도안의 식료공장, 화학공장들이 모두 결딴나게 됐소. 한 공장이 튀면 그와 련쇄된 다른 공장들이 다 튀게 된다는걸 이젠 눈으로 보았소? 기술도 없는 형편에서 계획을 하겠다구 덤벼치다가 인화물에 불찌를 튕겨서 공장이 폭발되였소.》

《보안국에서는 간첩암해분자들의 책동으로 보고있습니다. 평양시 목사들에게 〈예수의 계시문〉을 돌린 그 간첩망이 활동하고있는것으로 예측하고있습니다.》

《말같지 않은 소리 하지도 마오. 원인은 내부의 기술부족, 질서문란에 있소. 계획, 계획하다가 이제 연방 이런 일이 튀여나올거요. 내 다시 말합니다. 봄에 저지른 과오는 엄혹한 겨울이 용서하지 않습니다.

이제 남은 길은 당신네 계획주장자들이 앞으로 선거를 통해 수립되는 북조선인민위원회에서 계획수자들을 법으로 눌러놓지 않게 하는것이요. 마지막충고요!》

이 서슬푸른 강박에 김광진은 일시 주눅이 들고 기가 꺾이였었다. 그는 생각많은 걸음으로 뜨직뜨직 집앞으로 다가갔다.

웃방 덧문을 열고 들어가자 하늘빛솜옷을 입은 억대우같은 젊은이가 책을 뒤적거리다가 벌떡 일어섰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아니, 이게 누군가? 오장사가 우리 집엘 다 오구.… 일전에 리문도기사장한테서 임자가 책벌을 해제받구 다시 전기총국으로 소환됐단 말을 들었네. 앉게, 어서 앉으라구.》

김광진은 밝은 웃음을 지으며 오천행의 어깨를 눌렀다. 이때 왕수복이 행주치마에 손을 문대며 새문으로 들어섰다.

《오늘은 왜 그렇게 늦었어요, 손님이 아까부터 기다렸는데.…》

이제 갓 서른인 왕수복은 얼굴이 달덩이처럼 복스럽고 눈매가 고운 녀자였다. 한때 조선의 1등민요가수로 이름을 날렸던 그 녀자의 목소리는 실로 음악적으로 려과된 깨끗하고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여보, 늦은건 늦은거구 빨리 한상 차려 들여오우. 원 손님한테 담배라도 권할게지.》

김광진은 서재로 쓰는 안방으로 들어가 구리재털이를 들고 왔다.

《선생님, 전 아직 담밴 못 배웠습니다.》

《그래? 하긴 담배는 백해무익한거야.》

김광진은 재털이를 밀어놓고 오천행의 멀끔한 얼굴을 지켜보았다. 김광진의 눈길에서 이 집을 어떻게 찾아왔느냐 하는 무언의 질문을 느낀듯 천행은 입을 열었다.

《선생님, 전 이제 밤 11시차로 양덕엘 가야 합니다. 선생님께 한가지 미안한 부탁을 하자고 왔습니다.》

《무슨 부탁인데? 그런데 양덕엔 무슨 일로 가나?》

김광진은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저녁 9시가 가까와오고있었다.

《거기 가서 발전솔 건설하게 됐습니다.》

《발전소? 총국에 소환됐다더니 또 로동현장으로 나가나?》

《장군님께서 저더러 피가 끓는 시절에 총국 골방에 앉아있을게 아니라 청년작업대를 하나 무어가지구 양덕지구에 나가 발전소를 건설해보라구 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모르는 제가 청년작업대를 책임지게 됐습니다.》

오천행이 이제 가게 되는 양덕군 동양마을은 리조시기 《정변》이나 《역모》에 가담했다가 몸을 피해온 사람들이 숨어사는 은둔지였다고 한다. 해방초까지도 동양마을에는 세상에 전기불이 있는것조차도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였다고 한다.

수려한 산발들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이 산수화같이 아름다운 마을이 오랜 세월 은둔지로 있은것은 기이한 일이였다. 또한 희한한것은 문명과 멀리 떨어진 이 산골마을사람들이 지난해 여름 면당위원회의 지도밑에 자체로 발전소를 건설한것이였다. 그러나 그것은 겨우 네댓채의 집에 전기불을 줄수 있는 장난감같은 극소형발전소였다.

어느날 김정숙녀사로부터 동양마을사람들이 극소형수력발전소를 건설했다는 소식을 들으신 장군님께서는 산골사람들이 자체로 발전소를 건설한것은 대단한 혁신이라고 치하하시면서 전기총국이 그들을 도와서 동양마을 전체 농촌집들이 불을 보게 해주자고 간곡히 이르시였다. 그이께서는 지금 동양마을사람들은 강물이 있는 곳에서부터 발전소까지 ㄷ자모양으로 산둘레를 따라 길게 물길을 쨌다고 하는데 좀 힘들더라도 직선으로 산굴을 뚫으면 락차고를 높여 큰 발전기를 놓을수 있지 않는가고, 빨리 현지에 나가보라고 말씀하시였다.

이렇게 되여 1947년도 전기부문 인민경제발전계획지표에 양덕군 발전소건설이 들어가게 되였다.

김광진은 오천행의 이야기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특히 그는 김정숙녀사께서 외진 산골마을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일까지도 다 알아내여 장군님의 사업을 충실히 도와드리시니 놀라고 감복하게 되는것이였다.

《오동무! 임자가 중임을 맡았네. 장군님과 녀사께서 그토록 관심하시는데 세상이 들썩하게 멋쟁이발전소를 건설해보게. 한데 아까 나한테 부탁할게 있어서 왔다고 했지? 부탁할게 뭔가?》

김광진은 진중한 표정을 짓고 천행을 지켜보았다.

《책을 좀 빌려보고싶어 왔습니다. 앞으로 기사검정시험을 치자해도 그렇고… 이제 일을 좀 해보니 사람은 누구나 경제학을 알아야 할것 같습니다. 대학용 경제학교과서를 얻을수 없겠는지

어지고 용해빠진 오천행은 책 한권 빌리는것이 민망스러워 어줍게 말꼬리를 흐리였다.

김광진은 기뻐하머 밝은 웃음을 지었다.

《임자가 옳게 생각했네. 자연과학이든 사회과학이든 모든 과학이 경제학과 련결되여있네. 경제학을 복도라고 한다면 다른 모든 학문들은 복도 량옆에 있는 방들이네. 경제학이라는 복도를 거쳐서만 그 방들에 들어갈수 있네. 그런데 사람들은 경제학의 이 보편적인 포괄성에 대한 리해가 부족하네. 촌아낙네가 세간살이를 하는데도 경제학이 적용되네. 경제학이 학문으로 정립되기 시작한것은 자본주의산업이 출현된 때부터라고 하지만 실제상으로는 원시공동체사회때부터 경제학이 리용됐다고 말할수 있네. 맑스의 인류사회발전법칙도 경제학에 대한 연구를 통해 발견된것이 아닌가. 경제를 떠나서는 정치도 력사도 철학도 그밖의 모든것을 생각할수 없네.》

김광진은 움쭉 일어나서 서재로 들어가 베개통같이 두터운 책을 세권이나 옆구리에 끼고나왔다. 그것은 그가 대학용으로 집필한 교과서인데 앞으로 보충, 수정될것을 예견하여 아직 인쇄하지 않고 등사한것이였다.

그는 그것으로도 부족할것 같아 다시 서재로 들어가 책을 두권 더 가지고나왔다. 그것은 경제학참고서들이였다.

오랜 교육자인 그는 누구든 배우겠다는 사람이 나타나면 거의 본능적으로 활기를 띠게 되고 자기의 모든것을 깡그리 주고싶어 설레발을 치게 되는것이였다.

《이 책들은 어디까지나 참고로 보아야 하네. 사실 경제학을 모르면 국가적으로 손해되는 일을 많이 하게 되네. 지금 나를 포함해서 우리 나라에 경제학자요, 경제전문가요 하는 사람들이 몇명 있기는 하지만 장군님을 경제적으로 보좌해드릴만 한 사람이 없네. 그러다보니 장군님께서 크게 고생을 하시네. 이 엄동설한에 장군님께서는 북방지구로 현지지도의 길을 떠나셨네. 청진지구로부터 원산지구로 쭉 내리훑으며 다니실 계획을 하고 떠나셨다는데 생각하면 정말 죄스럽네.

지금 장군님께서 평앙에서 하실 일이 얼마나 많겠나. 더두말구 당장 북조선인민위원회를 창립하여야 되지 않겠나. 그런데 이 바쁘고 추운 날에 현지지도의 길을 떠나셨단 말이네.》

김광진은 안타까운듯 긴 한숨을 지으며 허옇게 서리가 불린 방문에 눈길을 보냈다.

《임자네들이 일을 잘해서 장군님께서 이젠 전기걱정은 별로 하시지 않는것 같네. 철도가 문제네. 가뜩이나 말썽이 많던 철도운행은 추위가 심해지면서 더 한심해지고있다네. 어저께 시인민위원회 기획통계부에서 평양시안의 공장, 기업소들의 1월 상순 계획수행률을 종합했다고 해서 알아보았는데 말이 아니네.》

김광진은 긴 숨을 내쉬며 맞은편 벽을 시름겹게 바라보았다. 오천행이도 침울해졌다. 소연한 바람소리와 드릉드릉 문풍지 우는 소리가 김광진의 마음을 설뚱하게 하였다.

《오천행이, 아무튼 임자가 경제적리익성이 있는 발전소를 멋있게 건설해서 장군님께 기쁨을 드리게. 모든 건축물들과 산업시설들에는 공통적인 세가지의 경제학적요구가 있네. 그것이 무엇인가. 첫째로, 쓸모와 리익성이 있어야 하고 둘째로, 견고해야 하고 셋째로, 아름다워야 하네. 첫째와 둘째의 요구에는 경제적리익성이 중요하게 포함되여있네. 리익성은 어느 사회에서나 가장 중시되는 문제이네. 다만 자본주의사회에서는 개인의 리익성이 추구되지만 우리 민주사회에서는 국가와 인민의 리익을 추구하는데서 차이가 있을뿐이네. 모든 건축물과 시설물들이 아름다와야 한다는것은 사람들에게 정서적만족을 주기 위한것이니 역시 홀시해서는 안되네.》

이때 왕수복이 아래방에 두리반을 펴놓으며 《정서적만족은 2차적인 요구예요. 1차적인 요구는 먹는것이니 어서 내려들 와서 식사를 하세요.》 하고 명랑하게 웃었다.

《전 금방 밥을 먹고왔습니다. 그리고 시간도 없어서

오천행은 보자기에 책을 싸들고 일어섰다.

《지금 아홉시도 못됐는데 뭘 그리 바빠하나… 어서 내려가세.》

김광진이 오천행의 잔등을 떠밀었다.  오천행은 하는수없이 장지문턱으로 한발을 넘겨짚는데 어디선가 멀리서 고동소리가 울리였다. 한번 길게 울리고나서 다시 두번, 세번 연거퍼 울리였다.

얼마후 중구역보안서에서도 고동이 울리였다.

《이게 웬 고동이요?》

밥상에 마주앉은 김광진은 느닷없는 고동소리에 눈을 치떴다.

왕수복이 부엌문을 열어보더니 놀란 소리를 질렀다.

《어마나! 동평양쪽에서 불이 붙는것 같아요.》

《예?!》

오천행이 눈이 둥그래지며 방문을 열었다. 찬바람이 확 밀려들어와 그는 퇴마루로 뛰쳐나가며 문을 닫았다.

대동강건너편이 일체 정전이 되여 암흑의 광야로 되였는데 선교동쪽의 검은 하늘로 시뻘건 불길이 솟아오르고있었다.

《아니, 왜 이렇게 화재가 빈번한가?》

김광진이도 문밖으로 나와서 불길이 솟아오르는 대동강건너편을 걱정스레 바라보았다.

《선생님, 제 아무래도 가봐야 하겠습니다. 정전이 된걸 보아 혹시 동평양변전소가 불타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불붙는쪾이 변전소쪽입니다.》

거기에 있는 변압기와 차단기를 비롯해서 중요 송변전설비가 잘못되면 주택마을은 까막나라에서 살아야 한다.

《임자가 이제간들 어찌겠나. 거기 가는 사이면 다 타버릴걸세.》

오천행은 책보따리도 잊어버린채 달려나갔다. 그는 자기가 어떻게 전차길로 뛰쳐나왔는지 알지 못했다. 마침 동평양쪽으로 건너가는 목탄차가 있어서 적재함에 날아올랐다.

그가 헐레벌떡이며 변전소에 와닿았을 때 새해에 열일곱살 잡히는 나어린 배전반공이 출입문앞에 쭈그리고앉아 부들부들 떨면서 울고있었다.

오천행은 변전소건물이 조그마한 화재의 흔적도 없이 생생하게 서있는것을 보고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변전소에서 100여메터 떨어져있는 몇채의 집이 불에 타서 이미 재더미로 되였다.

벌바람이 불 때마다 재더미속에서 잉걸불이 빨갛게 피여오르며 하얀 재가루가 날리였다. 불터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였다.

오천행은 변전소안으로 들어갔다. 변압기를 비롯한 송변전설비들이 그대로 보존되여있었다.

《야 창룡(배전반공)이, 변전소가 생생한데 왜 몽땅 정전이야? 넌 왜 사시나무 떨듯 하며 울고만 있니?》

《여기 배유변이 잘못된것 같은데 어디가 고장났는지 모르게시요. 천행형님! 이안에서 세포위원장아저씨가 반동놈하구 맞붙어 싸워시요. 다 죽게 돼서… 병원에 실려가시요.》

《너 그게 무슨 소리가?》

오천행은 깜짝 놀라며 어린 배전반공의 두어깨를 잡아흔들었다. 그가 말하는 세포위원장이란 서선전기회사 로동조합장이였던 박영만이였다. 그는 오천행의 입당보증인이였다.

《근처에 불이 나서 변전소를 비운채 그쪽에 가보구오니 글쎄 변전소안에서 세포위원장아저씨가 반동놈과 으흑… 형님, 왜 이제야 와요. 오형님만 있었으믄 간첩놈을 쥐새끼처럼 잡아치웠을턴데… 으흐흑…

어린 배전반공은 오천행의 동가슴을 치며 소리쳐 울었다.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였다. 너무도 갑자기 일어난 변고여서 현실이 아닌 악몽속에서 허우적이는듯 했다.

오천행은 실성한 사람처럼 멍청히 서있었다. 허벅다리와 종다리로 몸안의 피가 슬슬 새여나가는듯 전신이 나른해졌다. 문득 풀색보자기 하나가 눈에 띄였다. 도중음식을 자기가 준비할테니 어머니를 수고시키지 말라던 박영만의 말이 머리를 쳤다.

(나를 바래우러 역으로 나가다가 암해분자를 발견했는가?)

불현듯 그의 눈앞에 구레나룻이 더부룩한 박영만의 성난 얼굴이 막아선다. 그다음에는 얼굴의 입묵을 지워버린 박영만이가 벙실벙실 웃으며 다가온다. 2년전 9월 김일성장군님께서 쏘련군대 외과박사에게 부탁하여 지워버리게 하신 입묵이다. 그것은 참으로 어려운 수술이였다.

박영만은 그후 꽃같은 안해를 얻고 떡돌같은 옥동자를 보았었다.

더없이 재미있게 살던 박영만이였다.

오천행은 비칠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아직도 불탄 자리에서는 바람이 불 때마다 잉걸불이 빨갛게 피여오르며 허연 재가루가 날리군 하였다.

아마도 암해분자는 주택마을에 불을 질러 사람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리게 한 다음 변전소를 파괴해버리려고 했던것 같았다.

오천행이 눈물을 뿌리며 선교병원으로 갔을 때 안에서는 녀인들의 통곡소리가 울려나왔다.

박영만은 이미 숨을 거두었던것이다. 정체를 알수 없는 암해분자도 많은 비밀을 걷어안고 죽어버렸다.

《천행이… 밤차탄다. 밥… 가져다주라. 장군님의…》

박영만이 마지막으로 한 말이라고 한다.

오천행은 박영만이 누워있는 수술실에 들어갔다가 견딜수가 없어 도로 나왔다. 그는 출입문 돌계단에 주저앉으며 소리쳤다.

《영만형님-》

그를 부축여주는 사람이 있었다. 김광진이였다.

리문도가 비칠거리며 출입문으로 걸어나왔다.

차디찬 밤바람이 세사람의 얼굴을 때리고 머리칼을 쥐여흔들면서 저쪽으로 줄달음쳐갔다.

이 시각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청진제철소에 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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